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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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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ilnp.co.kr/?ngrp=netizen&act=0105&board=book&sub=view&num=26&sch0=&sch1=&sch2=&page=8) 자유야님의 글    황장엽 선생은 워낙에 널리 알려지고 자주 인구에 회자되는 분이어서 특별히 소개하고 자시고 하는 게 새삼스러운 일처럼 여겨지긴 한다.  이 책은 그 저명한 황장엽 선생이 남한에 내려와서 북한에서의 자신의 삶을 반추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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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ilnp.co.kr/?ngrp=netizen&act=0105&board=book&sub=view&num=26&sch0=&sch1=&sch2=&page=8)

자유야님의 글

 

 황장엽 선생은 워낙에 널리 알려지고 자주 인구에 회자되는 분이어서 특별히 소개하고 자시고 하는 게 새삼스러운 일처럼 여겨지긴 한다.
 
이 책은 그 저명한 황장엽 선생이 남한에 내려와서 북한에서의 자신의 삶을 반추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회고록이란 일종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데, 자서전과의 변별점이라면 그 저자가 특별히 역사적 사건의 중심, 권력의 중심부에 위치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일반사람들의 자서전에는 회고록이라는 명칭을 붙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고록이라는 명칭 속에는 권력자의 자기 돌아봄이라는 의미가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황장엽 선생의 회고록은 1998년에 그 초판이 나왔고 2006년에 약간의 수정을 거쳐 개정판이 나왔다. 필자가 본 '황장엽 회고록'은 2006년의 개정판이었다. 2006년 개정판에는 지난 10년동안 황장엽 선생이 남한에 내려와서 겪고 본 남한 생활에 대한 얘기가 회고록의 말미에 부록처럼 삽입되어져 있는데, 북한에 대한 선생의 회고와는 또다른 의미에서 흥미롭다. 선생의 회고록이 김일성 김정일과 선생의 관계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면, 이 부분에서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선생과의 관계가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매우 소략하게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황장엽 회고록'의 출판사가 시대정신이라는 데에 일단은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시대정신은 출판사이지만, 단순한 출판사가 아니다. 출판사이기 이전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인 하나의 이념집단이라고 하는 게 정당하다. 기존의 '창작과 비평'과 유사한 형태라고 보면 대강 맞지 않을까 싶다. 기존의 '창작과 비평'이 좌파 이념에 기반하고 있는 반면 시대정신은 우파 이념에 기반하고 있다는 차이점을 사상하면, 그와같다.
 
기존의 창작과비평이 '창작과 비평'이란 잡지를 내듯이 시대정신도 '시대정신'이라는 자신들의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잡지를 출간한다. 시대정신이 표방하는 이념은 그야말로 시대정신(Zeitgeist)이다. 그 자이트가이스트가 뉴라이트다.
 
이들이 뉴라이트를 표방하는 것은 올드라이트와의 차별화를 위해서인 듯 하지만, 자신들의 특별한 과거 이력 때문이기도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들은 대체로 과거 좌파 사회주의 이념에 깊이 관계한 내력을 지닌 자들이다. 세대는 386이 중심이다. 과거 사회주의 이념에 깊게 몰입되어 있다 어떤 계기에 의해 전향한 전향자들이기 때문에 변증법적 원리에 따라 뉴라이트라고 부르는 게 타당해보인다고 하는 것이다. 지옥을 맛보고 온 자의 이승과 지옥을 모르는 자의 이승은 같은 이승이라 하더라도 동질적이지는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헌데, 이들에게 전향의 계기를 마련해 준 그 어떤 계기에 황장엽 선생의 역할도 한 몫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정신이 표방하는 뉴라이트는 올드라이트와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닌다. 공통점이라면 둘 다 경제적으로는 자율시장경제를 중시하고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올드라이트가 자본주의의 경쟁원리를 지나치게 신봉하는 반면 뉴라이트는 따뜻한 경쟁원리, 즉 공동체주의가 가미된 자본주의를 표방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이들은 '공동체 자유주의'라고 부르는 듯 한데, 경쟁원리를 중시하되 따뜻한 경쟁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지님이 분명하다.
 
'황장엽 회고록'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왜 시대정신집단에 대하여 다소 장황하게 설명을 하였느냐 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황장엽 선생이 이 회고록에서 남한의 시대정신집단의 이념적 지평이 자신의 사상적 지평과 유사하며, 이들에게서 사상적 공통성을 발견하고 느낀다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장엽 선생의 이 언급이 진솔하다면, 황장엽 선생의 사상과 인생을 이해하기 위해서 시대정신집단의 이념을 사전 인지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는 게 틀림없는 일이 될 것이다.
 
황장엽 선생은 자신의 철학을 인간중심철학이라는 한마디로 규정한다. 철학이라고 일반적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사실 황장엽 선생의 철학은 특정된, 정치사상이라고 하는 게 타당할지 모르겠다. 황장엽 선생이 사상가인 동시에 정치가이고, 그와같은 풍토, 철학이 동시에 정치인 사회에서 철학을 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황장엽 선생의 인간중심철학을 정치사상에 특정해서 말한다면, 인간중심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인간중심의 민주주의란 개인주의적 민주주의와 집단주의적 민주주의가 조화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인간중심이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달리 말하자면, 개인주체와 집단주체가 충돌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협동적 상태로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황장엽 선생은 자유주의를 개인주의적 민주주의로, 사회주의를 집단주의적 민주주의로 이해한다. 또 개인주의적 민주주의는 정의의 원리가 기반이 된 체제이고, 집단주의적 민주주의는 사랑의 원리가 기반이 된 체제라고 이해한다. 황장엽 선생은 민주주의의 근간은 경쟁을 통한 정의의 원리의 확립 즉 개인주체의 확립에 있다고 본다. 이를 근간으로 한 연후에 사랑의 원리를 도입해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을 보듬는, 집단주체의 확립이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정의의 원리에만 입각한 개인주체만의 확립은 소외된 계층을 양산하고 이것이 사회불안요소로 작용해 결국 민주주의를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의 원리에 입각한 개인주체 확립, 이를 근간으로 하고 사랑의 원리에 입각한 집단주체의 확립을 도모하는 것, 이게 황장엽 선생의 인간중심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주체의 확립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황장엽 선생의 언급은 쉽사리 이해가 가지만, 진정한(인간중심의) 민주주의의 성립을 위해서는 여기에 집단주체의 확립이 뒤따라야 한다는 데에는 다소 의문점이 없지 않다. 황장엽 선생은 남한사회가 사상적 중심을 잃고 북한의 선전선동에 쉽사리 넘어가는 게 집단주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기현상이라고 하는데, 동의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남한 사회가 북한의 선전선동에 쉽사리 넘어가는 것은 집단주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집단주체가 강화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민족주체'라는 집단주체 말이다. 남한사회가 북한의 선전선동에 그렇게 취약한 것은 집단주체의 취약성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개인주체의 취약성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게 타당할지 모른다. 개인주체의 확립이 아직 남한 사회에서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여간, 이렇게 살펴보면, 황장엽 선생이 시대정신집단에게서 사상적 공통점을 느낀다고 하는 언급이 결코 빈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황장엽 선생의 인간중심의 민주주의가 시대정신집단의 공동체 자유주의와 일맥상통한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중심의 민주주의가 정의의 원리와 사랑의 원리의 조합이라면 공동체 자유주의 역시 정의의 원리와 사랑의 원리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중심의 민주주의가 정의의 원리를 근간으로 한 사랑의 원리로의 보완인 것처럼 공동체 자유주의 역시 정의의 원리를 근간으로 한 사랑의 원리로의 보완인 까닭이다.
 
게다가 시대정신집단의 멤버들이 대부분 황장엽 선생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하는 점이다. 그 근거는 이들이 대체로 386이라고 하는 데에 있다.
 
386세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학자나 사상가를 들라고 한다면, 이영희, 강만길, 한완상 정도를 거명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한 사람 더 덧붙이자면 황장엽 선생을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북한 사람이긴 하지만 황장엽 선생의 386세대에 대한 영향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어쩌면 386세대에게 미친 사상적 영향력 면에서만 보자면 황장엽 선생이 남한의 이영희나 강만길, 한완상 보다도 훨씬 막강할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영희나 강만길 한완상 등은 단지 주체사상의 옹호자들에 불과할 뿐이지만 황장엽 선생은 주체사상의 사실상의 입안자였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을 받아들인 386들에게 황장엽 선생은 이 시대 최고 최강의 사상가일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황장엽 선생이 사상적 변화를 일으켜 남한에 투항해왔을 때, 황장엽 선생처럼 사상적 전환을 일으킨 386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황장엽 선생을 배신자로 낙인찍은 386들도 적지 않지만. 황장엽 선생을 따라 사상적 전환을 감행한 386 부류 가운데의 한 부류가 바로 시대정신집단이다. 시대정신집단 내 386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황장엽 선생의 제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겠다. 황장엽 선생의 주체사상 을 받아들였고, 또 황장엽 선생의 사상적 전환에 동조해 전향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황장엽 선생의 북한에서의 주체사상과 남한에서의 인간중심철학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 건가. 그건 아마도 개인주체와 집단주체의 우선성 문제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주체사상에서는 집단주체가 우선한다. 개인주체는 필요성이 인정되긴 하지만, 결코 집단주체에 우선할 수는 없다. 반면 인간중심철학에서는 그 우선성이 역전된다. 인간중심철학에서는 그 근간이 개인주체이다. 집단주체는 개인주체화의 극단성이 야기할 수 있는 부정성을 상쇄하는 방편으로서 제시될 뿐이다. 이와같은 차별성은 황장엽 선생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쉽사리 파악될 수 있다.
 

"한국으로 막 넘어올 때만 해도, 계급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가 잘못된 것이지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는 옳은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또 개인주의를 무시하는 집단주의는 잘못된 것이지만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인정하는 집단주의는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에 모두 맞는 올바른 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참다운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이며, 민주주의적 사회주의 사회는 개인주의를 포섭하는 집단주의에 기초하는 사회라고 생각했다."
 

황장엽 선생이 남한으로 넘어온 것은 북한사회가 곧 붕괴되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황장엽 선생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김일성은 그나마 인민을 위해 울 줄 아는 독재자였지만, 김정일은 인민을 위해 울 줄 모르는 독재자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민이 굶주리면 김일성은 걱정하는 시늉이라도 하였던 반면, 김정일은 걱정은 커녕 나 몰라라 할 뿐이라는 것이다. 아니, 그 정상을 더 넘어 이를 즐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김일성은 그나마 가슴이 있었던 반면, 김정일은 가슴마저 없다는 것이다. 북한사회의 붕괴는 체제 자체의 문제가 최우선이겠지만, 지도자의 잘못된 치정 때문일 가능성도 상당하다 할 일인 것이다.
 
그러나 북한사회가 몇 년내로 붕괴되리라 예상했던 황장엽 선생의 확신은 빗나가고 말았다. 북한사회는 황장엽 선생이 남한으로 넘어온 지 어언 10여년이 넘어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건재한 채 붕괴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왜 황장엽 선생의 예측은 빗나갔던 걸까.
 
황장엽 선생은 그 원인을 다른 어디 아닌 남한에서 찾는다. 남한의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남한의 김대중 정권이 입안하고 노무현 정권이 계승한 그 햇볕정책이 북한의 붕괴를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북한의 붕괴가 남한사회에 좋으냐 나쁘냐, 유리하냐 불리하냐에 대한 논란이 남한사회에서 분분한 게 사실이긴 하다. 주로 좀 뭘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와같다. 그러나 황장엽 선생은 묻고 있다. 북한 인민 300만의 아사자를 내고 수십만의 사람들을 정치범 수용소에 가두어놓고 학살하고, 인민을 적으로 간주하고 폭압을 일삼는 김정일 정권을 살려주고 살찌우는 이게 과연 도덕적으로 가하고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인가 고.

h****m 2008.04.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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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의 아버지이자, 대한민국에서는 자유민주의 가치를 아시는 분이다.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의 아버지이자, 대한민국에서는 자유민주의 가치를 아시는 분이다." 내용보기
고향에서 잘살았던 아버지가 광복 이후에 가난해지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비판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정치적인 활동을 극도로 기피했고, 철학자로서 북한에서 나름대로 높은 지위에 올라섰다.중국의 성장과 소련의 붕괴하면서 심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왕조의 교조주의가 북한인민들을 굶어죽고 생존하기 힘들게 했다. 주체사상을 인본주의 철학이라고 했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의 아버지이자, 대한민국에서는 자유민주의 가치를 아시는 분이다." 내용보기
고향에서 잘살았던 아버지가 광복 이후에 가난해지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비판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정치적인 활동을 극도로 기피했고, 철학자로서 북한에서 나름대로 높은 지위에 올라섰다.
중국의 성장과 소련의 붕괴하면서 심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왕조의 교조주의가 북한인민들을 굶어죽고 생존하기 힘들게 했다.
주체사상을 인본주의 철학이라고 했지만 거짓의 이론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북한을 맹신하는 남한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해서 마음속에 언제나 죄를 짓고 사는 기분이라고 했다
p******h 2018.02.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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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연령층이 읽어야할 책
"모든 연령층이 읽어야할 책" 내용보기
째려보고 또 고개를 갸우뚱해보고… 한 동안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책장에 꽂혀 있는 황장엽의 <회고록>을 읽을까 말까 무척 고민했다. 그가 과거에 썼던 책을 읽으려다 너무 어려워 포기했던 경험 때문이었다. 하얀색 책등에 빨간색 한자로 회고록이라고 쓰여 있는, 키 낮은 책. 결국은 2008년 읽을 마지막 책으로 선택했다. 회고록이라는 단어에 끌렸기 때문이다.   약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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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려보고 또 고개를 갸우뚱해보고… 
한 동안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책장에 꽂혀 있는 황장엽의 <회고록>을 읽을까 말까 무척 고민했다.
그가 과거에 썼던 책을 읽으려다 너무 어려워 포기했던 경험 때문이었다.

하얀색 책등에 빨간색 한자로 회고록이라고 쓰여 있는, 키 낮은 책.
결국은 2008년 읽을 마지막 책으로 선택했다.
회고록이라는 단어에 끌렸기 때문이다.

 

약 10년 전인 1997년 그가 우리나라로 왔을 때가 기억난다.
온 나라가 들썩였다.
시쳇말로 ‘거물’이 왔다는 것이다.
탈북자 중 가장 고위층 인사였기 때문이다.
김일성대학 총장, 최고인민회의 의장(국회의장급), 조선노동당 국제담당비서(장관급) 등 요직을 갖춘 인물이다.
게다가 김일성과 김정일과도 친분이 좋은 편이다.

 

그런 그가 모든 이와 생이별을 했다.
영이별은 잊히지만 생이별은 더 깊이 남아 폐부를 찌르는 법이다.

 

“나는 나를 믿고 따르며 나에게 희망과 기대를 걸어온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모두 배반하였소. 그들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고 욕하는 것은 응당하다고 생각하오. 가슴만 아플 뿐 사죄할 길이 없소. (중략)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이별을 한 이 아픈 가슴을 이겨내며 내가 얼마나 더 목숨을 부지할지는 알 수 없으나, 여생은 오직 민족을 위하여 바칠 생각이오. 나 개인의 생명보다는 가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고 가족의 생명보다는 민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며 한 민족의 생명보다는 전 인류의 생명이 더 귀중하다는 내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만 알아주기 바라오.”
-아내에게 보내는 유서 중에서-

 

생이별의 아픔을 잘 아는 저자 황장엽이 왜 그 길을 택했을까?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그것도 고령의 나이에 왜 단신으로 남한으로 망명했을까?

저자는 이 책에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북한은 경제가 붕괴 위기에 있다. 시장에서 사람고기를 팔 정도로 심하다. 그러나 김정일은 자신의 독재화에만 신경 쓰고 있다. 이를 남한과 미국에 알려 북한을 흡수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죽기 전에 할 일이 그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자신과 같은 고위층이 남한으로 망명한 사실을 북한 일반인들이 알면 북한 체제는 더 빠른 속도로 붕괴할 것으로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남한에 와보니 사실과 너무 다른 점에 놀랐다고 했다. 자신이 망명하면 남한과 미국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북한을 흡수 통일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남한과 미국은 북한이 붕괴되는 것을 막고 있다고 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예로 들었다.
김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에 대해 황장엽은 “독재자 김정일을 이용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라 평가절하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용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무리 북한을 떠났다고 하지만 밝히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또 우리 정부에 대한 비판은 사전 검열을 통해 편집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사실 내용을 검증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저자의 인품을 볼 때 허풍을 떨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죽기 전에 남긴 회고록에서 거짓을 남기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밝히지 않은, 숨겨진 사실이 있을지언정 말이다.

 

저자는 개인보다 민족을 위해 가슴 아픈 생이별을 감내하면서까지 망명길에 올랐다고 했다.
북한 권력의 이권다툼에서도 견디지 못했다고 했다.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북한에서의 위치와 나이 등을 무시할 정도로 가치있는 망명일까?
이 점에는 여전히 물음표를 붙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흥미는 북한의 현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가 김일성대학 총장과 당 간부로 일할 때 경험한 북한의 교육과 정치 현실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당 간부가 되었다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가르쳐 준 교수를 함부로 대하는 젊은 제자의 사례를 들어 개탄했다.
김정일의 신임을 받는 측근인 자신도 항상 감시를 받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당 간부의 자식들은 결혼할 수 없다면서 자신의 아들과 다른 당 간부 딸의 결혼 문제를 김정일과 논의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일화도 소개되어 있다.

 

참고로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은 교육이 될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b*****m 2008.12.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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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지만, 한편으로 우리와 비슷한 북한의 실체
"이해할 수 없지만, 한편으로 우리와 비슷한 북한의 실체" 내용보기
입국할 당시와는 달리 너무도 조용하게 살고 있는 황장엽 선생님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책 장점 : 1. 북한의 실상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2. 북한이 왜 문제가 많은 나라인지 알 수 있다         3. 이러한 북한이 왜 우리와 같은 민족인지 알 수 있다         4. 우리의 단점을 알 수 있다 단점 : 1. 북한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2. 솔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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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할 당시와는 달리 너무도 조용하게 살고 있는 황장엽 선생님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책

장점 : 1. 북한의 실상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2. 북한이 왜 문제가 많은 나라인지 알 수 있다

        3. 이러한 북한이 왜 우리와 같은 민족인지 알 수 있다

        4. 우리의 단점을 알 수 있다

단점 : 1. 북한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2. 솔직하지 못한 북한 엘리트들에 대해 실망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07.02.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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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에서 인류로 눈을 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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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싶은 책을 고르라는 누나의 호의에 갑작스런 책고르기의 결과다. 황장엽 ○○. 그간 단 타이틀이 너무많아 뭐라고 써야할지 모르겠다. 그냥 "위원장"이라고 할까? 북에서 망명한 정치 고위자라고 막연하게 알고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철학자 또는 사상가 쪽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일제때와 6.25 전후까지는 일반적으로 동시대 지식인들이 걸었던 길을 흡사하게 밟아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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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싶은 책을 고르라는 누나의 호의에 갑작스런 책고르기의 결과다. 황장엽 ○○. 그간 단 타이틀이 너무많아 뭐라고 써야할지 모르겠다. 그냥 "위원장"이라고 할까? 북에서 망명한 정치 고위자라고 막연하게 알고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철학자 또는 사상가 쪽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일제때와 6.25 전후까지는 일반적으로 동시대 지식인들이 걸었던 길을 흡사하게 밟아 친근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전후부터 달라지는 그의 인생이란... 여전히 남한사람에겐 생소하기만한 북한의 여러 직책을 역임하며 소위 "주체사상"이라는 것을 만들사람이 이 사람인것을 알았다. 김일성과는 동시대인이라 잘 지내왔는지 모르겠지만 김정일과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는게 그의 운명이었을런지도 모른다. 어쨋튼 결국 그게싫어 가족, 지위 다 던져놓고 한국으로 망명. 이제는 한국의 진보와 보수진영 모두에게 쓴소리를 한다. 이 책을 읽고나서 막연하게만 느꼈던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정말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는 지도자 시스템의 차이랄까? 내게 이성과 감성의 갈등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n******a 2006.12.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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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실상과 남한 사회의 과제
"북한의 실상과 남한 사회의 과제" 내용보기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대북관계가 악화된 지금의 시점에서, 문득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책의 저자인 황장엽만큼이나 북한을 잘 아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북한의 정치적 요직에서 활약한 그의 증언들은 직접 겪은 경험에 근거했기에 호소력이 강하다.     얼마 전 남파공작원들이 황장엽을 암살하려 했던 기사를 읽었는데 책을 읽어보
"북한의 실상과 남한 사회의 과제" 내용보기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대북관계가 악화된 지금의 시점에서, 문득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책의 저자인 황장엽만큼이나 북한을 잘 아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북한의 정치적 요직에서 활약한 그의 증언들은 직접 겪은 경험에 근거했기에 호소력이 강하다.

 

  얼마 전 남파공작원들이 황장엽을 암살하려 했던 기사를 읽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북한당국의 암살지령이 떨어질 만한 인물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체계화 시켰고, 북한의 내·외부 상황과 앞으로의 일들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삶은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예가 된다.

 

 

  문제는 북한을 주체로 하여 전 조선을 내 조국으로 정할 것인가, 아니면 남한을 주체로 하여 전 조선을 내 조국으로 생각할 것인가 하는 데 차이가 있을 뿐이지, 전 조선을 내 조국으로 생각하는 데는 우리 민족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내 조국의 북쪽 땅으로부터 남쪽 땅으로 넘어오는 걸 왜 하필이면 망명이라고 해야 하는가, 내게는 그게 불만이었다.  <32p>

 

  북한과 남한이라는 같은 민족 사이에서 국적선택에 대한 그의 고민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같은 말과 풍속을 가진 한민족이 북한과 남한으로 나눠져, 자신의 조국을 선택해야하는 순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의 말대로 그저 눈앞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것뿐인데 주변의 상황들은 그에게 무엇인가 결단을 바라고 있으니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그의 생각에 북한의 국적을 버린다는 생각보다 남한이라는 또 다른 조국으로 내려온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합쳐질 조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를 찾아온 그 인사는 물론 대사관 직원들까지도 이제는 알 때가 되었다면서 한국의 사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우리로서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대사관 직원들은 우리에게 한국 사회의 다양함에 대해 말해 주면서 우리가 실망하지 않도록 매우 세심하게 마음을 써주었다. 앞으로 서울에 가서 예기치 못한 일에 부닥치더라도 절대 신경 쓰지 말라. 또 어차피 조국통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하려고 왔으니 열심히 그 일만 하라는 식으로.  <37p>

 

  이념과 사회혼란 속에 있었던 1996년 남한의 실정을 전해들은 황장엽과 그 일행은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특히 반공과 북한의 무장공비침투 등 잦은 군사적 도발로 대북관계가 긴장된 상황에서 그의 등장은 남한사회에서 결코 환영받을 일은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의심과 경계의 시선이 강했고, 북한에 관한 그의 말들은 한동안 우리 사회에 큰 이슈가 되었다. 남북통일을 위한 그의 의지는 존중받아야 할 것인데,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한 우려와 국방력 강화 필요성과 공포정치 선전용으로 이어진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가 남한을 편하게 오기에는 그를 맞이할 준비가 남한은 아직 안 된 상태였다.

 

  당시에도 나는 전쟁을 북이 일으켰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대립,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 간의 계급투쟁으로 전쟁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내 마음은 그저 빨리 북에 사회주의를 건설하여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실증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데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남한도 북의 사회주의를 따라와 저절로 통일 될 것이라고 믿었다.  <118p>

 

  1950년 6·25 전쟁은 명백한 북한의 대남침략이었다. 해방 직후부터 북한과 남한은 이념의 대결로 냉전체제였다. 소련과 미국은 서로 한반도를 장악하기 위해 우리 민족을 이용했고, 국민 선동과 통합 방해공작으로 좌파와 우파는 연일 대립했다. 결국 남한에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북한도 인민의회를 소집하여 갈라섰고, 미국이 남한에 대해 무관심했던 사이를 틈타 북한이 쳐들어 온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예고된 전쟁이었다.

 

  황장엽 이때 러시아 유학중이었다. 그러나 그의 증언을 토대로 6·25전쟁이 북한의 이데올로기를 실현하려는 전쟁이었다는 것은 더욱 분명해졌다. 벌써 60년이 지난 전쟁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고 전후세대들이 태어났지만, 6·25전쟁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 이유는 전쟁이 가져다주는 폐해보다, 국민들의 안보의식과 남북한이 왜 통일을 해야만 하고 통일 후 어떤 나라를 꿈꾸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김일성이 일본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벌인 것만 가지고도 그를 존경하며 따랐다. 내가 삼척에서 징용살이를 하면서 김일성 장군의 독립투쟁에 관한 얘기를 들었을 때, 그것이 비록 과도하게 포장된 풍설이라 할지라도 그가 이끄는 민족의 군대를 한번 보기만 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해방 후에 김일성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놓고 논란이 빚어졌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쨌든 북의 김일성이 빨치산에 가담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를 받드는 것이 마땅하다. 진짜 김일성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대단한 존재도 아니며, 또 허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면 어떻고 가짜면 어떻단 말인가?’  <142 ~ 143p>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과 관점의 차이가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영웅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악마일 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일제치하에서 항일투쟁을 했던 사람들은 나라를 구하고자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사람들이다. 거기에는 이념과 출신성분에 대한 대립이 극히 적었고 오직 독립을 위한 투쟁이 앞섰다. 하지만 해방이 되자 이념과 출신성분은 분열과 갈등의 계기가 되어 결국 한반도를 갈라놓았다.

 

  이때의 황장엽은 어떤 이념에 강하게 사로잡힌 인물이 아니었다. 그저 김일성이라는 존재가 자신이 보았던 현실 속에서 영웅처럼 다가왔던 것이다. 김일성은 황장엽이 할 수 없는 무장투쟁에 앞장섰고 그러기에 과도한 포장과 유언비어 속에서도 김일성에 대한 호감은 좋을 수밖에 없었다. 비단 황장엽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영웅은 사람이 되고 싶어 되는 것도 아니고, 시대상황과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의해 만들어질 뿐이다.

 

  나는 중소 간의 논쟁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산주의자들은 물질적 욕망이나 권력욕이 없고 오직 공산주의 이념만을 위하여 싸우는 참다운 혁명가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중국과 소련이 서로 편싸움을 하는 것을 보고는 공산주의자들이야말로 권력욕이 강하며 권력을 위해서는 사상이나 이론의 정당성에 관계없이 그것을 저들의 이익에 맞게 왜곡하여 해설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정치지도자들이라는 자들도 이론수준은 그리 높지 않으면서 오로지 권모술수에만 능하다는 것 또한 알았다. 나는 그러면서 마르크스주의 자체에는 명백한 과학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절대로 마르크스나 레닌의 학설을 교조주의적으로 대해서는 안 되며, 사회주의의 미래를 위하여 이론을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160p>

 

  공산주의의 변질은 자본주의의 변질과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념과 사상이 순수한 의도에서는 상황에 따라 긍정적으로 적용될 수 있지만, 수단이 되는 순간부터 변질된다. 변질의 강도 따라 잔인하게 강해지고 포악해지는데, 인류역사는 이런 변질된 이념과 사상으로 많은 피해를 보았고, 시민들의 투쟁에 축출당하면서 인류는 지금까지 생존되어 왔다.

 

  마르크스가 말했던 공산주의는 부당한 대우와 생존권의 위기에 처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소식 같은 이념과 사상이었다. 마르크스는 당시 자본주의의 단점인 빈부격차와 사회정의 실패에 분개했고, 그에 따른 해답으로 사유재산제도 철폐와 노동에 근거한 배급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후예들은 본래 취지에 어긋난, 독재와 권력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공산주의를 이용했다. 중국, 소련, 북한 등등.. 공산주의 국가들은 무장혁명을 통해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나라를 건국했지만, 결국 군사독재체제를 수립했고 공포정치와 폐쇄정치를 펼쳤다.

 

  다행이도 20세기 말부터 소련은 해체되고 중국은 점진적 개방으로 돌아섰지만, 북한은 아직도 국제사회에서 군사독재와 공포·폐쇄정치를 하고 있다. 이점은 인본주의자이자 실용주의 지식인인 황장엽이 보기에, 당연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오직 권모술수와 권력유지를 위한 피의 숙청은, 북한 스스로가 공산주의를 변질시켜 고전적 봉건사회로 돌아간 시대착오적 체제를 만들었고, 이는 북한민들의 생존권 박탈과 국가 근간을 흔드는 결과를 낳았다.

 

  처음부터 계급이 있었던 게 아니며 또 앞으로 계급이 없어진다는 것도 마르크스주의가 인정하는 바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류역사발전 과정에서 극히 짧은 기간에 일시적으로 출현한 현상인 계급을 중심으로 역사를 보아야 하는가. 인간 자체를 중심으로 역사를 봐야 맞지 않은가. 이것은 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명분하에 자행되었다. 또 중국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을 하면서 코흘리개 홍위병들을 동원하여 미친 듯이 문화를 파괴하고 문화의 창조자인 인텔리들을 박해했는데, 이것도 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명분하에 전개되었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마오쩌둥에 대한 개인숭배가 절정에 달했다.  <187p>

 

  나는 그 순간부터 마르크스의 계급투쟁 및 프롤레타리아독재이론과 결별하고 인간과 인류에 충실한 인본주의자로 전환했다. 따라서 나는 인류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봐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벗어나, 역사를 인간의 발전역사로 봐야 한다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필요하며,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인간의 운명개척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인간의 운명개척의 길을 밝혀주는 데 철학의 사명이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188~189p>

 

  황장엽이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한 이후 그는 철저한 인본주의자가 되었다. 아마 이 계기가 주체사상의 발단이 되었을 것이다. 황장엽은 공산주의의 변질을 지켜보면서 공산주의의 이론을 재해석했고 그것을 부정했다. 계급투쟁의 역사는 후예들에 의해 폭력적이고 과격한 행동을 낳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권좌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이런 광경을 지켜본 황장엽에게 더 이상 공산주의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오직 인간 스스로가 운명을 개척해나가며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의식이 뚜렷하게 자리 잡게 되었고, 이후 그의 철학과 정치는 인간의 삶에 대한 발전적이고 실용적인 이론과 정책을 제시한다.

 

  북한의 교육은 탁아소,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김일성과 김정일의 우상화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을 따라 배우자’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장군님을 따라 배우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혁명역사’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 혁명역사’ 등 김 부자 우상화 과목이 기본과목으로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관련이 없는 다른 학과목에조차 김 부자의 우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238p>

 

  체제의 몰락은 대체로 외부적인 충격이나 침식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내부적인 모순과 균열에서 온다. 북한정권의 몰락도 그 원인은 내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김정일이 권력의 전면에 나서는 시기와 북한경제가 하강곡선을 그리는 시기가 일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76p>

   

  독일의 통일도 소련의 붕괴 못지않게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김일성 부자는 이 두 가지 엄중한 경고를 보면서도 역사에 더욱 역행하는 길로 나가고 있었다. 때문에 북한의 장래가 뻔히 내다보여, 내 고민은 갈수록 커졌다. 나는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찬 북한의 현실을 뒤집어 선전하는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심각한 회의에 빠졌다. 내가 보기에 유일하게 남은 희망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중국을 따라 개혁 개방으로 나가는 것이었으나 그럴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중국도 내심으로는 북한을 개방으로 이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으나, 북한을 방문하고 간 인사들도 그저 많은 것을 배워간다는 투의 의례적인 말만 할 뿐이었다.  <285p>

 

  공산주의의 몰락은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으로 몰고 갔다.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중간단계에서 일부독재정치를 허용한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넘지 못한 채,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1인 독재체제를 반세기 넘게 이어오고 있다. 황장엽에 증언에 의하면, 김일성이 통치하던 북한은 1958년 천리마운동으로 남한의 경제력을 넘어서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후에도 지역개발을 통해 노동력 창출과 중국, 소련 등 지역 공산주의 국가들의 연대로 북한 스스로가 국가적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나 세계화의 흐름으로 개혁개방정책이 뚜렷하게 진행된, 20세기 말인 1976년~1986년부터 정권 후계자로 지목되고 집권한 김정일은 개혁개방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는다. 오히려 자신의 권력체제를 다지기 위해 인척들을 정리했고, 무리한 국책사업과 외화낭비로 국가경제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교육정책에 있어서 독재정권을 정당화하려는 세뇌교육은 북한민들의 정신과 교육수준을 낮게 만드는 결과를 낳아, 주체적인 판단과 활동을 제한시켜버렸다. 오직 권력유지와 전쟁준비라는 두 가지 전제 속에 이루어지는 북한의 정책들은 스스로 국가적 기능을 상실하여 사회 각 분야의 몰락과 낙후를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2007년 10·4선언 때도 김정일은 노무현의 개혁개방 권유에 반감을 가지며, 그런 제안을 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몰락과 러시아와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인한 국가발전은 북한을 더욱 고립되게 만드는 실증적 예가 되었다. 혈맹적 관계인 중국이 이런 북한을 보며 계륵처럼 여기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북한이 중국의 권유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애당초 김정일의 북한은 개혁개방을 국가발전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유지와 체제 유지를 위한 관점에서 허용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한 경제협력이 마비된 상황에서 북한의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고, 국가존폐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과 체제 존속을 위해 대내외적으로 극단적인 말과 행동을 실행할 가능성은 크다. 특히 천안함 사건으로 앞으로 있을 UN안보리에 결의된 국가들의 대북제재는, 북한을 더욱 자극하여 그 피해의 1순위로 남한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내 입장에서 보면 김일성은 분명 그 누구보다도 나에게 잘해 주었고, 또 한편으로는 은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식 정치를 더욱 개악(改惡)함으로써 사회발전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이 너무도 커서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의 죽음을 마음 속 깊이 슬퍼할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개인숭배로 사람들의 자주의식을 극도로 마비시켜 전 인민이 땅을 치며 울도록 만든 그의 행적이 더욱 미워지는 것이었다. 북한주민을 자주의식이 없는 꼭두각시로 만든 걸 생각하면 눈물은커녕 울컥 분노가 치밀었다.  <313~314p>

 

  나는 남한에서 온 두 학생을 환영해 주었다. 그러나 내 양심은 그게 아니었다. 그들과 악수를 하면서도 ‘이 어린 학생들을 속이고 있구나.’ 하는 죄책감 때문에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한 남한의 청년학생들이 북한의 실정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차고 자유가 없어 감옥과 같은 북한을 굳이 찾아올 리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청년들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그들이 이상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사회주의와는 인연이 먼 전체주의와 봉건주의가 결합된 현대판 봉건사회인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326p>

 

  남북한 첫 정상회담이 1994년 7월 25일에 예정되었으나 그해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함으로 무산됐다. 황장엽은 그 당시 김일성은 흥분하여 조국통일이 곧 이루어질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혔다고 증언한다. 그 이유로는 남한국민들이 자신을 떠받들고 있다는 투로 김정일이 허위보고를 한 탓에 김일성으로서도 자기 환상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김일성의 사망으로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되었지만, 황장엽의 이러한 증언은 그 당시 남한의 불안정한 사회상을 대변한다고 본다.

 

  황장엽은 '김정일의 허위보고' 라고 표현했지만, 흔히 1980년대 남한의 대부분 운동권 학생들이 주사파(북한 주체사상 추종자)로 활동하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게다가 군사독재정권의 말기로 민주화 운동과 사회갈등이 팽배했던 시기였고, 이런 혼란을 틈타 실제로 북한은 제 2의 남침을 계획할 정도로 흥분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김정일의 보고는 허위라고 말하기엔 혼란스럽던 남한 실정이 반영된 근거 있는 보고였다고 생각한다.

 

  주사파들은 계속적으로 사회운동을 주도하며 공권력과 물리적 충돌을 벌였고, 국민들도 주사파 운동에 일부 가담하면서 민주화 운동으로 확산되었던 1980년대의 상황은 공권력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주사파의 후예들은 지금도 남한 사회에서 활개치고 있다. 그 당시 주사파들은 이후 정치인과 사회 유력자들이 되어 정치와 사회 속에서 이념과 사상 갈등의 한축을 담당했는데, 일명 ‘친북좌파’ 들의 정치행보는 90년대 말까지 학생운동을 주도하며 사회통합을 방해했고, 지금도 진보세력 내에서 반미와 친북을 주장하며 활동하고 있다.

 

  황장엽은 주사파들의 문제점을 북한의 실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에 대한 무지함이라 말한다. 그는 주사파들이 북한의 실정을 안다면 절대 종북주의로 나아갈 수 없고, 그들이 말하는 것은 그저 이상사회에 대한 열망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주사파의 등장은 1980년대의 남한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 탈피에 있다고 본다. 즉, 군사독재정권의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인본주의적인 주체사상에 호감을 느낀 젊은 세대들이 주사파로 활동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마르크스주의와 연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에 대한 공권력의 압박은 더욱 단결하게 만들었고, 오늘날 친북좌파세력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근거가 되었다.

 

  나는 평양에 돌아와 김정일이게 북한의 경제는 관광업을 발전시키면 회생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경제는 중병에 걸린 환자와 같아서 강한 주사를 맞지 않으면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이 내 지론이었다. 그런데 밑천 들이지 않고 구할 수 있는 그 주사약이 바로 금강산 개발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328~329p>

 

  황장엽의 마지막 건의는 금강산 관광이었으나 김정일은 관광을 허용하는 것은 곧 개방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절당했다. 이후 금강산 관광은 1999년에 시작되었으니 어떻게 보면 북한경제가 더욱 어려워진 후에야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더구나 지금 금강산 관광은 교착상태에 있고 언제 다시 재개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로인해 북한경제는 더욱 타격을 받을 것은 분명하고, 다른 해외자본을 유치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으니 금강산 관광 중단은 북한에게는 엄청난 손실이 될 것이다.

 

  사상적 분산성과 자유방임주의의 확산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심중한 요인이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사상의 자유와 다양성을 강조하지만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사상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두 측면을 다 같이 고려하여야 한다. 하나는 개인의 사상적 자유와 다양성을 보장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집단의 사상적 통일성을 보장하는 문제이다. 인간은 한 세대로만 끝나는 개인적 존재인 동시에 영원한 미래를 가진 집단적 존재인 만큼 개인의 생존과 발전을 옹호하는 사상이 필요할 뿐 아니라 집단의 영원한 생존과 발전을 옹호하는 사상도 필요하다. 민주주의 사상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사상적 자유와 다양성을 허용함과 동시에 집단의 먼 앞날까지 예견할 수 있는 사상의 통일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370~371p>

 

  남한만큼 이념과 사상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도 드물 것이다. 민주주의를 사회이념으로 채택했지만, 남한의 현대사는 군사독재정권의 장기통치와 이에 맞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시민운동이 충돌하는 등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우파와 좌파간의 갈등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물론 민주주의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할 수 있으나 갈등이 지속되면 사회통합은 이루어질 수 없다. 다양성을 존중하지만 공통의 규칙과 한계는 있어야 하고, 이것에 벗어날 시에는 그에 따른 책임과 규제를 받아야 한다.

 

  나는 남한 사회에 대한 황장엽의 우려에 대해 공감하지만, 남북한이 대립관계에 있는 특수적인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한에서 우파와 좌파간의 갈등은 남북관계 부분에서 특히 치열하며 통일이 이후에도 북한의 개발과 인권보장에 있어서 더 극심한 갈등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사회 내에 우파와 좌파간의 어느 정도의 합의점이 있어야 하고, 중립에 위치한 사람들까지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이는 공통의 규칙과 한계를 뜻한다.

 

  남한사람들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민주와 반민주,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민주주의에 대한 통일적인 기준조차 없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면 똑똑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모 정치인이 북한의 김정일을 찾아가 만나고 돌아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민주주의 발전과 민족의 이익에 맞는지를 정확히 따지지 못하고, ‘민족통일’이요, ‘민족공조’요 하는 식의 빛깔 좋은 ‘말’에 쉽게 현혹된 것도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371p>

 

  김정일은 북한인민을 무자비하게 굶겨죽이고 온 나라를 감옥으로 만든 세습봉건 통치자이다. 또한 민주주의의 적이며 민족의 반역자다. 따라서 인민을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민주주의의 원칙적 잣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김정일을 반민주 반민족주의자로 규탄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와 공조를 논의하는 자도 같은 부류라고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민족공조론자들과 김정일 정권을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는 한국사회가 사상적 통일이 결여된 사회이며 정신적으로 반신불수 상태나 다름없는 사회라는 증거다.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을 어떻게 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가. 핵무기만 포기하면 국교를 정상화하겠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경우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흥정하고 있는 정치적 장사꾼들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사업을 강화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교양을 강화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원칙과 기준을 확고히 심어주는 것이다.  <371~372p>

 

  정확한 지적이다. 남한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는 저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 한쪽은 민주주의에 있어서 대의제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도덕성을 잃고 부패와 비리를 일삼으며 독재와 손잡는 것이 친숙하고, 한쪽은 사회 내 인권과 국민주권을 회복하려고 노력하지만, 분열의 분열을 거듭하고 종북주의와 주사파들이 대거 속해있다. 이런 양극단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계는 타협보다는 분쟁에, 인정보다는 비난에 익숙하다. 그렇다면 양쪽 진영은 민주주의 본질에 대해서 심도 있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사회 내에서 여러 가지 의견 충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 기반을 흔들리게 하거나 국민들이 느끼기에 위기의식을 갖게 한다면, 의견 충돌에 대한 원인과 그 결과의 문제를 생각해봐야하지 않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황장엽이 지적한 민주주의의 바른 정립은 시급하고 잘못된 이해를 통한 피해는 국민들의 몫이 된다.

 

  황장엽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 입장인 남북한의 상호호혜주의 원칙도 동의하지 않는데, 이것은 두고 볼 일이다. 남북한이 체제가 다르기에 서로 적대관계를 유지하며 있으면서 대화와 타협을 자제하는 것은, 한민족인 남북한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지난 10년 동안 정부는 북한에게 일방적인 지원을 해줬다면, 현 정부는 상호호혜주의를 대북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되고 있다. 그리고 안보의 위험이 가중된다면 전면전도 가능하게 되는데, 이것은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라면 국민들의 안전과 평안이 중요하지 않을까?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것은 단순히 이론적인 정립과 의식화에서만 그쳐서는 안 된다. 북한이 군사적으로 남한을 위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민들의 인권 보장은 남한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 이는 한민족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비극적인 현실을 딛고 이루어가야 할 민족적 책임이다.

 

  사회주의 사상은 본질상 집단주의적 민주주의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집단주의적 민주주의 사상은 개인주의에 의거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사상의 일면성에 대립되어 출현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계급적으로 대립시켜 놓고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무산계급의 독재 밑에서 사회주의 일색으로 사회를 통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결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민주주의 이전 사회로 후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체제가 민주주의 체제보다 더 발전된 사회체제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민주주의 체제를 사회주의 체제로 교체하려고 했다. 그들은 민주주의 체제가 더욱 발전해야 한다는 점을 보지 못했다. 또 사회주의 체제가 민주주의 체제의 한 측면인 집단중심 민주주의 체제를 계급주의적으로 왜곡하여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였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발전의 첫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중심 민주주의를 사회정의의 원칙에 의거하여 완성해 나가면서 사람들의 정신문화적 조건과 경제적 조건이 성숙함에 따라 집단의 생존 발전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사랑의 원칙과 집단중심의 민주주의의 비중을 점차 높여 나가는 방향에서 민주주의의 차원을 높여 나가야 한다.  <374p>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황장엽의 견해는 일리 있는 말이긴 하나, 뒤에 이르는 집단중심의 민주주의의 비중을 점차 높여 나가는 것은 공산주의의 한 변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일단 민주주의에 단계가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생각이나, 우리가 사는 ‘자유’ 민주주의 사회 내에서 중시되어지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어떤 근거 없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버리면, 사회는 더 이상 ‘자유’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민주주의가 집단중심으로 간다면, 당연히 자유의 보장은 줄어들 가능성이 있고 이는 그의 말대로 민주주의가 사회주의로 회귀하는 것과 다름없다. 황장엽의 견해가 이것을 지향한다면, 난 동의하기 힘들다. 조금 다른 제안을 한다면, 사회 내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여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되, 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차등적 평등과 분배를 추구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중국은 개혁 개방의 길을 선택한 이후, 유례없는 고도 경제성장을 20여 년간 계속하고 있다. 중국의 기적적인 발전의 배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큰 테두리에서 계획과 균형의 원칙을 견지하면서 그 테두리 안에서 자유경쟁과 시장경제를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결국 개인중심 민주주의의 장점과 집단중심 민주주의의 장점을 중국의 실정에 맞게 결합시키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일당에 의거한 통일적 지도가 필수적이며, 사회의 정치사상적 통일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385p>

 

  중국 개혁개방에 대한 황장엽의 이런 견해는 지금의 북한이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통일되어도 문제인 것이, 북한의 경제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대로 통일이 된다면, 남한은 북한 경제와 사회 전 분야에서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하고, 현재 남한의 경제력이 약화되어 경제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은 빨리 개혁개방에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유일당에 의거한 통일적 지도는 절대 안 된다. 남한을 북한으로 만들 셈인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사상을 통일하면 다양성은 어디로 가는가? 더구나 유일당이나 획일화된 사회가 되어버리면 소수의 의견이나 그들을 위한 인권을 누가 보장하는가? 황장엽의 이 견해는 전적으로 반대한다.

  

  김대중 씨는 대한민국의 존엄 있는 대통령으로서 대담하게도 국민들까지 속이면서 막대한 외화를 김정일에게 넘겨주었다. 남한의 많은 평범한 사람들과 해외의 사심 없는 인사들은 그것이 다 김정일의 핵무장을 강화하고 남한인민에게 더 큰 군사적 위협을 주는 데 기여하였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 씨와 그의 추종자들만은 그것이 북한을 자유민주주의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을 두 분으로 똑똑히 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25년간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적 모범을 통하여 김정일에게 개혁개방을 같이 할 것을 호소하여 왔다. 그러나 김정일은 계속 단호히 거절하고 수령유일독재의 길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식 개혁 개방마저 반대하는 김정일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김대중 씨와 그의 추종자들은 마땅히 중국도 북한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참고로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중국이 굴레 벗은 망아지처럼 제멋대로만 하려는 김정일을 계속 붙들고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식 자유민주주의가 압록강까지 다가오는 것을 억제하기 위하여 쓸모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391p>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지난 10년간 대북사업에 있어서 원칙과 신뢰를 중시하면서도 친북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일명 ‘퍼주기’ 로 말하는데,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짙게 배여 있다. 실제로 故김대중 前 대통령은 북한의 대내외적 도발이 자행되면 전국을 돌며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 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끝나고 귀국인사에서 “더 이상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 고 말했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그리고 2007년 10월 있었던 남북정상회담도 이전과 같이 평화적인 조약을 맺었지만, 지금의 대북관계는 긴장상태를 넘어 전시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결국 지금 10년간 민주정부의 대북정책이 지탄받는 이유가 강경과 온건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한 정책적 기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도 못한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물론 평가가 엇갈리겠지만, 남북경제협력과 금강산 관광 등의 대북사업은 지난 정부들에서도 볼 수 없는 성과였다. 북한이 미국식 자유 민주주의를 가지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 개혁개방을 어느 정도 해준다면 북한의 경제력은 점차 나아질 수 있다는 전망에서 나온 대북정책이기에 이런 성과들은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중국의 역할과 입장이 아쉽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게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는데, 너무 온건한 입장에 있는 것 같다. 또한 공산주의를 위해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방어로 북한을 이용한다면, 이는 국제사회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정의의 원리와 사랑의 원리는 모두 인간의 본성에 기초하고 있으나 먼저 실현해야 할 원리는 정의의 원리다. 정의의 원리를 실현해 개인들의 생활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생활문제를 자립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개인들의 결합체보다 생활문제를 자립적으로 해결한 개인들의 결합체가 더 우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의의 원리를 선행하면서 사랑의 원리를 배합해 나가는 것이 사회발전의 합법칙성에 부합한다. 소련 사회주의의 패망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여전히 사회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의 실패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개인중심의 민주주의를 없앨 수는 없다. 개인중심의 민주주의는 개인적 존재라는 인간의 본성과 결부된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정의의 원리를 폐지하고 사랑의 원리만으로 운영되는 사회는 현실 속에서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사회는 개인적 존재이자 집단적 존재인 인간의 존재적 특성을 잘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사회는 앞으로도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소련이 망한 원인을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거나, 패망의 원인을 잘못 진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집단주의에 어떤 결함이 있으며, 개인주의는 어떤 약점이 있는지 똑똑히 알지 못한다.

우리 시대는 민주주의 시대다. 먼저 개인중심의 민주주의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면서, 점차 집단중심의 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해 나가야 한다. 궁극적으로 양자가 결합된 인간중심의 미주주의 사회로 발전해야 한다. 이 외에 제3의 길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397p>

 

  황장엽은 진보세력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진보세력의 가진 실제적, 잠재적 문제점은 김정일과 공조하는 것이다. 즉 친북세력인 종북주의자들과 주사파들이다. 70~80년대 학생운동으로 정점에 이른 이들 중 주요 멤버들이 현재는 거의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유와 정의, 인권을 주장하면서도 대북관계에 있어서는 온건하거나 전폭적인 지원을 외치고 있다. 이번에 있었던 천안함 사태에서도 합동조사단의 결과가 의혹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 자체를 아예 부정하며 북한에서 보내는 사절단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집단이 바로 그들이다. 국민들이 진보에 대한 신뢰를 보내기 불안한 이유가 바로 이런 집단들의 친북경향이라 볼 수 있으니, 진보세력 내에 친북세력들을 제대로 청산하고, 진보가 주장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으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집단주의와 전체주의를 분간하지 못한다. 집단주의라면 무조건 독재를 떠올린다. 인민이라는 말만 나와도 거부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은 양심도 없는 무자비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한다. 공산주의에 대해 이렇듯 유치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은 그들이 공산주의나 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것과 공산주의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데도, 보수주의자들은 공산주의에 대해 무식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세대들이 김정일의 영향을 받아 친북반미의 편으로 흡수되고 있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그 책임을 김정일에게 넘기겠는가. 아니면 반미 친김정일 사상을 가진 소위 진보세력에게 넘기겠는가. 근본적인 책임은 보수주의자들에게 있다.

  보수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회주의 운동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 결과, 소위 진보세력과의 논쟁에서 늘 지고 있다. 김정일 앞잡이들과의 사상투쟁에서 패배하고 있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사상수준이 낮아서 스스로 달성한 성과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또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귀중히 여기면서도 사람들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사람들의 자주적인 지위와 창조적인 역할을 자꾸 높여 나가는 길이 무엇인가,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고 사람들의 행복수준을 높여 나가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400~401p>

 

  보수세력에 대한 황장엽의 견해는 지금의 보수세력이 새겨들어야 한다고 본다. 보수세력은 상대적으로 진보세력에 비해 단결이 잘되지만 그 단결이 닫힌 시각과 폐쇄적 입장, 즉 소통의 단절로 이어진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진보세력과의 토론에서 진보세력의 의견을 넓은 시각에서 보기보다는 ‘이것 아니면 답이 없다’ 는 입장만을 고수함으로 보수세력 스스로가 고립되기를 자처한다. 더구나 보수세력이 정치를 주도하면서 부패와 비리를 일삼고 보수의 강점인 도덕성을 버린 것은 국민들이 보기에 가장 큰 실망이다.

 

  보수세력은 좀 더 열린 시각으로 반대세력과 소통해야 한다. 더구나 반대세력의 반대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면 국민들은 보수세력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근래에는 보수세력 내에서도 분열이 일어나고 있으니 국민들의 실망은 가중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수세력의 개혁과 성찰은 시대적으로 불가피하다.

 

 

  황장엽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겪은 북한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밝히고, 남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개인적 의견을 말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고, 대북관계에 있어서 좀 더 다양한 시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또한 북한 내에서 황장엽이 가진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했고, 지금도 남파공작원들의 암살위협을 받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가 남한으로 온 취지에 비해 현재의 대북관계는 악화되었지만, 그가 없었다면 북한의 실상을 아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북한에 대한 경각심의 본질을 더욱 분명하게 알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예전에 애니콜 광고와 드라마 <사육신>에 나온 북한여자 조명애를 기억한다. 단아하고 청순한 이미지로 인해 팬클럽이 생길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그녀의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광고와 드라마 출연비로 북한당국은 가정용 전화기와 예술단에 일제 중고버스를 주는 것에 그쳤고, 무리한 일정 때문에 위장병으로 투병중인데 경제적 어려움으로 약도 제대로 못 먹고 있다는 탈북민의 증언을 토대로 한 기사를 읽었다(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9280814231010). 이 기사는 북한민의 생활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북한민들은 지금 원치 않은 김정일의 ‘고난의 행군’ 속에 희생되고 있다. 중국과 북한 국경에서 벌어지는 북한민들의 목숨을 건 탈북과 노예로 팔려가는 북한민들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나는 반공을 지지하고 북한군의 무력도발을 규탄하지만, 북한민들의 인권보장은 필요하다고 본다. 군대에서 배운 것처럼 우리의 적은 북한군이지 북한민이 아니다. 북한민의 인권을 한민족인 남한이 외면한다면,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남한보다 국제 기구들이 먼저 돕는다면, 이는 한민족의 자세가 아니다. 그러므로 현 정부는 상호호혜주의를 원칙으로 하되, 북한민의 인권을 위해 대북지원에 있어서 사회 내 대북 NGO단체나 기관들과 협조하여 북한민의 인권을 보장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또한 예전에 우리나라는 북한 주민들의 ‘탈북’ 에 대해서 국가적 환대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근래에는 북한주민의 탈북이 익숙해진 것 같고, 정착을 위해 국가적 지원과 관심도 떨어진 듯 보인다. 예전에 매스컴을 통해 북한민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을 보았는데, 이는 정부의 탈북자들에 대한 떨어진 관심이 크지만, 국민들도 한 몫한 것 같다. 북한민에 대한 사회 복지적 혜택과 국민적 관심이 없다면, 북한민들이 죽을 고비를 넘어 남한으로 올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요새는 남한보다는 제 3세계를 택하는 탈북자들이 늘고 있으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 어느 해에 통일이 되겠지만, 남북한이 한민족으로 인식하여 서로를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사회는 통일이 되어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이것으로 인하여 사회 내 분쟁이라도 없었으면 좋겠다.

 

 

  故 황장엽 前 노동당비서를 추모하며..

s******0 2010.10.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