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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마음에 소원 하나씩 키워보자
"마음에 소원 하나씩 키워보자" 내용보기
얼마 전에 <안인희의 북유럽신화>를 읽었다. 모든 문학적인 요소에 배경이 되곤 하는 신화를 읽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다소 생소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때 읽었던 이야기의 바탕이 있어서인지 이번에 읽은 <유리장이의 아이들>이 더 흥미가 있었다.신화에서 소재를 구해 한 편의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 또한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아니고는 어렵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소원 하나씩 키워보자" 내용보기
얼마 전에 <안인희의 북유럽신화>를 읽었다. 모든 문학적인 요소에 배경이 되곤 하는 신화를 읽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다소 생소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때 읽었던 이야기의 바탕이 있어서인지 이번에 읽은 <유리장이의 아이들>이 더 흥미가 있었다.
신화에서 소재를 구해 한 편의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 또한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아니고는 어렵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신비스러운 감정과 깊이있는 상상력속으로 빠질 수 있었다.
 
소원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가난한 자의 소원과 부자들의 소원..
이 책에서 그들의 소원은 부자인 성주의 부인에겐 일상일 수도 있는 일이고 가난한 유리장이의 부인에겐 꿈에서나 꿈꿔볼 수 있는 그런 일이다. 모든 사람들은 다 가슴속에 저마다의 소원을 간직하고 꿈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먼 미래를 설계할 때 그런 희망이라도 있어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소원이 있고, 나의 아이들도 소원을 간직하고 있다.  종종 변해서 그렇지..^^
 
이 책은 선과 악의 대비가 극명하다.
나나와 플락사 밀트베터의 대립구조가 이야기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하는데 이 책에서 맛보는 신비스런움의 극치가 아닐까..
반면에 꼭  신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가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어쩌면 바로 우리 이웃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소박한 꿈을 꾸고, 사랑을 간구하며, 원하는 바를 위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것..
어쩌면 내 모습일 수도 있고, 가족, 혹은 이웃의 모습일 수 있다.
신비스런 느낌도 포함하고 있지만 신도 인간의 일이라 굳이 따로 구분지어 이야기할 건 없는 것 같다.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도 느꼈듯이 굳이 신과 인간을 경계를 그어 구분 하지 않더라도 마지막에선 그들의 일을 알아서 하고 인간은 인간대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게 되는 것 같다.
 
우리에게 소원은 바로 눈 앞의 현실에서 많이 찾게 되는데 어쩌면 이러한 소원은 오래도록 생각해보고 나서 간절하게 빌어야 소중함을 더 느끼지 않을까 한다.
가끔 아이들이 내게 생일때, 혹은 어린이날에, 혹은 크리스마스에 뭔가를 요구해 오는데 아이들이 요구할때마다 즉시 소원을 들어주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아이들에게서 꿈을 빼앗아 오는 게 아닐까 싶다.
성주의 아내처럼 소원을 부모에게 빼앗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성주 부부와 알베르트, 소피아부부도 대립되는 관계로 나오지만 굳이 이들을  대립관계 선상에 두고 싶지는 않다.
다시 온 세상을 아우르는 그런 좋은  관계로 삶은 돌고 도는 것이니까..
아이들이 다시 돌아오고 성주의 아내에게 소원이  생기고, 플락사 밀트배터가 배틀에 앉아 배를 짜고 현자가 밤과 낮,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오듯이..
우리에게도 소원 중 일부는 마음에만 간직할 수 있는 그런 아쉬움도 남겨두자.
어쩌면 지금 당장 소원을 이루어버리는 것보다 훨씬 큰 가치를 줄 지도 모를 일이니까..
s*****3 2007.05.2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면...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면..." 내용보기
초등학교 때 학교 근처에 과학기기 만드는 회사가 있었다. 한번은 그곳으로 견학을 갔는데 어떤 아저씨가 긴 막대를 부니까 밑에 유리로 된 병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지금이야 모두 기계로 만들겠지만 그 때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도대체 모양이 어떻게 다르게 나오는 것일까, 어느 것은 비이커가 되고 어느 것은 시험관이 되니 말이다. 그러나 그 의문은 지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면..." 내용보기

초등학교 때 학교 근처에 과학기기 만드는 회사가 있었다. 한번은 그곳으로 견학을 갔는데 어떤 아저씨가 긴 막대를 부니까 밑에 유리로 된 병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지금이야 모두 기계로 만들겠지만 그 때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도대체 모양이 어떻게 다르게 나오는 것일까, 어느 것은 비이커가 되고 어느 것은 시험관이 되니 말이다. 그러나 그 의문은 지금도 풀리지 않았다. 아니 그 후로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았기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알베르트의 직업이 유리장이라니 문득 어렸을 때 일이 생각났을 뿐 그것을 지금까지 잊고 지낸 것이다.

 

알베르트는 진정한 장인이다. 유리 그릇을 더 많이 만들거나 사람들이 찾을 만한 것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팔리더라도 자신이 만족할 그런 그릇을 만들고자 노력하니 말이다. 그러니 소피아가 자신보다 유리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할 만도 하지. 알베르트는 부인에게 지금 만드는 훌륭한 그릇을 완성하면 가정에 충실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소피아는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그릇이 완성되면 또 다른, 더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려고 할 테니까. 인간의 욕심 내지 욕망이란 그렇다. 간절히 원하고 소망하던 것도 막상 이루어지고 나면 당연하게 생각하고 더 멀리 있는 것을 다시 갈망한다. 그렇게 평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런 것에서 초월한 사람을 우리는 특별하게 취급한다. 도인이라느니 성자라느니 하면서 말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소원을 이뤄줄테니 딱 한 가지만 말하라면 바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을 빌겠다고... 그러면 얼마나 환상적인가 말이다.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되고 골치 아프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그러다 다시 드는 생각 하나. 만약 내게 모든 것이 주어진다면 그러면 무엇을 하고 무엇을 목표로 살게 될까. 얼마전에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단 며칠만이라도 갖는다면 그동안 밀렸던 일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하고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그 때가 마침 방학이었기에 우연한 기회에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도 혼자 있을 기회가 생겼다. 남편은 아침에 일찍 나가니 그야말로 낮에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웬걸... 아무런 의욕도 없고 재미도 없고 시간도 더디게 가는 것이었다. 그토록 원했던,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아주 귀한 기회였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고 말았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가치있는 것은 모든 여건이 주어질 때가 아니라 그 여건을 만들어갈 때라고... 아마 성주의 아내가 바로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원이라는 것을 생각하기도 전에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물론 별 생각 안했을 때는 얼마나 좋을까 부러웠다. 그러다 위에 언급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결코 행복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니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성주가 찾아오지 못했을 때 아내가 기뻐했겠지. 그 소원을 적어도 이듬해까지는 간직할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성주의 아내 뿐만 아니라 성주도 불쌍하다. 성주의 아내는 자기에게서 소원의 가치가 사라져서 슬프다는 것을 인지하기라도 하지만 성주는 그 사실 조차 알아채지 못하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중에 플락사로 인해 성주가 전에는 절대로 하지 않았던 고맙다는 말을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되면서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서로 떨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나중에 하나의 고리로 완성될 때 느끼는 기분은 뭐랄까 그때까지 머릿속에서 따로 놀던 조각들이 아귀가 딱 맞아서 하나의 온전한 모습이 형체를 드러내는 그런 느낌이었다. 게다가 아이들이 잃어버린 기억의 강을 건너면서 성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잊는다고 설정함으로써 독자들의 큰 걱정거리에서 해방시킨다. 실은 그토록 학대받은 아이들 마음의 상처를 나중에 어떻게 치유할까 한걱정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면서 비록 기억속에서는 사라졌지만 무의식에 남아 있어 가끔 악몽을 꾸거나 괜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라며 그 기억에서, 그리고 불안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방해한다. 작가의 치밀한 작전이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다.

l*****8 2007.05.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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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이 없는 소원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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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들  대부분에겐 소원이 있다.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아니면 자기 자식이라도 잘 되게 해 달라고. 우리 엄마가 바로 그 예이다. 어머니는 항상 이런 말씀을 하신다.   "엄마 아빠는 어린시절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어서 그게 제일 후회가 많이 된다. 기회는 때가 있다. 그 때를 놓치지 말고 힘들겠지만 열심히 해서 네가 크면 사회에 크게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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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들  대부분에겐 소원이 있다.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아니면 자기 자식이라도 잘 되게 해 달라고. 우리 엄마가 바로 그 예이다. 어머니는 항상 이런 말씀을 하신다.

 

"엄마 아빠는 어린시절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어서 그게 제일 후회가 많이 된다. 기회는 때가 있다. 그 때를 놓치지 말고 힘들겠지만 열심히 해서 네가 크면 사회에 크게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그게 엄마 소원이야."

물론 나는 그 때마다 말을 그냥 흘려들어버리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소원이란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현재 나에게도 작은 소원이 있다. 바로 동생을 얻는 것이다. 동생이 있으면 나의 생활도 힘들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내 친구들 대부분이 있는 동생이 나에게도 한명 있으면 좋겠다. 또 나에겐 장래 희망이 있다. 바로 과학자이다. 과학자가 되어서 이룰 내 꿈, 바로 나의 큰 소원은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고 세계를 평화롭게 하기 위한 여러가지 발명품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이 꿈을 이룬다면? 이루고는 싶겠지만  과연?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런 것들이 진짜로 이루어진다면 아마 이 책에 나오는 성주의 아내처럼 더이상 소원이 없어 불행한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소원이 있고 못 이루어서 슬프기도 하지만 소원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알아야 한다. 여기에 나오는 성주의 아내는 부자 성주를 만나서 자신의 소원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그 소원을 이루길 기쁘게 기다리기도 전에 자신이 그 어떤 노력도 하기전에 성주가 다 이루어 주었다. 그래서 모든 소원을 이루어 그녀에겐 더이상 소원을 얻기란 바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어릴 적에는 그냥 양을 치는 평범한 양치기 소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아주 큰 소원이 하나 있었다. 부자가 되어서 하고싶은 것을 모두 이루는 것이다. 그 말은 그대로 되었다. 부자를 만나 부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소원을 이루고, 그 소원으로 인하여 다른 소원들의 존재란 가차없이 없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가끔 이 가난한 생활에 질려서 부자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부자는 자신의 소원따위란 것이 없어 마음이 나쁘게 변한다. 만사가 귀찮고, 삶의 행복따위란 없다. 물론 부자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사회에서는 돈이란 것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돈은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닌 중간이다. 단지 그 돈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것과 너무 적게 가지고 있는 것의 사이 적당한 자가 가장 좋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소원의 도시의 성주에게 납치된 클라라와 클라스의 아버지 알베르트는 자기가 만든 유리가 거의 팔리지가 않아서 너무나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내 소피아와 알베르트는 항상 클라스와 클라라가 좋은 옷을 입고 행복한 생활을 하길 바랬다. 그것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클라스와 클라라 두 아이는 성주에게 납치되어 좋은 생활이라 말할 수 없는 소피아가 말한 좋은 생활을 하였고, 하느님이 덤을 준 것과 같이 갑자기 소피아와 알베르트도 유리를 많이 팔아 부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한 때가 나았다. 알베르트 부부는 아이들이 없어서 불행했고,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점점 잃어가는 것 같아서 불행했다. 나는 사람들이 어떤 때 가장 불행한 지를 알게 되었다. 바로 자기 삶을 잃게 되었을 때이다.


알베르트 부부는 자식들을 잃어서 밀트베터의 예언을 무시한 것에 대해 아주 큰 후회를 하고 있다. 자식을 잃은 것에 대해 그들은 더이상 삶의 가치따위는 없어졌다. 클라스와 클라도 예외가 아니다. 단지 성주의 아내가 원했다는 이유로 예전의 알베르트의 유리 그릇을 구경하는 행복따위는 없어져서, 유모 나나와 성 안의 까다로운 생활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렸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비춰주던 거울속의 클라라와 클라스도 없어졌다. 그것은 클라스와 클라라의 겉모습만 남아있고 속은 나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차있다. 나는 단지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서 클라라와 클라스의 행복을 뺏은 성주 부부에 대해 정말 화가 났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그것도 갓 걸음마를 뗀 아주 작은 아이들에게 그런 짓을 했다니... 자유를 주지는 못할 망정 화가 나서 유리를 깨부수는 클라스를 매로 다스리게 거기에다가 아이들을 사랑할 줄 모르는 나쁜 유모 나나까지 불렀다는 것에 더욱더 화가 난다. 성주는 자신의 아내를 정말 아끼고 다른 사람들을 잘 도와주는 좋은 사람인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점은 남의 힘든점을 다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더라도 그것에 대해 도와주려고 하지를 않는 듯 하다. 진짜로 남을 위한 것이라면 그 사람의 힘든점까지 고려하여서 그 힘든점을 도와주고 별로 필요 없는 것을 도와주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 책을 통해서 소원과 삶의 관계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가난하지만 소원이 가득한 알베르트씨 집안은 그나마 행복했으나 부자지만 소원의 잔고가 바닥난 성주의 아내는 항상 불행했다. 또 소원을 이루면 그 후 잠시동안은 기쁘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알베르트와 성주의 아내의 중간이 될 것이다. 더한 것도 아니고 부족한 것도 아닌 딱 중간, 잘 살지만 소원이 가득한 사람 말이다. 성주의 아내처럼 안 되려면 지금이라도 열심히 내가 이룰 목표(소원)들을 생각해 보아야 겠다.

YES마니아 : 로얄 s****3 2007.05.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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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장이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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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장이의 아이들>은 북유럽 특유의 분위기와 구전되어 오던 전설의 느낌도 난다. 작은 마을 유리장이와 아내, 두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인 <유리장이의 아이들>은 지금까지 읽은 여러 편의 유럽 동화의 느낌이 한 편에 녹아 있는 것 같다. 유리장이 알베르트에게는 아내 소피아와 아들 클라스와 딸 클라라와 함께 살고 있다. 유리장이 알베르트는 유리 공예밖에 알지 못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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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장이의 아이들>은 북유럽 특유의 분위기와 구전되어 오던 전설의 느낌도 난다. 작은 마을 유리장이와 아내, 두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인 <유리장이의 아이들>은 지금까지 읽은 여러 편의 유럽 동화의 느낌이 한 편에 녹아 있는 것 같다. 유리장이 알베르트에게는 아내 소피아와 아들 클라스와 딸 클라라와 함께 살고 있다. 유리장이 알베르트는 유리 공예밖에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가정에 소홀했고 소피아는 아이들과 잘 놀아주지 않아 서운했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마을 시장에 알베르트는 가족과 함께 유리를 팔러 갔다. 아무도 유리 공예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 잘 팔리지 않았고 한 부자가 알베르트의 유리를 모두 샀다. 큰 돈을 번 알베르트는 기분이 좋아 아이들 물건과 아내에게 선물을 사 주었다. 아내는 반지를 선물 받았고 점을 보고 있는 노파인 밀트베터는 소피아에게 큰 위험이 닥칠 것이고 그때 남편에게 선물받은 반지를 가지고 자신을 찾아오라고 한다. 기분이 나빴던 소피아는 노파가 반지를 뺏으려고만 한다고 화를 냈다. 그런데 남편 알베르트가 뭔지 모를 이유로 불안해하는 행동을 했다.



계절은 몇 번이 바뀌어 아이들도 자랐다. 소원의 성에 사는 성주는 모든 것을 가졌고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성주라는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성주는 시장에서 본 클라스와 클라라가 잊혀지지 않아 아이들을 납치해 성에 데려온다. 아이들은 이상하게 그 전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고 자신들은 처음부터 부잣집 성주의 아이들로 살았다고 생각한다. 성주의 아내도 아이들이 생겨 기뻤지만 잠시뿐이었다. 성주의 아내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고 아이들도 거울을 보고 그 속에 갇힌 아이들의 얼굴이 슬퍼보인다고 생각했다. 또 성에서는 유리 그릇이 계속해서 깨지는 일이 일어난다. 누가 유리 그릇을 깨고 있을까? 사라진 아이들 때문에 소피아는 시장에서 만났던 노파 밀트베터를 떠올리고 그녀가 살고 있는 언덕 집으로 찾아간다. 아이들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 밀트베터는 소원의 성으로 찾아가고 성에서 아이들은 마법으로 항아리가 되어 버린다. 아이들은 마법에서 깨어나 부모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유리장이의 아이들>은 '피리부는 사나이'와 '헨젤과 그레텔' 등의 동화들을 연상시켰다. 그렇다고 비슷하거나 같은 점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마녀도 착한 마녀가 있다는 것도 밀트베터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아이들을 납치하고 완벽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던 성주와 그런 가족이 되면 행복할 줄 알았지만 행복하지 않았고, 아이들 역시 가난에서 벗어나면 행복할 줄 알았지만 부모와 떨어지는 것은 아이들에겐 불행이었다. 자신이 바라는 소원이 이루어지면 모두가 행복할 줄 알았지만 결국엔 불행진 이야기였다. 동화는 아이들이 읽기엔 조금 어둡고 전달 메세지도 무겁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간단한 구조에 복잡하지 않은 서술, 묘사가 있어 동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궁금하다.   






이달의 사락 s********3 2016.11.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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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장이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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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나름 깊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깊이를 제가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점수가 낮습니다. 줄거리는 별 게 아닙니다. 그런데 뭔가가 뒤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암시라고 말하죠. 하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그게 분명하지 않을 뿐입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런 책을 왜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니 뭔가가 있다고
"[유리장이의 아이들]" 내용보기

3.4

 

나름 깊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깊이를 제가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점수가 낮습니다. 줄거리는 별 게 아닙니다. 그런데 뭔가가 뒤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암시라고 말하죠. 하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그게 분명하지 않을 뿐입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런 책을 왜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니 뭔가가 있다고 믿는 게 낫습니다.

 

알베르트라는 유리장이와 소피아 사이에 클라라와 클라스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알베르트가 다루는 유리처럼 위태위태한 가정이죠. 옆에 소원의 도시이라는 성이 있습니다. 성주는 아내가 아이들(클라라와 클라스)를 귀여워 하는 것을 보고 또 아이들을 갖는 게 '소원'이란 말을 듣고 납치하여 키웁니다. 자녀가 아니니 소흘해지게 되고 '나나'라는 유모를 구해 맡깁니다. 알베르트는 플락사에게서 아이들이 없어질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기 때문에 조심하지만 소피아에게 말을 하지 않았고 결국 아이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소피아는 반지를 주면서 부탁을 하면ㄷ 된다는 플락스의 말을 겨우 기억해 내서 부탁을 하고 플락스는 소원의 성에서 마침 붙인 마술사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갑니다. 모든 것을 제자리로 하고 아이들과 함께 돌아옵니다.

k****8 2009.11.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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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꿈은 어디있고 소원은 어디있다냐???
"도대체 꿈은 어디있고 소원은 어디있다냐???" 내용보기
지금부터 아주 자근자근 책 한 권 을 씹어 볼 생각이다...쿨럭;;;;;       어제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책 한 권이 너무 이쁜 커버를 하고 있다..   제목도 유리장이의 아이들...그리고 뒷표지의 낚시글에는   유리를 불어 그릇을 만드는 유리장이 알베르트는 아내 소피아와 아들 클라스, 그리고 딱 클라라와 함께 가난하게 살고 있다. 이들과 한 마을에 사는 지혜로운
"도대체 꿈은 어디있고 소원은 어디있다냐???" 내용보기

지금부터 아주 자근자근 책 한 권 을 씹어 볼 생각이다...쿨럭;;;;;

 

 

 

어제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책 한 권이 너무 이쁜 커버를 하고 있다..

 

제목도 유리장이의 아이들...그리고 뒷표지의 낚시글에는

 

유리를 불어 그릇을 만드는 유리장이 알베르트는 아내 소피아와 아들 클라스, 그리고 딱 클라라와 함께 가난하게 살고 있다.

이들과 한 마을에 사는 지혜로운 노파 밀트베터는 운명의 실로 양탄자를 짜고 자신의 손끝에서 나온 무늬를 보고 미래를 읽을 수 있다.

파는 이 가족에게 불행이 닥펴 오는 것을 알았지만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바로 "소원의 도시"의 성주가 아이들을 납치애서 '잃어버린 기억의 강'을 건너 데려가 버린 것.

이제 엄마 소피아는 아이를 찾기 위해 자신이 잊어버린 그 무언가를 생각해내야만 하는데..... 

 

1974년 안데르센 상 수상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동화작가 마리아 그리페의 대표작

전세계 20개 언어로 소개된 북유럽의 신비로운 꿈과 소원의 이야기

 

난 출판사를 믿고 낚시글을 믿었다...왜?/?비룡소니까....

 

 

 

 

 

그런데......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챕터사이의 연결은 전혀 매끄럽지도 않고..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 또는 행동을 전혀 예측하기 힘들며....비상식적인 행동들을 보이는터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 책을 읽어 나가야 하는지.....어떤 방향으로 해석을 해야 하는지 참 암담하더라는...

 

책이라는게 꼭 해석을 하고 뭔가 핵심을 뽑아내야하는 존재는 아니다.

 

허나 뿌리가 튼튼해야 줄기가 올 곧게 자라듯이 이야기도 기본 소재가 탄탄하고 거기에서 이야기가 술술....잘풀려야하는거 아니겠는가????

 

 

줄거리는 이렇다.

앞선 낚시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유리장이네 가족은 먹고 살기 빠듯하다...

그러던 어느날....유리장이가 시장에서 내다파는 유리그릇이 너무 잘팔린다......그러다 애들이 사라진다...ㅡㅡ;;;깜쪽같이..

그전에 어떤 밑밥이 던져진다...

유리장이가 아내에게 과분한 반지를 하나 사주고..그 반지를 본 낚시글에 등장한 양탄자를 짜는 노파가 위험에 처하면 그반지를 내게 주라고 말하는 등의....

여튼 아이들은 사라지고 엄마와 아빠는 열심히 찾는다...

그러나 엄마와 아빠가 아이를 찾는 부분은 아주 적은 부분만을 차지한다...그만큼 아이들이 사라진 것 또한 아주 별거 아니게 다뤄진다..ㅡㅡ;;;;;

그렇게 사라진 아이들은 성주가 성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납치해 온 것이다...

강을 건너면서 기억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성에서 그냥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그렇게 살지만...

인간적으로...엄마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안가는 대접을 한다....학대수준이라고 해야 맞을 듯;;;;;;;;;;;;;;;;;;

그러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납치된 아이들이 아니라 그 아이를 성으로 데리고 온 성주와 그의 아내에게 맞춰진다...

더이상 소원하는 것이 없는 아내..그런 아내를 위해 소원하는 것을 만들어가면서도 소원을 들어주려는 성주....

하여간 이성으로 그 양탄자를 짜는 노파가 들어오면서 아이들은 원래.....또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그들의 엄마 아빠 품으로 돌아간다....

 

 

 

뭐 안에서 굳이 내용을 비틀어비틀어 끼워맞추자면...

 

유리장이가 아이들을 잃어버리고 만든 유리병.....그것들이 아이들이 남치된 성으로 흘러(성주의 구매일듯)들어오지만..이유없이 깨진다...

 

그 유리병은 다들 눈물이라 말한다. 아이를 잃어버린 슬픔이 유리병에 고스라니 담겨서 그렇다나....

 

그래....유리병이 깨지는 것은 눈물이기에...그만큼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맘이기에 깨진다...뭐 이런 개연성으로 엮어보고 싶지만 참으로 억지스러운..쿨럭;;;;;;;

 

낚시글에서 말하는 엄마 소피아가 잊어버린 무언가를 기억해내야하는데.........그것은 바로 남편이 사준 반지를 양탄자를 짜는 노파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라는....

 

신발닿도록 아이를 찾는 것이 아니라.ㅡㅡ;;;;;

 

 

 

 

이 소설은 게르만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하고...또 글 중간중간에 어떤 부분은 신화적인 내용을 묘사했다고는 하는데

 

일반적이지 않은 게르만의 신화가 낮설뿐이고..어떤 부분이 신화의 부분인지 난 모를 뿐이고...

 

도대체 왜 제목은 유리장이의 아이들이며, 이야기의 마무리는 왜 까마귀의 눈이되는지도 모르겠고...

 

 

 

만약 정말 이 원작이 뛰어난 작품이라 평가받는다면.....번역탓을 해보고 싶으나 글의 매끄러움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 흐름이 참으로 지랄이라는거..

 

고로 번역은 그닥 탓할 문제가 아닌듯하고....이런게 아니라면??

 

내가 북유럽스타일의 감성을 가지지 못한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난 북유럽스타일 좋아라하는데....가구도 이케아 좋아라하고..실용성에 심플한 녀석들 참 좋아라하는데 말이지.......

 

도대체 이 책이 주는 불쾌감은 뭘까????

 

 

y*****0 2013.06.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