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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추석과 설날같은 명절에 우리는 고향을 찾는다. 눈이 내려 열시간이 걸려도 우리는 기여코 가고 만다. 물폭탄을 맞아도, 도로가 끊겨도 우리의 발길을 막지 못한다. 물론 나도 여기에 속하는 사람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는 때가 되면 고향을 찾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
부모와 친지를 만나는 기쁨이 있다. 차례를 지내며 조상의 음덕을 바라는 측면도 있겠다. 가족간의 정을 돈독히 하고, 오랜 친구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하지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에는 일상적 감정의 카타르시스나 고양보다는 하나의 의무감에서 습관적으로 방문하고 있지 않나 하는 반성을 자주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추석에 책을 통해 만난 옛사람이 황진이이다. 왜 우리는 송도 명기 황진이를 계속해서 사랑하고 찾는 것일까? 황진이의 어떤 모습을 우리가 좋아하기 때문일까? 그녀가 삶에서 진정 바라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부모와 가족과 이웃에 대해 가졌던 애증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질문들이 나를 고전의 세계로 이끌어갔다.
이 책은 황진이의 삶에 촛점을 맞춘 소설이다. 주인공인 황진이와 주변인물의 성격과 심리묘사가 치밀하고 절실하게 나타나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서화담이나 벽계수와의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지만 전체 흐름을 주도하기보다는 한 부분에 불과하다. 진실하고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저자의 주된 집필의도가 아니였을까 생각해 본다.
황진이가 우리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근원적 이유는 황진이가 지니고 있는 존재적 모순성에 달려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양반인 아버지와 종의 신분인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태생적 모순, 육감적 색향과 함께 시, 서화등 지성을 겸비한 복합적 존재, 단순한 생김새가 아니라 인격과 지성측면에서의 천하절색... 함부로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범접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을 갖고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양반과 상놈, 체제와 반체제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북한 사람이라는 점도 이 책이 관심을 끄는 측면이다. 사실과 야사, 고전적 속담과 살아있는 비유, 민중적 비속어와 품위 있는 시적표현이 구수한 북한 사투리로 멋들어지게 버무려져 있다.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과 걸죽한 입답이 독자들이 한눈파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멋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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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익히 들었던 황진이가 아닌 문학 작품으로서의 황진이를 만나게 되었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책이라 관심을 가지게 되어 구입하게 되었다. 작가가 임꺽정을 지은 홍명희의 손자 홍석중이며 북한 문학 연구가에 의해 한국문단에 소개 되어 정식 수입한 작품이다. 기존의 북한 소설은 보통 당과 주석을 찬양하거나 노동을 찬양하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비해 문학적 가치가 아주 뛰어난 이 책은 남한에서 영화로도 만들어 질 정도로 잘 알려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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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 장윤현 감독 / 송혜교, 유지태 주연 / 드라마 / 한국 / 2007년 6월 개봉>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곧 후대에까지 길이 이름이 남을 수 있도록 살라는 뜻인데,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대를 이어 회자되는 여인 '황진이'의 경우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다. 벌써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텔레비전과 영화를 통해 그녀의 삶이 드라마로 다루어졌고, 여전히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르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어떤 점이 이토록 후대의 사람들에게도 어필하는 것일까? 여러 면이 있겠지만, 우선 드라마틱한 그녀의 삶 자체가 관심을 끄는 것 같다. 양반가의 규수로 자랐지만 천한 신분임이 밝혀지는 점에서는 그 때나 지금이나 권력자에게 갖고 있는 반감을 투사할 수 있게 해준다. 한 편으로는 안타까우면서도 고소한 마음이 들게 해준다고 할까?
두 번째로는 '세상이 우습다', '세상을 발 아래에 두겠다'는 말을 하며 스스로 기생의 길을 선택하는 주체성이 아닐까 싶다. 특히 이 부분은 현대 여성들에게서도 엿보이는 당당함으로 표현될 수 있겠는데, 첩실로 들어가 보다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었음에도 자율의지에 따라 어려운 선택을 하고, 그 안에서 결국 최고가 되었다는 점이 그녀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세 번째로는 그녀의 카리스마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굴이 뛰어나고, 실력도 갖추었다면 상당히 인정해 주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은 16세기에 살았던 그녀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당당히 최고가 될 정도의 미모, 시서화에 능해 양반들과 겨루어도 전혀 굴하지 않았던 재능을 갖춘 그녀는 시기심과 동시에 부러움도 갖게 만든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황진이'라는 한 여인, 송도 최고의 기생인 '명월'이를 21세기에서도 만나고 있는데, 드라마에서는 예인으로서의 모습을 부각시켰기 때문에 '화려함'이 가장 돋보였다면, 영화에서는 한 여인으로서의 모습을 부각시켰기에 '차분함'과 '애틋함'이 강조된 듯 했다.
그래서인지 단적으로 보여지는 세트나 의상, 소품 등에서도 차이가 났는데, 드라마가 붉은색 위주의 화려한 색감을 자랑했다면, 영화는 푸른색과 검은색을 주로 사용해 여인 황진이의 지조와 절개, 기품 등을 보여준 것 같다. 특히 황진이가 기생이 된 후 머물던 처소의 검은 색감들, 개똥이를 구하고자 사또와 합방을 할 때 입었던 검은색 속치마, 놈이의 유골을 들고 금강산에 오를 때 둘렀던 검은색 목도리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 밖에도 이 영화에서는 주조연 배우를 제외하고는 쉽게 이름을 떠올릴 수 없는 배우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어쩌면 이런 배역 설정도 여인 '황진이'와 그녀의 남자 '놈이'를 더욱 부각시키고자 한 점이 아닐까 싶었다. 황진이를 둘러 싼 많은 색들이 검정이어서 상대적으로 그녀의 얼굴이 부각되어 보인 것처럼 말이다.
영화가 개봉 되기 전, 사람들의 관심사 중 또 한 가지는 드라마에서 황진이를 연기했던 '하지원'이라는 배우와, 영화에서 '황진이'를 연기한 '송혜교' 가운데 누가 더 잘 어울리는가에 대한 것이었는데, 두 가지 모두를 재미있게 본 나로서는 그녀들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예인의 모습일 때는 '하지원' 씨가, 여인의 모습일 때는 '송혜교' 씨가 더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북한 작가 홍석중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 실제 북한의 금강산에 올라 촬영과 시사회를 했다는 점, 신영복 교수가 제목 글씨를 써주었다는 점 등 이외에도 여러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데, 일단 '황진이'라는 16세기의 여인을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화면에 담긴 곳곳의 아름다운 모습들 역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역동적인 이야기 전개와 색다른 볼거리를 기대하신다면 무료한 시간을 보내실 수도 있겠다. 그저 한 여인을, 조금은 특별하게 산 여인을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다.
* 현재 극장에서 절찬리에 상영 중인지라 홍석중 원작의 도서로 상품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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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의 작가 홍명희의 손자로 잘 알려진 북한작가 홍석중이 쓴 <황진이(黃眞伊)>(대훈서적)를 읽었다.
'황진이'는 아버지 황진사가 여종의 몸에서 낳은 딸이지만, 그 사실을 모른 채 양반댁 규수로 성장한다.
윤승지댁과 혼사가 오가던 중'황진이'를 짝사랑하던 머슴 '놈이'의 발설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며 파혼을 당하게 되고...
하루아침에 인생역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 ‘진이’는 '놈이'에게 몸을 바치며, 허위와 위선으로 포장되었던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송도의 객주가인 청교방의 기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계급(신분)타파를 통해 ‘진이’와의 사랑을 꿈꾸던 ‘놈이’는 죄의식과 ‘진이’의 마음을 얻지 못한 괴로움으로 화적이 되지만, 뛰어난 미색과 총명으로 양반 사대부의 위선을 희롱하던 황진이는 신분사회에 대한 불신과 인간 욕망과 사랑에 대해 냉소적이다.
그러나 조금씩 '놈이'에 대한 사랑에 눈뜨게 되면서 여전히 계급의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고, 분노로 가득찼던 자신을 발견하면서 자신의 욕망과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깨닫게 된다.
그러나 송도 사또 김희열의 계략으로 '놈이'는 효수형에 처해지고, 두 사람의 사랑은 죽음 앞에서 마지막 불꽃을 피운다.
황진이는 '놈이'의 시신을 묻어준 후 소리꾼으로 전국을 떠돌다가 생을 마감한다.
이상의 내용이 간략하게 살펴본 작품의 줄거리이다.
북한에서 출간된 원본에 충실하면서도 제본 및 편집의 새로운 옷을 입은 이 책은 외래어와 한자어로 얼룩진 언어생활에 익숙한 나로서는 단어 하나 하나의 뜻풀이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어휘들이 참 많았다. (책 뒷부분에 용어 해설이 붙어 있을 정도!)
그러나 감칠맛나는 송도(지금의 개성?) 사투리와 적절한 속담과 비속어들, 그리고 절제되고 담백한 시조의 어울림은 거대 서사와 작은 에피소드들을 빈틈없이 연결하는 작가의 탁월한 구성 덕분이겠지만,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의 주체인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마음에 하나 하나 깊이 스며들기에 충분했다.
한번 잡으면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막힘없이 흘러간다.
며칠동안 정신없이 빠져있던 이 책을 덮으며 아쉬운 마음에 영화 같은 이 책을 원작으로 제작했다던, 송혜교 주연의 영화 <황진이>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한 일 하나!
원작과 이미 다른 형태로 태어난 또다른 작품을 상호비교하지 말 것!!!
영화도 나름 괜찮았다.
다만 원작에 뒤쳐질 뿐이지만...
아마 글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원작을 아깝게 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평가한다면 꽤 좋은 점수라고 생각한다. 쩝!
행간에 녹아있는 주인공의 마음을 영화 속에서 녹여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구나 싶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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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비춘 글맛인데도 진한 커피처럼 솔직 담백하다. 북한의 글맛이 제법인데다가 그녀가 왜 이리 부럽기만 한지 이유를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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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이젠 그 이름만으로 내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요전번 읽은 그건 사랑이었네,,, 속 한비야의 추천도서 중 하나였다.
내가 너무너 좋아하는 사람이 추천해준 책이기에 꼭 한번 읽어봐야지... 하고 읽고싶은 책 목록 중 하나로 저장해 둔... 책이었다.
그 많은 책들중 정말 그냥.... 마음이 닿았다.
그냥.... 끌렸다 ㅎ
황진이.... 최근 몇년사이에 영화로 드라마로 많이 회자되어 다시 살아난 인물이다.
하지만 난 그 땐 황진이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막 대학생활을 시작해 바쁘기도 하였구... 그저,,, 뭐 기생황진이... 시조 잘짓는... 예쁘고 다방면에 재주있는 여자...
이런 별 감흥없는 생각으로 인해 그녀를 관심있게 생각지 않았다.
그렇게 몇년이 흐른 후...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된 황진이,,,, 그녀는 상상속 미인은 아니였다. 얼굴만 예쁘고 기예에만 남다른 그런 여인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황진이에 대한 책은 이 책 말고도 많다.
북한 작가가 쓴 황진이.
북한 소설 최초로 국내 문학상 수상.
만해문학상 수상.
등등.... 이 책을 쓴 북한 작가 홍석중과 이 책을 수식하는 화려한 수식어구들이 이 책에 대한 나에 이목을 더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난 솔직히 분권화된 책을 즐겨 보지 않는다.
너무 길어지면 집중도 안되고 뭔가에 빠지기도 금세 빠지지만 거기서 또 빠져나오기도 금세인지라....
책을 좋아하지만서도 장편으로 여러권 나오는 책은 쉽사리 손에 잡지 않는다.
아예 그런 책들을 안읽진 않지만 쉽게 손이 안간다 ㅎ
그래도.... 이 책은 너무 읽고 싶어 선택했다.
솔직히 내가 이 책을 잘 읽어나갈 수 있을까? 라는 반문도 해보았지만 어쩌겠는가... 그냥 이유없이 읽고싶은걸 ㅎ
그냥 , 정말 그냥 끌려서 본 책이었지만 단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만큼 훌륭한 친구를 만났다.
처음 읽어나갈 땐 다소 이해되지 않는 문구와 글들이 책속에 빠져들기에 힘든 요소로 작용해 아 이 두권을 언제 다읽지? 라고 생각했었다.
북한작가가 쓴 책이라 역시나 북한식 어휘로 쓰여져있기에 적잖이 쉽지 않은 첫 만남이었다.
하지만 글을 점점 읽어갈 수록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책 속에 자주 등장하는 닭알로 표현된 심리묘사는 오히려 친근하게까지 다가오기 시작했다. 닭알 ㅎ 솔직히 한국에선 닭알이라는 표현보다는 달걀 혹은 계란이란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해서 이 이름 부터가 재미났다.
닭알굴러가듯 ~ 삶은닭알같은~ 등등... 뭔가 닭알로 표현되는 심리묘사는 재밌기도 하고 신통방통하게도 어울리는 상황에 작가에 표현력에 다시한번 감동아닌 감동을 했다.
적절히 녹아드는 시대상황에 대한 비유와 묘사,,, 그리고 뭔가 시대상을 꿰뚫어보는 눈이 느껴졌다.
북한사람이 쓴 글이라 솔직히 뭔가 많이 억압되고 자유로운 표현을 하기 힘들거라 생각 되었는데.... 오히려 더 맵게 시대를 잘 꼬집어준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진이가 살던 그 때뿐아니라 지금도 그런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구절도 많았다.
이 책에 간간히 소개되는 시조,,,
시 에대해서 관심도 없고 이런 쪽 문학에 대해선 문외하고 그런 문학은 전문가들이나 접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이 책속 진이의 시들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도 떨리게도 만들어주었다.
시라는게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라는걸 알려줬다.
학교다닐때 어쩔 수없이 공부를 위해 하나하나 수학공식마냥 분석해가며 읽느랴 잘 알지 못하고 지나쳤떤 시에 맛(?)을 ㅋ 배운 것이다.
짧지만 굵게 강한 인상을 남겨준 황진이....
다 읽고난 후에도 묘한 감동을 안겨주는 동시에 많은 여운을 안겨준다...
그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게되었고, 북한 작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
| 올 겨울 나의 눈과 온 정신을 사로잡은 황진이^^ 북한 작가 홍석중 선생님의 작품이라는 막연한 서먹함과 궁금함이 처음 책을 보게 만들었는데 생각했던 이상으로 내게 재미와 감동을 준 작품이다^^ 그간 그저 기생일 뿐이라는 나의 생각에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스포일러를 싫어 하는 분들을 위해 굳이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일단 손에 쥐고 나면 눈을 뗄 수 없는 매력에 빠질테니까요~~ 올겨울 꼭 한번 읽어 볼 수작 이라 생각합니다^^ 북한 작품이라는 생소함이 다소 이질감으로 다가 올지 모르지만 읽고 나면 정말 감동의 물결이 파도 칠것입니다^^ 절대 후회 없는 선택이 되시길~~ |
| 드라마에서도 방영중인 황진이 ,, 요즘 황진이로 인한 열풍이 불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기도 한다 ㅎㅎ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한번쯤은 들어본 황진이의 관한 인생사가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아마도 황진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표본쯤이라고는 삼을 수 있겠다 .ㅎㅎ 사실 북한작가가 쓴 내용은 어떨까 하는 마음에 책장을 넘겼던거였지만 , 한번쯤 읽어볼만한 내용이였던것 같다 , 다들 읽어보시길 ~ ㅎ |
| 드라마 황진이로 인해 원작으로 읽어보고 싶었던 황진이.. 홍석중 황진이는 송혜교 주연 영화의 원작이라 하던데.. 드라마 열풍인지 황진이 책 종류도 엄청많았는데 북한작가의 느낌은 어떨까해서 대훈의 황진이를 선택했다.. 북한엽서 증정까지.. ^^;; 스토리가 이어지 는 가운데 중간중간에 황진이의 한시까지 볼수 있었다.. 상황상황에 맞는 시조는 이책을 읽는 또하나의 묘미였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책에 빠져들어 두권을 금방 읽어버렸다.. 생소한 북한의 언어를 생각하게끔 하는 좋은 케이스도 되었던것 같고.. 내가 황진이가 된것 인냥 시조에 빠져들어 책을 읽은후에도 시조만 몇번이고 다시 보았다.. 넘 좋았던 2권 103쪽 시조는 내 미니홈피의 메인에 적어 놓았을 정도이다.. 원작을 읽은후 넘 기대 되는 영화 황진이.. 과연 송혜교는 황진이의 일생을 어떻게 표현할것인가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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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했던 신상, 번잡스러웠던 업무로 피로했던 뇌에게 주는 9일간의 포상휴가. 첫날 아침, 산에 올라 나무그늘 밑 벤치에 앉아 피천득 선생의 『인연』을 읽었다. 휴가로구나. 완독 후 로마(『로마인 이야기』)로 돌아갈까 생각해보았지만, 휴가다. 접어두자, 소설을 읽자.
북한 작가 홍석중. 두음법칙과 사이시옷이 없는 대화, 띄어쓰기가 다른 문장, 아무렇지 않게 자리잡고 있는 초면의 단어들. 미처 다 번역되지 않은 외서를 읽는 듯, 고어로 쓰인 고전소설을 읽는 듯 낯설고 신선하다.
‘황진이’란 녀자가 궁금하였다. 출생과 사망 시기를 알 수 없는 사람. 조선 중종 때 잠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 황진黃眞이라는 본명, 명월明月이라는 기명을 가졌던 사람. 아름다운 미모, 뛰어난 가무歌舞, 섬세한 문학적 감성, 꼿꼿한 자존심. 황진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500년이 넘도록 살려내고 있는 그녀가 궁금하였다.
신분이 달랐다면, 남자였다면 더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을까. 그녀의 언급과 문장을 조금 더 많이, 오래 누릴 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 어쩔 수 없다.
“사람이 행동과 언사에 법도가 필요한 것은 그것으로써 그 사람의 마음을 보기 때문이라네. 그런데 만약 큰 도를 알지 못하면서 외면치레에만 힘을 쓴다면 그저 보통 정도에 머무를 것이 아니겠나? (…) 임금이 7언률 시를 칭찬하면 우르르 달려들어 7언률 시를 짓느라 정신이 빠지구 5언률 시를 좋아한다면 너두나두 기를 쓰고 5언률 시를 짓느라 정신이 빠지니 그런 시정배들을 두구 무슨 학문의 도를 론하겠는가.”
“하늘 중천 달 밝은 밤에 촉혼이 외로이 울어 슬픔은 은하에 잠기고 괴로움은 수풀에 서렸네
촉혼하, 내 사랑 네 알리로다 그 사랑 오자 곧 떠나가니 보아라, 무심한 저 바람도 송악산 숲속에 부니며 울어예네
아, 길이여! 님이 가실 길이여! 어쩔 수 없는 고별이라 버들아지를 꺾었지만 어즈버, 길섶 짙은 찬이슬에 그대 옷 젖을가 념려로세”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둘에 내여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얼운 님 오신 날 밤이어드란 구븨구븨 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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