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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의 작가 황대권의 또 하나의 편지라고 소개하는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편지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일상에서 혹은 세상사에 그의 시선과 상념이 고스란히 담긴 고농축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이다. 여기서 우리는 새삼 작가의 삶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나의 엄마와 동갑이고, 서울대 농과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다가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13년 동안 감옥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 긴 기간 동안 구석에서 야생초 화단을 가꾸었고, 다시 세상에 나와선 전남 영광에서 농사를 짓다가 영국에서 생태농업을 공부했다. 그의 삶에서 야생초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듯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생태주의자가 되었고, 물질주의에 물든 우리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산처럼 생각하기, 똑바로 바라보기, 멀리 내다보기의 3가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갖가지 것들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산처럼 생각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산처럼 생각하란 말은 알도 레오폴드의 <모래군의 열두 달>이라는 책에서 나온다고 한다. 산은 자신의 몸에 깃든 모든 생명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잘 알고 있는데 인간은 얄팍한 지식만 가진 채 이를 잘 모름을 지적하는 바다. ‘똥 모심’에서는 더럽고 하찮게 여기던 똥에서조차 의미를 찾고, 거기에서 생명의 순환을 보는 저자의 시선에서 주인의식을 엿보았다. 우리들 삶은 바보상자에 정신이 뺏기고, 직장으로 집으로 목적지로 향하는 멍한 눈빛으로 생각할 여유를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내 삶의 주인은 없고, 객만 가득 들어차 있으니 저자는 우리에게 그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는 시종일관 생태계와 생명 그리고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한다. 문명의 발달로 몸이 퇴화하고, 고령화의 원인을 생태계의 불균형에서 찾는 등의 날카로운 지적도 우리를 다시 일깨운다. 생명을 중시하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고, 공동체의 부활을 위한 그만의 가이드라인은 멀리 내다보기를 통해 제시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깨우친 바대로 사는 것’이라고 마무리 짓는다. 왠지 숙연해지는 기분이다. 피곤에 찌들어 사는 현대인들은 가슴 속에 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다. 그리고 가끔은 폭발하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드는데, 생태학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을 읽다보니 어쩌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유기적인 것들이 종국에는 피곤에 찌들어 폭발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들게 이르렀다. 후하~ 기회가 된다면 그의 <야생초 편지>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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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은 길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기에 거기엔 숱한 실패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 창조의 새로운 힘이 거기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 황대권의《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중에서 - *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기에 지독한 고독과 남모를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한 사람이 새로운 길을 내면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갈 수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 갑니다. |
| 민들레는 참 친근한 느낌을 주는 꽃이름이다. 그 친근함 때문에 우리의 이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장미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하지만 그냥 친근하지만은 않다. 박노해의 시처럼 모진 바람에도 버텨내는 힘을 가지고 있고 <강아지 똥>에서도 보여지 듯이 힘든 환경 속에서도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꽃이다. <야생초 편지>의 작가 황대권선생이 이제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것을 자신의 환경생태론적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각각의 사안에 따라서 지나치게 환경중심적인 사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 환경의 중요성을 잊고 살았었구나 하는 반성이 들기도 한다. 정치적 현안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그의 시각이 지나치게 진보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한편 최근의 진보적 정부라 칭한 분들이 내눈에는 똑같은 보수인사들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가 얘기하는 것은 우리 주변의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실천적인 모습으로 우리주변의 환경을 사랑하고 자연을 보전하자는 얘기일 것이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생각하는지 어떠한 정치적 사회적 시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옳은지 정답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 속에서 자그마한 한가지씩이라도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습관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
![]() 이 책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의 제목을 보았을 때, 나는 책의 제목이 정말로 예쁘다고 생각했다. 예쁘다는 말보다는 fancy 하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통속적이지도 않으면서 제목만으로 내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저자가 황대권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고는 책의 내용 역시 만만치 않은 것들을 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단번에 들었다. 산처럼 생각하기, 똑바로 바라보기 그리고 멀리 내다보기. 이렇게 크게 세 단원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전체적으로 보면 생태주의자인 저자가 생각을 담담히 글로 옮긴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멋들어진 제목이 이 책을 나타내는 키워드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생태주위자가 시각으로 보고 살아가는 세상 이야기가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멋진 제목이 주는 여운을 책에서 더 찾으려고 덤벼든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일이다. 생태주의자로 현대 문명이 접한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담담히 잘 기술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내가 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라서 그런지 많은 부분 저자의 생각에 공감을 하면서도 해결책을 찾는데 있어서는 사람이 한 반생태적인 행위와 그로 인한 문제점 역시 결국은 사람이 나서서 직접 해결해야 하고 그 해결책에서 과학과 기술이 큰 축을 담당해 슬기롭게 문제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내 생각과는 차이가 조금 있는 것 같았다. 저자인 황대권의 책을 읽은 것은 이 책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가 ‘야생초 편지’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그런데 ‘야생초 편지’를 보면서도, 정말 감명 깊게 봐서 한 동안 그 문체마저 따라 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계속해서 떠올렸는데, 이 책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를 보면서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떠올리면서 책을 봤다. 직접 책을 비교해 놓고 무엇이 더 좋다며 우열을 따질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개인적 성향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더 부합해서인지, 이 책‘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를 보면서 좋은 내용에 공감을 하면서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의 비교를 통한 아쉬움이 남았다.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까 마치 이 책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의 좋은 면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한 것 같은데, 이는 이 책을 읽기 전 그리고 읽으면서 책과 저자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지, 결코 책의 가치를 폄하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시간을 내어 읽어보기에 미흡함이 없으므로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