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저자 김남희를 만났던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지난 11월 3일. 김남희의 사진전 <길 그리고 女行> 오프닝 행사가 종로 가회동 북촌미술관에서 열렸다. 그녀는 자신이 담아온 사진 앞에서 활짝 웃었다. 미술관에는 김남희를 아끼는 사람들이 혼잡스럽지 않을 만큼 찾아왔다. 이날 김남희는 사람들 앞에서 슬라이드 사진을 선보였다. 그녀가 세상을 걸으며 만난 세상의 풍경과 사람들의 미소가 북촌미술관의 한쪽 벽에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졌다. 김남희는 사진을 한 장씩 넘기면서 짧은 글을 하나 발표했다. 그녀의 발표는 ‘세상은 넓고, 봐야할 아름다운 풍경도 많더라’는 식의 자기 자랑이 아니었다. 4년 가까이 세계여행을 하고 잠시 걸음을 멈춘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Nkosi Haven’에 관한 것이었다. Nkosi Haven은 에이즈에 걸린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살며 치료를 받는 곳이다. 김남희는 이곳에서 만난 한 소년과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그곳의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다소 ‘진부’한 이야기를 하며 울먹였다. 그 진부한 이야기에 여러 사람들의 눈도 덩달아 붉어졌다. 물론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에이즈에 걸린 아프리카 사람들의 사연은 참 아팠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내 코가 시큰했던 건 그 때문만이 아니었다. 적지 않은 세월 바깥세상을 돌고 온 김남희. 그녀가 정착해 살고 있는 여러 사람 앞에서 풀어낸 이야기는 빛나는 무용담도, 배꼽 빠질 듯한 에피소드도, 애틋한 인연도 아니었다. 김남희는 타인의 아픔과 상처를 이야기했다. 먼 길을 돌아오면서도 타인의 슬픔과 몸 섞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김남희. 그런 김남희가 무척이나 고맙고 대견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코가 시큰해질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김남희는 ‘시큰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4년 전 세계여행을 처음 떠날 때의 김남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런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3>에는 2003년 1월 세계를 향해 첫 걸을 떼던 김남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녀의 첫 여행기에는 사기충천이나 설렘 같은 게 없다. 첫 출발이니 약간의 만용이나 미지의 꿈에 대해서 조금 과장되게 이야기해도 괜찮았을 텐데, 도무지 그런 걸 찾을 수 없다. 그녀의 첫 여행기 첫 문장은 “나는 벼랑 위에 혼자 서 있었다”로 시작한다. 그리고 “누군가 내 발목을 잡고 못 간다며 주저앉힌다면 기꺼이 못 이기는 척 주저앉고만 싶었다”고도 적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첫 걸음이 불안하기만 하다. 물론 소박한 소망도 적었다. “이 길 위에서 텅 빈 나를 가득 채워 돌아가는 날, 바람만을 담은 깃발처럼 가볍게 나부끼며 돌아갈 수 있기를...” <걷기 여행3>은 김남희 세계여행의 첫 부분이다. 중국, 라오스, 미얀마의 여행기다. 언젠가 김남희는 “<걷기 여행3>은 어설프고 조급한 내 모습이 보여 조금 민망하다”고 말했다. 김남희의 이런 평가는 겸손이 아니다. 실제 <걷기 여행3>는 이전에 나온 1, 2권에 비해 다소 재미와 흥미가 떨어진다. 김남희의 국토 종단기를 모은 <걷기 여행1>에는 신선함이 있고, 스페인 산티아고 여행기를 모은 <걷기 여행2>는 농익은 김남희와 흥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럼 <걷기 여행3>이 재미가 덜한 이유는? 김남희가 여행을 제대로 못했거나, 글을 못 써서가 아니다. 책의 발간 순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시간 순서대로 따진다면, 그리고 김남희의 발걸음을 따라간다면 이번에 나온 아시아 여행기 <걷기 여행3>은 산티아고 이야기를 담은 두 번째 책보다 일찍 나와야 맞다. 여행 순서와 책 발간 순서가 뒤바뀌면서 <걷기 여행3>은 “2권에 비해 재미가 덜하다”는 억울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여행기는 2003년 상반기의 기록이다. 그리고 작년에 발간된 <걷기 여행2>는 2005년 여행의 기록이다. 과거의 여행기가 더 재미있고 보다 자유로운 기운이 넘친다면 그거야 말로 김남희에겐 최악의 평가다. <걷기 여행3>은 김남희의 진화를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인간 김남희의 진화와 그녀의 여행기를 더 재밌게 즐기고 싶다면 <걷기 여행1>을 읽은 후 2권에 앞서 3권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걷기 여행2>을 마지막으로 읽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벼랑 위에 혼자 서 있”던 한 여자의 변화와 성장의 궤적을 느낄 수 있다. 2003년 1월 김남희는 세계여행을 떠나며 “바람만을 담은 깃발처럼 가볍게 나부끼며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 지금 김남희는 자신의 소망에 약 7부 능선 쯤 오른 것 같다. 김남희의 걷기 여행은 3년 정도 지난 후에야 마침표가 찍힐 것 같다. 아프리카 일부와 아메리카 대륙이 김남희의 작은 두 발을 기다리고 있다. 여행이 끝나는 날. 김남희는 정말 바람만을 담을 깃발처럼 가볍게 나부끼며 돌아올 수 있을까. 그 때가 되면 스스로의 말대로 “유목과 정착의 경계가 사라져 여행이 삶이 되고, 삶이 곧 여행이 되는 경지”에 도달해 있을까. 그리고 그 때도 지금처럼 타인의 슬픔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섞을 줄 알까. 독자인 나는 김남희의 진화의 끝이 궁금하다. 김남희의 <걷기 여행4>, <걷기 여행5>...가 기다려지는 건 그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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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고 겁많고 까탈스러운.. 시리즈 중에서 이책을 처음 읽었다.여행기를 많이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시리즈로 4권이나 나온 책이어서 너무 기대했었는지 생각보다 별로였다. 별로 이글의 작가가 소심하고 겁많은것같지는 않지만 책을 다 읽을때쯤 피곤함을 느꼈다. 이것이 까탈스러움인가?-_- 여행을 떠나면서 '세상에 선전포고를 했다'는 표현이 나올정도로, 너무 여행에 많은의미를 부여한것이 부담스러웠다. 저자의 입장에선 그렇게 느껴져도, 독자가 보기엔 오지 배낭여행정도인것 같은데.. 하지만 책을 보면서 라오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다. 여행에 관한 정보가 따로 실려있어도 좋았을텐데.. 여행기니까 그런 구성을 기대하기는 힘들것도 같다. 좀 제목에 낚였다는 생각이 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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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 그녀의 여행기 혹은 글을 처음 읽은 것은 2003년인가 2004년인가 하여튼 그 무렵이다 월간 중앙이라는 시사잡지였다 월간 조선을 아마도 파크리한 유사품이었는데 그 무렵의 월간 중앙은 작고 뚱뚱한 바디의 월간조선과는 달리 넓적하고 얇은 보통 잡지 판형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는지는 나는 모른다 내가 월간중앙이라는 존재를 처음 안 것도 그 무렵이었으니까 그렇게 해서 읽었는데 라오스인가 미얀마인가 그 나라들 편이 인상에 남았다 김남희를 보고 한국여자들은 가을동화같은 드라마에 나오는 송혜교처럼 다 예쁘고 하얗다라는 한류에 빠진 미얀마 여자들의 말, 이 말은 그런데 당신도 한국녀인데 어째서 그렇게 까무잡잡하고 못생기고 작달막한가라는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지는 현지녀들에게 혹은 현지남들에게 심술궂게 혹은 자의식에서의 반항처럼 텔레비젼에 나오는 여자들만 그렇다는 한국녀들의 평균치의 허상을 말하던 김남희의 말에 웃기는데 하지만 재미있잖아 하며 읽었었고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인가 비엔티엔인가를 둘러보며 유적지의 폐허 같은 외지고 쓸쓸한 소위 마이너틱한 분위기의 그 허전하고 외로운 슬픔의 소외된 무들에 혹한다는 말을 , 이 여자는 마이너 경향의 루저인가 - 그 당시에는 루저라는 말을 알지도 못할 만큼 나는 무식했다 혹은 루저라는 말에 관심이 없었거나 - 아니면 세상에 그다지 승부 의식이 없이 세상을 도외시하는 방외녀인가 하는 그런 약간은 의아하고 신기한 감상을 그녀의 글에서 희미하게 감지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후 한 두번 생각나기도 했었다 또 언젠가는 2010년이나 2011년 혹은 2009년 쯤에 그녀의 외로움이 외로움에게 라는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기기도 했다 그녀의 홈페이지도 들어가 보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의 글에 그다지 불만이나 반감이 없었다
그런데 다시 그녀가 문득 생각이 나 그녀의 책 3권을 구입했고 그 중 한 권 읽은 책이 내가 그녀를 처음 읽었던 이 중국과 라오스 미얀마 혼자걷기 여행이다
아마 이 책부터 읽고 그녀의 또 다른 책인 외로움이 외로움에게를 읽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그녀에게 느꼈던 여러 가지 불만은 우선 문장력이다 처음 월간 중앙에서 읽었을 때는 괜찮군 그럭 저럭 좋아 아마추어 여행가라고 볼 때 또 아마추어 저술가라고 볼 때 나쁘지 않아 라는 온도였는데 다시 그녀의 초창기의 언어들을 접하는 지금은 비판적이 되고 말았다 월간 중앙에 실었던 본문을 약간 은 아주 약간은 편집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데 하여튼 사진은 편집을 했다 아무튼 그런데 처음에는 그녀의 문장들이 나름 의표를 찌르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는데 다시 읽어 보니 흠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약간의 군더더기 같은 무언가 쓸데없는 표현은 문장에서 지나치게 엄혹한 검열을 내가 하고 있다고 내 스스로 자인하지만 그러나 그녀의 서술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 즉 무어냐면 매사가 아무 리듬의 형평성이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서술되는 일이 반복적으로 그녀의 내가 구입한 책들에서 계속 구사되고 있는 것이다 아주 심각했던 여행지에서의 위험했던 일들이든 감정이 북받쳤던 감동의 순간이든 별 의미없던 기억이든 일상의 사소한 여정이든 모두가 같은 무게와 부피를 갖고 감정적 크기에 상관없이 거의 같은 분량의 문장 길이로 다 똑같이 서술되는 점이다 그토록 위험했던 울고 싶은 일이었다면 좀 더 소상하고 깊이 적어도 될텐데 그냥 후다닥 몆 줄안에 끝나고 만다 별로 기록할 가치도 없는 일들도 역시 건조하지만 비슷한 분량의 말들로 채워진다 요컨대 아주 중요한 일들도 뭔가 왕창 들어낸 느낌이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들도 똑같이 취급해 같은 공간의 크기를 차지하는 느낌이다 아마도 아주 중요하고 감동적인 순간들을 대폭 줄여서 써서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이다) 그리고 사건과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는 순간이 이상하게 헛돌고 몹시 밍숭맹숭하게 연결된다 역시나 자세하고 자연스럽게 덧붙이고 이어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생각나는대로 설렁설렁 허술하게 썼다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다 80년대 90년대 홍콩의 그저 그런 영화들을 보면 중대하고 심각한 일이나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이나 연기나 연출이나 대사나 감정처리나 화면의 시간상 분량이나 몹시 동일하고 리듬이 똑같이 분배되어 정말 저게 슬퍼하는 감정인가 정말 저게 비극의 씬인가 하는 몹시 의아하고 민망한 순간들이 계속 사우디 유전처럼 퍼내도 퍼내도 나타나는데 똑 그것과 같다 그 시절이야 그런 것도 모르고 볼 어린 나이였으니 그랬다치지만 다시 본 그 시절 추억의 홍콩 영화는 눈 뜨고 못 볼 그런 망작들이었다 그런 영화를 불량식품 좋아하듯 즐겨 봤으니 오호 통재라 물론 한국영화도 그 시절에는 비슷했고 오히려 더 못해서 상업성마저 없었으니 차라리 홍콩영화는 그 시절에라도 대중적인 인기라도 있었지 요즘의 홍콩 영화들이 계속 그런지는 모르겠다 안 봐서 그야말로 리듬에 있어서 영화문법이 엉망이었던 홍콩영화처럼 김남희의 글도 중요한 맥락이 어딘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작가가 감정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여행지에서의 포인트가 안 잡힌다 아주 중요한 기록도 그냥 똑같이 짧게 별 관심 없이 기술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어디에서 뭘 타고 뭘 먹었다는 그런 기록도 어슷어슷 대강 언어를 썰어서 책에서 같은 관심사로 전시한다 타고난 감각이 없는 거라고 하기엔 그녀의 감각적인 문학자질이 아쉽다 계속 책을 낸 저자인데 하지만 이 책의 그런 점은 그녀의 초창기 책이기에 감안을 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녀에게 좀 더 요구하고 있는 것 뿐이다
다른 몇 가지 점은 그녀에게 관련된 것이다
TV를 안 보고 자본주의 사회를 싫어한다는 그녀의 그런 구석이 싫었다 그러면서도 아메리칸 뷰티 같은 자본주의의 총아인 미국 영화는 보는 건 또 뭔가 설마 영화와 텔레비전의 드라마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걸까 몇 백원 몇 천 원 하는 여행경비를 깎기 위해 벌 벌 떨지 말고 자본주의 욕하지 말고 일해서 돈을 좀 더 벌어서 넉넉하고 여유롭게 여행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돈을 그토록 증오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본주의의 그 물질적 경도의 가치관 부재를 싫어하는 건지 아니면 자본주의의 그 피곤한 생존경쟁을 싫어하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돈이 안 드는 여행을 하지 말고 차라리 직업에 충실해서 돈을 왠만큼 벌고 완전히 은퇴해서 징징짜는 소리 하지 말고 고생 적게 하며 세계여행 하고 책 내라는 말이다 그런다고 욕하는 사람 없고 이렇게 돈 안 쓰고 아껴가며 세상과 이별하고 여행 다닌다고 칭송하는 사람도 없다 자본주의 자본주의 그렇게 욕하면서 여행 다니는데 그녀가 여행한 곳이 한비야처럼 오지들만 다녔다면 말 안하겠는데 유럽도 그렇고 남미도 그렇고 라오스나 미얀마도 그렇고 다 그 당시 세속에 철저했던 아수라와 지옥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과 유적이 김남희가 다닌 곳이다 그들이 속세에 울고 웃고 탐욕과 죄를 저지르며 살지 않았다면 그 곳들의 건축과 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살려면 히말라야 가서 네팔의 힌두 사원이나 티벳의 라마교 사원이나 둘러볼 것이지
성격도 제목대로 소심하고 겁 많아 보이는데 왜 그렇게 더럽던지 까칠하기는 지대루고 비호감스러운 곳도 많다 내가 성격이 더러워서 그렇게 보이는지 하여튼 그런 심정적으로 공감 안가는 그녀의 개인적 개성도 이 책을 읽으며 기분이 안 좋았던 이유이다 뭔가 비합리적인 여자인 것 같은데 뭔가 잘난 척 하는 그런 느낌이 든다 청빈을 무지 좋아하고 뭔가 정신적인 면으로 지성을 존중하고 물질과 세속을 멀리하는 여자 같지만 그러기엔 맛있는 거 좋아하기는 남과 똑같고 편한 자본주의의 혜택 좋아하고 보통 여자들처럼 연애에 환장하는 건 다를 바 없는 그다지 똑똑하지 않은 자신을 모르는 것 같다 조금은 스스로를 아는 것 같지만 종교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과 사상을 보고 혀를 찼던 그 새삼스러운 내 기억엔 이 여자는 책도 읽었고 지적인 면도 있지만 그러나 결국은 멍청한 여자이고 정확히 모르는 여자이며 어리석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성이 있는 여자도 아닌 흐리멍텅한 이상한 무신론자도 아니고 유신론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가지론자도 더더욱 아닌 이상한 관점의 참 편한 사후관과 종교관을 가진 여자구나 하는 비난이 담겨 있다 청빈은 멋이 아니고 숭배의 대상이나 뭔가 가치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유함은 자체적으로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청빈은 정말로 물질의 헛됨을 알고 욕심 없이 살고자 하기에 택하는 것이지 무슨 미덕이 있거나 숭고해 보여서 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남들이 존경하고 사회적으로 신망을 얻고 정신적으로 대단해 보여서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게 존경스러운 것은 그 다음의 일로 남들이 보기에 그런 것이다 돈이 없어 쩔쩔 매며 TV를 안 보고 자본주의 세상을 멀리하며 어쩌고 저쩌고 그럴려면 여행기에서 식탐 부리는 구절을 쓰지 말고 (비록 비싼 음식들에 목매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돈 없는 현지 사람들에게 깎지 말라 그들도 돈 없기는 마찬가지이고 자본주의 사람들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한국인들보다는 못 산다
그녀가 왜 세상에 작별을 고하고 길 위로 떠났는지 이 여행기에는 줄곧 그것이 성찰되지 않는다 이 책이 세 번째 책인데 아마 그 전의 두 권에서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런 점이 시종 보이지 않아 그녀가 길에서 보낸 시간들의 합이 여타 다른 여행기의 감상들과 무엇이 다른지 그것이 이 책에서는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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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소심하고 겁도 많으며 까탈스럽기 까지 하다고 부르는, 그러나 내가 보기엔 대범한 면도 많고 겁은 상실했으며 까탈스러움을 넘어 길과 길에서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씨를 지니고 있는 도보 여행가인 김남희. 그녀와 세번째로 같이 여행을 떠났다.
그녀가 이번에 안내해 준 곳은 중국, 라오스, 미얀마. 사실 중국은 참 많은 사람이 가는 곳이기도 하고, 넓은 나라이니 만큼 많은 볼 것이 있지만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보여준 곳이다. 나 역시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은 나라이긴 한데, 편견이겠지만 내가 갖고 있는 중국인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아 또한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라오스는 정말 가보고 싶은 나라. 볼 것 넘치고 활기차며 복작복작대는 태국의 카오산과는 또 다른 의미로, 늘어지며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배낭 여행족들의 메카가 되어 가고 있는 루앙 프라방 때문이다. 미얀마는 아마도 당분간 가기는 힘들겠지만 궁금하긴 하다..
잰걸음의 바쁜 여행이 아닌, 타박타박 걸어가는 김남희의 느린 발걸음은 이 나라들을 여행하기에 참 알맞은 속도가 아닌가 싶다. 특히 포장 도로 50km를 세 시간에 걸쳐 운전하는 운전사의 나라 라오스에서는..
외관과 마찬가지로 에너지가 넘치고 수다스럽고 방정맞기까지 한 한비야의 글은 재미있고 즐겁지만 읽다보면 지치는 것도 사실. 그에 반해 역시 인상대로 차분해 보이면서도 당차보이는 김남희의 글은 자분자분하면서도 할말을 다하여 천천히 그녀의 걸음을 좇다 보면 그녀의 생각을 따라갈 뿐 아니라 내 생각도 같이 할 여유를 준다.
흔히 여행을 가게 되면 아는 만큼, 용감한 만큼 보인다고 한다. 나같이 일년에 겨우 일주일 연속으로 휴가를 낼 수 있을까 말까 한 직장인은 그래서, 여행을 가기 전에 최대한 많이 알고 가기 위해 공부하며 일정 준비를 하고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그 공부가 헛되이 되지 않게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때로는 그 압박에 여행이 끌려 가는 양상까지 종종 나타나곤 한다.
느린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공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머리가 아니라 가슴과 행동으로 느끼는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울타리를 지키면서도 느리게, 느끼며 여행을 하는 김남희는 참 부러운 여행 스킬을 가지고 있다.
그녀와 떠날 다음 여행이 다시 기다려 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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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라오스/미얀마 편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책을 다 읽었다.(4권을 먼저 읽은 관계로)
우연히 책방에서 발견한 화려하지 만은 않은 그녀의 책이 유난히도 내 눈에 띄었다. 2권 스페인 편을 통해 그녀의 세계에 입문하고, 짧은 시간 안에 그녀의 4권의 책을 섭렵하게 되었다. 아.. 화려하지 않은 책 표지와 닮은 그녀의 소박하고 담백한 그녀의 여행 이야기. 보여 주기 위한 다른 여행책에 비해 그녀의 책은 우리네 일상과 닮디 닮았다.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어서 빨리 새로운 세계로 날 이끌어 줄 책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녀 책에 대해 소개하고 싶지만, 내 짧은 글솜씨로 인해, 머리글에 있는 '홍은택'작가의 소개글로 대신하겠다. 딱 내 생각이 맞아떨어지는 표현!
그의 글에는 꾸밈이 없다. 가르치려고도 설명하려고도 않는다. 자신의 얘기로 독자를 압도하려고 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나그네의 관찰자적 시점도 아니다. 소박한 여행자의 일차적 경험을 이차적으로 가공하지 않는다. 그의 '날 경험담'은 작가와 독자의 거리를 없애고 세계 곳곳을 함께 돌아다니는 듯한 착시와 환청을 불러일으킨다.
4권의 책 속에도 각자만의 매력이 있지만, 특히 3권의 책은 나의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화려한 볼거리와 많은 관광지가 있는 곳만을 여행의 목표로 삼았던 내게 그녀의 책으로 인해 적잖히 충격을 받았다. 없이 사는 사람들(이런 표현이 맞는 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불운 한 것이 아닌, 그 나라 사람 그대로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들, 작은거 하나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 오로지 비싸고 좋은것, 남들에게 보여주는 삶을 살았던 내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행지에서 친구를 만나고, 그곳에서 머리도 자르고, 반전시위도 해보고... 여행자적 시점에서 바라본 것이 아닌. 그 나라 일원으로 바라본 시점에서 쓰여진 이책. 참다운 여행이 무엇인지를 알려 준 이책이 참으로 고맙다. 특히나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를 모두 소화해 내는 그녀를 보며, 나도 더욱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특히나 이책을 통해 얻게 된 가장 좋았던 점. 걷기의 즐거움이다. 워낙 여행과 운동을 좋아하는 나로서 일석이조인 걷기여행. 얼마전 세계물의 날에 열린 청계천 걷기대회가 첫 걷기 여행이였다. 많은 친구들에게 함께 걷자고 말했지만, 대부분 회사 때문에 안되고, 겨우 동행자 4명을 구하고, 이른 토요일 아침 7시에 만나기로 약속한 우리. 결국엔 모두들 늦잠 자는 바람에 아무도 안 나오고 혼자서 걷게 되었다. 만약 이책이 없었더라면 다시 집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겠지.. 1시간 남짓 청계천을 걸으며 이따금씩 스치는 바람과, 따뜻하게 나를 바라봐 주는 햇볕, 나의 마음과 함께 같이 흐르는 물줄기. 그날의 나의 모습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어버렸다. 학창 시절 국어선생님의 말씀이 갑자기 떠오른다. 성숙해 진다는건 '혼자 화장실 갈 수 있을 때야' 비유 적인 그 표현이 이제야 새삼 그 뜻을 알게 되었다. 혼자하는 여행. 나의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며 한층 성숙하게 만들어준 이책. 감사함을 일깨워준 이책이 참으로 반갑다.
중국
경계하는 마음 없이 낯선 이를 맞아 술잔을 건네던, 가난하고 아름다운 창족들. 억압과 감시 속에서 묵묵히 독립의 꿈을 키워가는 그 낮은 목소리를 한순간 들었다는 것.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결국 어떤 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함께했던 사람들과, 그곳에 남겨둔 기억이다.
이곳 사람들은 걷기가 일상인데, 나는 걷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오니 누구의 팔자가 더 나은 걸까. 걸을 때 생각은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먼 과거의 일부터 미래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까지 가능해진다. 이렇게 지치도록 걷는 일, 수많은 상념이 나를 스쳐 지나가게 놔두고 내 몸으로 세상을 열어가는 일의 행복함, 걸을 수 있는 두 다리를 가진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라오스
내가 사랑하는 이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려면 이른 새벽 거리로 나가야 한다. 주홍색 장삼을 걸친 맨발이 스님들. 불심 깊은 신도들은 무릎을 꿇고 앉아 공양 그릇을 받든 채 스님들을 맞는다. 오직 침묵으로 탁발을 하고 아침해가 막 떠오르는 골목으로 사라지는 이들. 공양 사발을 든 맨발의 스님들이 길게 줄을 이어 도시의 골목을 걸어가는 모습은 정신을 맑게 깨운다. 이렇듯 불교는 라오스 사람들의 일상과 분리될 수 없는 삶의 정수다.
1인당 국민소득은 겨우 2백 달러인 나라, 가난하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 나라는 닫힌 내 마음을 조금씩 열어주고, 따뜻한 피가 돌게끔 내 몸을 데워 주었다.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듯, 그렇게 소란스럽지 않으면서도 빠르게 마음이 풀어지던 것을 기억한다.
이 작은 마을에서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쉬고, 그물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고, 강변의 식당에서 책을 읽는 일이 전부다. 대부분의 배낭족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쉬기 위해 이 마을을 찾는다.
욕망은 채울수록 자꾸 더 드러나는 구멍 뚫린 바가지 같은 것이랬지. 덜 갖되 더 충실한 삶을 사는 일.언제쯤이나 내 몸과 마음에 익을 수 있을까? 괜히 마음이 젖은 나는 그들이 떠난 후에도 한참 좌판을 들여다보며 앉아 있는다.
미얀마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한적한 길가에는 마차를 끄는 말들의 발굽소리만 달그락달그락. 사위는 고요하게 어둠으로 젖어들고 상쾌한 바람이 살며시 넘나드는 이른 저녁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이 문득 고마워진다.
타나카를 바른 여인들이 수줍게 웃고, 구장나무 줄기를 씹는 사람들이 새카만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나라. 군부독재의 서슬 퍼런 압제 아래 순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 땅. 총을 든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는 국립묘지 입구를 다시 돌아보며 기원한다. 이 땅에 민주화의 봄이 빠른 걸음으로 찾아오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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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경우 항상 여행을 꿈꾸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일단 사고를 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고 그것은 저질러 보자는 것이지만, 사실은 혼자떠난다는 것에 두려움이 앞서서일것이다. 김남희님의 세번째 책도 아주 재미있게 읽힌다. 돈많이 드는 귀족 여행이 아닌 배낭여행이어서 더 감칠맛이 난다. 중국은 두어번 가본적이 있으나, 이책의 여행지인 다른나라는 아직 못가보았다. 이책은 정보보다는 그 나라사람들의 진솔한 모습들이 많이 담겨있다. 특히 민초들의 실제 사는 모습들이 경험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미 중국의 거대한 나라는 물질주의에 젖어가는 모습들이 그러면서도 소수민족들의 전통을 이어내려오는, 아니 중국뿐만이 아니고 아직도 고아한 정신세계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내면적인 세계를 이어갔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김남희님은 여행담을 글로 잘 표현하는 재주가 있는것 같다. 1,2,3권 모두 권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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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혔다. 쉽고 흥미로워 집중도 잘 되고, 호기심을 채워 주는 적당한 사진과 작가가 겪은 일화들이 책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읽는 동안은 다른 생각 안 해도 좋았다.
내가 직접 못 가 보는 곳을 간 사람의 얘기를 읽고 있는 기분, 부러움 빼고 가고 싶다는 욕심 줄이고 읽으면 괜찮다. 나는 이게 딱 내 스타일이다 싶다. 게으르고, 작가보다 더 소심하고, 더 까탈스러운 나로서는 내 몸 전혀 구기지 않고, 고생도 안 시키고 편안히 드러누워 읽는 것으로 여행 끝.
다만 책이라는 게, 간접 경험이라는 게 늘 그러하겠지만, 나의 체험이 아닌 탓에 책을 덮고 나면 그만 몽땅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읽는 동안 재미있었는데, 다 읽고 나면 내가 지금까지 뭐 했던가, 그리고는 금방 일상으로 돌아오고 마는. 돈 들이고, 시간 들이고, 즐거운 고생 사서 다녀온 여행은 절대 그렇지 않은데.
중국, 라오스, 미얀마까지. 작가따라 열심히 누비고 다녔던 것 같은데, 덮고 나니 이름조차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솔직히 나로서는 작가처럼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그다지 없다. 고생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굳이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아직 안 드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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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2일 ~ 2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