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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문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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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펄프를 물에 풀어,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은 하느님같다   흰 눈을 내려   세상을 문자 이전으로 되돌려놓는 조물주같다     티 없는, 죄 없는   순백   무화(無化)의 길……     더욱 완전한 백지에 이르고자   없애고 없애고 또 없애는 것이 제지공의 길이다, 제지공의 삶이다, 마치 거지의 길이며 성자의 삶 같다     그러므로,   오늘도 백지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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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펄프를 물에 풀어,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은 하느님같다

  흰 눈을 내려

  세상을 문자 이전으로 되돌려놓는 조물주같다

 

  티 없는, 죄 없는

  순백

  무화(無化)의 길……

 

  더욱 완전한 백지에 이르고자

  없애고 없애고 또 없애는 것이 제지공의 길이다, 제지공의 삶이다, 마치 거지의 길이며 성자의 삶 같다

 

  그러므로,

  오늘도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은 자꾸만 문자를 잃어간다, 문맹이 되어간다

  문명에서문맹으로

 

  휴일 없이

  3교대 종이공장 제지공들은 출근을 한다

  - 유홍준, 「문맹」

 

 

펄프를 물에 풀어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을 보며 시인은 하느님을 생각한다. 하느님은 조물주(造物主)이다. “흰 눈을 내려/ 세상을 문자 이전으로 되돌려놓는 조물주라는 시구에 드러나는 대로, 시인은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을 흰 눈을 내려 세상을 문자 이전으로 돌려놓는 조물주에 비유한다. 하느님은 채우는 존재가 아니라 비우는 존재이다. 인간의 욕망이 덕지덕지 묻은 세상에 흰 눈을 내려 하느님은 이 세상을 티 없는, 죄 없는/ 순백/ 무화(無化)의 길……로 만들어낸다. 더욱 완전한 백지에 이르려면 제지공은 없애고 없애고 또 없애는길을 걸어야 한다. 무언가를 없애는 길은 마음을 비우는 길과 다르지 않다. 하느님은 인간이 헛된 욕망으로 세운 화려한 세상에 현혹되지 않는다. 하나를 채운 욕망은 언제나 더 큰 욕망으로 뻗어 나가길 원한다. 더 많이 채울수록 욕망은 더 많은 갈증을 느낀다.

 

없애고 또 없애는 제지공의 삶을 시인은 마치 거지의 길이며 성자의 삶 같다고 이야기한다. 백지는 흰 눈에 쌓여 있다. 헛된 욕망으로 세워진 거대한 도시는 흰 눈에 덮여 무화되는 찰나에 있다. 아무나 세상을 백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는 존재만이 이 세상을 백지로 만들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 “없애고 없애고 또 없애는 것이라는 시구에 나타나듯, 시인은 없애고라는 시어를 반복함으로써 마음을 비우는 길을 제시한다. 비우고 비우고 또 비워야 마음이 비워진다. 마음을 비우는 데는 달리 방법이 없다.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거지는 소유물이 없는 존재이고, 성자는 소유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존재이다. 소유물이 없는 거지가 소유라는 개념 자체를 버릴 때 거지와 성자는 하나로 만난다.

 

시인은 오늘도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은 자꾸만 문자를 잃어간다, 문맹이 되어 간다라고 쓰고 있다. 문자를 잃어가는 것은 문자를 모른다는 말이 아니다. 문맹이 되어 간다는 말 또한 글자를 모른다는 말이다. 글자를 아는데도 그들은 문자를 잃어가고 문맹이 되어간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스스로 글자를 잃어버리고 문맹이 된다.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은 왜 시간이 흐를수록 문자를 잃어가는 것일까? 문자는 우리를 의미에 얽매이게 한다. ‘를 생각하면 우리는 멍멍 짓는 동물을 떠올린다. 개는 멍멍 짓는 동물이라는 의미에 매여 를 판단하는 것이다. 의미에 매이면 분별심이 일어난다. 분별심은 시비(是非)를 나누는 마음이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 이것은 왜 옳고, 저것은 왜 그른가.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옳으므로 저것이 그르다고 말하고, 저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저것이 옳기에 이것이 그르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족한 문명은 바로 이러한 시비지심으로 만들어졌다. 의미를 손에 쥔 존재는 스스로를 시(), 곧 옮음의 자리에 놓는다. 인간은 옮음의 자리에 서서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주인으로 행세한다. 인간의 맞은편에 비()에 해당되는 자연이 선다. 자연은 그른 것이므로 교정이 필요하다. 인간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인간의 입맛으로 개조한다. 문자로 사물을 명명하면서 인간은 자연 위에 우뚝 서게 되었다. 자연은 더 이상 인간 밖에 있는 성스러운 사물이 아니다. 이성의 언어로 무장한 인간 앞에서 자연은 초라한 사물이 되어버린다. 인간은 댐을 만들어 강줄기를 제 마음대로 바꾸고, 산을 뚫어 좀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는 도로를 만든다.

 

문명 발달이 왜 자연 파괴를 반드시 동반하겠는가? 문명은 자연을 파괴한 자리에 들어선다. 자연을 대상화하는 마음이 없이 문명을 세우는 건 불가능하다. 문명은 처음부터 자연과 대척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자연에 폭력을 행사하는 문명은 욕망을 비우고 또 비우는 과정이 아니라, 욕망을 더 큰 욕망으로 늘리는 과정을 동반한다. 시인이 문명에서문맹으로가는 길을 시가 가야 할 길로 제시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문자=의미에 집착하는 한, 우리는 문명이라는 자아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문명에 집착하는 자아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자연을 얽매는 글자로부터 먼저 벗어나야 한다. 자연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소유욕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지공들은 이를 위해 펄프를 물에 풀어 백지를 만든다. 백지에는 아무 글자도 씌어 있지 않다. 문명의 욕망으로 가득 채워진 항아리를 속속들이 비우기 위해 하느님을 닮은 제지공들은 마음을 비우고 비우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휴일 없이반복되는 이 정화의 길은 백지에 이르는 길이 그만큼 힘겨운 일이라는 걸 암시한다. 문맹에서 문명으로 가는 길은 아주 쉽다. 아는 것을 표현하면 되기 때문이다. 문명에서 문맹으로 가는 길은 그러나 아주 어렵다. 마음을 비우려면 소유에 집착하는 자기를 죽여야한다. “휴일 없이자기를 죽이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문자를 잃고 문맹이 되어가는 제지공이 되고 싶은가? 그러려면 먼저 글자로 가득 찬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문맹이 되려면 자기 마음을 채운 문명을 먼저 털어내야 하는 것이다.

 

 

o*****s 2019.06.03.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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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손바닥 이파리가 돋아나는 포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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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교     내 아버지의 종교는 아교, 하루도 아니고 연사흘 궂은비가 내리면 아버지는 선반 위의 아교를 내리고 불 피워 그것을 녹이셨네 세심하게 꼼꼼하게 느리게 낡은 런닝구 입고 마루 끝에 앉아 개다리소반 다리를 붙이셨다네 술 취해 돌아와 어머니랑 싸우다가 집어던진 개다리소반…… 살점 떨어져나간 무릎이며 복사뼈며 어깻죽지를 감쪽같이 붙이시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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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교

 

 

내 아버지의 종교는 아교,

하루도 아니고

연사흘 궂은비가 내리면

아버지는 선반 위의 아교를 내리고

불 피워 그것을 녹이셨네 세심하게

꼼꼼하게 느리게 낡은 런닝구 입고 마루 끝에 앉아

개다리소반 다리를 붙이셨다네

술 취해 돌아와 어머니랑 싸우다가

집어던진 개다리소반……

살점 떨어져나간 무릎이며 복사뼈며

어깻죽지를 감쪽같이 붙이시던 아버지, 감쪽같이

자신의 과오를 수습하던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 내 아버지의 종교는 아교!

세심하게 꼼꼼하게 개다리소반을 수리하시던

아교의 교주 아버지 보고 싶네

내 뿔테안경 내 플라스틱 명찰 붙여주시던

아버지 만나 나도 이제 개종을 하고 싶다 말하고 싶네

아버지의 아교도가 되어

추적추적 비가 오는 아교도의 주일날

정확히 무언지도 모를 나의 무언가를 감쪽같이 붙이고 싶네

 

 

너무 힘든 시대를 거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혈기왕성한 청년기를 남의 나라를 위해 일해야 했고 동족끼리의 전쟁에서도 가족의 피해를 입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독재의 나날과 근대화의 허울 속에서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생활이었으니 때로 폭력으로 마음의 응어리를 풀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 내 아비 또한 그랬습니다. ‘반쪼가리 아버지가 반쪼가리 어머니 또 패대기치’는가 하면 ‘ 반쪼가리 밥상이 오리처럼 날아갔’(「반쪼가리 노래」)습니다. 반쪼가리 가족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한숨 쉬지 마세요 어머니 / 제가 조금만 더 자라면 아버지를 죽여버릴게요’(「몽유도원도」)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리고 절대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노라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폭력을 쓰지는 않았을지라도 불쑥 불쑥 나타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무언지도 모를 나의 무언가를 감쪽같이 붙이고 싶’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흉터는 외부에서 열지 못하는 뚜껑이다 / 흉터는 그의 밀실이다 / 흉터는 바깥에 열쇠구멍이 없다 / 흉터는 늙은 수리공마저 포기한 열쇠로 잠겨 있’(「그의 흉터」)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얀 눈밭에서 토끼를 움켜잡은 사람이, 두 귀를 붙잡힌 토끼가,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며 ‘이 세상 어떤 영혼 또 어떤 영혼의 전부가 저렇게 꼼짝없이 붙잡혀 들어올려져 버둥거리’고 있음을 응시합니다. 그러나 어느덧 ‘넝쿨마다 아버지의 심장이 달리는 포도나무 마디마다 아버지의 눈동자가 주렁주렁 달리는 포도나무 가지마다 넓적한 아버지의 손바닥 이파리가 돋아나는 포도나무’를  ‘생전의 할아버지 깊디깊은 눈속 한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는 어린것들이 달라붙어 포도를 먹는다 한 송이 또 한 송이 할아버지 포도를 먹어치’(「포도나무 아버지」)우는 세월입니다. ‘아버지와 형의 두개골을 들고 걸어가는 봄날’(「이장 移葬」)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풀어’ ‘놓아’줄 때입니다.

 

 

시인의 말

 

 

오동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아이 하나가 다가온다.

 

동그랗게 말아쥔 아이의 손아귀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린다.

 

얘야, 그 손

 

풀어

 

매미 놓아주거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 평생 우는 손으로 살아야 한단다.



YES마니아 : 골드 g*******g 2008.10.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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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와 역설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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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지금껏 우리 사회의 골격을 이루고 있던 기본 질서의 붕괴 역시 급격히 행해지고 있다. 모눈종이의 좌표 마냥 어떻게 삶을 사는 게 정도(正道)인지를 보여주던 하나의 틀이 깨어지고 난 빈 자리에 들어선 것은 혼란 뿐이다. 개개인의 도덕성을 탓하고, 마초적 기질을 발휘해 성(姓)\을 폄하해 보는 행위는 파괴된 질서에 대한 향수임과 동시에 자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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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지금껏 우리 사회의 골격을 이루고 있던 기본 질서의 붕괴 역시 급격히 행해지고 있다. 모눈종이의 좌표 마냥 어떻게 삶을 사는 게 정도(正道)인지를 보여주던 하나의 틀이 깨어지고 난 빈 자리에 들어선 것은 혼란 뿐이다. 개개인의 도덕성을 탓하고, 마초적 기질을 발휘해 성(姓)\을 폄하해 보는 행위는 파괴된 질서에 대한 향수임과 동시에 자기 자신 역시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이다. 이런 사회를 노래하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사회에 대한 적절한 비판의식과 애정, 둘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유홍준 시인의 시는 그런 점에서 날카롭고도 한 편으로는 눈물겹다. 자신에게 생명을 부여한 아버지는 존재하나, 그 존재감은 시인의 부정적 시각 덕에 도드라져 보인다. 어머니를 향한 서글픔의 정서 역시 이를 대변한다. ''어머니 커다란 독에 갇혀 / 우시네 엉덩이가 펑퍼짐한 어머니 / 텅 빈 독 속에 갇혀 우시네'' (<어머니 독에 갇혀 우시네> 중에서) 시인의 어머니는 눈물로 자식을 일곱이나 낳았으나, 정작 자신의 아랫배는 홀쭉할 뿐이다. 간장 그리고 된장 마냥 누군가에 의해 독에서 구출(?)되기 전까지는 철저히 독 안에 갇힌 신세로서 그의 어머니는 존재할 따름이다. 이런 부조리한 질서가 공고화되는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종교와도 같은 위치 탓이다. <아교>라는 시를 통해 시인은 부서진 개다리소반의 다리를 붙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노래한다. ''감쪽같이 / 자신의 과오를 수습하던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 아, 내 아버지의 종교는 아교!'' 가부장성의 붕괴라는 초절정의 위기(!) 앞에서 아버지는 부서진 것이라면 무엇이건 원상복귀시키는 아교와도 같은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가부장성은 어머니를 구속하는 거대한 체제임과 동시에 자신이 뛰어넘어야 할 하나의 굴레이기도 했다. ''아버지 만나 나도 이제 개종을 하고 싶다 말하고 싶네''라며 시인은 남성으로서 자신이 짊어져야만 하는 가부장성에 대한 거부의 의지를 보인다. 하지만 혼자만이 이와 같은 부조리함으로부터 자유로와진다 하여 사회가 변화하는 것은 아님을 시인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인은 ''한숨 쉬지 마세요 어머니 / 제가 조금만 더 자라면 아버지를 죽여버릴게요(<몽유도원도> 중에서)''라며 자신에게 남성성을 부여한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증오를 그리고 아버지의 가부장성 속에 갇힌 어머니를 구해야만 겠다는 의무감을 표출한다. 동시에, 이미 사회 곳곳은 시퍼런 멍으로 도배가 되어, 특정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정화가 불가능한 상태의 사회에 대해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한다. 시집의 처음을 열고 있는 <소음은, 나의 노래>에서는 도시 생활의 다사(多事)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분주함과는 거리가 멀다. 시인은 ''매음굴보다 더 지독한'' 이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곳에 대한 증오를 분출한다. 생산조차도 무의미한 행위가 되어, 그렇게 탄생한 백지는 제지공들을 자꾸만 문맹으로 만들 뿐이다.(<문맹>) 심지어 만년필이 잉크를 내뿜는 행위마저도 세상의 타락한 시선에 의하면 오르가즘에 목을 멘 누군가의 부조리한 자위행위화 그려진다.(<몽블랑 만년필>) 하지만 <다방에 관한 보고서>보다 더 신랄한 표현은 없을지어다. 숫자의 나열에 불과한 이 시는, 타락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너무도 명확히 보여주니 말이다. 이런 혼란은 시인에게 두통을 야기한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 직방으로 듣는 약을 구하기 위해 무려 사십년 동안을 뛰어내리고 있다는 시인의 고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를 보여준다.(<직방>) 변화하지 않는 사회는 어머니에게는 한 바가지의 울음을 필요로 하겠지만, 그것 역시 사회의 일부이기에 ''어머니의 울음에 맞춰 나는 춤을'' 춤으로써 사회를 비판하되 그 안에서 살아가고자 시인은 노력한다.(<일주일 후,>) 자신의 능력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사회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 달관이었을까? <벌레 잡는 책>에서 보이는, 글을 써 생을 영위하는 사람이 책이 없었더라면 저 벌레를 때려잡지 못했을 것이며, 화장지 없는 공중변소에서 뒤를 닦지 못했을 것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고나니 허무해지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이달의 사락 q*****2 2006.11.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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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배꽃 (나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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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67시와 배꽃― 나는, 웃는다 유홍준 글 창비 펴냄, 2006.10.20.  마음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알아요. 시외버스나 전철이나 기차는 덜컹거리면서 바큇소리가 꽤 큽니다. 그러나,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동무랑 버스나 전철이나 기차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바큇소리를 하나도 못 느낄 뿐 아니라 아예 못 듣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책을 읽으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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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67



시와 배꽃

― 나는, 웃는다

 유홍준 글

 창비 펴냄, 2006.10.20.



  마음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알아요. 시외버스나 전철이나 기차는 덜컹거리면서 바큇소리가 꽤 큽니다. 그러나,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동무랑 버스나 전철이나 기차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바큇소리를 하나도 못 느낄 뿐 아니라 아예 못 듣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책을 읽으면, 내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모두 잊습니다.


  마음을 기울이지 않을 적에는 동무하고 이야기를 못 나눕니다. 자꾸만 ‘아이 시끄러워’ 하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니 책을 못 읽어요. 자꾸만 ‘시끄러워 죽겠네’ 하고 생각합니다.



.. 소음은 나의 노래 / 소음은 나의 자장가 / 소음 없이 난 이제 하루도 못 살아 ..  (소음은, 나의 노래)



  조용한 숲에 있어야 마음이 따사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따사롭게 가눌 적에 마음이 따사롭습니다. 텔레비전이 없고 시끄러운 소리를 모두 막은 넓은 아파트에 있기에 명상을 할 수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따사롭게 가누기에, 감옥 좁은 방에 갇혔어도 명상을 합니다. 절집에 찾아가야 비손을 올릴 수 있지 않아요. 갓난쟁이한테 젖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빨래하면서 얼마든지 비손을 올릴 수 있어요.


  다시 말하자면, ‘나를 건드리는 것’이 없는 데에 있을 때에 시를 쓰지 않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때에 시를 씁니다. 돈이 있어야 책을 사서 읽지 않습니다. 마음이 있어야 책을 사서 읽습니다. 일에 치이지 않거나 바쁘지 않거나 돈도 넉넉히 갖춘 뒤에라야 책을 읽을 만하지 않습니다. 할 일이 많거나 바쁘거나 돈이 얼마 없어도, 스스로 마음을 열면 얼마든지 책을 읽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도 되고, 헌책방에서 값이 눅은 책을 찾아서 장만한 뒤 읽어도 돼요.



.. 휴일 없이 / 3교대 종이공장 제지공들은 출근을 한다 ..  (문맹)



  마음이 없는 사람은 겉모습에 끄달립니다. 같은 책을 놓고 ‘헌책’과 ‘새책’을 따질 까닭이 있을까요? 하나도 없습니다.


  생각해 봐요. 새책방에서조차 참 많은 사람들은 ‘더 깨끗한 책’을 살핍니다. 참 엉터리 같은 노릇입니다. 새책방에서도 이것저것 골라서 책을 장만하는데, 새책으로 장만한 그 책에 긁힌 자국 하나 없이 알뜰히 건사하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요? ‘더 깨끗한 책’으로 골라서 장만하지만, 막상 ‘더 지저분하게 함부로 굴리지’ 싶어요.


  책은 알맹이를 읽습니다. 책은 껍데기를 읽지 않습니다. 공장에서 갓 찍어서 나온 책으로 읽어야 더 잘 읽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 손을 거친 도서관 책을 빌려서 읽어야 더 잘 읽지 않습니다. 여러 집을 돌고 돈 헌책을 헌책방에서 장만해서 읽으니 덜 읽거나 못 읽지 않습니다.


  책에 김칫국물이 튄들 대수롭지 않습니다. 김칫국물 때문에 ‘책에 깃든 줄거리’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책종이가 구겨져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구겨졌기 때문에 ‘책에 담긴 숨결’이 옅어지지 않아요.



..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낡아빠진 기와집이 / 한 마리 / 검은 물고기 같다 ..  (물고기 꿈)



  이름난 아무개가 쓴 글이기에 대단할 수 없습니다. 삶이 대단할 때에 글이 대단합니다. 사랑과 이야기와 숨결이 대단할 때에 글이 대단하지요.


  다시 말하자면, 문학상을 탔기에 글이 대단하지 않습니다. 인기 작가로 되어 책이 많이 팔렸다 하기에 글이 대단하지 않아요. 중앙일간지에 글이 실리면 대단할까요? 대기업 사외보에 글을 실으면 대단할까요?


  껍데기는 내려놓아야 해요.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를 보아야 해요. 사람을 사귈 적에도 이와 같아요. 우리는 마음으로 동무를 삼고 이웃을 사귑니다. 우리는 겉모습이나 은행계좌나 자가용 때문에 동무나 이웃을 만나지 않습니다. 돈을 좀 얻으려고 동무나 이웃을 사귀려 한다면 얼마나 서글픈가요. 어떤 떡고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노리며 다가서려 한다면 얼마나 슬픈가요.



.. 빨래를 널고 있는 아내의 등 뒤로 / 살금살금 다가가 / 안고 싶다, 안아보고 싶다 ..  (한 아름의 실감)



  유홍준 님 시집 《나는, 웃는다》(창비,2006)를 읽습니다. 시를 읽다가 자꾸 생각합니다. 이 시를 쓴 유홍준 님은 삶이 그리 안 즐거울는지 모르겠구나 싶습니다. 그닥 즐겁지 않아 그닥 웃음이 나오지 않는 터라, 자꾸 웃음을 떠올리거나 그리면서 시로 써야 한다고 느끼는구나 싶습니다.



.. 추리닝 입고 낡은 운동화 구겨 신고 마트에 갔다 온다 짧은 봄날이 이렇게 무단횡단으로 지나간다 까짓 무단이라는 거 뭐, 별것 아니지 싶다 봄이 지나가는 아파트단지 만개한 벚꽃나무를 보면 나는 발로 걷어차고 싶어진다 ..  (벚꽃나무)



  벚꽃나무를 걷어차고 싶은 마음은, 송전탑을 걷어차고 싶은 마음도 될 테지만, 가난한 이웃을 걷어차고 싶은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섣불리 어떤 것도 걷어차지 마셔요. 남을 걷어차면 나도 걷어차입니다. 사랑하셔요. 사랑은 돌고 돌아 사랑이 됩니다. 미움은 돌고 돌아 언제나 미움 그대로입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을 부를 뿐이에요. 전쟁은 평화를 부르지 않아요. 평화는 오직 평화가 부를 뿐입니다.


  그러니까, 벚꽃나무를 어루만지는 마음이 될 때에, 송전탑 때문에 아픈 이웃을 어루만지는 마음으로 이을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어루만지고, 돈이나 권력이나 이름에 끄달리는 바보스러운 이웃도 어루만지는 마음으로 이을 수 있어요.


  생각해 봐요. 전두환이나 박정희 같은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한가요.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사람도 얼마나 불쌍한가요. 나는 이런 이들이 그예 불쌍하게만 보입니다. 삶을 모르고 사랑을 모르며 꿈을 모르는 이런 이들은 이녁 스스로 이녁 삶을 아주 망가뜨렸습니다. 게다가 이녁 삶만 망가뜨리지 않고 이웃 삶까지 망가뜨리지요. 딱한 이들이요 가엾기까지 한 이들입니다. 이들을 걷어차 본들 더 불쌍하기만 합니다. 사랑 없이 자라서 사랑 없이 막짓을 해대는 이들은 그야말로 ‘사랑에 주린 가녀린 목숨’입니다.



.. 이 책이 없었다면 저 벌레를 때려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이 없었다면 더 뜨거운 냄비를 내려놓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이 없었다면 저 삐걱거리는 개다리소반을 바로잡지 못했을 것이다 ..  (벌레 잡는 책)



  책은 나무로 만듭니다. 책을 만들려고 숲에 있던 나무를 벱니다. 유홍준 님 시집도 숲에서 왔습니다. ㅈㅈㄷ이라는 신문도 숲에 있던 나무를 베어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톨스토이 님 책도 유홍준 님 시집도 ㅈㅈㄷ신문도 모두 똑같습니다. 모두 똑같은 숲입니다.


  숲을 어떻게 가꿀 때에 즐거울까 생각해 봅니다. 숲에서 피어날 꽃들은 어떤 내음을 퍼뜨려서 어떤 씨앗을 맺을 때에 즐거울까 헤아려 봅니다.


  《나는, 웃는다》가 배꽃과 같은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빌어요. 배꽃처럼 웃고, 배꽃처럼 노래하며, 배꽃처럼 우리들 고픈 배를 채우는 맛난 밥 한 그릇이나 열매 한 점과 같은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빕니다. 4347.9.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이달의 사락 h*******e 2014.09.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