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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준 작품이였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트리스탕의 시각과 아멜리의 시각으로
각각 표현을 한 것 같다..
마지막까지
다 읽고나면,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결말에.. 놀라지만,
책을 읽음과 동시에,
내 자신의 연애경험이
생각나면서
공감을 느끼게 하는
멋진 한 편의 글이었다.
사랑에 대해서
알고싶은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글이다..
환상으로서의 사랑이 아닌,
현실로서의 사랑... [인상깊은구절]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
| 실망스럽다. 나는 이 책을 ‘샐린저’의 이름이 광고문구에 들어갔다는 이유 하나로 구입했다. 또 얄팍한 상술인 표지의 작가 ‘사진’과 약력에도 왠지 호감을 느꼈었다. 철학적인 면모가 느껴지는 그의 인터뷰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고립시켜 글을 쓴다는 둥, 화려한 문학상 경력까지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 만한 승승장구한 기록들. 하지만 책의 수준은 극히 절망적이다. 작가의 자기철학에의 오만이 느껴지는 글을 읽으면서 내내 가벼운 역함을 느꼈다. 언제든지 덮고 싶었지만, 구입한 돈이 아까워서 그러지도 못했다. 이 글이 나에게 최악이었던 이유는, 내가 가장 쓰고 싶지 않았던 문체의 글을 이 사람이 몸소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자신의 철학을 오만하게 늘어놓는 데만 그친다. 이 소설은 ‘사랑’을 다루고 있는데, 그는 독자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느끼게 하기보다는 그의 잘난 ‘철학’만 어설프게 늘어놓는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시작을 믿어서는 안된다. 시작은 거짓말을 하니까.’라는 구절이 있었다. 이것이 자신의 사랑에 대한 철학이라면 이 말을 그대로 하기는 쉽다. 하지만 작가라면 이것을 독자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녀석은 비열한 인간이다.’ 라고 멋부리며 짧게 말하기보다는, ‘그 녀석은 샤워 후에 기숙사 복도를 걸어가며 젖은 수건으로 지나가는 아이들 엉덩이나 후려치고 다니는 인간이다.’라고 말하는 편이 좋다. 이 작가의 책을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뭐라고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프랑소와즈 사강의 책을 읽었을 때도, 처음엔 매우 어설프게 느껴졌지만 그녀의 다른 책에서 대단한 정수를 발견한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사람도 이 한권의 책으로 평가하기엔 이르다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집어들기엔 많은 시간이 소요될 듯 하다. 아, 그치만 이런 글이라면 정말 자기 일기장에만 적어두길 바라 마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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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은 넷째날 - 마지막 날 ]
오늘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을 읽었다. 꽤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책이었다. 나머지라고 해도 2/3정도 남은 양이었지만. 이 책을 처음 샀을 때, ''어머, 이거 얇다. 빨리 읽을 수 있겠네? 한... 한 시간?'' 하고 중얼거렸던 것과는 다르게 참 길게 오랫동안 읽은 책이었다. 섣불리 예상하지 않기로 했다. 작가의 나이와 외모, 책 두께로 인해 쉬울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게 지금은 부끄럽다.
처음부터 ''이별''을 예견하고 시작된 소설이어서 그럴까? 읽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냉정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한 서술자의 말투는 더욱더 무겁고 슬프고 복잡한 사랑의 감정까지 주인공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읽는 사람을 붙잡아 놓고 있었다. 처음부터 어떤 스토리가 전개될 지 ''뻔히'' 들여다보이는 소설인데도 ''뻔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서술자의 냉랭한 말투로 풀어나간 두 사람의 감정묘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랑은 뭔가 특별하고 운명적인 사건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게 있다면,
사랑은 뭔가 특별하고 운명적인 ''착각''에서 시작되나보다.
자신이 죽을 때 옆에서 울어줄 수 있는 자신의 사랑, 소멸의 이미지를 동경하는 여자 아멜리가 무작정 길에서 만난 트리스탕의 뒤를 쫓아간 것 처럼, ''사랑해''라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랑에 환멸을 느끼는 트리스탕이 아멜리의 연약함을 보고 사랑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작가가 그것을 ''착각''이라고 못박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책을 덮고 나서도 대체 이게 정말 사랑이야기인 거야? 하고 되물었다. 사랑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아멜리는 첫눈에 빠진 사랑이라고 해도, 트리스탕은 왠지 사랑이 아닌 것 같았다. 끝없이 아멜리 에게서 도망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트리스탕에게도 아멜리가 사랑이었을 것 같다. 연민을 가득 채운 마음이라고 해서 아멜리와의 동거를 계속하는 것, 결혼을 하기로 하는 것, 평생 같이 살기로 약속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면 하기 힘든 결정이다. 게다가 트리스탕은 고민하면서 망설이면서 점점 예전의 트리스탕의 모습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트리스탕이 변하고 있었다.
모르겠다. 감정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랑.
다소 낭만적인 시각으로 그것을 바라봤던 나에겐 다소 무겁고 냉정한, 그리고 현실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사랑이야기이었다. 앞으로 내가 사랑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것도 생각해보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트리스탕처럼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내 앞에서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다면, 아멜리처럼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참아낼 수 있을까. 글쎄, 아직은. 어쩌면, 앞으로도. 내가 고통스럽게 되면 떠나고 싶을 것 같다. 떠날 것 같다. 이기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사랑한다고 해서 계속 희생하고, 참고, 고통스러워해야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 같다.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멜리와 같은 사람이라면 어떨까. 죽어감을 느끼는 사람, 아프지도 않으면서. 따뜻함 속에서 사라지고 싶어하는, 자신의 죽음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을 사랑하기에도 힘들 것 같다. 그래, 이 두 사람, 단단히도 착각에 빠진 거다. 내가 보기엔 두 사람 다 감정에 문제가 있다. 한쪽은 서툴고, 아집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고, 한쪽은 사랑이 결핍되어 그 부분을 억지로 채워 넣으려고 하는 아기같은 결벽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두 사람 다 뭔가 부족해.
하지만 그들은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시작이 어떠했든 결말이 어떠했든, 적어도 나처럼 이기적이어서 사랑하기를, 받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 않은가. 무겁고, 슬프고, 비가 온 뒤 진흙탕에 빠진 것 처럼 질척질척거리고, 아프고, 이상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사랑 안에서 내가 가장 가지고 싶던 인간성을 발견했다. [인상깊은구절] #22(56쪽) " 그녀를 떠날 것인가? 어쩌면 그것이 해결책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지만 누군가를 고통받게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두 번의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다른 이를 실망시키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결별을 하고 싶은 절실한 욕망을 철회하는 데는 눈물에 젖은 아멜리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은 그녀와 행복하지 않았다고? 자신만의 자유를 되찾아야만 한다고? 또 그렇게 되찾은 자유로 무엇을 할 것인가? 아마도 또 다른 정복의 대상을 찾아 떠나겠지. 하지만 그녀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아무것도. 그는 이미 그녀의 정체성을 이루는 한 부분이 되어 버렸는데. 그녀를 떠나는 것은, 길가에 어린아이를 내팽개 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녀에게 양식을 끊어 버리는 것과 같다. 그런 생각을 하자 공포의 전율이 그를 스쳐 갔다. 절망에 빠진 그녀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약자의 힘은 종종 상대방에게 잠재적인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귀착된다. 어쨌든, 그는 결정적인 덫에 걸려든 게 분명해 보였다." |
| 누구나의 연인,, 사람들은 자기만의 연인을 가지고 있다. 어찌보면 자신의 환상속에 자기만의 연인을 가두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나의 연인은 이랬으면 좋겠고, 내가 생각하는 커플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고,,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은 이런 것이고,,. 나의 연인이 내가 생각하는 모습에 꼭 맞기를 바라고, 거기서 어긋나 버리면 혼란스럽다. 다른 행복한 연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자책하기도 한다. 트리스탕 같은 남자의 심리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기를 바란다. 자신의 남자로 만들수는 없겠지만, 이런 남자에 대한 환상을 깨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처음부터 이럴걸 알았다는 그,, 왠지 모르게 씁쓸해 진다. 이 남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고 책을 읽어갔지만,, 끝내 이 남자는 트리스탕 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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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보고 일기 시작했으 때 나는 꽤 많이 당황했었다. 이유는 바로 범상치않은 문체 때문이었다.
나름대로 매력을 가진 그런 문체로 인해 나는 빨려들 듯이 글을 읽어 버렸다.
바람둥이 트리스탕... 그리고 아멜리... 처음에 제목을 봤을때는 여느 소설과 마찬가지로
남녀를 주제로한 알콩 달콩한 사랑 이야기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가꾸어 지고 과장된 그런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사랑(사람?)이야기 이다.
흔히들 사랑을 하게 되면 눈에 콩깍지가 씌인다고들 말한다.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또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런 콩깍지.. 그것이 바로 환상이 아닐까...
반전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을 읽을 때에는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던 까닭은 왜일까..
하지만 이런 콩깍지, 환상들이야 말로 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줄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이 든다.
책 뒷부분의 옮긴이의 말 또한 인상깊다.
"사랑은 거짓말을 한다" [인상깊은구절] "그녀는 마치 도둑처럼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 때때로 트리스탕은 단번에 모든 것을 다 내던져 버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 어딘가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다. |
| 처음 이 책을 펼쳐들었을 때, 목차를 보고 나니 아리송해질 뿐이었다. ''폴란드 서점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와 ''그녀는 도둑처럼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로 이루어진 단 두개의 챕터. 나름대로의 상상을 펼치며 열은 책에는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낯설게만 느껴진 그 문체에 어쩜 그리 빨리 적응할 수 있었는지는 나도 의문이다. 사랑했던 사람, 이제 긴 시간이 흘렀지만 문득문득 생각나는 사람. 그 사람에게 나는 어떤 의미였을지, 지금은 어떤 의미일는지 궁금한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리라. 두 개의 챕터는 바로 사랑을 나눈 두 주인공의 시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내가 아닌, 상대방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사랑은 또 다른 맛이 났다. 어쩌면 《누구나의 연인》의 주인공들은 평범하지 않다고 보여질 수 있다. 트리스탕의 자유분방함, 아멜리의 소심함.. 서로 상반되는 기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들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아무도 설명하기 힘들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자유분방함과 소심함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해하기 힘들만큼 천방지축인 트리스탕과, 이해하기 힘들만큼 미련스러운 아멜리를 보면서도 끝까지 손을 떼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나 자신에게 이러한 모습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누구나의 연인이면서, 한 사람의 연인이기도 한- 이 책은 그 사람이, 바로 우리 모두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
| 사랑은 마약보다 더 강한 중독성을 지녔다고들 한다.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세상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것만 같았던 시간들이 내게도 있었다. "누구나의 연인"이 아니라 "나만의 연인"이기를 바라면서 내 안의 집어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다보니 사랑은 변한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영화에서 나오는"'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와 반대되는 말이지만 동감가는 글들이다. 영화 "오페라의 유령"에서 나오는 크리스틴과 에릭의 사랑을 엿보아도 사랑은 일방통행 이어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을 주었던거 같다. 플로리앙 젤러의 문체는 참 독특하다라는 느낌도 들고 트리스탕의 애정행각에서는 조금 표현을 자제했던거 같다. '그녀는 마치 도둑처럼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신중함 자체가 신중해질 때, 또한 여성성의 대담함 뒤로 신중함이 슬그머니 숨어버릴때 진정한 아름다움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폴란드 서점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트리스탕은 그 순간을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지경까지 시들어 버리게 내버려 두었단 말인가? -P 80 트리스탕은 모든 여자들의 연인으로 살고 싶어하면서 하룻밤을 보내고 여자들이 아침이면 스스로 떠나주기를 바란다. 불안정하고 바람끼가 다분하다는걸 알면서도 아멜리는 그런 트리스탕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은 참으로 ~ing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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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다. 잔잔하게 샹송음악이 흐르고 밋밋한듯, 그러나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섬세하게 잘 표현된 그런 프랑스 영화말이다.
바람둥이 트리스탕에게 한 여자가 다가왔다. "폴란드 서점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트리스탕과 한 여자 아멜리의 사랑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한 여자에게 안주할 수 없는 남자 트리스탕의 삶에 아멜리란 여자가 들어왔다. 평생 한 여자만 보고 살 수 없고, 그럴생각도 없었는데, 어느새 둘은 한 집에서 동거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생활을 정리하고 싶은 트리스탕, 아멜리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만, 이상하게 그게 잘 안된다. 그녀를 떠나버리면 혼자 남은 그녀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인가? 그녀를 사랑하느냐 하면 아니다 라고 말하기도 머하고, 그렇다고 대답하긴엔 뭔가 부족하다. 결혼반지까지 준비해서 떠나 여행.. 마지막 순간 트리스탕은 도망치듯 그녀 곁을 떠났다. 떠나는 그 순간에도 그는 혼자 마음아파할 그녀를 걱정했다.
그 여자 아멜리.. 그녀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불행했던 어머니를 보면서 그녀의 심장은 굳어버렸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정말 내가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녀는 "폴라드 서점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란 물음으로 트리스탕에게 일부러 접근했다. 그가 자신을 버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아멜리는 트리스탕의 바람까지도 감수하며 지냈다. 그녀는 절대 그를 떠날 수 없었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더라도 버림받는 것 보단 참고 사는게 나았다.
하지만, 결국 그는 떠났다.
처음 만남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두 남녀는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 두사람의 해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그게 바로 사랑을 대하는 남,여의 차이가 아닐까.. 트리스탕은 누구나의 연인이 될 수 있지만, 끝까지 한 여자의 연인이 될 수는 없는 남자다. 그걸 느끼는 순간 트리스탕은 불행한 남자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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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시작되면 그동안 자글자글하던 사람들의 인적이 끊긴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상황을 즐기기도 하지만,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이와 같은 상황 때문에 사랑을 불신하기도 한다. 사랑이 시작되면서 모든 것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를 램프에 담겨 불꽃으로 산화하는 불안감이 대신하게 된다. 그렇게 램프 속의 불안감이 완전히 연소되고 나면 이제 새로운 추억이 램프 속의 빈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 사랑은 때때로 건조한 것... 그러니 퍼즐을 닮은 텍스타일 디자인처럼 혼란스럽지만 결국 정형화라는 종말에 안착하는 사랑을 다루는 소설도 생기게 된다. 플로리앙 젤러의 소설이 그렇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어느 날 길을 걷다가 폴란드 서점의 위치를 묻는 한 여자를 만난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자들을 욕망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그’ 였지만, ‘그가 자신을 안아 주고, 일을 치르기를’ 기다리며 ‘사랑의 행위 도중 그가 잠시 동작을 멈춘 순간’ 눈물을 보이는 이 여자에게만은 예외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연애 지상주의를 부르짖으며 자유 연애주의자를 자처하던 트리스탕은 그렇게 아멜리와 동거를 시작하게 되고 그때부터 끊임없는 갈등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우리는 자기 앞의 여인과 또 다른 여인들을 원한다. 자기 앞의 삶과 그와 반대되는 다른 삶을 원하는 것처럼...”
아멜리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 트리스탕은 고뇌한다. 자신의 주변을 유영하는 모든 여인들의 기척에 트리스탕은 흔들린다. 어쩌면 그는 그 여인들을 유혹하는 데에 죄의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아멜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데에서 더 큰 부채의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자신은 자유로와야 하는데 어째서 지금 아멜리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지,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트리스탕은 아멜리와 함께 한다. 그녀가 흘렸던 의문의 눈물 앞에서 그는 연약하다.
소설은 두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앞 장인 ‘폴란드 서점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가 트리스탕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되고 있다면, 뒷 장인 ‘그녀는 도둑처럼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는 아멜리에게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녀와 트리스탕의 만남에서 그 시작은 누구에게 있었던가 하는 비밀이 풀리고, 아멜리는 어째서 트리스탕에 심하게 의존하는가 하는 이유의 연원이 밝혀진다.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 거짓으로 점철되어버린 시작을 했고, 그들의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운명임을 스스로에게만 실토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과연 어떻게 될까...
“그는 때때로 이중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살고 있는 이중적인 삶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무가치한 것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그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는 한 여자와 살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대신 그녀를 속이고 고통받게 하지 않는가...”
진퇴양난에 빠져 있는 듯한 트리스탕과 배수의 진이라도 친 것 같은 아멜리... 트리스탕의 연애와 아멜리의 사랑이라는, 관계의 표피와 속살을 향한 소설의 입질은 진지하다. “르 클레지오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으리라.”고 선언한다는 79년생 (매우 멋지게 생긴) 작가의 작품은 그가 지향하는 (프랑스의) 선배 작가들을 닮으려는 듯 (연애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렇게 애써 진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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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현실에 충실하기에 사랑을 할 때 생각따위 하지 않을 것이라
속단했던 나의 편견을 산산조각 낸 책
사랑하면서도 사랑을 부정하는 그는 역시 타고난 바람둥이다.
그렇지만, 상처주기를 두려워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바람둥이가 되고 싶어하는 그를 발견했다.
바람둥이가 되고 싶어하는 그를 만든건 아멜리.
아멜리의 폴란드 서점이 어딨는지 아세요?가 특별한 암호처럼
다가오기 시작한 순간 둘에겐 이미 정해진 사랑의 굴레가 시작된것이다.
구구절절 생각속에 머물던 , 사랑을 하면서 느낀 감정들이
문장으로 . 단 몇 문장으로 표현 할 수 있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을 아니할 수 없다.
또 얼마나 잘 생겼는지 하하;;
작가의 얼굴이 나온 책에는 신뢰가 간다.
이 책 역시 그 신뢰를 버리지 않았다. [인상깊은구절] 종종 삶 속의 사건들은 다시 회상할 때 비로소 이상한 감미로움을 띠게 된다.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내 덮어씌운 달콤함이다. 때로 그는 기억 속에서 감동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