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시대를 살았거나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모든 사람은 그 시대와 그 역사가 저지른 잘못을 공평하게 나눠져야 하는가? 책을 덮으며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생각은 ‘그렇다’이다. 모두가 나누지 않을 거라면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생각해보자. 히틀러가 있던 시대, 그 나라만 이상했을까? 그만큼 다른 모든 나라들, 그리고 그 후의 시대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부시의 나라는 이상하지 않은가? 중국이나 일본은? 똘레랑스를 외치는 프랑스는?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은? 우리가 사는 우리나라는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가? 오히려 이상하지 않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 시대를 겪고 총으로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본받고 싶은 스위스는 어떤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이야기일 뿐이고 속마음은 아니다. 그리고 그 나라들이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다면 그것은 모두의 책임이다.
처음 이 작품을 잡았을 때 예전에 읽었던 스파이 소설의 불후의 명작인 존 르 까레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가 떠올랐다. 참 많이 닮은 작품이다. 내용이 아니라 분위기가 닮았다. 그 작품과 비교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나치가 등장하고 히틀러가 등장하는 소재의 진부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팩션, 대체역사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만약 2차 대전이 히틀러의 승리로 끝났다면을 전제로 쓰여 졌다.
2차 대전을 승리로 끝내고 20여년이 흐른 어느 날 한 구의 시체의 발견으로 한 남자의 인생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그 남자는 어디에나 있는 남자다. 체제가 주는 안정성과 같이 공유해야만 하는 강요가 불편하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어느 시대, 어떤 나라에도 존재하게 마련이니까. 히틀러의 시대에 모두가 ‘하일 히틀러’를 자발적으로 자랑스럽게 외치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 남자는 생각한다. 내 조국에 대해서. 내가 믿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 감춰진 것들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는 결국 알게 된다. 결코 알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인 것, 믿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해서. 그는 결국 공범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그 신발을 신었었기 때문이다. 몰랐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걱정일까? 또 어디에선가 이런 일이 되풀이되고 있지는 않을까에 대한 불안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목숨을 건 거였으리라.
지금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린 어긋남을 안다. 하지만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제대로 끼워 맞출 수는 없다. 아니 끼워 맞추고자 애쓰지 않는다. 이런 저런 이유로 외면을 하거나, 소극적 행동을 보이거나, 아님 진짜 모를 수도 있다. 그런데 세상은 아는 사람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낀 톱니바퀴의 나사 하나일 뿐인 우리는 우리가 있어야 돌아간다는 걸 알지만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잘못된 역사, 잘못된 체제, 잘못된 시대에 늘 우리는 존재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눈감고 귀 막고 지냈다. 대부분의 우리는 몰랐다. 또 대부분의 우리는 외면했다. 잘못됨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 하나를 지목해 잘잘못을 가리거나 돌을 던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랬었더라면’은 지난 뒤에 뱉는 말이고 현재의 모든 선택에는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돌은 스스로를 향해 던져야 한다.
지금 이 작품은 과거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오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이런 일들은 일어나고 있다.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린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있다. 몰라서가 아니다. 모두가 마르크처럼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르크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당신들의 조국이 아니다. 우리들의 조국이다. 모든 사람들의 조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는 이 책을 보며 자신의 가슴에 돌이라도 던지는 우스꽝스런 자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역사의 모든 패배자일지도 모른다. 역사에서 승리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역사에서 승리한 자가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이 책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을 동안 당신은 무엇을 했냐고 묻고 있다. 지금도 누군가 고통 받고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묻고 있다. 그러므로 그때의 일은 나치만의 잘못은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지금 고통 받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의 폭격에 당하고만 있는 이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당신이 등 따시고 배부르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보시길 바란다. 그것이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의 시린 등과 꺼진 뱃가죽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단순히 추리 소설이라는 편견으로 외면한다면 당신은 또 하나의 좋은 작품을 읽을 기회를 잃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292-293p 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마르크는 생각했다. 자신의 과거도, 자신이 살던 세상도, 그리고 자기 자신조차도 알지 못한 채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또한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저 하루하루를 살면서 다른 사람이 마련해놓은 내리막길로, 절대 고개를 들지도 않고 그들의 논리에 자신을 끼워 맞추면서, 배내옷을 입을 적부터 수의를 입을 때까지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그건 일종의 두려움이었다. 456p 역사란 게 정말 그렇게 쉽게 바뀔까? 궁금했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분명, 비밀이란 강한 산과 같았다. 일단 흐르기 시작하면, 그것은 무엇이든 부식시키며 퍼져나갔다. 결혼 생활의 비밀이 그렇다면, 국가원수는 어떻고 또 한 국가의 비밀은 그러지 말라는 법은 또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면... |
|
만약...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히틀러가 승리를 거두었다면?
이 책은 히틀러 정권이 지배하는 1964년 베를린, 나치 독일이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지 20년이 지났고 독일 전역이 총통의 75번째 생일과 미국 대통령 조셉 케네디의 국빈 방문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 준비에 한창인 때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하벨 호숫가로 떠밀려온 시신의 조사에 호출된 사법경찰 크리포인 크사비어 마르크. 시신이 고위 나치 지도자였음이 밝혀지자 게슈타포는 마르크에게 사건에서 손을 뗄 것을 지시하지만 연이어 벌어지는 고위 간부의 살인사건. 마르크는 일련의 사건들이 연관성이 있음을 발견하고 사건의 핵심에 다가서기 시작하는데... 이야기의 흐름이 살인사건을 밝혀내기 위해 사건을 조사하던중 사건의 전말을 알아가며 엄청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조국에 대한 환상이 있었거나 무조건적인 충성을 하며 살아온 사람은 아닌 자신도 모르게 사회에선 부적격자이며 아들 조차도 아버지를 신뢰하지 않는다. 획일화된 나치사회에서 생각을 한다는 것은 그 사회에 반하는 행동이고 적응하지 못하는 이방인인 것일까? "만약 당신이 범죄자를 밝혀내는 데 전 생애를 바쳤는데 진짜 범죄자는 당신이 섬기던 사람들이었다는 걸 점차 깨닫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소? 다른 사람들이 모두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 당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때 어떨 것 같소?" -p291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라는 것이 역사의 주체에 의해 얼마나 다른게 해석되고 이용될 수 있는지, 그것이 전 인류를 향한 엄청난 범죄이며 광기어린 역사라 해도 그 행위의 주체가 역사의 주역이 된다는 가정하에 그런 사실들이 역사속에서 어떻게 비춰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란 게 그렇게 쉽게 바뀔까? 궁금했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분명, 비밀이란 강한 산과 같았다. 일단 흐르기 시작하면, 그것은 무엇이든 부식시키며 퍼져나갔다. 결혼 생활의 비밀이 그렇다면, 국가원수는 어떻고 또 한 국가의 비밀이 그러지 말라는 법은 또 어디에 있겠는가? -p456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설인 "당신들의 조국" 역사에 대해선 크게 관심도 없었고 그냥 흘러가는대로만 알고있었는데 역사란 쉽게 잊혀지기도 하고 변형되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만큼이나 다양한 역사를 만들어내 기도 한다. 이 책에선 이미 세월이 흘러 결말지어진 역사를 "만약...했었더라면"의 방식으로 전개해 나간 자체가 대단한 스케일 인것 같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니 한번 찾아서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시대별 역사의 흐름도 정리되고... 실제의 역사와 픽션만 햇갈리지 않는다면 좋은 역사공부도 한 것 같다. 로버트 해리스의 첫! 작품... 별 다섯개!! ^-^ |
| 히스토리 팩션이라.. 이 장르라고 하면 김진명씨의 소설들이 맨처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제 3의 시나리오, 황태자비납치사건, 신의 죽음. 등등 팩션 류의 소설은 아직 김진명씨의 소설밖에는 접해보지 못했다. 그럴찰나에 까페에서 당신들의 조국 서평을 모집했고 다른작가의 팩션도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에 당장 신청했다. 며칠후 나에게 온책. 한번 잡자마자 그속에 그대로 빠져들었다. 흔히 내가 서평을 쓸떄 자주 하는 말은 작가들의 놀라운. 정말로 놀라운 사람을 몰입하게 만드는 "필력"이다. 이것은 번역과도 많은 관련이 있겠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두꺼운 분량을 단숨에 읽어나가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은 다읽고 나서 내용과는 별도로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상황들이 숨쉴틈 없이 숨가쁘게 계속 나를 휘몰아쳤다. 으아. 책을 마지막으로 덮었을때 땡기는 뒷목과 아픈 허리는 내가 얼마나 이책에 몰입했는가를 몸소 설명해주었다. 또... 책을 마무리하고 난뒤...다시 한번 맨 뒷부분을 읽었다. 또 읽었다. 또다시..또....그리고....울컥했다... 히틀러가...2차 세계대전에 승리한다라.. 참..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의 통치 아래 많은 유대인들은 가스실에서 그렇게 죽어나갔다. 그런 일들이 만약 히틀러가 계속 전체주의적 국가를 .... 만들어가고 지금의 북한처럼 권력도 승계해서 독일이 아니 전 유럽이 그런 국가라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우리같은 황인종들은 유럽에는 갈수도 없지 않은가?? 작가의 "발칙한" 상상이라고 하기엔 스토리가 너무 치밀하게 엮여져 있었다. 마치 실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권력을 둘러싼 게슈타포와 일개 한형사의 싸움... 승자가 누구인지 알수없지만 하지만 차근차근 진행되어 가는 사건들.. 뭐라 말로 표현을..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죽어나가고.. 그런것조차 감추어지는 세상들.. 이것은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 말하고자 하는 육중한 무거움이 아닐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소설이 가벼운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그것도 역사가 관련되어 있는 히스토리 팩션이라 그런듯 하다. 만약 이 책을 사기 위해 혹시나 혹시나 이것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라. 그러는 편이 좋을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후 이책을 읽고 난다면 자신을 돌아보고 이사회를 돌아보고.. 우리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
| 당신들의 조국 / 로버트 해리스 作 ㅡ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까. 블록버스터 영화들 중, 아, 그래. 톰 크루즈가 나왔던 <미션 임파서블>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같은 영화들을 보면 내심 그 과정을 지켜보는 마음이 참으로 안달복달하여 어떨 때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결과만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볼 때는 그 ‘과정’이라는 것을 눈여겨 잘 봐두는데, 이미 결과를 알기에 보는 것이지만 긴장감은 의외로 그대로다. 이게 어쩌면 내 소심한 성격의 일부분일 것이다마는 책에서조차 그런 마음을 품게 만든 것에 대한 기억이 가물거리니, 오랜만인 것 같다. 로버트 해리스의 <당신들의 조국>이 내게 남긴 흔적이리라. 유럽인들은 일본과 중국에 대한 동양적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부분은 할리우드 영화뿐 아니라 유럽의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하면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는 결과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일본과 중국(한반도가 완전히 지배 하에 있던 것은 일본이지만, 중일전쟁에서 중국이 이겼다면 중국이 한반도를 지배했을 것이고 그 차이는 일본과 크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거기다 중국은 조선시대 후기를 중심으로 한반도에 지배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의 본모습을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피해자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판단할 수밖에 없고, 오히려 유럽인들이 갖는 동양적 환상에 한국인으로 씁쓸함을 삼킬 뿐이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 봤더니, 독일 나치에 의해 무자비하게 학살을 당했던 유럽의 유대인들에 대해 나 자신은 그다지 큰 감흥(?)을 일으키지는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사실적인 면은 알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기초적인 부분이고,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해 나치즘이라는 것보다는 벤츠, BMW, 아우디 같은 자동차 브랜드나 맥주, 소시지 그리고 유럽 특유의 전통정도. 그렇게 따지니 내 자신도 유럽에 대한 전반적인 환상을 갖고 있는 모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 못된 것일까. 물론 이런 부분들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만약 <당신들의 조국>처럼 역사적 상황이 바뀌어 이 시대가 암흑으로 간다면 순전히 내 개인에게도 일말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정도는 되리라 여겨졌다. 한 인간의 존재는 유약하여 세상이라는 큰 테두리의 한 막(幕)을 장식하기란 보통은 어려운 일이다. 그 ‘세상’이라는 존재도 사람이 있고서야 유한성을 가진 실체가 되지. 이렇게 따지고 보면 보잘 것 없는 인간의 몸뚱아리라도 두뇌(혹은 이성)라는 작은 실체로 인하여 수십만, 수백만의 다른 인류공동체를 구하는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 이런 측면에서 <당신들의 조국>은 그 가능성의 가치를 척도 해 봄직한데... 책을 다 덮고 위에서 열거한 자질구레한 말들을 뒤로한 채 나는 그저 울먹였다. 사랑이나 인정, 동정 같은 감정을 내세워 펑펑 운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묘한 한 인간에 대한 연민에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끝내 모두의 배신에(사실 나는 마르크가 친구에게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한 인간에 대한 크나큰 연민, 하지만 그는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나마 그것에 위안을 얻었다. 근래 국내외를 통틀어 팩션이라는 장르가 하나의 유행처럼 밀려들고 있다. 그 중에서 본 것이 몇 편 안되기는 하지만 <당신들의 조국>처럼 아예 역사를 뒤집어 놓고 시작을 하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보통 팩션이라 할지라도 그 바탕이 되는 역사적 사실을 작가 마음대로 휘둘러 놓지는 않는다. 그런데 <당신들의 조국> “그랴, 당신들의 조국이니 내 마음대로 휘둘러 놓지.”라고 작가가 말하는 듯, 제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가 승리를 거둔다는 설정아래 시작된다. 으미ㅡ 히틀러가 승리했다면, 한반도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니 생각하기 싫구나. 그런데 책을 읽다가 의문점 하나가 발생했다. 그네들(나치즘)은 공산주의를 극도로 싫어하는데, 왜지!? 그 분야(?)에 무식한 나로서는 그게 그것 같은데, 굳이 또 뭔가를 나누고 또 분명하게 한답시고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나치즘에 피식~하고 코웃음을 친다. 현재 독일에서는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신나치즘이 아주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당시 같은 암흑의 시대를 겪지 못하고 그저 민족적 우월성을 강조한 나치즘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으리라. 근데 그것이 정말 민족적(게르만족) 우월성에서 시작된 것일까? 히틀러는 왜 그렇게 유대인 학살에 모든 것을 걸었을까? 유대인보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열등감에서 가져온 결과는 아닐까? 이유야 어찌됐든 무분별한 생명윤리 침해는 역시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매사에 조금만 더 유연하게 생각하고 여유롭게 행동한다면 꽤 괜찮을 텐데... 너무 치열하게 돌아가는 세상 누굴 탓하겠는가. |
|
로버트 해리스는 당신들의 조국에서 가상역사를 통해서 현재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소설을 읽으면서 즐기는 동안 당신과 당신의 주변을 한번쯤 생각해 보았는가 하고서...
당신들의 조국에서 유럽은 나치독일의 세상이다. 2차대전에서 승리한 독일은 나치혁명을 완성해서 유럽의 지형도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나치독일이 만들어낸 세상은 마치 스탈린 시대의 소비에트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것에 더한 독일의 그 어떤 날카로움이 더해져 있다. 그 숨막히는 삶속에서 당연히 주인공은 일탈을 꿈꾼다.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것은 살인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시체가 이번에는 특별하다. 나치혁명의 그 시작부터 함께했던 조국의 위인이 살해된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독일의 수사관 크사비어 마르크는 이 사건을 파헤쳐 가면서 숨겨진 진실에 점점 더 다가가게 된다. 당연히 우리의 주인공은 독일 사회안에서는 반체제적인 인사이며 사회의 왕따이다. 그리고 당연히 자유로운 미국여성과의 로맨스도 더해진다. 나치의 수장인 총통까지 연결된 거대한 역사의 비밀앞에서 무기력한 개인인 주인공은 자신의 생을 걸고 맞장을 뜬다. 이렇게 소설은 고전적인 경찰 스릴러의 문법을 따르지만 주인공이 살아가는 나치가 만든 독일은 마치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미래세계처럼 숨막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게는 처음으로 읽은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이다. 하지만 그 필력에 감탄하며 밤을 지새워 다 읽고야 말았다. 소설에서 나치가 만든 사회는 온갖 거짓 선동과 교묘하게 조작된 뉴스만 떠다니고 사람들은 그 체제에 어떠한 의문도 던지지 못한 체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완벽하게 통제된 경찰국가의 모습이 있다. 그안에서 주인공 크사비어 마르크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삶의 모습일까라는 고민을...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 그 세상속의 삶의 모습들은 과연 어떠한가 생각해 본다. |
|
[리뷰] 로버트 해리스 <당신들의 조국> 최근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영미권의 장르소설 작가들 중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제일 먼저 세 명이 떠오른다. 제프리 디버, 마이클 코넬리 그리고 로버트 해리스. 제프리 디버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본 컬렉터>로 유명한 ‘링컨 라임 시리즈’의 작가이고, 마이클 코넬리는 ‘해리보슈 시리즈’를 포함해서 여러 편의 스탠드얼론(stand alone)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는 작가다. 로버트 해리스는 위의 두 작가처럼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미스터리 시리즈를 발표하지는 않았다. 위의 두 작가는 어찌보면 다작형의 작가지만 로버트 해리스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차이점일 것이다. 하긴 작가들 사이의 차이점을 구별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로버트 해리스라는 이름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던 영화 <고스트라이터>, <폼페이>의 원작자다. 로버트 해리스 작품의 특징은 역사와 허구를 뒤섞는 팩션(Fact+Fiction)에 있다. 그의 대표작들인 <아크엔젤>, <이니그마>, <임페리움> 모두 그런 작품들이다. <아크엔젤>에서 주인공은 구소련 시절 스탈린이 남긴 비밀을 찾아서 러시아의 끝이자 세상의 끝인 아르항겔스크(Archangelsk)로 떠난다. <이니그마>에서는 2차대전 당시 실존했던 암호기 이니그마(Enigma)를 풀어내는 암호해독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임페리움>을 필두로 한 ‘로마사 3부작’에서는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로마의 모습을, 당시의 정치인이자 변호사였던 키케로와 그의 비서 티로를 주인공으로 그려내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독일의 모습 이렇게 로버트 해리스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역사와 허구를 적절히 뒤섞는 것을 장기로 한다. 위의 작품들에는 모두 실존했던 인물들과 사건들이 등장한다. <폼페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본다면 ‘역사’의 요소를 제거한 <고스트라이터>가 약간 예외인 작품이 될 것이다. 로버트 해리스의 1992년 작품인 <당신들의 조국>도 그런 팩션이다. 작가는 대담하게도 2차대전에서 독일이 승리를 거두었다고 가정하고 작품을 시작하고 있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964년이다. 2차대전에서 독일은 승리했고 동유럽 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감히 ‘대독일제국’이라고 할만하다. 작품 속에서 독일의 영토는 현재의 독일을 포함해서 흑해에 이르는 동유럽,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르크까지 차지하고 있다. 그 너머 카스피해까지가 독일의 영토다. 그런데 독일이 정말 2차대전에서 승리했다면 영토가 이 정도(?) 밖에 안되었을지 의문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베를린의 사법경찰 마르크. 나치 독일이 2차대전에서 승리한 지 20년이 지났고 독일 전역은 총통의 75번째 생일행사 준비에 한창이다. 동시에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맞이하기 위해서 분주하다. 주인공 마르크는 호숫가에서 발견된 시신의 조사를 위해서 호출된다. 하지만 그 시신이 고위 나치 지도자였음이 밝혀지자 경찰조직에서는 마르크에게 사건에서 손을 뗄 것을 지시한다. 이후에 연이어 벌어지는 고위 간부 살인사건. 마르크는 이 살인사건들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음을, 그리고 어떤 음모가 있음을 확신하고 독자적으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역사 또는 허구, 로버트 해리스의 작품 세계 역사에 ‘만일’이란 것은 없다고 한다. 그건 어디까지나 학자들 사이에서 통하는 이야기일테고, 소설을 즐기는 사람 입장에서는 ‘만일’이란 것 만큼 호기심이 당기는 것도 없다. 만일 2차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했다면? 만일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참패했다면? 만일 우리나라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만일 2011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롯데자이언츠가 우승했다면? 상상력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생각해 볼만한 가정이다. 물론 이 가정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로버트 해리스 같은 작가들은 작품 속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들의 조국> <아크엔젤> <이니그마>는 어찌보면 좀 극단적인 가정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다. 반면 ‘로마사 3부작’이나 <폼페이>는 ‘가정’보다는 과거의 재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어느 쪽이건 ‘허구’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래서 더욱 흥미있는 작품들이다. 과거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럼 소설을 통해서 재구성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
|
히스토리 픽션의 세계에 처음 발을 담궜다. 꽤 두껍지만 흥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드라마 트루기는 사뭇 진부한 면이 있다. 그렇지만 히틀러가 여전히 집권을 하고 있고 미국과는 미묘한 긴장관계에 있다는 것, 처칠과 영국여왕은 캐나다로 망명해있다는 설정은 무척 흥미롭다. 1984를 읽는 것 같은 삭막한 경찰국가에서 히틀러를 숭배시하는 사람들에서 SS 하급경찰인 주인공이 우연히 말려든 사건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
1964년을 배경으로 해서 케네디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하게 되었다는 설정도 재미있었다. 지금은 에니그마를 읽고 있는데, 그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
| 개인적으로 세계 제 2차 대전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처음에 이 소설이 2차 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했을 경우를 가정하고 시작한다는 얘기에 읽지 말거나 읽기를 미룰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어차피 손에 잡힌 것, 좀 두껍긴 하지만 대충 후딱 읽어버리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될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난 지금, 정말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재미있다. 주인공인 마르크가 경찰로서(내용 상에서는 크리포라고 불린다.)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신고를 받고, 그 시체와 관련된 것들을 파헤쳐나가는 추리적 요소가 상당한 재미를 준다. 게다가 고위 간부로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모두 한 번쯤은 들어본 실재 인물들이다. 2차 대전에 별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익숙한 이름들을 발견할 정도였다. 이 두 가지가 책을, 그 두께에도 불구하고, 놓지 않고 끈질기게 읽어나가게 한 힘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의 진가는 재미에 있지 않았다. 물론 재미라는 것도 중요한 요소이고, 또 이미 언급했듯이 이 책에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더 중요하게 혹은 깊게 다가온 것은 주인공이 사건과 관련된 다양한 사실과 부딪히면서 내던지는 의문점들, 생각들이다. 어느 나라나 문제점이란 있게 마련이고, 이러한 문제점을 방관하는 사람이 있다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관련사항을 생각하고, 가능하다면 변화를 모색하려는 사람이 있다. 마르크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초반에는 남들과 같이 나라에 부응하려는 모습을 애써 보이지 않을 뿐, 별달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발견된 시체가 자연사가 아닌 살인이라는 확신이 들면서 잠잠하던 마음의 모터는 가동되기 시작한다. 방해를 받고, 위험요소가 산재해 있어 편히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오직 진실을 찾기 위해 멈추지 않고 달릴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겪는 중에 그가 내뱉는 생각들은, 단지 소설 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현실 즉 지금 내가 속한 나라와 자리에 대한 더 깊은 생각을 이끌어낸다. 읽는 내내 묵직함이 알게 모르게 배어나왔고, 결말에서는 뜻하지 않은 여운이 남았다. 국가에 대하여, 나라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에 대하여, 개인이 가져올 수 있는 변화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이성과 감성이 적절히 어우러진 괜찮은 소설을 하나 건진 기분이다. |
|
최근 폼페이라는 소설때문에 로버트 해리스라는 작가를 알게되었다. 아직도 폼페이를 읽지는 못했지만 그의 과거 소설이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당신들의 조국이 있었다.
최근에 2차세계대전에 관심이 많았던 터러 소설의 소재가 관심을 끌었다. 독일이 승리했다니...
소재만으로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해서 바로 읽어버렸다. 다 읽고나서는 .. 글쎄... 많이 진부했다.
좀더 흥미진지하게 전개해 나갈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로버트 해리스라는 작가를 좀더 주목해 보고 싶다.
그가 쓰는 소설들이 죄다 그런 류.. 즉 역사+픽션이어서 라기보다 그의 시도와 아이디어 자체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