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 거주지역 가자지구를 아시나요? 어린 아이들은 물론이고 성인들도 의외로 많은 수가 모르는 그곳은 나라 없는 설움 속에서 팔레스타인 국민들 중 일부가 사는 작은 지역입니다. 도시라고 부르기에도 조금 애매할 것 같네요. 이스라엘 속에 위치한 이 작은 가자 지구 속에서 유대인 속 팔레스타인들은 오늘도 절망과 분노를 배우고 있습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차이만큼이나 이들의 관계는 요원하기만 합니다. 한때 평화로운 공존을 꿈꾼 시기가 있었지만 결국 그 꿈이 무산된 지금 그들에게 남은 것은 서로에 대한 미움과 극단적 투쟁뿐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팔레스타인 국민들이 말이죠.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의 뉴스에서도 빈번하게 만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폭탄테러는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이들의 분쟁이 계속되어 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죠. 팔레스타인에서 폭탄테러를 하면 그 보복으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팔레스타인 거주민들을 보호하는 지역에 보복을 가하고요.
그런데 그 분쟁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분쟁은 어떻게 느껴지고 있을까요? 그들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잖아요. 자신의 근처에 항상 죽음의 위협과 미움이 함께 한다는 것을 아는 그 기분은 도대체 어떠할까요? 그 죽음이 정말 코 앞에 가다온다면요? 그럼 죽음의 공포에 지게 될까요?
이 이야기 속 탈은 바로 그 죽음이 코 앞에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영화 감독을 꿈꾸는 십대 소녀인 탈에게 자신의 동네에서 자신이 항상 다니던 길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는 큰 충격입니다. 이미 잦은 폭탄 테러로 인해 죽음에 무뎌지고 있었던 그녀지만 이번만은 다릅니다. 그리고 그 충격에 잠겨 있던 탈은 팔레스타인에 사는 십대 소녀와 펜팔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자지구에서 근무하는 오빠에게 부탁해서 바다에 편지가 든 유리병을 던지기로 하죠. 자신의 이메일을 함께 첨부해서요.
오빠에 의해 가자지구에 간 이 편지는 모래 사장에 묻혀 있다가 한 소년에 의해 발견됩니다. 잔뜩 비아냥 거리는 내용의 메일을 보낸 이 소년은 탈의 끊임없는 메일에 결국 답장을 하게 되고 드문드문 이들의 메일은 이어집니다. 정체가 드러난 탈과 정체를 숨긴 채 가자맨이라는 닉네임으로 편지를 쓰는 소년은 어느 순간 서로를 걱정하게 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로 발전합니다. 이 소년의 이름은 바로 나임입니다.
작가는 이 두 소년소녀를 통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증오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 증오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을 암시하는 작은 가능성을 심어 둡니다. 자연스럽게 총을 들고 폭탄테러를 통해 서로를 죽이려 하는, 서로를 미워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지만 미움은 미움을, 증오는 증오를 재탄생할 뿐이라는 것을 아는 제 3자의 눈으로 그린 이 이야기는 그들의 현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런 작은 희망이 꺼지지 않고 그 불씨가 점차 확대되길 바라게 만듭니다.
작가가 그려놓은 희망이 실제 현실에서는 더욱 실현되기 요원해 보이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이들의 삶에 평안이, 특히 팔레스타인들에게 행복이 찾아가길 조심스럽게 바래 봅니다.
덧붙임- 청소년 문학에 해당하는데 실제 십대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답니다. 내용이 아니라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
|
다른 이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애써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수고를 덜 수도 있을 테고, 일부러 다른 이의 마음에 상처 따위를 주기도 힘들 테고, 내 마음 역시 내 맘에 드는 이가 몰라주어 속상할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다른 이의 마음은커녕 내 마음을 나조차 모를 때도 있다. 그럴 땐 서로 이야기를 주거니받거니 하는 것만큼 좋을 것도 없다. 이렇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은 참 유용하다. 다른 이와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어렴풋하던 내 마음도 선명해지고, 몰라서 궁금하고 답답했던 다른 이의 마음도 어렵지 않게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로를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끼리 하는 이야기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깊고 깊이 마음 속에 간직해두었던 서로의 <나>를 발견해가면서 싹트는 <사랑의 씨앗>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런데도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꽃을 채 피우지도 못하고 종종 말다툼을 심하게 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안타깝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 그런 오해를 살 일도 없으련만. 좀 더 솔직해지고, 좀 더 진심을 이야기하면 그런 일도 없으련만은.
단단한 수박 겉껍질만 핥아보며 수박은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몹쓸 과일이라고 섣불리 단정짓는다. 조금만 더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잘 익은 수박이 스스로 쩍 갈라지듯 속내를 내비치고 그 속의 달콤한 맛을 맛볼 수도 있으련만은. 물론 아직 덜 영글어 풋풋한 맛일 수도 있으나 이 때에도 참고 기다려주면 어느새 발갛게 영글어서 달콤한 맛을 뽐낼덴테, 온누리엔 이렇게 수박은 딱딱하고 맛없는 <과일>이라고 단정짓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사실 수박은 <채소>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진심어린 이야기를 나누면 <이해> 못할 일도 없으려니와 <용서> 못할 일도 없을 것이다. 이 책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소년소녀가 서로의 마음을 솔직히 열고 이메일을 주고 받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팔 사이의 갈등의 골은 서로서로 전쟁과 테러를 주고받을 정도로 깊고도 깊지만, 깊고 깊은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고 또 꺼내면 언젠간 해결점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시작이 반이라고 한다. 시작은 서로의 아픈 상처를 헤집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아픔은 곧 잦아들고 그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향한 <아름다운 마음>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야기가 종종 격한 논쟁이 되어 더 깊은 상처를 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럴 때 일수록 더욱 <이야기꽃>이 필요하다. 헤어져 더이상 볼 일이 없으면 모를테지만 아웅다웅하면서도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이들에게서야 더 말할 필요도 없으렸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모인다>고 말하지만 이야기는 서로서로 <나눈다>고 말한다. 사람들도 모이고 이야기도 또 모이면 숨막혀 질식할 수도 있겠지만 모이고 나누니 서로가 서로를 품어주고 보듬어주는 것이지 않은가. 좋다는 얘기다. 얼마나 자연스럽고 편한 일인가 말이다. 단, 솔직해져야 한다. 조금이라도 잘난 체(포장하려) 하고 상처를 일삼는 혀(독설)를 내두른다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금세 험악해질 것이다.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고 서로 그 이야기를 경청해 마지않는다면 싸우고 다투는 일도 당연히 사라질 것이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꼬~옥 해야 할 일이다.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이라면 더욱더 말이다.
이제까지 내가 갖가지 이야기꽃을 좋아하는 까닭이었다. |
|
분쟁과 증오의 땅, 가자에 띄운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
개인적으로 유럽이나 미국인들이 쓴 이런 류의 소설이나 에세이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1세계 국가 국민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런 의미에서 인도적인 시선이라는 것이 은연중에 자기들의 가치관이나 관점을 강요하고 자기들의 잣대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럽 혹은 미국 중심, 백인 중심, 남성 중심의 관점이나 생각을 (은연중 혹은 노골적으로) 반영하고, '착한 것' 이상의 깊은 통찰이나 입체적 분석을 기대하기 힘들다. 무엇이 문제의 본질인지 파악하고, 균형 있게 문제를 분석하고, 평가하는데는 태생적으로 혹은 본질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스라엘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프랑스 여자 작가가 쓴 이 소설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유럽인과 백인의 시각도 최대한 배제한 채 서술한 비교적 균형적인 작품이다. 독자들이 섣불리 판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가자지구. 이곳은 모래와 올리브 나무 몇 그루, 이스라엘 점령자들이 살고 있는 으리으리한 정착민 지역, 따닥따닥 붙어 있는 수만 호의 회색 집들이 서로를 숨막히게 하는 곳이다. 정말로 여기선 곧 숨이 막히고 만다. 한마디로 쓰레기 매립장 같은 곳. 이런 가자에서 살아가는 15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꿈꾸고, 정상적인 삶을 꿈꾼다. (이스라엘 사람 한 명, 아니 더 낫게는 열 명을 죽여버리려고 꿈꾸지 않을 땐 말이다. 증오와 복수심은 비싸지도 않을 뿐 아니라 도처에 있다 보니 여기선 유일하게 넘쳐나는 품목이다. 절망과 더불어서 말이다.)(46쪽)
아! 얼마나 바보같은가. 이런 바보 같은 전쟁. 이스라엘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이고...... 그렇게 끝없이 반복되는. 그런데 도대체 누가 먼저 시작한 거지? 그들? 우리들? 너? 나? 기억하는 이가 없다. 망각, 건망증, 기억상실, 위선, 악의...... 어쨌든 간에 누가 더 많이 죽이는지, 누가 더 강한지 보여주기 위해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48-49쪽).
여기에 가자지구가 있어. 길이가 25킬로미터에 폭이 10킬로미터. 그 주위로 일곱 군데의 검문소가 있고,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어. 만일 여기나 다른 데, 아니 이스라엘 쪽의 달나라에서라도 약간만 심각한 일이 생기거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 쪽에서 뭔가 터지겠다 싶으면 확! 검문소들을 막아버리지. 수도꼭지처럼 말이야. 힘껏 돌려 꽉 잠가버려서 더 이상 물이 새지 않도록. 그러고 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자 자기들 집에서 안심하며 쉴 수 있게 되는 거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꽉 닫혀버린 피클 병 속에 밀폐된 오이 신세가 되는 것이고(62쪽).
쉽게 희망을 말하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다. 이 작품은 '오픈 엔디드'이다. 결말은 열려 있고, 정답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으로 주어진다. 작가는 희망이나 미래 모두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저절로 획득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우리의 미래가 어떠할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몫이다. 대책없는 낙관주의로 흐르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이스라엘 소녀 탈과 팔레스타인 청년 나임이 주고 받은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편지글 형식이 가질 수 있는 단점을 슬기롭게 잘 극복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대개 편지글의 형식으로 된 작품들은 두 명의 작중 인물이 서로 편지를 주고 받는데, 일반 소설 작품처럼 특정 사건이나 갈등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이야기가 단조롭고 밋밋하게 진행되기 쉽다. 그리고 화자의 목소리(혹은 필자의 문체)의 차이를 명확하게 두지 않으면 마치 한 사람의 글을 읽는 것 같아서 '편지글'이라는 형식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없을 뿐더러, 이야기가 지루해지기 쉽다. 따라서 작가의 노련함이 필요한 형식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작가의 경우는 차별되는 캐릭터로 두 사람의 문체를 확실히 구분하였고, 편지만으로 작품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편지와 일기, 두 사람이 채팅하는 상황까지 만들어 두 인물들의 내면 심리와 생각, 갈등과 고민들을 독자들이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형식과 내용 두 측면 모두 썩 괜찮은 작품이다.
더군다나 이런 식의 작품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도 잘 빠져나갔다. 작가의 의도를 작중 인물에 투영하다보니, 작품에서 설정한 인물들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지나치게 지적이고 조숙한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일쑤다. 그들은 작가의 생각을 대변하는데, 그러다 보면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교훈적이거나 계몽적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탈과 나임은 딱 그 또래의 소녀와 청년들만큼 진지하고 착하고 순수하고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고 솔직하고 까칠하고 냉소적이라는 것이 맘에 든다. 꿈을 꾸면서 좌절하고 절망하면서 희망한다. 두 주인공을 남녀로 상정할 때 빠지기 쉬운, '애정 모드' 같은 게 등장하지 않아 식상하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이 둘은 사적인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고 끊임없이 사색하고 고민하며 성장한다.
어른들도 그렇지만 청소년 시기의 대부분을 '어느 대학에 갈까'라는 고민에만 할애하는데, 적어도 나라간 분쟁과 세계 평화까지를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스케일을 가질 수 있다면, 스스로의 문제에만 함몰되지 않고 청소년기를 좀더 알차고, 스스로에게 유익하게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난 너의 삶은, 네가 어떻게 사는지는 상상할 수가 없어. 이건 정상이 아니잖아? 우리들은 전쟁에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우리 쪽에서 일으키는 테러와 우리 군인들이 너희 쪽에서 저지르는 군사작전으로 벌써 수년간 분리되어 있어. 어떨 땐 너희 쪽이 봉쇄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고,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들의 반이스라엘 저항운동-옮긴이)로 더욱 심하게 궁핍해지고 있다는 것도 알아. 그리고 우리 쪽에서 무고한 사망자가 생겼을 때 너희 쪽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춤을 추기고 한다는 것도. 난 그게 가슴 아파. 특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아기들, 어린이들, 여자들, 남자들, 노인들이 죽었는데 단지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기뻐할 수 있느냐는 거야. 그들은 그저 나쁜 순간에 나쁜 장소에 있었을 뿐인데 말이야(41-42쪽).
너와 나, 우리들은 운이 별로 없나 봐. 어제 장미나무 선생님이 또 한 번 반복해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세기인 20세기에 태어났으니 말이야. 두 번의 세계대전과 그 이후의 냉전시대+나날이 더 살벌해지는 무기들이 난무하는 여기저기의 분쟁들=수억 명의 사망. 장미나무 선생님은 거의 사디스트 같은 웃음을 띠면서 "수학적이지 않니?"라고 덧붙였어(43쪽).
그런데 우리는 이스라엘인이고 팔레스타인인이다. 땅이 불타고 있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젊은이들이 자기가 아주 빨리 늙는다고 느끼고, 수명대로 산다는 게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는 곳(88쪽).
Gazaman (전략) 너희들은 "안전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 평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평화가 우선이고 그런 다음에 안전은 자연히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사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수용소를 만들기 전에 우리는 '두 민족 사전'부터 만들어야 할 거야. 너희랑 우리가 쓰는 단어들에 동의하게 되는 사전 말이야(168쪽).
"그런 믿음, 이제 지겹지도 않으세요?"
관련 포스팅: 가자에 띄운 편지
[덧붙임] 굳이 '청소년문학'을 따로 상정하는 걸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범주에 속할 만한 좋은 책들을 국내에 소개한 출판사 중 하나가 '낭기열라'이다. 출판사명으로 검색해보니 지속적으로 신간들이 나오지 않는 것 같은데 이렇게 특화되고 전문화된 출판사들이 경쟁력을 가지고 좋은 양서들을 국내에 소개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좋겠다. |
|
책 자체는 우선 아주 얇다. 세월의 골과 서로의 증오를 화해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어떻게 저렇게 얇은 책에 다 담을 수 있었을까하는 경탄이 나올 정도로.
유대인이지만 프랑스 국적을 가진 작가는 여러 나라에 이 책을 냈는데 그 중 가장 먼저 번역된 곳이 이웃의 독일 그리고 우리나라였다.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두 나라다 분단의 세월을 견뎌왔기 때문에.. 의사소통의 단절과 세월의 골에 대해 다룬 이 책을 더욱 관심있게 읽을 것이라는 예상때문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내가 이 책을 접하게 된 건, 지난 여름 한창 아프카니스탄의 피랍사건을 지켜보면서 팔레스타인들의 분노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자지구란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시사적인 글들이나 정치적인 글들을 읽기에는 조금 염려스러웠다.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찾다가 이 책을 발견한 거다.
정말이지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스라엘 진영의 순수한 소녀 탈, 가자지구의 냉철한 청년 나임은 탈의 무모하지만 아름다운 도전으로 서로를 알아갈 기회를 갖게 된다. 가자지구 내의 권태롭고 절망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탈과 독자들은 그렇게 점점 알아가게 된다. 서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은 그리 순탄했던 것은 아니지만, 평화와 화해를 원하는 그 둘의 작은 목소리들은 읽고있는 독자들도 같은 염원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 두 청년과 같은 많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청년들이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일구워가길 기도해본다.
|
|
이스라엘 소녀와 팔레스타인 소년이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은 전세계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까?
원래는 자신의 땅이였던 곳에서 쫓겨 나 가자 지구라는 좁은 땅에서 매일매일 테러와 폭격에 시달리는 삶이 상상이나 되는가? 가자맨은 가자지구에서의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고 있는지 설명한다. 이들에게는 이스라엘 인들에 대한 분노만 쌓여가고 있다.
그렇다고 소설은 팔레스타인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다. 이스라엘 소녀의 순수한 시각에서 느끼는 테러와 전쟁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소녀으 아버지가 말했듯이 기독교인, 유대인, 이슬람인들은 모두 예루살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지금 그들은 예루살렘을 파괴해 가며 전쟁에 몰두해 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등에 업고 천년전에 약속된 땅을 찾겠노라는 억지를 쓰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입장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라빈 총리의 암살과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 공격을 겪어야 했고, 가자 지구의 폭격에서 자신의 친구가 다쳤을까봐 노심초사하는 이스라엘의 작은 소녀의 삶에는 공감이 간다.
이스라엘이 가해자의 입장이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전부 부정하고 비난할 수는 없지 않을까? 복잡한 문제다. 두 진영에서 두 아이가 우정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만 나눌 때는 이렇게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그 안의 한 사람, 한 사람과 교유하고 사랑하게 될 때, 적과 아군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해 지지 않는다.
소설은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황석영이 북한을 방문한 후 쓴 칼럼 제목이 '그 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네'였다고 한다. '가자 지구,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이스라엘 소녀는 인식하게 된 것이다. 팔레스타인 소년도 이스라엘에 친구가 있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비록 그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이지만, 그들이 우정은 순수하다.
이와 같이 소설은 분쟁에 대해 접근하는 평화적이고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이 어떻게든 해결이 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래 본다. |
|
국제 뉴스에서 흔히 보는 갈등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다. 테러, 전쟁, 민간인 피해 등 안타까운 장면을 많이 접했지만 부끄럽게도 큰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 국제적으로 큰 문제인 만큼 제대로 알아보고자 생각은 해왔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하였다. 대충 그 겉만 보았는데, 표면적인 생각은 나에겐 이스라엘이 더 악당이었다. 유대인들이 나치의 학살의 역사를 겪은 민족이지만 지금은 그 한을 팔레스타인에게 푸는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미국 사회에서 유대인의 인구도 많고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그 힘을 원천으로 이스라엘이 만행을 저지르는게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감정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크게 생각을 안해서 몰랐던 것이지, 우리나라와 북한이 서로를 주적으로 여기고 대립하는 것 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 것이다. 우리는 그나마 현재는 휴전 중이지만, 이-팔 갈등은 굵직굵직한 1,2차대전과 베트남 전쟁이 끝난 21세기 현대사회에서 너무나 잔인하게 현재 진행중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설속의 주인공 탈과 나임인 이스라엘 소녀와 팔레스타인 소년의 편지 내용을 통해 그 쪽의 분위기를 알 수 있었고 평화를 바라는 순수한 아이의 시각으로 들어가 극심한 지옥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탈이 편지를 쓸 때는 탈이 되었고 나임이 답장을 할 때는 나임이 되어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느껴보았다. 날카로운 상황분석과 어느 한 나라를 비난하는게 아닌 중립적 관점에서의 비판적 통찰, 그 안에서 평화를 강구하는 순수한 마음에 푹 빠져들어 책을 읽다보니, 200여 페이지 밖에 안되고, 큰 글씨로 씌어진, 청소년용으로 적합해 보이는 책의 구성으로, 집중해서 3~4시간이면 충분히 완독할 만한 양의 소설에서, 탈과 나임 각자에게 너무 감정이입 되어 마치 실화인듯한 감동과 울컥함을 느끼는 신기한 경험을 하였다. 진실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디까지가 무엇이 진짜 진실인지는 모순적인 종교주의와 정치적 그늘 밑에서는 아무도 모른다. 모두 다 저마다의 진실에서 살고 있을 뿐이다. 확실한 것은, 평화는 진실을 가릴 필요 없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
|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왜 그 같은 일이 벌어졌는지, 왜 그들은 평화적 해결을 시도하지 않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그저 학원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에게, 삶이 무료해서 우울증에 빠지는 어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는 한다. '남녀가 모두 군대에 가야 하고, 당장 내 팔다리가 오늘 내일 상대의 폭탄테러에 떨어져 나갈 위험이 없는 데 뭐가문제야.'하고 말이다. 지나치게 비약적이어도 그곳은 그토록 위험천만한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스라엘 소녀 탈이 가자지역에서 군복무중인 오빠 에탄에게 '편지가 담긴 병'을 바다에 띄어달라고 부탁하면서 시작된다. 탈이 편지를 띄울 계기가 된 사건역시 바로 주변, 아침이나 저녁에 흔하게 친구들과 혹은 아빠와 함께 들렸던 카페에서 자살테러가 일어난 충격에 의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처럼 내 나라, 내 민족에 이어 '내 가족', '나 자신'에게 문제가 일어날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모든 도구를 통해 방어태세를 갖춘다. 탈의 아버지 역시 딸의 행동을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오빠 에탄 덕(?)분에 편지가 담긴 병은 자신과 동갑인 '나임'에게 전해진다. 둘의 편지는 이메일을 통해 왕래하게 되는데 처음 나임은 팔레스타인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탈에게 조롱과 비난섞인 그러면서도 탈에 대한 호감도 함께 띄운다. 양쪽에서 테러와 보복테러가 일어나면서 서로에게 '생존'이란 것이 중요해짐을,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도 아닌 '탈' 과 '나임'으로서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다. 그것은 '팔레스타인 민족'으로의 삶만 강조하던 나임에게는 대단히 큰 변화이다. 작가 발레리 제나티는 그처럼 존재에 대한 중요성이 '종교', '인종'등의 가치판단보다 우선시 될 경우 '인간의 존엄성'이 유지될 수 있을거라는 작은 희망을 안겨준다. 저자가 처음부터 우리에게 원한 것은 분쟁의 해결을 위한 투쟁이나 사회참여라기 보다는 그들이 하나의 존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고, 그로인한 인간적인 삶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을 탈이 나임에게 띄운 편지처럼 불특정 독자인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탈과 나임은 서로에게 가진 호감을 인정하고 뼈와살을 가진 상태로의 만남을 기약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 나임은 기한을 정해둔 체로 그녀에게 마지막을 고한다. 독자는 나임의 정한 그 기한내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사라지길 함께 염원하게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이 발표된 후 4년이 지난 지금도 뉴스에서는 평화적 해결이나 체결이라는 기사는 만날 수 없다. 또 어디선가 자살테러가 발생되고 그로인해 또 소중한 '존재'가 죽어가고 있다. 작가 발레리가 바라는 세상, 탈과 나임이 원하는 그저 '나'와 '너'로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세상이 오기에는 역사적인 우월성이 더 크다고 느껴지는 일부 지도권층에 힘이 더 강한 까닭인것이다. 탈의 친구말처럼 역사는 차라리 배우지 않는 편이 그 두민족에게는 더 나을지도 모를일이다.
|
|
가자에 띄운 GAZA 편지
- 언젠가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날이 오기를 -
![]()
‘나ㆍ너ㆍ그’ 하는 식의 단수는 존재하지도 않고, 그냥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는 복수만 있는 거지. 불쌍한 팔레스타인 사람들, 아니면 나쁜 팔레스타인 사람들 하는 식으로 경우에 따라서 바뀌기만 할 뿐 바로 그 복수만 늘 존재하는 거지. 우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 본문 72 쪽 나임의 편지 -
십 대 아이들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고 비극만을 반복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열 일곱 살의 소녀 '탈'은 집 근처 늘 가던 카페에서 테러가 발생하고 곧 결혼할 신부가 죽음에 이르는 모습과 여러 사람이 사망하거나 다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감정을 쓴 편지를 유리병에 넣어 군인인 오빠에게 준다. 군복무중인 오빠는 동생의 부탁으로 자신이 복부 중인 가자 지구 바닷가에 그 유리병을 묻게 되고, 어느 날 분쟁 상대인 팔레스타인의 이십 세 청년 '나임'은 탈의 유리병을 발견한다.
유리병 속에는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에 대한 내용과 함께 탈의 메일 주소가 적혀있었고, 드디어 서로 대립하는 상태인 두 젊은이의 메일이 오고 간다. 두 지역에서 매일 상대방에 의해 저질러지는 테러와 공격등을 얘기하면서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둘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면서 우정을 쌓아간다. 둘 사이의 편지를 읽으면서 평화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탈과 나임은 평범한 삶을 꿈꾸는 착한 사람들이며, 또 따로 따로 한 사람씩을 놓고 보면 모두 착한 마음을 갖고 평화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중학생 딸아이 학교 추천도서이자, 도서관에서 배우는 '1318독서토론'의 책이기도 하고, 부산 청소년 독서모임인 '인디고 서원'아이들이 펴낸 <인디고 서원에서 행복한 책읽기>라는 책목록에 소개되는 책으로 벼르다가 읽은 책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다루고 있는 내용인 <가자에 띄룬 GAZA 편지> 는 작가가 2003년 9월 9일 실제로 일어났던 테러를 목격하면서 그것을 계기로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서로를 승인한 지 10주년이 되는 날 한 카페에서 테러가 일어나 여러 명이 다치고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유대인으로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실제 스물 한 살까지 이스라엘에서 살았던 저자는 '한국의 독자들에게'라는 머리글 에서 '이 책은 하나의 유리병이 되었습니다. 모험소설에서 바다에 던져지는 유리병처럼,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바라면서요.' 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유리병 속에 담겼던 탈의 편지가 내게 왔고, 나도 드디어 탈과 나임이라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슴을 아프게 하면서서,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면서, 그 아이들로 인해 새로운 희망을 꿈꾸면서.
'하지만 그만 멈춰야 하잖아! 우리 모두가 미궁 속에 빠져 있는데 아무도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고, 모두들 자유로운 공기를 맛보기 위해 오히려 마구 화를 내면서 아예 모든 걸 부수고 있는 것만 같아.' -본문 100쪽 탈의 편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것들, 이를테면 우리의 얼굴, 출생지, 부모를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는 걸 너도 잘 알지 않냐고. 그냥 우리가 생긴 대로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과 더불어 스스로 해결하며 나아가야 하는 거라고...' -본문 167 쪽-
'언젠가 사람들은 폭력 속에선 승자가 있을 수 없으며, 전쟁에선 모두가 패자일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될 테지.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라는 걸. ' -본문 199 쪽 -
![]() |
|
테러는 중동 어느 지역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했다. 뉴스에 흔하게 나오는 산불도 직접 본 적이 없으니 폭탄 테러는 그냥 영화 속 한 장면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가자라는 곳이 어딘지도, 테러의 괴로움도 몰랐던 내가 그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보여주는 편지를 읽게 되었다.
어둡고 우울하고 두려운 나날들이다. 다시 공포가 찾아왔다. -p.11
열일곱 소녀 탈은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거의 매일 테러가 일어나는 곳에서 살고 있지만 훌륭한 부모님과 다정한 오빠와 함께 살아 가는 밝은 여학생.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던 어느 날 탈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카페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결혼을 앞두고 있던 신부가 그 곳에서 죽었다는 것을 듣는다. 탈은 그 때부터 굉장히 힘들고 괴로웠으며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지에 대해서 의문 또 의문 뿐이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수업시간에 떠오른 생각은 자신의 이야기들을 편지로 적어서 다른 곳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는 것. 그래서 부모님이 아끼던 병에 편지를 담아 가자로 가는 오빠에게 그 곳 앞바다에 던져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리고 탈에게 온 한 통의 메일, 가자맨이라는 아이디의 가자에 사는 나임이 보낸 것이었다. 나임은 자신이 사는 가자지구를 남자는 없고 다른 도시보다 뒤떨어지고 고립된 촌구석이라고 보는 걸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아주 건방지게 깔보는 듯한 말투로 탈에게 답장을 하지만 탈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메일을 아주 기쁘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임은 이스라엘과는 적이라고 볼 수 있는 가자지구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탈의 이런 대우가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고 그녀처럼 다가가는 게 쉽지 않고 탈에게 메일을 쓰면서 반역자로 몰릴까봐 두려워한다.사이버 상의 인연일 뿐이라고 생각하던 나임은 테러의 위험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생각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주게 되고 점점 탈의 메일을 기다리게 된다.
살아있어줘. 무사해줘. 네 모니터 앞으로 와줘. -p.128
나임의 애절한 부탁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듯 하던 그 메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했던 탈에게 쓰던 메일도 이제는 진심이 담기게 되고 뉴스에 이스라엘이 테러가 일어났다고 하면 걱정을 하면서 메일을 보낸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고 너만 무사하면 된다는 생각이 왠지 귀여웠다. 탈과 나임은 그 아픔과 두려움, 답답함을 알기 때문에 서로를 더 걱정하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 기분과 상황을 몰랐더라면 객관적으로 힘내라는 격식 갖춘 인사말 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탈의 어느 메일 속 이야기처럼 그들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이 아닌 영국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 있었더라면 이런 마음이 담긴 메일을 주고 받지 못했을 것이고 병은 발견하자마자 어느 쓰레기통에 박혀 버렸을 것 같다. 자신을 위해 주는 가족이 있지만 테러라는 위협 속에서는 누구나 나약해지고 더 기대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다보니 탈과 나임은 메일로나마 만날 수 있었고 의지할 수 있었다. 우정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사랑이라고 하기에도 그렇지만 둘 사이의 뜨거운 마음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은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될 거야. 그러니 답장은 쓰지마. 부탁할게. -p.185
6개월이나 지속 되던 이들의 뜨거운 마음은 어느 날 갑자기 뚝 끊기게 된다. 나를 웃기고 울리던 편지는 이제 나임의 마지막 메일에 의해서 끝나버렸다. 탈이 메일 속에서 내내 되고 싶다고 이야기 하던 영화감독처럼 스무 살이던 나임에게는 꿈이 있었다.고립되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아픔을 주던 가자지구를 떠나 의사가 되어 돌아오겠다던 나임의 다짐, 그리고 꼭 잊지 말고 만나자던 약속. 처음엔 탈의 입장에서 조금의 배신감을 느꼈다. 그렇게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고 느끼게 했으면서 쉽게 이 관계를 정리해버리다니 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나임은 정리를 한 것이 아니라 빨리 만나고 싶은 길을 만들었고 그 길을 위해 약속을 한 것이라는 걸 느꼈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곳에서 있게 된다면 영원히 열등감을 가진 나임과 여린 탈이라는 두 사람으로서만 그렇게 편지를 보내다 끝날 것이다. 그렇지만 나임은 먼 훗날 서로 꿈을 이루어 두려움만 가득한 마음이 아닌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탈의 말처럼 뼈와 살이 그대로 있는 진짜 자신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을 것 같다.
어느 소수의 나쁜 사람들에 의해 그 나라가 나쁜 나라가 되어버리고 서로 죽이고 죽고 그 모습을 보며 게임처럼 이겼다고 좋아하고 졌다고 우울하게 생각해야 한다면 그건 분명 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임과 탈처럼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진정한 평화를 원할 줄 안다면... 이 세상, 살만 할 곳이 될 것이다.. |
|
초반엔 몇페이지는 제 취향(?)이 아닌듯했습니다~ 그래두..읽어보자하고 본 책인데요~ 단 몇페이지만 보고 책을 덮었다면 후회할뻔 했습니다.. 말주변이 없어서.. 어떻게 리뷰를 작성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TV뉴스에서 한번씩 듣는걸로 안다고 할수는 없겠죠?)나라.. 언제 어디서 테러를 당할지 모르는 두려움과 그럼에도 살아가지는 현실속에서 주인공인 탈 처럼 변화를 꿈꾸고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