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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들은 전쟁을 하게 하라. 행복한 오스트리아는 결혼하라.'라는 말은 꽤 유명하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결혼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였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했던 말이다. 정략결혼이 대부분 그랬지만,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실 결혼은 국제적 외교의 산물이었다. 다른 나라와 우애를 다지기 위해 공주와 왕자를 결혼시켰고, 때로는 사실상 외교 협상의 볼모 역할로 공주를 시집보내기도 했으며, 순전히 부유한 상속녀와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졸지에 재산이 늘어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 갖가지 정략결혼에서 공통점이 있었으니, 개인이 자의로 결정한 정략결혼은 전무했다는 것이다. 왕실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 아니라 왕실과 왕실의 협상이었고, 그 때문에 약혼자가 죽으면 약혼자 동생과 결혼하고 약혼자가 외동아들이어서 다른 후손이 없으면 약혼자의 아버지와 결혼하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인권? 결혼문제에 있어서는 남자에게도 선택권이 없던 시대였고, 여성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신생 제후 가문에서 세력 있고 재산 있는 가문과의 통혼을 통해 성장했고, 마침내 유럽 최고의 왕실 지위에 올랐으며, 결국에는 그 결혼 정책이 몰락에 일조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 책은 바로 그 합스부르크 왕가의 이야기를 결혼 정책을 중심으로 풀어놓은 책이다. 그리고 합스부르크 왕가를 조망하면서, 당대 유럽 정세와 세계적 사건에 대해서도 세세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있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갓 태동했을 당시의 기반은 취약하기 그지없었다. 합스부르크 가의 사람들은 허약한 기반을 강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든든한 집안과 혼약을 맺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참금 합의나 상속령 문제 등 온갖 외교협상을 통해 다른 명문가와 통혼하는 데 성공하면서 조금씩 성장해간다. 꾸준히 느리게 성장하던 합스부르크 가는 단 두 세대 만에 유럽에서 가장 넓은 땅을 보유한 가문이 된다. 막시밀리안 1세가 당시 가장 부유한 상속녀로 꼽혔던 마리아 폰 부르군트(부르고뉴의 마리)와 결혼했고, 그 아들인 필리프의 결혼 상대가 스페인 통합 왕국의 후아나 공주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후아나는 콜럼버스의 항해를 후원해 많은 식민지를 확보했고, 스페인의 최고 중흥기를 이끌었던 페르난도 4세와 이사벨 1세의 둘째 딸이었다. 그러나 왕실의 외아들과 첫째 공주가 죽자 후아나는 졸지에 통합 스페인 왕국의 상속자이자 후계자가 되었고, 후아나가 시집온 합스부르크 가는 그 막대한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게 되었다. 결혼 로또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정략결혼이란 현실 정세를 십분 고려한 만큼 지극히 근시안적인 정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결혼상대의 유산과 지참금으로 성장한 가문인만큼, 가문의 공주를 시집보낼 때에도 자신들이 얻어왔던 이득만큼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결혼 협상에서 걸림돌이 될 때가 많았다. 게다가 친분 있는 왕가끼리 대를 이어 결혼을 거듭하다 보니 근친혼이 속출했다. 이런 점들이 서로 얽히자 합스부르크 가문을 성장시켰던 결혼 정책은 점차 왕실의 발목을 붙잡기 시작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가문은 근친혼을 거듭하다 보니 유일한 후계자가 불임으로 태어나는 바람에 대가 끊겨서 멸망했고,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도 후반에는 결혼 정책 때문에 타국의 외교전에 휩쓸리는 경우를 여러 번 겪었다.
그 중에서도 마리아 테레지아의 자녀 결혼 이야기가 정말 기억에 남았다. 아이가 많은 만큼 많은 결혼을 치른 이유도 있겠지만, 정략결혼이 실패하는 사례가 갖가지 방식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첫째 아들 요제프가 사랑했던 첫 부인이 죽은 이후 후계자를 낳아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강제정략결혼을 시켰더니 요제프는 성격이 황폐해져갔고, 막내딸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와의 외교 협상의 담보물로 프랑스로 시집가 왕비가 되었다가 프랑스 혁명 때 처형당했고, 연애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애원하던 마리아 아말리아 공주를 정략결혼시켰더니 평생 마리아 테레지아를 미워하면서 오스트리아에 피해를 끼치는 온갖 언행에 앞장섰다. 둘째 공주였던 친언니는 연애결혼을 했지만 여제는 그 결혼을 축복하면서 막대한 지참금과 공작 작위까지 내려주었는데, 마리아 아말리아는 불행한 정략결혼으로 밀어넣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마리아 아말리아의 연인이었던 남성이 나중에 바이에른 왕국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옛날 둘째 공주 후아나가 졸지에 스페인 연합 왕국의 계승자가 되었던 것처럼, 바이에른 왕실의 자제가 모두 죽자 친척뻘인 공자가 후계자가 된 것이다. 바이에른을 동맹으로 삼기 위해 노력했던 마리아 테레지아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어떤 심정이었을지! 앞서도 말했듯이 결혼 동맹과 결혼 협상이란 지극히 근시안적이기 마련이라,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는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런 사례는 마리아 테레지아 이후 본격화되고, 합스부르크 가는 물에 젖은 모래성이 무너지듯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19세기에 들어서면 통혼을 통해 영토를 넓혔다는 것은 오히려 합스부르크 영지의 폭탄처럼 되어버린다. 민족주의가 대두하면서 여러 민족들이 독립을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영주의 결혼으로 통합된 다민족 국가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에서 그 움직임이 가장 두드러졌던 것이다. 합스부르크는 여러 전투와 전쟁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영토를 잃어갔고 조금씩 몰랐했다. 그리고 세르비아 민족주의 청년이 사라예보에서 순방하던 합스부르크 후계자이자 오스트리아 황태자에게 총격하면서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한다. 일차적으로는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전쟁이었지만 오스트리아와 동맹 관계에 있거나 대립하는 나라들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전쟁에 뛰어들면서 국제전이 되어버렸고, 이 이해관계에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결혼정책 여부도 한몫을 했다. 오스트리아는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왕가는 쓸쓸히 망명길에 떠나며, 통치자 가문으로서의 합스부르크의 역사는 사실상 종결된다.
이 책의 전반부가 합스부르크 가문이 결혼으로 부흥한 이야기라면, 이 책의 후반부는 결혼정책 떄문에 합스부르크 가문이 몰락한 과정 내지는 결혼정책을 통한 몸부림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왕가가 무너지는 과정의 이야기다. 이 책을 보다 보면, '결혼만 잘 하면 인생 한 방이다'라는 이야기가 얼마나 공허하고 덧없는지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재산도 있고 권력도 있고 왕권까지 있는 사람도 결혼에서 이득을 보려다가, 잘해야 불행한 정략결혼을 영위하고 잘 안 되면 원래 있던 것까지도 잃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복권 당첨은 돈만 타면 그만인데 비해 결혼은 평생 안고 가야 한다는 점에서, '좋은 혼처'는 고만고만한 액수의 복권 당첨금보다도 못한 것일지 모른다. 결혼으로 부흥한 합스부르크 가문이 어떤 의미로는 결혼 때문에 망해버린 것을 보면, 왠지 모르게 검으로 흥한 자 검으로 망하리라는 말이 오버랩된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합스부르크 가문의 연대기가 아니라, 합스부르크 가문을 통해 바라본 유럽 역사가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