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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은 빨리 읽어버릴 수도 있고, 천천히 읽고 또 읽을 수 있다. 무심한 듯,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넘겨 가면서 읽을 수도 있고, 한 줄 한 줄 따지면서 아끼면서 읽을 수도 있다. 시집을 읽고 있으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볼 수 있다. 마음 쓸 데 없을 때는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마음 바쁠 때는 후다닥 달아나는 시간. 시집을 잡고 있는 내 손이 책장을 넘기는 것에서 확인하게 된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나는 모처럼 한가했다. 책에 나온 프로필 사진으로 보아 젊은 시인인 듯했고, 시 속의 화자를 통해 추측해 보아도 젊은 사람인 듯 보였다. 젊은 시인은 충분히 고민할 줄 안다. 해결점이 보이지 않더라도 고민 그 자체를 사랑할 줄 안다. 어쩌면 고민이 아니라 고뇌라고 말해 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니 고민보다는 고뇌가 더 어울릴지도.
감히 그가 사용한 시어들에 대해 말할 생각은 없다. 신선하다느니, 진부하다느니, 통속적이라는 말까지 그 속에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다만 나는 그의 시를 신선하다고 느끼면서 읽었다. 아, 이렇게도 느끼고 이렇게도 표현하는구나.
시의 제목들만 보더라도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시의 제목들과는 거리가 좀 있다. 스테이플러, 스트로, 리트머스, 수배전단, 탈수, 러닝머신...이런 것들로도 시를 쓸 수 있다니. 이 시인은 이러한 메마르고 딱딱한 기계 혹은 소모품 속에서도 사람과 삶을 볼 줄 안다. 우리는 이미 너무 깊이 그리고 오랫동안 이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시를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시를 꿈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권해 본다. 괜찮으리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