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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 내 이름은 이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한 남자. 내 이름은 이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 3번의 이혼. 이현 앞에 그녀가 나타났다. 어릴 적 이세 공의 부인을 질투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남자 이현. 그녀는 이세 공의 딸이라고 한다. 그녀에게 말한다. 영혼을 기록하는 일을 자신 곁에서 하면 어떻겠냐고, 우리의 계약은(결혼은) 3년 동안 지속될 것이고 3년이 지난 뒤 별 탈이 없다면 같이 살자고 말했다. 그렇게 이현과 이진은 결혼을 했다. 4번째 결혼임에도 이현은 성대하게 진행했다. 이진의 기묘한 미모가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이현이 출근하면 이진은 사각사각 노트에 기록을 한다. 어떻게 보면 명상과도 같고 어떻게 보면 다른 세상을 배회하는 눈빛을 가진 이진은 그렇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노트가 늘어간다는 것은 기록하는 영혼이 많아졌다는 의미일까? 누군가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기록한다는 것. 축복받은 일일까 아님.. 저주받은 인생일까? 이진은 다양한 인생을 기록한다. # 1. 부잣집 아들과 결혼했다. 평생 가난하게만 살았던 그녀는 시아버지가 하라는대로 인형처럼 살았다. 알아서 생활비를 주시는 시아버지. 평생 일이라곤 해본 적 없는 남편은 공부만 한다. 돈 많은 시아버지의 투자가 망하고 아내는 일을 시작한다. 남편은 살던 집을 팔아 대학이사장에게 전임교수가 될 수 있도록 돈을 건냈다. 남편은 꼭.. 대학교수가 되어야 할 텐데.. 나는 그에 맞는 아내가 되어야 할 텐데.. # 2. 부잣집 병원장 둘째 아들 오빠는 자동차 광이다. 하지만 벤처에 투자해서 쫄딱 망했다. 망한 순간에도 1억이 넘는 스포츠카를 모는 오빠. 그런 오빠가 미웠는지 아님 그렇게 아이를 키운 엄마가 미웠는지 아빠는 젊은 여자과 살림을 차리고 엄마와 이혼해 버렸다. 엄마는 그래서 모든 탓을 작은오빠에게 돌린다. 자신이 이혼당한 것도 엄마의 막내딸이 결혼 10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는 것도 집안에 불운한 기운이 감도는 것도 모두... 작은 오빠 탓이다. # 3. 그리고 또 다른 화자 부총리 나. 젊고 단단한 몸을 가진 이현을 사랑(?)하는 늙은 몸뚱이 나. 정치적 출세를 하려면 사생활이 깨끗해야 한다는 충고로 이현과 이진 부부를 위태롭게 만든다. 이현에게 결혼 3년 동안 한 번도 읽어 본 적 없는 영혼의 이야기를 읽어보라 말한다. 그 안에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내용이 서술되어 있을지 모르니 미연에 나쁜 이야기는 없애 버려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그리고 그 영혼의 이야기를 읽은 후... 이현은... 그리고 이진은... 인간의 본성은 추악한 쪽과 선한 쪽. 어느 쪽으로 무게 중심이 기울까? 힘을 가졌고, 점잖고, 자신의 말 한마디에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을 그를 성공했다 말하고 어떤 이들은 그를 대단한 위인인양 떠받든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열등감과 무너진 자존감으로 마음 안에서 싸운다. 이 책을 다 읽고 바로 리뷰를 작성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 많은 생각을 했고 지금도 어떤 생각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그 안의 사연을 알 수 있는 것. 대단한 능력임에는 틀림없지만 결코 갖고 싶지는 않다. 아니 무섭다. 다른 사람의 깊은 내면을 알아버린다는 것. 끔찍하고 두려울 것 같다. 다정하고 따스한 사람의 내면 안에 추악한 본성이 있고, 욕심이 있고, 시기가 있다면 그 사람의 얼굴을 어떻게 대할 수 있을까? 현실의 나는 여전히 부총리였다. 그러나 현실의 나와 영혼의 나는 같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달랐다. 영혼의 기록 작업이 끝난 뒤에도 영원히 이 끔찍한 영혼의 세계를 보게 될까봐 영혼을 기록당하기 이전으로 완벽하게 돌아갈 수 없을까봐 두려워했다. (256-257) 영혼들이 몹시 다양한 이력들을 지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건달이기도 했고, 노숙하는 신용불량자이기도 했으며 평범한 가정주부이기도 했고 표독한 고리대금업자이기도 했다. 이진의 기록 속에서 그들은 모두 별나고 이상했다. 그렇게 여러 권의 노트를 신둥 건둥 지나가 나의 이야기, 형의 정사 현장을 숨어서 지켜보는 어린 시절의 부총리, 그리고 생선회를 앞에 두고 이현의 정치적 대부가 될 의중을 밝히는 오늘의 부총리에 대한 기록에 다다르자 이현의 어깨는 석상같이 굳어졌다. (276) 이야기는 어렵지 않고 쭉쭉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해석하려니 두렵다. 알지 말아야 하고 읽지 말아야 할 타인의 영혼을 읽은 죄. 어쩜 기록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데 기록한 죄일까? 그들의 앞날은 아프다. 인간은 이렇게...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고, 겉으로 표시 될 수 없어..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존재들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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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다 보니 심윤경의 작품은 모두 읽게 되었다.
대개 어떤 작가의 작품을 다 읽을 때는 그 작가가 좋아서 그 작가의 전 작품을 하나하나 읽게 되는 경우인데 심윤경의 경우는 그런 케이스는 아니다. 한 작품 읽고 긴가민가 해서 또 한 작품 읽고, 그래도 판단하기에 애매해서 또 읽고 그러다 보니 지금껏 나온 장편 소설 네 편을 모두 읽게 되었다. 읽은 차례대로 보자면 『나의 아름다운 정원』, 『달의 제단』, 『서라벌 사람들』, 『이현의 연애』이다.
책이 나온 순서대로 보자면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 2002년으로 제일 앞섰고 『서라벌 사람들』이 2008년으로 가장 최근 작품이다. 『이현의 연애』는 세 번째다. 그러니깐 2년에 한 작품 꼴로 발표하고 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서라벌 사람들』을 가장 유쾌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이것도 독특하다면 독특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적어도 내가 '좋다'라고 하는 작가들의 경우는 초기작이 그 작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그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내 기준에 있어서는 심윤경 작가의 경우는 초기작보다는 최근작이 더 좋다. 그런데 『이현의 연애』는 좀 애매한 감이 있다. 좋다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고 그렇다고 '내 취향이 아니다.'라고 말하기엔 좀 아쉽다. 도대체 그 애매함은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그건 좀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적어도 심윤경이 쓴 장편소설 네 개만 두고 보자면 이 작가는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 둘을 병행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포맷을 선호한다. 작가로서 할 이야기가 많아서 그런 걸까?
이 작품 역시 기본적으로는 이현과 이진의 이야기이지만, 중간 중간 이진이 기록한 영혼들의 이야기가 삽입되었다.
첫번째 애매함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는데, 이 작품의 경우 메인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이진의 기록'이 더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 부분에 작가가 많이 반영된 것 같다.
물론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된 평가이기도 할 것이다. 개인적인 관심사나. 적어도 독자로서의 내가 좀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이현의 연애사가 아닌 이진이 기록한 영혼들의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이현의 연애담은 뭐랄까? 좀 식상했달까? 여섯 살 때 사랑에 빠졌던 여인과 닮은 여자를 보고 첫 눈에 반해 청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삼년간 산다. 그런데 전혀 당위성을 느낄 수 없다는 거다. 너무 식상하고. 더군다나 끊임없이 반복되는 살구향의 강조 역시... 물론 남자들이 후각에 약하다고는 하나 나는 남성이 아닌 고로 공감할 수 없는 데다... 더군다나 어릴 적에도 싸구려로 인식되었던 살구향 비누가 연상되어서 도대체 피부에서 살구향이 난다는, 모든 남자들이 보고 첫 눈에 반한다는 이진이라는 여자에 대한 환상이나 로망을 품을 수가 없는 거다. 오죽하면 읽다 말고 몇 번이나 남편한테 물어봤다. "남자들은 정말로 예쁜 여자를 보면 정신 못 차리고 보자마자 1초도 안 돼서 사랑에 빠져? 그 여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채로?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도대체 남자들이 사랑에 빠지는데 후각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거야?"
암튼 내가 여성이어서인지, 아니면 사랑에 대한 환상이 없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혀 공감하기 어려운 캐릭터.
다만 이 이야기를 높이 평가하자면 전설의 변용이랄까?
100일만 잘 참으면 사람이 될 수 있는 구미호 이야기라든가... 그런데 하루를 남겨두고 남자가 유혹을 못 이겨 인간이 되지 못한 구미호 이야기. "왜 그러셨나요? 왜 나를 믿지 못하셨나요? 왜 약속을 안 지키셨나요?" 원망하며 떠나는.
이현이 약속한 3년이라는 기간은 1000일에 가까운 기간이니, 그 기간만 잘 채웠다면 이진은 그저 평범한 여자들과 같아질 수 있었을까? 영혼을 기록하는 여인이라는 굴레를 벗어버리고?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현은 개인적 욕심 때문에, 그 '작은'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서 스스로 파멸의 길에 이르렀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사랑도 잃고, 출세도 못 하고. 이것 역시 난 잘 모르겠다.
암튼, 반전이라면 반전이랄 수 있는 부총리의 이야기도. 정치에 입문하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모든 걸 망쳐 놓고, 오히려 이진을 원망하는 이현을 보면서도 전혀 공감할 수가 없다.
내가 너무 차갑나? 이현, 너는 자업자득이야. 네가 한 게 사랑이니? 난 네가 왜 이진을 원망하는지 모르겠다. 네가 정말 이진을 사랑했다면 그냥 조용히 둘이 살면 되지 왜 굳이 정치에 입문하려고 한 거지? 예쁜 아내가 텔레비전에 얼굴만 비춰도 인기가 급상승할 거다, 이런 것 자체가 자신의 욕망이 아닌가? 결국 아내를 죽인 것도 스스로 몰락한 것도 자신의 욕망 때문인데 왜 아내를 탓하지? 본인 때문에 죽은 사람을.
그렇다면 결국 작가가 말하려고 했던 건 남자들의 어리석음일까?
구미호의 미모에 반해 결혼했으나 100일을 채우지 못했던 옛날의(조선시대? 고려시대? 혹은 더 거슬러가나? 아니면 태고적부터 쭈욱 그래왔나?) 그 남자 조상들이나 이현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남성들이나...
똑같다. 뭐 그런?
얼굴만 보고 여자를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결국은 자신의 욕망에 의해 철저하게 몰락하는 것까지. 어쩌면 그렇게 세월이 지나도 달라지는 게 없나? 뭐 그런? 이것 역시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마 심윤경의 작품을 계속 읽을 것 같다. 그건 작품이 매력적이라기보다는 작가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다.
뭔가 좀 애매하기는 하지만,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기에는 다소 미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여성 작가들과는 뭔가 차별화되는 부분들이나...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사고를 풀어나가는 방식들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판단 보류. 뭐... 이 작가의 다섯 번째 작품을 읽어보고 판단해도 늦지는 않을 것 같다. 독자인 나도 젊고, 작가인 심윤경도 젊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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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 한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소설, 이현의 연애를 읽기 전 까지 나는 단 한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나는 책을 좋아하기에 얕지도 깊지도 않은 지식을 가졌으며, 그로 인해 그대가 생각 하는 것 보다 괜찮거나 혹은 무서운 사람입니다."라고 말해왔었습니다. 더불어 영혼을 기록할 때의 이진과 그렇지 않을 때의 이진의 표정과 심리상태가 달라지듯 책을 읽을 때와 나의 표정과 심리상태도 다릅니다. 도서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가 출간되었을 때 흠칫하며 옆에 서있던 연인의 눈치를 보았던 까닭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영혼을 기록하는 이진의 삶이 평범을 완전히 벗어나 고통과 같았다는 것을 겪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지만 책을 좋아하는 제 삶도 그리 평범하거나 고통이 없지는 않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고통이 영혼을 기록하는 고통에 비해 덜 한 까닭에 제게서 살구즙 향을 맡을 수 없으며 셈을 잘 하지 못해도 그저 얼굴한번 보기위해 물건을 사줄 만큼 이성의 넋을 뺏는 아리따운 미모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진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가 이내 사랑하는 사람과 '감정'을 나누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반드시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거부'할 수 있는 나의 삶이 나은 듯도 싶은 감정의 교차를 여러번 느꼈습니다. 더불어 이진이 기록하는 영혼들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면 들수록 힘겹고 고단하기만 했던 내 삶이 위로를 받는다고 느끼곤 했었는데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 영혼을 기록하는 이진과 같은 기록자의 시선으로는 이런 나의 느낌도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반드시 진실만이 기록된다는 전제하에 그렇습니다. 부총리의 요청에 의해 기록을 보았던 이현이 그것을 진실이라고 말해왔던 이진의 말을 믿은 것 처럼말이죠. 이현이 약속된 금기나 다름 없던 노트를 꺼내어 읽고, 기록된 페이지를 찢어버린 것 역시 이진의 말을 믿었던 까닭이니까요.
그 사건으로 이진이 죽고 난 뒤에 이현은 그녀의 삶을 기록합니다. 표면적으로 그로 인해 이진이 죽긴 했지만 영혼을 기록하는 데 있어 이현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진의 엄마가 이세 공을 통해 경제적으로 안정된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금기를 어긴 이현 때문에 이진이 죽었던걸까요. 배신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이진이 이현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을거라 생각합니다. 마음이 없는 여인을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그 여인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고 믿었던 어리석음이 죄라서가 아닐겁니다. 자신의 숙명과 같은 업의 균형을 깨뜨린 이현을 용서하자면 기록되어야 할 수 많은 영혼으로 부터 스스로가 괴롭힘을 당하게 되고 하루종일 머리가 복잡해 셈도 할 수 없었던 그녀이기에 차후에는 그를 사랑하는 그 마음마저 잃을것이 두려워 스스로가 소멸하는 쪽을 택했던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소멸되어도 그녀가 말했던 것 처럼 기록으로 인해 영원히 존재하고, 다른 사람이나 또 다른 기록자가 아닌 자신을 사랑했던 이현을 통해 기록됨으로써 그녀를 사랑했던 이현도, 그녀의 어미를 사랑했던 이세 공도 모두 분명 존재했던 '사실'임을 모두에게 말할 수 있었을테니까요. 물론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접하게 된 독자들도 어설프게 정의되어왔던 사랑과 삶에 대한 진정성에 대해 배웠거나 깨닫게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단 한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는 사람 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나서 아직은 그럴 수 없지만 앞으로는 단 한 문장으로 표현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상대가 누구인지 상관없이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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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였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처절한 사랑이었다. ‘이현의 연애’는 첫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연애담을 이야기하는 소설이 아니다.(제목만 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사랑의 진실과 현실에 대해 아느냐고 묻는다. 카운티 커렌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고통으로 끝날 수도 있으니 모든 마음을 사랑에 걸지 말라고……. 아주 오래된, 낡은 컬러사진 한 장을 보면서 이현은 감미로웠던 기억을 떠올린다. 사진은 기억만큼 세밀하지 못했다. 여섯 살 꼬마가 보았던 아름다운 신부의 긴 눈시울도, 향긋하고 부드럽던 피부의 느낌도 희미해져 있었다. 수십 년 만에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며 그는 깨달았다. 여섯 살의 그가 느꼈던 첫사랑의 감정이 어느덧 사라져버렸음을. 이제 두 번 다시는 거대한 빙하에서 퍼 올린 수정구슬 같은 그 여인의 눈동자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장(재정경제부) 지하매점에서 일하는 이진의 눈동자 앞에서 그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2002년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데뷔한 이후 작가 심윤경은 2000년대 문학의 비주류로 분류된다. 그녀와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정이현이나 김애란 등이 경쾌하고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들로 대중성을 얻었다고 한다면 심윤경의 작품들은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뭐, 그가 문학과 괴리감이 있는 분자생물학을 전공했고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한다는 점들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현의 연애’를 읽어본다면 예를 든 두 작가와의 차이점을 어느 정도는 엿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현의 연애’는 마치 한 편의 비극적인 옴니버스 영화와 같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왠지 모를 불안감이 감지되고 두 주인공인 이진과 이현은 결혼을 하지만 그 생활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다. 일반적인 결혼생활도 쉽지 않거늘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와의 일상이 주는 어려움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살구 즙의 향기를 풍기는 피부, 작고 섬세한 흰 고양이의 유혹적이고 나른한 몸짓을 곳곳에 배치한 이 소설은 모두가 꿈꾸는 연애적 판타지 또한 중요하게 기록하고 있다. 향긋한 풋살구 향기를 풍기며 이현의 손바닥에 따뜻한 체온을 전해준다거나 종반부에서 두 사람이 몸에 전해지는 사랑의 감각을 음미하는 장면들은 비극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설치해놓은 장치처럼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 작품은 슬픔을 이야기하지만 그 과정은 달콤하다. 달콤 쌉싸래한 초콜릿처럼 ‘이현의 연애’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소설 중간 중간 들어가 있는 이진의 기록은 사실 작가가 쓴 단편들이라고 한다. 엄밀히 말해 그것들이 잘 어울린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이진이 생령(生靈)들을 기록하는 여자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심윤경은 자신이 말했듯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그 변화하는 모습에 공감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독자 개개인의 몫이다. 솔직히 세상의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작가도, 작가들의 직품에 다 만족하는 독자도 없지 않은가. (이 단편들은 앞서 언급한 양면성을 도드라지게 해 준다.)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해도 등장인물들이 매력적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특히 이진은 신비로움 그 자체이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고귀한 존재를 만들어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완전하지 않았다. 영혼의 기록이 없어지면 거의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사라질 터였다. 이 작품의 에필로그는 이현의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는 여자의 기록을 없애버린 후 떠나간 그녀를 그리며 노트의 빈칸들을 채운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로 진실한 사랑이었을까. 사랑은 고통으로 끝날 수 있으니 모든 마음을 사랑에 걸지 말아야 함을 그는 몰랐던 걸까. 나는 사랑을 쉽게 보았습니다. 한 잔의 붉은 와인처럼 말입니다. 그 사랑이 나의 심장을 갈라 쏟아져 나오는 붉은 피처럼 처절한 것이었음을 알았더라면 나는 차마 그녀를 사랑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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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입니다. 나의 앞에 있는 눈빛이 맑은 아주, 아주 예쁜 여자가 나에게 한 말은 이것이 전부다. "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하는 법을 배운 사람처럼 익숙한 단어들이 소리가 되어 뱉어지질 않는다. 마음 속으로는 그 찰나에도 '영혼이라고 했는데 잘못 들은 건 아닐까' 읊조릴 뿐. "아, 그러세요. 저는 누구입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나에게 전혀 관심도 없는 그녀를 향해 나 자신을 이렇게 내세우고 만다. 영혼을 기록한다니, 분명히 나보다 특별한 사람인데 아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평범한 내가 그녀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이진은 죽은 영혼의 삶을 기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살아있는 영혼을 기록한다. 그녀의 하루를 아주 오랫동안 지켜봐 왔음에도 불구하고-영혼을 직접 눈으로 본 적도 없으면서-살아있는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와 그녀에게 온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그녀가 기록해 놓은 수많은 대학노트를 손으로 쓸어보면서 펼쳐 보고 싶은 욕망과 싸우기를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했을 것이다. 이 노트를 펼쳐본다고 해도 믿을 것인가. 그녀가 들려주는 몇 편의 이야기로도 오롯이 그녀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데.
갑자기 그녀의 눈에 빨려들어 갈 듯 꼼짝하지 않고 앉아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빠져나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나의 육신은 어디있지? 분명 이곳은 아니었는데. 직접 들려주지 않았는데 이진, 그녀가 나의 영혼을 통해 나를 기록한다. 어떻게 내가 기억하는 삶을 기록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진이 찍히듯이 장면, 장면 그대로 박혀 있는 기억들은? 이는 그녀에 의해 내가 주인공으로 있는 한 편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뿐이다. 작가 심윤경의 손에 의해 이진이 탄생했듯이, 이진이 영혼을 기록하고 있지만 실상은 작가 심윤경에 의해 이야기가 만들어지듯이 말이다. 이진의 손에 의해 나의 모든 것이 글로 기록되고 있지만 켜켜이 쌓인 시간들이 글에 의해 형태를 이루고 모습를 갖춰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억들이 글로 기록 되어지는 순간 순수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테니까.
이진과 다르게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을 사랑하는 이현의 이야기는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현실의 일들이다.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한다고 외면해도 될 일을 그는 이진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여섯 살 어린 시절 처음 보고 사랑한 그녀와 완전하게 닯은 이진-딸이니 당연히 닮겠지만-을 사랑하는 것은 운명이요, 숙명일 수 밖에 없다고 자신했겠지만 처음 이진을 만나 먼저 결혼하자 말하고 뒤이어 사랑을 고백했을 때 그의 사랑은 결코 사랑이라 이름 붙일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상처 받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점차 애정으로, 사랑으로 변해가지만 이진의 아버지 이세 공의 말처럼 그녀에게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이현에게 지옥과도 같은 삶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던 그였다.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과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 이현은 처음부터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없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에게 평범하게 살아갈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게 된 것은 인간의 탐욕과 욕망때문이었다. 오늘 밤만 지나면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구미호처럼, 이진을 만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이현에게 사랑은, 이렇게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이제 앞으로 남아 있는 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는 오롯이 그의 몫이다. 그의 말대로 이진을 사랑했던 한 사람으로써 그의 이름은 기록될 가치가 있고, 그에 의해 영혼을 기록한 그녀를 세상도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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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을 기록하는 무심한 여인 이진.
첫사랑을 만난 결혼식장의 사진을 매개로 아르바이트생과 그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는다. 대화를 통해 그는 그녀가 결혼식에서 만난 신부의 딸임을 알게 된다. 자신은 영혼을 기록하는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세상일에도 사랑에도 관심없이, 오직 살아숨쉬는 영혼들의 인생을 기록하는 그녀는 영혼을 기록하는 작업을 할 공간이 필요하지만 현실의 생활을 영위할 능력이 없는 무기력한 존재이다. 이현은 그녀에게 3년간의 계약결혼을 제안한다. 3년이 지난 후 일을 하지 않고, 영혼을 기록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위자료를 주겠다고 제안하고, 그녀는 승낙한다. |
| 제 목 : 이현의 연애 지은이 : 심윤경 펴낸곳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달의제단 이후 두 번째로 심윤경의 작품을 접한다. 사실 달의제단이라는 작품에서 이 동갑네기 작가에게 반한 것이 사실이다. 달의제단을 읽고서도 책을 읽는 시간보다 서평쓰는 시간이 더 오래걸렸다. 그래서 중간에 서평쓰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사실 책을 읽는 시간이 결코 짧았던 것은 아니다.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연애에대한 이야기다. 아무생각없이 읽다보면 술술 읽혀 나가는 아주 진부한 소재일수도 있다. 그런데, 중간 중간 자꾸 나를 딴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를 해놓고 있다. 고약한 수법이다. 어렵사리 책을 읽고 나니 이젠 서평쓰는 것이 만만치 않다. 이렇게 서평쓰는 어려움에 대한 넋두리로나마 어느정도 분량을 채울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이 작품은 얼핏 잘 쓰여진 시나리오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두에 나오는 프롤로그 [나는 이진입니다] 와 마지막 매조지는 글 [나는 이현입니다]의 두 테두리속에 짧은 이야기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중간 중간 박혀있는 이진의 기록이라는 짧은 글 4편은 마치 각각의 단편소설을 읽는듯한 느낌을 준다. 사실 단편집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수작들이 많이있다. 주인공 이진은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로 나온다. 이 책을 읽기전 바로접했던 루시퍼의 눈물이 떠오른다. 아 ! 이책에서도 영혼을 들먹이는 구나. 영혼에 대한 이야기가 요즘의 트렌드인 모양이다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다행이도 유체이탈 이나 인간의 사후세계 같은 분야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나는 이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입니다. 이책의 첫 문장이다. 누군가와의 첫 만남에서 들은 첫 말이 나는 영혼을 기록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할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하게될까? “미쳤군!” 그렇다. 그녀는 미쳤다. 광녀. 탄생 부터가 심상치 않다. 분명 그에게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존재하지만, 주몽이나 혁거세 같은 인물처럼 결코 평범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그녀의 전공을 살려서, 한 여자의 육체에서 발생한 자연스런 세포분열로 인해 이현이라는 존재가 태어나고, 그녀또한 자신의 2세를 똑같은 방식으로 잉태하게 된다. 마치 동정녀 마리아 처럼. 이진의 남편 이현은 아이를 가질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가면 또 한명의 자신을 만들어 낸다. 여기서 그녀의 도덕성을 의심하면 안된다. 그러면, 이 작품은 정말 아침드라마 같은 내용이 되고 말것이기에. (사실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영혼을 기록한다는 이진이라는 여성. 그 녀의 영혼에 대한 집착을 나는 또 다른 삶에 대한 애착으로 느꼈다. 그녀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라든가(로또번호의 당첨과 같은) , 백투더퓨처 식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강한 영향력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녀에게 보이는 것은 과거든 미래든 또는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을 관찰하고 타인에게 보여지는 그가 아닌 진정한 자아와의 이야기에 집착 한다. 그러고,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오직 영혼에 대한 기록에 몰입하는 그녀. 난 그녀의 모습에서 피토하며 글을 써내려가는 작가를 연상한다. 그래서, 그녀의 영혼에 대한 기록 각각들이 잘 다듬어진 단편으로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사실 책의 뒤에 나와 있는 작품해설을 읽다 보니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냥, 아주 재미난 이야기로 생각하고 싶다. 달의제단에서 보여준 그녀의 믿음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된 작품이었다. 기발한 상상력과, 뛰어난 구성. 한번쯤 읽어봄을 권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역시 서평쓰는건 어렵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 통 모르겠다. |
| 우리는 사랑과 연애를 조금 다르게 구분한다. 사랑은 왠지 잘 포장된 선물처럼 신비하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이고, 연애는 그것을 까발려놓은 듯한 명명. 왠지 좀 통속적인 맛을 가진 단어로 인식된다. 그러니 이현의 연애는, 제목의 바람대로라면 좀 통속적인 소설이어야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몇 번의 배신을 선사하지만, 그 배신이 곧 이 소설의 읽을거리가 된다. 우선 소설의 시작은 “나는 이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입니다”로 시작한다. 여기서 제목의 ‘이현’은 묻히고, '이진'이 주인공으로 인식된다.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의 특이한 생 이야기가 되겠구나 라는 인상. 기록은 존재를 지배한다는 거창한 그녀의 작업의 슬로건. 그러나 2장부터는 다시 그런 “이진을 사랑한 이현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이진.[영혼을 기록하는 것만을 숙명으로 가진 탓에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가고 아버지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은 채 세상에 내쫒긴 존재.] 인 그녀를 영리하고 가진 것도 좀 있고 잘생긴데다 재정경제부 공무원이라는 출중한 직업까지 챙긴 남자 이현이 사랑하는 얘기 말이다. 다만 공무원이란 신분의 뉘앙스에 맞지 않게 세 번의 이혼 경력이 있고 결혼을 싫증나면 끝내는 인간 관계로 생각하고 있는 남자 이현이 운명같은 여자 이진을 만나 삼년 간의 계약 결혼을 시작한다. 중간 중간 이진이 기록한 영혼(생령:生靈)들의 이야기는 그 나름대로의 단편으로 읽히는 데 처음의 기대와 달리 통속적이기 보단 너무 진지한 인간의 탐구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특히 창세기 편.)에 훨씬 더 공든 몰입을 독자에게 요구한다. 인간의 소통에 관한 문제일까. 단순히 특이한 남녀의 사랑얘기일까. 손을 놓을 수 없는 재미로 끊임없이 나를 끌어당기면서도 계속해서 무거운 머리 회전을 요구하는 책의 말미는 생각보다 큰 반전으로 다가온다. 왜 제목이 이진의 연애가 아니라 이현의 연애였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결말. 이현은 단순?한 여자를 사랑한 게 아니었다. 이현과 관계되는 부총리의 영혼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보고싶은 것은 그 사람의 상처나 찡그린 모습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모습니다. 가령 이현의 눈웃음같은. 자기가 상대에게 올인했으니 상대도 나에게 내가 좋아하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거라는 욕망, 혹은 기대는 그 시작부터 사랑의 형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기적인 사랑을 하는 우리들의 모습처럼 어쩌면 단순히 네 번째 결혼에 실패한 남자의 이야기로 끝났을 지도 모르는 이야기의 말미에서 이현은 자신의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이 가져온 파국과 대가처럼 따라온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결국 받아들인다. '창세기'(성경말고 책 본문)에서 인간은 신과 닮은 자신들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스스로 악의 세계인 인간계에 뛰어든 것으로 묘사된다. 신 역시 곧 자신의 모습인 그들의 의지와 다짐을 헤치지 않기 위해 무력한 전지전능자의 모습으로 남기를 약속한다. 그러니 이 세계의 고통은 결국 우리 스스로 지고 가기로 다짐한 것인 셈이다. 이현은 그 태초의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에게 극심한 상처를 입힌 이진을 끝없이 원망하면서도 그 고통을 제 어깨에 얹고 묵묵히 걸어가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가 배신감에 치를 떨고, 공포스러워하면서도 이진의 아이게게 분유를 먹이러 가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숭고하기까지 하다. 작가는 이현을 “순수한 듯 속물스럽고 닳아빠진 듯 고지식한”모습으로 그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비극에 굴하지 않고 끝가지 돌을 굴려올리는 모습으로(물론 그의 희생이 범인류적인 것은 아니지만) 비극을 당당히 맞이하는 그의 모습은 그의 다부진 근육만큼이다 단단하게 보인다. 그리고 이쯤에서 나는 그를 주인공으로 인정하게 된다. 가장 현실적인 인물의 가장 건강한 이야기. 삶은 비극에서 그 빛을 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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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라 낯설다.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 그리고 그녀와 꼭 결혼을 하고 싶은 아니 계약결혼이라도 해서 살고 싶은 남자 이현의 사랑법이다. 한 여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평생을 약속하지 못하는 남자 이현,그는 이번이 네번째 결혼이다. 하지만 상대는 정말 특이한 여자이다. 아버지는 당대의 시인이지만 은둔하여 지내는 사람이고 그렇다고 딸을 애지중지 하는 사람이 아닌 그의 모든 재산은 사회에 환원처럼 그녀에게는 한푼도 물려주지 않는다. 재산 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부녀지간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서로간에 교감도 없고 공감도 없다. 왜 그렇게 부녀지간에 간극이 생긴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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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의 연애>의 프롤로그에 있는 한 단락이 나의 정신세계 속에 내재되어 있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어느 한 공간을 세차게 뒤흔들어 놓고야 말았다. “존재했던 엄연하고 무거운 현실도,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져버립니다. 그 반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일도 일단 기록되어버리면 존재했던 것으로 착각되어요.(중략) 기록은 기억의 확장이니까요.(중략) 결국 기록은 존재를 대신해요. 존재는 기록이 남아 있는 그 범위까지만 유효성을 가지죠. 그렇기 때문에 영리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 그 기록이 어떻게 유지될 것인지 신경 써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