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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남긴 글이다 보니 다소 보수적인 느낌이 나는 글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극단에 치우친 관점을 돌아봤을 때, 일견 참고해 볼 만한 중요 관점이라 생각합니다. 섬세한 절충과 균형이 필요합니다.
<평화주의자 예수>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지음-
브루더호프 공동체 원로 장로임
브루더호프 공동체란
16세기 초 유럽의 급진적 종교 개혁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이 때 이른바 제세례파(Anabaptists) 로 불리던 수천 명의 사람들이 소박함과 형제애 , 그리고 비폭력을 찾아서 제도화 된 교회를 떠났습니다.
지도자 야콥 후터(Jacob Hutter) 의 이름을 따라 후터 파라고 불린 , 이 비제도권 운동의 한 흐름이 모라비아에서 공동체 마을 또는 브루더 호프(‘형제들의 처소’ 라는 뜻) 로 정착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이들은 탁월한 장인 정신과 앞선 의료 기술 , 성공적인 농업 , 그리고 진보적인 학교 덕분에 큰 명성을 얻게 된다.
우리는 평화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선물이라고 이해한다. 그리스도는 ‘나는 너희들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라고 하셨다. 그러나 평화는 또 과업이기도 하다. 평화는 우리가 발전시켜야 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난한 이들의 존재는 그리스도의 성례전적 현존이다. 그리스도는 가난한 사람의 성례전을 통하여 현존한다.
왜냐하면 예수가 스스로 말씀하시길 , 우리가 받게 될 최후의 유일한 질문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관한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다.’ 우리가 언제 이 일을 했는가?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이것은 교리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실천에 대한 질문이다. 나는 실수를 했는지의 여부에 대해 질문받는 것이 아니라 , 형제를 사랑했는지의 여부에 대해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주옥과 같은 '명언' 들이 즐비하다.
참 멋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저 말 뿐인 믿음이 아니라 , 삶을 통해 “예수의 사랑과 평화” 를 실천해 나가는 모습. 배울 점도 많고 , 이런 삶 속에서 진리의 열매가 영글것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꼭 한 번 읽어볼 만 하다..
글 속에서는 '진정성' 이 느껴지고 , '깊이' 가 느껴진다.
‘삶으로 살아내 보지 않고는’ 이런 책을 쓸 수 없으리라 믿는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평화” 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평화'를 주신다고 말씀하셨고 , 우리는 할 수만 있거든 주변 사람들과 ‘평화’ 를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전쟁이 끊이지 않고 , 사람들은 ‘정’ 을 잃어가고 , 인간 소외는 ‘불안’ 을 야기시키고 , 각종 범죄와 질병이 끊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평화’ 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하나의 ‘길’ 이 제시된 저서.
그러나 문제점도 있다. 그 문제점은 C.S LEWIS 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에서도 언급했었던 것인데, 하나님에 대한 ‘진리’ 보다 ‘평화’ 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 때 발생하는 바로 그런 류의 '문제점' 이다. -> '종교 다원주의' 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 있는데 흔하디 흔한 논증이지만, 조심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지만 예수의 평화를 발견하기 위해서 반드시 기독교인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수는 인격이다. 신학의 개념이나 글이 아니다. 그리고 그의 진리는 우리의 제한된 이성이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수백만의 불자와 무슬림 , 유대인 , 그리고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가 , 이른바 기독교인보다 더 깊은 확신을 가지고 예수가 우리에게 살라고 명령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예수의 평화를 누리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다. 이것 뿐만이 아니라 이 책에서는 “종교 다원주의” 를 야기시킬 만한 발언들이 꽤나 언급되어 있긴 하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안은 인간의 힘으로 이룩해 낼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전제가 필요하지 않을까?우리가 평화를 나누고 , 사랑을 나누고자 할 때 , 그러한 행위를 일으키는 '힘의 근원' 은 하나님이라는 유일신으로 부터 밖에 받을 수 없다는 고백을 하고 나면, 과연 이런 책에서 말하는 다른 이들이 실천하고 있다는 그 소위 '예수의 사랑' 이 과연 올바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물론, 타종교인으로부터도 중요한 '가치'들을 배울 수 있고, 기독교인이 꼭 기독교에만 빚을 지라는 법은 없다.
그런 의미로서가 아니라 세상이 정의하고 있는 '평화', '사랑'과,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평화', '사랑'이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화’ 의 중요성을 취우선으로 두다 보면 , 이러한 글은 당연한 귀결일 수 밖에 없다. 종교 간의 갈등은 평화주의자들의 눈에는 절대적인 눈앳가시이기에.....엄격한 '진리의 규정', '철저한 이성' 등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 우리에겐 그 따스함 , 그 포근함만 남는다. 이게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지금 느끼고 있는 '따스함' 은 과연 '진리' 일까? 아니면 진리의 '그림자' 일까? 아니면 '진리' 와는 반대되는 '거짓' 일까?)
그래도!!!
이건 더 심도있게 논의해야 할 사항이기에……. 이런 부분들을 고려치 않는다 하더라도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순서는 '하나님 사랑'에서 '이웃 사랑'으로 이어져야 진정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세상을 품을 수 있다.
이 과정이 생략된 '이웃 사랑'은 겉으로는 '사랑'인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자기 의'에 밀착된 '사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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