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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종말에 반하여: 필리프 프티와의 대담
"노동의 종말에 반하여: 필리프 프티와의 대담" 내용보기
"노동의 종말": http://blog.yes24.com/document/10751964"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죽음": http://blog.yes24.com/document/10432719"사무 인간의 모험": http://blog.yes24.com/document/10670017"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시장 상품 인간을 거부하고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http://blog.yes24.com/document/10559697  대학원 강의 시간에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강독 후
"노동의 종말에 반하여: 필리프 프티와의 대담" 내용보기

 

"노동의 종말": http://blog.yes24.com/document/10751964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죽음": http://blog.yes24.com/document/10432719

"사무 인간의 모험": http://blog.yes24.com/document/10670017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시장 상품 인간을 거부하고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http://blog.yes24.com/document/10559697 

 

대학원 강의 시간에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강독 후속 작업으로 현대 사회에서 노동이 갖는 의미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읽고 있다. 발제 담당이라 밑줄 치며 읽었다. 인터뷰집이라 정리하기 편안할 만큼 체계가 있는 책은 아니다. 제러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및 프랑스에서 논의하고 있는 노동에 관한 여러 담론을 염두에 두고 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 핵심적인 주장 몇 가지를 하고 있다. 문고본 소책자라 분량이 적은 가운데 그 핵심 메시지들을 두고 논의를 반복하고 있다고 읽었다. 인간 삶에서 노동은 없어질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 책을 읽고 설득 당하기보다는, 원래 지지했던 이반 일리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와 같은 입장을 계속 가져가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교수님께서 내게 이 책을 발제하도록 맡기신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며 읽었다. 올해 무급 휴직 들어오면서 임금 노동 없는 삶에 대해 실험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던 차다. 청년 실업으로 고통 받는 분들께는 무슨 낭만적이고 한가한 짓이냐 싶을 수 있기도 한데, 앞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질 수 있는 노동 조건 하에서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진로 교육 해야하고 노동자로서 사회에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고민해보고 싶었다. 공무원 지위를 유지하고 (적금 까먹으며 부모님께 얹혀 사는) 일시적 대학원생 신분이기 때문에 너무나 불완전한 실험이긴 하지만, 한편 어렵게 공무원이 된 내 또래 청년이라면 다른 직종에 비해 인생에서 이직이나 퇴사를 고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나에게는 의미 있는 실험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교사가 받고 있는 처우가 최소한 '디폴트값'이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다른 직종 노동자에게 자주 미안함을 가지고 있고, 교사가 이런 안정된 처우 하에서 진로 교육을 보수적으로 하기가 너무나 쉽고 청소년을 자기계발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기를 확률이 높다고 우려한다. 다양한 경험 없이 교사만 하고 사는 이 조건 하에서 실질적인 진로 교육에 어려운 측면이 많다는 한계를 느낀다. 예측 가능한 미래 변화상을 이야기하며 '이제 안정적인 직업은 줄어들 테니 차라리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 좋겠다'고 말하면, '에이, 선생님은 이미 안정적인 교사가 되었으면서.'라는 메시지를 학생들 눈빛에서 읽어오곤 했다. 

 

"Q) ‘총체적 실업’은 노동자들에게만 영향을 끼치지 않나?

A) ‘총체적 실업’은 일정 기간 뒤에는 모든 실업자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 내가 1979년부터 1980년까지 행한 조사를 보면,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지연된’ 실업을 겪을 수 있는 관리직 외 1968년 이후의 반문화에 참여하고 있는 학위를 가진 젊은 실업자들은 인정받는 실업의 경험을 즐겁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업 덕에 그들은 당장의 재정적 근심 없이 대학생 시절의 여가를 되찾거나, 그들의 예술적 또는 지적 ‘취미’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들은 당시의 ‘40시간’의 노동을 개인의 인간성을 박탈하는 것으로 비난하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쓰거나, 또는 그저 자연 속에서 거닐거나 역사적 기념물을 방문할 수 있어서 매우 행복하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나는 이를 ‘전도된’ 실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좀 더 최근에 이루어진 조사들에서는 이런 유형의 경험을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총체적 실업’은 점점 더 만연되고 있다. 오늘날 젊은 실업자들은 유급 직장과 결부된 의무를 더 이상 비난하지 않으며, 그러한 직장을 찾고 있다. 그들은 소비 사회와 그 사회의 의무-1968년의 반체제주의자들에게 주된 비난의 대상이 되던-에 대해 더 이상 적대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56-57쪽.

 

왜 지금은 낭만적이었던 68세대처럼 과한 노동 강도의 시간 등을 비난하지 않게 되었나? 소비를 부추기기 위한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시스템 하에서 고용 유연화로 인해 직업이 있는 사람은 과로에 몰리고 실업자는 일을 할 수 없어 고통스러워한다. 한 사람이 수행하기 적절한 일의 양, 주당 몇 시간 노동이 적절하다는 판단 등이 자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릴 위기 속에서는 항상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양보다 많은 노동량이 주어지는 듯하다. 실업이 선택이 아니라 내몰렸을 때 노동자는 생존 위기를 겪는다. 특히 요즘 청년들에게서 나타나는 안정 지향, n포, 순응한 노동자 모습에 더해, 주거(전세금, 학자금 대출) 등 불안정한 물질적 토대 자체에서 불평등이 드러나는데 이러한 조건이 그들을 정치에 참여하기 어렵게 만든다. 한편, 미니멀하게 필요한 물건만 소비하는 생활과 같은 대안적인 삶에 대한 논의가 유행이다.

 

 

어차피 인터뷰집이라 핵심을 요약 정리하기는 어려워서 의미 있는 부분들을 옮겨두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이슈는 다음과 같다. 

1. 제러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과 이 책의 관계는 어떠한가? 차이점, 저자의 핵심 주장은?

제러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에서 노동의 종말을 불러오는 기술과 정보 혁명, 생산력 향상+신자유주의적 노동 조건 변화(유연화, 불안감 조성 등)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이 책 저자 생각에 '노동의 해방' 이슈는 그 의미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3, 4차 산업혁명으로 오지 않아도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다. 역사적으로 기술 발전으로 인한 실업자 문제에 대한 반응은 이미 '러다이트 운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 저자는 인간은 사회 변화에 따른 조건에 적응하기 마련이고 새로운 일자리가 등장하리라고 믿는다. 4차산업혁명과 AI 등장 이후를 생각해보아도 미래학자들은 아직 인간이 더 잘 할 수 있는 노동 분야인 돌봄, 예술 분야가 비교적 유망하다고 예측한다.

 

"Q) 당신은 배척되는 현상의 뿌리들이 서로 뒤엉켜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기술과 정보 혁명에 대한 제레미 리프킨의 생각과 같은 것인가?

A) 어떤 큰 부분에선 그렇다. 기술의 변화는 두 가지 의미에서 사회적 유동성의 커다란 원천들 중 하나다. 사회는 기술의 변화가 직업의 구조를 바꿀 때 재조직된다. 몇 년간의 경제적 발전은 상승하는 사회적 유동성을 촉진했고, 숙련공들의 일자리에 많은 이들을 ‘끌어들였다’. 학위·졸업장 없이 취직한 피고용인들은 사내 승진에 의해 인사 과장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에는 훨씬 더 어려워졌고, 특히 프랑스에서는 다시 출신 학교의 졸업증서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물론 직장의 구조 말고도 다른 많은 요소들이 사회의 변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문의 유산은 학위의 취득, 우리가 맺는 관계들, 우리가 어린 시절에 배운 수완과 예절에 관해서는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일자리의 구조는 여전히 중요한 요소다. 43-44쪽."

 

"Q) 오늘날 우리는 자동화는 상당히 발전했고 일자리는 감소하고 실업은 증가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생산 활동에 참가하는 엘리트들과 ‘아웃’된 사회의 한 부분의 사람들 간의 분리가 뚜렷해지는 현상이 명백히 나타난다. 당신은 이 제3의 기술 혁명에 대해 어떤 정치적 답변을 갖고 있는가?

A) 그것이 진짜 문제다. ‘노동은 사라질 것이다’ 또는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틀렸고, 실현 불가능하다. 반대로 참된 것은 우리가 새로운 기술 혁명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기계 혁명과 전기 혁명 이후 우리는 정보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더 적은 자산으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전의 기술 혁명들이 일어났을 당시 우리는 그때마다 인구의 일부를 노동으로부터 ‘해방’ 시켰다. 다시 말해 실업자로 만들었다. 우리는 이미 ‘노동의 종말’을 슬퍼하고 있었다! 공장의 일꾼들은 그들을 대체한 기계를 부쉈다. 하지만 한 세대 뒤에 사람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다시 만들어 냈다. 새로운 균형은 전보다 적은 시간 동안 일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일자리들은 새로운 기계들 덕에 육체적으로 덜 힘들게 됐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몇 년 동안 제3차 산업의 일자리들의 수를 증가시킬 수 있었고, 농업과 공업에서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줄어듦에 따라 사람들은 생산을 관리하고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중략) 문제는 정보 과학 혁명의 본질이 다른 혁명과 다른지를 아는 것이다. 이전의 기술 혁명들의 골격이 비슷하게나마 다시 나타날까? 그럴 경우 우리는 ‘조정’ 기간에 들어갈 것이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그들의 땅에서 쫓겨난 농부들처럼 공장, 심지어 사무실에서도 쫓겨난 세대의 고통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 세대 후에 우리는 새로운 균형을 회복할 것이다. 우리는 전보다 덜 고된 과업을 전보다 적게 하기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기계들이 인간의 일을 지금보다 더 잘 도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계가 우체국 직원들에게는 까다로운 경우들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일만 남기고, 우편물을 손으로 분류하는 일은 그것들이 한다고 해서 그 일을 그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 조정은 복구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정보처리 기계는 인간의 육체적 수고뿐 아니라 그들의 지능까지 대체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발전의 대체적인 방향은 과거의 발전을 연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시 한 번 더 적은 노동자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번 ‘해방’은 우리 세대의 실업으로 표현되고 있다. 직장으로부터 ‘해방된’-다시 말해 실업자가 된-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볼 때 희생된 세대를 구성한다. 새로운 균형을 회복하기 전에 가장 심각한 결과들을 제거하는 것이 정치의 몫이다. 더군다나 그 새로운 균형은 일시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73-74쪽.

 

 

 

2. 맑시즘 적인 혁명이 현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불가능한 이유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노동자(특히 비정규직)는 개인으로 파편화되어 있다. 개인 생존에 집중하느라 유대, 연대할 여력이 없는 듯하다. 연대하고 행동해서 조건이 나아지리라고 별로 믿지 않는다. 단적으로 '기득권 기성세대- 청년 실업 세대' 구도에서의 갈등으로 드러나지만 청년 세대는 어른 세대에 비해 더이상 '짱돌을 들'려고 하지 않는다.

 

 

 

3. 직업과 관련하여 확보 가능한 인간 존엄성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저자 주장처럼 모든 실업이 인간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자발적으로 실업을 선택(반문화 맥락)했는가, 실업자로 내몰렸는가 여부가 이 문제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다. 반문화 운동을 주도한 낭만주의자들이나 지금 여기에서 대안적인 삶 가치관과 방식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주장처럼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물건이 대체 얼마나 되는지 물을 만하다. 환경 문제, 자원 고갈 등을 고려한다면 자본주의가 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까지 제작, 구입, 낭비하게 만드는 소비 구조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이 맥락에서 저자는 낭만주의적인 운동을 비판하면서 경제 성장 없이는 실업 문제 해결이나 복지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유럽과 비유럽 노동자가 이미 경쟁하고 있고, 더 좋은 복지 조건에서 일을 덜하는 유럽은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고 원하는 만큼 복지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안타깝게도 세계적으로 비경쟁적인 노동을 하기로 타협을 이루기란 몹시 어려울 듯하다. 아무튼 노동 구조와 고용 형태가 달라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임금 노동, '사축' 같은 형태는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노동 활동에 대해 대비해야 할 테다. 교사로서는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진로 교육을 해야 적절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Q) 고용 구조 내의 이러한 변화, 당신은 그것을 기술 혁명의 단순한 산물이라고 보는가?

A) 사회 복지 분야에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경쟁적 분야의 효율성이다. 노동의 종말이 문제시되거나 노동이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면 안 될 것이며, 그것이 사회 복지 분야의 존재의 조건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노동의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 형태와 고용 구조의 변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대인 서비스 분야는 점점 더 많은 인원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개인들은 그곳에서 일하는 것이 그들의 존엄성과 어울리는 일이라는 것을 발견해야 하며, 사회 복지의 가치는 그로써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은 상업적 생산에 의해 그 재정이 뒷받침될 때에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83쪽.

 

" Q) 무역의 세계화는 대인 서비스의 발전에 제동을 걸지 않을까?

A) 우리는 세계적 규모 면에서 경쟁적 경제의 법칙을 문화와 사회 복지 분야의 고용에 대한 반론으로 내세울 수 없다. 왜냐하면 전자는 후자의 존재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그의 예산 정책, 국고 개선, 사회적 보호 장치의 재정비에 의해 경쟁 분야의 경제 발전을 촉진하여야 한다. 그때서야 우리는 사회경제학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경제의 경쟁 분야들의 발달이 대인 서비스 발전의 조건인 것이다.

지구상에는 자유주의 사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시장은 상이한 노동 조직 개념과 형태를 가진 여러 사회들에 속하는 생산자들을 경쟁시킨다. 비유럽인들은 유럽인들보다 많이 일하며, 우리는 그들과 같은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적게 일하면서 더 부자가 되게 해주는 연금술의 돌을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 당장 유럽인들은 우리가 더 많이 일하는 세계의 다른 지역들의 몇몇 생산자들보다 앞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도 우리만큼 똑똑하기 때문이다." 84쪽.

 

 

4. 제러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후반부 내용처럼 제3부문 발전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그들의 활동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임금 노동, 평생 직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따지고 보면 역사가 오래 되기는 했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제3부문이 본격적으로 활성화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만 해도 마을공동체 운동과 더불어 지자체 단위 주민 자치,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이 유행하는 추세다. 애초에 제3부문에서의 활동은 무대가성과 자발성에서 의미가 나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한 활동을 노동으로 볼 수 있을까? 거기에 대가가 주어진다면 더이상 제3부문이라고 불러도 될까? 제3부문을 노동의 종말 대안으로 삼을 수 있을까? '노동의 종말' 위기라는 현실에서 국가나 정부가 해야할 일은 무엇이며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까. 

+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제3부문을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아주 급진적으로 '기본소득'에 관해 논의해볼 만하다. 그 논의에서 재원은 저자처럼 '생산성 향상'으로 마련하는 게 아니라 부정의한 분배에 의한 빈부격차를 보정하고 공공재에 대해 배당한다는 의미에서 부자세 증세, 환경세, 로봇세 등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마련하고자 한다. 더불어 복지 구조 개편을 통해 낭비되고 있는 부분들을 효율화해서 재원에 보탠다. 현행 복지를 차등 부여하느라 선별하는 과정에서 이미 많은 낭비가 일어나고 있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돌아보고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맥락에서, 앞으로도 저자 생각처럼 기존 누가 더 성실하게 노동하는지 경쟁하는 사회 체제 속에서 ‘물건 생산을 통한 경제 활성화’ 방식에 갇혀 있어야 할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 기본소득을 받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생계가 해결되며, 물건을 낭비하지 않고도 꼭 필요한 만큼만 소비가 가능하다. 소비가 이루어지므로 생산도 계속 이루어질 수 있고, 생산을 통한 이윤을 세금으로 납부하여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Q) 내가 리프킨에게 사회 보장 자본의 출자에 관해 물었을 때, 그는 팩스·컴퓨터·전화 같은 기술적 재산에 대한 세금을 제안했다.

A) 안될 것도 없다. 그것은 경쟁 분야의 이익을 사회 보장 분야로 전환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것은 내가 지적하고자 했던 것을 말하기 위한 좀 더 분명하고 경제학적인 방법이다. 판매를 위한 생산 분야는 세계 지도 위에서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사회 보장 조직의 하나의 방향이 마련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집단생활의 다른 분야들의 발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 81쪽.

 

 

나는 올해 '쉼'을 실험하는 이 시간이 청소년, 성인기를 통틀어 가장 행복했다. 갑자기 전적인 자유가 찾아왔을 때 실존적인 불안감을 겪기도 했지만, 인간은 퍼져 있지 않고 어떻게든 의미 있는 활동으로 삶을 채워나갈 수 있는 존재임을 체험했다. 잘 먹고 잘 자고, 몸이 피로하지 않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덜 받고(=> 버느라 스트레스 받아 소비로 스트레스를 푸는 악순환에서 벗어남), 독서와 예술과 운동을 향유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앞으로 더욱 도래할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시기를 어떤 활동으로 채워갈까. 나는 도덕 교사로서 다음 세대가 노동이 없는 시간에 삶의 의미를 잃고 공허하지 않으려면 자기 삶을 무엇으로 채워가야할지 준비하고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생산성 향상이나 AI 발전으로 인해 노동 필요성이 줄어가고 있는데도, 단지 자신의 노동력으로 경제적 쓸모를 증명해 인간 존엄성을 획득하라는 환상 때문에 착취 당하는 많은 노동자가 사회에 어떤 노동 조건을 요구해야 할지 함께 고민하고 연대했으면 좋겠다. 지금 청년들이 여러 여러움 때문에 하기 어려워하고 있다면 다음 세대는 그럴 수 있는 인간들로 자라도록 돕고 싶다.

 

 

"Q) 우리가 30여 년 전부터 ‘자동화의 도래가 그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본질적인 짐, 노동의 짐, 필요에 대한 예속화로부터 인류를 해방할 것이라고 믿어 온’ 현상-이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을 당신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한나 아렌트는 이 짐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우리가 다른 활동들을 발전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동화의 도래는 하나의 신화가 아닌가?

A) 자동화는 인간을 가장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했지만, 모든 노동으로부터 ‘해방한’ 것은 아니다. 세탁기는 여성들로 하여금 강가에서 빨래하는 데 몇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게 해주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시골에 사는 여성들의 사정은 그러했던 것이다. 자동화가 그 자체로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비어 있는 시간’, 나는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정말 모르겠다. 우리는 다른 일자리와 다른 활동들을 창조해 왔다. 다시 말해 자동화는 인간의 모든 문제에 해답을 주지는 않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삶의 이유를 스스로에게 부여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이 쓸모가 있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인간이 자신의 매일의 생존을 보장해 줄 필요에 복종할 때, 그는 아마도 자신의 운명에 대한 의문을 덜 품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로부터 자유로울 때 그들은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을 스스로에게 제기할 것이다. 결국 인간의 진정한 위대함이 거기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시간을 이용해 새로운 철학의 유행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을 읽을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비지식인들을 믿어야 한다. 그들은 갖가지의 삶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86쪽.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18.11.17. 신고 공감 5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