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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메타포의 언어로 인생의 의미를 투시했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그 기분 좋은 시적 문장들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작품이다. 치열한 자기 응시, 척박한 삶속에서도 피어나는 새로움에의 열망이 발산하는 찬연한 감동이 소설의 거대한 줄기가 되어 흐른다. 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되어, 비록 가난하고 침울한 환경이 삶의 전망에 그림자를 드리워도 삶의 긴장과 희망을 위해 도전하는 자유로운 정신들은 아름다움이 되어 마음 저 깊은 곳에 어느새 들어와 앉고, 까닭모를 흐뭇한 위로와 안락의 기운에 감싸이게 된다.
절도죄로 수감 중이던 스무살 청년‘앙헬 산티아고’의 사면석방 풍경이 부패한 간수와의 미묘한 위협의 대화에 담겨 권력자와 피지배자의 삶의 시선이 되어 적대적으로 교차한다. 권력자인 간수는 자신이 가했던 파렴치 행위의 보복이 두려워 살인죄로 복역 중인 무기수를 빼돌려 앙헬의 목숨을 끊을 것을 청부한다. 참혹했던 오랜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민주정부가 들어섰으나 사회 곳곳에 뿌리내렸던 부정과 타락과 부패는 단절되지 않고 여전히 그 악의 기운을 발하고, 편협과 독단, 획일과 고답으로 다양과 창의, 자유를 방해하며 기득권 유지의 불안으로 그 음흉함을 지속한다.
소설의 무대는 이처럼 근절되지 않은 부정의 구태에 새로움이 여전히 압도되고 있는 21세기의 칠레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들은 사랑하고 꿈을 꾸며 자유로운 희망의 날개들을 퍼덕거리기 마련이다. 좌절된 꿈으로 절망하는 소녀, ‘빅토리아 폰세’와 앙헬의 만남은 서로에게 희망, 미래의 존재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의지가 된다. 민주화가 되었지만 독재 군부에 의해 피살된 사람의 딸에게 보내지는 사회의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퇴학당하고 발레학원에는 수강료를 지불하지 못해 발붙일 곳이 없어진 소녀와, 세상의 사악함을 온 몸으로 체득한 청년은 그래서 서로의 꿈이 된다.
국립극장 무대에서 발레 공연을 하는 자신을 상상할 수 없는 빅토리아를 위해 무일푼의 앙헬은 은퇴한 최고의 금고털이‘베르가라 그레이’를 찾아 부정으로 축재한 권력자의 은닉된 재산을 털자고 제안한다. 추앙받는 최고의 범죄자가 아니라 고요한 범부로서의 삶을 희망하는 베르가라를 마침내 설득하여 인생의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의기투합한 이 주변인들의 행동이 위태롭지 않고, 불온해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추악한 권력의 희생자들인 이들이 취할 수 있는 불가피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도덕적 정당성에 관용을 부여할 수 있어서일까? 아니면 꿈꾸는 자들의 순수함, 새로운 세대에 대한 희망을 막아서지 않고 싶다는 기대에서일까? ...
한편, 알량하고 추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위선과 기만, 불변이라는 수구성을 강요하는 구태와 자기성찰의 기회를 통해 이를 반성하고 약자와 소외자를 위해 작은 몸짓이라도 하려는 변화의 소소한 충돌이 희극적 언어와 행동으로 소설의 저변을 수놓는다. 퇴학의 철회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여된 구술시험에서 획일성의 구태를 고집하는 국어선생과 빅토리아의 시(詩)에 대한 해석은 변화와 혁신의 장애가 무엇인지를 꼬집는다. 또한 독재정권의 하수인이었던 순경이 빅토리아의 국립극장 공연을 위해 앙헬을 도와 지배계급들을 기만하는 장면은 사회의 진정한 변화가 누구로부터, 또한 무엇으로부터 변모해야 하는지를 고발한다. 운집한 부자들과 권력자들을 몰아내고 발레 독무를 하는 빅토리아의 찬란한 아름다움이 영상처럼 시야에 그려지는 느낌은 그 어떤 화려함보다 멋지게 가슴에 들어차고, 왜 이러한 기성권위에 대한 도발이 감동인 것인지를 되뇌게 된다.
네루다와 그의 우편배달부 ‘마리오’, 마리오의 연인이고 아내가 된 ‘베아트리스’의 관계와 인생의 진정한 행복감, 유쾌함, 진지함의 투명한 본질들이 베르가라와 앙헬, 그리고 빅토리아로 변신하여 그대로 삶의 아름다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삶의 독자성이 더욱 견고하게 전달된다. 앙헬과의 벅찬 미래를 꿈꾸며 먼발치에서 연인을 기다리는 빅토리아의 간절한 시선이 못내 안타까움과 연민이 되어 더욱 작품의 여운이 오랜 파문을 남기지만, 거대한 하나의 메타포가 된 소설이 삶의 진지한 열정이 되어 비어버린 의지를 가득 채워준다. 영원처럼 다가오는 언어들과 문장, 이야기가 알 지 못하는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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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우리에게는 우루과이라운드의 피해 사례로 많이 접했던 국가이다. 안데스 산맥과 모아이 석상의 이스터 섬, 산티아고, 칠레산 와인. 이정도만 기억나는 중남미의 가난한 나라 칠레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한건 얼마전 읽었던 정혜윤의 '그들은 한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아름다운 청년 앙헬 산티아고는 어린 시절 말을 한마리 훔쳤다는 이유로 무려 5년형을 받게 된다. 게다가 어리고 아름다웠던 앙헬은 교도소에 들어가자마자 '세례' 라는 이름으로 남성 죄수들에게 윤간을 당하게 되고, 의도적으로 자신을 발가벗긴 채 감방안에 쳐 넣은 간수장 산토로에게 복수심을 품는다. 갓 스무살이 된 앙헬이 산토로에 대한 복수심을 간직한 채 교도소에서 가석방되고, 언젠가 닥쳐올 앙헬의 복수에 경계심을 품은 간수장 산토로가 앙헬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같은시간, 다른 교도소에서 희대의 금고털이범이었던 베르가라 그레이 역시 가석방된다. 금고털이쪽에서는 최고의 전문가이고, 교양과 지식이 풍부했던 베르가라 그레이는 유명세 덕에 비교적 수월한 감옥생활을 했고, 확실히 손을 털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교도소 밖으로 걸어나왔다.
돈 한 푼 없이 감옥 밖으로 나온 앙헬은 고향 산티아고로 돌아와서 그가 감옥에서 만난 '계획' 을 실행할 방법을 찾는다. 산티아고의 거리에서 추위에 서성이던 앙헬은 우연히 3류 에로영화관 앞을 서성이던 비쩍마른 소녀 빅토리아를 발견한다. 총각딱지를 간신히 떼자마자 감옥에 끌려가 윤간을 당했던, 아직 소년에 가까운 앙헬과 칠레의 민주주의 항쟁 당시 투사였던 아버지를 여의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어머니에게 방치되다시피 살아온 퇴학생 소녀 빅토리아의 만남은 우연이라기엔 운명에 가까웠으리라. 앙헬은 빅토리아를 보자마자 그 위태로운 매력과 욕망에 의해 순식간에 빠져들었고, 발레라는 꿈이 있지만 한없이 절망적인 상황때문에 나락에 빠져있던 빅토리아 역시 하늘에서 내려온 한줄기 동앗줄처럼 그를 붙잡게 된다.
한편, 석방되어 산티아고로 돌아온 베르가라 그레이는 희대의 금고털이 사건 외에도 무거운 입으로 유명했져 있었다. 공범자였던 절친한 친구 모나스테리오를 끝까지 보호해준 것이었다. 50대50으로 나누기로 했던 모나스테리오의 모텔겸 주점으로 향한 베르가라 그레이는 감옥에 있는통에 멀어진 아내 테레사 카프리아티와 어린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때 그는 자신이 받을 몫 50에 대한 것도, 앙헬의 계획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칠레라는 국가의 가난한 서민들의 상황이 잘 나타나 있는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지만, 문체만은 참으로 유머러스하고 가벼우며 대단히 따뜻하다. 우울한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 극중 배경이 한겨울이어서 작가의 주인공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더욱 잘 느껴지기에 읽기에는 거북하지 않다. 오히려 술술 잘도 넘어가는 편.
그리고, 칠레라는 국가의 사회환경이나 역사를 잘 알지 못해도, 크게 주춤하게 되는 부분은 없다. 우리와 상당히 비슷한 과정들을 겪어서인지 기저에 깔려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성문화는 꽤나 달라서인지 성적으로 거침없는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위의 줄거리에 드러난대로 청년 앙헬 산티아고와 베르가라 그레이, 이 두 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자존심과 영혼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스스로 회복하고, 꿈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는 젊고 아름다운 앙헬. 그리고, 우리나이로 고등학생정도 되는 소녀와의 운명적이고 헌신적인 사랑. 한때는 아주 잘 나갔고, 아름다운 아내와 아들까지 있었고, 자신이 헌신적으로 지켜주었던 절친한 친구도 있었지만, 감옥생활로 인해 그 모든것들을 잃고 서서히 무너지며 늙어가는 베르가라 그레이.
늙고 지친 베르가라 그레이는 감옥에서 나왔지만, 새로운 감옥에 갇힌바와 다름없었다. 그가 감옥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딱 두가지였다.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며 기다려 주리라 믿었던 아내 테레사와 아이. 그리고, 자신의 몫 50%를 굳게 지켜주고 있을 절친한 친구 모나스테리오. 하지만, 현실은 그가 상상한대로는 아니었다. 인생과 가족, 친구와 재산까지 읽은 베르가라 그레이 에게 남은것은 늙은 몸뚱이 하나뿐이었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그 관계들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너져가던 그를 구해준 것은 앙헬 산티아고와 빅토리아의 사랑이었다.
이 이야기는 복수와 용서의 이야기이자, 상처와 회복의 이야기이다. 또한 세대한의 화합의 메시지이기도 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의 이야기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얽혀 각자의 삶을 절묘하게 풀어낸다.
사람은 관계의 동물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좋든 싫든 많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아도 엄청나게 많은 관계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 관계라는건 밀도가 높고 촘촘해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헐겁고 약한 경우도 있다. 촘촘하고 단단한 관계는 의외로 쉽게 단절되기도 하고, 헐겁고 약한 관계가 의외로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또한, 나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대방에 의해 관계가 맺어지기도 하고, 관계가 깨지기도 한다.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러하든, 어떤 것도 '내 맘대로' 되는 일은 없다. 때때로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닐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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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하는 작가이지만, 영화로 보았던 [일 포스티노]의 작가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 작품 또한 스페인 [플라네타 상]을 수상하였다고 한다. 감옥에서 갖 출옥한 두 사람과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 여기에 과거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칠레의 정치적인 상황들이 결합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어두운 분위기를 담고 있지만 등장 인물들이 주는 밝음이 그것을 상쇄하며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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