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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뒤흔든16가지 살인사건을 재미 있게 읽었기 때문에 이 책을 구입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애통하고 비참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흥미롭다, 신분제도의 어려움 때문에 여성들의 진취적인 삶을 다루지 않고 고통받은 여성들을 대중적인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는 그 동안 위인전 류의 여성 이야기만 보고 들었으나 이 책은 심층적인 접근을 하게 만든다.
발목이 잘린 여자 아이와 볏짚 두 단 때문에 벌어진 가족 집단자살 사건은 조선시대가 어떠한 시대였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선은 죽은 자들의 나라여서 여자는 죽은 남편을 위해 절개를 지켜야 했다.
박살 낸다는 말도 오늘 처음으로 이 책을 보고 의미를 알았다. 때려죽이는, 죽을 때까지 매를 때리는 무서운 형벌이 박살이라는 것을 알고 추천사처럼 이런 말을 다시는 쓰지 않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가난 때문에 몸을 팔아야 하는 선비 가족의 이야기에서는 눈물이 나온다. 조선시대도 가난은 여자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것같다. [인상깊은구절] 역사는 행간을 읽어야 한다. 정치사만으로는 역사의 뒤안길을 제대로 알아낼 길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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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남자들의 나라다. 그중에서도 양반을 비롯한 사대부를 위한 나라기도 하다. 남존여비 사상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곳도 조선이다. 아내를 잃은 남자는 재혼할 수 있지만 남편을 잃은 아내의 재혼은 불허하는 곳이 조선이다. 더구나 능력만 된다면 얼마든지 첩을 들일수있는 것도 남자들만의 장점이다. 억울하게 맞아 죽은 남편 이양택을 죽인 범인이 죄값을 치르지 않았고 전라도 감영에 고변했으나 합당하게 처리되지 않자 자진으로 억울함을 호소한 여인 허씨, "열녀를 포상하고 죽은 자를 위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p.29) 허씨는 죽은 후 열녀문을 하사받지만 과연 그것이 그녀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일까? 가문의 남자들에 의해 남들 앞에 세워졌고 결국 죽음으로 몰린 것은 아닐런지. 허씨 부인을 시작으로 다양한 여인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보자.
20세 안팎의 젊은 여자의 알몸 시체가 왕십리 밖 개천에서 발견되었다. (p.33) 누가 왜 젊은 여인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수습하지도 않은 채 버린 것일까? 종의 자식은 어미가 소속되어 있는 주인에게 세습된다는 종모법, 반면 양인남자와 천인처첩 사이의 자녀에게 부계를 따라 양인이 되게 하는 법인 노비종부법도 있다. 종모법과 종부법 중 어느 법을 따르냐는 당시 사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조선에서는 종모법이 적용되었다. 사육신이 단종복위운동을 도모했다 실패했을때 사육신과 관련인사들은 사형당하고 그들의 주인들과 딸들은 공신들의 노비로 하사되었지. 한번 노비가 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원래 신분으로 돌아가기란 힘들다.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했던 허조의 자녀들 또한 관노가 되었지만 허조의 7대 손 침의 허임이 큰 공을 세워 면천되어 양반의 신분을 되찾았다.
여자 종으로서 첩이 되는 사람을 뜻하는 비첩(婢妾), 미모의 여종을 주인이 가만놔둘리 만무, 동비라는 여종은 내금위(왕의 측근에서 호위를 맡은 군대) 위사 이화에게 겁탈당하고 비첩이 되었다. 종은 주인의 소유물이니 마음대로 한 것일테지. 데리고 놀다 마음이 변하면 다른 종과 혼인시켜 자식을 낳게 만드는 것도 주인이다. 남종과 여종이 혼인해서 아이가 생겨나면 주인집은 재산이 늘어나는 것이니까. 이화는 동비가 다른 종과 간음하자 그녀를 살해해서 시체를 버렸다 한다. 자신이 버릴수는 있어도 상대 그것도 종이 자신을 배신하는 것은 못참겠지. 여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일부종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남성들의 확고한 신념이다. 종을 죽인 것은 죄가 아니라는 중신들의 의견에 이화는 임금의 명을 어긴 죄로 유배형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났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만약 성종이 부인 윤씨를 폐비시키지 않았다면 연산군의 폐단은 생기지 않았을 런지도. 어린 시절의 연산군은 총명했고 제대로 자랐다면? 세자의 어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사사하는 것이 아니다. 사사하려면 세자도 폐위시켜야 한다. 연산군을 세자위에 놓아둔 채로 어미인 폐비 윤씨를 사사했다는 것은 불행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미 없는 궁중에서 연산군이 어떤 대우를 받으며 자랐을런지 상상이 간다. 성종의 유모인 봉보부인 백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성종이 왕위에 오른 후 유모 백씨는 종1품 봉보부인에 오르고 남편 강선도 천민의 신분에서 면천되어 벼슬길에 올랐다 한다. 부인을 잘 얻어 집안이 잘 풀린 케이스? 하지만 성종의 아들 연산군이 왕이 된 후 폐비 윤씨 사건과 관련있다 해서 다시 종의 신분으로 되돌아가고 말지. 그들의 영광은 일장춘몽에 불과한 것이다.
자신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달아나면서 할머니를 비롯한 어머니외 집안의 여자들에게 자살을 강요한 영의정 김류의 손자 김진표, 조선시대는 여인의 정절을 중히 여기기에 외간 남자들과 시선이 마주쳐도 안된다 한다.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을 철저하게 맹신(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덮어놓고 믿는 일)한 것도 당시의 사내들이다. 오죽하면 '시집 간 날부터 장님 삼 년,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을 살고 나야 비로소 시집 식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을까. 자기들은 처가집과 변소는 멀수록 좋다며 처가를 멀리해놓고 자신의 부모는 잘 모셔야 한다고 어거지를 놓고 있네 그려. 조선은 알면 알수록 마음에 들지않는 동네야. 사육신들은 자신의 뜻을 이루려 단종복위운동을 했다지만 그사람이 남편과 가족이라는 이유로 여성들이 당해야 했던 고통은 누가 알아주지?
재미난(?) 사실은 부인의 친정이 역모에 몰리며 부인을 버리면 되지만 시댁이 역모에 몰리면 여자들은 그대로 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광찬은 부인의 친정이 역모에 몰리자 부인과 이혼했다 역모가 무고로 밝혀지자 재결합하여 아들딸 8남매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단다. 정말 행복하게 살았을까? 사위도 자식인데 역모로 몰린 사람의 가족이 종이 되야 한다면 사위도 종의 신분으로 떨어져야 되잖아. 강상의 죄를 범하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그에 대한 처벌은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 남자가 유배형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면 여자는 3일 동안 길거리에 세워두었다 참수하라는 명이 떨어지지. 이는 제 3대 왕인 태종 재위시절에 벌어진 사건이다. "적병이 이미 성 가까이 왔으니 죽지 않으면 욕을 볼 것입니다." (p.123) 김진표가 할머니를 비롯한 가문의 여성들에게 자결을 강요하며 한 말이다. 나쁜 놈 그러면서 저는 살겠다고 백성을 외면하고 도망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이 잘난 남자들이 아닌가? 왜 우리에게 자결하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은 구차하게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끌려가는가?" (p.125) 누가 한 말인지 똑부러지게 참말 잘했다. 자결하지 않고 정조를 유린당하며 살아남았던 여인들은 말에 태워져 청나라로 끌려갔고 그 말고삐를 남정네가 끌고 가는 이변이 일어났지. 끌려가는 상황에서도 자결을 강요하는 남성들, 용기 많은 너희들이 자결하지 왜 비참하게 살아남았냐. 속환금을 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들은 환향녀(화냥녀)라 칭해지며 돌아갈 곳을 잃어버리고 말지. 시댁이나 친정이나 그녀들을 받아주는 곳은 없고 집안의 치욕이라 하여 자결을 강요하는 곳만 있다. 조선 시대 여인들은 자신의 이름이 없다. 아니 있기는 하지만 혼인한 후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없는 것이지. 최씨 집안의 딸로 출가한 여성은 최소사, 김씨 집안의 딸로서 출가한 여성은 김소사라 불린다. 그녀들의 이름을 되찾아주고 싶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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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여인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문헌에 근거하여 만든 책. 당시 여자들이 남자와 같은 사람인 건 맞나 싶을 정도로 여인들의 삶은 책 제목 그대로 '잔혹'했다.
아플 때에 문병을 오지 않았다고 종의 신문에서 양민으로 속량된 여인을 때려 죽인 사건은 상전과 종의 의리라는 짜맞추기식 논리로 결국 상전은 풀려났다. 첫사랑과 불륜을 범한 여인은 간음을 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남자는 유배를 선고 받는다. 같은 죄를 지어도 성별에 따라 처벌이 달랐다. 당시 조선 시대에 재혼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재혼을 하여도 여자의 가문에 누가 된다는 이유로 재혼한 여자는 구박을 받아도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어졌다. 또한 일본이 침략했을 때에 유린 당할 것을 염려해 자결을 권유받았던 것, 끌려갔다 돌아온 여인은 환황녀가 하여 위로는 커녕 부정하게 취급했다.
과거에 여자에 대한 대우가 나빴던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 과거의 문헌을 기초로 한 내용이라 좀더 현실감 있게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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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은 길가에 피어난 꽃이라 하여 노류장화라 불린다. 기생에는 일반기생과 관기로 나뉘며 관기는 관청에 소속되어 있는 관비로서 수령이나 중요한 손님들의 시중을 드는 것이 일이다. 관기라 하여 무조건 수청을 드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사에 따라 거부할 수 있지만 거부에 대한 댓가(처벌)가 혹독하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기생하니 남원 성춘향이 떠올라, 춘향은 엄밀하게 따지면 기생이 아니다. 양반과 기생첩(월매) 사이에서 태어났고 일정금액을 내고 속량된 것으로 아니까. 춘향의 미색이 뛰어나단 소문을 듣고 호기심에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 했던 변학도 또한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 잘 알고 있었을 것, 단지 기생이 정절을 지킨다는 사실이 노여워서 부린 땡깡 아니었을까? 그런데 춘향이의 아버지는 누굴까? 춘향의 성이 '성'씨인 것을 보면 성씨 성을 가진 양반이라는 말이 되는데.
<너는 내 딸이 아니다>하여 관불(關不)이라 이름 지었다는 전태현,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라는 뜻을 담은 '관불' 아무리 기생이 낳은 아이라 하여도 자신의 피를 이은 아이에게 그런 이름을 붙여주다니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웃기는 일은 기생들이 낳은 아이들 대부분이 양반의 소생이라는 것, 하지만 그중 자식으로 인정받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려시대의 천민계급. 수척(水尺)·화척(禾尺)·무자리라고도 불리던 '양수척'에서 생겨났고 1425년(세종 7) 이들을 양민화(良民化)하려는 정책에 따라 백정(白丁)이라고 이름을 바뀌었다 한다. 양민으로 만들려던 세종의 정책은 실패했고 백정들은 천민 중의 하나로 분류되고 말지. 조선시대의 여덟 천민으로 불리며 사노비(私奴婢) ·승려 ·백정(白丁) ·무당 ·광대 ·상여군(喪輿軍) ·기생 ·공장(工匠) 등이 여기에 속한다.
아내는 남편을 고발할 수 없고 종은 주인을 고발할 수 없다. (p.224) 아들 박저생의 첩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에게 강제추행당해 그의 첩이 되 여자종 파독, 아버지의 사후 박저생은 다시 파독을 첩으로 삼으려 했으니 파독에게 거절당한다. 같은 죄를 지어도 왜 유달리 여자들에게 심한 처벌이 내려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 특히 여종의 신분인 파독이 박저생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목숨을 잃을 위험한 일이다. 계모 곽씨와 재산을 둘러싸고 벌어진 다툼에서 파득은 억울한 희생자라 할만하다. "억울하옵니다. 억울하옵니다. 소인이 무슨 죄가 있다고 형장을 맞습니까?" (p.26) 두 부자에게 유린당한 억울한 희생자 파독이 오히려 그것이 죄가 되어 형장을 맞아야 하다니. 아내로 인정받는 후처와 달리 비첩은 첩이자 집안의 재산인 노예에 불과하다. 그런데 비첩의 소생은 주인의 노예일까 자식일까?
아들의 부인을 첩으로 삼은 사람으로 당 현종이 있다. 서시·왕소군·초선와 함께 중국4대 미녀 중 한사람으로 불리는 양귀비는 당현종의 아들 수왕의 부인이었다 현종의 눈에 띄어 후궁으로 발탁되지. 그럼 뭐해, 후에 당현종은 안사의 난이 일어나 도주하던 중 현종에게 버림받고 살해당하고 말았다. 양귀비의 최후가 비참했던 것처럼 다른 미녀들의 삶도 행복하다고 말하긴 힘들어. 아니 오히려 미모때문에 불행해졌다 말할 수 있지. 첩의 자리에서 본처의 자리까지 올라갔고 끝내는 정경부인이라 불리었던 여자 윤형원의 부인 정난정, 물론 그녀의 최후도 좋지는 않았다. 그녀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뒤에서 도와준 여인은 문정왕후다. 중종의 세번째 계비인 문정왕후는 아들 명종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의붓아들 인종을 독살했다는 설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때까지 권력을 차지했던 행복한 여인이다.
본부인이 부모님이 정해주신 여자와 혼인한 것이라면 첩은 남자 스스로 골라 선택한 여자다. 남자든 여자든 혼인에 자신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은 항목이지. 정실 자리에 있다하여 안심할 것은 못된다. 가끔은 첩이 정실보다 더 대우받는 경우도 있으니까. 사유가 없어 내치지 못할뿐 투명인간 취급받던 부인들도 많다. <칠거지악> 속에 들어있는 질투, 씨앗을 보면 부처도 돌아앉는다는데 하물며 남편을 다른 여자와 나누어야 하는 부인의 심정이란. 남편이 죽으면 한평생 수절해야 하는 여인들과 달리 남자들은 금방 재혼 아니 삼혼도 불사하지. 정약용의 아버지 정재원에게는 첫번째 부인 의령 남씨와 두번째 부인 경주 이씨 그리고 세번째 부인이자 정약용의 어머니인 해평 윤씨가 있었다. 여자의 재혼을 금하는 나라였으니 이 혼사가 후처로 들어온 여성에게 있어 첫 혼인이다. 조선에 살던 여성들이 불쌍해.
조선 제21대 임금인 영조는 66살의 나이에 계비 정순왕후(15살)을 맞이한다. 영조에게 후궁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는 굳이 왕비를 들여야 했을까? 계비로 채택된 것이 정순왕후에게 있어 불행의 시작이다. 아니 정성왕후의 적자소생이 없었다는 것이 불행이라 할만하지. 무수리 출신인 숙빈 최씨의 소생인 영조는 출생에 관한 자격지심이 심한 사람이었다. 정성왕후의 몸을 빌러 태어난 소생이 있다해도 영조에게 사랑받았을 것 같지는 않아. 뜻이 다른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데에도 자격지심이 한다리 걸쳤다고 봐. 제19대 임금인 숙종은 경종의 어미인 희빈 장씨와 달리 영조의 어미 숙빈 최씨에겐 왕후의 자리를 엿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장희빈 사건 이후 후궁은 왕후의 자리에 오를수없다는 법령을 만든이가 숙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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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타임머신을 타도 조선시대는 절대로 안가고 싶다.
맨날 TV에선 왕이 어떤 후궁을 차지하고, 세자는 어떻게 하면 왕의 마음을 살것이며, 중전과 후궁은 어떻게 서로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고 하는 것만 보여줄 뿐이지만, 그 시대엔 사실 잘먹고 살기에도 너무 힘들었다. 특히, 여인네의 경우엔 신분이 낮으면 남자들의 성적인 욕망만 채워줄 도구에 불과했을 뿐. 가장 극단적인 예로 관비의 딸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핏줄인데, 예쁜 이름을 붙여주기는 커녕 관불 (상관하지 않겠다)는 이름을 붙여 내몰라라 했던 양반이라니.
하나의 살인사건에 대해서도, 신분에 따라 다른 처사를 받았으며 희생자의 가족임에도 10년동안이나 옥살이에 고생을 한 일례 등을 보면서, 그나마 정약용이 흠흠신서 등에서 가여워하며 분노하지 않았다면 그 얼마나 억울한 생명이 될런지 했다.
과연 조선시대의 문화는 이중적인, 소수의 사대부만이 누린 풍류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참으로 회의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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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호기심으로 책을 잡았던 책이다
읽으면서 한결같이 생각되었던 것은
조선시대는 정말 여자들이 살기엔 지옥같다는 것이다.
특히 양반가의 여자들은 지옥보다 더 한것 같다.
읽으면서 화도 나고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고..
나의 감정은 극과극이였다.
느낌은 그랬고 책을 보자면 편집, 구성은 조금 미약했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정확하지않다고 해야 할까 어떻든 그런 느낌이 들었다.
좀더 자세하게 서술이 되어있었다면 정말 좋았을것 같다.
역사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번 읽어보는것도 좋지 싶다.
읽을책이 없을경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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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가지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졌으며 시대가 조선시대였던 것 만큼 그 시대상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남자들을 위한 나라더군요..똑같은 죄를 저질렀으면서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목숨까지 잃고, 동생을 살해하고, 열려문을 중시하고.. 근데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선여인 잔혹사나..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이나.. 책제목만 바꿔놓았더군요. 잔혹사에서 나왔던 인물이 살인 사건에서도 나왔으니깐요....그냥 책을 한권으로 만들지 그랬어요....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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