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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삶의 모습이 '돌아가는 배'로 표현된 이 책은 더 이상의 찬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요란하고 화려한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게 이미 익히 알려진 유명 작가들이 책 뒷표지에 실린 추천글에서 제3자인 내가 보기에도 민망하다 싶을 정도로 추켜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책에 나와있진 않지만 심지어 어떤 이는 '이 책에 실린 글 전체가 하나 같이 모두 명문이다!' 라는 놀라운 말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작가보다 더 글을 잘 쓰는 사람?"
사실 찬찬히 이 책을 읽다보면, 아닌게 아니라 글의 품격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지곤 했던 것이고 보면 한 두 번 읽다 잊혀지고 마는 내용이 아님은 분명하다. 상황이 이럴진대 이에 더 이상의 어떤 형용의 글이 필요하리요. 허나 왠지 가슴 가득한 감동으로까지 말하기에는 허전한 구석이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글을 올리는 이유중의 하나다. 그 허전함의 출처는 어디인가?
대개 자전적인 성격의 글일수록 그 사람의 인품이나 내면의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마련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내 느낌상 김성우님의 글은 매우 탐미적이다. 그래서 귀족적이다. 압축되어 시적인 함의를 내뿜는 그의 간결하고 명료한 글이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런데 그것은 동시에 독자의 한사람인 내게 그의 글에 대한 감동의 결여로 나타난다고 말하면 실례가 될까? 귀족적이라 함은 서민적이 아니라는 말과도 상통할 것인 즉 그의 글에는 서민적인 애환이나 고통, 그 심연을 흔드는 페이소스(pathos)가 스며들어있는 것 같지는 않다. 허나 어쩌겠는가. 그의 글 속에 들어있는 삶 자체가 이 세상의 모든 추함과 고통을 넉넉하게 혹은 우아하게 덮어버리는 것을.
흔히들 얘기하기로 인생의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향유(享有)에 있다고도 한다.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즐거움"(A thing of beauty is a joy forever)(p313). 그의 글의 탐미적인 경향은 여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허나 그것이 결코 악덕은 아니다. 이 말 자체를 흠향(歆饗)하여 보노라면 마치 내 영혼의 안식 같은 삶의 향기가 스며오는 듯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실재로 그의 인생관처럼 자신 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들과의 관계가 아름답게 회복될 때에 비로소 이 세상은 모든 것이 풍요롭고 기쁨의 대상일 수 있으리라. (이제 보니 지금 나는 그를 질투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누가 어떤 훌륭한 말을 했는가 묻고 대답하는 자체는 별 유익이 아닐 수도 있겠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직면하는 삶이 내게 기쁨이고 행복인가에 대한 자답일 터. [인상깊은구절] 나는 얼굴이 검고 속살이 희다. 위악자다. 나는 다면체다. 어떤 한 면도 나의 진면목이 아니다. 나는 어떤 수로도 나누어지지 않는 무리수. 나는 뜻밖의 사람이다. 나는 꿈이 있고 야심이 없다. 까다롭기로 치면 나는 시인 쪽에 가깝다. 내가'분명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
| 이 책의 저자에 대해 오래 전부터 개인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글을 썼고 많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남겼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떤 분야든 손을 대는 것에서 확실한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존경스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올 무렵 국내에 없었기 때문에 이런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은 좀 늦게 였다. 어느 잡지에서 특집으로 마련한 '명문(名)'중에 저자의 이 책에 실린 글이 뽑혔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이 책을 찾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저자는 자신의 일생을 회고한다. 결국에는 자신의 고향인 바다와 섬으로 돌아가게 되는 인생을 담담하게 그러나 자부심으로 가득찬 필치로 그리고 있다. 그는 자신이 어디서나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더라도 그런 마음으로 쓰고 있다. 하나 하나의 글이 평생을 글쓰며 살아온 논객의 글답게 아름답다. 때로는 힘차지만 서정적 분위기가 이 책 전체를 감돌고 있다. 누구나 꿈꾸지만 누구나 이룰 수는 없는 아름다운 삶을 맛이라도 보고싶은 사람은 한 번 읽어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