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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종말": http://blog.yes24.com/document/10751964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죽음": http://blog.yes24.com/document/10432719 "사무 인간의 모험": http://blog.yes24.com/document/10670017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시장 상품 인간을 거부하고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http://blog.yes24.com/document/10559697
대학원 강의 시간에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강독 후속 작업으로 현대 사회에서 노동이 갖는 의미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읽고 있다. 발제 담당이라 밑줄 치며 읽었다. 인터뷰집이라 정리하기 편안할 만큼 체계가 있는 책은 아니다. 제러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및 프랑스에서 논의하고 있는 노동에 관한 여러 담론을 염두에 두고 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 핵심적인 주장 몇 가지를 하고 있다. 문고본 소책자라 분량이 적은 가운데 그 핵심 메시지들을 두고 논의를 반복하고 있다고 읽었다. 인간 삶에서 노동은 없어질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 책을 읽고 설득 당하기보다는, 원래 지지했던 이반 일리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와 같은 입장을 계속 가져가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교수님께서 내게 이 책을 발제하도록 맡기신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며 읽었다. 올해 무급 휴직 들어오면서 임금 노동 없는 삶에 대해 실험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던 차다. 청년 실업으로 고통 받는 분들께는 무슨 낭만적이고 한가한 짓이냐 싶을 수 있기도 한데, 앞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질 수 있는 노동 조건 하에서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진로 교육 해야하고 노동자로서 사회에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고민해보고 싶었다. 공무원 지위를 유지하고 (적금 까먹으며 부모님께 얹혀 사는) 일시적 대학원생 신분이기 때문에 너무나 불완전한 실험이긴 하지만, 한편 어렵게 공무원이 된 내 또래 청년이라면 다른 직종에 비해 인생에서 이직이나 퇴사를 고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나에게는 의미 있는 실험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교사가 받고 있는 처우가 최소한 '디폴트값'이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다른 직종 노동자에게 자주 미안함을 가지고 있고, 교사가 이런 안정된 처우 하에서 진로 교육을 보수적으로 하기가 너무나 쉽고 청소년을 자기계발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기를 확률이 높다고 우려한다. 다양한 경험 없이 교사만 하고 사는 이 조건 하에서 실질적인 진로 교육에 어려운 측면이 많다는 한계를 느낀다. 예측 가능한 미래 변화상을 이야기하며 '이제 안정적인 직업은 줄어들 테니 차라리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 좋겠다'고 말하면, '에이, 선생님은 이미 안정적인 교사가 되었으면서.'라는 메시지를 학생들 눈빛에서 읽어오곤 했다.
왜 지금은 낭만적이었던 68세대처럼 과한 노동 강도의 시간 등을 비난하지 않게 되었나? 소비를 부추기기 위한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시스템 하에서 고용 유연화로 인해 직업이 있는 사람은 과로에 몰리고 실업자는 일을 할 수 없어 고통스러워한다. 한 사람이 수행하기 적절한 일의 양, 주당 몇 시간 노동이 적절하다는 판단 등이 자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릴 위기 속에서는 항상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양보다 많은 노동량이 주어지는 듯하다. 실업이 선택이 아니라 내몰렸을 때 노동자는 생존 위기를 겪는다. 특히 요즘 청년들에게서 나타나는 안정 지향, n포, 순응한 노동자 모습에 더해, 주거(전세금, 학자금 대출) 등 불안정한 물질적 토대 자체에서 불평등이 드러나는데 이러한 조건이 그들을 정치에 참여하기 어렵게 만든다. 한편, 미니멀하게 필요한 물건만 소비하는 생활과 같은 대안적인 삶에 대한 논의가 유행이다.
어차피 인터뷰집이라 핵심을 요약 정리하기는 어려워서 의미 있는 부분들을 옮겨두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이슈는 다음과 같다. 1. 제러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과 이 책의 관계는 어떠한가? 차이점, 저자의 핵심 주장은? 제러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에서 노동의 종말을 불러오는 기술과 정보 혁명, 생산력 향상+신자유주의적 노동 조건 변화(유연화, 불안감 조성 등)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이 책 저자 생각에 '노동의 해방' 이슈는 그 의미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3, 4차 산업혁명으로 오지 않아도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다. 역사적으로 기술 발전으로 인한 실업자 문제에 대한 반응은 이미 '러다이트 운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 저자는 인간은 사회 변화에 따른 조건에 적응하기 마련이고 새로운 일자리가 등장하리라고 믿는다. 4차산업혁명과 AI 등장 이후를 생각해보아도 미래학자들은 아직 인간이 더 잘 할 수 있는 노동 분야인 돌봄, 예술 분야가 비교적 유망하다고 예측한다.
2. 맑시즘 적인 혁명이 현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불가능한 이유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노동자(특히 비정규직)는 개인으로 파편화되어 있다. 개인 생존에 집중하느라 유대, 연대할 여력이 없는 듯하다. 연대하고 행동해서 조건이 나아지리라고 별로 믿지 않는다. 단적으로 '기득권 기성세대- 청년 실업 세대' 구도에서의 갈등으로 드러나지만 청년 세대는 어른 세대에 비해 더이상 '짱돌을 들'려고 하지 않는다.
3. 직업과 관련하여 확보 가능한 인간 존엄성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저자 주장처럼 모든 실업이 인간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자발적으로 실업을 선택(반문화 맥락)했는가, 실업자로 내몰렸는가 여부가 이 문제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다. 반문화 운동을 주도한 낭만주의자들이나 지금 여기에서 대안적인 삶 가치관과 방식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주장처럼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물건이 대체 얼마나 되는지 물을 만하다. 환경 문제, 자원 고갈 등을 고려한다면 자본주의가 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까지 제작, 구입, 낭비하게 만드는 소비 구조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이 맥락에서 저자는 낭만주의적인 운동을 비판하면서 경제 성장 없이는 실업 문제 해결이나 복지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유럽과 비유럽 노동자가 이미 경쟁하고 있고, 더 좋은 복지 조건에서 일을 덜하는 유럽은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고 원하는 만큼 복지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안타깝게도 세계적으로 비경쟁적인 노동을 하기로 타협을 이루기란 몹시 어려울 듯하다. 아무튼 노동 구조와 고용 형태가 달라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임금 노동, '사축' 같은 형태는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노동 활동에 대해 대비해야 할 테다. 교사로서는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진로 교육을 해야 적절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4. 제러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후반부 내용처럼 제3부문 발전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그들의 활동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임금 노동, 평생 직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따지고 보면 역사가 오래 되기는 했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제3부문이 본격적으로 활성화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만 해도 마을공동체 운동과 더불어 지자체 단위 주민 자치,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이 유행하는 추세다. 애초에 제3부문에서의 활동은 무대가성과 자발성에서 의미가 나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한 활동을 노동으로 볼 수 있을까? 거기에 대가가 주어진다면 더이상 제3부문이라고 불러도 될까? 제3부문을 노동의 종말 대안으로 삼을 수 있을까? '노동의 종말' 위기라는 현실에서 국가나 정부가 해야할 일은 무엇이며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까. +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제3부문을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아주 급진적으로 '기본소득'에 관해 논의해볼 만하다. 그 논의에서 재원은 저자처럼 '생산성 향상'으로 마련하는 게 아니라 부정의한 분배에 의한 빈부격차를 보정하고 공공재에 대해 배당한다는 의미에서 부자세 증세, 환경세, 로봇세 등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마련하고자 한다. 더불어 복지 구조 개편을 통해 낭비되고 있는 부분들을 효율화해서 재원에 보탠다. 현행 복지를 차등 부여하느라 선별하는 과정에서 이미 많은 낭비가 일어나고 있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돌아보고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맥락에서, 앞으로도 저자 생각처럼 기존 누가 더 성실하게 노동하는지 경쟁하는 사회 체제 속에서 ‘물건 생산을 통한 경제 활성화’ 방식에 갇혀 있어야 할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 기본소득을 받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생계가 해결되며, 물건을 낭비하지 않고도 꼭 필요한 만큼만 소비가 가능하다. 소비가 이루어지므로 생산도 계속 이루어질 수 있고, 생산을 통한 이윤을 세금으로 납부하여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나는 올해 '쉼'을 실험하는 이 시간이 청소년, 성인기를 통틀어 가장 행복했다. 갑자기 전적인 자유가 찾아왔을 때 실존적인 불안감을 겪기도 했지만, 인간은 퍼져 있지 않고 어떻게든 의미 있는 활동으로 삶을 채워나갈 수 있는 존재임을 체험했다. 잘 먹고 잘 자고, 몸이 피로하지 않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덜 받고(=> 버느라 스트레스 받아 소비로 스트레스를 푸는 악순환에서 벗어남), 독서와 예술과 운동을 향유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앞으로 더욱 도래할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시기를 어떤 활동으로 채워갈까. 나는 도덕 교사로서 다음 세대가 노동이 없는 시간에 삶의 의미를 잃고 공허하지 않으려면 자기 삶을 무엇으로 채워가야할지 준비하고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생산성 향상이나 AI 발전으로 인해 노동 필요성이 줄어가고 있는데도, 단지 자신의 노동력으로 경제적 쓸모를 증명해 인간 존엄성을 획득하라는 환상 때문에 착취 당하는 많은 노동자가 사회에 어떤 노동 조건을 요구해야 할지 함께 고민하고 연대했으면 좋겠다. 지금 청년들이 여러 여러움 때문에 하기 어려워하고 있다면 다음 세대는 그럴 수 있는 인간들로 자라도록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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