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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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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유-   감동적이라는 영화는 대개 상투적이거나 지나치게 감상적, 혹은 교훈적, 혹은 지루하기 쉽다는 생각이 있어서 누가 '감동적이다'고 칭하는 영화에는 썩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 정말 <감동적>이다. 그야말로 마음이 따뜻, 촉촉, 훈훈, 뭉클해진다. 아아 이런 상투적인 단어 말고는 지금의 내 마음을 표현할 단어가 이렇게도 생각나지 않는 어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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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유-

 

감동적이라는 영화는 대개 상투적이거나 지나치게 감상적,

혹은 교훈적, 혹은 지루하기 쉽다는 생각이 있어서

누가 '감동적이다'고 칭하는 영화에는 썩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 정말 <감동적>이다.

그야말로 마음이 따뜻, 촉촉, 훈훈, 뭉클해진다.

아아 이런 상투적인 단어 말고는 지금의 내 마음을 표현할 단어가

이렇게도 생각나지 않는 어휘력이라니.

 

내 취향과 99% 일치하는, 너무 사랑하게 된 영화다.

만일 내가 영화감독이 꿈이라면, 바로 이런 영화를 만들게 해달라고 신께 기도했을 것이다.

 

- - - - - - - - - -

 

열악한, 고아원 비슷한 수용시설에 실패한 음악가 마티유가 선생님으로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교장은 작용 반작용의 법칙을 신봉하여 잘못에는 무조건 체벌,

아이들은 교장의 학대 속에 더더욱 문제아들이 되어 간다.

아이들을 감싸 주고 아이들 편에 서주는 마티유는 아이들로 합창단을 조직하게 되고

마티유의 애정과 자신들이 부르는 노래를 통해 아이들은 서서히 변화해간다.

말이 없던 모항쥬의 재능은 마티유에 의해 꽃피워가고

오지않는 부모님을 기다리던 페피노는 마티유의 사랑 속에서 포근함을 느낀다.

그리고 학교 선생들과 분위기도 서서히 변화해가는데.

 

하지만 문제아 몽당의 등장으로 그런 변화에 제동이 걸리게 되고

결국 그게 발단이 되어 마티유는 학교를 쫓겨나게 된다.

 

- - - - - - - - - -

 

음악을 통한 감화, 선생의 사랑으로 인한 아이들의 변화, 소망의 발견

대략 이런 이야기.

말해놓고 보니 시덥잖게 보이지만 영화는 전혀 시덥잖지 않다.

 

사실 지금까지 이 영화를 미국 영화로 알고 있어서 썩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는데

영화를 틀어놓고 배우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프랑스어 대사를 듣고서야

'아니, 프랑스 영화?' 하는 걸 알았다.

 

프랑스 영화는 예술적이긴 해도 '재미'에 있어서만큼은 글쎄 좀 그렇고

잘 나가다가 그 특유의 뭐랄까 난해함?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든 그런 요소들이

꼭 등장하곤 해서 참 가끔은 곤란한 영화라는 생각이 있는데

이 영화는 그런 편견(?)을 깨주었다.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어떤 분들은 너무 잔잔하다는 분들도 있었는데 글쎄 난 하나도 잔잔하지 않던데.

오히려 이런 영화의 특성상 꼭 뒤에 가서 비극적 사고가 터지기 때문에

영화를 행복하게 보는 와중에도 '대체 언제 터뜨릴꺼냐!' 조마조마해하며 봤다.

 

결국 영화는 문제아 몽당의 등장에 의해 분위기가 뒤틀려가고

마지막에 뻥 하니 터지는 사건도 결국 다 몽당에 의해서이다.

이 영화가 99% 만족스러운 영화이지만 딱 1% 부족한 게 이 부분이었다.

문제아 몽당은 왜 구원받지 못했는가? 하는 것.

영화 전체를 흐르는 따뜻한 감성에 이 부분만이 유독 일치하지 않는 것 같아 의아했다.

앞부분이 지나치게 쉽게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어 현실적인 요소를 끼워넣으려 한 걸까?

그렇다고 해도 공감하기 힘들다.

하다못해 몽당이 눈물을 흘리거나 슬퍼하는 장면을 딱 딱 한 컷이라도 넣어주었음 좋았을껄 싶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교장의 캐릭터도 잠시 왔다갔다햇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왔다갔다 할 수는 있지만 그 부분이 조금 설명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불평은 모두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만 삐긋했다간 자칫 지루하거나 전형적이거나 계도적이고 감동을 강요하는

영화가 될 수 있는 소재와 내용임에도

하나도 보는 사람 부끄럽지 않게 보는 내내 마음은 한껏 푸근 두 눈에는 눈물이 핑 핑 ..

 

내용도 내용의 전개도 게다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너무나 아름다운 음악들도

캐릭터들도 어느 것 하나 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없었다네.

그래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랑인게야.

아직도 마음이 훈훈 뭉클하다.

 

성격이 다소 다르지만 여러 모로 <죽은 시인의 사회>를 떠올리게도 하는 영화였다.

감동의 색은 다르지만 그 감동이 절절하고 가슴 속에서 흘러넘친다는 점은 똑같네그려..

너무 좋아서 감독의 다른 작품이 있나 검색해보앗는데

이상하게 이 작품 이후로는 필모그라피가 비워져있었다. 어디서 뭘 하시는지.

 

정말 너무 좋다. 자주 꺼내어 봐야겠다.

j********e 2009.02.27. 신고 공감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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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꾸러기 아이들한테 노래로 꿈을 찾게 해주는 영화! <코러스>
"말썽꾸러기 아이들한테 노래로 꿈을 찾게 해주는 영화! <코러스>" 내용보기
1. <코러스 Les Choristes> (합창단) 보는 이의 콧잔등이 시큰거리고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잘 봤다는 생각이 올라오는 프랑스 영화다. 2004년 크리스토프 바라티에 감독이 3류 학교에서 가르치는 음악 선생과 말썽꾸러기 학생들이 합창단을 만들어 삶을 바꾸는 모습을 그렸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모습에서 웃기기도 하고, 어른끼리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도 나오고, 성이 가득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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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러스 Les Choristes> (합창단) 보는 이의 콧잔등이 시큰거리고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잘 봤다는 생각이 올라오는 프랑스 영화다. 2004년 크리스토프 바라티에 감독이 3류 학교에서 가르치는 음악 선생과 말썽꾸러기 학생들이 합창단을 만들어 삶을 바꾸는 모습을 그렸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모습에서 웃기기도 하고, 어른끼리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도 나오고,

성이 가득찬 아이가 어른을 미워하면서 생긴 일을 그리기도 해서 눈요기감이 풍성하다.

 

2.

리옹에서 떨어진 시골학교인 봉드레탕 보육원은 새로 선생님이 왔는데도 대머리라며 놀려대기나 하는

골통 아이들이 다니는 따라지 학교다. 먹고 자면서 배우는 학교이지만, 가르치기도 배우기도 쉽지 않다.

 

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 때 죽었지만 토요일이면 데리러 올 것 같아 교문에서 기다리는 여덟 살짜리

페피노는 작고 귀엽긴 해도 토요일이 아닌데도 마냥 아버지를 기다린다.

얼굴은 천사같이 보이지만 말을 하지 않는 모항쥬(장 밥티스테 모니에),

하모니카를 엉터리로 불면서 선생님을 놀리는 노래를 부르는 코르방,

어버이가 즐기려고 아이들을 버렸다며 눈에 힘을 주고는 어른들을 노려보고 아이들을 괴롭히는 몽당...

 

새로 온 음악선생 클레망 마티유(제라르 쥐노)의 손가방을 훔쳐 안에 있는 종이를 꺼내보는 아이들...

(벌거벗은 아가씨 사진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꺼내 보니 악보만 들어 있다...쩝, 이게 아닌데...) 

어떤 쪽에서 보아도 선생님 말씀은 한귀로 흘려 듣고 제 멋대로 지내는 아이들이 있는 학교다.

 

'작용과 반작용'을 외치며 걸핏하면 아이들을 때리거나 독방에 가두는 라샹 교장(프랑수와 벨레앙),

체육 선생으로 처음에는 힘으로 아이들을 다루다가 클레망 선생의 영향을 받아 나중에는

음악과 체육이 아이들을 바르게 한다고 믿는 체육 선생 샤베르(카드 메라드)...

선생들도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제 멋대로 아이들을 다룬다. 

 

3.

1949년 새로 온 클레망 선생은 아이들은 본디 착하다면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려고 한다.

나쁜 짓을 한 아이를 교장한테 말하지 않고 뉘우치도록 끌어낸다.

아이들한테 첫 시간에 앞날에 뭐가 될 것인지를 쓰라고 했는데,

소방관이나 나폴레옹 같은 장군, 스파이 따위를 썼지만, 아무도 선생은 쓰지 않았다.

아이들이 몸소 보고 겪은 선생들은 본받을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나 보다. 더구나 라샹 교장을 보면.

 

이름나지 못하고 그냥저냥 시골 따라지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지만 클레망 선생은 아이들을 다독거리면서

길을 찾아준다. 합창단을 만들어 노래를 부르게 하여 비뚤어진 마음을 바르게 잡고, 꿈을 찾아주려 한다.

 

그런데 골칫덩어리들이 잘 따라줄까? 목소리가 아름답고 음악에 뛰어난 솜씨가 있는 모항쥬와

학교에서 바리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딱 한사람인 몽당을 합창단에 끌어들여야 하는데 할 수 있을까?

 

게다가 교장은 처음에는 합창단을 만들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때려치우라 하고,

교재 준비할 돈마저 누가 훔쳐가버려 더운물로 몸을 씻지도 못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끌고갈는지...

 

언제나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다. 어른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나쁘게 바뀔 뿐, 아이들이 처음부터

나쁜 건 아니다. 아이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어른들이 녹여줘야 한다.

 

보육원의 아이들은 클레망 선생을 만나 꿈을 되찾고, 토요일마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페피노도

꼭 아버지를 만났으면 좋겠다.

 

4.

클레망 선생 덕분에 커서 나중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 이가 있다. 누굴까? 

같이 노래하던 동무와 함께 클레망 선생이 남긴 일기를 보면서 50년 전의 일을 되돌아본다.

 

영화 뒤에 깔리는 합창단의 여러 노래가 듣기에 그지없이 아름답고, 이야기가 잘 짜여져 있어

시간이 가는줄 모르며, 보고 있자면 마음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고 눈가엔 눈물이 맺힐 수도 있다.

 

처음에는 같이 안 보겠다고 빼던 아들 녀석들이 다 보고는 "이건 좀 재미있네요" 하면서 일어선다.

큰 놈은 늦은 시간인데도 다시 한번 보면 안되냐고 한다.

피붙이들끼리 오손도손 앉아 같이 보면 딱 좋을 영화다.

 

디브이디는 화면도 좋고, 소리도 괜찮다. 나온지 오래지 않아 그런지 공을 많이 들였다.

보너스가 따로 한 장 짜리로 들어 있는데, 볼만하다.

 

아이들을 거의 다 촬영하던 곳 가까이 있는 학교에서 여섯 살에서 열다섯 살까지를 뽑았는데,

한번도 연기를 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지만 차츰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는 이야기들,

여름에 촬영을 한 탓에 1월인 겨울을 나타내려고 기계로 눈과 흰 소금을 뿌리고 파란 담쟁이 잎을

떼어내었으며, 옷을 두텁게 입은 아이들이 더워서 혼이 났다는 따위의 일들이 들어있어 보기에 즐겁다.

b******g 2008.01.31. 신고 공감 0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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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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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후 어려운 프랑스 어느 시골 보육원, 고아나 가난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서 꿈을 갖게 한다. 멜로디가 자꾸만 흥얼거리게 되는 정서 만점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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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후 어려운 프랑스 어느 시골 보육원, 고아나 가난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서 꿈을 갖게 한다. 멜로디가 자꾸만 흥얼거리게 되는 정서 만점 영화.
j***p 2007.01.06. 신고 공감 0 댓글 0
꼭 보면 해당 주제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주제에 말만 쎄게 하면 그게 비판이 되는 줄 착각하는 하층민이 있다. 당장 뉴턴의 역학법칙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목소리만 높인다고 썩은 머리통 속에 안목이 생기겠는가? 이런 건 입으로 과학을 떠들어도 그건 이미 과학이 아니라 무슨 무당의 푸닥거리 같은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이란 발음에서 절로 신통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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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보면 해당 주제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주제에 말만 쎄게 하면 그게 비판이 되는 줄 착각하는 하층민이 있다. 당장 뉴턴의 역학법칙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목소리만 높인다고 썩은 머리통 속에 안목이 생기겠는가? 이런 건 입으로 과학을 떠들어도 그건 이미 과학이 아니라 무슨 무당의 푸닥거리 같은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이란 발음에서 절로 신통력이 생긴다고 믿는 모집인이 읊어 대는 과학은 이미 과학이 아니라 '내 머리에 지식을 생기게 해 줘. 없는 뇌세포가 생기게 해 줘(늙어서 썩은 것도 아니고 아예 날 때부터 없음)' 같은 미신적 애원(코믹한)에 불과하다.

이런 하층민도 어려서 좋은 선생을 만났다면 닭대가리에서 뿔이 돋듯 혹 사회에 쓸모있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영화는 겉보기에 아무 카리스마도 요령도 없어 보이는 어느 '실패한 음악가'가 부임한 '삼류 보육원'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다룬다.

프랑스에서 '보육원'은 20세기 전반 좀 독특한 기능을 행한 시설이다. '보육원'은 아니고, 시설이 열악하다 보니 한국으로 치면 '고아원' 비슷하게 번역을 해야 관객이 알아먹으려니 생각한 듯하다. 그렇다고 영화를 보면 또 전부 고아들은 아니니 고아원으로 옮기기도 좀 그랬겠고. 이런 '보육원'이 나오는 다른 영화는 유명한 반전 미스테리 고전 <디아볼릭>이 있으며, 개인적으로 작년 10월 19일에 DVD 리뷰를 올린 적 있다. 그 영화는 195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흑백이며, 이 작은 그때로부터 근 반 세기 후의 것이다. 여기 극중에도 영감탱이 둘이서 '오십 년 전 일이지?'라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물론 둘 사이에 일부 배경이 겹치는 외에는 전혀 연계가 없으며, 단 저 작 <디아볼릭>은 자신의 당대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이 작 속의 과거-현재 간격과 어찌어찌 일치하게 된 것).

전쟁이 막 끝나고 사회가 폐허가 되다 보니 고아는 고아대로 양산되고 멀쩡한 시민들도 하층민으로 전락하여 입에 풀칠이나 간신히 하는 게 거의 일상이 되던 시절이다. 여기서 보육원으로 번역된 'internat'(발음은 앙떼흐나. '인터넷'이 아닙니다요)는 원래가 보딩 스쿨, 즉 기숙학교를 뜻하는데 본디 기숙학교는 부유층 자제들을 위해 마련된 게 보통이었으나 시대상이 시대상이다 보니 전혀 다른 계층의 아이들을 위해 이리 변형되어 설치되기도 했다. 여기서 교장 등 시설 운영측의 관심사는, 첫째가 경비를 삥땅치는 것이다. 이 극에서 교장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나 아이들이나 교사들의 복리 후생에는 전혀 관심없고 오로지 예산을 최대한 쥐어짜내 자신의 뱃속을 채우는 데만 골몰하고, 그 예산은 일부 정부 보조, 일부 귀족들의 후의에 기댄다. 요런 설정은 저 고전 <디아볼릭>도 취하며, 따라서 제목의 '디아볼릭'은 교장, 그런 열악한 시스템에서 착취당하고 양심을 파는 선생들, 무엇보다 학대와 방치의 대상인 아이들의 마음 속에 공히 스며든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데, 아이들은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데다 규칙을 어기면 마치 군대에서 영창 가듯 독방에 감금까지 되는 등 매우 엄혹하게 다뤄지며 전반적인 처우가 거의 학대에 가깝다. 한국의 고아원에서도 '감금' 같은 제재가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설마 그 정도까지이겠나 싶다(하긴, 공평하게 195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면야). 영화는 이런 사연으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앞서 잠시 말한 대로 보육원 출신의 두 늙은이가 오십 년 만에 조우(근데 액면만 보면 육십 년은 지난 듯ㅋ)하여 과거를 회상하는 씬으로 열리는데, 둘이 공통으로 언급하는 '고마운 선생님'이란 존재가 있다는 식으로 과연 누구일지(아마도 이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가 궁금해지는데, 이어 열리는 과거의 사연은 대뜸 버스에서 내리는 대머리 중늙은이가 보육원의 문을 두드리는 씬인지라 큰 실망을 부른다.

'과연 저런 사람이 무슨 큰 일, 아니 작은 일이라도 해 낼 수 있을까?' 헌데 의외로 이 아저씨는 아이들 다루는 수완이 좋은데, 첫째 일단 마음이 진심일뿐 아니라 혼내키고 어를 때는 또 나름 실감나게 하는 터라 이루말할수없이 타락한 꼬마들, 그 중에는 중견(?) 범죄자에 가까운 악의, 완력, 썩은 영혼, 외모(!)를 지닌 녀석도 있는 판인데도 결국 감화, 준 감화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음악을 할 게 아니라 애초에 이쪽으로 길을 트는 게 모두를 위해서 좋았을 듯하다.

보통 문제아 다루는 감동선생 장르에서 사실 제일 이해가 안 가는 건, 어쩌면 그런 후진 시설에 재능 있는 애들이 옹기종기 잘도 모여 있느냐는 것이다. 뭐 돌대가리 붙잡아 놓고 구구단 암기 시키거나, 과학에 대해 1도 모르는 태생 무뉴런 닭대가리한테 주기율표 외우게 하는 건 어찌 가능하겠으나(아, 생각해 보니 이것도 무리겠구나. 취소), 음악은 애초에 안 되는 애들한테 무슨 수를 써도 개량이 안 될 뿐더러. 퍼포먼스는 고사하고 듣는 귀 자체가 안 뚫리게 마련이다. 뭐 여튼 선생의 진심이 '기적'을 만들었다 치고, 훈련시킨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음향이란 가히 천국의 그것이라 할 만하다. (당연한 게, 전문 인력의 더빙이겠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라르 쥐노의 연기는 이런 장르에서 흔히 보는 대로 과장 같은 게 없이, 또 없는 능력 억지로 끌어내려는 무리수 없이 참으로 자연스럽다. 영화의 플롯이 그리 잘 짜여진 편이 아닌데다(그렇다고 장르 경로에 구태의연하게 기댄 것도 아니지만), 이런 장르 자체가 이미 사골처럼 우려먹은 소재인데도 끝까지 계속 보고 싶은 건, 지극히 평범한, 아니 평범 이하의 외양에서 은근 실력을 내뿜는 빈틈 없고 탄탄한 기본기를 차분히 구현하는 저 대머리 선생의 연기력이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지레 '교만하지 않겠다'는 번짓수 빗나간 가짜 겸양을 떠는 삼류 교원과는 너무도 차이가 나지 않는가.

모항쥬라는 천사의 얼굴을 한 소년(사실은 아님. 나이에 비해 늙고 찌들어 보임)은 그 애미라는 여자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았는지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다. 일개 고아를 그 정도로 출세시켜 놓았다면 일단 출세의 발판이 마련된 후에 한 번 정도는 찾아가 뵈었어야 옳지 않았을까? '몽당'이라는 불량배가 들쑤신 대로, 과연 삼류 웨이트리스의 처신답게 아이 교육은 관심 없고 돈 많은 남자를 만나기 바쁘니 어찌 '매춘부'라는 오해를 피하겠는가? 눈치도 참으로 둔해서, 아무리 마음이 안 끌리더라도(이건 이해가 됨) 선생이라는 자가 그만큼이나 성의를 기울이는데도 바로 '지금 만나는 자(와 그가 몰고 온 고급 승용차)'를 입에 담을 정도니 '그런 일' 말고는 요량이 닿는 바가 없을 듯하다. 여튼 의외로 극중 설명으로는 '그 남자를 더 이상 만나지 않고 자식 교육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저 뇌 없는, 길거리 캐스팅에만 헛바람이 든 어느 모집인이 유념할 만한 대목이다(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극을 급히 마무리지으려는 억지 설정).

s****o 2023.07.16. 신고 공감 0 댓글 0
끝이었다.. 선생님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키팅 선생이 끝이였고.. 선생과 학생의 이야기가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죽은 시인의 사회가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 어느 정도의 감정과 재미는 있었지만.. 어떤 영화에서도 키팅 선생만큼 울림을 주는 선생님은 없었다. 오히려, 비슷한 감동으로 모습으로 다가오는 영화들은 거부감을 주기도 했다.. 역시나 조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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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었다.. 선생님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키팅 선생이 끝이였고.. 선생과 학생의 이야기가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죽은 시인의 사회가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 어느 정도의 감정과 재미는 있었지만.. 어떤 영화에서도 키팅 선생만큼 울림을 주는 선생님은 없었다. 오히려, 비슷한 감동으로 모습으로 다가오는 영화들은 거부감을 주기도 했다.. 역시나 조금의 감동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어쩌면 코러스도 그렇다. 내용 면에서 절대 죽은 시인의 사회의 감동을 넘지 못한다. 떠나는 선생님을 위해 종이 비행기를 날리던 모습도, 조금 열려진 문 사이로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면 책상으로 올라서던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키팅 선생의 미소만큼 감동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은 없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로 감동을 주려고 하든 다른 영화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이 없다. 왜냐하면, 어차피 영화는 키팅 선생 이상의 선생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마티유 선생은 이미 잊혀져 가는 희미한 기억 속의 선생일 뿐이다. 굳이 떠올리려고 하지 않으면 기억나지 않는.. 그리고 그가 아이들에게 끼친 영향이라는 것도.. 딱 거기까지이다.. 그의 일기를 통하지 않았더라면 잊고 지났을 기억..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다른 영화 속의 선생님들 만큼 학생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실패한 작곡가이지만 그런 이유로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지도 비관하지도 않았고, 사랑받지 못하고 관심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뭔가 해주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이다. 여기까지가 그저 교육영화가 가지는 단순한 줄거리라면.. 이 영화를 이끌어주는 강력한 매력은 마티유 선생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매개채가 바로 음악이라는 것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그들 목소리에서 나오는 합창.. 아직은 순수한 목소리에서 나오는 그 아름다운 화음은 단연코 이 영화의 압권이다.. 영화 중반부부터 계속 들을 수 있는 이 합창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한 감동을 전해준다.. 특히나 모항쥬의 솔로부분에선 음악이 끝나는 게 아쉬운 생각이 들 정도니..

아마도 이 영화에서 또 다른 키팅 선생을 찾고자 한다면.. 그다지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 영화에서는 평범하지만 여전히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약간은 촌스러운 마티유 선생만이 있을 뿐이니까..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마음의 위안을 찾고 싶다면.. 이 영화를 강력히 추천한다.. 무엇과도 비교하지 않고.. 영화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화음에 내 귀를 그리고 내 마음을 맡겨둔다면.. 분명 영화는 아름다운 음악을.. 그리고 약간 진부하지만.. 여전히 감동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까..
m******1 2008.04.23. 신고 공감 0 댓글 0
꼭 보면 해당 주제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주제에 말만 쎄게 하면 그게 비판이 되는 줄 착각하는 하층민이 있다. 당장 뉴턴의 역학법칙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목소리만 높인다고 썩은 머리통 속에 안목이 생기겠는가? 이런 건 입으로 과학을 떠들어도 그건 이미 과학이 아니라 무슨 무당의 푸닥거리 같은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이란 발음에서 절로 신통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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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보면 해당 주제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주제에 말만 쎄게 하면 그게 비판이 되는 줄 착각하는 하층민이 있다. 당장 뉴턴의 역학법칙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목소리만 높인다고 썩은 머리통 속에 안목이 생기겠는가? 이런 건 입으로 과학을 떠들어도 그건 이미 과학이 아니라 무슨 무당의 푸닥거리 같은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이란 발음에서 절로 신통력이 생긴다고 믿는 모집인이 읊어 대는 과학은 이미 과학이 아니라 '내 머리에 지식을 생기게 해 줘. 없는 뇌세포가 생기게 해 줘(늙어서 썩은 것도 아니고 아예 날 때부터 없음)' 같은 미신적 애원(코믹한)에 불과하다.

이런 하층민도 어려서 좋은 선생을 만났다면 닭대가리에서 뿔이 돋듯 혹 사회에 쓸모있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영화는 겉보기에 아무 카리스마도 요령도 없어 보이는 어느 '실패한 음악가'가 부임한 '삼류 보육원'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다룬다.

프랑스에서 '보육원'은 20세기 전반 좀 독특한 기능을 행한 시설이다. '보육원'은 아니고, 시설이 열악하다 보니 한국으로 치면 '고아원' 비슷하게 번역을 해야 관객이 알아먹으려니 생각한 듯하다. 그렇다고 영화를 보면 또 전부 고아들은 아니니 고아원으로 옮기기도 좀 그랬겠고. 이런 '보육원'이 나오는 다른 영화는 유명한 반전 미스테리 고전 <디아볼릭>이 있으며, 개인적으로 작년 10월 19일에 DVD 리뷰를 올린 적 있다. 그 영화는 195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흑백이며, 이 작은 그때로부터 근 반 세기 후의 것이다. 여기 극중에도 영감탱이 둘이서 '오십 년 전 일이지?'라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물론 둘 사이에 일부 배경이 겹치는 외에는 전혀 연계가 없으며, 단 저 작 <디아볼릭>은 자신의 당대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이 작 속의 과거-현재 간격과 어찌어찌 일치하게 된 것).

전쟁이 막 끝나고 사회가 폐허가 되다 보니 고아는 고아대로 양산되고 멀쩡한 시민들도 하층민으로 전락하여 입에 풀칠이나 간신히 하는 게 거의 일상이 되던 시절이다. 여기서 보육원으로 번역된 'internat'(발음은 앙떼흐나. '인터넷'이 아닙니다요)는 원래가 보딩 스쿨, 즉 기숙학교를 뜻하는데 본디 기숙학교는 부유층 자제들을 위해 마련된 게 보통이었으나 시대상이 시대상이다 보니 전혀 다른 계층의 아이들을 위해 이리 변형되어 설치되기도 했다. 여기서 교장 등 시설 운영측의 관심사는, 첫째가 경비를 삥땅치는 것이다. 이 극에서 교장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나 아이들이나 교사들의 복리 후생에는 전혀 관심없고 오로지 예산을 최대한 쥐어짜내 자신의 뱃속을 채우는 데만 골몰하고, 그 예산은 일부 정부 보조, 일부 귀족들의 후의에 기댄다. 요런 설정은 저 고전 <디아볼릭>도 취하며, 따라서 제목의 '디아볼릭'은 교장, 그런 열악한 시스템에서 착취당하고 양심을 파는 선생들, 무엇보다 학대와 방치의 대상인 아이들의 마음 속에 공히 스며든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데, 아이들은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데다 규칙을 어기면 마치 군대에서 영창 가듯 독방에 감금까지 되는 등 매우 엄혹하게 다뤄지며 전반적인 처우가 거의 학대에 가깝다. 한국의 고아원에서도 '감금' 같은 제재가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설마 그 정도까지이겠나 싶다(하긴, 공평하게 195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면야). 영화는 이런 사연으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앞서 잠시 말한 대로 보육원 출신의 두 늙은이가 오십 년 만에 조우(근데 액면만 보면 육십 년은 지난 듯ㅋ)하여 과거를 회상하는 씬으로 열리는데, 둘이 공통으로 언급하는 '고마운 선생님'이란 존재가 있다는 식으로 과연 누구일지(아마도 이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가 궁금해지는데, 이어 열리는 과거의 사연은 대뜸 버스에서 내리는 대머리 중늙은이가 보육원의 문을 두드리는 씬인지라 큰 실망을 부른다.

'과연 저런 사람이 무슨 큰 일, 아니 작은 일이라도 해 낼 수 있을까?' 헌데 의외로 이 아저씨는 아이들 다루는 수완이 좋은데, 첫째 일단 마음이 진심일뿐 아니라 혼내키고 어를 때는 또 나름 실감나게 하는 터라 이루말할수없이 타락한 꼬마들, 그 중에는 중견(?) 범죄자에 가까운 악의, 완력, 썩은 영혼, 외모(!)를 지닌 녀석도 있는 판인데도 결국 감화, 준 감화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음악을 할 게 아니라 애초에 이쪽으로 길을 트는 게 모두를 위해서 좋았을 듯하다.

보통 문제아 다루는 감동선생 장르에서 사실 제일 이해가 안 가는 건, 어쩌면 그런 후진 시설에 재능 있는 애들이 옹기종기 잘도 모여 있느냐는 것이다. 뭐 돌대가리 붙잡아 놓고 구구단 암기 시키거나, 과학에 대해 1도 모르는 태생 무뉴런 닭대가리한테 주기율표 외우게 하는 건 어찌 가능하겠으나(아, 생각해 보니 이것도 무리겠구나. 취소), 음악은 애초에 안 되는 애들한테 무슨 수를 써도 개량이 안 될 뿐더러. 퍼포먼스는 고사하고 듣는 귀 자체가 안 뚫리게 마련이다. 뭐 여튼 선생의 진심이 '기적'을 만들었다 치고, 훈련시킨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음향이란 가히 천국의 그것이라 할 만하다. (당연한 게, 전문 인력의 더빙이겠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라르 쥐노의 연기는 이런 장르에서 흔히 보는 대로 과장 같은 게 없이, 또 없는 능력 억지로 끌어내려는 무리수 없이 참으로 자연스럽다. 영화의 플롯이 그리 잘 짜여진 편이 아닌데다(그렇다고 장르 경로에 구태의연하게 기댄 것도 아니지만), 이런 장르 자체가 이미 사골처럼 우려먹은 소재인데도 끝까지 계속 보고 싶은 건, 지극히 평범한, 아니 평범 이하의 외양에서 은근 실력을 내뿜는 빈틈 없고 탄탄한 기본기를 차분히 구현하는 저 대머리 선생의 연기력이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지레 '교만하지 않겠다'는 번짓수 빗나간 가짜 겸양을 떠는 삼류 교원과는 너무도 차이가 나지 않는가.

모항쥬라는 천사의 얼굴을 한 소년(사실은 아님. 나이에 비해 늙고 찌들어 보임)은 그 애미라는 여자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았는지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다. 일개 고아를 그 정도로 출세시켜 놓았다면 일단 출세의 발판이 마련된 후에 한 번 정도는 찾아가 뵈었어야 옳지 않았을까? '몽당'이라는 불량배가 들쑤신 대로, 과연 삼류 웨이트리스의 처신답게 아이 교육은 관심 없고 돈 많은 남자를 만나기 바쁘니 어찌 '매춘부'라는 오해를 피하겠는가? 눈치도 참으로 둔해서, 아무리 마음이 안 끌리더라도(이건 이해가 됨) 선생이라는 자가 그만큼이나 성의를 기울이는데도 바로 '지금 만나는 자(와 그가 몰고 온 고급 승용차)'를 입에 담을 정도니 '그런 일' 말고는 요량이 닿는 바가 없을 듯하다. 여튼 의외로 극중 설명으로는 '그 남자를 더 이상 만나지 않고 자식 교육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저 뇌 없는, 길거리 캐스팅에만 헛바람이 든 어느 모집인이 유념할 만한 대목이다(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극을 급히 마무리지으려는 억지 설정).

s****o 2023.01.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