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1 테러로 미 전역이 정신적 충격에 휩싸여 이성적 판단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노엄 촘스키를 위시한 일군의 학자들이 학자적 양심을 걸고 민주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적이 있다. 당시 분위기로선 이들의 말이 그야말로 씨알도 먹히지 않는 말이었지만 폭발적인 감정이 상당 부분 사그라진 지금 시점에서 보면 탁월한 인식과 대응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언어학자의 타이틀 외에 우리에겐 진보주의 학자로 이름이 더 알려진 노엄 촘스키는 세계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비판한 수많은 책들을 출간했다. 그의 책들은 공히 일반인의 인식과 전망에 큰 자양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과 같은 대담집은 의외로 많지 않다. 정제된 언어로 표출된 일반 서적은 달리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와 달리 정해진 시간 안에 질문과 답변이 오간 기록으로서의 대담집은 정제미가 떨어진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일견 수긍하지 못할 바가 아니지만 특정 상황과 마주칠 경우 그런 말이 기우일 수 있다는 점도 알아주길 바란다. 이 책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아무튼 그런 생각일랑 붙들어 매도 좋다. 더군다나 인터뷰어가 서문에 대담 내용을 정교하게 다듬어 활자화했다고 밝힘으로써 예봉마저 피하고 있는 마당이니 트집 잡을 건덕지도 없다. 물론 다듬지 않았어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히 그 빛을 발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공히 해당 분야에서 탁월한 인식을 보여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첨삭 과정을 거친 건, 균형추가 무너지자마자 브레이크마저 뽑아내고 고속 질주하는 미국 자본주의를 어떻게 규정하고 대응해 가야할지 고민하는 독자의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주려는 열망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 지점에서 독자들은 지적 해갈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해갈이 책을 읽을 때에 국한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환상의 복식조가 그렇게 둘 리 만무하다. 활자화된 각각의 주장은 물론 행간에 걸쳐 실천을 모색하고, 그 방향으로 중단 없이 전진하도록 이끌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하고 각종 매체를 통해 활발히 운동을 전개해도 그에 비해 결과는 별로 나아지지 않는 현상을 보고 동력을 급격히 잃을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어떤 형태의 운동이든 성과를 내오기 위해서는 장구한 세월이 필요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들이 좋은 예다. 한 두 장만 읽어봐도 노엄 촘스키가 얼마나 시원하게 질문에 답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거침이 없다. 어떤 질문이든 그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답 앞에 무장해제 당하고 만다.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 또한 탁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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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라는 사람은 중학교 국어시간엔가 한번 들어보고, 대학교 다니던 언젠가, 이 자가 나름 빨갱이란 소리를 들었지만, 뭔가 끌리지 않아서 여태 글자를 한톨도 읽어보질 않았었다. 하지만, 뭐 일부러 피한건 아니었기에, 한번 잡아보자 하건데,
엄밀히 말해 촘스키 대담집이었고, 데이비드 비사미언이라는 이가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촘스키가 직접 쓴 글은 아니라 하겠다. 하지만, 뭐 그때문에 좀 더 압축적으로 그 사람의 주장이 담겨있다곤 하겠지.
글들을 읽으면서 미국은 정말 깡패국가, 군사국가란 생각을 새삼하게됬다. 예전 크루그먼의 글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난 은근히 세상이 돌아가는 꼬라지보다는 좀 더 괜찮을거라고 낙관하는 면이 많은가부다. 그때는 미국 위정자들이 얼마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치는 지에 대한 놀라움을 느꼈다면, 이 책에선 그들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깡패짓을 하는지, 군사적 침략을 해왔는지에 대해 다시금 반성하며 생각해보게 되더라. 내 기억으로 어릴때 약간 당혹스러웠던 '그라나다 침공', 그때부터 손을 꼽더라도 전세계 어느나라보다 군사적 침략을 많이 한 나라가 미국인데, 뭐 이데올로기적으로 물이 많이 들었는지... 다 은근히 '국제 경찰 역할'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침략은 그냥 침략이었건만 말이다.
대담자가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촘스키는 말한다. "제3세계에서 강연을 할 때에는 그런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미국에서만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그래, 우리가 성찰을 많이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주변에서 찾아진다. 대단한 걸 하지 않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자. ...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역시 대담자가 그람시를 언급하며 '현실세계의 대안적 해석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고도 화급한 과제이다'라고 했을때, 그의 명쾌한 해석은 '어쨌건 위의 말을 바꿔쓰면 진실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래, 앞에서처럼 정권이 체제가 어찌어찌해서 이런 부작용을 감안하고서 이런 정책을 편다... 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그냥 그런 정책을 이런 나쁜 효과가 있다~ 라고 말을 많이 하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런 정책을 후퇴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다. ... 프로파간다와 이데올로기, 프레임의 힘이 아무리 크더라도, 진실은 진실이라는 확신을 가지는 것, 그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고, 어쩌면 촘스키같은 자기 전공이 아닌 다양한 사회문제에 발언을 하는 이가 가지는 힘이 아닐까 싶다. 다수의 지식인들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현학적으로 글을 쓰는게 문제라고 본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자기합리화적인 해석의 예로 촘스키는 이런 사례를 든다. "유엔헌장을 엄밀하게 해석하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유엔헌장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 ..... 먼저 자구에 충실한 해석에 따르면 국제 문제에서 무력의 사용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범죄이면 이라크 침공은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진부하고 흥미도 떨어진다. 반면에 유엔헌장을 공동체적 입장의 해석에 따르면 어떤 행위가 국가 공동체의 의지를 실행한 경우라면 합법적이다. 그런데 안전보장이사회회는 국가 공동체의 의지를 실행할 무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무력을 보유한 국가들에게 그 역할을 암묵적으로 위임한 것이라 해석하여야 한다." ... 이 무슨 개떡같고도 무서운 해석이냐? 이게 미국 중심의 현재 전세계 제국의 논리란 거다. 그리고 그만큼 미국의 독점적인 군사적 지위, 주먹의 힘은 현실이고. 그걸 변호/미화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지식인들이 달라붙어 있고. ... 그냥 하던대로,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해서 양민을 학살했다~ 라고 이야기를 더 해야 한다. 그래, 그래야 한다.
또 한가지 참신한 해석... "나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패전했다는 데 동의하지 않습는 극소수 사람 중 한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 1940년대 말부터 케네디가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할 대까지는 베트남이 독립하면 타일랜드와 인도네시아, 즉 베트남과는 달리 주요한 자원을 가진 인접 국가들에 성공적인 모델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미국이 주된 참공 대상으로 삼았던 남베트남은 거의 폐허로 변해 있어 베트남이 다른 나라의 모델로 여겨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참.. 무섭고도 답답한 해석이다. 그냥, 반항하면 재미없다는 주먹세계의 논리를 관철하기 위해 적당히 두들겼고, 그 큰형님의 의중은 행동대장 몇명 희생한 것으로 충분히 관철되었다는 이야기다. 지금 태국에서의 문제는 어떤한 지형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심히 의심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언어학자라는 촘스키, 그가 학문을 해석하는 것은 아래와 같더라. "학문의 상당 부분이 사무적 작업(clerical work)이란 사실은 숨겨진 비밀입니다. 실제로 학문의 많은 부분이 세세한 면을 따지는 클에박힌 작업입니다. 그렇다고 학문이 쉽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엇을 찾고 기대하는지 등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엄청난 지적 도전거리는 아닙니다. 물론 진지한 지적 탐구를 요구하는 문젯거리도 있지만, 대체로는 인간사와 직결된 문젯거리는 아닙니다." 자기 일에 대해 이처럼 가볍고도 겸손하게 이야기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사회 문제에 대해 진실을 소리높여 외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부럽기도하고, 자책이 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대담집이란 특성이 있어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글들의 분위기는... '저 대가님의 말씀은 이러하시니, 우리는 그 이야기에 경청해야 할 것이니. 저분은 저처럼 위대하심이라...'는 아부성 분위기가 좀 느껴졌다. 쉽게 쓰여서 그런것일 수도 있고, 촘스키의 분위기 일 수도 있고, 어쨌건... 약간은 부정적으로 권위를 약간은 과하게 인정하는 글들이었다. 어쩜, 문제점이 왜 문제점인지 철학적, 사회과학적으로 세세히 분석하는 식이 접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무적 작업에서 세련됨을 보여서 권위를 인정받고자 하는 식의 엄숙주의에서 벗어난 이미 대가인 사람과의 대담이어서 일수도 있겠지만, 그냥 미국사회가 그만큼 유명한 인사들에 대해 접고 들어가는 풍토가 있어서 일 수도 있단 생각도 들었다. 약간 구린 부분들 이었다 하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