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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시의 소리를 듣다. 당신 "호주머니 속의 시"
"봄날, 시의 소리를 듣다. 당신 "호주머니 속의 시"" 내용보기
지난 겨울 내내, 나는 호주머니가 넉넉한 야상을 입고 다녔다. 삶과 소유가 이토록 허망하다는 것을 깨달은 여름이 지난 뒤에 맞은 겨울이었다. 필요한 날이 아니면 늘 야상을 고집해 입었는데, 보는 사람이 매일이 같은 날인 마냥 느껴지도록 늘 같았다. 그 야상은 따뜻하기도 했지만, 호주머니가 넉넉해 특히 좋았는데 그 한쪽 호주머니 안에는 항상 책을 넣고 다녔다. 책 한 권 쯤
"봄날, 시의 소리를 듣다. 당신 "호주머니 속의 시"" 내용보기

 

 지난 겨울 내내, 나는 호주머니가 넉넉한 야상을 입고 다녔다. 삶과 소유가 이토록 허망하다는 것을 깨달은 여름이 지난 뒤에 맞은 겨울이었다. 필요한 날이 아니면 늘 야상을 고집해 입었는데, 보는 사람이 매일이 같은 날인 마냥 느껴지도록 늘 같았다. 그 야상은 따뜻하기도 했지만, 호주머니가 넉넉해 특히 좋았는데 그 한쪽 호주머니 안에는 항상 책을 넣고 다녔다. 책 한 권 쯤 넣고 다닐 수 있는 주머니가 있는 야상이었다. 시인 임선기의 시집 '호주머니 속의 시'를 본 순간 나는 내 야상과 지난 겨울을 떠올렸다. 지난 겨울, 내 야상 호주머니 안에도 이야기와 시가 있었다. 또 다른 한 편에는 음악도 있었다. 그 이상의 풍요가 없었을 겨울이었다.

 

 임선기 시인의 시는 처음이었다. 시집을 읽고 독후감이라 하기에 부끄러운 기록을 남기면서 늘 쓰는 말은 [시인의 시를 처음 읽었다]는 말이다. 시집을 읽게 된 것이 길지 않았다고 늘 하는 변명이 있지만, 읽기 시작한 뒤로도 한달에 한두권을 읽다보니 늘 새로운 시인과 만나게 된다. 늘 초면이고, 거기에서 좋아하는 시인과 그렇지 않은 시인을 늘 첫대면에 가려내고 있다. 그런 조악한 선별 작업을 거쳐서, 임선기 시인은, 언젠가 구면이 되겠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시 한 편이 있다. 제목은 "수련의". 시집을 다 읽고 나서는 사람과 사람의 삶을 '먼지'로 표현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이 시에서는 생쥐의 삶을 '껍질이 도려진 채로' '살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냈다고 썼다. 먼지와도 같은 사람과 껍질이 도려진 처참함에서도 살고자 욕망을 드러내는 동물의 대비가 꽤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삶에 대한 강한 욕망을 우스갯소리로 표현하는 사람. 결국은 먼지와 같은 존재가 삻에 더 본능적인 존재의 무게감을 '우스갯소리'로 표현한 아이러니라니. 아래에는 "수련의", "먼지", "햇살의 마른 자국이 있는 집"이다.

 

수련의

 

[우스갯소리 하나 할까요, 제가

수련의 시절, 생활을 아직 모를 때

수십 마리 생쥐 껍질을 모두 벗겨 놓고

실험을 할 적 일입니다만, 그중 한 마리가

살아서 제게 걸어오는 것 아닙니까,

살고자 하는 욕망이라니, 껍질이 도려진 채로

말입니다]

 

 

먼지

 

[주일 저녁 성당에서 모임이 있었다

아내가 정중한 교우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남편은 먼지 같은 사람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햇살의 마른 자국이 있는 집

 

[사제가 구슬 소리를 세며 마당을 건너갔다

그저 몇 걸음입니다, 아무리 가벼워도

벌써 저 먼지들 후문 장미 불꽃송이에 옮겨졌어요

거기 저도 잘 아는 죽은 먼지들이 살죠]

 

 다른 시들 중에서는 언어/말에 대해 나타낸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말'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는데, 다른 사람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혼자인 시간에 그 날 내가 입밖으로 토해낸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한다. 그 말들이 얼마나 가볍고 값어치 없는지, 얼마나 쓸모없었는지. 말을 아끼면 아낄 수록 좋을 것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장난 수도꼭지 마냥 줄줄이 뱉어낸 가벼운 말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더없이 무겁게 변해 자책으로 짓누른다. 아래는 "기계 2"의 전문이다. 기계나 다름없이 생각도 없이 혀를 놀리는 행위가 주는 부끄러움. 바로 그러한 후회가 마지막 연에 들어있었다.

 

 

기계 2

 

[어디에서 말라버린 걸까

이 세계에는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물신이 주는 약을 자꾸 먹어야 돌아가는 괴물이

주인 행세를 한다

 

조그마하던 수메르인의 바퀴가 거대한

것이 되어 굴러다닌다

 

오늘도 나는 부끄럽게 혀를 놀렸다

기계 소리를 냈다]

 

 언어/말에 대한 또 다른 작품 "언어의 온도" 전문도 옮겨보았다. 이 시의 경우는 맨 첫 연에서 받은 느낌이 좋아서 몇번이고 그 부분을 반복해서 읽게 되었던, 이 시집에서 가장 마음에 든 시이다.

 

 

언어의 온도

 

[저녁의 운동장에서

낙엽이 깔린 길 숲길을 보았다

저공의 그 숲에 놀던 어린 햇빛이

어두운 얼굴로 서 있고

쌀알 같은 새 한 마리 조용히 지나간다

 

이렇게 세상의 화면은 어두워지는구나

나는 붉은 얼굴로

내 발에서 자라는 뿌리 없는 우울을 보며

가난의 개념 같은 세월과 그 끝에 오래된 하늘을

지났다

 

운동장에 첫눈이 왔다

겨울의 수위실 옆 키 큰 나무야

그 송이들을 저지하지 마라

여러 날 쉽지 않은 추위가 만든 송이들

마냥 차가운 날에

나도 수많은 어휘가 되고 싶다

 

저기 키 작은 아이들이

두꺼운 옷을 입고

나무를 두드리네

눈이 쏟아지네]

 

 임선기 시인의 시들은 읽기 편한 쪽에 속했다. 의미는 깊지만 난해함은 적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이 될 수는 없지만, 마음에 들었으므로 괜찮은 시집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시집이다.

 

 



이달의 사락 m******j 2013.05.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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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 임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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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 말라르메   너의 손바닥을 보면 조금은 외롭겠구나   나는 오래된 꿈으로 피로하였다 피로한 피는 푸르게 굳어 꽃이 되었지만   그것은 일그러진 꿈이라 앙증맞구나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저렇게 떠 있은지는   삶은 단편적이다 나의 얼굴은 조각나 있다                            (『호주머니 속의 시』 임선기 시집.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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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라르메

 

너의 손바닥을 보면

조금은 외롭겠구나

 

나는 오래된 꿈으로

피로하였다

피로한 피는 푸르게 굳어

꽃이 되었지만

 

그것은 일그러진 꿈이라

앙증맞구나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저렇게 떠 있은지는

 

삶은 단편적이다

나의 얼굴은

조각나 있다

                           (『호주머니 속의 시』 임선기 시집. 문학과지성사.)

 

꽃은 화사하고 아름답기보다는
저 멀리서 어둠이나 새벽, 겨울을 지나서 다가오기 때문에
서늘하고 신비로운 존재이다.

외롭다.
나는 꿈을 얼마나 오래 꾸어서 피가 피로해졌나.

꿈은 일그러지고,

피로한 피가 굳어서 푸른 꽃이 피었다.

푸른 꽃은 앙증맞다.


삶은 절망 때문에 오래 전에 조각났다.

 

 

- 시인의 말

 

들판 위 하늘에 걸리는 노을은

어디 멀리 갔다가 돌아오는 이의 얼굴 같다.

그 얼굴에는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엇이 있어서 묵묵히 걷게만 하는데,

어느새 날이 저물며,

낮의 눈으로는 더는 따라갈 수 없는 곳으로

노을이 진다.

 

언젠가 저 노을을

부끄럼 없이 만나고 싶다.

                                                 임선기

 

* 말라르메

1842년 생.

1847년 어머니 사망.

1857년 여동생 사망.

1863년 아버지 사망.

1879년 아들 사망.

그는 5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평생 가난과 고통 속에서 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