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론과 그리고 휴즈맨들은 어릴 때 보았던 텔레비전 폭력의 양이 수년 심지어는 수십 년 후까지 그 사람들의 공격 수준에 영향을 줌을 밝혔다. 이 연구에서 피험자가 시청한 폭력의 양은 피험자들이 보았다고 보고한 프로그램과 이 프로그램들의 폭력점수(폭력장면이 얼마나 많이 나타나는가를 점수로 매긴)로 정의했다. 피험자들의 공격 수준은 학급 동료들이나 그들의 선생들이 매긴 행동점수로부터 얻었다. 이 두 가지 변인간의 상관관계를 조사해본 결과, 정말로 상관이 있었다. 즉 어릴 때 매체 폭력을 많이 본 사람들일수록 어른이 되었을 때 공격 수준이 더 높았다. 게다가 이 관계의 강도는 나이가 들수록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 매체 폭력의 영향이 시간이 갈수록 축적됨을 시사한다. (중략) 폭력매체를 지속적으로 시청하는 것은 폭력과 그것에 따른 결과에 대한 정서적 민감도를 떨어뜨린다. 간단히 말해서, 수많은 살인과 싸움, 공격을 보게 되면 시청자들은 이러한 시청각 자료에 대해서 둔감하게 되고 정서적 반응을 더 적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실생활에서의 공격도 보다 덜 해로운 것으로 보고 심지어, 피해자들이 상당한 아픔과 고통을 표시해도 그 피해자들을 덜 동정한다. 특히 이러한 효과는 성폭력에 있어서 두드러진다. ------------------------------------------------------------------------------본문에서 폭력성을 낮다고 해도, 그가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폭력성이 높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폭력성을 갈무리하는 방법을 알며, 실제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얼마나 많은 폭력매체를 접했는가"가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1.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라는 환경결정론 적인 입장은 문제가 있다. 같은 환경에 주어진다하더라도 사람은 모두 다른 행동을 한다. 그 이유를 그들은 다른 성장환경에서 찾는다. 만약 같은 환경에서 성장했더라면 그 역시도 같이 행동했을거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존엄성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변화하는 환경적 요인 속에서 자극에 따라 이리저리 변화할 뿐인가. 문제의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된다. 폭력을 행사한 사람의 잘못이 마치 사회의 문제인양 두리뭉실 넘겨서는 안 된다. 폭력은 폭력을 행사한 자의 잘못이다. 폭력으로밖에 해결할 수 밖에 없는 어리석음이 바로 잘못이다. 치장하지 마라. 그대의 나약함을 사회로 떠넘기지 마라. 그리고, 그 나약함에 동조해 범죄자를 상처입은 영혼으로 받들지 마라. 2. 범죄자에 대한 어설픈 연민보다 더 두려운 것은, 범죄자를 연민하는 것에서 비롯한 범죄 자체에 대한 둔감함이다. 더더욱 자극적이고, 절절한 사연이 없이는 그저 일상에 묻어나는 약간의 위협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자연재해를 인정하듯, 교통사고를 인정하고, 그렇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인정해 버린다. 그렇게 되면 피해자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피해자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는 피해자를 사회적인 본보기로 만들어 '언제 내가 그렇게 될 지 모르므로' 강해져야 한다고 우리를 채찍질한다. 또한 타인의 어려움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도와주다간 나도 피해자가 될지도 몰라. 한 단계 더 나아가면 '피해자가 잘못한 거야'의 사고까지 이어지게 되면, 우리 사회는 이미 도덕이 아닌 힘의 논리에 의해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성폭력에 관한 토론을 볼 때 이런 말을 본 적이 없는가? '여자가 그런 옷을 입고 다니니까 그런 일을 당하지' '그 시간에 왜 그런 곳을 돌아다녔대?' 약하기 때문인가. 약한 자는 강자에 의해 짓밟히면서 그저 속으로 눈물이나 삼키며 살아야 하는가. 그대는, 그대가 피해자가 되었을 때 속으로 눈물만 삼키고 싶은가. (얼마전에 한 여성의 자살 사건에서 어째서 피임을 하지 않았느냐의 논조로 글을 쓴 적이 있기 때문에 저 글이 더욱 와 닿았다. 나도 모르는 새에 성폭력이란 범죄 자체에 대해 상당수준 용인하고 있었던 것 같다) 3. '살인' 혹은 그 비슷한 범죄들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범죄자의 저변엔 범죄를 저지르게 된 갖가지 요소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어렸을 때 부모님에 의한 학대, 가슴이 찡한 구구절절한 사연, 희망이 안 보이는 삶... 그 요소들에 정신을 뺏겨, 본질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 연민이 가져오는 것은 범죄에 대한 용인이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안이한 마음. 그 마음이 당신 자신을 집어 삼킨다 해도, 당신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
| 나는 과천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이군이 토막낸 시체를 버린 장소들을 정확히 알고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그 장소들을 지나며 살고 있다. 경마장 지하철 역을 지나며 중앙공원을 지나며 이군을 생각해 본다. "사랑 받아본 사람만이 사랑을 베풀수 있다"를 정확히 일깨워준 책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유교사상으로는 부모를 살해한다는 사실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남보다도 못한 부모라면 어떻겠느냐. 이군의 일기에서도 보았듯이 이군은 사랑에 굶주리며 20년 이상을 살아왔다. 진정한 살인자는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 주는 책이다. 난 아직 미혼이지만 조카들이 있다. 우리 식구들은 모두 이 책을 읽었고 모두들 어린 조카들에 대한 태도를 조금씩 바꾸었다. 조금 더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어리지만 그 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른의 생각을 이야기 해주게 되었다. 사랑이란 무조건 주는것도 아니고 받는것도 아닌 서로 나누는 것이란걸 깨닫게 해주었다. 앞으로도 이런 책이 더 많이 나와서 아무리 살기 어렵고 황폐한 세상이더라도 일상의 삶에서 서로서로 사랑을 나누며 살도록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주었으면 한다. 이군의 부모님은 저 하늘나라에서 작은 방에서 사는 이군에서 매일매일 사랑을 뿌려 주리라 믿는다. |
|
부모님을 토막살인을 한 이은석에 관한 심리적 관점을 중심으로 낸 책이다.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아주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다. 대한민국 정통적으로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그 대신 사랑을 주는 어머니. 하지만 이은석의 가정은 사랑을 주지 않는 어머니였다. 대체적으로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어머니는 사랑을 주는게 대한민국의 가정이다. 그러나 사랑을 주어야 할 어머니 마저 아주 가부장적인 그런 성격의 어머니였다. 이은석은 초등학생 저학년때는 말썽꾸러기였다. 학교에서 숙제 준비물을 챙기지도 않았다. 그러던 담임선생님은 부모님께 전화를 해야겠다 생각해서 전화를 하자 형이 받았다. 이은석은 하교후 집에오니 형이 담임선생님한테 전화왔었다 한마디에 숙제와 준비물을 챙기는 등 아주 착실한 아이도 바꼈다. 그는 어머니의 두려움 하나로 모든것이 바뀐 것이다. 그만큼 엄한 가정에 자랐다.
훈육만 있을 뿐 사랑이 없는 어머니는 더욱더 이은석을 내성적으로 만들게 한다. 그의 형은 성격이 괄괄하여 부모의 관섭에 빠져나오지만 이은석은 불만도 표출 못하고 담아둔다.
이책에서 인상적인 실험을 알려주었다. 그냥 철골원숭이 인형에 바나나 하나를 다른 한쪽은 푹신푹신한 방석이 있는 원숭이. 새끼원숭이는 방석이 있는 원숭이를 택한다. 이처럼 동물들 마저 음식보다는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 했다.
키가작다 비난.. 다른 아들과의 비교.. 그러나 사랑도 주지 않고 효를 중시.. 하지만 자기 어머니에게는 치매이후 구박.. 이중적인 어머니밑에서 형과 달리 체념을 하게된다. 체념은 무기력을 더욱 키워준 계기가 된다.화가 풀곳도 없는 그는 고등학교졸업 후 입대하면서 사창가를 오간다. 그는 창녀에게 포르노식 대우보다는 포옹, 키스를 원했다. 창녀에게 사랑을 구걸 한 것이었다. 참 아이러니 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그는 군대 제대 후에 비로소 일기에 왕따 경험 어머니의 학대를 일기에 적었다. 그 후 몇일 후 형의 별거 후 은석은 예민핼 질대로 예민해져 부모님과의 다툼이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난 그런적이 없다 왜 이제서야 이야기 하느냐등 얘기 하였고 이에 이은석은 엄청난 상실감에 빠지게 된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후 부모님을 피해 자기방에만 있었고 집에 부모님이 있으면 생리적 욕구를 참고 부모님께서 출타하면 그제서야 미룬 화장실이나 밥을 챙겨 먹기도 하였다. 어느날 밤 그는 우연히 위스키를 마시는데 우발적으로 망치를 들고 부모님을 살해야였다.
-----
이은석은 고려대학교이며 엄청 똑똑하다고 한다. 하지만 집에서의 엄한 훈육 ( 줄거리에서는 안나왔지만 일기나 그의 인터뷰를 들으면 심함), 학교군대 왕따 경험으로 엄청나게 내성적으로 변한다.
그날 다투던날 미안하다고 말했더라면 이은석의 마음은 풀리고 이런 사건도 안생기지 않았을까?
이 심리학 책을 읽고 난 후 나에 대해 생각이 많았던것 같다. 간
|
| 기독교의 본질인 인격적 사랑은 없이 '종교생활에 집착하는' 어머니, 전형적인 가부장적 태도와 앞뒤 꽉막힌 아버지, 두 부모님의 사이의 사랑없는 가정생활... 사람의 단점을 노리개감 삼아 데리고 노는 친구들... 이미 삐뚤어질대로 뒤틀려버린 비딱한 은석이의 성격... 이 모든 것들이 충분히 익을대로 익어서 나온 결과가 바로 2000년 과천에서 발생한 부모존속살해사건이다. 그것도 살해후 토막내서 과천 여기저기 숨겨놓은 기절초풍할만한 사건이었다. 연세대 심리학교 이훈구교수는 감옥에 있는 은석이를 면담하면서 이 사건의 원인을 파해치기 시작한다. 그 결과물로 나온 보고서가 바로 본서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못내 꺼림직한 느낌이 든다. 과연 문제있는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로부터 인격적인 사랑을 못받으며 자랐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부모살해사건이 설명이 되는가? 학대를 받으면서 자란 아이라도 부모한테 정성을 다해 효도하는 사람도 있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건가? 이 사건을 환경탓으로 돌릴건가? 부모살해사건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한편으로는 은석이가 이해가 되고, 마음이 아파왔다. 문제있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과 교사들...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볼만한 책이다. |
| 놀라웠다. 은석이는 나였고 내 딸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내내 두려웠다. 나의 감정을 그렇게 정확하게 헤집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분노, 원한, 증오는 아직도 날 괴롭힌다. 내 자식들은 절대로 결단코 차별하지 않고 사랑으로 키우리라 수 없이 다짐하건만 내 딸이 잘못을 할 때마다 내가 내 엄마로부터 들었던 온갖 저주와 욕설 수모 모욕감이 되살아나고 그 중 배운것을 써먹기도 한다. 극심한 열등감 나약함 대인관계의 미숙으로 꿈은 꾸어 보지도 못하고 오로지 지옥에서 탈출하고자 그냥 결혼했 다. 다행히도 남편은 자애롭고 좋은 아빠다. 그러나 은석의 말처럼 은밀하고 집요하고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어머니(나)의 죄는 아버지의 사랑마저 갉아먹는다. 깊이 반성하며....책을 책장 깊숙히 감춘다. 딸이 볼까 두렵다. 자식을 키우면서 때론 체벌도 필요하고 감정의 대립도 있고 어머니의 특권으로 내 생각만을 강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그러나 딸아이가 이 책을 읽는다면 어머니의 잘못과 부당함만을 보지 않을까 걱정이다. 내가 좀 더 나은 엄마가 되었을 때, 그리고 딸이 엄마의 어리석음도 이해할 수 있을 때 보여주련다. 그때까지, 감정이 격해질 때 마다, 감추어둔 이 책을 꺼내보고 자신을 되돌아 볼 생각이다. 이훈구님께 감사드린다.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글을 써 주셔서 감히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은석이 가엾어서 가슴아프다... |
|
일년 전 세간을 충격으로 몰아 넣었던 끔찍한 사건의 이면에는 우리가 가정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그저 남의 일로 생각하고 지나쳐버리기 쉬운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로인해 왜곡된 20여 년을 살아 온 한 젊은이의 불행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이를 '사건과 비화'식의 흥미 위주가 아니라, 대학 심리학 교수의 학문적이지만 이해가 쉬운 설명으로 풀어냄으로써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나는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고 있나?'라고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아쉬움과 걱정, 그리고작은 각오로 이틀 만에 뒷 장을 덮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을 통해당장 '앞으로 내 아이들을 이렇게 대하겠다'라는 정답은 찾지 못 했지만, 최소한 아이들을 대하는 순간순간에 이 책의 내용을 떠 올리며 한번 더 생각하고 나서 뭐라 말하고, 행동하게 될 것 같다.
어쩌면 이 것이 저자가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거는 기대가 아닐까 한다. 더 나아가 독자가 앞으로 우리 사회가 똑같은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경고만 찾을 수 있다면, 이 책이 주는 역할은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부모의 죄'는 흔히 말하는 세대간의 불화 다위의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부모 덕분에 한 개인이 가족 제도를 부정하게 되고 친사회적 코드와 단절되는 사소한 비극을 말한다. 친부모를 부정할 수 밖에 없는 자식이 <부기 나이트="">에서처럼 새로운 대체 가족을 찾아내기라도 한다면 몰라도, 그마저도 실패한다면 그 개인은 여러분 모두가 경멸하고 자기 자신도 부정하고 싶은 종류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부기> |
|
어렸을 때 각인된 상처는 커서 받은 상처에 비할 바 없이 크다. 무의식이건 의식이건 깊게 남아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자신을 형성하는 시기에 일순간 다가온 경험은 방향을 설정해버리기도 한다. 은석군의 사건을 알게 된 것은 영화동호회에 들어가서 그의 글을 읽었을 때였다. 다른 통신사의 영화동호회 전 시삽이었던 그의 글이 사건과 함께 게시판에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뉴스에서는 전대미문의 이 존속살인에 대한 보도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이상한 사람이 아닌 정상인이었다라는 글부터, 뭐가 어떻든 사람을 죽인 사람의 상태를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글부터 참 의견이 분분했었다. 무엇보다 이 일이 이슈가 되었던 것은 그가 명문대생이라는 것이었다. 명문대생이, 꽤 괜찮은 집안의 명문대생이 왜 부모를 살해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사회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일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의 자신을 놈팽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단 한통의 전화로 그는 놀라운 모범생으로 변화한다. 선생님의 전화를 어머니가 알게 되었을 경우에 대한 두려움, 아니 두려움보다는 공포. 자신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정말 끝이라는 공포가 그를 180도로 변화시킨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가진 공포심치고는 그 정도가 심하다. 어머니는 애초에 두려운 존재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받아주는 존재이므로, 그 존재가 사라졌을 경우, 혹은 그 성질이 변했을 경우를 예상한다면 그것은 공포 그 자체다. 그는 사랑보다는 공포를 더 느꼈고, 무관심속에서 자신을 점점 깎아내렸다.
은석군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과 형을 차별대우한것에 대해 분노했으면서도 은석군과 그의 형을 차별대우한다. 은석군의 어머니는 자신이 남편과 말다툼했을 때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오히려 반격하는 것에 분노했으면서도 은석군의 단 한 번 반항에 너는 왜 그러냐고 반격을 한다. 자신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다. 괴물과 싸우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은 자기 자신이 괴물이 되는 것이다.
미안했다. 그동안 미안했다.. 라고 말하면서 어머니가 은석군을 포근히 안아줬다면.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머니가 아버지를 사탄으로, 악으로 규정하지 않고 자신이 포용해야 할 대상. 끊임없는 노력으로 화해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지극히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다른이들의 애정이나 관심에 대해서는 아이와 다름없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 타인의 태도에 당황해하고 어쩔줄 몰라했다. 그가 받았을 고통, 또 앞으로 겪어야 할 고통에 同情한다.
그리고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대부분의 이들의 공격을 생각해보라. 공격은 무섭다는 신호이다. 나를 돌아봐줘. 나에게 관심을 가져줘. 나의 무관심으로 인해 상처받았을, 상처받고 있을 이들에게 더욱 더 사랑을 가져야 할 것을 다짐한다. [인상깊은구절] 은석이는 그동안 부모에게 묵묵히 순종하다가 어머니와 언쟁을 하고 처음으로 반항을 했다. 화가 나서 그가 미리 마련해둔 어머니가 자신에게 가한 학대 내용을 들이대었다. 만일 그때 어머니가 단 한마디 말, 즉 '미안하다'라고만 말했다면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조리 다 잊어버렸을 것이라고 은석이는 나중에 경찰서에서 진술했다. 단 한마디 "미안하다는 말이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나요" 하고 그는 이미 죽어버린 어머니에게 울부짖었다. |
| 맨 아래에 적으신 분의 글을 읽습니다. 이 시대의 사랑을 베풀고도 대접받지 못하는 부모들이 가엾다라. 물론 동의합니다. 넘치는 사랑을 받다 못해 이기적이고 멋모르는 철없는 어른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지만, 그러한 사랑 역시 잘못임에 틀림없습니다. 좋은 부모에게 제대로 교육을 받은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기억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고 청소년들이 동조하리라는 생각 역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이 아닌 바에야 자식이 부모에게 장기적인 원한을 가지는 일은 절대로 없으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것은 제가 아직 어리다면 어린 중학생이기에 이해하기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현재 부모 곁에서 부모님께 때로는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사소한 이유로 지나가보면 별것도 아닌 원한(...정말로 별것도 아니죠.)을 가지면서 자라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멀쩡한 '인간'을 또다른 '인간'을 죽이게끔 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요.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이유없는 살인 따위를 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부모로부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음이 분명하다는 그러한 당연한 예상을 할 수는 없는 걸까요. '부모답지 않은 부모'. 이러한 유형의 부모들이 현재 넘쳐나고 있기에 아동 학대와 같은 범죄는 매번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겁니다. 그런 부모도 과연 부모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인지 조금 생각해 봐야 하겠지요. 물론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에 관한 무한한 애정을 지니기 마련이건만, 왜 하필 이런 비인간적인 일이 비일비재한지 저는 정말로 세상에 회의를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의 범행에 동의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과연 그들은 '부모'였던 것일까요. 그저 자신의 자존심따위는 깎아내리고, 오직 자신의 목표만을 위해 자식을 재찍질해, 그의 모든 정신적 기반을 무너뜨린 것도 애정 표출이라면 애정 표출입니까. 무서운 일이군요. 저는 저의 훌륭하신 부모님을 두고 감히 상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를 이 가정에 내린 운명에 감사라도 할 지경입니다. 친구와 이 책에 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친구와 저는 만약에 나의 부모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나 역시 같은 범행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데에 서로 동의를 표했습니다. 이성을 가진 인간인 이상 잘못된 양육이 살인이라는 범죄를 정당화할수는 없겠지만, 인간이기에 그런 종류의 학대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살인이라는 모양의 범죄는 분명 잘못이지만, 그의 부모도 그에게 살인 이상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식을 위한다는 표면적 이유를 내걸고 혹시 내 자식에게 잘못된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는지...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 양친 살해 후, 토막 처리라는 엽기적인 소재, 선배의 강력한 추천으로 책을 샀다. 고대 산공과라면 나와 스치는 인연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일조를 했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이은석의 일기와 세번의 인터뷰를 통해서 사건의 정황과 그의 심리 상태를 기술한다. 중간쯤 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어수선한 문체는 차치하고, 여러가지로 제시되는 정황 자료를 통해서 이은석이라는 인물을 실체화하는 작업은 매력적이었으며,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미디어 매체의 영향이라는 장을 통해서 그가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영화 감상과 게임을 많이 했으며,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영화와 게임이 그 같은 범행을 저지르는 촉매체 역할을 했다는 추리는 실망스러웠다. 가십거리 좋아하는 신문기자의 편향된 시각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겨우 세번의 만남과 일기 분석에 바탕을 둔 추리 소설일 뿐이지만, 그의 아픈 과거는 충분히 공감이 갔으며 나 자신을 들여다 보는 계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