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수가 엄청 사나운 오소리가 숲을 나온 후 한바탕 벌어지는 소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우에게 집을 빼앗긴 오소리가 채소밭을 지나 농장을 지나 웅덩이에서 진흙목욕을 하고 다시 귀리밭을 지나 메마르고 거친 땅을 지나 호숫가 언덕으로 갔어요. 변변히 먹지도 못하고요. 언덕에는 이미 떠나버린 토끼들의 굴들이 남아있었지요. 힘든 하루를 보낸 오소리는 토끼굴에 몸을 누였지요. 그런데 오소리가 잠든 이 굴은 젖소들의 목초지였어요. 대장젖소는 좀더 나은 풀밭을 찾으러 서두르다 오소리가 잠든 굴을 밟게 되었고 이 충격으로 오소리는 굴 밖으로 나오게 되지요. 서로 놀란 두 동물이 한참 동안 마주 보다가 대장 젖소가 처음 보는 오소리의 냄새를 맡으려고 주둥이를 내밀었어요. 그런데 오소리는 대장 젖소가 자기를 잡아먹으려 한다고 생각했지요. 콧잔등을 꽉 물었습니다. 대장젖소는 콧잔등에 오소리를 매달고 미친듯이 마을로 달려갑니다. 이 뒤를 어떤 사람이 쇠스랑을 들고 쫒아가고 그 뒤를 나머지 젖소들이 쫒아가고 .... 마을 어귀에 다다라 큰 바위에 부딪혀 대장젖소가 넘어지고 오소리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대장 젖소의 콧잔등을 놓지요. 오소리는 다시 숨가쁘게 달려가 모퉁이에 있는 장작더미 속으로 쏙 숨지요. 사람들 사이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해집니다. 늑대다, 아니, 담비다...장작더미 속에 숨어있는 오소리를 정확하게 알아챈 것은 너무나도 어린 페터 뿐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페터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지요. 누나 손에 이끌려 페터는 억지로 집으로 향합니다. 이로써 재수가 사나운 숲을 나온 오소리의 한바탕 소동은 막을 내리지요. 이 책을 쓴 한스 팔라다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유머러스한 소재로 동화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 그림책도 그렇지요. 하지만 한꺼풀 더 벗겨 들여다보면 자잘한 일상들이 품고 있는 진실의 알갱이들이 알알이 맺혀있어요. 여우에게 집을 빼앗긴 오소리. 오소리는 여우가 염치도 없고 나쁜 녀석이며, 자신은 이제껏 부지런하고 착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느린 걸음걸이와 우중충한 털을 가진 자신이 불꽃같은 빨간 꼬리와 쭉 뻗은 다리, 빛나는 초록 눈을 가진 여우에 비해 많이 억울하다고 투덜거리지요. 그렇지만 오소리도 그리 순하고 착하게 살아온 것은 아니지요. 먹고 살기 위해 남을 괴롭혔어요. 어쩔 수 없는 본능이지요. 그리고 오소리가 대장 젖소의 콧잔등을 문 것은 오해때문입니다. 상대방의 행동을 내 맘데로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상대방의 입장에서 ''왜 그러지?'' 하고 한번 더 생각해 보지 않고요. 또 대장 젖소의 콧잔등에 붙어있던 ''그것''에 대해 아이들은 자기들이 본 것만으로 ''그것''을 정의내립니다. 이글거리는 눈때문에 늑대가 맞다 혹은 꼬리가 북실북실하고 몸이 길기 때문에 담비가 맞다 등등. 그리고 가장 나이가 어린 페터가 정확하게 보았지만 어른들은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 말을 무시하지요. 이 모든 것들이 일상-한바탕 소동-이 품고 있는 진실들의 알갱이-바로 유머-가 아닌가 합니다. 어른들에게도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전하는 그림책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