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좌제때문에 법조인이 못된 작가의 개인사는 지극히 가슴 아프지만
그 덕에(?!) 대한민국은 영민한 작가를(?!) 얻게 되었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이문열'이라는 이름 석자만으로도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지만 그 만큼 작가에게로 쏠리는 관심과 기대가 크다는 증거일 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그의 대표작이면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엄석대'로 상징되는 절대 권력과 그 권력을 둘러싸고 있는 은밀한 비밀이야기는 이승만 독재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를 담고 있다.
돈과 힘을 가진 존재가 영웅이 되는 씁쓸한 현실은 '일그러진 영웅'을 낳게 되고
영웅을 따르는 맹목적인 무리들은 그 뒷배에 빌붙어 이득을 취한다.
석대와 아이들의 괴롭힘에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어야 했던 병태의 절망감을 어떻게 표현 할 수 있을까?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던 석대의 권력이 무너지던 순간 돌변하던 아이들의 행동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큰 아이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고 석대도 나쁘지만 석대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도록 묵인하고 방기한 아이들이 더 나쁘다고 했다.
예리한 지적에 허를 찔린듯한 이 느낌은???
올 해 6학년이 된 아이가 이문열의 두 번째 작품으로 선택한 책은 '휴이넘 논술'이라는 명패를 달고 있는 <25년 전쟁사>.
책이 도착하자마자 시험 기간이라는 것도 잊은 채 책을 잡은 아이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우리 나라가 일제 강점기 하에 있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일본을 물리쳤다는 전제 하에 시작된 책은
25년 간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낯선 군사 용어와 옛 어투가 힘들 법도 한데 속도를 부친 아이는 고개 조차 들지 않는다.)
일본과의 전투에서 패한 조선군이 북쪽 '장백산'과 남쪽 '이어도'에 터를 잡고
이 땅에서 조선 주둔의 관동군을 내쫒기 위한 숨막히는 전쟁을 치른다.
청산리 백운평으로 드는 골짜기를 천혜의 지형으로 삼아 일당백으로 싸운 북로군의 청산리 대첩과
물목이 좁은 다도해로 야먀모토 함대를 유인해 격침시키는 남로군의 활약은 재미를 넘어서 통쾌하기까지 하다.
(이순신 장군의 후예가 어디 갈까? ^^)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치고 빠지며 자취를 감추는 유격대들의 모습에 어찌 열광하지 않을수 있단 말인가!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 대첩을 본보기 삼아 청천강의 물을 가두었다가
둑를 터뜨려 우키다 병단을 수장시켜버린 청천강 전투는
무기도 없고 화력에서도 딸리지만 우리 독립군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만주 사변과 중일 전쟁을 거쳐 전 세계의 패권을 잡으려는 일본의 야욕이 커질수록
독립군들의 국토 수복에 대한 조바심과 안타까움도 커져만 간다.
본토 수복을 두고 당장 싸워야 한다는 주전파와 때를 기다리자는 신중파의 의견이 팽팽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주전파!!! 아들도 주전파!!!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을 빌리지 않아도 나는 간디처럼 무저항 비폭력 주의자는 애시당초 될 수가 없다.
책이 끝나고 부록으로 마련된 '논술 워크북의 논술 4단계'인 <주장과 의견을 말해요>라는 꼭지에는
간디를 예로 들며 '폭력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을 건낸다.
침략에 대응하는 서로 다른 방법에 관해 아이들은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할까?
상대가 총칼로 죽이자고 나오는 데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만 있으라고?
내 형제가, 내 부모가 내 눈 앞에서 아무 잘못도 없이 죽어가는데도?
엄마의 영향 탓인지(?!) 아이도 간디처럼 물레만 돌리고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아들을 독립군으로 내보내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 천만다행이지만
기꺼이 귀한 목숨을 나라에 바친 분들께 어찌 감사하고 송구스럽지 않을까?
더불어 독립 운동은 못할 지언정 적어도 나라와 민족을 배반하는 친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죽었다 깨도 변함이 없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단서를 부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하지만 역사가 아닌 문학이라는 세계에서는 능히 가능한 일이기에
작가는 가장 고쳐 쓰고 싶은 역사를 불러내어 <25년 전쟁사>를 탄생시켰다.
목숨을 걸고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원자 폭탄 한 방에 백기를 들어버린 일본때문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허리가 동강나 버린 우리네 현실이 안타깝다 못해 속이 쓰리다.
그 때문에 벌어진 한국전쟁은 또 어쩌며 전쟁의 최대 수혜자가 된 일본의 쾌재는 또 어떡하랴...
'제 밥그릇은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깨닫는 책이다.
<휴이넘 논술 시리즈>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쉽게 접근하기 힘들었던 한국 문학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려운 낱말에 대한 친절한 주석과 작가가 직접 등장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문열 작가의 캐리커쳐와 신나미, 나감초 같은 또래 캐릭터들의 말과 표정도 눈여겨 볼 것!)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매번 느끼지만 책은 읽는 것보다 읽은 후 생각하는 시간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내 속으로 들어오는 것!
내 속에서 익어가며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생각의 힘이 아닐까?
<휴이넘 논술 시리즈>는 그 역할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책이다.
'깊어지는 논술'이라는 꼭지가 주는 신뢰감이 그렇듯이 책을 읽고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아이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가이드 북'이 있으니 부모님이 먼저 읽고 아이와 생각을 나누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듯^^)
" 엄마, 휴이넘 논술 시리즈 다 사줄꺼지요? "
깊어지고 넓어지는 데 그깟 지름신이 문제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