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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소설의 글맛을 조금씩 느끼면서 당연히 찾아본 게 그의 산문집이었다. 무심한 듯 멋드러진 그의 문체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그 멋이 자연스레 스미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수저>는 그 맛과 멋이 절대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최고봉이었다. 강하지 않으면서 진한 맛이 느껴지고 가볍지 않으면서 산뜻한 맛을 간직한 그런 글맛, 음식 맛이었다.
음식에 대한 산문을 낸 작가는 많다. 그것이 어린 시절의 추억이든, 개인적인 경험이든, 여행에서 보고 들은 박학다식한 지식이든 나름 재미도 있고 그 존재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약간 독자를 호도하는 듯한 느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느낌이 좋은 분위기가 났다. 어머니에 대한 얘기는 초반에 조금, 끝부분에 조금 나오고 나머지 글은 각각의 우리 음식에 대한 윤대녕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결한 음식에 대한 지식과 억지로 멋 부리지 않은 윤대녕의 글과 함께 정말 멋진 분위기를 던져준 것은 책의 전체적인 톤이었다. 칼라도 아니면서 완전 흑백도 아닌 ‘정갈한’ 사진들이 각각의 음식에 맞게 들어가 있었다. 가볍지 않으면서도 정갈하고, 무겁지 않으면서도 어느 것과도 섞이지 않은 음식 제대로의 맛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글과 사진이 한 쌍의 숟가락과 젓가락처럼 딱 들어맞게 들어가 있었다고나 할까.
이 책 속에는 웬만한 한국음식이 모두 들어가 있다. 한국음식의 기본이 되는 된장, 간장, 고추장, 김치부터 소, 돼지, 닭 그리고 갖가지 생선, 젓갈 등등 또한 윤대녕의 글에 빠지지 않는 술 종류, 윤대녕이 좋아하는 제주도, 섬진강변의 먹을거리가 때로는 봄내음과 함께 또 때로는 가을바람과 함께 밥상에 차려진다. 그래서 그 맛이 또한 일품이다.
이 음식 산문집의 또 다른 특징은 윤대녕이 그냥 생각난 대로 끼적거린 글자나 경험만이 아니란 것이다. 앞서도 썼지만 각각의 먹을거리에 대한 간결한 음식에 대한 지식이 아주 자연스레 펼쳐지고 그 지식이 윤대녕의 펜 아래에서 윤대녕의 문체가 된 것이다. ‘팀채-딤채-짐채-김채’가 김치라는 말로 굳어진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기장 해변에서 열리는 멸치축제에서 어부들이 그물털이를 하는 동안 그물 밖으로 튀어나오는 멸치들을 주워담는 사람들은 모두 가난한 지역 토박이나 시장장사꾼이라는 말을 처음 들으며 마음이 한 켠 싸했었다. 갖가지 음식에 대한 기원부터 지역 특성, 다르게 해먹는 음식 요리법도 볼 수 있고 때로는 윤대녕이 되어 함께 염치가 없기도 한다. '팔자에 없는 다금바리회'에 얽힌 이야기에는 함께 얼굴 들기가 민망한 것이다.
윤대녕이 말하는 어머니는 또한 우리의 어머니와 다를 바가 없겠다. 아무도 없고 혼자 식사를 하게 되면 아무것도 없는 밥상으로 식사를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울컥하지 않을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왜 그런 식사를 하시냐는 물음에 어머니는 변명조로 말한다.
그에 윤대녕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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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들고 나니 점심 먹을 시간이 아까워졌다. 다 읽고 나니 너무 빨리 읽어 버려 더 아까워졌다. 이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갖는 안타까움이다.
맛에 대한 글, 음식에 대한 글, 유명한 음식점에 대한 글을 꽤나 읽은 듯하다. 읽을 때마다 맛에 대해, 음식에 대해 갖고 있는 사람들의 열정이 참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음식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 있어야 마침내 글로 쓸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이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은 짐작했지만 맛과 음식에 대해 이토록 깊은 열정을 갖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사랑까지 담겨 있으니 그 깊이가 더할 수 있었겠지. 그렇다면 그런 게 조금도 없는 나는 무엇인가.
나는 맛도 잘 모르고 음식도 잘 못하고 어머니에 대해 남들이 말하는 만큼의 사무친 그리움도 갖고 있지 않다. 모든 게 다 그저 그런 정도이다. 특별히 맛있는 것도 특별히 맛없는 것도 없고 어머니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머니에게 어떤 섭섭함 같은 것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 그저 그런 사람. 그래서 내가 심심한 사람인가. 그런데도 이 책이 이토록 내 마음에 와서 잠기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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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제목이 '어머니의 수저'가 아니라 '윤대녕의 수저'였다면 더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제목을 보고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에 숫가락 얹는 기분으로 보게 될 줄 알았으나 책의 내용을 윤대녕의 식도락이었다. 윤대녕의 식도락은 제주 음식에 살짝 넋을 놓고 있는 내가 읽기에 찰싹 달라 붙는 찰떡 같았다.
수저로 시작하나 그 다음부터는 구체적인 음식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음식 이야기에 저자의 이야기가 붙어 나도 한번 그 장을 맛보고 싶다거나, 그 김치와 그 장아찌를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젓갈의 짭쪼롬하면서 원재료에 감춰져 있던 들쩍지근한 맛이 입가에 도는 듯 했다. 소, 돼지, 닭, 개가 밥상에 올라올때의 이야기, 버릴 것이 없는 명태 이야기가 식욕이 돋운다. 재료 이야기가 지나고 장소와 재료가 어우러진 이야기들은 마음을 살랑거리게 하며 그 곳에 나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했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우리의 먹거리 이야기, 생각만해도 가슴이 설레이는 제주도 음식 이야기는 이미 마음을 저 멀리 제주도로 날린다.
본문에 나온 친하게 지냈다는 사진 작가가 이 책의 사진을 찍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이 책의 사진들은 식욕을 느끼기에는 너무 아득하고 멀어서 어떤 사진은 생기 조차 없어보인다. 음식 사진이라는 것이 생생해야하는 것인데, 특히 갈치 사진은 한참 맛이 간 것 첨 보여 식욕이 뚝뚝 떨어지게 한다. 세피아 톤과 아웃포커싱은 늘 사물을 우아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별 한개는 뺀다.
제주도에서 함께 문어라면을 먹기로 한, 껌정드레스님께 선물 받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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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읽고, 서가에 꽂아두었다가 이번에 다시 꺼내 읽었다. 생각해 보니, 1994년의 <은어낚시통신>부터, 한 12년 정도 이 작가의 책은 무조건 다 읽었던 시절이 있었다. 소설이건 수필이건, 이 작가의 문체는 무언가 사람을 '사무치게 만드는 맛'이 있다.
이 책은 음식기행서같으면서도 객관적 정보보다 작가의 주관이 많이 들어간 수필이다. 비싼 서양음식보다 작가의 삶과 관련해 시장의 음식, 한국 서민의 음식을 주로 거론한다. 그리고 자연환경의 영향과 음식을 같이 거론한다. 곳곳에 우리 고전과 한문, 불경 인용이 숨어 있어서 읽기 맛나다. 읽는 맛과 먹는 맛을 다 보여주는 글이라 하겠다.
개인적으로, 3년만에 다시 읽고 조금 놀랐다. 우선,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 작가의 문체에 전처럼 그리 매혹되지 않는 점. 다음으로, 처음에 읽었을 때 잘 몰랐던 우리 음식문화나 역사배경이야기를 이제는 편히 알아들을 수가 있었던 점.
여하간, 이 책을 다시 읽은 이유는 전적으로 친구 블로거의 여행기 때문이었다. 제주도에 다녀온 그 친구의 음식 사진과 글을 보자, 우리 한국의 토속 음식에 대한 이 작가의 산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시 읽고, 이 책을 그 친구에게 보내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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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 온지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고향의 향수는 더 그리워지고 더 깊어진다. 여러가지 그리움과 깊음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으뜸은 아마도 어머니에 관한 것일 것이다.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 포근한 가슴도 있겠고 어머니의 구수한 손맛이 있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 있어 일년에 설과 추석 명절을 포함해서 서너 번 밖에 고향을 가지 못하곤 하는데 먼 길을 달려 가장 만나고 싶은 것은 어머니이고 가장 찾고 싶은 것은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상이다. 가지 수는 많지 않지만 밥 한 숟가락 마다에 반찬을 어는 것 한 가지라도 빼먹지 않고 먹다 보면 먹는 즐거움이 그 어떤 즐거움보다 앞선다. 상다리가 휘어질듯한 많은 음식이 놓여 있어도 어느 것을 먹어야 맛있을지 몰라 고민하면서 갈 길 헤매는 진수성찬에 놓인 수저 보다는 어머니 밥상에 놓여 있는 수저가 훨씬 더 수저로써의 역할에 충실함이 분명하다. <어머니의 수저>를 쓴 저자는 된장, 김치, 젓갈, 닭, 조기 등 여러 가지 고향의 음식을 소개하면서 전국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파블로프 개가 있다. 먹이주기 전에 종을 울리고 먹이를 주고 이를 반복하다 보니 종이 울리면 먹이를 주는 줄 알고 개가 침을 흘리는 개를 대상으로 한 조건반사 실험이다. <어머니의 수저>를 읽으면서 내 자신도 조건반사 실험이 대상이 된 듯이 침샘을 자극한다. 책 속 구석구석에 담겨 있는 어머니의 정성, 고향의 맛을 읽다 보면 어렸을 때 어머니가 차려 주신 밥상을 어디에선가 곧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침을 흘리게 하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많은 가정이 맞벌이를 하다 보니 가사일을 부부가 분담하게 되고 식탁을 준비하는 것도 더 이상 여자의 몫 만은 아니다. 오래 전에는 부엌이 금남(禁男)의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남자도 기꺼이 그 공간에 참여하고 식탁을 준비하는 부엌의 변화가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서 앞으로 수십년이 지나다 보면 ‘아버지의 수저’, ‘아버지의 밥상’이 고향의 향수를 불러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어머니의 수저면 어떠하고 아버지의 수저면 어떠하리. 부모님의 손맛이 그리워 다시 찾고 싶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인상깊은 구절] 뱃속에 있을 때 우리는 어머니가 정성스레 삼킨 음식을 탯줄을 통해 받아먹었다. 세상에 나와서는 어머니의 젖을 빨고 어머니가 손수 떠주는 음식을 먹으며 자랐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수저질을 배우면서 우리는 어머니의 손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어린 자식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세상의 어머니들은 어떤 생각에 잠길까? 가슴이 뿌듯하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섭섭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p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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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맛을 내는 장본인이면서도 정작 본인의 상차림은 늘상 간단하다 못해 박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불만스러워 했는데 지금의 나도 굳이 이것저것 차림하지 않은채로 간단히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이는 일부러 자신만을 위한 차림을 하기도 한다지만, 그렇지 못한 아쉬움을 내 아이도 느껴가며 기억할런지.......
주변을 둘러보면 이러저러한 맛집이 넘쳐 나는 현실인데도 그리워하며 기억하는 음식이 있는지, 그 맛을 어떻게 맛깔나게 설명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서인가 나만의 맛을 보편적인 느낌으로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이들, 그러한 사람들이 참으로 대단하다 여겨지는데...., 그들은 맛 뿐만 아니라 그 감성과 어우러진 느낌이 어떤 것이라 꼭 집어서 음식과 연결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스러울까 부럽기 그지없다.
분명 그들도 차려진 음식의 다양성 만큼이나 그 독특하고 감칠맛 나는 것들을 나타내려면 그만큼의 감각이 있어야 할 듯한데...., 타고난 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러한 것을 조목조목 나열해 간다는 것은 녹록치 않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러나 자꾸만 관심을 갖고 만드는 과정이나 그 맛을 음미하다보면 새로운 느낌의 표현이 저절로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사진속의 음식들처럼 담백하게 때론 진국처럼 아니면 속이 시원하도록 칼칼하게 묘사되어진 듯한 느낌이다. 모두의 입맛을 돋구는 장, 젓갈, 김치 그리고 생선과 육류, 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망라되어져 있다.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진 것들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맛보지 못한 것도 있고, 안다해도 제대로 만들어 차려내지도 못하는 입장에서는 그것들의 맛이 어떨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제는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한 밥상을 대할 때나, 때론 상다리가 휘도록 푸짐한 음식을 대할 때면 놓여진 음식들을 그저 비워내기 보다는 그 음식의 맛을 통해 정성과 추억을 기억하며 맛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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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책은 처음 사고, 처음 봤다. 그간 이상문학 수상집에 수록되어 있던 그의 작품은 정말 예술이였다. 하지만...그의 책까지 구입하기에는 조금 망설여지는..그의 문체.
솔직히 김훈이 뛰어난 작가란 생각이 들지만 나는 그런 문체를 솔직히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좋아하지 않다기 보단...읽다가 적당히 지루함도 느끼는 편이다.
윤대녕의 글 마찬가지로, 뭐랄까 문체에서 솟아나는 힘이 나를 압도했다. 소설이 아니라 수필처럼 쓴 것이라서 읽기는 수월했다. 하지만, 모르는 음식이 나오거나 듣거나 보지도 못했던 생선이 나올때는..정말 그냥 넘겨버리고 싶었다.^^;;
아마...윤대녕의 다른 작품을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일지는 모르겠으나 솔직히 어머니의 수저,는..좋은 책인줄 뻔히 알면서도..내 느낌으로는 좋다고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조만간 또 그의 작품을 두루 섭려하다보면..나는 그가 좋은 작가이라는 것을 분명히 느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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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맛 산문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은, 대략 작가의 name value를 이용한 매출 증대를 기저에 깔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음식에 대한 기억은 곧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라는 등식을 이용하여, 우리들의 맛에 대한 향수와 어머니에 대한 향수를 골고루 자극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산문이라기보다는 정보서에 가깝다. 사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윤대녕이 음식 칼럼니스트는 아니니까...) 윤대녕이라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장기를 최대한 살려 음식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다른 책들과는 조금 다른 무엇이었다. 하지만 책은 (음식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더불어) 늘어나는 여타의 음식 관련 칼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윤대녕이 쓰고 있으니 그 매끄러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한식을 얘기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지나갈 뻔했다. 그것은 쌀, 곧 밥이다. 밥은 우주의 모성을 뜻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밥을 체體, 국을 용用이라 했다. 여기서 ‘체’는 누구나 짐작하듯 어머니다. 이성복의 시 <밥에 대하여>의 마지막 구절은 이를 너무나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오 밥이여, 어머니 젊으실 적 얼굴이여!”
수저에서 시작하여 한식을 거쳐 된장, 간장, 고추장의 장 종류를 지나 김치와 장아찌,젓갈의 반찬류를 지나면 소, 돼지, 개, 닭이라는 고기류로 이어진다. 여기에 명태, 고등어, 갈치, 조기의 생선류를 지나 제주도의 각종 음식들 후에는 소주와 맥주, 막걸리와 청주와 같은 주류를 다룬다. 이렇게 우리가 즐기는 음식류들을 거치고 난 후에는 노량진과 남대문, 경주와 섬진강 등의 음식들을 찾아나서는 글들이 등장하게 된다.
“된장은 흔히 오덕五德의 성질을 품고 있다고 한다... 단심丹心 - 다른 맛과 섞여도 제 맛을 낸다. 항심恒心 - 오랫동안 상하지 않는다. 불심佛心 -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제거한다. 선심善心 - 매운맛을 부드럽게 한다. 화심和心 - 모든 음식과 조화를 잘 이룬다.”
다양한 정보들을 주고 있어 싫지는 않지만 그렇다고해도 윤대녕이 쓰는 음식 이야기에 기대하는 색다름이 부족해보인다. 널리고 널린 음식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은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음식 칼럼니스트나 자유기고가들에게 맡겨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윤대녕이 해야 할 일은 열심히 (요즘의 빈약한 윤대녕 필모그래피를 보자면 더더욱) 소설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어부들이 그물털이를 하는 동안 그물 밖으로 튀어나온 멸치들을 열심히 통에 주워담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한테나 허용된 것은 아니었다... 대개는 할머니들로 가판대에 앉아 손님에게 고작 천 원, 이천 원을 받고 한 그릇씩 멸치를 담아 파는 사람들이었다. 오직 그 사람들만이 멸치를 공짜로 주워담을 수 있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먹고살라는 어부들의 배려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속인가.”
그게 아니라면 위처럼 아름다운 풍속들을 가지고 유려한 산문을 제대로 써내는 것도 괜찮았을 것이다. 특히 음식과 어머니라는 잘 맞는 궁합을 이용하여 우리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글도 좋았으리라. ‘늙은 여자 혼자 먹는 밥상’에는 ‘밥 한 그릇과 짠지 한 가지’면 된다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의 이력을 (그러니까 요즘 엄마들이 아니라 예전 어머니들의 이야기) 사려깊게 밝혀주는 것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 음식을 얘기함으로써 우리는 언제든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또 어느 곳에서든 그 이름을 불러볼 수 있다... 돌아보니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 외의 음식은 내게 늘 군림을 강요했고, 나는 그것들과 갈등을 거듭해야만 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성인됨이었고 이 넓은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었다...”
하지만 산문집의 시작 부분에서 잠깐, 그리고 산문집의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제목은 어머니의 수저임에도 불구하고) 글에서 어머니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우리들이 먹는 모든 음식에 어머니가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라고 따진다면야 할 말 없지만 그런 함의로 풀어나가자면 이 세상에 어머니의 이야기 아닌 것은 또 어디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