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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57센티미터의 작은 키에도 누구보다도 크게 세상을 살다간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1932년에 잉글랜드에서 태어나 올해 3월 23일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저승으로 떠났다. 우리 나이로는 여든 살까지 살다간 삶이다.
아름다워서 그런지 한 사람만 사랑하며 살기가 어려웠나 보다. 여덟 번이나 혼인 했으며, 그 가운데 리처드 버튼과 두 번이나 혼인 했으니 남들의 눈길도 끌었다. 나머지 여섯 사내와 견주면 그나마 같이 오래 산 사람이 리처드 버튼이다. 1964년부터 1976년까지 살았는데 그 가운데 한 해 반쯤은 헤어졌기 때문에 떨어져 살았다. 그래도 열한 해.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나와 똑소리 나는 연기를 보여준 탓에 수많은 영화에 나왔다. 중학교 때 기술 선생님은 '양철'은 비싸서 지붕으로 쓰지 않았고 '함석'을 썼다며 영화 이름이 잘못 되었음을 우리한테 이야기해준 1958년 작품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Cat on a Hot Tin Roof>,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빗나간 사랑에 휘말려 눈물 짓는 1951년 영화 <젊은이의 양지 A Place in the Sun>, 록 허드슨과 제임스 딘의 사랑을 듬뿍 받지만 다 같이 살 수 없는 삶을 그린 1956년 작품 <자이언트 Giant>, 짜임새는 조금 떨어지지만 볼거리가 풍성한 1963년 작품 <클레오파트라 Cleopatra>, ... 끝이 없다.
얼굴이 예뻐서 눈길을 끈 게 아니라 연기가 뛰어나 사람들을 사로잡은 영화는 1966년에 마이클 니콜스 감독이 만든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 하랴?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다. 사랑해서 같이 사는 가시버시가 틈새가 벌어지자 해서는 안 되는 말들과 일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뒤끝은 마음에 깊이 생채기만 남길 것이란 걸 알면서도...보는 이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영화다.
2. 장인이 마련한 저녁 자리에 갔다가 술을 마시고 돌아온 조지(리처드 버튼)는 같이 돌아온 아내 마사(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집에 들어서면서 내뱉은 "초라하군!" 소리 때문에 볶인다.
마사가 묻는다. "'초라하군!' 은 베티 데이비스가 나온 영화에 나오는 말인데, 그 영화 이름이 뭐였죠?" "모르겠는데..." "멍청이" "그 있잖아요? 베티가 시카고로 가는..." "그래, '시카고'야" "시카고는 뮤지컬이고...미치겠군...당신이 아는 게 뭐가 있어...생각을 해봐..." "피곤해..."
조지는 술기운이 돌아 누워서 쉬고 싶은데, 마사는 손님이 곧 온다며 조지를 깨운다. 마사는 침대에 엎드린 조지의 등을 두들기며 노래를 부른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 하랴...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 하랴..."
늦은 밤에 찾아온 이는 닉(조지 시걸)과 그 아내 하니(샌디 데니스)다. 조지는 사학과 교수로 있고, 닉은 생물학과 교수로 새로 왔다.
3. "당신은 구역질 나" "당신은 바보야" "당신은 나 약 올리는 데는 선수야" "술에 취해 치마를 뒤집어 쓰는 짓은 하지 마" "강아지 마냥 얼음을 씹어 먹는 게 당신 버릇이지"
닉과 하니가 보기에는 조지와 마사는 알콩달콩 사는 모습이 아니다. 술을 마신 탓인지 본디 그랬는지 모르지만, 조지와 마사는 말끝마다 다투고 서로 으르렁거린다. 둘 사이에 오가는 말들이 예사롭지 않아, 닉은 제 집으로 가려고 한다. 괜시리 남의 집안 싸움에 끼어들 까닭이 없으므로. 그런데 갈 수가 없다. 마사가 잡기 때문.
조지와 마사의 뼈있는 우스개 소리를 들으면서 술을 마시다 보니, 닉과 하니도 덩달아 마음이 풀어진다. 마흔여섯 살의 조지와 스물여덟 살의 닉은 교수가 어떻게 되었으며 아내를 어떻게 만났는지 털어놓는다. 집에서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고, 닉과 하니의 집으로 차를 태워서 가는 길에 같이 또 술집에 들러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또 이야기를 하고...이들은 날이 샐 때까지 술 마시며 온갖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술을 알맞게 마실 때는 서로 좋지만, 그 선을 넘어서면 술이 술을 부르고 있는 얘기와 없는 말이 다 나와 얼굴을 붉히는 일이 생긴다. 깨고 나면 왜 그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때로는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내주기도 하고.
4. 조지와 마사가 처음부터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조지는 마사와 사학과에서 만나 같이 살게 되었는데, 장인이 총장인 덕분에 교수 자리까지 얻었다.
그런데 조지는 책을 좋아하고 연구실에서 공부만 했으면 했고, 마사나 장인은 큰 꿈을 가지고 학교를 꾸려가길 바랐다. 꿈이 서로 다르다. 맞지 않는다. 그래서 조지는 학과장 자리도 얻지 못했다. 마사는 멍석을 깔아줘도 놀지 못하는 조지를 싫어하고, 조지는 저를 비꼬는 마사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나이든 조지와 마사는 사랑이 식을 때가 되었다 치더라도, 젊디 젊은 닉과 하니는 깨소금 냄새를 풍기며 살고 있을까?
닉은 열두살 때 석사 학위를 받은 천재라 하는데, 돈이 없어 돈 많은 집의 딸을 꼬셨다. 엉덩이가 납작한 하니지만, 장인은 목사로 돈을 모은 사람이다. 그 돈으로 닉은 공부를 마친 셈. 그런데 닉도 할 말이 많다. 믿음을 팔아 돈을 번 장인을 '생쥐'같다고 하고, 하니가 아이를 가졌다고 알려져 같이 혼인하게 되었는데 식을 치르고 나니 배가 꺼졌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이 이야기만 나오면 또 두 집은 말이 많아진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몸이 안 되어 못 가지는 아낙네가 있는가 하면, 아이를 바라지만 낳기를 꺼리는 옆지기 때문에 못 가지는 아낙네도 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 이야기를 부풀려 엉뚱한 거짓말도 하게 되고...
5. 끝마무리는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정쩡한 모습이다. 그렇게 서로를 물어 뜯고 갈기갈기 찢으려 했으면, 깡그리 깨지는 모습을 보여야 되는 것이 아닐까? 산산이 부서져야 그 터에서 새살이 돋아날 수 있지, 대충 다시 갖다 붙이는 건 땜질밖에 더 될까?
아마 리처드 버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나오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맛이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제 아내한테 좀스런 사내로 비춰지면서 속이 곪은 조지를 맡아 리처드 버튼은 아내인 마사가 빈정댈 때마다 끊임없이 맞서는데 같은 사내로서 보기가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노련하고 지칠 줄 모르게 구렁이 담을 타듯 넘어가는 건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연기로 보인다.
아무리 뉘우쳐도 뉘우쳐지지 않을 일을 술김에 벌이고 마는 마사를 맡아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옆지기 조지를 마구 몰아붙일 때는 속에서 성이 마구 올라오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아내가 저렇게 쫑알거리면 나는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 자칫 잘못 하면 주먹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아찔하게 보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창과 방패마냥 찌르고 막는 모습은 아슬아슬 해서 손에 땀이 났다.
그런데 이렇게 숨이 막힐 것 같은 데도 하니로 나온 샌디 데니스 때문에 가끔 웃었다. 술집에 들어가서 하니는 "나는 춤의 여왕" 하며 마구 춤을 추는데, 이건 막춤도 아니고 스카프를 휘휘 휘드르며 동그라미를 그리며 뛰어 다닌다. 아내와 둘이 넘어갔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조지 시걸이 둘이 야한 춤을 추는 것도 처음 보는 것이라 눈을 크게 뜨고 보았지만, 마치 말을 달리듯 달리면서 춤을 추는 샌디 데니스의 춤은 이 영화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를 듯했다.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춤을 보게 된 것이 나로서는 가장 마음에 들고 좋았다.
6. 아내와 같이 보면서 우리는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들어 티격태격 다투고 싸우는 영화 속의 모습도 가르침이 될 수는 있을 듯했다.
그렇지만 아직 시집이나 장가를 가지 않은 사람은 안 보았으면 좋을 영화다. 괜시리 사랑이 가져다 주는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을 송두리째 사라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컬러로 찍을 수도 있었지만, 깊이 있게 싸우는 모습을 담으려고 일부러 흑백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온지 마흔다섯 해나 지난 영화지만, 화면이나 소리는 깔끔하다. 덤도 무척 좋다. 두 장짜리라서 그런지 감독과 만든 이가 나와 영화를 보면서 다시 이야기하는 것도 들어 있고,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감독을 뽑게 된 까닭 따위도 나와 보기에 좋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어떤 배우인지를 같이 일한 여러 사람이 나와 말해주는 것도 있다. 꼭 죽은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다시 되돌아보는 듯하다. 특집으로...리즈가 나와 말하는 건 없지만. 어머니도 나와 착한 딸에 대해 말한다. 그런데 엄마 눈에 착하지 않은 딸이 몇 있을까?
덤이 풍성한 두 장짜리에 9,900원이면 사도 잃을 게 없다. 그런데 다 팔리고 없다. 빨리 들여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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