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어느 곳에서나 투쟁은 존재한다. 그리고 승리하는 쪽은 언제나 정해져 있는 듯하다. 처음부터 힘의 균형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언론은 끊임없이 한 쪽의 목소리만을 내보내고, 사람들은 자신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쪽이 어느 편인지 알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투쟁은 그렇게 교통 대란을 유발하고 국가 경제를 망하게 만드는 소수의 선동행위로 전락하고, 그들에겐 언제나 그러하듯 감당하기 힘든 해고 통지서나 체포, 구속 영장만이 나부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마치 패배라는 숙명을 통한 쓰라린 성장에 목마른 것처럼… 코스의 노동자들 역시 그러했다. 그들은 노동조합을 가지고 있었지만, 투쟁에 익숙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회사의 어려움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초과수당 등을 받지 않은 체 복무함으로써 회사와 자신을 일치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들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구조조정의 그늘만이 드리워질 뿐이었다. 여성들이 제일 먼저 코스를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해고의 잣대에 대해 그 이유를 묻는다면 ‘생산력이 떨어진다’는 형식적인 답변만이 가능할 것이다. 자본의 시각에선 가차없이 내차야만 하는 사람들, 그들이 잃은 것은 직장만이 아니었다. 아무도 그들의 떠남에 대해 반기를 들지 않았다. 여성, 특히 결혼한 여성은 가정 내에 머물러야 정상이라는 식의 가치에 대해, 심지어 함께 일하던 사람들까지 동조한 듯 코스는 조용했다. 여성의 해고에는 너무도 조용하던, 그런 코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성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는 이전의 해고와는 차원이 다른 것일까? 물론, 해고에 대응하는 각 주체의 움직임은 너무도 차이가 났다. 재선을 노리는 정치가, 노동조합이라는 작은 권력에 안주하려는 간부급 인사들, 자본의 물결에 힘입어 자신에게 떨어지는 피해를 최소화하기에 급급한 CEO들 등이 같기를 바라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하지만 그들은 코스의 대량 해고 사태가 지닌 심각성에 대해서는 뜻을 같이 한듯했다. 이 시점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존재는 철저히 외면하는, 또 한 번의 냉혹함을 그들은 보여준다.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기계까지 파괴하면서 벌이는 사투는 그들의 투쟁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반면에 온갖 집기들을 두드리며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 해고 노동자들의 모습은 아이들까지 대동했다는 점에서 투쟁의 일상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여성이라면 가사와 육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미 해고된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노동자’가 아닌 ‘엄마’일 뿐이다. 실제로 협상 테이블 그 어디에도 그들을 위한 자리는 존재치 않았다. 어쩌면 그들의 투쟁의 실패는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누구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또 알 수도 없었다. 포르마는 끊임없이 독일인들의 압력에 시달렸고, 독일인들의 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미국인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파업 대열에 합류했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지닌 숭고함의 본질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작가는 평범하던 노동자들이 전사가 되어가는 과정을 미화하지만은 않았다. 투쟁의 전면에 서 있는 루디는 투쟁 동지 아르망의 아내 미키를 탐한다. (그렇다, 루디에게 미키는 투쟁 동지가 아니라 동지의 아내에 불과할 뿐.) 앙토니의 아내 앙젤리크는 폭력이 두려워 투쟁 정보를 상대 측에 넘기며, 코스의 전설적인(?) 존재였던 로르켕은 플로랑스 앞에서 이성을 상실한다. 게다가 마지막까지 루디의 석방을 위해 애쓰는 달라스마저도 아무런 후회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체 콥스의 정부가 됨으로써 세상의 윤리를 비웃는듯한 작태(?!)를 보여준다. 그렇다. 남은 것은 노동자들의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은 약정서와 유령 도시가 되어버린 로셀이 전부였다. “결국 투쟁은 우리 자신을 단련시키기 위한 과정일 뿐…” 지난 2000년 교육 투쟁을 놓고 혼란스러워하던 우리에게 한 선배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가 외치고픈 모든 걸 외쳤고, 그 목소리 덕에 무언가 큰 변화를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무뎌져만 갔던… 지난 투쟁이 날 성장시켰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실패라는 것은 언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기에, 초라한 1학년 1학기 성적표를 볼 때마다 나는 앓는다. Ps 이 책을 추천한 이들의 이름을 읽고 있노라니 기가 찬다. 그들 중에는 이 땅의 정리해고와 노동유연화를 위해 앞장섰던 이들도 있다. 그들이 이 책의 어떤 면에 그토록 감동했기에 추천사까지 날리면서 표지의 뒷면을 장식하고 있단 말인가? 감동한 그들이 경영하는 기업은 코스와 무엇이 어떻게 다르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