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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혹은 보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 인종주의
"보이지 않는, 혹은 보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 인종주의" 내용보기
하나. “‘[흑백]인종간의 차이는 매우 근본적이고… 피부색에서만큼이나 정신 능력면에서도 큰 것처럼 보이며,’ 그래서 ‘[검둥이가] 말한 것이 어리석다는 명백한 증거’는 ‘이 자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다’는 것이다”   둘. 쾨리히스베르크대학에서 논리학, 물리학, 자연과학, 윤리학을 강의하고이후 그 대학의 총장을 지냈으며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은 근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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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흑백]인종간의 차이는 매우 근본적이고 피부색에서만큼이나 정신 능력면에서도 큰 것처럼 보이며, 그래서 [검둥이가] 말한 것이 어리석다는 명백한 증거이 자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다는 것이다

 

. 쾨리히스베르크대학에서 논리학, 물리학, 자연과학, 윤리학을 강의하고이후 그 대학의 총장을 지냈으며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은 근대철학의 고봉 Immanuel Kant

 

둘 사이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극히 인종차별주의적인 발언과 윤리학을 강의하는 고고한 철학자 첫번째의 악명높은 견해는 바로 두번째의 철학자, Immanuel Kant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에 실린 견해이다. 둘 사이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충격만큼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커다란 시선 책의 부제인 근대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 의 차이가 충격으로 다가온다.

 

근대 유럽은 이성을 기초로 하는 계몽주의의 발달과, 유럽 팽장에 따른 식민지 건설의 시대이다. 이 시기의 유럽 백인들은 근대 이전과 이후의 시간적 구분, 유럽과 식민지의 공간적 구분을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개념은 인간에 대한 이분법으로 이어졌다. 유럽 백인들은 식민지의 원주민들을 계몽하기 위하여 유럽 백인 중심의 식민지정책으로 그들을 살육하고 지배했으며, 유럽 백인의 부를 위해 아프리카 흑인까지 인간이 아닌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이른바 인종주의를 유럽 백인 스스로의 자기합리화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저자는 근대 정치체제의 사상적 토대인 사회계약이 인종주의 백인 우월주의-를 전제하고 있다고 본다.  인종계약은 사회계약을 떠받치는 토대이며 사회계약 규정들의 범위를 제한하고 수정하는, 눈에 보이는 또는 숨은 조작자이며, 과연 인종계약이 사회계약의 진짜 모습인지 홉스, 로크, 루소, 칸트 네명의 중요한 계약 이론가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인종계약은 비단 백인과 비백인의 분류가 아닌 인간과 하등인간, 지배인종과 피지배인종으로 까지 확대하고 있는데, 나치 Project나 아일랜드인의 경우에서처럼 유럽의 튜튼주의, 앵글로색슨주의, 노르딕주의 같은 유럽 백인들도 백인과 유사백인의 구조로 구분을 한다. 이처럼 변화하는 인종계약에 의해 규정되는 기준이 변함에 따라 백인성의 구성원 자격 역시 수정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비 인간적인 다분히 비백인의 관점이라 여겨지는 인종계약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 저자는 그 원인 중 한가지를 폭력과 이데올로기적 조작을 통해 시행되는 인종계약의 특징으로 말한다. 백인 스스로 인종국가를 수립하고, 아메리카대륙의 식민지인 학살,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 식민지 토벌전쟁, 노예사냥, 중간항로, 길들이기 등의 물리적 폭력을 거치며 인종계약은 스스로 재생산된다. 이러한 물리적인 억합과는 다른 차원으로, 비백인을 도구화 시키며 스스로 하등인간으로 탈 인간화하게끔 이데올로기를 조작해 왔다.

 

저자는 비단 백인과 비백인 뿐 아니라 모든 민족들은 적절한 상황이 주어지면 백인 우월성에 빠져들 수 있다고 경고하는데, 가까운 예로 일본을 보자. 일본은 비백인 국가이지만 근대화에 일찍 정착, 백인 우월주의적인 인종론을 내면화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게 되고 여타 아시아국가를 피지배인종으로 만들고, 결국은 백인과 황인종간의 인종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이 전쟁은 결국 일본 스스로를 전범국으로 낙인찍히게 했으며 현재에도 미래에도 역사의 멍에로 남을 것이다.

 

저자는 더 나은 미래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종계약 이론을 통해 역사속에서 인종주의가 초래한 과거와 현재의 추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인종주의가 어떻게 사회를 지배할 수 있었는지 그 방식들을 이해함으로써 문제를 문제로 바라볼 수 있는 건강한 시선을 요구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저자의 입장을 감안한다면 인종주의가 백인우월주의를 의미한다는 전제하에서 세워진 이론이라 편협적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선을 가질 수도 있지만 책에 나열된 비백인의 가혹한 역사의 사실들은 비단 우리가 비백인이라는 점을 무시하더라도 가히 폭력적이고 치밀하게 진행되어온, 소름끼치는 현실이며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책의 말미글을 옮기며 서평을 끝내고자 한다.

 

짐짓 그 쟁점들이 보이지 않는 척하는 사람들, 내가 개략적으로 그려낸 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그저 본래의 인종계약이 필요로 하는 무지의 인식론을 지속시킬 뿐이다. 이러한 의도적인 무지가 지속되는 한, 인종계약은 완전히 사라지기보다는 단지 수정되는 선에서 그칠 것이고, 정의는 계속해서 우리만의 정의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d******9 2007.07.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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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는 인간에 대한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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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잘 안보지만 한동안“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봤다. 미국, 영국, 프랑스, 몽골, 필리핀 등 세계 각 국의 여성들이 나와서 자신들이 한국에서 겪었던 재밌었거나 신기했던 일 외에도 한국 사회에서의 문제점과 고쳤으면 하는 점을 서로 얘기하며 웃고 떠드는 쇼프로그램으로 지친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그런데 문득 TV를 보면서 미국, 영국, 프랑스의 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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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는 잘 안보지만 한동안“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봤다. 미국, 영국, 프랑스, 몽골, 필리핀 등 세계 각 국의 여성들이 나와서 자신들이 한국에서 겪었던 재밌었거나 신기했던 일 외에도 한국 사회에서의 문제점과 고쳤으면 하는 점을 서로 얘기하며 웃고 떠드는 쇼프로그램으로 지친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그런데 문득 TV를 보면서 미국, 영국, 프랑스의 백인 출연자들은 왠지 피부가 하얗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이쁘고 귀티가 난다는 생각을 하는 반면에 미국의 흑인, 필리핀, 몽골의 출연자들을 보면서는 (백인들과 비교해서) 못낫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천시, 경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으면서 단순히 외모에서 인식되는 백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인간에 대한 미의 기준은 본능적인 것일까? 아니면 사회, 문화적인 것일까? 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고 외치면서 정작 겉모습에서부터 행동 하나하나 우리는 백인들을 흉내내며 그것을 닮기 위해 혈안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기에 이르렀다.


 찰스W.밀스의 저서인 『인종계약』은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우리의 행동, 정신 곳곳에 깊숙이 내재되어있는 백인우월주의를 위시한 인종주의, 차별주의를 경고, 비판하며 경각심을 일깨우고 서구를 비롯한 세계에 일격을 가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생소한 단어들이 많고 배경지식을 요구하는 부분이 많아서 읽는데 상당히 까다로웠고 읽는 내내 사전을 뒤져보면서 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의 무지를 탓함과 동시에 학습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아무튼 밀스는‘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이 사회계약을 통해 국가를 형성했다는 서양 근대 정치체제의 사상적 토대인 ‘사회계약론’이 인종차별주의를 내재하고 있다고 보며 여기서 말하는‘자유와 평등’은 오직 백인들의 전유물이며, 비(非)백인 즉 유색인종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백인들이 말하는 정의(Justice)는 우리(백인들)만의 정의(Just Us)를 의미한다’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백인들은 사회계약이라는 그럴듯한 사상적 토대 위에 실질적으로는 비(非)백인에 대한 착취와 강탈을 기반으로한 ‘인종계약’이라는 발톱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과 같은 모습인 이유는특정한 종류의 공간 출신이기 때문이며, 그 공간이 그와 같은 특성을 띠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그곳에 바로 당신과 같은 자들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가장 인상적인 문장으로 인종차별 뿐만 아니라 지역주의, 학벌주의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 주는 문장이다. 인종계약은 백인에 의한 백인우월주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어느 인종, 어느 민족이나 자기중심적 인종관, 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근대화 과정에서의 일본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극도의 인종주의 민족주의로 인한 유대인 홀로코스트나 인디언 대학살 등을 보면서 인종이 뭐고 우월함이 무엇이길래 인간의 존엄성을 헤치면서 까지 인간을 동물 죽이듯이 죽이고 학대하며 차별하는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부터 글을 쓰는 지금에도 계속적으로 질문을 해보지만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백인우월주의, 유색인종 타자화, 인종차별을 논하기 전에 작은 것, 즉 우리주위에서 나 자신의 타자화로 인해 누군가를 괴롭게 하거나 차별한 적은 없었는가를 먼저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돌이켜 보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나보다 약한 누군가를 타자화하는 것은 역사속에서의 서구의 ‘인종계약’을 암시적으로 묵인하는 것이라는 것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찰스W.밀스(Charles Wright Mills, 1916.8.28~1962.3.20)의 인종계약(1998)』을 읽고.


b****k 2010.05.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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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평등은 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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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가을 내가 미국 LA지역을 갔을 때였다. 도시 곳곳에 있는 건물들이 불에 탄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LA 흑인 폭동이었다. 그때 미국에 갔을 때에 나는 무척이나 몸조심을 했었다. LA 폭동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한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다면 우리 한인이 흑인에게 무언가를 잘못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냐 하면 그도 아니다. 다만 우리 한인들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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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가을 내가 미국 LA지역을 갔을 때였다. 도시 곳곳에 있는 건물들이 불에 탄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LA 흑인 폭동이었다. 그때 미국에 갔을 때에 나는 무척이나 몸조심을 했었다. LA 폭동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한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다면 우리 한인이 흑인에게 무언가를 잘못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냐 하면 그도 아니다. 다만 우리 한인들은 마치 돈만 아는 유태인들처럼 어떤 기회(도화선)가 왔을 때에 손가락질을 받을 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기회란 로드니 킹 사건이었다. 로드니킹 사건은 1991년 3월 미국 LA에서 과속운전하다 도주하던 흑인을 백인경찰이 무차별 구타한 장면이 비디오로 촬영돼 TV에 나간 후 경찰관들이 기소됐으나 백인이 다수였던 배심원단이 무죄평결을 내려 이에 분노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LA라는 도시는 마치 내전의 양상처럼 방화, 약탈 등의 각종 범죄가 판을 치는 무법천지로 변했다. 즉 이 사건의 뿌리에는 인종차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백인 경찰이 흑인들을 무자비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이 책 <인종계약>(아침이슬, 2006년) 143쪽에 보면 “미국에서는 경찰이 흑인들을 잔인하게 다루는데, 이 잔인성의 오랜 유혈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이를 인종주의자의 개인적인 난폭함이 아니라 이런 정치기획의 유기적 구성요소로 인식해야 한다. 흑인 사회에서 경찰은 기본적으로 ‘점령군’이라는 인식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저자는 “더 나은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의 추한 진실(인종차별)을 받아들여야 함은 물론 어떻게 해서 이러한 현실들이 은폐되고 백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지는지 그 방식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내가 보기에는 아마도 이 부분이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한 목적으로 보여 진다. 그렇다면 인종차별의 역사를 한 번 살펴보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근대에 들어서 유럽 사회는 새로운 사회이론을 내놓는다.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은 ‘사회와 국가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사회정치적 구조와 정치 제도의 정당화를 둘러싸고 있는 규범적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사회계약론이 바로 그것다. 이러한 가치관을 통하여 미국 헌법에서처럼 ‘만인은 평등하다’라는 것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사회에서 진실로 만인은 평등한가? 인종계약이란 한 인간집단(백인)이 자시들과 피부의 색, 혈통, 문화가 다른 사람들을 하등인간으로 분류해 백인들에게 차별적인 특권을 부여하고, 비백인들의 신체, 땅, 자원을 착취하기 위한 것이며 비백인들에게 동등한 사회경제적 기회를 부여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렇게 인종을 차별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사회의 자원 분배와 부, 권력, 특권의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회계약이론과 인종계약이론을 합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만인은 평등하다. 하지만 그것은 백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바로 근대이후로 세계를 지배한 백인들이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였다. 그들은 아메리카대륙과 아프리카대륙을 침략해서 식민지로 만들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살육하고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논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비백인들은 그들의 눈에는 인간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동물이었다. 그들을 죽이면서도 동물을 도살하는 정도의 죄책감을 느낄 뿐이었다. 그러니까 동물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희생되어야만 하는 존재로 치부했던 것이다.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개념은 근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인종에 대한 편견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나치에 의해 저질러진 유대인 홀로코스트는 가장 잘 알려진 것이고 코소보니 쿠르드족 문제 등 모든 것이 인종의 차이로 인한 살육의 현장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실제예이다. 생물학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백인들은 머리의 크기나 모양 등이 지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두상학을 연구하여 백인들이 비백인들에 비해 지능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 기억도 있다. 또 백인 내에서도 유럽 북부와 남부에 있는 백인들의 차이도 있다고 하면서 소란을 떤 것도 20세기에 일어난 일들이다. 하지만 그 연구 결과는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었다. 인종 간의 지능의 차이보다도 오히려 같은 인종 간에 지능차가 더 크다는 것이 밝혀졌을 뿐이다. 우리 한국의 현상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자. 지금 세계화시대에 걸맞게 한국에서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대우하는 한국 사람들의 태도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미국사람이나 유럽인의 경우에는 정중하게 대해주면서(떠받들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영어 학원 강사의 실정을 한 번 생각해보자) 동남아 근로자들에게는 마치 짐승한테 하듯이 한다는 것을 신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사람들은 백인이 1등이고 우리는 2등, 동남아나 아프리카 사람들은 3등이라는 식의 2등 민족론으로 보이는 Color Complex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우리들도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민족적인 차별을 받은 피해자였음에도 그 설움을 잊었단 말인가! 어떤 인종이 생물학적으로 우수한지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는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생물학적 민족에 따른 우열을 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한다. 인종에 대한 평등이 담보된다면 젠더에 대한 평등도 따라올 것이다. 21세기가 도래했음에도 세계 각국에서는 인종간의 갈등이 여전히 전개되고 있다. 과연 인종의 평등은 가능한 것일까! 아울러 젠더의 평등도 달성될 것인가! 이 책을 읽고서 평등은 항상 미래에 해치워야 할 숙제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n 2007.01.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