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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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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나의 가까운 친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듣자하니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더니, 그게 독후감 머쉰이되는 거였냐?"       하루아침에 독후감 머쉰이 되어버린 나는, 그 녀석에게 탑 시크릿임을 주지시키고 누설될 경우, 말레시아인에게 난자 당할 각오를 하라고 말했다.       그랬다. 친구들에게는 굳이 숨겨야 할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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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 나의 가까운 친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듣자하니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더니, 그게 독후감 머쉰이되는 거였냐?"

      하루아침에 독후감 머쉰이 되어버린 나는, 그 녀석에게 탑 시크릿임을 주지시키고 누설될 경우, 말레시아인에게 난자 당할 각오를 하라고 말했다.

      그랬다. 친구들에게는 굳이 숨겨야 할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반공부체제에서 활동해 온 굳건한 동지들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변절이나 다름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의 친구들은 문학보다, 새로나온 소주는 흔들어야 하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이기 때문이었다. 개중에 누군가 "왜 흔들어야 해?" 라고 묻고, "이효리가 흔들면 같이 흔드는 거지 왜가 어딨어 임마." 라고 누군가 답한다.

      그렇지 않아도 요사이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자꾸만 똑똑해지는 나를  경계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던 참이었는데, 그 와중에 이 사실이 누설된다면 나는 이십년전으로 돌아가 뭇매를 맞게 될판이었다. 내 아무리 전사의 아들로 태어나 뛰어난 신체조건을 가기고 있다고는 하나, 예닐곱 놈의 발길질을 동시에 막아내기는 어려운 것이었으며, 개중에는 분명 오뎅국물을 퍼먹던 숟가락을 들고 설치는 놈도 있을 것이다.

      버젓이 부모님의 주머니를 털어서 미시건까지 날아가 그 이름도 유명한 MBA까지 마치고, 그 이름도 저명한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 취직이되어 다시 서울로 날아든 놈이 있었다. 오뎅바에 둘러 앉은 우리중에는 그 놈이 유독 많은 매를 맞는 녀석이었다. "그러니까 브레이크  이븐 포인트가 말이야..." 그러면 여지없이 오뎅국물이 묻은 숟가락 몇개가 날아드는 것이고, "그냥 손익분기점이라고 말해 이 새끼야!" 라며, 몇명의 톤이 다른 목소리가 중창단이라도 되는 듯 어우려져 허공을 가르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며칠전 "사디즘적이군" 이라고 말했다가 사디즘적으로 두들겨 맞았다.-물론 고기서 폭력부분만 떼어서 말이다.-

 

      백가흠처럼 뜻하지 않은 기대감에 흥분을 시키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그와는 반대로 기대에 차서 보았다가 실망이 드는 작가도 있는 것이다.

      소설에 대해 독후감 머쉰인 나의 생각은 대체적으로 이랬다. 내용이 없으면, 이야기가 죽여주면 되는 것이고, 이야기가 없으면 문장이 기가막히게 맛깔나면 되는 것이고, 그 셋다 없으면 그냥 무조건 웃기면 되는 뭐 그런건데.... 그게 전부 없으면 어쩌냐...

      그때의 최종적인 책임은 독자가 지면 그만이다. "니가 이해를 못하는 거거든!" 이렇게.

 

      이 작품은 총 팔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물속에 아이]라는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 나머지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으나 나의 개인적인 취향에는 그다지 맞지 않았다. 일단, 일본 작가 [호시 신이치]를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들이었는데, 그것은 SF적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도 그런 조금은 애매한 경계에 서있는 얘기들이어서 그랬다. 

      내 취향이 아닌 이유는 이랬다. 차용. 그러니까 타인의 지식을 그대로 데려와 짜집기 이야기 식으로 엮은 것 같은 느낌이 일단 그랬다. 그게 티 안나게 잘 엮여진 것이었으면 나았을 법한데, 그 용어와 단어들이 낯설고 깝깝한 것이어서 슬슬 짜증이 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건 마치 이런 식인 것이다.

      [이 플룻의 개연성은 역대 옥타비아누스의 설파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으로 아우슈비츠에서 복무한 플루타르크에 의해 정리된 것이다. 그것은 최초 춘추 전국시대의 연나라의 산둥성, 왕뚱시, 헐렁면에서 출생한 봉추방통의 선조에 의해 재발굴되어 오늘날에 이르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글은 이처럼 엉터리도 아니고, 사실에 근거한 서술이었겠지만 어쨌든, 쉽게 읽히지 않는 단어의 나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재치가 담긴 문장이 곳곳에 포진되어있었는데 그게 때로는 앞뒤 문장하고는 어울리지 않게 툭 튀어나오는 것이라 박민규나, 이기호에게 밀리는 듯한 인상이었고, 상상을 자극하는 이야기면에서는 또 천명관에게 밀리고, 좋은 문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또한 요즘 좋은 문장을 가진 작가가 너무많아서 그것만으로 대단하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다. 그렇다고 김연수와 같이 감성적인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뭔가 특징을 딱 잡아내기가 조금 허한데, 굳이 하나를 말하라면 [호시 신이치] 타입인 것이다. 

      결정적으로 지루했다는 것이 치명적이었다고나 할까...

b******k 2008.12.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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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게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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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겨 죽는다”는 어느 분의 추천으로 구입한 책이 바로 <자정의 픽션>, 인터넷에 올려진 리뷰들도 그분의 추천사를 뒷받침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총 여덟 편의 단편 중 “웃겨 죽”을 만한 건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정도였고, 나머지는 뭐가 뭔지 좀 어리둥절한 그런 소설들이었다. 심지어 ‘존재 혹은 고통...’으로 시작되는 긴 제목의 단편은 몇장 안되는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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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겨 죽는다”는 어느 분의 추천으로 구입한 책이 바로 <자정의 픽션>, 인터넷에 올려진 리뷰들도 그분의 추천사를 뒷받침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총 여덟 편의 단편 중 “웃겨 죽”을 만한 건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정도였고, 나머지는 뭐가 뭔지 좀 어리둥절한 그런 소설들이었다. 심지어 ‘존재 혹은 고통...’으로 시작되는 긴 제목의 단편은 몇장 안되는 분량임에도 속이 메스꺼워 책장을 넘기기가 힘이 들었다.


이 책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맨 처음 수록된 <논쟁의 기술>로, 저자의 다른 단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회성과 풍자가 담겨 있는데, 난 연방 빨간펜으로 밑줄을 그으면서 그 주옥같은 문장들을 음미했다.

“ 논쟁이란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굴복시키는 것이다(11쪽)...이견이 있는 사실에 대해 상대와 겨루는 과정이 아니다. 역으로, 상대와 겨루기 위해 이견이 있는 부분을 모색하고 그걸 극대화시키는 과정이다 (14쪽)”

최근 내가 아는 동네에서 입으로는 ‘정의’를 외치며 손에 ‘논리’라고 쓰인 굽은 칼을 들고 설친 무리들(이하 악의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에 의해 선량한 마을 사람들 몇 명이 결국 쫓겨나고 말았는데, 그들이 구사한 전술은 이 단편에 실려 있는 그대로다.


현교수는 의도적으로 나를 무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논쟁의 기술을 통해 내가 흥분하길 바라는 것이다(19쪽).”

나름대로 진지하게 제기한 반박에 대해 별 우스운 놈도 다 본다는 투로 폭소를 터뜨리는 기술이었다(28쪽)”

“...우리의 논쟁을 제멋대로 요약하고 결론 내리려 한다...자기가 불리해지자 갑자기 제삼자로서 냉정한 중재 역할을 자처하는 수작인 것이다(44쪽).”

이것들 말고도 우리 동네를 어지럽힌 악의 무리들은 ‘은근히 겁주기’ ‘얄밉게 웃기’ ‘말 돌리기’ ‘정신없이 들이대기’ ‘말허리 자르기’ ‘반말하기’ ‘몰아세우기’ ‘괴상한 어법’ ‘막나가기’ 등 이 책에 나온 거의 모든 수법을 동원했다. 그들이 이 책을 읽고 그랬던 걸까? 이 책이 나오기 전에도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던 걸로 보아 오히려 저자가 이들로부터 힌트를 얻은 게 아닐까? 단편의 결말에서 패배의 위기에 몰린 주인공은 결국 벽에 걸려 있던 칼로 현교수를 베어 버리는데,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방법인지라 그런 이를 만나면 ‘의도적인 무시’를 권장하는 바다. 그 동네 사람들이 워낙 예의가 바르기에 그것 또한 어려울 것 같지만 말이다.


b*****i 2007.01.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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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의 픽션 -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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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첫 장을 펼쳤다.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2006. 11.22  기대는 없다." . 그리고 나는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읽고, 이 책을 덮어 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 오랜 시간 지하철에 있어야 했던 나는 그냥 잡히는 대로 책을 들고 나왔다. 그 책이 이것이었다. 언제 사두었는지도 까마득한 이 책을, 들고 나왔다. 표지도 썩 맘에 들지 않는 이 책을. 돌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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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첫 장을 펼쳤다.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2006. 11.22

 기대는 없다."

.

그리고 나는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읽고, 이 책을 덮어 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

오랜 시간 지하철에 있어야 했던 나는 그냥 잡히는 대로 책을 들고 나왔다. 그 책이 이것이었다.

언제 사두었는지도 까마득한 이 책을, 들고 나왔다. 표지도 썩 맘에 들지 않는 이 책을.

돌아오는 길, 이 책을 꺼내 펼쳤다. 이미 읽은, 어렴풋한 이미지만 남은 한 편의 단편 소설을 넘기고

두 번째 단편을 폈다. 제목은 <날개>다. 이런 식상한 제목을 거는 소설은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제목처럼 식상하여, 과거의, 우리가 그 제목을 떠올리면 당연히 줄줄이 연상되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이는 소설과, 과거의 작품과 똑같은 제목을 붙였지만, 그 작품과는 판이한, 그래서 이것만의 독창적인 가치를 충분히 보여주는 그런 작품. 물론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연코 후자에 속한다.

어쩌면 나는 <날개>라고 이름 지어진,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과거의 이 아무개의 작품에 대한 가치를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 작품에도 거슬리는 것들은 존재한다. 끊임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작가의, 아니, 화자의 군더더기들. 뭐라고 해야 하나. 서술자의 간섭이라고 할까, 아니면 서술자의 자기 드러내기라고 할까. 아무튼, 흐름을 뚝뚝 끊고, 때때로 이 작품을 하찮은 중얼거림이 아닐까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의 충분한 군더더기들이 조금 많아 거슬리긴 했으나, 그런걸 무시해버려도  될 만큼, 충분히 <날개>는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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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는 스무 살에 기초 교육기관에 교사로 취직했다. 그곳에서 더 이상 호기심을 갖거나 시도할 필요가 없는, 완벽하게 입증된 과학적 사실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87퍼센트 이상 일치하는 한 쌍의 유기체를 조립해내는 건 불가능하다거나 유전학적-생물학적인 어떠한 방법으로도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없다거나 등등.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보자기를 두르고 담벼락에서 뛰어내리는 대신 빠르게 고등과학 체계로 접근할 수 있었다.

 여자가 스물일곱이 되던 해, 기관으로 스무 살 먹은 남자가 새로 배속되었다. 그는 인류공통어를 전공한 선생이었다. 쌀알 행성의 중력과는 걸맞지 않는 거대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수업 시간에 정규 문장보다는 문장의 감정적 변용을 주로 가르쳤다. 거인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언어는 사람들에게 묘한 느낌을 주었다. 동료들은 그 느낌을 명료하게 정의할 수 없었기에 적잖이 당혹감을 느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거인에게는 당대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이 여자에게 작동했다. 여자는 거인을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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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여자는 눈앞에 나타난 거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참 헉헉거리고 나서 어떻게 온 것인지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평소대로라면 둘이 만날 수 없는 날이었다.

아니, 하고 거인은 대답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네가 보고 싶었어. 꼬마들을 가르치면서도 널 생각했어. 일이 끝나 책상에 앉았지. 눈을 감고 팔을 벌린 채. 네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몸이 서서히 떠올랐어. 그렇게 하늘을 날아 나는 네게 온 거야.

 말을 마친 거인은 다시 여자를 껴안았다. 못마땅한 건 아니지만, 거인이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할 때면 여자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심지어는 이십여 년 전으로 날아가 구호소에 있던 어린 시절의 여자를 만나고 왔다고 한 적도 있었다. 겁먹은 듯한 얼굴은 파랬고 속삭였었다. 당신은 참 모르겠어, 하고 여자는 중얼거리곤 했다. 그러면 거인은 의아아하다는 표정으로 묻는 것이었다. 이상해? 뭐가?

.

거인의 엄청난 덩치를 지상으로 데려오려면 백 년은 앞선 합금 기술이 필요했다. 낙담한 여자는 스크린을 통해 바닥에 엎드려 있는 옛 연인의 유애를 보았다. 물의 밀도 덕분에 조금도 상하지 않은 상태였고, 살짝 옆으로 돌린 얼굴에는 반세기 전에 자주 지어 보이던 저 꿈꾸는 듯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덕분에 여자는 비소로 사랑하는 거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여자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입을 벌리는 순간 울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얼굴을 움직이는 순간 울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울어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한번 울면 죽을 때까지 울 것 같기 때문이었다.

.

 여자는 값비싼 합금로봇 일곱 대를 찢어발긴 후 거인의 팔뚝 살점을 진짜 쌀알만큼 얻을 수 있었다. 여자는 살점을 들고 의회 병원으로 갔다. 추출한 DNA를 자궁에 부착했다. 중력에 힘겨워하지 않도록 쌀알행성 일반인들의 체격을 선택했으며, 성별은 남자로 정했다. 아이는 열 달 후에 태어났다.

.

저는 다르게 왔어요. 아이가 간신히 말했다. 그 말을 하는 아이의 눈에 초조한 빛이 떠올랐다. 다르게 왔다고? 어떻게?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여자는 아이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분명 다른 방식으로 왔을 것이다. 당장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많이 있을 것이고, 방법도 여러 가지일 것이다. 아이는 평소와 달리, 그 다른 방법 중의 하나를 택해서 집에 온 것이다. 그게 하필 오늘이라 얄궂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나쁜 짓을 했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 여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다른 방법을 도저히 떠올릴 수 없다는 사실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여자는 아이를 믿었다. 내가 돈의 힘을 믿듯이 아이를 믿었다. 그렇게 철석같이 믿는 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 나왔다.

"날아서 왔어요."

 여자는 눈을 감고 탄식했다. 짧게 두 번, 여자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날아서 왔어요. 탄수화물터널을 지날 때 다리가 아팠어오. 다리가 아파서, 집에 가고 싶다, 엄마한테 가고 싶다 하고 생각했어요. 눈을 감고 그렇게 간절히 생각하는데, 몸이 둥둥 떠오르는 거예요. 그렇게 하늘을 날아서 집으로 왔어요.

.

여자는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단호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했다. 방으로 들어가. 네가 잘못한 걸 생각해봐. 아무와도 얘기하지 마. 아무것도 보지 말고. 어둠 속에서, 그래, 어둠 속에서.

.

아이는 여자 뒤에서 울먹이며 말했다. 왜 안 믿으세요? 눈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장마철의 밭고랑 같은 얼굴로 말했다.

이상해요? 뭐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여자는 머리가 텅 비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순식간에 끔찍한 무기력감에 휩싸였다.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가 오래전 누군가가 했던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여자의 가장 아픈 곳에 밀봉되어 있던 추억을 아무렇지 않게 열어젖혀버렸다. 여자는 조금 전의 일처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반세기 전, 그를 만날 수 없는 날이었다.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사실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고맙고 반가웠기 때문이었다. 반세기 전, 거인은 너무 보고 싶어서 날아왔다고 대답했다. 날아왔다고? 그 덩치로? 그렇게 바보 같은 말은 처음이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더 이상 만나지 못할 줄 알았다. 자기 가슴속에 영원히 묻혀 있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

정원 한가운데서 아이는 여자의 정면에 섰다. 손을 놓고 정원의 끝가지 뒷걸음질쳤다. 여자는 어지럽고 메슥거려 아이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엄마, 하고 아이가 앙증맞은 목소리로 외쳤다. 보여드릴게요. 날아서 엄마한테 갈게요. 여자는 현기증이 났다. 깊은 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은 텅 비었고 그 자리로 비릿한 은하의 바람이 스며들었다. 눈앞에 흐려졌다. 깜짝 놀라 손으로 눈을 가렸다. 어찌할 틈도 주지 않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여자는 한숨을 쉬며 울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참아왔기 때문에 우는 게 아팠다. 얼굴을 가린 탓에 여자는 정원의 저쪽 끝을 보지 못했다. 거기 서 있던 아이가 사라진 걸 눈치 챌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뒤에서 손길을 느꼈다. 그건 깃털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조용히 돌아섰다. 자기보다 높은 곳에서 뻗어 나온 팔이 다정하게 감싸왔다. 여자는 순순히 몸을 맡겼다. 낯설지가 않았다. 엄청나게 큰 거인이 안아주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편했다. 행복했다. 하지만 그 느낌으로 충만했던 먼 저편의 시간을 생각하니 또다시 온몸이 아리면서 억울해졌다. 어떻게라도 하고 싶었다. 거인의 꿈꾸는 듯한 미소를, 넓은 가슴을, 저 괴상한 맹세를 돌려 받고 싶었다. 그것들을 빼앗기면서 심연의 바닥에 갇혀버린 세월을 보상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

그 마음만이 여자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뜨지 않았다. 감미로운 손길에 대한 판단도 거부했다. 자기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오랜 시간 그렇게 교육받았고, 더 오랜 시간 그렇게 가르쳐왔다. 하늘을 난다는 건, 다른 시대로 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왜 젊고 아름답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았단 말인가? 왜 반세기 전으로 날아가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기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허락되었다면 여자는 저 멋진 거인과의 세월에 묻혀 절대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지 않았다. 여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가린 손을 내릴 수도 없었다. 불가능이라는 믿음은 너무 긴 세월 동안 여자를 간섭해왔다. 이제는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의 망설임조차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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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가슴이 뜨거워진다.

j******u 2008.01.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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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의 픽션 - 박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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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3일> - 목 차 - 논쟁의 기술날개노란 육교물속의 아이'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존재, 혹은 고통 따위의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진실의 방으로두유 전쟁 11월 21일자 한겨레 신문에 실린 인터넷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펴들기만 하면 내 웃을 줄 알았지" 라는 제목의 이기호, 박민규, 박형서 세명의 작가에 대한 혹은 그들의 책에 대한 기사였다. 두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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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3일>

 

- 목 차 -

논쟁의 기술

날개

노란 육교

물속의 아이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존재, 혹은 고통 따위의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

진실의 방으로

두유 전쟁

 

11월 21일자 한겨레 신문에 실린 인터넷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펴들기만 하면 내 웃을 줄 알았지" 라는 제목의 이기호, 박민규, 박형서 세명의 작가에 대한 혹은 그들의 책에 대한 기사였다. 두명의 작가는 눈에 익었지만 생소한 작가 한명이 있어서 그 작가에 대한 기사를 더 유심히 읽었고 인터넷 서점에서 그의 책에 대한 리뷰들을 읽고는 망설임 없이 그의 책을 구입했다. 그것이 바로 본 책이며 본 작가이다.

 

오랫만에 할얘기가 많은 책 한권을 만났다. 이번 책은 "창작"이라는 단어에 대해 충실하다 못해 "창작"으로 뒤덮어 버린 순오리지널 100% "픽션의 결정체"라고 하고 싶다. 기성세대 혹은 소설은 실생활에서도 있음직한 내용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혹은 소설을 진지함으로만 접근하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반란 일수도 있겠다. "이게 무슨 소설이란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겠다. 문학작품이 아닌, 삼류 소설 나부랑이로 취급 될수도 있겠다.

 

그만큼 그의 소설은 형식을 깨고, 상상력을 넘어 뜨리고, 표현력을 뛰어 넘는다. 하지만 문학이든 예술이든 모든 창작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재미와 즐거움을 줘야 한다고(물론 이것은 보는 이에 따른 상대적 재미와 즐거움이니 이 책이 전혀 재밌지 않았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생각하는 나로서는 무척이나 제격인 책이었다.

 

특히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와 "두유 전쟁"은 정말 나를 파안대소 하게끔 해주었다. 그의 상상력과 표현력과 설득력에 나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을 지경이다.(나도 하마터면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음란물로 인정할 뻔했다) 물론 나머지 작품들도 꽤 재밌었다. "진실의 방으로"나 "물속의 아이"는 진지한 무게감도 있었다.

 

작가의 프로필을 보니 국문학을 전공하고 박사 과정을 마친, 시쳇말로 '가방 끈이 긴' 학자 작가이다. 그런 학도 스타일은 또한 작품의 여기 저기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어려운 말로 빙빙 돌려 글을 썼다는 뜻은 아니다. 형식 자체가 학도 스타일이라는 뜻인데 허나, 막상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면 직설적 일때는 너무나도 직설적이고 육두문자가 난무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재밌다는 것이다. 논문 형식에 저질과 욕설이라면 누군들 흥미롭게 보지 않겠는가.

 

참 즐거운 작품, 즐거운 작가를 만나는 것도 복이다 싶다. 작품에서도 진지하고 기품있고 수준 따지는 사람들에게는 먼 발치로 밀려나 거들떠도 안보는 책이 될지라도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너무 재밌었어요. 읽으면서 많이 웃었어요. 정말 대단하세요. 라고 말해주는 독자가 있으면 그것으로 작가는 만족하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그거면 된거 아닐까. 나에게는 이런 작가들이 많을수록 마냥 좋다. 그의 전작인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2003)」도 어서빨리 만나봐야 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c*****4 2017.08.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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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의 픽션 - 박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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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의 픽션       한국의 최근 소설가를 소개하는 책에서 이 작가를 처음 접했다. 불과 얼마 전에. 그 책엔 수많은 작가들이 소개되어 있었지만, 이 작가만큼 나를 강하게 빨아당기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던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 '달걀'을 중심으로> 때문이었다. 호기심을 마구마구 샘솟게 하는, 소설보다 논문에 가까운 이 단편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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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의 픽션

 

 

 

한국의 최근 소설가를 소개하는 책에서 이 작가를 처음 접했다. 불과 얼마 전에. 그 책엔 수많은 작가들이 소개되어 있었지만, 이 작가만큼 나를 강하게 빨아당기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던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 '달걀'을 중심으로> 때문이었다. 호기심을 마구마구 샘솟게 하는, 소설보다 논문에 가까운 이 단편 때문에, 이 단편이 담긴 소설집 <자정의 픽션>을 사버렸다.

 

 

'남근' 중심에서 '불알' 중심으로

 

작가는 <사랑손님과 어머니>라는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던 그 아름다운 작품을 야릇하게 파헤친다. 다름 아닌 바로 '달걀'로. 작가는 길고 두툼한 건 모조리다 남근으로 해석해버리는 지체 높은 양반들에게 일침을 가하면서, 남근이 아닌 불알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왜 달걀이냐. 간략히 이야기하면, 달걀은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고, 또 그 단백질은 몸에서 성기를 통해 뿜어져 나온다. 고로 달걀을 먹는다는 건, 그 단백질을 자기 몸에 넣는다는 것이고, 또 이것은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우리가 흔히가 아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아저씨를 두고 엄마와 딸이 벌이는 신경전이자 처절한 싸움이라는 것!!!

 

 

마구잡이로 뻗어대는 촉수

 

혹자는 <사랑손님과 어머니>라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난도질한 작가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촉수가 단지 이런 분야(음란물)에만 뻗쳐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상상력은 어떤 한 분야로 수렴되는 특정 유형의 것이 아니다. 한국의 한 젊은이의 머리에서 하루 이백만 배럴의 원유가 흘러나와 그걸 가지고 한국과 미국이 다툼을 벌이는 이야기(두유전쟁), 난데없이 미래를 본다며 이야기를 읊어대는 여자의 슬프고도 당황스러운 이야기(날개),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서 유유히 죽음의 문으로 입장하는 망자의 이야기(노란 육교) 등... 전후좌우 가릴 것 없이 뻗치는 그의 촉수를 따라가다 보면, 일단 재밌고, 두 번째로 기가 막힌다.

 

 

한편으론 아프기도 한

 

이외에도,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아이가 벌이는 자작극(물속의 아이), 논쟁이란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굴복시키는 것이라며 여러가지 전략을 동원해 이기기 위해 발악을 하는 교수의 이야기(논쟁의 기술), 진실을 알기 위해, 아니 진실을 만들어 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자의 이야기(진실의 방) 등이 있는데,

이 작품들은 재밌으면서도 한편으론 아프다. 특정 인물이나 사회문제가 떠올라서가 아니라, 내 마음 한 구석에 있는 본능과 욕망을 쿡쿡 찌르는 것 같아 아프다. 사랑을 주기보단 받고자 하는,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들이 받는 사랑마저 빼앗아 받고 싶어하는, 말싸움에서 지고 나면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올라 울화통이 치밀었던, 때때로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했던, 그런 모습들이 떠올라 조금은, 아팠다.

 

 

 

 

 

 

 

g*****9 2011.12.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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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르다 우연히 만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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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보고 싶었던 책인데 우연치 않게 구하게 돼 읽었다. 박형서 소설은 처음이다.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인데 칼국수에 칼이 없듯이 이 단편집 안에는 '자정의 픽션'이란 단편은 없다. 그냥 소설집 전체 타이틀이 '자정의 픽션'인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의 이야기들은 망상에 가까운 상상력의 향연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공감하기 쉽고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낯익은 일상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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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보고 싶었던 책인데 우연치 않게 구하게 돼 읽었다. 박형서 소설은 처음이다.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인데 칼국수에 칼이 없듯이 이 단편집 안에는 '자정의 픽션'이란 단편은 없다.

그냥 소설집 전체 타이틀이 '자정의 픽션'인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의 이야기들은 망상에 가까운 상상력의 향연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공감하기 쉽고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낯익은 일상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책이 싫을 수도 있다.

공감보다는 놀람과 경악(?)을 불러일으키는, 독창성... 깊이 의미를 따지고 들어 생각하면 난해하기도 하다.

 

좀 다른 시각으로, 삐딱하게 사물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딱일 듯.

 

나는 '논쟁의 기술'과 '진실의 방으로'가 제일 재밌었다.

 

감성의 자극보다는 이성과 논리를 자극하는 책.

가슴 찡한 감동보다는 찌릿한 정신적 충격을 주는 책.

 

이 책은 나에게 그랬다.

z******7 2007.07.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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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본 우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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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서 / 문학과 지성사 / 2006 논쟁의 기술 날개 노란 육교 물속의 아이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존재, 혹은 고통 따위의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 진실의 방으로 두유전쟁 박형서씨의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제목만으로도 이 소설들이 얼마나 쾌활하고 엽기 발랄할 지 조금은 예측할 수 있고, 읽어보면 우리 나라에도 이런 소설가가 있군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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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서 / 문학과 지성사 / 2006 논쟁의 기술 날개 노란 육교 물속의 아이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존재, 혹은 고통 따위의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 진실의 방으로 두유전쟁 박형서씨의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제목만으로도 이 소설들이 얼마나 쾌활하고 엽기 발랄할 지 조금은 예측할 수 있고, 읽어보면 우리 나라에도 이런 소설가가 있군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물론, 이런 류의 어느 정도 삐딱하게 바라보기 소설은 이미 널리 퍼진 방법이지만 매우 우리스러운 글을 처음 접하는 것은 새로운 느낌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와 다르게, 뒤통수를 팍 치며 이루어지는 결말이라던지, 뻔히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글쓰기 등등이 의외로 실증나지 않고 오히려 재미난다. 그래. 이런 소설이라면 두껍지 않더라도 만원을 기꺼이 낼 수 있겠다.
e****7 2007.01.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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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의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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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의미도 부여하고 싶지 않은 글. 이게 가장 내 마음을 잘 표현하는 문장이다. 어떠한 개연성도 존재하지 않고....단순히.. 또..그냥 생각이라는 놈이 흘러가는대로 펜을 움직인...나에게 있어서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여러가지 단편이 실려있지만 내가 말하는 소설 속과 같은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재미 없다. 이 글을 쓴 박형서라는 작가..자유분방한 사람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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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의미도 부여하고 싶지 않은 글. 이게 가장 내 마음을 잘 표현하는 문장이다. 어떠한 개연성도 존재하지 않고....단순히.. 또..그냥 생각이라는 놈이 흘러가는대로 펜을 움직인...나에게 있어서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여러가지 단편이 실려있지만 내가 말하는 소설 속과 같은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재미 없다.

이 글을 쓴 박형서라는 작가..자유분방한 사람일 것이다.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는 모습이 망상가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노란 육교` `날개` `두유전쟁 `물 속 아이`.....그 중에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에 대한 단편이 있는데..정말 궤변...어의 없는 논리로 전개되는...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보고 있는 동안에 설득당하고 말았다. 물론 내가 불리한 입장이기는 했지만..분하다 작가에게 놀림당했다는 그런 느낌이 드네..거참 똑똑한걸..

머리 식힐려고 아무 생각 안 할려구 본 책인데..이 놈의 버릇때문에 더욱 더 골만 아프게 만든 책..그래도 개미작가군이 쓴 "나무"랑 조금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전개..발상...그 어이없음이 도를 지나쳐 유치찬란하지만..그게 이 소설이라고 부르기 싫은 글의 매력이겠지..내 의도와는 상관없는 글이지만..

w*****c 2013.11.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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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픽션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자정의 픽션을 꿈꾸며... <자정의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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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생각들을 편견이라고 외치며 전면적인 선전포고라도 하는 것만 같다. 각각의 소설들이 가지는 발상이 독특하고 불온하며 괴기하고 유머러스하다. 물론 여기까지는 기존의 젊은 작가들 또한 구사하는 방식인데, 작가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사를 무시하거나 평론과 같은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시도함으로써 마치 소설 무용론을 펼치는 사람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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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생각들을 편견이라고 외치며 전면적인 선전포고라도 하는 것만 같다. 각각의 소설들이 가지는 발상이 독특하고 불온하며 괴기하고 유머러스하다. 물론 여기까지는 기존의 젊은 작가들 또한 구사하는 방식인데, 작가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사를 무시하거나 평론과 같은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시도함으로써 마치 소설 무용론을 펼치는 사람과도 같다.

 

  「논쟁의 기술」.

  “논쟁이란 이견이 있는 사실에 대해 상대와 겨루는 과정이 아니다. 역으로, 상대와 겨루기 위해 이견이 있는 부분을 모색하고 그걸 극대화시키는 과정이다... 논쟁의 성과는 단 한 사람의 것이며, 다른 이는 오직 패배자로서만 기억된다. 그러므로 논쟁에서는 상대를 일부러 무시하고, 약 올리고, 극도로 불안하게 만듦으로써 실수를 이끌어내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논쟁에 대한 기술을 실전처럼 익히며 자라 이제 대학 교수가 된 주인공의 인생을 건 논쟁 이야기이다. 제 꾀에 제가 속아 넘어가는 것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논쟁의 기술을 이용하려다 그것에 역으로 당하고, 결국 살인으로 이어지는 어처구니없는 논쟁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

 

  「날개」.

  “... 반세기 전, 거인은 너무 보고 싶어서 날아왔다고 대답했다. 날아왔다고? 그 덩치로? 그렇게 바보 같은 말은 처음이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더 이상 만나지 못할 줄 알았다. 자기 가슴속에 영원히 묻혀 있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SF 장르를 택하고 있지만 SF 소설이라고 부리기에는 뭣하다. 인간의 수명이 거의 무한대로 늘어난 미래에 살고 있는 한 여자, 그리고 그 여자가 사랑했던 거인과 같은 남자의 이야기이다. 현재와 근미래를 오가는 상상력이 다채롭다.

 

  「노란 육교」.

  “... 어쨌든 사람들은 세상엔 죽은 존재를 위한 부분도 존재함을, 또 그 부분은 우리와 멀리 떨여져 있지 않으며 심지어는 우리 삶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간혹 부드럽게 겹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견 없이 받아들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의 아이디어를 읽는 것만 같다. 어느 날 우연히 발견된 길... 그 길은 망자들이 현세를 떠나는 일종의 게이트임이 드러나고, 이제 그 죽은 사람들을 위한 길은 산 사람들을 위한 관람장 노릇을 하게 되는데...

 

  「물속의 아이」.

  “흐릿해지는 동공으로 본 환영 혹은 무뎌져가는 피부로 접한 환각의 그것은 언젠가 아이가 막 장난을 시작하던 시절 꿈에서 본 가볍게 반짝이는 수면이었으니 그 아래 고요한 물 속에 아이는 누워 있는 것인데 ... 마침내 그들을 쓰러뜨린 사연은 무대 위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소도구들 그리고 음향을 몰아 시커멓게 덮쳐오는 장막 너머로 깨끗이 사라져갔다.” 제 어미의 사랑을 얻기 위한 한 아이의 끝없는 노력이 애달프다. 스스로에게 충격을 가하고, 그 충격을 통해 어미의 시선을 끌고, 이러한 충격 요법을 반복하고 그러다 가정은 파탄이 나고...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 달걀을 중심으로」.

  “이 소설은 단순한 성장기 소설(Initiation story)이 아니라 성교를 중심으로 세계의 원리와 끝없는 갱신을 해명하고자 한 알레고리(Allegory) 소설이다... 작품의 의의는 재고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걸 도덕적이고 희망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선량한 욕망과 투쟁해야 한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라는 단편 소설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분석 시도기...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소품들에 대한 굉장히 쓸데 없어 보이고, 허황된 연구들을 통하여 기존의 소설은 폭파되고 전혀 새로운 의미의 소설이 탄생하고 있다.

 

  「존재, 혹은 고통 따위의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

  “무료함에 성기를 잘라보았더니 피가 많이 흘렀다. 허둥대며 수건으로 도려낸 자리를 감싸자, 하얀 수건에 붉게 물들어가는 피의 눈부신 무심함이 과연 무료하지 않아 좋았다.” 단편이라기보다는 엽편에 가깝고, 소설이라기보다는 그저 산문에 가깝다. 무료하기 짝이 없는 생활에 지쳐 성기를 잘라낸 한 사내의 심겨 들여다보기...

 

  「진실의 방으로」.

  “모든 소음이 사라진 방. O는 거대하고 고동치는 진실의 심장, 아니 째깍째깍 움직이는 자신의 시계 초침 소리를 들었다...” 무엇을 은유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마도 일종의 고문이 자행되는 지하 창고와 같은 곳에서 벌어지는 진실에 대한 공방... 결국 진실은 누군가가 원하는 그 무엇으로만 존재할 뿐이며, 우리가 진실이 내는 소리라고 믿었던 것들은 그저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시간이 흐르는 소리였을 뿐이라는 것인지...

 

  「두유전쟁」.

  “... 모든 수치는 정확히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멍청하게 생긴 이십대 청년의 머리에서 하루 이백만 배럴의 원유에 해당하는 고농축 유분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가장 강한 스토리라인... 머리에서 원유가 나오는 청년 성수범을 사이에 둔 한국과 미국의 쟁탈전...

 

  소설집의 제목 『자정의 픽션』은 박형서가 꿈꾸는 새로운 허구를 지칭하는 용어인 것 같다. 작가는 지금까지의 소설, 혹은 픽션이 가지는 허구들과 자신이 꿈꾸고 지향하는 허구를 구별하기 위해서인 듯, ‘자정의 픽션’이라는 제목을 쓰고 있다. 기존에 소설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재미는 절대로 기대할 수 없지만, 이런 것들도 소설이 되고 이런 허구들도 소설의 기술로 구사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ps. 사실 소설 내부보다 작가의 말에 등장하는 각각의 소설을 쓰게 된 배경 이야기가 더 재밌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논쟁의 기술」은 소설 창작을 강의하던 중, 학생들에게 소설이 씌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에서 집핍되었으나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으로 별로였고, 「날개」는 텔레비전 광고에서 착안했으며, 「노란 육교」는 작가가 기르는 고양이 로나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나왔으며, 「물속의 아이」는 오래전에 썼다가 처박아뒀던 소설을 네 번에 걸쳐 개작하여 나온 것이고,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는 논문 형식에 충실한 일종의 패러디이며 그 소설을 음란 소설로 규정하는 바람에 기분이 좋았다고 하며, 「존재, 혹은 고통 따위의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은 고등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쓴 것이라 하고, 「진실의 방으로」에서는 낯설게 하기와 알레고리를 너무 많이 시도하여 후회스럽다고 하며, 「두유전쟁」은 간이 나쁘면 머릿기름도 많아진다는 의학 상식을 입수한 후 엄청난 두려움 속에서 썼다고 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07.03.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