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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가 서 있는 자리 앞으로는 소리가 지워진 창밖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밀폐된 창을 통과한 빛의 풍경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집니다. 마치 우리네 삶에서 시간을 솎아낸 듯한 가볍고 어색한 몸짓들이 의미도 없이 펼쳐지는 것 같군요. 아무도 없이 텅 빈 영화관에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성영화를 볼 때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요? 빛이 흘러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방 안에 오래도록 앉아 있어 본 사람이라면 혹시 제 기분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의 숨소리도 누른 채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한동안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왠지 모를 안도감이 온 몸을 감싸게 되지요. 사람은 때로 자신의 감각기관 중 어느 하나를 잠시 쉬게 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예술적 영감이 샘솟는 시간은 바로 그런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의 감각이 활동을 멈춘 바로 그 순간에 대상도 알 수 없는 어떤 분이 '옛다, 받아라.' 우리를 향해 던져주는 게 바로 예술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8월의 마지막 주말을 코앞에 둔 지금, 저는 무척이나 바빴던 지난 한 달을 돌이켜보며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읽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망중한을 즐기는 셈이지요. 어느 때부터였는지 기억에도 없지만 저는 언젠가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야지 생각했으면서도 속이 채워지지 않은 도시락처럼 약속은 언제나 배고픈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내게 들어오는 어떤 것들도 다 때와 장소를 가려 인연을 맺는 것인가 봅니다.
"떠난다는 것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자 낯선 것과의 새로운 만남, 낯선 것이면 무엇이든 두려워서 여행을 떠나는 날이면 내 목은 자주 부어 올랐고 그래서 포기했던 떠남이 내게는 많았다. 비단 여행뿐 아니다. 살면서 떠나야 할 시간에 떠나지 못해 주저앉은 적도 많았고 나중에는 그것이 아까워서 바득바득 살아야 했던 적도 많았다." (p.10)
2000년 말의 작가는 이런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젊어 보입니다. 젊다기보다 '앳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그런 모습입니다. 대학교 2학년 이후 18년 동안이나 교회와 신앙을 떠나 있었다는 작가는 수도원 기행을 의뢰받고서 꽤나 놀란 듯했습니다. 엄마 역할에 힘들어하던 차, 친구에게 무심코 했던 '유럽의 수도원에 가서 한 달만 쉬었다 오고싶다'는 빈말이 현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기억에도 없는 오래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긴 시간을 앉아 있는 것처럼 이따금 현실은 마법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아르정탱 베네딕트 수도원을 시작으로 작가의 수도원 기행은 계속됩니다. 솔렘 수도원, 테제 공동체, 오뜨리브 수도원, 몽포뢰 도미니크 수도원, 림부르크 수도원 등 작가가 다녀온 행선지를 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이국땅의 낯선 지명에 불과할 뿐입니다. 다만, 언젠가 읽었던 어느 책에서 저는 테제 공동체에 대해 조금쯤 알게 되었고 그들의 신앙에 깊이 공감했었습니다. 교리를 넘어선 침묵의 영성으로 방황하는 세계 젊은이들의 영적인 길라잡이가 되고 있는 테제 공동체를 방문했던 작가의 느낌이 저는 몹시 궁금했던 것입니다.
"나는 저 젊은이들의 앞날이 밝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세상은 수도원이 아닌 것이다. 나 역시 다시 젊어지고 싶지는 않다. 젊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형벌이라고 나는 아직도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원칙과,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우리가 택할 길은 몇 개 안 된다는 현실과의 괴리가 괴로운 것이다. ...하느님 품에 안기는 날까지 우리는 방황하리라, 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노트에 적어가지고 다니던 내 사춘기가 떠올랐다." (p.108)
아니, 또 있습니다. 제가 문학적인 감성의 소유자라서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 나오는 숄 남매와 그들이 다녔던 뮌헨대학을 작가가 방문했다는 사실에 저는 '좋았겠네.' 약간의 시기심인지, 부러움인지 묘한 감정을 느꼈던 것입니다. 숄 남매가 남긴 유인물 유적지에 감동을 받았던 것인지, 아니면 민주화를 위해 애쓰다 허무하게 쓰러져 간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애달팠던 것인지 작가의 글은 감상적으로 변합니다.
"나도 그들에게 이런 유인물의 유적을 만들어 주고 기념관 하나 세워주고 싶었다. 여기가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러나 끝내는 돌을 들었던 그 자리라고... 비겁해서 뒤로 물러났던 우리 대신, 그들은 앞으로 달려나갔다고. 무섭지 않아서가 아니라, 부모님 고생하시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출세하고 잘 먹고 잘사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러므로 그때 젊었던 그들, 그렇게 젊을 때 죽어버려서 우리를 오래 아프고 오래 숙연하게 하는, 그러므로 언제까지나 젊은 우리들일 그들에게." (p.162~p.163)
날이 흐린 탓인지 벌써 저녁 느낌이 묻어 납니다. 게다가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은 노을에 물든 고즈넉한 들녘을 배경으로 그려진 밀레의 만종晩鐘을 떠올리게 합니다. 비록 몸은 고단하지만, 때마침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만종에 맞춰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기도하는 젊은 농민 부부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합니다. 내 인생에도 황혼이 깃들고 만종이 울리면 나를 위해 기도해줄 이 한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눈을 들어 유모차에서 잠에 빠진 아기를 바라보았다. 저 아기는 커서 어른이 되기 위해 또 얼마만큼의 상처를 필요로 할 것인지. 성스러운 수도원 기행이 끝났는데 나는 왜 기쁘지가 않고 이런 쓸데없는 연민에 빠져 있는지. 하지만 아기와 젊은 아기엄마에 대한 불길한 예감 때문에 마음이 자꾸 무거워지는 것은 나도 어쩔 수 없었다." (p.248) |
| 작가가 유럽 수도원을 방문하려 했던 욕망과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싶어하는 것 사이에 어떤 끈이 연결되어 있다. 그 끈이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 충동과 일반적으로 같다. 유럽 여행이라면 으레 역사나 문학, 미술, 음악 따위의 예술기행이었는데, 이 책은 우선 지적 탐사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한국 대중에게 수도원은 낯설 듯 하면서 낯설지가 않다. 어떤 대상에 대해 이해는 부족하지만 친근감이 부착된 경우이다. 하지만 작가는 직업적 신앙인도 아니고 은밀하고 고요하다는 수도원들을 돌아보기에는 너무 빡빡한 일정을 계획해 밤낮으로 도시를 바꾸며 겨우 유럽 수도원에 관한 아주 제한된 밑그림을 제시했을 뿐이다. 더구나 기행을 마무리하며 '이 세상 모두가 수도원'이라고 모호하게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기면서 작가에게 정신적으로 뭔가 배울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이 기행에서는 자신에게 '18년만'에 돌아온 신앙을 향한 작가의 열렬한 환호가 담겨있다. '항복', '순종', '복종'이라고 표현한 작가의 경험은 지난 작품들 그리고 '유물론자'로서의 삶에 비추어보아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 성찰을 통해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여행에서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삶의 방식을 만나고 새삼 행복의 조건에 대해 질문한다. 이런 면모는 전에 읽었던 인권운동가 서준식의 인터뷰(아웃사이더 1호)를 연상하게 한다. 그는 맑시즘에서 구하지 못하는 도덕(적) 딜레마를 예수에 기대어 고민하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작가는 '유물론자'로서 신앙을 멀리했던 지난 18년의 세월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임을 위한="" 행진곡="">을 뜨겁게 부르고, 뮌헨대에서 독일 파시즘에 저항했다던 숄 남매의 흔적을 찾고, 브레히트의 묘지에 대해 회상하고, 오스나 브뤽 '마굿간' 수도원에서 무분별하게 세워져있는 한국의 교회를 한탄하며 민중이나 가난을 얘기하는 것이 그렇다. 이 기행서가 작가의 근간 작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 2005)을 전혀 낯설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어느 정도 도움을 주리라는 기대를 쉽게 할 수 있다. <수도원 기행="">이 자기 고백을 담은 밑그림이었다면 <행복한 시간="">에서는 용서와 화해라는 주제를 작가의 방식대로 풀어간다. 그 방식은 종교적 체험에 의해 추동되었듯 폭력, 트라우마, 사형제도, 용서와 같은 문제를 서로 강력하게 마찰시키면서 결국 (사실 나로서는 다소 낭만적으로 보이는데) 기독교적 가치에 희망을 둔다.행복한>수도원>우리들의>임을> |
| 공지영.. 잘 알려졌다는거 말고 접한것은 이번이 처음인거 같다. 사진 구성이 너무 예쁘고 종이가 이뻐서 그리고 수도원기행이란 제목에 이끌려서 친구에게 선물을 받은 책. 소장하기엔 너무 예쁜 책인데..내용은 기대했던 수준 이하였다.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서일까? 수도원기행이라고 해서 작가의 깊이있는 여행 통찰기 일것이라고 생각했던거와는 달리 상업적 냄새가 물씬 나는 수박겉핡기식 여행 메모기 은 느낌이... 게다가 잡다한 이야기구성들로 도데체 공지영이 무슨 말을 하려고했는지... 허탈한 이야기들에 몇장 읽다보면 지루해진다. 소위 "유명한 작가"는 사람이 이런 책을 왜 썼을까... 의아해 진다. 작가의 깊이 있는 통찰이 아쉽다. |
| 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 중 공지영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만큼 그녀는 8-90년대 대학생들과 함께 숨쉬어온 작가이지요. 그녀의 후일담 소설은 90년대 초반을 강타했으며 소박한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그녀를 일약 스타작가 반열에 올려놓았고, 이는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삶의 무게를 고민하고 있는, 어찌보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를 화두삼아 글을 쓰고 있습니다. 바로 전에 소개한 은희경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세상살이를 하고 있는 게지요. 이전엔, 은희경보단 공지영을 더 좋아했더랬습니다. 적어도 대학다닐 때, 그 둘을 함께 읽었지만 겉으론 아닌 척해도 심정적으론 공지영 쪽으로 손을 들어주었지요. 그녀의 힘겨움에 대한 동정과 공감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최근 들어, 저 스스로도 삶의 무거움을 더이상 이겨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더이상 풀리지 않는 화두를 술안주 삼아 이야기하는 것이 자기기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론 은희경 쪽의 손을 슬그머니 드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경향... 어쨌든,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은 그녀가 18년만에 카톨릭의 품으로 다시 귀의하면서 우연찮은 기회(하나님의 뜻)로 유럽의 수도원을 둘러보며 느낀 소회를 기행 형식으로 풀어낸 글입니다. 수도원에 대한 정보나, 유럽 여행에 대한 정보를 얻기엔 너무나 부족한 글이지만, 수도원이라는 일상을 벗어난 삶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삶을 살아가는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는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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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기행, 내려놓음의 행복 공지영 작가는 솔직해서 좋습니다. 공지영 작가의 글을 읽으면 묘한 안도감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녀의 다른 에세이집 제목, 괜찮다 다 괜찮다라는 말이 영혼에 울려퍼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녀가 아주 솔직한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책으로 인해 공지영에 대한 몇 가지 편견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좋은 학교를 나온 이, 대중성 있는 글을 쓰는 이, 엄청난 인세를 받았음에 분명한 이.... 그러나 그녀 왈, 유명해지면 행복할 줄 알았고 돈이 많아지면 행복할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더라. 행복을 위한 자격은 따로 있더라, 라고 합니다. 이 솔직한 고백때문에 후배는 에둘러 갈 길을 곧장 가게 된 기분입니다. 깊이 감사합니다. 행복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전보다는 아주 많이 행복하고 마음 편안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저 자신을 돌아보며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면 단 한가지 이유 외에는 짐작되는 것이 없습니다. 내려놓음 때문임이 분명하다고... 공지영이 찾아간 봉쇄수도원의 수녀님들이 '신나 죽겠는' 얼굴을 하고 계신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역설. 마음이 가난하다고 물질적으로 가난한 것도 아닙니다. 신념적 이유로 자신에게 부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마음이 가난해짐에 따라 오히려 생활은 풍족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자신에게 오는 부를 일부러 제한하는 것 또한, 마음을 하나 더 먹은 셈이니 '가난한 마음'은 아닐지 모릅니다. 공지영 작가처럼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작가가 신에게 항복했다는 구절에 깊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저 또한 애쓰다 못해 결국에는 신에게 항복한 경험이 있습니다. 종교는 딱히 없습니다만, 작은 나 자신 혹은 나의 한계많은 생각들을 내려놓는 경험은 아주 홀가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후에는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곤 했습니다. 만일 제가 종교인이었다면 종교 체험이라고 불렀겠지요? 그간 읽어야겠다고 별렀던 이 책을 드디어 완독하게 되어 기쁩니다. 공지영 작가는 진실로 우리 시대의 소중하고 소중한 작가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좋은 경험, 멋진 경험, 행복한 경험 많이 하시고 소설과 에세이로써 다시금 이야기 풀어주시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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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종교는 가톨릭이다. 5살에 세례를 받았고 그 후 대학교 때까지 열심히 다니다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 믿음의 깊이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성당과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직장에서도 집안에서도 종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직장은 주교님과 신부님, 수녀님께서 이사와 감사를 맡고 계시기 때문에 그러하고, 집안은 모두 가톨릭을 믿고 있는 신자이기에 그러하다. 친구도 성당친구가 많고, 직장 동료도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 많다. 한마디로 가톨릭 신자 집단에 둘러 쌓여있는 셈이다. 어릴 때는 친구들 만나는 재미로 성당을 다녔고, 머리가 굵어지기 시작하면서는 내게 주어진 당연한 소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하느님 앞에만 가면 연약해지고 유순해지는 내가 싫었다. 자꾸 약해지는 것만 같아서 싫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눈에 띄고 나니 성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자꾸만 무거워져만 갔다. 가끔은 신부님과 눈이 마주치는 것도 불안할 때가 있다. 신부님께서 나의 이런 속마음을 눈치 채실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처음에서 유럽 수도원으로 떠나는 자신이 얼마나 낯설게 느껴지는가를 먼저 고백한다. 이 고백이 나에게는 저자와 나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 있다는 것으로 인지하였고 그래서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공지영의 수도원기행(2001.7.26. 김영사)》은 작가 공지영이 유럽으로 수도원 여행을 떠난 발자취를 담은 책이다. 그러나 수도원을 향해 가는 길, 수도원의 모습 그리고 수도원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아름다운 유럽 풍광, 멋들어진 수도원의 모습보다도 더 마음을 사로잡는 게 있었으니 바로 사람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 마음에 탄복하여 작가 자신도 겸허해져가는 모습은 나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져 내 마음이 뭉클해졌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고등 종교와 하등 종교의 차이점은, 바로 그 종교가 네 자신의 변화를 원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데 달려 있다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이 새 삶을, 다시 한 번 새 인생을 시작하게 하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말한다. 저자는 이 여행을 통해 그 차이점을 몸소 이해하게 되었고, 나는 그의 여행을 담은 책을 읽는 것으로 그 차이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단지 종교만을 말하는 책을 나는 싫어한다. 나 역시 종교인이지만 종교가 인간의 삶에 중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의 유무보다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 책은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넘어서, 그리고 수도원에서 삶을 이어가는 수도자를 넘어서 그 이면의 빛, 즉 희망을 보여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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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영'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잃지 않는 작가란 생각을 하게된다. "수도원 기행"도 마찬가지 이다. 여행 길에 만난 사람들과의 진한 혹은 은은한 "감성" 속에서도, 작가로서의 "이성"을 잃지 않고 또박 또박 여행기를 잘 기술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종교적인 관점에서 책을 접근한다거나, 혹은 그녀의 작가성에 기대하여 심오한 문학적인 어떤 것을 예상했다면 실망스러운 책이 될 것 같다. 이 책은, 역사니, 문학이니, 문화니, 종교니(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것을 다 떠나, 그저 삶에 지친 한 나그네가 잠시 쉬다 온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이 글을 읽고 나면 덩달아 편안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겨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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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이라는 작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녀의 책을 읽기를 여러번 시도하다가 결국은 한번도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하고 나에게 나쁜 선입견(?)만 잔뜩 생기게 한 작가라는 점을 안다는것만 빼고...
그녀의 책은 왜 항상 주장하려 하는건지.... 뭘 말하려 하는건지, 난 페미니스트 냄새가 짙게 나는 그녀의 책이 늘 마음에 안 들었다 (하긴... 그녀의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이런평가를 내린다는건 우스은 얘기지만...) 그러다 우연히 공지영이라는 작가가 새 책을 냈는데, 수도원 기행이란다.
평소 기행문을 좋아하는 탓도 있었지만, 왠지 이 책은 놓치고 싶지 않았고, 꼭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해서 난 드디어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읽었다.
너무 읽고 싶어해서인지, 난 이 책의 모든것이 좋았다. 내 맘을 설레이게하는 것도 좋았고, 편안한 안식과 알지못할 슬픔, 행복한 마음까지 들게 하는 이 책이 너무나 좋았다. 어떻게 18년만에 카톨릭(교회)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반 미치광이 취급하며, 혼자 승승장구할 줄 알았는데 결국 자신도 나약한 인간이라는 걸 깨달은 것인지... 하느님이라는 존재 앞에서는 공지영이라는 작가도 어쩔수 없었나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게 공지영이라는 작가는 참으로 인간적으로 느껴졌고, 좋아지기까지 했다. 차가운 초겨울 날씨에 유럽의 수도원을 돌아보며 수도원이 보여주는 모습 때문이었는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인지...하느님에게 용서를 구한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싶어 다시 일어날 때마다 상처를 가리기 위해 가면을 섰고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었고 그렇게 떠돌다가 나는 엎어져버린 것이었다 내가 졌습니다! 항복합니다! 항복...합니다, 주님' 이상하게도 책을 읽으며 나는 마음이 서럽고, 슬퍼서인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후 '공지영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서 이 책을 읽게 되어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고마움의 기도를 드렸다. 종교도 없는 내가 이 책이 열광적으로 좋았고, 공감을 느끼며 읽어 내려 갔는지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공지영의 책을 좋아하지 않았거나 마음이 공허하고 힘들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잠깐이나마 위안과 안식을 줄지도 모르니.... [인상깊은구절] 대체 인생에서 뭘 바라는 거니? 누군가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마은 한켠에서 웅웅거렸다. 하지만 이대로 엎어져 있을 순 없었다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다고, 내가 왜 태어나 이렇게밖에는 살 수 없는지 그걸 밝히고 싶다고... 그렇게 다시 일어날 때마다 성처자국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면서, 가면 위에 가면이 덧씌워지고, 그 위에 다시 가면을 씌우고, 그리하여 나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떠돌다가 나는 엎어져 버린 것이었다. 내가 졌습니다! 항복합니다! 항복... 합니다. 주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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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정말, 가고싶지 않았다.
가봤자, 그냥 발도장만 찍고오는 수준일텐데
돈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담임선생님께서는 완고하셨고 결국 가게되었다.
그때 들고갔던 책이 이 책이었다.
공지영 작가에게 관심이 무척 많았을때였다.
`기행' 이라고 이름 붙이기가 좀 그렇다.
여행이라고 보기엔 여행자의 감상이 너무 없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수도원을 소개해 주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다시 신에게 돌아가게 된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고
또 그걸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 |
| 가족들에게 매일 매일 치이고 나만의 시간은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을 하고 불평을 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결국에는 남는 것은 자기 자신이고 결국에는 믿을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을 주장을 하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 모든 것을 잠시 포기를 하고 자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홀로..가정이 있는 사람이..이 나라도 아니고 다른 나라를 오랫동안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공지영도 그러하듯이 이렇게 여행을 떠나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얻어오는 것이 더 많다라는 것을 배울 수가 있었다. 시간은 자기가 만들어나가는 것이고 떠나지 못하는 사람은 용기가 부족한 불쌍한 사람임을 기억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