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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SF 중편 소설인 [샌드킹]을 너무나도 재밌게 읽었던 나로서는 어느날 동아일보에 이영도가 이 책에 쓴 리뷰를 발견했을 때 도저히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반지전쟁 이후 최고의 판타지 소설이라는둥 10년간 가장 위대한 판타지 소설이라는둥...화려한 찬사를 받으며 출판된 이 책은 역시 아직 우리나라에서의 반응은 그다지 대단하진 않은 듯 하다. [샌드킹]에서 보여준 탁월한 구성력과 이야기, 반전으로 나를 흥분시켰던 작가가 이번엔 어떻게 나를 빠져들게 할 것인가...라는 두근거림을 안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사람 이름별로 챕터를 만들고 각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그 시간축은 동시적이거나 혹은 약간의 시차가 있거나. 제법 흥미로워 보이는 구성이다. 물론 처음에는 가문들과 사람들 이름을 외우느라 책 뒤의 부록으로 딸려 있는 가문정리한 것을 몇번이나 들척이면서 봐야만 했다. 그러나 점점 속도가 붙으면서 그런 것들은 어느샌가 내 머리속에서 자리잡기 시작했고 순조롭게 읽어나갈 수가 있었다.
이야기의 구조 자체는 아무래도 스타크 가문의 사람들이 중심에 놓여 있는 듯하다. 일단 스타크 가문의 영주 에다드 스타크 (애칭 네드)를 위시하여 그의 자식들인 존,롭,산사,아리아,브랜,릭콘을 중심으로 (물론 릭콘은 아주 어려서인지 그다지 이야기의 중심축은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야기가 전개되며 그에 못지않은 축 중의 하나는 왕비의 라니스터 가문의 왕비의 동생인 난쟁이 티리온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자신의 숨겨진 야망을 이루고 음모를 파헤치며 권력을 손아귀에 넣는 이야기들이 가장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 왕국의 후손인 공주 대너리스와 그녀의 드래곤들이 그야말로 이야기의 중심으로 솟아오르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소설은 '왕좌'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여 음모와 배신, 전쟁, 살인, 명예, 의리, 실리 등 나올만한 모든 요소들이 얽혀서 복잡한 이야기를 형성한다. 역시나 2부의 중반까지는 작가 스스로의 말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판타지 소설이 아닌 역사 소설적인 느낌을 준다. 마법과 검이 격돌하는 그런 판타지가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설계된 '가상' 역사 소설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다. 혹시나 작가 역시도 실제의 역사를 많이 참조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들긴 하지만...그건 알 수 없는 것이고...
탁월한 구성력을 자랑하는 작가답게 짜임새 있는 구성은 소설로의 몰입을 배가시켜주며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한 궁금증을 극대화시킨다. 소설을 읽는 내내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궁금해 하면서 볼 수밖에 없었다. 특히 2부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왕좌를 둘러싼 자칭 왕들과 다른 인물들을 야심과 음모가 정면출동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이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결국 이 소설에는 우리가 흔히 손쉽게 예측할 수 있는 '판타지 소설'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 마법, 검, 영웅, 사랑, 일행, 모험담 등등의 요소가 실제적으로는 상당히 많이 빠져 있으며 허무맹랭하다고 할 수 있는 요소도 거의 들어가 있지 않다라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그동안 우리 나라나 일본식 판타지에 익숙해 있었고 그게 싫었던 독자들에겐 나름대로의 신선한 충격 - 진부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 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점은 우리 나라의 작가들도 많이 배워야 할 점일 수 있겠다.
그러나 내심 아쉬웠던 점은 책이 동아일보에 서평을 썼던 이영도의 말대로 '속도감 있는 미국식 하이 판타지'라는 표현에 걸맞게 속도감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야기의 속도가 빠른 듯하면서도 의외로 내용은 '변죽을 울린다'고 할 정도로 무언가에 접근하는 것은 같지만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2부 초반까지도 실체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1부까지의 진행은 솔직히 좀 불만스러웠고 전개도 느렸다. 미국에서는 3부가 발매되었다고 하고 우리 나라에서는 현재 2부까지 번역이 되어 나와있는데 이런 전개 속도로는 도대체 몇부까지 가야 작가가 원하는 분량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지 좀 걱정스럽다. 또한 인기가 없어 우리 나라에서 번역을 하지 않고 끝내버리지나 않을런지...그럴 경우 그 궁금증에 오랜 세월 고생할 것만 같다는 생각과 읽을 만한 판타지 소설을 하나 잃는다는 슬픔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열악한 출판 사정이 또한 오랫동안 착잡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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