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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시절에는 31살의 나의 모습은 거의 생각 해본적이 없었던 듯 하다. 막연히, 그 나이 되면 결혼은 했겠지? 않했으면 노처녀 취급 받는걸까? 밥벌이는 제대로 하고있을까? 라는 현실적인 생각만을 한번씩 했을뿐. 어느덧 30살이 된 나는 31살을 생각하고 있다. 20대의 끝자락에서는 30대로 접어든다는게 솔직히 탐탁치 않았고, 주위의 시선도 달갑지 않았다. 30이 되었을때는 여지없이 어른들의 화두는 '나이도 찼는데 시집가야지'라는 공통된 주제로 점철되 버렸다. 30살 된 여자는 다 결혼해야 하는거냐고요~(요즘은 덜하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어르신들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신다) 30이 되기전에 왜 주위 30대 싱글들이 명절에 어른들 만나는게 제일 꺼려진다고 했는지 나도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30이 된 올해 중반까지도 나는 누군가 내 나이를 묻는 질문에 '스물....'이라는 첫마디가 무의식중에 튀어나오곤 했다..아직도 20대이고 싶은거냐? 생각해보면 그렇지는 않다. 난 내 나이를 깊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흔히들 말하는 나이는 숫자일뿐..이라는 생각은 그냥저냥 지나가면서 하는 말일 뿐이고, 그냥 잊고 사는게 맞는듯 하다. 나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는게 맞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이 내 삶의 한중간 이라고 난 생각하고 있다. (내가 몇살까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이 나이가 되니, 꽤 유순해진듯도 하고 연배가 좀 있는 분들과도 그럭저럭 잘 지낼수 있는 융통성도 생긴거 같다.(20대시절에 난 털털한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퍽이나 깐깐하기도 했다.)
크게 의식은 하지 않으면서도 의식하는 나이 서른하나.. 앞으로 한달 남짓 남은 시점에 선물받은 이책은 제목부터 눈에 띄었다. 물론 31살이 되어서 다시 한번 읽어 봐야겠단 생각도 하고있다. 31살이란 나이로 일본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31편의 단편이야기가 책에는 담겨져있다.(남성의 시각으로 비쳐지는 31살의 여성들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사실, 일본과 한국.. 내가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라 그런지 읽으면서는 공감이 잘 되지 않는 부분도 꽤 있었다. 또한 일본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 못되는것도 한몫 했을거라고 본다. 짧은 단편들이 묶여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의 전환이 빨라질 수 밖에 없다. 짧은 이야기라도 푹 빠져있는 와중에 끝이 나버리면 약간은 허무하기도 했다.(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내용이 아주 좋았다기보다는 나에게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볼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싶다.) 하지만 그게 또 단편들의 매력 아닌가. 사실, 작가는 머리아프도록 깊게 생각하기를 바라지 않아서 한편의 장편보다는 이렇게 옴니버스 형식의 31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지도 모른다.(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31살의 여성들에게 나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보다는 적당히 즐기라고 이런 책을 써준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고...
여러모로 31살은 주위에서 보이지 않는 압박이 30인 지금보다 더 상당해질지도 모른다. 그것에 대해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난 여전히 머리 아프게 생각해보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는 참 단순하게 사는구나 라고 생각할지도, 현실을 좀더 냉정하게 생각해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마지막 장을 덮은 순간까지도 난 지금 이대로의 내 가치관대로, 내 생각대로 31살도 살아가면 되겠다는 종착점에 도달했을 뿐이다. 겁낼 필요는 없다. 난 항상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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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하나라는 나이는 인생에서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은 나이다. 그런데도 참 이야기가 많다. 서른한 살 여자들의 서른한 가지 이야기는 다른 듯 비슷하고 닮은 듯 조금씩 다르다. 아마 이 중 몇 가지는 누구에게나 있는 일일 것이다. 작가는 그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짧고 간단하게 전하고 있다. 마음에 와 닿기도 하고 또 그저 바라보게 되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나를 그리워한다.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생각을 했다. 내 나이 서른하나에 나는 무엇을 했나? 서른하나라는 나이는 어느 정도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성취할만한 나이이기도 하고 적당히 성숙함을 알만한 나이이기도 하고 또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열여덟에는 서른 해만 살다 가고 싶다고 일기장에 적었었다. 스물아홉에는 서른이 온다는 사실이 남들처럼 두려워서 바흐만의 <삼십 세>를 읽었다. 그리고 서른, 서른하나, 서른둘... 순식간에 내 나이들은 지나갔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남과 다른 생활을 했기에 내가 올린 서른하나의 성과라면 적당한 포기와 적당한 희망, 아직도 혼자 할 수 있던 힘과 찾아다닐 곳들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서른하나에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희망을 꿈꾸기도 하고 어떤 것을 알게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어떤 나이에도 일어나는 일이다. 죽음조차도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요즘 세상에 늦은 것은 아무것도, 그 어떤 것도 없다. 까마득했던 서른하나, 기억에 조차 없는 서른하나를 그래도 생각하게 해줘서 참 고마웠다. 내 서른하나는 묻혀 지나갔지만 남은 날들은 그렇게 만들지 않으리라. 또한 그 묻혀 지나간 서른하나가 있었기에 지금, 서른아홉의 내가 있고 무사히 마흔을 바라보게 되었음을 느낀다. 나이가 쌓이고 경험이 쌓이고 그리움과 추억이 쌓여 나를 만든다. 서른하나인 당신들은 어떤 것을 해도 아름답다. 그리고 그 어떤 나이의 사람들도 그만큼 아름답다. 살아있고 살아감에 그저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서른하나는 나를 받쳐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고 서른하나가 안 된 사람들에게는 나중에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거라 얘기해주고 싶다. 사람이 아름다운 건 어떤 나이에 어떤 모습으로 있느냐가 아니다. 어떤 나이라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자기를 사랑하고 타인을 그렇게 똑같이 봐줄 수 있는 마음 때문이다. 나는 서른하나의 내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말하고 싶다. 그때가 있어 오늘 내가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고 침전된 그 수많았던 날들 하나하나에 사랑을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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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왜 이렇게 서른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서른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난 아직도 혼란스럽기만하게 느껴지는 서른, 다른 사람들은 서른이라는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집어든 책들은 온통 서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이책역시 제목이 내나이 서른한살! 서른과 서른한살의 의미는 또 다를 수 있겠지.
모두 31편의 단편이 서로다른 주인공을 중심으로 얘기를 전개해 간다. 서른한살의 사람들은 처한 상황이나 능력, 그들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20대의 열정적인 삶이 지나가고 20대의 두려움과 시행착오, 목표들이 어느정도 휩쓸고 간 안정적인 모습의 삶이다. 서른 한살에 정신적인 안정을 과연 느낄 수 있을까? 난 단호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30대는 여전히 두려움과 혼란으로 가득차 있다. 정신적으로 20대만큼 열정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삶을 이해하거나 모든걸 포기할 정도로 결단이 생기는 나이도 아닌 것이다.
작가의 서른 한살은 성공으로의 안정이든 실패로의 포기든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춘 삶을 살게 된다. 실패라면 포기라는 결단으로 남은 삶을 현재의 상황에 맞춰 도전없이 최대한 버티는 삶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또다른 도전의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 도전에 의해 배우는 새로운 삶과 실패의 의미.. 어쩌면 서른이라는 시기가 마지막으로 도전할 수 있는 열정을 갖고 있는 나이일지도 모른다.
내게 찾아오는 더 큰 두려움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혼란스러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래서 난 서른이 두렵고, 서른하나도 두렵다.
새로운 시도라는 것은 기존의 안정적인 기득권, 지금까지 쌓아놓은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려야하는 의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기개발 서적보다는 같은 동시대의 비슷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나 태도가 나를 더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드는것 같기도 하다. |
| 나는 일본 소설을 즐겨 읽는다. 내가 제일 처음 접한 일본 소설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여류작가인 그녀의 작품을 토대로 이후 에쿠니가오리, 요시다슈이치의 작품들을 접했고 이내 그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하지만 친근한 인물묘사와 섬세하고 간결한 문체가 주는 매력에 빠져 이후로도 일본 문학을 찾게 된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번에 "야마모토 후미오"라는 작가가 쓴 "내 나이 서른 하나"라는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저자가 서른 하나라는 나이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막연한 궁금함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각기 다른 제목의 서른 한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단편들 속에는 "서른하나"라는 동일한 나이의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며 저마다의 삶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안에서 서른 한살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서른 한살, 나에게도 머지않아 찾아올 시간이 아니던가. 올해의 시작을 맞이한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올해의 시간이 보름도 채 남지 않았으니 한해 한해를 맞는 것이 살갗에 닿는 것처럼 빠르게 느껴진다. 그리하여 내년이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설레임보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안은 채 한살이 주는 깊이를 더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서 만나는 서른 하나 그대들의 일상이 곧 나의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기에 좀 더 진지하게 그들의 생각,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게 되더라. 저자는 이 책의 표지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 서른한 살, 사랑을 시작하기엔 늦은 것 같고, 사랑을 포기할 수도 없는 이상한 나이." 이 책에서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두 아이를 둔 평범한 주부가 자신의 아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쏟지만 아들은 무뚝뚝한 경우, 부부간의 무관심이 남편과의 오랜 별거로 이어지고 결국은 이혼의 막다른 길을 선택하는 여자, 섹스가 하나의 생활이였던 한 여자의 노섹스 선언, 갖가지 징크스를 믿는 여자, 주말마다 여행을 하는 여자, 일상생활에 약이 필수품인 여자, 배우자가 있음에도 불륜을 생활화하는 여자.. 등등 이 책에는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성격의 인물도 있는 반면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성격의 인물들도 등장한다. 꼭 서른 한살이라고 규정짓지 않아도 미혼의 여성이든 기혼의 여성이든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그 안에서 그들이 느끼는 심리표현이 잘 나타나 있어 그들의 삶에 나또한 빠져들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아들 편을 읽을 땐 큭큭 나도 모르게 웃음이 유발되더라. 무뚝뚝한 성격에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아들, 하지만 그런 아들에게 더 큰 관심과 표현을 기대하는 엄마. 실제 우리 집의 상황과도 조금 견주게 되어서 였을까. 서른 하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룰 나이. 이르면 꼭 닮은 2세까지 볼 수 있는 나이. 서른 하나.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에서 즐거움 느끼고 만족을 느끼고 성공을 꿈꿀 수 있는 나이. 서른 하나. 새로운 일을 찾아 어디든 떠날 수 있고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희망적인 나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선택의 결과도 달라지겠지만 진정 우리가 꿈꾸고 원하는 목적은 ''행복한 삶''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인생에 정답은 없듯이 아직 많은 삶을 살아보지 않은 내가 그들을 이해하기엔 턱없이 모자라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꼭 나이로 한정 지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이가 무슨 상관 이랴'' 내가 좋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이 책은 단편으로 된 소설이지만 내가 만나본 서른 한가지의 삶의 이면을 통해 만나게 되는 종착지는 바로 "나=자아"인 것이다. 거울을 통해 바라보게 될 서른 하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직 그 나이를 맞닥뜨리지 않은 이들에게는 설레임과 두려움의 마음일 것이고, 서른 하나가 과거가 되버린 이들은 잊혀졌던 과거의 나를 추억하며 그 때 내가 무엇을 갈망했고 누구를 좋아했고 어떤 꿈을 꿈꾸며살았었는지를 되새겨볼 수 있을 것이며, 바로 지금 서른 하나의 나를 그려가고 있는 이들에게는 또하나의 도전과 용기,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길을 모색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스물 여섯의 나는, 아직 가보지 않은 미래. 그 날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두려움의 마음으로 머지않아 다가올 그 날을 위해 기다린다. 그래서 더 궁금한 내 나이 서른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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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번 우연한 계기로 모그룹 - 결국 그 그룹공채를 통해 입사하게 되었지만 - 의 사보에 글을 쓰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내용은 그떄 읽고 있었던 '말테의 수기' 스러웠지만, 제목이나 모티브는 영어의 가정법에서 연유하였다. '만약 뭐뭐했더라면'이란 상상은, 황홀한 타임킬러이지만, 결코 인생에 도움에 되지 못하는 상상이다. 그런 상상이나 회한에 빠져있다면 현재의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할 터. 게다가, 솔 벨로우가 '시간을 잡아라 (물론, 현재의 시간을 즐기란 카르페 디엠과 공일한 의미지만)'라고 했는데, 그런 상상에 빠지면 다분 잽싸게 움직이지도 못할터. 그러나 여기, 20대 초반은 '아줌마'라고 부르며, 초딩과 10대들은 상상을 못한다는 (재섭는 것들!) 30대 초반의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그것도 30살의 우울한 고개를 넘긴 31살. '난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여자가 좋아.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나름대로 확고한 가치관도 가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새로 시작할 수 있고...' '서른 한살짜리 여자는 좋다. 그녀들은 세상을 이해하고도 남자를 이해한다' 가 가장 많이 이 책에서 인용되지만, 그건 이 책에 나오는 31편의 단편 중 남자가 말하는 소리다. '여자의 서른 하나는 남자의 서른 하나와 동일하지 않다'...가 가장 현실적인 인용문이라고나 할까? 난 결코 이 나이를 미화하고 싶지 않다. 나이는 그저 나이일뿐. 알란 파슨즈 프로젝트의 노래엔 'Old and wise'란 게 있지만, 나이가 든다고 반드시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사람들처럼 타고난 기질에 보다 차분하고 남을 배려하고 현실적인 인물들은 따로 있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나이를 먹는게 아니라, 그리고 자신의 일만으로 울어 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울어본 횟수만큼, 자신의 부모가 자신에게 한 것 때문이 아니라, 내 나이였을 때 뭘 했을지 왜 했을지 공감한 만큼, 결혼해서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아서 부모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말년을 생각하고, 아이 때문에 울어봐서 지혜로워진다고 생각한다. 여기엔 31개의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건 너무나 극적인 사람들이라 놀랍기도 하고, 좀 더 긴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야기가 다른 별 흥미없는 (나에게 말이다) 이야기와 동일한 길이로 끝나버리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감질나기도 했지만, 이 작품집이 보여주는 건 같은 나이지만 너무나 다른 모습들의 사람들이다. 요즘 어떤 광고엔 늦은 나이에도 새로운,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의 밝은, 감동어린 얼굴들을 보여주지만, 그런것에도 어떤 나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더 어린 나이에도 - 인간극장이 그래서 재미있다. 관음증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닐까..도 하지만, 보여지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부분까지는 아니라고 믿으니까 - 자기가 하고픈 것을 하는 청소년들도 있고.. 그런 것을 보면서 가장 흡족한 부분은, 바로 어떤 일, 즉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엔 어떤 나이 장벽도 없으며, 그런 것을 정작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대리 만족하고 자기 스스로도 희망을 가진 다는 것. 나이는 그저 나이일뿐이다. p.s: 31개의 너무나 다른 모습들을 그린 것은 대단하나, 작품집으로 묶어보기 보단 정기적으로 나오는 잡지안의 한개의 짧은 이야기로 읽었으면 더 음미의 시간이 길었을 듯,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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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후미오, 나오키 상을 받은 작가란다. 그녀가 그린 서른하나의 여자들의 삶은 어딘가 위태롭거나 무모해 보인다. 상당히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또한 현실이라 생각하기에 오싹해 보이는 면면도 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어느새 나도 다다른 서른하나라는 나이. 서른 즈음에 많은 고민을 해 본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더 살아가면서 점점 더 커질 것만 같다. 내가 왜, 어떻게 지금의 삶에 이르렀는지, 앞으로의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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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유독 명치 끝에 걸리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숫자가 있는데 바로 서른이 그러한 것 같다.
서른이 되기전 부터 혹은 서른이 지난 후에도 서른이란 숫자는 끝임없이 무언가를 생각나게 하고...그 숫자와 함께 같이 동행 해 주길 갈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오늘도 후배와 통화를 하면서 회사에서의 구조조정이야기와 함께 아이있는 엄마들을 노골적으로 싫어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서른을 통과 하고 있는 우리의 넘치는 열정을 바로 보아 주지 않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원망을 한참 쏟아 내었다.
그리고 마주한 내나이 서른 하나 속의 글들은 마치 결혼을 한 서른의 나. 결혼을 하지 않은 혹은 못한 서른의 나. 이혼을 한 서른의 나. 직장에서 휘둘려야 하는 서른의 나, 혹은 집에서 휘둘려야 하는 서른의 나, 아이들에게 휘둘려야 하는 서른의 나 등의 모습들이 마치 우리의 옆집을 나의 동료를 나를 보는 것 같은 소설이 아닌 마치 큰 사랑방에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 놓고 쏟아 내어 놓고..그럼에도 다시 한 번 화이팅 합시다..그 열정을 발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릴적 나 보다 먼저 서른이 된 그들을 보면 삶이 안정적으로 보인다고 생각 한 적이 있었다.그래서 서른이란 나이가 어른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했고, 집도 있어야 하고 남편도 있어야 하는 거라고 바보 같은 생각을 한 기억이 새롭다. 그래서 나의 서른살이 사춘기 보다 더 힘들게 지나왔구나 란 생각을 한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런 나의 채근거림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더 강해 질 수 있었고 스스로에게 당당해 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서른이란 숫자에 역시 목메일 필요 없음을 말하고 싶었다.
중요한건 역시 나이가 아니라 스스로 삶의 목표를 향해 잘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웃음이 더 많이 나오게 된 연유도 아마 나의 서른의 시절이 나의 친구들의 모습과 주변의 모습들이 많이 오버랩 되어 있어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서른의 문턱을 넘으며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용기가 되어 줄 거란 생각이다....적어도 나 혼자만이 힘든것이 아니란 것을 느낄수 있을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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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기전 막연하게 서른 하나라는 나이의 꿈같은 이야기들... 그러니까 현실에서의 내 나이 서른 하나와 소설속의 서른 하나는 어떻게 얼마나 다를지에 대한 환상을 품었었다.
내 나이가 바로 서른 하나... 무엇을 하기엔 늦었을 것 같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나이... 소설속 주인공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머릿속의 고민을 덜어놓고 마음만이라도 주인공이 되어 완벽한(?)삶을 꿈꿔보자 했다..
제목과 맞춘 듯... 서른 한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수 많은 서른 한살의 주인공들... 책 초반엔 한장 한장 읽어 내려가면서 무기력감 같은 것이 엄습해서 끝까지 책을 잘 읽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현실과 동떨어진 주인공들의 아름다운 삶을 기대했기에 그랬겠지만 왠지 모를 실망을 하게 되었다. 시원한 마무리 없이 미적미적 끝나버린다는 이야기들..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서른 하나라는 나이는 과대망상에만 사로잡혀 있을 수 없는 나이란걸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정확한 방향이나 안정된 생활을 갖기 않았더라도 무언가 새로 시작하기에 아직은 늦지 않은 나이라는 것을...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물흐르는 흘러가기만 바라기엔 너무 젊은 나이...
서른 한개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현재 좋다고 볼 수 없는 무기력한 삶에 둘러 쌓여있다. 이혼과 분륜의 관계속에 있는 상황들이 많아 조금은 정서적으로 맞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서른 하나의 나이에 좌절과 고민끝에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을 다 잡는다.
야마모토 후미오는 다른 작품들로 상도 많이 거머쥔 작가로 알고 있다. 다른 작품을 보기전에 [ 내 나이 서른 하나]를 만나게 된 것이 순서가 조금 바뀌었단 생각을 해보면서, 작가에 대한 익숙함이 없이 접하기엔 기대는 지나치게 하지 말아야 하는 작품이란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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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가져온 로망중에 하나는 이층집에 대한 로망이었다. 처음이 언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아직은' 시민결합의 다양한 형태를 기대하는 개인으로서) 미래 계획에서 빠지지 않았던 것이 '서울 근교에 작은 마당이 딸린 이층집을 사고 오순도순 살자는 것'이었으니 꽤 심지가 깊은 로망인 것은 분명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 짧은 계획 안에 요약되어있는 나의 욕망이 너무나도 노골적이라서 부끄러울 정도이다. 대체 한번도 살아본적 없는 이층집에 대한 로망은 어디서 나온 것이며, 서울 근교에 대한 강렬한 욕망과 더불어 '마당이 딸린' 따위의 디테일한 설정은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마지막이 ‘오순도순’ 이라는 단어로로 요약되는 것은 대체 어째서란 말인가. 다른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층집이라는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한 설정에 대해서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나는 심지어 이 집을 머리속에 구현 할 수도 있다. 그림을 잘 그렸다면 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로망이 시발점은 어린시절 부모님과 함께보던 TV드라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처음 접했던 이층집이 나오는 드라마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쨌든 내가 2N살이 된 요즘도 TV 드라마의 유행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지, 드라마 피크타임에 채널을 켜면 여기저기서 내가 머리속에 구현하고 있는 이층집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고백하자면, 나의 미래계획은 거의 모든 면에서 TV드라마가 재현하는 이성애 커플의 결합 계획을 따르고 있었다. 20대 후반에 결혼을 하고 그 이후로 한평생 행복한 삶을 꾸리는 행복하고 따듯하고 '오순도순'한 가족으로의 계획 말이다.
아뿔사. 그런데 여기에는 큰 장벽이 하나 있다. 무엇이냐하면 나는 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나를 비롯하여 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 않은 퀴어들이 매우 많으며, 퀴어중에는 시민결합의 어떤 형태든지간에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또 만약 '결혼'이나 그와 유사한 어떤 관계 맺음을 통해 공동체를 만든다고 해도 그것이 Happily ever after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 뿐이겠는가? 가족들의 반대와 일과의 충돌, 금전적 문제, 사회 규범적 문제 등등등.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30대의 퀴어에 대해서 도저히 상상할 수 가 없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30대의 퀴어는 거의 대부분 금발이거나 블론드의 머리를 하고 선글라스를 낀 혹은 히피같은 의상을 입은, 같은 말로 정리될 수 있는 미드속의 그들 뿐이다. 이건 퍽 이상한 일이다.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수많은 퀴어들이 30대만 되면 뿅! 하고 사라진단 말인가? 알다시피 그것은 절대 아니리라.
야마모토 후미오의 <내 나이 서른하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겪는 서른하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중 <밴드>라는 단편은 기타리스트 하나마루와 아이돌 미쿠리와의 소위 '포카포카'한 연애 스토리를 담고 있다. 하나마루는 스스로를 "이미 소년 같은 보이시한 이미지로는 팔리지 않(112p)"는다고 생각하는 서른하나의 여성 기타리스트이다. 한때는 그녀의 '보이시함'이 밴드의 장점으로 먹히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것이 먹히지 않는다고, 일종의 한계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나이에 하나마루는 미쿠리를 만난다. 하나마루는 아이돌인 미쿠리를 그다지 탐탁하게 여기지 않지만, 미쿠리는 하나마루가 처음 발매했던 앨범을 보여주면서, 처음 하나마루의 음악을 듣는 순간부터 좋아했다는 고백을 한다.
제법 뻔해보이는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은 유쾌하다.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종종 평가 절하되곤하는 '보이시'한 30대 여성의 매력적인 연애 이야기라니. 그것도 이성애 가족을 전제로한 불륜이 아니라니! 이전의 퀴어를 재현하는, 특히 레즈비언을 재연하는 수많은 서사들은 그들로 부터 성애적 측면을 제거하고, 친구 이상 연인이하의 미묘한 감정을 강조하거나,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자에게 휘둘려 불륜을 저지르는 스토리로 그려져오곤 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서 나는 이 작품이 소위 '티나는 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흔히 취업시즌이 되면, 서른이 넘으면 자연스레 머리를 기르고 소위 여성스런 옷차림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작품의 하나마루는 특별히 남자인체 하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주위의 시선에 맞춰 자신의 행동양식을 바꾸거나 하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방법대로 기타를 단련하며 서른 하나를 살아간다.
몇년 전까지만해도 서른은 너무나도 멀어보였는데, 벌써 나의 서른은 어떨까를 고민하고 기대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은 신기하다. 막상 가까워지고보니 서른이라는 것도 어쩌면 별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약간 들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서른이 얼마나 특별하느냐와 별개로, 퀴어의 삶에서는 참고할 만한 사례가 너무나도 적다는 것은 항상 불안을 야기한다. 내가 꿈꾸고 계획했던 미래가 '결혼'을 중심으로 획득되는 이성애의 결합방식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나는 종종 알 수 없는 불안에 빠지곤했다. 정말로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30대쯤 되면 '탈 동성애'하는거 아니야? 하는 어이없는 생각까지 하고 난 뒤에서야 우리가 참고할 만한 사례가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점에서 소위 티나는 부치의 연애 이야기를 다루는 <밴드>는 가볍지만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티나면 어때? 30대면 어때? 30대의 연애는 또 어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다가오는 30대가 조금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Reference] : 악어새, 「리뷰 - < 내 나이 서른 하나 > 의 퀴어의 삶을 상상하면?」 http://www.rainbowbookmark.com/xe/?mid=review&document_srl=7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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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다른 책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책이 제게 그렇습니다. 작가나 내용에 대해선 잘 모르고, 읽던 책에 인용된 구절이 인상적이라 기억해 뒀었죠. 게다가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며 서른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서른이 아닌 서른 하나에 초점을 맞춘 작가의 의도가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앞자리가 바뀌는 혼돈속에서 보낸 서른 보다는 그 다음 해인 서른 하나에 더 서른다울 수도 있을 것 같네요. ^^
31편의 단편이 모인 소설집입니다. 각각의 소설 속에는 31살의 '내'가 등장합니다. 인간 관계에서 가족 관계에서 남자 관계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여러 명의 '내'가 등장하죠. 여러 명의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기도 하고 과거의 내 모습이기도 하고 미래의 내 모습이기도 합니다. 읽을 수록 서른 하나나 마흔 하나나 혹은 스물 하나나 우리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의 무게나 모습은 비슷한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문제들이 나이를 먹는다고 순진하게 해결되지는 않겠죠. 나이를 먹을수록 관계에 노련해지고 세상을 넓게 볼 줄 알게 되고 그로써 더 어른스러워질 거라는 허망한 기대를 하면 안 되요. 실망만 커질지도 모르니까요.
지금 마음 아픈 건 그때도 마음 아플 거고, 지금 풀지 못한 매듭은 그때도 풀지 못할 거예요.
담담한 듯 하면서 '독'을 품고 있는 작가의 문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 다른 책도 더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싫은 것은 싫다. 싫은 사람도 싫다. 내 성격이 그러니까 봐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들 덕분에 사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다. 나는 재미있을 때만 웃고 재미없을 때는 웃지 않겠다. 사는 건 이렇게 간단한 일이 아닌가?
-p.65
부드러운 소고기 등심을 포크로 찍으며 나는 "아아, 편안하다!"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그의 기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어떻게 하면 그에게 프러포즈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맛있는 음식을 아무 잡념 없이 먹을 수 있는 편안함.
-p.91
속옷 전문 통신판매로 시작한 만큼 우리 회사에는 필연적으로 여성이 많다. 즉, 여자라고 해서 적당히 봐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약간 뚱뚱한 데다 일부러 난폭하게 말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나를 동정해주지 않는다. 몸도 마음도 강하게 보이려는 이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몸도 마음도 약하기 때문이다.
-p.290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나도 관심을 가질 수 없다. 남편과 톱니바퀴가 맞물려 있던 행복한 시간은 이미 끝났다. 인간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은 지금 눈앞에 있다. 앞으로 먹고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른다. 나를 안심하게 만드는 것은 거의 없지만, 소설의 세계에서는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맞이해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잃어버릴 것을 모두 잃어버린 지금,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랴.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사랑받지 못한다는 콤플렉스,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던 열등감에서 나를 해방시켜준 것은 소설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다음 순간 세상의 빛이 바뀌었다. 소설을 쓸 수 있으면 혼자 살 수 있다고 순수하게 실감한 것이다.
짝사랑은 괴롭고 안타깝다. 남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소설에게도. 그 안타까움이 지금까지 나를 움직이는 소중한 보물이었다고, 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전철 안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