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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일상 생활의 지식이나 건강에 관심이 많던 나는 가공 식품의 위해성과 의료계의 부정, 거대 기업들의 횡포에 염증을 느껴왔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구체적이고 확실한 정보를 필요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웹사이트 뉴스에 소개된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이라는 책을 시작으로 "불량 의학", "먹기 싫은 음식이 병을 고친다", "질병 판매학"을 내리 읽게 되었다.
특히나 "과자..."와 "불량 의학"이 이 책과 가장 유사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질병의 치료나 건강이 목적이 아닌 단지 그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목적으로 하는 거대 기업의 부정를 적나라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흑백을 정확히 가리기에는 논쟁거리가 많고 아직 뚜렷하지 않은 것들을 두루 뭉실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속이고 교만하여 그들의 주머니를 털어낸다. 이 책에서만 봐도 그렇다.
최근 케이블 방송에서 자주 나오는 건강 보조 식품에 항상 대문짝만하게, 그리고 가장 처음 떠드는 것이 "미국 FDA(미국 식품의약국)" 승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오- 저곳에서 승인을 했다면 일단 가짜는 아니겠군."-이라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요즘은 그냥 어이 없는 웃음만 나올 뿐이다.
멀쩡한 당신도 어느 순간 약을 반드시 복용해야 할 환자로 분류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약은 당신을 치료하기 보다 오히려 병들게 하고 돈과 시간, 당신의 건강 까지 모조리 빼앗아 가게 될지도 모른다.
부도덕한,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거대 제약 업체에 의해서 말이다. 이번 한미 FTA에서 제약 관련 협의는 거의 "제 간 내어 주는 수준"이라고 들었는데 앞으로 이 나라 사람들이 그 더럽고 교활한 제약 회사의 횡포 속에서 얼마나 병을 더 얻게 될지 걱정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미국과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온갖 나쁜 것들은 놓치지 않고 따라하는 이 나라 기업들의 작태도 이들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질병 판매의 그 실체를 알았으니 죽을 병이 걸리지 않는 한 보조 식품이니 체질 개선이니 하는 명목을 내 건 효과가 없는, 혹은 부풀려진, 심지어는 부작용까지 유발하는 약을 먹을 일은 아마 내 인생에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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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쓴 시간: (질병판매학 / 레이 모이니헌, 앨런 커셀스 지음, 홍 혜걸 옮김 / 알마) 자: 지: 병이란 무엇일까. 또한 의학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의술은 어떠해야만 하는가. 나아가 건강이란 무엇일까. 나는 지난 8~9년 동안 이런 의문을 갖고 공부를 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해 규명하려고 노력해왔다. 직접 내 몸을 통해 실험을 하면서 결과를 얻었다. 또한 훌륭한 의술을 가진 분께 배우면서 식견을 넓혀왔다. 이제 진실을 볼 수 있는 힘이 어느 정도 생겼다. 아직도 건강에 관해서 완벽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 한편 아직 부족하지만 건강에 관한 진실을 알리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미나도 열어 진정한 건강학을 보급하려고 하고 있으며, 유익하다 싶은 책이 있으면 일부러라도 읽고 리뷰를 써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간 존재에 관한 제1의 진리는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가 잘못된 서양과학적 사고로 인하여 인간 존재를 물리적인 실체로 생각하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만, 진실은 인간은 위대한 정신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육체라고 하는 물질 또한 정신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정보를 가지고 있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이 온전하다면 어떤 질병도 있을 수 없다. 순수한 어린 아이가 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인간은 자라면서 개인적인 경험과 지식을 통해 온갖 그릇된 정보를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과 사물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특별한 상황에 처하고 특이한 경험을 통해서 두려움과 불안 같은 마음 상태에 젖곤 한다. 이런 모든 경험과 지식이 쌓여 한 인간의 가치관 혹은 인생관을 형성하게 된다. 우리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오랜 동안 고유한 인생을 영위한다.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부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그에 따라 얼마나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는지 알면 더욱 놀랄 것이다. 질병은 대부분 지속적인 마음의 부정적인 상태에 따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서양의학은 세균학적 접근방식에 의해 외부적인 병인의 침입에 의해서 병이 생긴다고 주장을 한다. 물론 이런 병원성 질병도 있다. 서양의학은 이런 질병의 퇴치에 크게 공헌한 바 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인류가 고통을 겪고 있는 질병은 심인성 질병이라고 할 수 있다. 심인성 질병과 병원성 질병은 치료방법이 달라야 한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심인성 질병은 동양의학적 방법이 더 적합하고, 병원성 질병은 서양의학적 방법이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육체는 불가사의한 것이어서 면역력이 강할 경우엔 병원성 질병에도 대처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한 질병일지라도 어떤 사람들은 죽지만 다른 사람들은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정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정신력의 힘을 이용하는 훈련을 하고 연습을 한다면 우리는 훨씬 더 질병에 강한 존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수술이나 투약에 의한 서양의학적 방법은 실제로 질병을 치유하는 면역력을 손상시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어쨌거나 서양의학은 이제 겸손하게 ‘자신의 능력’을 반성해보아야만 할 때이다. 인간은 또한 현재의식과 잠재의식을 갖고 있다. 밖으로 드러난 현재의식이 빙산의 일각이라면 우리가 모르는 바다 속에는 잠재의식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빙산이 숨어 있다. 인간의 이 잠재의식을 이용하면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실제 우리 인간은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잠재의식에 조종당하며 살고 있다. 우리가 자기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거나 전혀 예상치도 못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바로 잠재의식의 기억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잠재의식을 잘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행동과 운명을 바꿔나갈 수가 있다. 어떤 질병에 걸리는 이유가 이런 잠재의식의 작용에 의한 경우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인간 존재의 이런 원리를 잘 알고 있다면 질병을 잘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만병의 원인은 마음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것은 어쩐지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쉽게 변덕을 부리기도 하고, 이랬다 저랬다 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서양의학은 이런 까다로운 정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취급하기 좋은 육체라고 하는 물질만 갖고 야단을 떠는 것이다. 실제 육체는 모든 것이 마음(현재의식과 잠재의식)의 발현인데도 말이다. 그러한 육체가 병에 걸렸는데 그 증상을 보고 수술을 하거나 약물로 치료를 하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일시적으로 치료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효과가 일시적일 뿐만 아니라 근본 원인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다시 재발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육체의 일부분을 수술을 해 증상을 처리했다고 해도 완치가 된 것이 아니기에 늘 불편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같은 부위에 또 다른 병소가 생기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금방 나타나지 않을 뿐이지 언젠가는 재발할 소지를 앉고 있는 것이다. 서양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과연 이런 원리를 모를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이제 서양의학도 병은 대부분 스트레스에 기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트레스라는 말의 뜻이 무엇일까. 한마디로 하면 자극이라는 말이다. 어떤 사건이나 사물의 자극에 대한 사람들의 민감도는 다 다르다.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추위라는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환경과 상황, 훈련, 마음 자세에 따라 반응하는 정도가 다 다르다. 결국은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진정 솔직해져야만 한다. 우리는 스트레스라는 교묘한 용어를 버리고 마음이라는 진정한 용어를 사용하여야만 한다. 스트레스라 하여 육체를 객관화시킨 듯한 용어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마음 작용 자체를 주체로 삼아야 한다. 이렇게 간단히 인간 존재를 치료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우리는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토대 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요소환원주의적 사고방식에 빠져있는 서양인의 사고체계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앞으로 서양의학이 나아가야만 할 길이다.
인간의 질병은 인간 존재 자체를 다뤄야만 하지 결코 인체만을 대상으로 할 수는 없다. 인체는 마음의 작용을 받는 종속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백번천번 치료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의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의술이어야 한다. 의학과 의술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인간에 관한 모든 활동은 과학적으로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믿음을 근간으로 하는 종교가 과학이 될 수 없듯이 말이다. 의학은 인체를 연구를 하고 분석을 할 수는 있을지언정 인간을 의학으로 연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양의학적 연구 결과는 마음을 기준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 쉽게 설명된다. 하지만 인체를 기준으로 볼 때는 설명이 안 된다. 서양의학에서도 명상을 하는 것이 고혈압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는 명상은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므로 당연히 마음과 관련이 있는 고혈압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추론하면 얻을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기에 실험으로 확인해 볼 필요도 없는 뻔한 결과인 것이다. 크게 분노를 하면 몸에 오랫동안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도 내놓고 있다. 마음이 몸에 영향을 즉각적으로 끼친다는 것만을 인정하면 온갖 연구 결과가 직접 실험을 해보지 않더라도 당연히 얻을 수 있는 결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수많은 서양의학적 연구 결과를 수집해 놓았지만 이런 공식에 집어넣으면 너무나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그러니 참으로 애석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서양이 오랫동안 물질을 연구하는 동안, 동양에서는 마음에 관한 학문을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마음학을 완벽하게 파악 정리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처의 가르침은 마음의 연구를 집대성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을 명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음을 다스리려면 명상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때로는 호흡이니, 선이니 혹은 요가라고 하더라도 다 같은 맥락인 것이다. 그 이름을 어찌 부르던 결국은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훈련하는 것이다. 서양이 물질을 극단으로 추구하였다면, 동양은 정신을 끝까지 추구한 것이다. 극과 극은 하나로 만나는 법이다. 결국 정신과 육체는 하나인 것이다. 이제 인간 존재의 주를 정신이라고 한다면, 정신 즉 마음에 의해서 질병이 초래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정신이 병들면 결국 몸이 병들게 된다. 불안, 초조, 긴장, 공포, 두려움, 분노, 성냄, 미움, 욕심 등등 모든 마음이 병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강하고 편하게 가져야만 한다. 실제 감기에 걸리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어째 몸이 으슬으슬 춥다고 생각하는 순간 감기에 걸리고 만다. 하지만 혈기방장한 젊은 시절엔 눈보라 속에서 냉수마찰을 해도 감기에 전혀 걸리지 않는다. 모두가 마음에 달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병에 걸릴 것이라고 하는 두려운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한다. 혹시 과로해서 덜컥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하지도 말아야 한다. 온갖 두려움, 공포를 과감하게 물리쳐야만 한다. 병에 걸릴 것이라고 하는 인식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만능인 오늘날 서양의학은 너무 지나치게 비즈니스화 되어 있다. 의술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자본주의가 있는 곳엔 모든 것이 돈벌이 대상일 뿐이다. 정치도 과학도 종교도 경제의 시녀로 전락하고 만다. 인간 삶의 모든 구석에서 마케팅이 판을 친다. 정치 마켓팅, 의료 마켓팅, 종교 마켓팅, 바야흐로 마켓팅 전성시대이다. 서양의학은 질병 치료의 기본도 제대로 서 있지 않다. 게다가 의료시스템 또한 하나의 커다란 비즈시스템으로 자동생산시스템이 되어 버렸다. 거기에 인간적인 요소는 자리할 틈이 전혀 없다. 비즈니스란 생산성과 수익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능하면 자동화시키려고 한다. 의료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수익을 높일까 고민을 한다. 온갖 질병을 만들어 내고, 다양한 치료방법을 고안해 낸다. 돈이 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각종 검사, 진단 장비와 수술 기구를 도입하여 비싼 의료 생산라인을 만들어 둔다. 환자가 입원하면 무조건 수술이라는 시스템으로 속으로 집어넣으려 하고, 비싼 약들을 투약하려고 한다. 의사, 의료시설, 약물 치료 어느 것 하나 문제가 없는 것이 없다. 의사들의 문제나 의료시스템은 다른 곳에서 살펴보고, 질병과 약과의 관계를 한번 살펴보자. 약이 실제 질병의 치료 효과가 있을까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대부분의 약은 인간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인체 자체가 약공장인 셈이다. 하지만 현대 서양의학은 인간의 이러한 힘을 이용하지 않고 외부적인 투약만을 이용하려고 한다. 그래야 돈이 되는 것이니깐 말이다. 위약효과라는 용어가 있다. 가짜 약을 진짜 약이라고 하고 주어도 투약효과가 나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은 여기에 인간의 위대한 힘이 숨겨져 있다. 실제 약을 먹었다고 생각하면 몸은 그런 줄로 믿고 그런 치료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능력을 잘 개발하고 훈련한다면 어떤 치료제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런 위대한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인가. 우리 인간은 자신의 위대함을 제대로 모른다. 정말 위대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한낮 동물로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위대한 정신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해야만 한다. 실제가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인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는 어떤가. 우리는 하찮은 존재라고 세뇌되어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각종 질병을 갖고 있다고 조종당하는 셈이다. 바로 의료 마케팅 업자들에 의해서 말이다. 그렇지 않다고 믿는가 어떻게 의료 관계자들이 우리를 교묘하게 속이고 있는지, 교활한 제약업체들의 상술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다국적 제약업체들이 어떻게 각종 질병을 만들어내고 약을 판매하기 위해 마켓팅을 하고 있는지 배워보자. 그래서 앞으로는 절대 그들의 악랄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자. … (질병판매학 / 레이 모이니헌, 앨런 커셀스 지음, 홍 혜걸 옮김 / 알마) … <책 읽은 시간> 자: 지: <책 읽은 계기> 건강에 관한 글을 써보기 위해서 RG에서 더블 리뷰 책을 신청해 읽다. 우리 어려서 자랄 땐 병원도, 약국도 거의 없었다. 물론 한의원도 없었다. 어린 동생이 두어 살 때 놀라 경기를 하여 침을 맞게 하려고 남의 동네에 데리고 간 기억이 난다. 그것이 10살이 되기 전에 동생을 데리고 병원(?)에 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다들 그 시절엔 병원에 가지 않아도 잘만 살았다. 하지만 아이들 둘을 키우면서는 소아과에 자주 데리고 갔다. 예방주사를 맞추러도 자주 갔고, 조금 열만 올라도 의원에 데리고 갔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옛날처럼 병원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치료를 못해서 큰 일이 났을까. 산이 있으니까 올라간다고, 병원이 있어서 자주 간 것이 아니었을까? 요즘 어쩌다가 병원에 가보면 온통 세상 사람들이 다 환자인 것 같다.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놀라울 정도다. 종합병원에서는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겨우 진찰을 받을 수가 있다. 이렇게 환자들이 많은 것도 다 병원이 많아서 사람들이 툭하면 병원을 찾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병원에 가는 습관이 들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가만히 보면 병의 종류도 참 많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질병을 만들어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병이 존재한다. 그리고 현대 질병은 치료가 되지 않는 병들도 참 많다. 고혈압, 당뇨병, 신장병, 갑상선, 심장병, 류마치스 관절염 등은 평생 약을 먹어야만 한다. 그러면서 완치가 아니라 잘 관리를 해나가야 하는 병으로 모시고 살고 있다. 도대체 과학적이라고 해서 마치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처럼 대접받고 있는 서양의학이 왜 이런 병들을 완치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참 이상하기 그지 없다. 도대체 왜 이런 병들을 치료하지 못하는 것일까? 정말 서양의학 관계자들은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반성을 해 보아야만 할 것이리라. 그런데 우리가 질병으로 알고 있는 질병은 과연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질병으로 판명된 ‘믿을 만한’ 질병일까. 누군가의 사주나 압력에 의해 가짜로 만들어진 병은 아닐까. 여기 가짜 질병 즉 만들어진 질병에 대한 보고서가 있다. ‘질병판매학’이란 책에 의하면 고콜레스트롤, 고혈압, 골다공증, 과민성 대장증후군, 우울증, 월경 전 불쾌장애, 폐경, 사회불안장애, 주의력결핍장애, 여성 성기능장애 등이 제약업체들의 사주에 의해 질병으로 만들어지거나 지나치게 정상의 범주를 좁혀놓아 많은 사람들이 질병을 갖도록 만들어 놓았다고 고발하고 있다. 그것도 교묘한 책략과 술수를 이용해서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 의학이라는 것이 비즈니스의 시녀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제약회사들은 사람들에게 질병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두려움을 이용해 약을 팔아먹을까 고민을 하는 어둠의 자식들인 셈이다. 나는 전에 미국식품의약국을 매우 공정한 조직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제약회사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인류 건강을 해치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참으로 놀랐다. 미국은 모든 것이 비즈니스화되어 과학이든 의학이든 믿을 수가 없는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의학에서 인류의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하여 ‘약’이라는 상품을 마켓팅하는 상술이 고도로 발달되었으니, 이제야말로 우리는 인간은 정신적 존재라고 하는 인식을 갖고 마음을 통해 모든 질병을 치유하는 동양적 사고로 중무장할 때인 것 같다. 도대체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어떤 술수를 부리는 것일까. 마케팅 전략 1. 심장마비와 돌연사의 주범으로 몰아라 – 고 콜레스트롤 마케팅 전략 2. 정상 범위를 좁혀라 – 고혈압 마케팅 전략 3. 젊은 여성을 새로운 위험군에 포함시켜라 – 골다공증 마케팅 전략 4. 약물 치료가 필요한 정식 질환임을 강조하라 – 과민성 대장증후군 마케팅 전략 5. 마음이 아니라 뇌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시켜라 – 우울증 마케팅 전략 6. 모든 여성을 잠재적 고객으로 만들어라 – 월경 전 불쾌장애 마케팅 전략 7. 정상적인 노화과정도 질병이라고 믿게 하라 – 폐경 마케팅 전략 8.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질병을 브랜드화하라 – 사회불안장애 마케팅 전략 9. 환자와 그 가족들을 통해 병을 홍보하라 – 주의력결핍장애 마케팅 전략 10.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라 – 여성 성기능장애 솔직히 인간의 두려움을 이용해 장사를 하려는 그들은 파렴치한이다. 제약회사들은 인류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사악한 상술을 가진 비즈니스업체라고 보면 된다. 의사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정직하게 인술을 펼치기보다는 제약업체들의 사주에 놀아나고 있다. 그들 역시 돈벌이만을 추구하는 경제적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가소롭게도 그들이 이용하는 것이 과학이고 의학이다. 이제는 의학이 공정하게 독립적인 위치를 확보할 수도 없다. 완전히 비즈니스의 하수인이라고 보면 좋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이 세상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맹목적으로 의사나 병원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병은 자기 스스로 지켜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제약회사들의 거대한, 사악한 음모를 살짝 알아볼까. 자, 심호흡을 크게 하고 정신을 바짝 치라고 읽어보시길 바란다. - ALLHAT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새로 나온 알약이나 복합약으로 효과를 보는 사람들이 일부긴 하지만 분명히 있다고 전재한다. 그러나 혈압을 낮추기 위해 약이 필요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전에 나온 이뇨제가 똑 같은 효과를 내면서도 더 안전하고 훨씬 싸다고 강조한다. (66p) … 그러나 이러한 연구 결과는 더 새롭고 더 비싼 약으로 처방을 내리는 의사들의 처방 행태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훌륭한 과학적 증거보다도 판매사원에서부터 텔레비전 약 광고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제약회사의 판촉망이 의사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이 연구 결과는 2002년 미국의 의학협회지에 처음 발표되었을 때 잠깐 반응이 있었지만 곧 사그라들었고, 이로 인해 또 한번 마케팅이 과학을 이긴 사례가 되었다. (67p) - 전 세계적으로 10년 동안 지속된 대대적인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캠페인은 관련 약품을 팔아 돈을 버는 제약회사들과 검사를 통해 돈을 버는 방사선과 전문의들에 의해 열렬히 지원받았다. 세련된 홍보 기법을 총동원해 이들 비공식 연합은 건강한 여성들에게 그들이 어는 순간에라도 뼈가 부러질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다고 확신시키려 했으며, 그들의 생명이 매우 위험에 처해 있고, ‘소리 없는 도둑’ 골다공증이 지속적으로 퍼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74p) - 매우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골밀도가 낮아지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적이며 정상적인 과정이다. (74p) … 분석 결과 그들은 여성들 사이에 널리 퍼진 골밀도 검사의 필요성은 전형적인 ‘대중의 공포심에 기반해 형성된 시장’이라고 결론 내렸다. (74p) 조금만 깊이 있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세뇌되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유일한 경제제도처럼 당연시하며 ‘돈돈’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몸이 아프면 무조건 병원에 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모두가 공부 망국병이 들어있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지도 않는다. 그저 남들이 하니깐 따라는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인식하도록 사회적으로 조장되었다는 것을 모른 채 말이다. 남들이 하는 것이, 혹은 미국이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한번 깊이 생각해보아도 좋을 텐데 말이다. 무엇인가를 할 때, 자기 기준이 없으면 우리는 옆을 둘러본다. 인류 발달 과정상 - 물리적으로 힘이 센 동물과 싸우면서 혹은 자연의 위험에 대처하면서 - 집단에 속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고, 그런 강한 생존의식이 집단의 행동을 엿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가를 살펴보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모방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은 안전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쫓아가고 있는 미국, 미국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 우리는 그들이 따라 해도 좋을 만한 모범을 보이는 국가인가 비판해보고 쫓아가도 쫓아가야만 한다. 경제대국, 경제 선진국 <미국> 과연 그들은 제대로 가고 있는가? 미국인 76%가 “미국이 잘못 가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우리가 쫓아가고 있는 미국이 잘 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 눈 멀쩡하게 뜨고 있는 사람이 맹인을 쫓아가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것도 곧 있으면 추락할 낭떠러지를 향해 나아가는 형국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정립하고 그곳을 향해 가야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럭저럭 지낸다. 그들은 군중처럼 행동하고, 군중처럼 생각하고, 똑 같은 것들을 반복한다. 그들은 이것이 안전한 길이라고 느낀다. 문제는 군중이 모두 잘못이라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군중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결국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다. 만일 당신이 어떤 이의 발자취를 따르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훌륭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그 어떤 이가 따를 만한 가치가 있는 자인지 확인하라. 당신의 이웃에 있는 친구들은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진정 그대가 원하는게 있다면 / 얼 나이팅게일 지음, 질병에 관한 한 이제 우리는 한번 의심을 해보아야만 한다. 그래야 자기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가 있다. 결코 의사나 병원에 무조건적으로 맡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래도 의사나 병원을 믿을 수 밖에 없다고? ‘자기 몸 지배해야 건강.장수’라는 제하의 경향신문 기사를 살펴보자. “의사만 잘 만나면 평생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요? 천만에요.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배하는 자만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습니다. ‘내 몸을 지배하고 살것인가, 의사로부터 지배받고 살 것인가’는 나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반식 다이어트’ ‘내몸 개혁 프로젝트’ 등으로 널리 알려진 유 원장은 “평소에 생활습관과 스트레스를 개선하면서 몸을 건강하게 만들면 질병은 스스로 치료된다”며 “이젠 질병 중심의 치료에서 건강 중심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해야 한다”고 신건강인센터를 개원하게 된 취지를 밝혔다. …. (중략) … 아프면 병원부터 가야하고, 약부터 먹고 봐야 하는 한국 사람에게 그의 치료법은 다소 낯설다. 약은 삶을 개선하고도 치료되지 않는 질병에 대한 마지막 처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몸에 좋다는 음식이나 약, 치료 등으로 효과를 봤다고 해도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쉽게 건강을 잃거나 병이 재발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처럼 양심적인 의사가 나와서 건강의 진실을 알려주어 다행이지만 우리는 그 동안 얼마나 그릇된 길을 걸어왔던가. 이제라도 서양의학 관계자 모두가 반성을 해야만 한다. 의사들 모두가 진실을 바라볼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모르면 배워야만 한다. 그것만이 진정으로 사는 길이다. 이제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미리 챙기는 셀프 케어를 해야만 한다. 병에 걸려서 치료하느냐 죽을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병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예방을 하는 삶을 영위해야만 한다. 만일 질병에 걸렸다면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만 할 것이다. 마음가짐과, 생활태도, 식습관을 돌아보고 반성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전환해나가야만 한다. 돈만 무리하게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면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또 무리하게 일을 하면서 살았다면 마음의 여유를 갖고 조금 천천히 살아도 좋을 일이다. 균형잡힌 식사를 알맞게 한다면 음식만으로 질병을 충분히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남들에게 기대고 의존하면서 속고만 살지 말고,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살아가자. 그래야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다 같이 예방의학, 셀프 케어의 시대를 열어나가자! 자기의 건강은 자기가 책임지자고 주장하는 고서 교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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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대한 관심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그 이름조차 익숙하지 않았던 질병들을 우리 주변에서 너무도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인진 잘 모르겠으나) TV에서는 건강해지기 위하여 무엇을 섭취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나 역시 그와 같은 프로그램을 적지 않게 시청해왔고, 처음에는 ‘무슨 음식이 어디에 좋다더라’ 열심히 메모해가며 기억해 보려고 노력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내가 내린 결론은 단 하나, 다름 아닌 다양한 음식을 적당히 섭취하는 게 필요하단 사실이다. 실로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이 진리인 것이다. 하지만 밥에의 의존은 오늘날과 같은 풍요로운 시대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듯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의 주변에는 일상 생활을 약으로 통제(?)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균형 잡힌 식습관만으로는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한 것일까? 나와 같은 일반인들이 의학 분야에 정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의 나라에서 의학 지식은 소수에 의해 공유되며, 일반인들은 의사에게 의지함으로써 자신의 병에 접근하게 된다. 지독히도 전문적인 분야인 의학, 하지만 그 세계 역시 권력 다툼으로 검게 물들어 있음을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꼈다. 기업이 자신의 이권을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로비 행위가 의학 분야에서도 존재했다. 제약 회사들의 거대한 손은 이미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자의 것 아닌,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아둥바둥거리는 자의 것이었다. 질병이라고 굳이 부르지 않아도 되는 증상들을 약물을 통해 꼭 치료받아야만 하는 카테고리 안에 포함시키기 위해 그들은 자금을 풀었다. 각종 학회가 그들의 자본에 의해 개최되었고, 수많은 연구들이 그들의 입맛에 맞는 결론을 얻기 위해 행해졌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약속 받은 의사들이 특정 제품의 약효가 뛰어남을 연일 이야기해댄 건 당연하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고콜레스테롤, 고혈압 등의 문제는 이와 같은 방법을 위해 조장(?)된 것이었다. 물론 이들이 심장마비나 돌연사 등의 원인일 수는 있다. 하지만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 하여 혹은 혈압이 높다 하여 100%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에 이르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증상들을 치료하기 위해 전적으로 약물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식습관 조절과 약간의 운동이라는, 부작용 없는 안전한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의사를 찾고 약을 찾는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골다공증이나 폐경 등은 또 어떤가? 인간이 시간을 머금고 늙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 과정에서 골밀도가 감소하게 되고, 여성의 경우 폐경(오늘날에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애고자 ‘완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한 개인이 어떠한 연령대에 속하는가를 전혀 고려치 않은 채 30대 여성을 기준으로 건강을 진단한다면 어떨까? 말이 안 된다고 하겠지만, (이 책에 의하면) 실제로 미국 사회에서는 그와 같은 일이 행해지고 있다. 기준이 그렇다 보니 40-50대 이상의 연령대에 속하는 여성들은 모두가 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약을 먹어서 완치에 이르러야만 하는… 물론 특정 제품들은 문제가 된 질병(!)의 증상을 완화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미미한 기여도 뒤에 숨은 어마어마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복용한 약이 오히려 자살충동을 증가시킨다면 어떨까?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의사의 처방을 받았는데 그로 인해 암이 발병해 가슴을 도려내야만 한다면? 이런 나의 이야기가 너무 끔찍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질병 치료를 위해 복용한 약으로 인해 부작용을, 아니 심지어 사망에 이른 이들도 있다. 사람은 죽었지만 그들을 죽인 약은 버젓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의학의 발달로 인해 지금껏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아왔다. 아마도 수명이 연장된 것이 우리가 누리고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건강이 의학의 발달과 비례해 좋아지진 않는 듯하다. 오히려 우리는 수많은, 치료받아야만 하는 질병에 노출된 삶을 살고 있으며 수시로 병원을 오가야만 한다. 과거에는 미치광이 혹은 사탄 등으로 여겨지며 마녀 사냥의 희생자들이 되어야만 했던 이들이 이제는 적절한 치료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는 경계가 권력의 다툼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단 사실도 M. Foucault 의 연구 등을 통해 접해 왔다. 과거에는 정상의 범주에 속하던 증상들이 오늘날 질병으로 여겨지고 있는 현상 역시 이러한 법칙에 충실한 예가 아닐지…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특정 제약회사와 강력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몇몇 의사들의 도덕성을 문제 삼아야 할까 아니면 공정성을 결여한 식품의약국(우리나라는 ‘식품의약품안전청’ 정도가 될 듯)을 비난해야 할까? 하지만 아무리 고가이고 부작용이 있어도 그 약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고려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 약품의 시판 중지보다는 약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획득이 아닐까 싶다. 다만, 무엇이 정확한 정보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객관적이고도 과학적으로 보이는 수치마저도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위해 교묘하게 이용될 수 있음을 이 책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으니, 약품의 효능과 관련된 수치가 주어진다고 하여도 현혹되지 말지어다!!!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체제를 취하고 있고, 제약회사도 돈을 벌어 이익을 창출해야만 하는 기업이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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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용어 중에는 '세이의 법칙'이 있다. 공급은 그 스스로의 수요를 창출한다는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질병판매학>을 읽으며 줄곧 머리속에 들어왔던 문구다. 질병(수요)이 있고 그에 대해 약(공급)이 개발된다. 이 당연한 전제는 오늘날 제약시장에서는 더이상 당연하지 않다. 제약회사들은 약(공급)이 있고, 그 약은 새롭게 질병을 정의하며 환자를 스스로 찾아 나선다. 그들의 꼼꼼한 판촉전략 중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다음과 같다. 1.질병을 브랜드화하라! 질병의 경계는 최대한 넓게, 질병의 원인은 최대한 좁게, 이름은 약물치료가 자연스레 연상되도록 만든다. 일상적 변화 수준인 월경 전후 불편함에 '월경 전 불쾌장애'라는 명칭을 붙여주고, 사회 생활의 스트레스에서 오는 불안함을 '사회 불안 장애'로 부르며 약을 먹어야만 해결될 듯이 하는 그들의 모습이 잔망스럽다. 이 기발하고 꼼꼼한 그들을 보자니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의 일부가 떠오른다(그 = 질병, 꽃 = 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2. 공짜점심은 없다.
미국에선 인턴들의 도넛과 커피는 제약회사가 댄다고 한다. 의사들이 학회를 하면 학회비, 학회 임대료, 기념품을 제공하고 골프를 지원하며 호텔 식사를 프로그램에 꼭 포함시킨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올초 진료보던 대학병원 교수님 진료실 책상 위 테이크아웃 커피와 유산균 발효유에는 특정 약 이름이 붙어 있었다. 번역한 홍혜걸 박사가 쓴 옮긴이 머리말에는 "과거 현역 기자시절 다국적 제약회사의 후원으로 해외학회를 수차례 다녀왔다"던 조심스런 고백이 있다. 의심할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은 세상이다. 일단 저자 레이 모이니헌의 당연한 이 말을 기억하자. (270쪽)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특정약물의 처방이 과연 나에게 적절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으며, 현재 나의 문제가 정말 질병의 징후인지 아니면 일상생활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기분변화에 불과한지에 대해 토론할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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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 선전을 보다가 금연캠페인에 관한 광고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심코 봤지만, 자꾸 보면서 의문을 갖게 되었다. ’왜 저 선전은 모 제약회사에서 광고를 해주는 것이지? 왜 의사에게 가보라고 하는거지?’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사람들은 이 광고를 보고 금연을 하기 위해 의사에게 찾아갈 것이고, 그 의사는 이 선전을 해준 제약회사의 약물을 처방할 것이라는 뻔한 공식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그러면서도 그 광고에 관해서는 그냥 그렇게 잊어가고 있었는데, 오늘 나는 그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책을 만났다. 질병판매학 질병 산업에 대한 충격 보고서라는 이 책에는 나의 그런 의문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공감을 하게 되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참 어려울 것이다. 왜냐면 사람들은 일단 마음 속에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고, 그 약을 먹어야만 마음의 안정을 찾을 것이니 말이다. 고콜레스테롤과 고혈압, 골다공증 등등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약을 복용하게 만든다. 콜레스테롤 수치나 혈압은 높다는 것 자체가 질병이 아니라, 높을 경우에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이다. 단지 그 확률이 높다고 약을 장기적으로 복용했을 때 그에 따른 알 수 없는 부작용이 더 심각할 수도 있는 것인데, 일단 위험하다고 하니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두려움이 존재하게 되고, 약 처방으로 그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하니 그렇게 하게 되는 것이다. 식이 요법이나 운동 요법으로 어느 정도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일단 약을 복용하는 것만으로 안심하게 된다. 어쩌면 병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병원이라는 환경에 있다는 것 자체로 혈압이 높게 나올 수도 있는 것일텐데 말이다. 그리고 제약회사들은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질병의 범주에 들어오게 하고, 약을 장기적으로 복용하여 실리를 높이는 효과를 보게 된다. 때로는 그 약의 부작용으로 인한 증상이 원래의 증상을 더 악화시키게도 한다. 예를들어 항우울제의 부작용은 자살 충동을 증가시킨다든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월경전 불쾌장애는 단순히 여성으로서 느낄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을 질병의 범주에서 생각하게 만들고, 정상적인 노화 과정도 질병이라고 믿게 하며 폐경기가 되면 여성호르몬제를 복용하도록 만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현대 의학에는 긍정적인 부분도 많이 있고, 부정적인 면도 많이 있다. 부정적인 면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남겨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구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건강 부분에 있어서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질병의 범위가 너무 커져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건강을 생각해서 하는 행동이 건강을 해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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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질병판매학과 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이 두 가지 책은 이런 의문에서 시작된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빛나는 조명과 그들의 숨소리마저 귀기울이게 되는 곳, 그 곳은 무대. 모든 관객들이 무대를 지켜보며 열광하고 동경한다. 그러나 정작 배우들은 무대를 돌아보지 않는다. 오직 자신들을 보고 귀기울이는 관객들과 호흡할 뿐이다. 배우들은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자신에게 진정한 무대는 관객들 뿐이라고. 그렇다. 배우들은 안다.
음악소리도 온종일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무대는정적만이 남고 고독만이 흐른다는 것을. 무대 뒤의 긴장과 떨림, 그리고 연극이 끝난 뒤의 견딜 수 없는 정막함과 외로움이 연극과 무대의 실체라는 것을.
우리는 지금껏 의학이라는 거대하고 화려한 무대를 올려보며 존경과 찬사를 보내왔다. 약은 우리에게 희망을, 의사는 생명을 건져내는 손길을 가진 지상의 천사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 책들의 저자는 관객들에게 화려한 무대 뒷편의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질병판매학의 경우 제약회사의 획기적인? 마케팅을, 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이하 메*스)은 우리가 믿고 있던 의사에 대한 생각을 뒤집는 고백들이 담겨있다.
책을 본 느낌은 화제가 되고 있는 이형돈의 소비자 고발과 같은 다큐멘타리가 주는 충격과 다르지 않았다. 약을 팔기 위해 병을 홍보하는 제약회사의 마케팅과 신뢰에 가득찬 환자의 눈을 외면한 채 담담히 그들의 병명에 따른 조치를 기계적으로 외어가는 의사들의 모습을 보며 아마도 자신이나 가까운 친인척이 병원에 입원했던 경험이 있던 사람들은 오싹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대상이 환자라는 점과 상품이 약이라는 점만 뺀다면 요즘 잘 나가는 마케팅 서적에 한 몫낄만한 질병판매학과 그레이 아나토미나 ER같은 미드의 에피소드를 보는 듯한 메*스를 보며 이게 정말일까하는 의구심과 더불어 어이없는 썩소가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히포크라테스 선서까지 하며 의사가 된 그들에게 지워진, 병든자의 생명을 위해 약을 제조해야할 제약회사에게 윤리적인 기준과 책임을 내세워 비난하고 단죄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현재 어느 누가 그러지 아니할까?
평소 자신의 직장에서 업무에 열정을 잃은 채 상사의 눈치를 봐가며 설렁설렁 일을 끝낸 일은 없었던가? 그 일이 미칠 책임소재를 따져가며 발뺌하거나 책임을 회피한 적은 없던가? 우선 나부터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다 그렇지도 않을테고, 나도 이러니까 남을 봐주자는 말은 아니다. 내 말은 이 사회 시스템안에 종속되어있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매너리즘과 자본주의에 물들어 있는 모습은 일상이자 평범한 모습이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나도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러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단 말인가? 물론 그들은 생명을 다루는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그에 맞는 존경과 더불어 책임을 가질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들에게 인간 이상의 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워야한다. 하지만 요즘들어 대두되는 마녀사냥식의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원색적인 비난은 멈춰야 한다.
이 책에 나온 모든 모습이 다 무대 뒤편의 모습이자 현실이다. 실망스럽고 어이없는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들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제는 다만 그들의 도덕적 해이로써만 국한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 깊고 넓게 퍼진 뿌리가 있다. 그 뿌리는 땅에 돋아는 줄기과 잎을 뜯는다고 해서 없어질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이 책이 전하는 실상에 더욱 불신과 의구심을 가슴에 품는다면 이는 더욱 설상가상으로 악순환의 연속이 될 것이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그 잘못은 단순히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고쳐지지 않는다.
요즘 우리 국민들의 촛불집회를 보며 참 뿌듯한 마음을 금치 못한다. 이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면서도 격하게 타오르거나 폭력적이 아닌 정말 촛불처럼 잔잔하게 불타오르며 주위를 비추는 그런 의식이 확산된 것 같아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더욱 성장해 나갈 것이다. 난 그 성장의 다음 단계가 포용과 자애(慈愛)이라고 생각한다. 방금까지 이것이 현실이라고 말하면서 참 이상적인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같다.
앞으로도 우리가 겪을 부조리와 안타까운 상황들은 늘어갈 것이다. 그리고 더욱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빚을 것이고 당연히 잘못된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우리 자신이 부조리하고 나약한 자신을 받아들이듯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한층 더 나아지리라 확신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무대 뒤 진실을 몰랐기 때문에 환상에 젖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이젠 알고 있다.하지만 저 무대위에 진행되는 연극을 보며 다 짜고치는 고스톱이라고 생각한다면, 저 특수효과는 무대아래 사람이 고생고생하며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연극은 하나마나 거짓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거짓뿐인 연극을 왜 하고 우리는 왜 보아야 할까?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연극을 보고 아픈 사람이 건강해지길 바라기에 의사가 되고 의사를 존경하고 약을 먹는다. 이 단순한 진리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아직 많은 여정이 남아있는 것 같다. |
| 꽤 재미있는 책이다. 그동안 몰랐던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정상과 비정상이란 것이 수치로 결정될 수 있는 영역인데, 그 수치라는 것도 결국 제약회사와 연결된 몇몇 학자들의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콜레스테롤 수치, 고혈압의 정의를 조금씩만 낮추는 순간 해당하는 약을 먹어야하는 사람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정상분포곡선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된다). 혹은 정상적인 노화과정의 일환을 병으로 만드는 것도 그렇다. 폐경과 이로 인한 골다공증등등.. 그리고 약에 의한 효능을 포장하는 법의 마술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33%의 효과가 있다고 제약회사에서는 광고를 하는데 정작 그 논문을 보면 암발생률이 3%에서 2%로 1%만큼 경감했을 뿐이었다. 겨우 1%를 줄이는 수준은 식이조절이나 운동, 기타 다른 위험요인을 줄이는 것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33%를 줄인다는 식으로 접근을 하니 마치 '기적의 약'인 것같이 보이지 않겠는가. 이 책에서 다루는 8-9개의 아이템중에서 공교롭게도 정신과와 관련한 것이 서너개는 되었다.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월경전불쾌증후군, 사회불안장애. 그리고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부분도 정신과에서 자주 다루는 병중 하나). 결국 정신과 의사들도 병을 만들어내는데 (medicalising)에 한 몫들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거꾸로 드는 생각. 어떻게 하면 미국에서는 성공한 이런 식의 캠페인이 한국에서도 가능할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너무 나쁜 생각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