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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노예 소년이 있습니다. 이 소년은 자신이 노예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뻔히 눈에 보이는 자신의 피부색, 그리고 그런 피부색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노예이기 때문에, 자신이 노예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노예들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주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같은 노예들끼리 경쟁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탈출 노예 소년이 나타납니다. 그 소년은 말하지요. "너는 노예가 아니야." 소년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흑인이 노예가 아닐 수 있다는 거야?' 하지만, 그가 보여주고 알려주는 것들은 왠지 믿음이 갑니다. 설령, 그가 사실은 흑인이 아니고, 외계인이며, 우주를 멸망시키려는 악당과 싸우고 있으며, 그 악당을 물리칠 운명을 갖고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고, 그는 나를 각성시키기 위해 찾아왔다는 말을 조금씩 믿게 됩니다. 사실, 냉정하게 따져보면, 그의 말을 믿는 것은 어쩌면 이 어쩔 수 없는 노예의 현실에서 달아날 수 있는 유일한 환상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말하지요. "그 익숙한 노예생활이 환상인거야. 왜 내가 말하는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우주의 악당과 싸우는 운명이 너의 현실이라고!"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괴롭지만, 익숙한 이 노예 생활이 진실일까요? 아니면, 생소하지만 우주 영웅이라는 운명이 진실일까요? 상상과 현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관념론자들은 그 둘의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은 5감을 통해 주변을 인식하는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그것이 현실이라고 믿는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선택의 기준이 "익숙함"이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왜냐하면, 익숙하다는 것은 결국 모르는 것을 없다고 믿어버리려는 귀찮음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고 해서, 그 진실을 추구하는 행위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추구하는 행위가 바로 삶의 의미가 될 테니까요. ======== 어쨌든, 소설은 외계인이라는 주장이 사실이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주인공이 악당과 싸워 이기지만, 그 승리는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며 끝이 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