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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공터를 걸으면서도 발 밑 동식물의 무심을 깨뜨리는 것이 미안하여, 발소리를 죽이며 걷는다나. 녀석들뿐만 아니라, 땅 속 어딘가에 숨어 있을 굼벵이나 개미를 생각하면, 이 큰 몸뚱이의 느닷없는 방문이 얼마나 죄스러운 일이냐고 한다. 너무도 깊은 성찰, 세심한 체휼, 생에 대한 지대한 고뇌. 그래서일까. 님의 시들은 내가 이해하기엔 너무도 난해하다. 곳곳에 망가짐, 상처, 흉터, 죽음, 폭력이 널부러져 있다. 손에 잡힐 듯, 뭔가를 애타게 찾아 헤매는 것 같은 데 과연 그토록 그의 마음을 눌러대는 실체가 무엇일까. 영혼을 볼 수 있다면 시인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참으로 돌발적이고, 현란하고, 난해하면서도 강렬한, 역설적인 시들로 가득 찬 독특한 시집이다. 내내 천재 시인 이상을 떠올리며 씨름해야 했다. [인상깊은구절]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가슴 속에 들어가 발동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대 내 안의 발동기 되어 나를 살게 하고 발동기 하나가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 다른 세상을 만든다 -<발동기>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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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는 아직 길 위에 있다. 황혼녘 먼 데서 황소 울음이 노인의 허리처럼 구부러져 들려오는 마을에서 시작된 그의 여행은 가로등을 쭈욱 들이켜는 여우들이 살고 도둑처럼 해가 떠오르는 거리를 거쳐 지나 공주가 사는 흰 무지개 뜬 하늘 아래 돌 속의 드넓은 왕국을 향하고 있다.
그의 여행이 시작된 마을은 관절염 신경통 때문에 측간에서 반쯤 서서 똥을 누는 어머니, 아내도 아들도 거시기로 부르는 아버지, 염치가 미제라며 잠시도 쉬지를 않는 큰 이모, 가슴 동동거리며 십 년 넘도록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그 가시내가 살고 있는 추억의 공간이다. 이 유년의 공간에서 시인은 세상과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 조금의 불화도 없는 평화로운 삶을 산다.
이러한 평화로운 삶은 시인이 유년기의 공간을 벗어나 도시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훼손되기 시작한다. 그가 경험한 도시에서의 삶은 불온한 삶이며, 그것은 도둑질과 불륜으로 나타난다. 도둑질은 남은 것을 돌려주지 못하는 삶이기에 불온하며 불륜은 생명이 두려운 관계이기에 불온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도둑질은 불온한 세상과 화해하기 위한, 그의 불륜은 불온한 인간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불온한 삶에 불온한 방식으로 대응하기, 이것이 도시에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그의 전략이며 이 시집의 많은 시편들이 여기에 바쳐지고 있다.
국민학교 6학년 가을 소풍 때 학교 앞 가게에서 콜라 한 병을 훔친 것으로 시작된 현실세계에서의 그의 도둑질은 대학 입학을 위하여 어머니를 훔치면서(입학 시험 실기의 시 제목이 ‘어머니’였다고 한다) 허구세계에서의 도둑질로 질적 변화를 갖는다. 이후 백무산을 황지우를 아내를 훔쳤지만 그 어떤 것을 훔쳐도 흐뭇하지 못하게 된 시인은 마침내 자기 자신 안에 손을 넣어 자신의 속엣것을 훔치기 시작한다. 이 시집에 실려있는 시들은 바로 시인의 내면에서 도둑질한 장물들이라 하겠다. 여기서 잠깐 시인의 내면 공간인 <카페 이대흠>을 들여다보자. 그 곳 창문가에는 줄담배를 피워대며 사는 이상한 짐승이 신이 되려 한 죄의 대가로 세상에 없는 것을 가져와야 하는 벌을 받고 있는데, 그가 가져오는 것이 바로 시라는 풀이다. 즉 그에게 있어 시쓰기란 일종의 형벌인데, 그의 죄목이란 단지 신의 세계를 꿈꾸었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현실세계에서 신의 세계를 성취하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그것은 꿈꾸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며, 그는 그 죄의 대가로 세상에 없는 것을 가져오기 위하여 자신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시를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내면을 훔쳐 드러내는 시쓰기라는 형벌은 곧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일이 될텐데(왜냐하면 ‘카페 이대흠은 상처의 집’이므로), 이를 통하여 그는 비로소 상처투성이의 현실세계와 극적인 화해에 이르게 된다.
한편 생의 항로에서 이따금씩 유혹받아 그가 발을 내딛곤 하는 불륜은 그의 피를 뜨겁게 한다. 잠자리 함께 한 게 아득한데 세탁기 안에서는 집요하게 엉켜 있는 나(시인)와 아내의 옷을 바라보며 시인은 껍질만 섞여 있는 이대로는 어렵다라고 말한다. 그는 껍질만 남아있는 이러한 인간관계로부터의 탈출구를 찾아 그녀의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댄다. 그녀는 애비의 눈을 뜨여주기 위해 청나라로 팔려가 죽은 심청이기도 하고, 몸값으로 오만원을 받은 왕비이기도 하고 위기 때마다 그가 구원을 청하는 그의 어머니이기도 하며, 다방에서 미아리에서 그가 휴지처럼 주물럭거리다 팽개친 매춘부이기도 하다. 이 모든 그녀들은 딸, 어머니, 창녀 등 현실세계의 통념과는 반하는 사랑의 대상이기에 모두 불륜이다. 우리는 시인의 불륜의 대상인 그녀들이 현실세계 속에 존재하는 인간들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들은 진정한 사랑의 회복을 꿈꾸는 시인의 내면 세계 속에서 창조된 허구의 인물들이며 따라서 그들과의 불륜이란 다름아닌 시쓰기 행위임을 알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시인이 말하는 불륜이란 불온한 현실세계에서의 삶을 드러내기 위하여 시를 쓰되, 관습적인 방식이 아닌 불온한 방식으로 시를 쓰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번번이 좌절되며 그들과의 불륜을 통하여 태어난 시들은 거의 예외 없이 ‘나쁜 시’일 뿐이다.
결국 불온한 삶에 대응하기 위하여 그가 선택했던 불온한 방식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즉 도둑질은 성공하였고 불륜은 실패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불온한 세상에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시쓰기를 통하여 그는 세상과 화해할 수는 있었지만 불온한 방식의 시쓰기를 통하여 이 세상을 온전히 드러내려는 희망은 좌절되고 만 것이다.
이 절반의 성공 끝에 그의 바퀴가 지금 다다르고 있는 지점은 ‘지나 공주’로 상징되는 신화적 세계이다. 열 편에 이르는 ‘지나 공주’ 연작은 적지 않은 편수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분명한 모습이 손에 잡히지 않는 세계이다. 나는 그가 성공하지 못했던 그의 불륜을 ‘지나 공주’ 연작에서 다른 방식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숨길 수 없다. 남성화자와 여성화자가 교차하여 나타나고 ‘지나 공주’가 창녀, 딸, 어머니 등의 모습으로 남성화자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아마도 다음 번 시집에서는 그 모습이 보다 분명히 드러날 터이다. [인상깊은구절] 황혼 노인은 쑤세미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다 쇠스랑 짚으며 마을 쪽으로 향한다 그림자가 세상 끝에 닿는다 바지게엔 어린 모가 가득하다 먼 데서 황소 울음이 노인의 허리처럼 구부러져 들려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