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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침 일어나 보니 내가 벌레로 변해 있다면 얼마나 끔직할까요? 가족들은 나를 보고 얼마나 놀랄까요? 내 생활에는 어떤 변화가 발생할까요?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기는 할까요? 앞으로 삶이 어떻게 전개될까요? 주인공이 어느날 갑자기 벌레로 변신한 장면으로 시작되는 독특한 설정의 단편을 읽으면서 수많은 질문들이 머리를 스쳐갑니다. 하지만 카프카의 『변신』은 이런 변신이 어떻게 가능하며 어떤 감정일까 하는 측면보다는 이런 변신이 일어난 배경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린 왜 변신을 꿈꾸는가?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는 옷감외판원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샐러리맨입니다. 그 일을 좋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마지 못해 하고 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용기가 없어 그만두지 못하고 일을 계속한다는 점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직장인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그의 넋두리를 들어보면 이 점이 분명해집니다.
아 이다지도 힘든 직업을 선택할게 뭔가? 자나 깨나 여행이다. 이 일은 회사 내에서의 고유업무보다 훨씬 더 신경을 자극한다. 이 밖에도 여행의 괴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기차 연결에 대한 걱정, 형편없는 식사, 항상 상대방이 바뀌어 지속적이지 않고 진정으로 맺어지지도 않는 인간관계등이 바로 그렇다. 악마라도 있어서 이 모든 것을 가져가 버렸으면! (36~37쪽)
일하는 데서 오는 고통보다 가족을 부양하는 데에서 오는 보람이 크다면 이러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가족들로부터 단순한 경제적 부양자에 대한 대우 이상을 받지 못합니다. 흔히 가정을 인간의 감정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공동사회(Gemeinshaft)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익집단(Gesellshaft)의 일원에 불과한 셈입니다. 재미도 없고 희생만 하는 그런 사회생활에서 당연히 탈출하고 싶은 그런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지도 못하고 한 많은 이 세상과의 인연도 끊어버리지 못하는 주인공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됩니다. 바로 벌레로 변신하는 것은 그의 잠재의식을 반영하는 현상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이제 더 이상 가족을 부양할 필요도 없고 사실 가족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변신한 모습은 만족스러울까? 수 많은 변신이 있을텐데 왜 카프카는 벌레로의 변신을 생각했을까요? 벌레라는 말에는 행동의 굼뜸, 존재의 비호감과 같은 부정적 느낌이 앞서는데 말입니다. 아마 가족이라는 혈연관계가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껴앉고 함께 갈 수 있을지를 보려고 한 것은 아닐까요? 안타깝게도 카프카의『변신』 에 등장하는 벌레는 또 다른 차원의 구속을 받게 됩니다. 밖으로 나가려는 행동자체가 아버지로부터 제지를 받습니다. 경제적 능력을 잃어버린 아들은 존재 자체가 일종의 방해물로만 작용합니다. 방에서 나온 아들에게 아버지는 사과를 던져 주인공의 다치게 만듭니다. 주인공이 유일하게 친근감을 느꼈던 여동생도 '그'를 '그것'으로 부르기 시작하며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게 됩니다.
결국 벌레로 변신한 주인공은 죽음은 택합니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은 상처 영향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단식을 선택합니다. 가족들이 바라는 길을 선택함으로서 가족들과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벌레의 죽음의 의미를 가족들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아들의 죽음은 무겁고 힘든 짐을 덜어주는 그런 역할을 합니다. 그것을 기념이라도 하듯 가족들은 소풍을 갑니다.
카프카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카프카는 결국 20세기 산업사회에서 주변과의 관계속에서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조망하고 규명함으로써 스스로를 이해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변신에서는 직장생활에서는 물론 가장 친밀해야 할 가족관계에서도 의사소통의 단절현상을 고발함으로써 불안하고 불투명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직장생활에서의 진정한 자유의 부재를 탈출하기 위해 가족에게 기대보지만 결국 미완성의 좌절된 꿈으로 끝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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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있었다. 동그란 눈에 귀여운 외모. 분명 호감가는 스타일이었지만 그 친구와 몇 번 만나다보면... 사람들은 그 친구의 기운(특히나 어둡고 부정적인)에 눌려 같이 있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 친구에게는 나이 많은 부모님이 계셨다. 아버지는 많은 나이를 탓하며 집에만 계셨고, 엄마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 해... 그 친구는 대기업 사무 보조로 취직을 했다. 그때부터 친구는 그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허울 좋은 대기업 딱지를 이마에 붙이고 그날로부터 엄마의 사업자금(미싱을 가지고 의류 봉재 사업을 한다고 몇 번이나 들어 잡수셨는지...)을 대느라, 철딱서니 없는 남동생의 유흥비를 대느라 그 친구는 늘... 정신이 없었다. 처음 대기업에 취직했을 때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 친구였는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기 시작하자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고, 긍정은 늘 부정으로 변하게 되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난 미래도 없어, 난 결혼도 할 수 없어, 나 같은 것을 누가 사랑해주겠어.... 너무 많은 벽들 앞에서 친구는 무너졌고 그렇게 부정의 기운이 많아진 친구 주변에는 사람들 또한 없어지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왜 그 친구가 생각났을까? 그레고르 잠자는 외판 사원으로 아침 일찍 계약을 하러 가야 하는데 일어나보니 벌레로 변해있었다.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에 처음엔 경악을 금치 못하고 당황하고 걱정하던 가족은 어느새... 그를 식충이 취급하며 경멸의 눈을 가지고 바라보게 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가족의 생활을 아우르던 그레고르 잠자는 점점 변해가는 현실에 슬픈 고통을 느낀다. 돈을 식탁위에 놓으면 가족들은 놀라면서도 행복해 했다. 그대가 멋진 시절이었다. 나중에 그레고르는 가족 모두의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감당할 만큼 많은 돈을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만큼 화려한 시절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가족도 그레고르도 그것에 익숙해져 갔다. 식구들은 고마운 마음으로 돈을 받고 그도 기꺼이 돈을 내 놓았지만 특별한 온정은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다. (74 페이지) 우리는 흔히 밥만 먹고 하는 일 없이 지내는 사람을 식충이라 칭하며 비난하곤 한다. 한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자신에게 잘했던 가족은 자신이 쓸모없이 밥을 축내는 벌레로 변하자 차가운 시선으로 대하기 시작한다. 돈을 벌어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듯 처음에 벌레로 변한 자신이 안타까웠지만 차차 그 변화가 짜증으로 몰려온다. 돈이란 참 우스운 것이다. 돈이 있을 때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것 같던 사람들이 돈이 없어지면 우습게도 남남이 된다. 혹시 나에게 돈을 빌리러 오는 것은 아닐지, 내가 못 받은 돈은 없는지... 날이 새우고 상대를 보게 된다. 그게... 가족이라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읽는 내내... 결코 긴 글이 아님에도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순 없었다. 내가 어느 날 아무 쓸모없는 어떤 것으로 변했을 때 과연 내 곁에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자신이 없었다. 벌레 같은 존재가 없어지면 다른 누군가가 희망이 되면 그 뿐...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음에 씁쓸함을 느낀다. 과연 내 주변엔... 어떤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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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은 유대계 독일인이자 법학 박사의 타이틀을 가진 천재 작가 카프카의 작품이자 고전이다. 아버지의 강압적이고 출세 지향적인 교육 탓이었을까, 아버지나 프라하로부터 탈출하려는 계획이 좌절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몇 차례 실패한 결혼이나 폐결핵이란 병 때문이었을까 카프카는 줄곧 부정적 세계관을 가지고 작품을 썼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침대 위에 거대한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너무나 유명하고 끔찍한 문장이다. 그런데 다시 보니까 더 놀라운 사실은 자신이 해충으로 변해 있는 사실에 대해 주인공이 너무 무덤덤하다는 사실이다. 단지 외판원이라는 시달리는 직업 때문에 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변신의 이유를 얘기할 뿐이다. 마치 까뮈의 '이방인'에서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으며 태양 때문에 눈이 부셔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뫼르소처럼. 경제적 능력을 잃고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가족들에게 버림받게 되는 과정은 정말로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가장 이해되지 않는 인물은 어머니다. 어떻게 벌레로 변한 아들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봐주지 않는 것인지. 그리고 마지막에 죽은 그레고르를 뒤로 하고 소풍을 떠나는 가족들의 모습이란 정말 해도해도 너무 하다.
"만약 가족 중에 누가 벌레로 변한다면 어떻게 할래?"하고 이 책에 관심을 갖는 초등학생에게 물었더니 "먼저 이 사실을 광고해서 돈을 많이 번 다음에 그 돈으로 다시 사람이 되도록 고쳐주겠어요."하고 말한다. 아이들의 생각은 참 쉽다. 이 책을 함께 공부한 중학생들은 가족을 상대로 패륜범죄가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지만 작가가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바라본 것 같다고 말한다. 내 생각도 학생들과 같다.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 가에 따라 자신이 바뀌고, 인생이 바뀐다고 생각한다. 내 존재의 소중한 가치를 인정하고, 가족 가운데서 사랑과 소망을 느낄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