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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에 미치지 못함몇 년에 걸쳐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을 저자를 생각해보면, 이런 포스팅은 하지 않는게 예의인 줄은 알겠지만, 결과물로써의 책에 대해 좀 실망스럽다고 말해두어야 겠다. 정성을 다한 듯한 저자의 글쓰기를 보건데, "신념"이랄까, "세계관"이랄까, 혹은 최소한 양질의 책을 만들겠다는 의식은 독자에게 또렷이 전해진다. 하지만, 실망스럽고 또 실망스럽다. 사실 "그림에 갇힌 남자"라는 저 근사한 제목이 아까울 지경이다. 기대컨데, 이 책의 저자도 혹시 알고 있지 않을까. 자신의 책이 원래 의도했던 바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말이다. 도입부부터 조금 진부했다. 경험에 기반한 감상적인 글쓰기로 그 시작을 연 "저자의 말" 덕분에, 왠지 진부할 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저자의 말" 끝부분에 다음과 같은 발언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독자를 잔뜩 기대하게 만드는 이러한 호언장담 - 이라고 하기에는 조심스런 문구이지만 - 만 없었어도, "명화"도 보여주면서 동시에 생각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학과 동시에 특정한 주제의 미술사라는 저자의 소개는 좀 과장되었거나, (아직도 저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혹은 저자는 그런 기획 의도를 적절히 살리지 못했다. 남성학과 미술사를 다루고 있지만솔직히 책 속에는 미술사도 있는 듯 하고, 남성학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미술사라는 것이 그리스 미술과 로마를 거쳐 중세의 기독교 시대, 그리고 산업화의 유럽으로 이어지는 아주 편협한 여로를 쫓고 있고, 남성학은 책의 말미에 개론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할 만치 살짝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한 학기 짜리 수업을 위한 개론서라면 적절한 위치일까 싶지만, 그것에도 좀 부족한 느낌이고 책이 문제제기를 하고 학생들은 관련 내용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에는 꽤나 유용한 강의서일 수 있겠다.) 물론 중간에 그림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편협한 남성우월주의자"들의 시각이 소개되고 있지만, 남성학의 의의와 한계가 미술사와 미술작품을 관통하며 서로 관계 맺고 있진 못하다. 그러니까, 이 책의 실망스러움은 여기서 부터이다. 남성학이나 미술사라는 언급이 없었다면, 너무나 좋았을 책이 기대만 잔뜩 부풀여 놓고는, 사실 남자얘기를 하는 그림책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저자가 애초에 책을 기획하면서 생각했던, "남성학"과 "미술사"가 이런 초라한 풍채는 아니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불균형보기에 좋은 그리고 애로틱한 남성상을 그리는 것인 남성의 이상화이고, 아리따운 여성의 나신을 그리는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화가 아닌" "남성의 훔쳐보기의 산물이라는 평가"는 책의 전반에 걸쳐있는 불균형이다. 저자는 균형있는 남성의 근육질 몸매를 예술의 소재를 삼은 것은 "아름다움의 기준"을 찾는 과정에서 "남성만이 아름답고 완벽할 뿐"이고, 여성은 "아름다움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라는 주장을 되풀이 하면서, 그 많은 여성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그림들은 크게 언급하지 않는다. 언급을 하더라도, "그것은 남성 관람자의 시선"을 의식한 그림으로, 그런 그림들은 주요한 미술사에서 비껴나 있는 듯 설명하고 있지만, 여성의 몸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있는 그림만 모아도 수십,수백권의 화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게 다 남성의 자위를 위한 훔쳐보기용 작품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
좋은 소재, 부족한 밀도어리석음은 이해되어 용서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한 없이 조롱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불쌍한 남자들한테 돌팔매를 하지 말라, 하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기대에 어긋나는 책에 관한 이야기이다. 미술 작품에서 드러나는 남녀의 역할에 대한 프로토타입을 이야기하는 것이 저자의 말처럼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미 TV광고에서 나타난 남성과 여성의 관계 및 역할, 뉴스채널에서 여성 아나운서와 남성 아나운서의 위치, 정치적으로 위험한 신데렐라 신드롬 등등 성역할에 대한 고찰은 온갖 분야에서 다 까발려졌다. 미술작품이라고 별 다를 것 없다. 굳이 남성학이라는 타이틀을 갖다 붙여도 소용없다. 그래봐야 진짜 남성학에 대한 소개는 책의 끝 몇장에 한정된 것 아닌가. 그러니까, 남성학과 미술사의 접목을 기대했던 나 같은 독자에게는 실망스럽기 그지 없는 것이다. 미술사와 남성학의 접목은 커녕, 미술사도 남성학도 맛만 보다가 끝나버린 책이라고 밖에 평가해 줄 수 없다. 단지, 진정성이랄까, 책에서 느껴지는 그런 것에 의지해보면(그러니까 그것도 좀 희미한 것이지만), (앞에서도 말했지만) 저자도 자신의 참신한 기획에 미치지 못한 이 결과물을 놓고서 적지않이 실망하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정도로 저자도 독자도 적당히 넘어가는 편이 좋겠다. 이 책이 선택한 미술작품이 유럽이라는 협소한 미술의 공간속에서도, 유난히 선택적인 항로속에서 보고싶은 것만 찾아보는 여행이라는 느낌이 강한데, 좀 더 처음의 주제와 의도를 살리고 싶다면, "전쟁하는 남성", "사랑하는 남성", "남성의 누드", "아버지라 부르는 남성", "남성 지식인" 등등 그림의 범위를 고정하되, 역사나 시각은 열어두는 편이 더 좋으리라 생각된다. 미술학과 남성학의 접목이라는 흥미있는 주제에 대해서 좀 더 밀도있는 내용이 아쉽다. 비유하자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너무나 탐나는 시나리오를 한 신인감독이 맡아서 어딘지 엉성한 영화를 만들어 버린 느낌이랄까. 하긴 기대가 없었다면, 만족스러웠을 작품이라는 것도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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