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작가 역시도 자신이 아꼈던 문장은 이런 것이었구나...하는 거였다. 대뜸 무슨 말인고 하니, 몇 년 전 펴낸 작가의 초기 창작집<풍금이 있던="" 자리="">에서 읽었던 단편 <배드민턴 치는="" 여자="">중에 나오는 똑같은 문장들을 이 장편소설의 군데군데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 들여다봐서 백합의 흰색이 그녀의 눈을 되찔러올 때는... ....당신 내 카메라 바라보느라 눈 내리깔고 있을 때 세상에 저런 아름다운 눈썹도 있구나. 내내 생각했지... ....그 남자를 어떻게 해서든 그녀 밖으로 내몰아보려고 몸을 기울어지게 해보았던 것이다... ....그녀가 오전에 한 일이라곤 푸른 물통 속의 백합을 오래 바라다본 것뿐이다.... .....따라갈 수 없는 서러움, 닮아볼 수 없는 안타까움, 먼, 멀디 먼 그리움... .....이게 무슨 짓이야, 내내 아무렇지도 않다가 이토록 마음을 내주다니. 아, 나란 여자는 웬 틈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그의 고백이냐? 아니면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이냐? 두 질문을 놓고 그녀는 자주 소철에 이마를 대고 서 있다...... ....아무, 연대감도 없는 그 남자에게로의 이끌림은, 가끔 한밤중에 잠이 깨었을 때 그녀 가슴을 훑고 지나가던 참담함, 그 불안을 막아주던 식물들의 위로, 칠흑 같은 밤중에도 흙 속에서 키를 키우겠지 싶어.... 그 창작집<풍금이 있던="" 자리="">에 있던 단편 거의가 아름다운 소설로 기억되고 있지만 <배드민턴 치는="" 여자="">에서 읽었던 위의 구절들을 난 쉽게 잊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단편 <배드민턴 치는="" 여자="">의 '그녀'에게 작가 신경숙은 '오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일터와 친구들을 구체적으로 부여해주었다. 그것이 바로 이 장편 <바이올렛>이다. 주인공인 그녀는 성이 '오'씨이고 이름이 '산이'인지, 아니면 성이 '오'씨이고 이름이 외자로 '산'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배드민턴 치는="" 여자="">의 바로 '그녀'다. 난 <배드민턴 치는="" 여자="">를 읽으면서 위의 문장들을 지금까지도 똑똑히 기억해두고 있으리 만치 작가의 문장에 반해있었다. 하지만 깔끔했던 단편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늘려진 장편을 읽으려니 좀 답답하단 생각마저 들었다. 그녀 오산이 때문에.... <바이올렛>의 그 여자, 오산이를 따라가는 내내 나의 마음은 아슬아슬하고 안쓰러웠다. '신경숙표' 소설의 인물들처럼 오산이 역시 망설이고 머뭇거리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사진기자의 그저 무심히 내뱉어진 한 마디에 마음을 온통 빼앗겨 바보같이 낯선 욕망에 끌려 다닌다. 微風이 살짝 스쳤는데도 오산이는 태풍을 맞은 것처럼 전존재가 흔들려버린 것이다.(속지 마라, 여자들이여. 가끔 어떤 남자들은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무시로, 여자들에게 好意를 표시한다는 것을. 그들의 아주 나쁜 버릇이다.) 흔들리기 시작한 오산이를 바라보면서 애잔한 느낌과 함께 용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 바보같이 비현실적인 욕망으로 혼미한 채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가 말이다. (앗! 지금 번쩍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하나, 그녀의 이름 '오산이'는 착각했다는 뜻의 그 '誤算'이 아닐까? '그건 당신의 오산이야.'라고 할때의 그 오산, 정말 오산이의 착각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지 않은가. 드라마에서 혹은 소설에서의 인물 이름이 커다란 상징인 것을 보면 나의 이런 추측도 전혀 얼토당토 안한 얘기는 아니렷다.). ....당신 내 카메라 바라보느라 눈 내리깔고 있을 때 세상에 저런 아름다운 눈썹도 있구나. 내내 생각했지... 이 말에 오산이는 사무쳐버린 것이다. 사무친다..... '사무친다'는 신경숙 소설에 자주 나오는 이미지다. 내가 신경숙의 단편 <배드민턴 치는="" 여자="">의 아름다운 문장 몇 줄에 마음이 흔들렸듯이 오산이는 고독한 현실 속에서 한 껄렁껄렁한 남자의 지나치는 한 마디 말에 뒤집어진 것이다. 이 바보같으니라고.... <풍금이...>에서 이미 도드라졌지만 이 소설에도 신경숙 특유의 문장이 자주 등장한다. 또닥또닥 칼도마 소리를 내며 파를 썰고 마늘을 빻아 넣고 조물조물 나물을 무치는 여자의 손놀림이나 화원 바닥을 쓸어내면서 하는 온갖 상념들을 묘사한 대목 등이 그렇다. 작가의 농촌 경험,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이런 글쓰기를 하게 한 것 같다. .....밥과 함께 먹을 콩나물국을 끓인다....라고 다른 작가들이 쓸 때 신경숙은 그 과정을 스무 줄, 서른 줄로 늘릴 수 있다. 단 한 줄 짜리 정황도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몇 장이고 늘릴 수 있다는 말이다. 신경숙 특유의 忍苦와 연민의 표현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열광하겠지만 콩나물국 하나를 먹기 위해서 그리도 세밀하게, 그리도 느려터지게 하고 있으니 나 같은 성격 급한 독자는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작가 박완서는 이 소설을 두고 '신경숙 문학의 매력은 식물이 주는 위안과도 같다.'고 했지만 나에게 <바이올렛>은 다양한 상념을 던져주는 복잡한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 작가 신경숙은 후기에 "잊혀져도 좋을 이야기"라고 적었지만 <배드민턴 치는="" 여자="">의 인상적인 문장들이 그대로 나왔던 것으로, 나는 <바이올렛>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서울의 한복판 광화문 일대의 고유한 지명이 세세하게 나와있어서 지도를 그릴 수 있으리 만치 머릿속에 약도가 잡혀온다. 새문안교회, 구세군 회관, 봉주르 레스토랑, 강북 삼성병원, 성바오로 서점, 창덕여중, 정동길, 금화터널, 사직터널.... 이 소설로 충분히 익숙해져서 혹시라도 세종문화회관 부근을 지나다가 꽃집이 있다면 가만히 그 꽃집 안을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오산이 같은 여자가 꽃집을 지키고 있나 싶어서. 바이올렛>배드민턴>바이올렛>풍금이...>배드민턴>바이올렛>배드민턴>배드민턴>바이올렛>배드민턴>배드민턴>풍금이>배드민턴>풍금이> |
| 숨가쁘게 단숨에 읽었다. 바이올렛은 재미와 감동으로 읽을만한 책이 아니란 사실은 읽으면서 알게되었다. 만약 재미를 위해 시간을 때우기 위해 바이올렛을 읽을 결심을 했다면, 반드시 후회할것이다. 과거의 추억을 생각할 겨를없이 바쁜 현대인들에게 되려 일독을 권하고 싶다. 고독한 현실, 보다 더 나은 내일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한발짝 앞으로 나서기전에 아련한 옛날의 추억을 일깨워 보라고 되려 권해보고 싶어졌다. 소설 중후반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오산이의 해피엔딩을 기대하면서 읽었기때문이다. 결말에 이르러, 작가는 오산이의 비극을 그려 내었다. 오산이의 참담한 과거와 사랑받지 못한 안타까움을 수애가 풀어줄수 있을거라 기대했는데, 중후반까지는 오산이의 비극을 아무도 예상치 못하다가 끝나기 몇페이지전 숨가쁜 오르막길로 오르는 듯 내 가슴 언저리 뻐근한 통증을 느끼면서 밀려오는 안타까움을 참지 못했다. 오산이의 욕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것인데 그녀는 제대로 누리면서 살아보지 못했다. 불운한 과거를 아픈 추억으로 가진 수애 역시 비운의 희생자다. 오산이를 비극으로 희생하고, 수애를 다시 거리로 쫓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작가가 말하려고 했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가지마루 잘있어요?" 라고 묻었던 오산이의 안타까운 울림이 계속 귓가에 환청인양 들린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외롭고 쓸쓸한 작품이란 사람들의 선입견을 알고나서 읽기 시작한 이 소설의 느낌이다. 어릴적 오산이처럼 충만한 사랑으로 오붓한 정을 느끼지 못하고 각종 사회시설에서 수용하여 정을 받으며 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부족하나마 나의 따사로운 정을 나눠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오산이는 그렇게 우리들의 곁을 떠났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오산이 같은 이들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듯이 만들어 지고 있을 것이다.. 그네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그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어놓고 모른척 하지 않을까? 예전 바이올렛을 처음 봤을때 마치 조화처럼 신비스럽고 아기자기한 귀여움에 반했던 기억을 다시한번 끄집어냈다. 직사광선을 피해주고 적당한 반그늘에 적당한 온도에 잘 자랐던 식물인데, 단지 꽃과 잎에 물을 주면 고인 물 주변으로 썩어버리는 조심스런 물주기에 실패했던 아픈 기억이 나버렸다. 잔혹한 포크레인의 아가리 속으로 바이올렛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나는 오산이를 계속 기억하고 싶어졌다. 언제까지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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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바이올렛>은 동사에 주의하며 읽어야 한다. '공허한 시선이 거리 풍경을 헤매'기도 하고, '네온 불빛이 그녀의 침묵 속으로 끼어들'기도 하고, 때로는 '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기도 하며, '불안이 와아 와아 와아, 솟아나서 잔 올챙이들처럼 와글거리'기도 한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어제만이 살아 있'는가 하면, '그 남자와 재회하기 이전의 시간과 어제 그남자와 재회한 이후의 시간에 대해 분명히 금을 긋'기도 한다.
<바이올렛>에서 그녀의 문체는 '백합의 흰 색이 눈을 되찔러오는' 것처럼 몽환적이다. 현실의 다른 층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장면을 독자의 의식 속에 두서도 없이 펼쳐 놓은 것처럼. 비현실적이라거나 SF 영화처럼 가능성 없는 미래와는 다른, 뭔가 부족하고 나와는 아주 멀리 동떨어진, 그러면서도 지구상의 보이지 않는 어느 지점에서 생생히 재현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비현실적인 현실이라고 말한다면 어폐가 있겠지만 아무튼 그녀의 소설은 그렇게 전개되어 간다. 작가가 그려내는 현실은 마치 꿈 속에서 벌어지는 일인 양 내 현실의 지면으로 끝내 내려앉지 않았다.
"하늘이 그대로 쏟아져서, 푸른 물을 확, 그녀 얼굴에 덮어씌우는 것 같다. 정말 무지개네.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박거리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글썽여진다. 가슴이 싸르륵 쓰라려온다. 따라갈 수 없는 서러움. 닮아볼 수 없는 안타까움. 먼, 멀디먼 그리움. 그녀는 방향도 없이 공허하게 앞을 향해 걷는다." (p.175)
소설 속의 주인공인 그녀는 '오산이'라고 했다. 그녀의 고독은 미나리 군락지가 드넓었던 시골 소읍의 어린 시절에서 비롯되었다. 이씨 집성촌이었던 마을에서 이씨가 아닌 학생은 오직 그녀와 단짝이었던 남애가 유일했다. 아버지의 부재로 불안했던 산이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줄곧 아버지와 함께였던 남애는 다른 듯 닮아 있었다. 소식도 없던 산이의 아버지가 돌아오고 쌓였던 분노를 표출하는 어머니, 남애를 만나 위로를 구하려던 산이는 작은 오해를 끝내 풀지 못하고 결별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고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그녀. 그녀는 믿었던 어머니로부터 또 여러 차례 버려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미장원 보조 생활을 그만두고 화원에 취직한다. '꽃을 돌보는 여자'가 된 그녀. 스물세 살의 그녀는 화원 주인남자의 조카, 수애와 함께 산다. 그해 여름, '바이올렛'을 찍기 위해 화원에 들렀던 사진기자인 그 남자가 그녀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남자로 인해 방황하는 그녀.
"그에게 전화를 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둘이 마주 앉아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너 자신이 지금 끌려다니는 것이 무엇이지? 그의 고백이냐? 아니면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이냐? 두 질문을 놓고 그녀는 자주 소철에 이마를 대고 서 있다. 권태로운 여름은 그녀에게 공허한 함정을 파놓고 떠날 모양이다." (p.184)
그 남자를 마음에 품을 수 있었을 뿐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던 그녀. 그녀 마음의 가장 밑바닥엔 어린 시절 남애로부터 갑자기 내팽겨쳐졌던 고독이 불타고 있었음을 , 그 고독이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 전에 가버리라는 외침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그녀는 인식한다. 그 남자를 잊지 못한 채 방황하는 그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남애를 찾아갔지만 그녀는 이미 수녀가 되었다는 소식만 전해듣는다. 다시 화원으로 돌아온 그녀는 결국 사진기자인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건다. 술좌석에서 고백아닌 고백을 했던 그 남자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추억이 되지 못한 욕망은 여름 내내 너무 파릇파릇하거나 격렬하게 불타올라 그녀를 방심 상태로 이끌어가곤 했다. 소통되지 않는 욕망으로 인해 슬픔에 사로잡힌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신지? 하고 물었던 그 남자로 하여 지금 그녀는 야릇해져 있다." (p.265)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남자와 헤어진 그녀는 결국 화원의 단골이자 그녀를 끊임없이 유혹했던 남자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겁탈을 당한다. 광화문 사거리,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의 화원에 취직했던 '꽃을 돌보는 여자'인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그녀는 그렇게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조용히 스러진다. 그해 여름, 말하자면 스물세 살이 되었던 그해의 여름은 그렇게 흘러갔다.
오늘처럼 군데군데 우울이 물드는 날엔, 낙엽지듯 쓸쓸함이 번지는 날엔 내가 이만큼 살아냈구나, 안심하게 된다. 장애물 경주를 하듯 세월을 서너 번쯤 건너 뛴 듯한 느낌이 들곤 하지만, 뭐 그래도 괜찮겠다 싶다. 그녀가 끝내 견디지 못하고 스러졌던 그해의 여름은 오늘 내게, 젊었던 시절의 여름 더위를 지나쳐온 내게, 장애물 경주를 하듯 정신 없이 세월을 건너뛰었던 내게 안심하라 다독이는 듯하다. 세월이 가뭇없이 흘러 벌써 여기까지 온 내게. |
| 누군가의 추천으로 담고 지내다가, 책을살때쯤, 그때 코드가 맞는 책.. 그렇게 골랐다. 책을 읽기전에, 얼핏본게, "여자를 가장 잘 그려내는 작가" 신경숙이라는 뉘앙스의 글을, 본적이 있다. 그래서인가.. 이 소설. 주변의 상당수의 남자가, 진짜 나쁘게 설정되었다. 몸을 범한놈이나.. 마음을 범한놈이나.... 맨 뒤에, 다른 사람의 너무 자로잰듯한 해설이 맘에 안들기도 하면서도, 래서 해설이구나 싶기도한건, 국엔, 거기에 말에 따라가며, 정리가 생긴다는 거다. 이건 어쩌면 고전과의 차이같기도 하다. 무한히 관객의 손에서 완성케 한 고전과 틀리게. 하나. 그 남자가, 그 순간에나마, 사진기를 통해서나마, 그녀를 알아봤다는 거. 그 알아봄을 당했기에, 그녀는 격렬하다. 내가, 너를 알아보고, 당신이, 나를 알아보고.. 굳이 쌍방간일 필요도 없다.. 일방통행이라도. 이건, 충분한 광기의 원인이된다.. |
| 단편집 '풍금이 있던 자리'에 실렸던 '배드민턴 치는 여자'를 기억하시는지. 실상 배드민턴 치는 여자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자유로운 이미지일 뿐... 화원에서 일하던 순하고 곱던 그녀, 오산이. 얼핏 스친 남자의 선뜻한 농에서 처음 느낀 욕망과 유혹... 오랜 시간 후에 보고싶다는 마음 하나로 그를 찾아간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그녀를 알지 못하는 그의 낯선 표정. 비어버린 마음을 가지고, 그녀에게 늘 '같이 자고 싶은 눈빛'을 보내던 다른 남자에게 찾아간 그녀. 그녀는 비어버린 마음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따뜻하게 그저 소름이 돋아난 팔을 따뜻하게 잡아주길 원했지만,... 그는 그의 눈빛에 미리 질려 뛰어가는 그녀를 붙잡아 너도 원하는 거 아니었어? 따위의 말을 지껄이며 그녀를 범한다. 아, 93년? 94년? 그 어느 가을에 나는 그녀를 만났는데... 그녀가 너무나 가여워, 그 남자를 죽이고 싶어 온몸을 떨었던 기억이 난다. 그녀의 오랜 이야기가 바로 신작 '바이올렛'이다. 바이올렛... 이란 피가 말라붙은 색깔이라는 말. 바이올렛의 바로 아래아래 정도에 바이올런스라는 말이 위치해 있다는 것...... 이 얼마나 아픈 이야기인지. 그녀의 이야기를 한땀한땀 따라가보다 보면 너무 가슴이 아파서... 울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그저, 슬픈 표정만을 짓고 있게 된다. 나는 여전히 그 남자가 밉고 밉고 또 밉다. 그는 단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였다구,라고 쉽고 쉽게 말할지 모르겠지만. ... 광화문에 가면, 뽀모도로에 가면, 가슴이 아파질 것 같다. 윤대녕과는 또 다른, 신경숙이 말하는 그곳에는, 그곳에서, ... 라는 힘. 공간을 들어 마음에 타박. 하고 놓는 힘. ps.... 사실. 소설 자체가 배드민턴 치는 여자를 읽은 사람들에게 주는 아련함이 아니라면 신경숙의 소설 중에서는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라고 생각은 한다. 외딴방을 읽었을 때만큼의 아! 하는 감탄사는 나오지 않는다. 그것이 안타깝다. 이 소설의 힘과 아름다움은 반 이상이 단편 배드민턴 치는 여자에서 나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좀더, 할 얘기가, 많지 않았을지. 실은. |
| 지난 여름 세종문화회관에 갔었다. 지방에 사는 나로서는 그곳이 처음이었고, 그 모든 것이 낯설었다. 세종문화 회관으로 이어지는 그 도시의 숨막히는 모든 것들. 교보문고,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기다란 건물의 행렬들 그해 내게 그 거리에 대한 기억은 치고 치여도 끝이 없는 사람들의 행렬들, 등에 땀이 고일정도로 후끈한 도시중심부의 공기였다. 그런 거리를 오산이도 거닐었다. 그녀는 세종회관의 분수앞에서 사진기자인 그와 애기를 나누었고, 그리고 그 근처 식당에서 수애와 스파게티를 먹기도 했고, 빵을 사기도 했다. 도시는 삭막했지만, 그녀가 일했던 그 화원. 그 곳만은 식물의 호흡으로 반쯤은 자연상태였다. 하지만, 그곳을 벗어나면 또다시 숨막히는 도시의 한여름이었다. 여리디 여린 식물처럼 그녀는 화원 밖 도시속에 내다논 그 제비꽃과 같았다. 그를 위해 그 작은 꽃은 도시 속의 태양아래 전시 되었다. 그래서 그 제비꽃은 그로 인해 그의 회사 앞 공터에 심어지기도 했고 또한 말라가고 또한 포그레인 속으로 사라져가기도 했다. 그녀가 만약 그녀의 고향 그 미나리 굴락지의 미나리였다면, 그져 꺽을 수록 다시 재생하는 그래서 남애의 그 차가운 멸시를 극복해내고 다시 억새게 자라는 그 미나리였다면... 그랬다면 도시의 숨막힘 속에서 아니면 그에 대한 사랑속에서도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 죽어가던 그 공터의 제비꽃이 아닌 그져.. 무성한 잡초같은 미나리 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제비꽃이였다. 작열하는 도시의 태양과 공기속에선 더이상 뿌리를 내리지도, 꽃을 활짝 피우지 못하는 한송이 제비꽃이었을 뿐이었다. 바이올렛이 제비꽃이라니.... 처음 알았다. 그녀는 내가 생각한 바이올렛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제비꽃과 같은 여자였다. |
| 나에게는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습관이랄지- 사고 방식 같은 것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기호에 관한 문제다. 음식, 이라든가하는 형이하학적인 것에서, 음악이나 문학같은 형이상학적인 것까지, 나의 그러한 습관은 늘 이어진다. 누구나 그렇듯,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좋으냐, 싫으냐 구분을 짓게된다. 편협한 부분을 수도 없이 가지고 있는 나는, 이러한 부분에서도 끝도 없이 편협한지라 한번 싫다고 마음 먹은 것은 두번다시 돌아보지 않아 문제가 된다. 그러나 또한 귀가 얇은 나는, 내가 싫다고 젖혀놓은 것을 누가-특히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좋아한다고 말을 하면 슬그머니 걱정이 된다. 정말 매력적인 부분이 있는데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걱정이 중첩되기 시작하면, 나는 내가 젖혀놓았던 것을 다시 들춰보게 된다. 내가 혹시 놓친것이 있지나 않나 꼼꼼히 살피면서. 나에게 신경숙이라는 작가는 그런 작가였다. 처음으로 읽었던 신경숙의 작품 "외딴방",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대학 동기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풍금이 있던 자리", 어느해였던가 히트를 쳤기에 읽었던 "오래전 집을 떠날 때" 그러한 소설들을 거쳐 다가간 "깊은 슬픔". 깊은 슬픔을 읽고나서 나는 신경숙을 내 마음속에서 젖혀 놓았다. 별로 재미도 없고 취향에 맞지 않아도 꿋꿋히 읽어내는 능력을 가진 나는(실제로, 일종의 네임 벨류랄까, 그런 것을 가지게 되는 작가들은 최소한 "읽을 수 있는"글을 써낸다는 것만은 사실이므로 그것을 별로 능력이라고 칭할만한 것도 못되지만) 그 당시까지 나온 신경숙의 작품 거의 전부를 읽었던 셈이었으니 나의 판단이 섣부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신경숙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것은, 웹상에서 만난 누군가였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읽으면서, 신경숙에 대해 조금쯤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나를 바이올렛 앞으로 끌어들인 것은 내가 몹시도 사랑하는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의 안내문 때문이었다. "신경숙의 소설에선 처음부터 독자를 휘어잡아야 한다거나 도중에서 독자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나 잔꾀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중략)--- 나에게 신경숙 문학의 매력은 식물이 주는 위안과도 같다." 첫 문장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마지막 문장은 바이올렛을 읽고 싶게 만들었다. 나는 식물이 주는 위안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고, 그것이 얼마만한 위안인지도 알고있다. 그러한 식물이 주는 위안과 같은 것을 주는 소설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바이올렛을 읽는 데 걸린 시간은 모두 합해 다섯시간 정도? 침대에 누워 잠들기 직전까지 꼼꼼히 읽었으니 대충 따지면 그쯤되겠다. 신경숙류의 문장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좀 더 스피디하고, 명확한 문체가 좋다. 그러나 맛난 음식을 먹듯 꼼꼼 아껴 읽었다. 재미의 면에서 이야기 하라면 할 말이 없다. 거의 하이퍼 리얼리즘(hyper realism)에 가까운 배경의 설정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원동력처럼 느껴졌을 정도라면. "기차는 7시에 떠나네"에 이어 "바이올렛"에도 등장한 서울시 종로구. 이곳은 내가 사는 곳이다. 평창동, 세검정, 광화문, 종로, 제일은행 본점과 교보문고, 세종문화회관, 삼성병원. 삼청공원, 총리공관. 이런곳들. 나 역시 늘상 이곳들을 헤메며 산다. 나는 이 지역의 고즈넉함과 고색창연함을 사랑하고, 강남과는 다른 이곳의 공기를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곳을, 이 작가 역시 이만큼이나 사랑하는 구나 싶어, 신선했다. 글을 읽으며, 아아. 이 작가는 참 열심히 쓰는 구나. 싶었다. 오래 오래 생각하고 꼼꼼히 조사해서 참 열심히 쓰는구나. 자신의 주변을 참 많이 사랑하는 구나. 싶었다. 여전히, 신경숙이라는 작가를 사랑하지는 않으나- 오산이, 라는 그녀, 잘려버린 혀를 가진 그녀, 늘 관음의 대상이 되는 그녀. 인간이 이렇게까지 외로워할 수가 있을까 싶어, 읽는 내내 통곡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외롭지 않은 인간이 있을까마는, 어찌 이리도 외로워 하나 싶어. 그러므로 결말 역시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외로움에 관하여, 끝도 없이 생각하게 만들던- 소설. |
| 솔직히 '바이올렛'은 내가 만나는 신경숙님의 첫 작품이기도 하지만 내가 최근 1,2년동안 읽었던 책들 중 가장 허무하고 답답했던 책이었다. 도대체 글의 주인공인 '오산'이란 여자를 느낄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듯한, 누가 기척이라도 하면 쉽사리 바스라질 것 같은 그녀를 아무리 그녀를 친구삼자, 이해해보자 다짐을 하며 읽어내려가봐도 도무지 역시 나는 그녀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아니, 그녀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일 것이다. '바이올렛'속의 배경은 너무나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런 현실적인 배경속에서의 '비현실적인' 인물의 오산이.. 내가 도대체 그녀를 어떻게 이해해야만 할까?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그토록 기를 쓰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겼지만 결국 난 '오산이'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말았다. 아무런 공감을 갖게하지 못한 오산이에게... 아마도 나처럼 직선적이고 외향적인 독자들은 책을 읽다가도 몇번씩 가슴을 쳐가며 읽어야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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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펼쳤다,가 덮기,를 반복했다. 올해 2월에 친구들과 부산여행을 갈 때에, 왁자지껄해서 읽지 못할 줄 알았던 - 하지만 깊은 새벽, 금새 곤한 잠에 빠져든 친구들 사이에서 펼쳤었고, 언젠가 그를 만나러가는 기차 안,에서도 펼쳤었다. 하지만 계속 이어나가질 못하고, 그대로 덮어둔 채로 방치해두었더랬다. 그리고 살랑살랑 그러나 비가 온 뒤에 약간은 쌀쌀한 가을 바람이 부는 구월 중순에 펼쳤었다. 그리고 책을 펼친지 일주일 만에, 그것도 출근 전에, 책을 덮었다. 몇 번의 짧은 만남이 더해져 총 세 번의 만남. 그럼에도 그녀에게 정이 가질 않아 이번에는 많이 아프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책을 다 읽은 직후에도 그녀를 품에 안을 수 없었으면서, 출근하는 버스에서 머릿 속에 그녀가 둥둥 떠다니며 기어이 온통 하루를 그녀 생각으로 보내게 했다. 그래서였다. 그날, 그녀의 손을 다시 한 번 마주잡아보겠다고 다짐한 것이. 구월의 끄트머리에서 집어들어 마지막 날인 오늘, 참 많은 숨이 내쉬어졌다. 후우ㅡ.
풀물이 아닌 남애의 푸른 반점이 그녀 눈에 스친다. 아름답구나, 그녀는 생각한다. 내겐 없는 게 네겐 있어. 어린 그녀는 서글퍼지려 한다. 남애 등에만 있는 푸른 반점이 둘만의 결속감을 깨뜨릴 것만 같다. (…) 미나리지가 내려다보이는 푸른 둑 위에 펼쳐놓았던 옷을 챙겨입는 두 여자아이의 마음은 서로 반대였다. 지금 산이라 지칭된 어린 그녀는 너를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할 거야, 였고 이제 그녀의 삶과 작별할 남애는 너하고의 묘지 위에서의 맹세는 이것으로 끝이야, 였다. 마을에서 기득권을 가진 이씨 성을 가진 아이들의 틈에서 서로 산이야, 남애야, 라고 부르며 결속감을 느끼는 오산이,와 서남애,는 미나리 군락지에서 그 결속감을 깨뜨린다. 그리고 마을을 떠나는 그녀, 산이. 아니, 오산이. ‘꽃을 돌볼 여종업원 구함’ :: 그녀는 미용사도 아니고, 오퍼레이터도 아니다. 그녀는 이제 화원 여종업원이다. 어느 날, 어떤 사진작가가 바이올렛을 찍으러와서 “바이올렛이 어떤 것이오? (…) 이게 바이올렛이란 말이오? (…) 아가씨도 이 꽃이 좋소? 아, 글쎄 초등학교 여선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을 조사했는데 이 바이올렛이라지 뭐요? 보기나 했는지? 이름만 듣고 그러는 건 아닌지? 아니 이 꽃을 어떻게 표지로 하지? 꽃 생긴 건 생각도 않고 내 사진탓만 할 거 아냐!” 그녀는, 바이올렛을 보며 인상을 있는대로 쓰고 있는 그를 무심하게 바라볼 뿐이다. 그의 첫 대면이 그랬다. 그 남자가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키는 어느 정도이며 눈의 윤곽은 어떠한지 무슨 신발을 신었으며 뒷덜미는 어떠한지…… 그녀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 남자가 철제 책상 위에 걸리적거리는 잡지를 던졌듯이 그녀 또한 그 남자가 화원을 나간 후 그 남자의 명함을 다른 명함들 속에 던져놓았을 뿐이다.
“나, 할말이 있어. 이런 말 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하면 지난번 그놈의 바이올렛 때문에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알아? 당신 내 카메라 바라보느라 눈 내리깔고 있을 때, 이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눈썹도 있구나, 내내 생각했지. 내 마음 몰랐지요?” 그 한 마디에,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봐준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그대로 무너져버린다. 그렇게 그가, 아차 - 하는 순간, 마음 속에 들어 가부좌를 틀어 앉아 버린 것이다.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시작되버린 것. 물이 범람하듯 하룻밤 사이에 그녀의 의식 속으로 진입해버린 그 남자. 그 남자로 인해 허둥거리고 있는 그녀. 그녀를 어쩌면 좋을까. 너무나도 가엾은 그 여자를. 도시의 미술관 공터 포크레인 아가리에 들어앉아 있는 그녀,의 손을 나는 잡았다,가 기어이 그녀의 손에 만년필을 쥐어준다. 지난 여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로 끝난 문장에 가을로 - 혹은 가을이 - 혹은 가을에서 -로 시작될지도 모를, 혹은 어쩌면 완전히 다른 문장의 첫 시작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그것은 희망찬 문장이기를, 꼭 그럴 수 있기를, 꼭 그래야만 하는 것임을 바라면서 말이다.
신경숙은 아니, 신경숙의 글은 항상 그렇듯 마음을 너무 요란스럽게 만들어버린다. 온통 하루를 그 생각으로 서성거리게 만드는 것. 오산이 - 나, 그 여자에게 정이 없다, 그렇게 단언하며 책을 덮었는데, 이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녀에게 정을 주고 있었나보다. 그것은 아마 그녀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오산이, 당신 존재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웠다고. 당신 존재의 아름다움은 어디서든 빛을 발했을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고. 그 남자가 노란 수선화를 찍는 동안 사진 속의 그 여자는 철제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이제 그 여자는 그토록 열망했던 그 남자오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 놓여 있다. 깨우지 마라 모두 잠들었네. 글라디올러스와 흰 백합. 내 슬픔을 꽃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내 눈물을 보면 죽어버릴 테니까. 그리고 나, 어쩌면 얼마 동안은 더 서성일 것 같다. 포크레인을 보고, 그 아가리에 그녀가 들어앉아 있진 않을까- 하여 고개를 있는 힘껏 곧추세우는, 그런 것,처럼.
간혹 내가 나쁜 인간이다, 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속이 뒤틀려 있을 때다.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산만해지는 건 둘째 치고 나중에는 서성거리는 것조차 가능하지가 않아 가슴팍을 방바닥에 대고 엎드려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속상함이 다스려지지 않으니 몸이 자근자근 아픈 것이다. 나쁜 인간이란 마음에 그리움이 생길 수 없게 하는 인간이다. 머리는 터질 듯하고 어깻죽지가 저려오며 다리에 힘이 쭉 빠져버린다. 하루를 엎드려 있기도 하고 때로는 일 주일을 엎드려 있기도 한다. 가슴속에서 펑 소리가 날 때까지. 더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너무 멀리 나온 길을 이제 혼자 돌아가야 한다는 고독이 움틀 때까지. 내가 이런 인간이었구나, 내 속을 상하게 한 대상을 나 역시 가슴속에서 펑 소리가 날 때까지 상하게 하는 그런 인간이었구나, 를 깨닫는 건 덧없고 서글프다.
뭔가를 털어버리듯 천변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수애의 이름을 부르며 뛰기 시작하는 그녀. 기억이란 느닷없는 방문객 같은 것이다. 몸 속에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다가 어느 순간 돌연 현실을 노크해와 고함을 지르게 하는 것이다.
그날, 그녀는 끈질기게 자신이 그날 소매가 없는 자주색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소매가 없는 자주색 실크 블라우스 아래 좁쌀만한 소름이 돋은 채로 얌전하게 놓여 있던 그녀의 팔은 추운가보군, 무심한 그의 한마디로, 무슴한 그의 쓰다듬음으로, 그랬다, 내내 욕망을 품어왔던 것이다. 추억이 되지 못한 욕망은 여름 내내 너무 파릇파릇하거나 격렬하게 불타올라 그녀를 방심 상태로 이끌어가곤 했다. 소통되지 않는 욕망으로 인해 슬픔에 사로잡힌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신지? 하고 물었던 그 남자로 하여 지금 그녀는 야릇해져 있다.
오산이. 이 여자에게 이 이름을 지어준 지가 꼭 일 년이 되었다. 오산이는 내 단편 「배드민턴 치는 여자」 의 분신이다. 이 여자를 바로 세상에다시 내보내려 했는데 다른 작품에 밀려 이제야 이루었다. 빚어지지 못한 채로 내 마음속에서 십여 년을 함께 산 셈이다. 오해 많은 세상에 이 여자를 내보내려 하니 미안해 죽겠다. 제대로 맛있는 것도 먹이지 못했고, 좋은 옷도 입히지 못했으며, 종내는 꿈과 욕망조차 바스러지게 했으니 이 여자의 어머니 되는 듯 마음이 쓰리다. 이 여자를 통과해가는 시선 속에서 이 여자가 새로 부활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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