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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벨상 수상작가 존 스타인벡의 미국 여행기다. 원래 방랑벽이 있던 그는 '내 나라 미국의 참된 모습을 알고 싶다'는 구실로 말년에 미국 일주를 떠났다. 캠핑이 가능한 멋진 개조트럭 로시난테를 몰고, 늙은 푸들 찰리를 벗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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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를 보고 이 작가의 다른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 책을 읽었는데, 읽는 동안 내내 글이 너무 좋아서 이 작가의 다른 책도 또 봐야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무슨 행복한 고민의 연쇄 반응이란 말인지.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여행기, 내가 몰랐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여행기, 내 생각이 바뀌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여행기, 내가 좋아하는 글의 특성이다. 정리를 하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써 놓고 보니 그런 것 같다. 몸이 게을러서 직접 가 보지 못하는 나를 대신하여 낯설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내가 갖지 못한 정보를 전해 주는 여행가들. 게다가 글마저 잘 쓰는 분들이라면, 고마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국에 대한 호감이 좀더 솟는다. 순전히 존 스타인벡 덕분이다. 이런 작가를 낳은 나라라면, 이런 작가가 여행한 나라라면, 이런 작가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모국이라면, 아, 호감이 자꾸만 일어나는 것이다. 작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 것인지.
아직까지 미국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스타인벡의 글은 더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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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을 매고 있는 것으로 부터 벗어나 떠나고 싶어한다고 한다. 작가도 병을 앓고 일어난 시점에서 어릴때 부터의 꿈을 드디어 실행하고 작가로서도 주제였던 미국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애견 찰리와 함께 주문 제작한 버스 로시난테를 타고 출발한다.(미국 사람들은 무생물에도 이름을 붙인다.) 유명지가 아니라 진짜 미국을 알기위해 뒷골목과 시골을 다니는 일정인데 미국의 드넓고 변화무쌍한 지대며 대자연이 주는 감동, 작가라서 뛰어난 기억력으로 묘사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무척 인간적이다. 사실 보통 여행이 아니었다. 작가가 겸손하게 말해서 그렇지 아주 힘들고 고독하고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는 여행이었다. 특히 미국의 자연에 대한 스타인벡의 느낌은 참 좋긴한데 스케일이 크다. 이런 여행을 택한 것이 역시 스타인벡다운 것 같다. 로시난테 안에서 잡은 책 하나가 rise and fall of the third reich, ( http://blog.yes24.com/document/135977)그와 내 공통이 나와서 반갑다. 곳곳에서 풍부한 유모어와 그의 품격을 느낄수 있고 특히 아는이의 고양이와 애견 찰리를 묘사한 부분은 압권이다. 발전이란 이름으로 개성적이었던 곳들이 똑같이 티비 수신기가 있는 모습으로 되어버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편리함과 위생이 지상 최고 목적이 되어 곳곳에 자동 기계로 대치되는 세상에 대해 공허함과 사람 냄새를 느꼈던 옛날에 대한 그리움은 수십년 뒤 우리와 거의 같다. 얼마나 시골인지 어떤 곳은 꼭 티비 프로그램 풍경이 있는 여행 같다. 실재는 변한 고향이지만 언덕위에서 보는 가슴속에선 항상 옛날 그대로다. 부모님 이야기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고향에 두고 돌아서는 곳에선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일어난다. 작가가 진짜 미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수있고 대작가의 철학도 조금 볼수 있고 그를 가깝게 느낄수 있어서 무척 행복한 책읽기였다. 그 어떤 여행기 보다 아주 좋은 책이고 번역이 참 좋다.
나 역시 좋은 여행을 한 것 처럼 흐뭇한 감동이다. 찰리, 너무 웃겼다. 스타인벡이 일찍이 노동등 각종 인생 경험을 해서 그런지 차등 어떤 수리도 잘하고 개도 참 잘 돌보았다. |
| 존 스타인벡의 <아메리칸 초상="">을 재출간한 책이라는군요. 번역자가 타계하신 터라 어찌된 연유로 재출간하게 되었는지 책의 뒷부분을 살펴보니, 번역자의 아들이 쓴 ''감동의 후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타자기를 탁탁탁 치며 밤늦게까지 번역하시던 아버지의 모습, 궁금한 점은 저자에게 항공우편으로 물어보고 한글로 옮기던 번역자의 꼼꼼함이 책 곳곳에 숨어 있는 듯하여 얼른 구입해서 읽고 있습니다. 후기에 감동해서 그런지 문장 하나하나가 소중해 보이는군요. 쉰여덟살에 홀로 떠나는 여행을 준비하는 존 스타인벡. 그의 개 찰리와 함께 한 여행기도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아메리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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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이 책을 추천해주었다. 끝까지 읽고 난 지금, 나는 이제야 이 책이 삼중당 출간도서 《아메리카 초상》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챙긴다. 글쎄... 표지에 연연하진 않지만 칙칙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단, 애견 찰리의 모습은 정겹다. 이렇게 생긴 프랑스산 푸들이었구나. 존 스타인벡의 모습도 보기 좋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미국을 보는 느낌은 분명 있다. 그에 따른 사람들을 보는 맛도 있다. 그러나... 《너만의 길을 가라》《아메리카 자전거 여행》까지 읽은 마당에는 책 역시 시대상에 따라 그 느낌을 달리할 수밖에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그리 오래전의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책이 기행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곁들여 생각해본다. 워낙 현대적인 느낌으로 무장한 책들이 많은 터라... 존 스타인벡이 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재밌다. 그래서 이 책은 정말 찰리와 함께한 여행이 될 수밖에 없는 듯싶다. 어떻게 개에 대해 이렇게까지 쓸 수 있을까? 별점은 완전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좋은 책이 아니었다면 재출간이 됐을 리 만무하다. 내가 좀 더 이입하지 못했던가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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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아주 어려서 어딘가 낯선 고장으로 가고 싶은 충동에 몰릴라치면 어른들은 나이 들면 그런 욕망도 사라지는 법이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막상 나이가 들었다 할 만하니까 이번에는 중년이 되어야 고쳐진다 했다. 그래 중년이 된즉 좀 더 나이를 먹으면 틀림없이 그 열이 식는다고들 하는 것이었다. 내 나이 이제 쉰여덟이 되었으니 아마 노쇠나 해야 풀릴 인인지 모르겠다.
책은 그렇게 시작한다.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들으면 위트라고 할만한 그 말은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바로 나의 이야기인가도 싶어지는 순간 왠지 쓸쓸함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쓸쓸함은 적어도 쉰여덟까지는 가져가야하는 것이다.
존 스타인벡이 손수 설계하여 주문한 트럭을 몰고 뉴욕을 떠나 오대호와 미네소타와 몬태나와 워싱턴주와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와 텍사스와 조지아를 거쳐 미국을 한바퀴 넓게 돌며 이 글을 쓴 것이 벌써 1960년대의 일이다. 저자도 죽었고, 역자도 10년 전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글쎄, 트럭에 함께 타고 있던 찰리는?
스타인벡은 여행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와 미국의 크고 작은 지역들에 대한 촌평과 일화들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대개는 빌 브라이슨의 <lost continient>와 비슷한 맥락이어서, 마치 한 형제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다. 즉슨, 미국 현대문명의 참담한 이면에 대하여 비판하되 노골적이지 않고, 잃어가는 가치에 대해 안타까워하되 소리높여 주장하지는 않는 식이라고나 할까. 그런 시각을 뭐 긍정적으로 보자면 한없이 좋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다, 마는, 문제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자꾸만 그런 작가들의 책을 주워읽게 된다는 게다. 할.
끝으로, 스타인벡이 '지도'에 대해 한 말씀 하셨는데, 공교롭게도 이 말씀이 바로 나와 같은 성정의 사람을 딱 꼬집는 것이어서 옮겨 적어놓는다;
세상에는 지도에 미친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자기 주위에 펼쳐지는 다채로운 자연 풍경보다 채색된 지도에 더 많은 주의를 쏟는 것이 기쁨이다. ... 또 다른 유형의 여행가들도 있다. 그들은 노상 지도상으로 자기네가 어떤 지점에 있는가 확인하려고 든다. ...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원래 길 잃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구원받는다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도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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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태양, 바람 그리고 사막; http://blog.joins.com/yang412/13242002>를 읽으면서 건조해질 수 있는 여행기에 다양한 읽을거리를 인용하여 심심할 겨를이 없도록 한 점이 특별하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김영주님이 미국의 남서부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오래 전 읽었던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였다고 해서 저도 그 책을 읽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르던 개 찰리와 함께 미국을 동서남북으로 돌아본 존 스타인벡이 <찰리와 함께 한 여행>이란 기록을 남겼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존 스타인벡은 자신이 직접 주거가 가능하게 설계한 차 ‘로시난테’에 애완견 ‘찰리’를 태우고 4개월에 걸쳐 34개주에 달하는 미국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보고 느낀 미국과 미국인의 모습을 <찰리와 함께 한 여행>에 담아냈습니다. 그가 이 여행을 한 것은 58세가 되던 해였으니 1960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의 미국의 모습이 지금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스타인벡이 미국일주여행을 꿈꾸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내가 내 나라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 관해서 글을 쓰는 미국 작가이지만 나는 실은 기억에만 의존해왔다. 그런데 기억이란 기껏해야 결점과 왜곡투성이의 밑천일 뿐이다. 참된 미국의 언어를 듣지 못하고 미국의 풀과 나무와 시궁창이 풍기는 진짜 냄새를 모르고, 그 산과 물, 또 일광의 빛깔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 간단히 말해서 알지도 못하는 것을 써왔던 셈이다. 이른바 작가라면 이것은 범죄에 해당될 일이다. (…) 그래서 나는 다시 내 눈으로 과연 이 거대한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다시 발견해보리라 마음먹었다(13쪽).”
책을 펴면 먼저 저자의 여행경로를 표시한 미국지도를 만나게 됩니다. 저자가 롱아일랜드에 있는 자신의 별장이 있는 새그항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메인주를 빙돌아 미국의 북쪽에 위치한 주들을 지나 서해안의 시애틀에 도착한 다음, 남하해서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서 고향인 설리너스에 머물렀다가 모하비사막-프래그스태프를 거쳐 텍사스에서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이 부딪히는 현장을 지켜보고는 뉴욕으로 돌아오는 여행을 한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여정에 관한 저자의 생각입니다. “세상에는 지도에 미친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자기 주위에 펼쳐지는 다채로운 자연 풍경보다는 채색된 지도에 더 많은 주의를 쏟는 것이 기쁨이다. (…) 또 다른 유형의 여행가들도 있다. 그들은 노상 지도상으로 자기네가 어떤 지점에 있는지 확인하려고 든다. (…)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원래 길 잃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구원받는다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도 않는다.” 물론 저자처럼 발 가는대로 여행을 할 수 있는 처지가 부럽기만 한 것도 사실이지만, 시간적, 재정적 고려가 불가피한 대부분의 여행가로서는 효율적으로 여정을 짤 수밖에 없다는 변명도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명소를 돌아보는 일반 여행가와는 달리 스타인벡 스스로가 밝힌 것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미국을 재발견하기 위한 탐험여행이었기에 우연히 보통의 미국인을 만날 수 있도록 일부러 큰 도로를 피해 덜컹대는 시골길을 따라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평범한 미국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생각과 감정, 고민을 발견하고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여러 가지 관습, 태도, 신화, 방향, 변화가 있으며, 이것들 하나하나가 미국이라는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이 되어 있는 성싶다. 나는 이런 것들을 처음 나의 주의 속에 들어왔던 그대로 논하고자 한다.(83쪽)”
제가 참 좋아하던 장소, 배드랜드에 대한 스타인벡의 느낌을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저승 같은 그 고장을 벗어나려고 나는 줄행랑을 쳤다. 그러자 늦은 오후가 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해가 기울어짐에 따라 가파른 산과 협곡, 벼랑과 풍화된 언덕 그리고 작은 골짜기들이 불에 탄 듯한 그 무시무시한 모습 대신 노란 빛과 짙은 갈색으로 선명하게 빛났다. 또한 붉은 은회색이 끊없는 변화를 보이며 그 사이사이 새까만 줄무늬가 스며들었다.(219쪽)” 각각 다른 시간과 날씨에 세 차례 방문할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었던 곳, 배드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조만간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 서평에서 번역을 공들여 해놓은점이 좋다고 하여서 한번쯤은 꼭 읽었음 했었다. 책의 내용은 아메리카 대륙을 찰리와 함께 횡단하면서 겪었던 이야기거나 자신의 느낌을 적은 것이다. 자신이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이면서 미국이라는 땅을 잘 몰랐다고 여기었기에 4개월동안 트레일러를 끌고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어찌보면 무모한 행보이더라도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을 이 작가는 해내었던 것이다. 각 주마다 각기 다른 모습과 사람들의 표정들을 읽을 수가 있었고 좋은 면 뿐만 아니라 안좋은 면도 함께 경험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다. 처음에 예상했던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상세한 해설서가 아닐까이지만 실은 각 주에서 자신이 느낀 삶의 관점들이 주된 내용이다. 느낀 바를 표현 하는 기술은 실로 재치가 가득하다. 기억에 남은 것은 1960년 대에만 해도 인종문제가 사회적인 중요한 이슈로 작용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남미에서 그러한 현상이 심해서 심지어 흑인들이 학교가는 것조차 막기 위해서 백인들이 학교 앞에서 장사진을 치르고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아직도 그들에게는 자유가 주어지지 못했 던 것이다. 평소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내용을 접하여서 가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존 스타인 백은 미국을 여행하면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느끼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의 글 속에 담고자 했다. 덕분에 나도 같이 여행을 하여서 편안한 휴식처를 찾을 수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