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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대 중문과 교수 리링은 "성현의 이미지를 벗겨내야 진짜 공자가 보인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라는 사대성인이 있다. 성인과 현자의 이미지를 벗겨내야 이들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주장은 나름의 호소력이 있다. 역사적으로 누적되고 이념적으로 교조화된 무거운 이미지를 탈피하고 보다 우리와 가까운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 공자'는 어려워 보이고 '인간 공자'는 좀 친근해 보이나. 그런데 요즘 동양철학이나 유학에 매우 무관심한 현대인들이 '성인 공자'를 과연 얼마나 어려워할까도 의문이다. 아무래도 '성인 공자' 노선은 당연히 신유학파와 조선의 주자학자를 비롯한 현대판 유학자의 공자 이미지이겠고, '인간 공자' 노선은 대중적 인문학자와 교양인의 공자 이미지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성인 공자와 인간 공자를 구분하는 일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 요즘 시대에 걸맞지 않는 완전히 잘못된 이분법 아닌가 말이다. 내 눈엔 공자는 정말 인간다운 품격을 가장 높이 실현한 인문주의자일 따름이다. 그래서 대륙학자 리링의 '현대적인' 논어 해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국문학자 진경환의 『집 잃은 개를 찾아서』(소명출판, 2015)는 리링의 『집 잃은 개』에 나온 해설을 토대로 삼아 다산 정약용의 『논어고금주』와 일본 에도 중기의 유학자 오규 소라이의 『논어징』, 그리고 대만의 국사 남회근의 『논어별재』를 참고해서 '인간 공자'의 모습을 그려보이려 한다. 또한 저자는 옛 주석과 현대 주석을 참고하기 위해 각각 성백효의 『현토완역 논어집주』(전통문화연구회, 1990)와 배병삼의 『한글세대가 본 논어』(문학동네, 2008)를 참조했다. 그런데 『논어』만 읽고서 인간 공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가 가장 소홀히 한 부분이 바로 여기다. 공자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마천 『사기』의 「공자세가」와 「중니제자열전」, 『공자가어』와 『예기』, 그리고 『주역』 「계사전」과 『춘추좌씨전』, 『맹자』 등도 당연히 같이 읽어야 한다. 이 정도가 너무 무리한 요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저자의 유학의 가르침에 대한 태도는 기본적으로 리링의 입장과 동일하다. 리링은 유학이 지금 여기에는 실효성이 없다고 본다. 물론 내 생각은 리링이나 저자의 입장과는 다르다. 이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인간 공자'를 굳이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리링은 유가의 도덕, 구체적으로 효의 정치가 실효성 없는 환상이라고 했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그것이 우리에게 오히려 악용된 바가 컸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을 악용한 사람이 문제지, 효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효에는 이미 악용의 소지가 충분히 내장되어 있다. 더구나 지금은 중세가 아니라 현대 아닌가! 이른바 '유교민주주의'니 '유교자본주의'니 하는 주장을 펴는 일부 현대 유학자들이 우려하듯이, 충효가 부재하여 혼란이 온 것이 아니라, 혼란의 와중에서 충효가 끼여들어와 행세를 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62쪽) 『논어』는 동양의 한 인문주의자가 지향했던 삶의 진수를 보여준다. 예컨대 「학이」편 첫 두마디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와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다. 송나라 유학자는 여기서 '열(기쁨)'과 '락(즐거움)'의 차이점을 지적한 바 있다. 예컨대 기쁨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고, 즐거움은 주로 몸 밖으로 발산한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송유의 해석보다는 오히려 고문사학자 오규 소라이의 주석을 따른다. 오규 소라이가 기쁨을 "마음이 이치에 걸맞아 흡족한 것"이라고 본 송유의 해석에 딴지를 걸고 "참으로 빡빡하여 멋이 없다"고 비판했는데, 나는 오히려 오규 소라이의 안목이 부족했다고 본다. 또한 정자의 "즐거움은 기쁨을 거쳐서 얻는 것이니 즐거움에 이르지 않으면 군자라고 말할 수 없다"는 훌륭한 주석은 왜 생략했는지 모르겠다. 맹자에 충실한 주석인데 왠 '멋' 타령인가. 진정한 인문주의자는 배움의 기쁨과 즐거움을 체득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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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를 이야기 하는데 있어서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바로 유교 그리고 공자 여기에 논어를 추가 하게 된다..이처럼 우리
삶과 가까운 공자..우리는 공자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하고 있지만 실제 우리가 공자에 대해,논어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수박 겉핥기식으로 필요에 따라 공자의 말이 담겨져 잇는 논어의 구절 하나 하나 복사-붙여넣기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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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잃은 개를 찾아서 1권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에는 ‘리링, 다산, 오규 소라이, 난화이진과 함께 떠나는 진경환의 <논어> 여행’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리링(李零)은 베이징 대학의 교수로, 중국 학계에서 고문자학, 고문헌학, 고고학의 이른바 삼고학에 정통한 학자로 널리 인정을 받고 있는 중견 학자이다. 그의 저서인 <집 잃은 개>는 이른바 삼고학에 바탕을 두고 10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철저하게 논어를 주석하고 해설한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으로 보자면 그 책 <집 잃은 개>와 관련이 있다. 저자는 말하길, ‘<집 잃은 개>를 저본으로 삼아 미욱한 나도 감히 인간 공자를 만나는 여정을 따라 나서기로 했다’(6쪽)고 하면서, 리링으로부터 다산, 오규, 소라이 등의 저작을 살펴보면서, 논어를 다시 해석하고 있다. 여기 동반 여행을 떠나는 인물들 저자가 함께 논어 여행을 떠난다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리링은 <집 잃은 개>로 이 책에서 주요하게 거론되는 인물이 되는데. 그래서 그의 저서인 <집 잃은 개>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리링 교수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첫 부분에서는 “공자는 결코 성인이 아니며 뜻을 이루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나 그러지 못했던 외로운 지식인이라는 점”을 주장한다. 이것은 제목 “집 잃은 개”가 탄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여기서 본문의 내용을 다시 요약하면서 공자가 천명, 인성, 성인, 인, 군자등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다시 한 번 복기하면서 공자라는 인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집 잃은 개> 도서 소개중에서 인용) 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의 학문적 깊이는 굳이 재론할 여지가 없으며, 이 책에서 인용되는 <논어고금주>는 논어에 관한 탁월한 해석으로 인정받고 있다. 오규 소라이는 일본의 유학자이다. 여기에 인용된 그의 저서는 <논어징>이다. 그리고 대만 출신의 동양학자 난화이진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누군가 했더니 내가 읽었던 <역경잡설>과 <주역계사강의>의 저자 남회근(南懷瑾)이었다. 그 밖에 여러 명, 여러 책을 인용하면서 저자는 <논어>를 여행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저자가 인용한 논어 관련 저서는 다음과 같다. 리링, <집 잃은 개> 다산 정약용, <논어고금주> 오규 소라이 <논어징> 남회근, <논어별재> 성백효 <현토완역 논어 집주> 배병삼 <한글 세대가 본 논어> 이 책의 가치는 이 책은 저자인 진경환이 펴낸 ‘<논어> 여행’ 중 1권에 해당된다. 1권에는 <논어>의 ‘학이’부터 ‘향당’까지 실려 있다. 우선 이 책은 <논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점에 그 가치가 있다 하겠다. 아예 글을 쓰는 처음부터 저자는 여러명의 동행자를 정해서 그들과 같이 <논어> 여행을 떠난다 했고, 여행을 하는 동안 그들의 생각을 저자가 새겨듣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스타일로 책을 썼으니 그렇게 다양한 견해를 한꺼번에 듣는 것, 유익한 일이다. 또한 그렇게 다른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면서도 독창적인 저자의 견해도 실어 놓았다. 그들과 다른 부분 또는 다른 학자들이 언급하지 않은 부분을 상당수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이 이미 한번 짚고 넘어간 부분인데도 (내가 그런 책을 읽지 않아) 그저 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나에게 그것은 새로움이다. 그러한 새로움을 많이 보게 되는 책, 그러한 새로움이 많이 있을수록 좋은 책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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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논어'를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은 공자의 글 중 몇개의 문장을 일상생활에 쓸 정도로 그의 글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러나, 논어 전편을 잃어본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논어 전편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논어에 관한 책은 많지만 원문과 간략한 설명만을 소개하거나, 원문 중 핵심 내용-저자가 생각하는 핵심이겠지만-에 대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나 또한 다양한 논어에 관한 책을 접했지만 이 책을 처음 보는 순간, '아~~'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이 책은 저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논어 전편에 대한 글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집 잃은 개'는 공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 책의 원류라 할 수 있는 리링의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동안 신격화 되어 있는 공자에 대한 글이 아닌 인간 공자에 보다 주목하고자 한 글인데 그러다보니 많은 논란이 되었던 책이다.
저자는 공자의 논어를 다양한 국적을 가진 명사들의 글을 소개하고 있다.
중국의 리링을 근간으로 하여, 한국의 다산 정약용, 일본의 오슈 소라이, 대만의 난화이진의 글을 함께 보여준다.
하나의 문장에 대해 위인들이 어떻게 생각하였는지를 보여주고, 자신의 생각을 끄트러리에 소개하고 있다.
때로는 수긍하고, 때로는 강하게 반박하는 저자의 글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가끔 등장하는 한 편의 시는 풍류를 더한다.
누군가 논어에 대한 책에 대해 나에게 조언을 구한다면-그럴일을 결코 없겠지만- 난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논어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위인들의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단 한 권의 책-물론, 상당한 분량이기는 하지만-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서두에 밝히듯이 저자는 인문을 전공한 학자가 아니다.
그렇기에 자의적 해석에 대한 오류를 미리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난 그 자의적 해석이 아주 마음에 든다.
저자의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성현이라 일컫는 공자의 말씀에 '감히' 사족을 달 수 있는 그 용기가 너무 부럽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몇 번이나 논어를 접하였지만 감히 그 글에 대해 '나의 생각'을 얹을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이 책은 나에게 논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었다.
인문에 많은 관심은 있지만, 그 관심은 그저 앵무새처럼 누군가가 해석해 놓은 내용을 머리에 담기 바빴던 것 같다.
그 내용에 대한 나만의 고찰이나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 책으로 논어-좀 더 광범위하게 말하면 고전이라 하는 것들-를 나만의 것으로 만들 용기를 얻었다.
어쩌면 진작부터 그랬어야 하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은 듯 하다.
하나의 문장에 대해서도 이렇듯 다양한 관점에서의 해석이 가능하였음을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
왜 난 이들처럼 나만의 해석을 할 생각을 못하였을까...
지금까지 내가 접했던 인문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였기에 감히 이 책을 최고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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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잃은 개를 찾아서 논어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도는 인지한 순간 도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절대적인 도는 그대로 있지만 사람이 인지하면서 그 의미가 변한다. 그렇기에 인지한 내용이 사람에 따라 다르고, 학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책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원문에 충실하면서 각각 다르게 해석하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게 해주고 있기에 입체적이다. 고정적이지 않고 변화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논어에 대해서 지나치게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 신성을 걷어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동의한다. 동양권에서 논어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 적이 있고, 지금도 강하게 작용을 하고 있다. 이런 논어에 대해 연구한 한국, 중국, 일본의 선각자들의 의견과 함께 저자의 생각들이 이어진다. 깊이 있게 들어가는 부분이 있고, 현대적인 이야기가 함께 하고 있어 이해하기 편한 면이 있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신성을 걷어내고 있다고 하지만 원문에 충실한 면이 많다는 사실이다. 원문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논어에서 가장 기본적인 건 원문 그 자체이다. 학자들은 논쟁을 좋아한다. 하나의 도를 두고 접근하는 법을 서로 이야기하고 다투는 것이다. 선의의 경쟁을 하는 라이벌이라고 할까? 다소 비유가 이상해 보이기는 하다. 산 정상을 향해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간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겠다. 어떻게 걷든지 도달하는 정상은 하나이다. 공자가 바라보았던 이상적인 도! 논어의 이야기가 현실에서 어떤 의미로 사람들에게 작용할 것인가? 논어의 도를 읽다 보면 마음이 정화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교언영색을 놓고 볼 때 사람들의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책이 알려주고 있다. 다산은 교언영색을 죄악으로만 보지 않았다. 이런 의견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주희와 다르다. 글자의 의미, 그리고 어조사의 의미를 두고 다툰다. 성경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는 종교인들의 마음일까 동양권의 유학자들에게 논어는 성경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저자는 신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지루할 수도 있는 책이다. 그런데 가만히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보인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준비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약간이 아니라 조금 많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동양권의 역사 이야기도 알아야 하고, 한자가 지니고 있는 의미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모르고 본다고 해도 크게 상관이 없다. 좋은 말들이 잔뜩 넘쳐나고, 평생의 마음가짐으로 삼아야 할 가르침들도 셀 수 없이 많다. 너무 많은 걸 담고 있다. 시간을 두고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안겨다 줄 책이다. 개인적으로 읽어볼 논어 관련 책들 가운데 수작이라고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