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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리뷰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제임스 M. 케인의 소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 이 작품은 서정적인 소설들이나 철학서들과는 결이 사뭇 다르지만, '인간의 본능'과 '진짜 욕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주 흥미로운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악마와 함께 잔다 떠돌이 청년 '프랭크'와 식당 주인의 매혹적인 아내 '코라'가 만나 첫눈에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그들은 '진짜 행복'을 얻기 위해 방해가 되는 남편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지만, 범죄의 성공 뒤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의심과 운명의 뒤틀린 장난이었습니다. '포스트맨(우체부)'은 사실 소설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보상(혹은 심판)은 우체부처럼 반드시 찾아온다. 만약 첫 번째 벨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그는 반드시 두 번째 벨을 울려 당신을 찾아낼 것이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프랭크와 코라는 날 것 그대로의 파괴적인 욕망을 쫓습니다. 하지만 그 욕망이 '진짜'였다고 믿었기에 그들은 모든 것을 걸었죠. "욕망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의 성채를 지키라"는 인생 조언을 무시했을 때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잔혹한 예시와 같습니다. 이 책은 결핍을 범죄로 채우려다 파멸하는 차가운 시선입니다. 이 소설은 아주 짧고 문장이 간결하지만 그 안의 긴장감은 훨씬 압도적입니다. |
| 국내에는 필름 느와르의 걸작인 잭 니콜슨 주연의 동명 영화로 더 잘 알려진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 이 작품은 제임스 케인의 대표작이며, 카뮈의 <이방인>은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씌어졌다고 한다. 이 작품은 발표 당시인 1930년대에 지나친 폭력성과 외설성으로 보스턴에서 금서로 지정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이 작품의 어디가 폭력적이고 외설적인지 도저히 이해불능일 테지만, 아내와 그녀의 정부가 공모하여 남편을 살해하면서도 전혀 뉘우치지 않는다는 비정한 내용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인간의 추악한 위선과 욕망을 아무런 도덕적인 안전장치 없이 있는 그대로 폭로하는 이 작품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매우 짧은 이 소설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로 씌어져 있고, 이는 작품의 비정함을 매우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인간의 애욕과 그로 인한 비극을 절제되고 드라이한 문체로 그려낸 이 작품은 하드보일드의 고전으로 손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
| 가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마가 꼈다느니, 살이 꼈다느니 하는 말을 한다. 우주의 법칙에서 보자면 모든 것이 그렇게 되기 위해 그 시간, 그 장소, 그 상황을 갖춘 거라고 생각한다.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운명적으로 사람들이 만나고 딱 한 사람만 사라진다면, 상대방이 재산이 많다면 사랑을, 재산을 차지할 수 있을 거라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리고 일은 벌어진다. 사람들은 범죄자가 된다. 살인자가 되고 횡령을 한 사기꾼이 되고 공범이 된다. 그들은 잡힌다. 화려하게 딱 한번만 일을 저지르고 행복한 미래를 살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이 완전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패배를 시인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변명을 하고 덧없이 퇴장한다. 그것뿐이다. 이들의 인생은 배팅의 잘못으로 실패로 돌아간 것뿐이다. 하지만 계속 사람들은 이런 일을 저지를 것이다. 언젠가 단 한번의 멋진 성공을 위해서... |
| 짤막한 문장들, 대화의 나열...... 소설 "GO"에서 스기하라가 이 책을 추천하는데, 읽어보니까 정말 추천할만 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의 부초와 같은 삶과 사랑에서 비극성과 낭만성이 짙게 풍겨져 나오는 수작이다. 특히 난 바로 이 장면에서 전율을 느꼈다. 코라의 남편인 파파다키스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이에 주인공 프랭크와 코라는 둘이서 멀리 도망가기로 하고 집을 나선다. 수마일을 걸어내려가지만 어느 차도 두 사람을 태워 주지 않고 도로를 씽씽 지나가기만 하였다. 예쁘게 차려 입었던 코라의 옷은 금방 더러워지고 코라는 낙담하여 울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프랭크는 그녀를 불러보지만 그녀는 다시 가버렸다. 그러는 프랭크도 어느새 울고 있었다... 살인과 추리와 반전이 오고 가는 속에 두 사람의 사랑도 위기를 반복하면서 결국 비극적 종말로 치달아 간다. 이미 예상된 결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프랭크의 사형수 감옥에서의 독백도 참 인상적이다. 제목이 왜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인지는 정말 의문이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소설에 포스트맨이라는 말은 한번도 나오지 않는데... 소설 내용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작가는 왜 그런 제목을 달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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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눈에 익었다. 이 책은 발표되자 마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하며 외설시비로 금서가 되었다고도 한다. 금서, 라는 말은 꽤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떤 의미로 이 책이 금서라는 타이틀을 써야 했는지,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나인지라 다소 기대감으로 이 책을 읽었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이 책에서는 포스트 맨의 등장은 없다. 금서가 될만큼의 외설 시비나 폭력이라고는 찾아 볼수 없으며 오히려 추리 소설 치고는 상당히 간결하다. 그냥 일반적으로 무난히 읽을 수 있는 추리 소설 같은데 그 시대엔 왜 이 책이 금서가 되어야 했는지 약간은 의구심이 들지만 아마 그것 역시 그 시대의 시대경 배경 탓이리라.
출판한지 오래된 책이라, 간결하지만 편집 자체는 엉성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고심뒤에 쓰여진 책이라기 보다는 추리 소설의 형식을 빌린 책 치고는 상당히 쉽게 쓰여진 책 같다. 그다지 큰 만족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다소 유명한 책이니만큼 읽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보험이 주입된 살인 사건은 물질적인 이득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다소 현실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이 책에서는 현실적 경제적 요소보다는 애정면에서 더 주목이 되는 점. 그런 점이 읽기에 편안한 요소를 전해준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크게 느껴져요. 당신에게 거기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죠. 그 일은 당신이 다른 생활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뿐만이 아니에요. 그것이 당신에게 무엇을 해 주느냐도 중요하죠. 가슴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고, 난 당신이 거기에 키스해 주면 좋겠어요. 이제 곧 배가 불러올 거에요. 그리고 난 그렇게 되는 게 좋고 모두 내 배를 봐주길 바랄 거예요. 그건 생명이에요. 내 안에서 생명을 느낄 수 있어요. 아기는 우리 두 사람 다에게 새로운 삶이에요, 프랭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