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남의 두 번째 시집 『모슬포 사랑』을 지배하는 근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출하려는 시인의 '전복'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이 성적 이미지를 내장한 '올라타기'라는 단어로 표상하는 이 전복은 아이러니, 역설 등의 시적 형식을 통해, 일반적인 내용의 뒤집기를 통해 다양하게 표출된다. 그의 전복은 단순한 흑백논리의 뒤집기를 넘어서는데, 그것은 고정관념에 의해 가리워진 사물의 이면을 관조를 통해 들추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진정으로 바다를 거느린 사람들은 / 결코 높은 데를 오르려 하지 않고, / 깊이를 사랑할 줄 안다는 걸. / 물결을 거스리는 법 없이 / 바다와 함께 흔들리며 산다는 걸."(「거진항에서」)에서 처럼 그는 사물의 관조를 통해 '진정한' 바다 사람들의 숨겨진 욕망을 들춰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시인이 처음부터 이러한 단계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그의 자서(自序)에서 그는 "첫 시집 『정동진역』에서 소재를 박력 있고 재미있게 올라타보려고 노력했다면, 두 번째 시집에서는 아마 난해의 벽을 쉽고 아름답게 올라타보려 애를 썼지 않나"라고 쓰고 있다. 이처럼 시인은, 두 번째 시집에서는 소재만을 박력있고 재미있게 올라타기에서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이는 그것만으로는 "벽, 인식의 벽, 고정관념의 벽"(「그 시위 현장이 나를 성토하고 있다」)을 허물 수 없다라는 인지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시선을 돌려 "난해의 벽"을 올라타기 시작한 것이다. "난해의 벽"이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대상끼리의 소통이 원할하지 못함을 뜻한다. 그리고 이 대상끼리의 소통이 원할하지 못함은 그만큼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많지 않음을 의미한다. 시인은 대상과 대상사이의 소통을 원할하게 하기 위해 주위의 대상들을 관조하기 시작한다. 관조의 힘이 결국 대상을 소통시킬 수 있는 바탕임을 인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먼저 소시민의 애환을 질펀하게 표출한 시(「이땅 장흥 아저씨들 나라에서는」), 요즘 카페여인들에겐 "버팅기고 반항하는 쾌감"이 없다고 노래한 시(「아름다운 섬이 없다」), "허리, / 내 허리가 아프다 외쳐대는" 어머니의 잠꼬대로 비유해 분단현실의 아픔을 표출한 시 등 자신과 가까운 대상을 통해 "난해의 벽"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병폐를 폭로하고 들춰내던 그는 이제 폭로의 차원에서 화해의 차원으로 나아간다. 그는 서민들이 살던 '골목'엔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둥그런 삶이 존재하였음을 상기하면서, 이러한 둥그런 삶을 통해 "둥글지 못해 한 동네를 이룰 수 없는 것들, / 둥근 것을 깔아뭉개고 뻣뻣하게 서 있는 저 아파트"들의 모난 것들을 깎아내려 한다. 그리고 마음의 모난 것들까지 깎아내고자 시적 화자는 "나도 허리를 둥글게 말아 방문을 연"(「그 골목은 세상을 모두 둥글게 잠재운다」)다. 이렇듯 그는 겸손한 자세로 원할한 소통의 매개자로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그는 이 세상의 "어느 꽉 뭉친 응어릴" 풀기 위해 골몰한다. 주위의 대상을 찾아 모순들을 해결하려던 시인은 눈을 돌려 문제의 초점을 자기 자신에게로 맞춘다. 즉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반추하면서 어떤 새로운 모색의 길을 찾으려 한 것이다. 먼저 시인은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이나 온전치 못한 느낌을 주는 '삐거덕 소리'에 남다른 애착을 갖는다. 이 삐거덕 소리를 통해 "그 손이 청각 예민한 시인과 악수를 나누고, 그 쓸쓸하고 / 아름다운 것들의 깊이"(「삐거덕거리는 소리에 달라진 인생이 있다」)를 재게 되었기에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시인은 자신의 앞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뒷모습을 얼핏 보게 된다. 이어 자신의 책상 앞에 붙여진 한 스님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목도한다. 이어 "그 사진은 이미 사진이 아닙니다. 이건 살아 있는 한 장의 풍경입니다. /……// 저렇듯 영혼이 높고 깊은 사람은 /훌륭한 뒷모습을 거느리나봅니다. 그동안 이 지상의 앞모습만 보면서 가꾸어온 나는 세상을 갑자기 깨어나게 하는 / 뒷모습이 존재한다는 걸 몰랐습니다.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진정한 삶이라는 것을"(「뒤란을 가꿉시다」), 인간의 뒷모습의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뒷모습의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임을 인지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오늘부터 난 나의 뒤란을 가꾸기로 합니다."고 다짐한다. 여기에서 시적 화자가 자신의 뒤란을 가꾼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자신 위주의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삶, 남에게 베푸는 삶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그는 "그동안 가벼운 짐을 지고서 / 바퀴처럼 미끄러지고 헛돈 삶 / 오직 나를 위한 제자리였음을 뼈아프게 깨닫네. // 이제 나는 / 등에 큰 짐을 지고서 / 남을 사랑한다네. / 그 무거움으로 남을 용서한다네."(「짐에 관하여」)에서처럼 타인을 위한 삶으로 선회한다. 이와 같은 인식적 변모를 통해 그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사랑은 바로 남에게 향기를 주고, 서늘한 그늘을 주는 '등나무'와 같은 사랑이다. 이를 통해 그의 시적 여정이 주위 사물을 관조하던 곳에서 자신의 삶을 관조하던 곳으로, 그리고 자신의 뒷모습을 관조하는 데까지 나아갔음을 엿볼 수 있다. 이같은 그의 시적 여정의 추동력은 다름 아닌 노자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즉 그가 노자의 자연원리를 발견하고, 무위사상을 깨달음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시적 태도에서 그와 같은 시적 형상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점은 노자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시(「도(道)」, 「노자가 옆집에 오다[體道]」등)에서도 드러나는 바, 그는 이처럼 인간중심적인 시에서 탈피하여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봄으로써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가치개념을 창출하는 바탕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요컨대 김영남 시의 미덕은 "모험에 가득찬", "오른손, 왼손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난관을 극복할 줄 아는"(「등나무가 내 목을 비튼다」) 등나무의 사고와 같은 전복적 의지에 있다. 이러한 의지를 바탕으로 오늘도 그는 애초부터 꿈꾸어온 "고추처럼 매운 시"를 형상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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