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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역사의 미학적 현재화 작업.
"비극적 역사의 미학적 현재화 작업." 내용보기
저자는 '쇼아(Shoah)'의 미학화를 거부하는 담론이 지배적이었던 유럽의 분위기에서 당시의 이념적 논쟁을 종합하는 과정을 통해서 유대인과 수용소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를 원했다. 이 책은 그 성과의 산물이며, 동시에 그 대량학살에서 죽은 자들의 증언을 현재화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쇼아'는 '이 지구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재앙 중 가장 큰 재앙'(26쪽에서 설명)을 뜻하는 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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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쇼아(Shoah)'의 미학화를 거부하는 담론이 지배적이었던 유럽의 분위기에서 당시의 이념적 논쟁을 종합하는 과정을 통해서 유대인과 수용소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를 원했다. 이 책은 그 성과의 산물이며, 동시에 그 대량학살에서 죽은 자들의 증언을 현재화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쇼아'는 '이 지구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재앙 중 가장 큰 재앙'(26쪽에서 설명)을 뜻하는 히브리어인데, 제노사이드(genocide, 대량학살)와 같은 용어와 함께 이 책의 중심 개념이다. 이 개념을 중심으로 저자는 궁극적으로 글쓰기를 통해서 역사, 즉 수용소의 비극적 역사를 넘어서려 하며, 그 방법으로 미학적 승화를 제시한다. 그것이 역사를 현재화하고 쇼아를 기억하여, 다시는 그런 일을 재현하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방지책이라고 보는 것 같다. 대량학살에 대해서는 서구에서도 논의가 있었다. 특히, 그것을 통해서 20세기를 포스트 모던으로 나아가야 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하는지, 아니면 여전히 '미완의 기획'인 근대성이 옹호될 수 있는지의 문제였다. 기억하기로 바우만이 그 중심에 있었던 것 같다. 여하튼 이런 논의와 작업은 국내의 노근리 사건 등에서도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일일 것이다.
e****l 2003.02.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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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아를 통해 얻은 몇가지 상념들...
"쇼아를 통해 얻은 몇가지 상념들..." 내용보기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현상에 대해 알게 되었느데, 쇼아나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미쪽의 태도와 독일과 프랑스 같은 대륙계의 태도가 좀 상이하다는 점이었다. 영국과 미국 쪽에서 쇼아는 별 장애없이 끊임없이 다양한 예술장르에 의해 미학화되었던 반면, 독일과 프랑스는 미학화에 대해 머뭇거림과 신중함이 배어나온다는 사실이다. '쇼아'란 인류 역사상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필
"쇼아를 통해 얻은 몇가지 상념들..." 내용보기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현상에 대해 알게 되었느데, 쇼아나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미쪽의 태도와 독일과 프랑스 같은 대륙계의 태도가 좀 상이하다는 점이었다. 영국과 미국 쪽에서 쇼아는 별 장애없이 끊임없이 다양한 예술장르에 의해 미학화되었던 반면, 독일과 프랑스는 미학화에 대해 머뭇거림과 신중함이 배어나온다는 사실이다. '쇼아'란 인류 역사상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필연적 본성의 발현일까 아니면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극악한 악의 현시일까? 영미계가 역사적으로 쇼아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왔기 때문에 쇼아를 추상화된 악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었던 반면 대륙계의 신중함에는 그런 전자의 태도가 배여있는 듯 하다. 우리는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발표했을 때 그녀의 '악의 평범성' 개념이 영미계 인사들의 호된 질책을 받았음을 기억한다. 영미의 승전가들에게 쇼아와 홀로코스트는 바다 건너 그들, 혹은 타자의 일이지 자신들 속에 내재된, 그래서 누구에게나 들러붙어 나오기를 기다리는 평범한 어떤 것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쇼아의 실행 주체였던 독일인과 독일에 일지감치 항복해서 그것을 거들었던 프랑스인들에게 쇼아는 자신의 끔찍한 상처를 까발리는 일이었으니.... 쇼아 문제는 또 하나의 문제를 야기했다. 그것은 소통의 문제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것만을 믿는 경향이 있다. 쇼아의 생존자의 증언은 마치 지옥에서 생환한 사람들이 지옥경험을 늘어놓는 듯이 들린다. 생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을때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시큰둥하고 빗나간 듯한 반응은 증언자가 입을 스스로 다물게 한다. 란츠만의 [쇼아]에 등장하는 증언자들의 얼굴표정이 바로 그랬었다. 그들은 그 지옥같던 시절을 왁자하게 지껄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웃는 듯 우는 듯한 굳은 얼굴로 어정쩡하게 서있다. 아마 이 모순적인 상황으로부터 역시 쇼아를 경험했던 철학자 엠마뉴엘 레비나스의 '타자의 얼굴'론이 도출된 게 아닐까? 우리는 그들의 경험 앞에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된다. 우리가 그들의 경험 앞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은 침묵과 눈물, 그리고 내 자신 속에 만연한 악에 대한 참회다. 이 책은 20세기 중반 이후 유럽문화 속에서 '쇼아'가 차지하는 위치를 문학, 역사, 영화에 걸쳐 따져보고 있다. 저자 역시 느끼는 문제지만, 무슨 이유인지 한국의 아카데미즘은 유럽을 이해하는 단초로써 '쇼아'를 지속적으로 배제한 듯 하다는 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나는 이 역시 결국 일제부역자들의 나라로써 쇼아적 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의 청산되지 못한 지배문화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우리의 지배층은 인간의 존엄을 무차별적으로 짓밟아 온 대동아공영권에 자의든 타의든 결탁해온 인물들이었고 그들은 조선인 강제징용이나 강제 위안부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쇼아를 남의 일처럼 느끼고 싶어 하는 내면 심리의 결과가 아닐까? 역사는 이런 식으로 또 제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관이 다시금 스친다.

[인상깊은구절]
반면 역사가들은 증인이나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와 달리 사료에 입각하여 작업하며 원전을 인용한다. 또 역사가들은 자신이 취급하고 있는 연구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설정하고자 애를 쓴다. 이러한 태도는 특히 생존자들에게서 비난을 받고 있다. 그드은 학문적 접근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냉정함이 이 사건의 공포에 비추어 볼 때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저명한 역사가인 예후다 바우어같은 학자는 유대인 학살에 대한 대학의 학술적 접근이 "주석의 대양에 눈물과 고통을 익사시키는 꼴"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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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내용보기
세계 2차 대전 중 일어난 유대인 학살과  관련, 문학의 방향과 미래를 이야기한 작품. 국내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수용소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문학에서 영화까지 당야한 장르에 남겨진 유대인 학살의 영향, 그리고 관련된 작품들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가는 상당히 흥미롭다. 국내에서는 여기 언급된 관련 문학 작품을 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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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 대전 중 일어난 유대인 학살과  관련, 문학의 방향과 미래를 이야기한 작품. 국내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수용소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문학에서 영화까지 당야한 장르에 남겨진 유대인 학살의 영향, 그리고 관련된 작품들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가는 상당히 흥미롭다. 국내에서는 여기 언급된 관련 문학 작품을 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c******e 2009.02.24.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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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가능성
"학살의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가능성" 내용보기
'수용소' 내 나름의 해석을 해본다.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기 위해 사람이 만든 공간. 인간은 자기 경험을 통하여 역사, 정치, 문화, 경제, 문학을 해석한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인간 역사 이래, 가장 끔찍한 경험 중 하나, 아니 가장 끔찍한 경험이 '아우슈비츠'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직접 경험자들을 통한 간접 경험자들이지
"학살의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가능성" 내용보기
'수용소' 내 나름의 해석을 해본다.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기 위해 사람이 만든 공간. 인간은 자기 경험을 통하여 역사, 정치, 문화, 경제, 문학을 해석한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인간 역사 이래, 가장 끔찍한 경험 중 하나, 아니 가장 끔찍한 경험이 '아우슈비츠'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직접 경험자들을 통한 간접 경험자들이지만. 이성빈은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서 대량학살을 예술화시킬 수 있는가? 질문하고 있다. 서구 사회가 지금 이 질문에 논쟁을 하고 있다 말한다. 이성빈은 학살 50년이 지난 오늘 왜 학살을 이야기 하는가에서 학살의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한계를 말한다. 그럼 지금 그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다양한 문학 작품이 나왔다. 그는 수용소 문학의 '미학적 거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서구 각 나라의 노력은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클로드 란츠만의 <쇼아>, 영화에는 나 자신도 본 <쉰들리 리스트="">.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결론은 쉽게 내리지 못했다. 이상빈이 예로 든 작품을 접하지 못하여 그의 생각들을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책세상 문고 우리시대를 접할 때마다 나의 무지와 문외함 앞에 통곡할 지경이다.
k****e 2005.11.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