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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당신의 쌍둥이에 관한 맥빠지는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돌아오길
"부디 당신의 쌍둥이에 관한 맥빠지는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돌아오길" 내용보기
'하얀성' 이 책은 오르한 파묵이란 터키의 한작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책이다.. 유럽의 일부이면서 아시아를 바라보는 터키의 지정학적 위치를 유념해두고 그의 소설속의 이스탄불을 이해해야한다. 이 소설은 르네상스 시대의 한 베네치아 출신의 노예의 수기이다. 베네치아인 '나'는 그와 똑같이 생긴 이스탄불의 '호자'의 노예가 되면서 새삶을 시작한다. '호자'는 '
"부디 당신의 쌍둥이에 관한 맥빠지는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돌아오길" 내용보기
'하얀성' 이 책은 오르한 파묵이란 터키의 한작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책이다.. 유럽의 일부이면서 아시아를 바라보는 터키의 지정학적 위치를 유념해두고 그의 소설속의 이스탄불을 이해해야한다. 이 소설은 르네상스 시대의 한 베네치아 출신의 노예의 수기이다. 베네치아인 '나'는 그와 똑같이 생긴 이스탄불의 '호자'의 노예가 되면서 새삶을 시작한다. '호자'는 '나'에게서 서양지식을 배우고 그 지식을 이용하여 파샤의 아들의 결혼식 전야제의 불꽃놀이 축제를 주관하고, 이스탄불에 불어 닥친 역병을 치유함으로써 황제의 신임을 받아 점성술사로서 제국의 운명을 관여한다. '호자'의 곁에는 항상 쌍둥이처럼 '내'가 따라다니며 르네상스의 과학과 기술을 적용시킨다. 그러면서 이들은 유럽 정복을 위한 프러젝트로 가공할 만한 신무기 개발에 전념한다. 마침내 완성된 신무기를 이끌고 원정에 따라 나서지만, 서구 기독교를 상징하는 '하얀 성' 앞에서 완전한 실패를 맛본다. 이 수기 속에는 당시 궁중의 암투와 여러가지 뒷이야기들, 술탄과 신하와의 관계 등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나'와 '호자' 사이의 묘한 관계가 자리잡고 있다. 쌍둥이와 같은 두사람은 서로를 보는 순간 자기자신을 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똑같다. '호자'는 유럽의 과학 지식을 모두 전수받기 위해 '나'와 매일 얼굴을 맞대고 공부를 한다. 그리고 사업을 벌일 때는 서로가 그림자처럼 붙어다닌다.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고 한편으로 사랑하면서 상대방의 과거 기억들을 공유한다. '호자'는 '나'와 신분을 바꾸어 이탈리아로 돌아가 '나'의 삶을 살아도 가능할 정도로 치열하게 '나'로 되려고 한다. 결국 서로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안되는 상황에 이른다. 운명이 뒤바뀌는 '하얀 성' 앞에서 그들은 옷을 바꿔 입고 서로의 삶을 바꾸어버린다. '호자'는 '나'에게 자신의 목걸이를 건네주고 기독교 진영으로 넘어가버린다. 그리고 이쪽에 남은 '나'는 '호자' 행세를 하며 살다가 끝내 자기가 '진짜 호자'인지 아니면 '호자 행세'를 하는 것인지 모호한 채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나는 마지막부분까지 어디까지가 호자이고 어디까지가 나인지 구분하고 싶었다. 하지만 소설은 처음부터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고 항상 자기가 "이야기를 꾸며내기를 좋아한다"는 연막을 뿌리며, 모든것이 허구라는 암시를 주었다. 소설속의 술탄의 말처럼 "서로가 상대방 행세를 하는 것을 보면, 이세상 사람들 모두가 서로 같다는 증거가 아니겠나?" 세상이 정말 그렇다면 우리가 나자신을 찾으려 하면 할수록 미궁속에 빠져 들어버릴것이다.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까지가 상대방인지 이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끝없는 뫼비우스의 띠 안에서 맴돌것이다. 과연 우리는 우리와 나를 찾을수 있을까?? '부디 당신의 쌍둥이에 관한 맥빠지는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돌아오길....'

[인상깊은구절]
"서로가 상대방 행세를 하는 것을 보면, 이세상 사람들 모두가 서로 같다는 증거가 아니겠나?"
l******4 2005.01.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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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모더니즘 - 오르한 파묵
"포스트 모더니즘 - 오르한 파묵" 내용보기
소설 속의 나는 17세기 이탈리아 사람이다. 터키군에 포로로 잡혀 이스탄불에 왔다. 기이한 일은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호자라는 이름으로 노예인 나의 주인인 것이다. 호자는 나로부터 유럽의 천문학, 과학 등 유럽 전반에 관해 내가 아는 모두 지식을 배워 파샤의 아들 결혼식 전야제의 불꽃놀이 축제를 주관하고 이스탄불에 불어닥친 역병을 치유하여 황제의 신임을 받아 점성
"포스트 모더니즘 - 오르한 파묵" 내용보기
소설 속의 나는 17세기 이탈리아 사람이다. 터키군에 포로로 잡혀 이스탄불에 왔다. 기이한 일은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호자라는 이름으로 노예인 나의 주인인 것이다. 호자는 나로부터 유럽의 천문학, 과학 등 유럽 전반에 관해 내가 아는 모두 지식을 배워 파샤의 아들 결혼식 전야제의 불꽃놀이 축제를 주관하고 이스탄불에 불어닥친 역병을 치유하여 황제의 신임을 받아 점성술사로써 제국의 운명에 관여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나는 나와 똑같이 생긴 호자를 도와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데 최선을 다한다. 심지어 나의 집과 부모와 나의 약혼자와 형제들에 관한 모든 것까지 알려주어,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고 사랑하면서 상대방의 과거 기억들을 공유한다. 기억의 공유는 인격의 공유. 그는 무섭도록 빨리 배우고 빨리 터득한다. 어느 때는 나를 앞지르기도 한다. 내가 그인지 그가 나인지 헷갈릴 때조차 있다. 우리는 언제나 붙어 다니는 쌍둥이. 호자는 나의 서구 천문과 과학을 연수받고 더욱 연마하여 서구 기독교의 상징인 하얀성을 폭파하는 데 실패하고 이탈리아로 탈출한다. 나는 호자가 사라진 자리를 메운다. 서서히 호자가 되는 것이다. 몇 년 후 소문으로 호자는 내가 되어, 나의 집에서 나의 약혼자와 결혼하고 내가 되어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이스탄불에서 호자가 되어 호자로서 모든 생활이 만족스럽다. 호자의 아내는 나의 아내이며 호자의 아이들은 나의 아이들이며 호자의 집은 나의 집이다. 어느 날 고향 이탈리아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그러나 나는 그와 마주 앉아 이탈리아 말을 하 마디도 할 수 없는 완전한 동양인이다. 완전한 호자인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이야기일까. 사람이 완전히 뒤바뀌다니. 해설은 메비우스의 띄와 연관지운다. 메비우스의 띄, 밖의 궤적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새 안쪽 궤적을 돌고 있으며, 안쪽 궤적을 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느 틈에 바깥쪽 궤적을 돌고 있다. 에셔의 '손을 그리는 손'을 보자. 하나의 손이 연필로 손을 그린다. 그림의 손은 자기를 그리는 손을 연필로 그리고 있다. 도대체 어느 손이 어느 손을 그리고 있는지. 내가 한 손으로 다른 손을 만질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어느 쪽이 만지고 어느 쪽이 만져지는 손일까. 피이드 백 - 되 먹임은 어떤 결과가 나온 후 그 결과를 다시 원인에 투입하는 경우다. 방정식은 하나이지만 결과는 계속 바뀌기 때문에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의 소설은 이슬람과 반 이슬람, 서양과 동양이 서로 만나 하나가 된다. 유럽의 일부이면서 아시아를 바라보고 있는 터키의 지정학적 위치는 그의 소설을 대할 때 항상 유념해 두어야 한다고 해설은 말한다. 이스탄불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재가 서로 융합되어 구분이 되지 않는다. 작가 오르한 파묵은 포스트 모던 작가로 정평이 나있다고 한다. 그래 이 소설이 포스트 모던인가. 소설은 모종의 두뇌게임을 연상케 한다. 다시 찬찬히 읽어보아야겠다. 그리고 수필도 이렇게 쓰여질 수는 없을까 모색해 볼 일이다.
x*****k 2002.11.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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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고 얽히는 페르소나 ㅡ 존재하는 가.
"얽고 얽히는 페르소나 ㅡ 존재하는 가. " 내용보기
휴우. 을 읽었을 때 같은 그런 긴장감 넘치는 흥미 같은 건 덜했다. 책 안의 작가도 계속 '읽기 힘들지?'이런 식으로 농을 걸었고 이건 읽는 것이 약간 괴롭기 까지 했다. 어디까지 내 안의 자아를 시험해 보는 것이냐. 소설 처음부터 '~~에게' 이런 부분부터 벌써 소설의 영역이다. 똑같이 생긴 사람 둘이 나온다. 한 명은 '나' 한 명은 '호자'. '나'는 베네치아 사람으로써 배를 타
"얽고 얽히는 페르소나 ㅡ 존재하는 가. " 내용보기
휴우. <내 이름은="" 빨강="">을 읽었을 때 같은 그런 긴장감 넘치는 흥미 같은 건 덜했다. 책 안의 작가도 계속 '읽기 힘들지?'이런 식으로 농을 걸었고 이건 읽는 것이 약간 괴롭기 까지 했다. 어디까지 내 안의 자아를 시험해 보는 것이냐. 소설 처음부터 '~~에게' 이런 부분부터 벌써 소설의 영역이다. 똑같이 생긴 사람 둘이 나온다. 한 명은 '나' 한 명은 '호자'. '나'는 베네치아 사람으로써 배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터키인들의 침략으로 포로로 붙들려 오게 된다. 그 후 여차저차해서 '호자'의 포로가 된다. '호자'는 르네상스 지식을 갖고 있는 '나'에게 천문학, 의학, 등 여러 분야를 배우려고 한다. '호자'는 과학에도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지만 그가 하려는 걸 이해 못하고 관심 갖기 못하는 사람들을 모두 '바보' 취급한다. 이 둘은 정말 생긴 모습이 괴상하리만큼 닮았다. 사람들은 '호자'가 행하는 여러 가지 과학적 업적을 모두 사실은 '나'에게서 영향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이 둘은 술탄에게 붙들려 가기 까지 둘이서 함께 계속 생활을 한다. 둘이 서로가 서로를 자기 자신과 분간 못하는 순간까지 있다. 거울 앞에서의 그 날 밤은 상당히 충격으로 다가온다. '호자'는 내가 '나'가 되어보겠어, 라고 말한다. 둘은 책상에 나란히 앉아 '나는 누구인가'를 주제로 계속 한없이 탐구한다. '내가 저지른 악행'을 계속 쓰면서 '나'는 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면서, '호자'는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인간으로써 저지를 수 있냐고 비난하면서 또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적을 때는 그것을 못 보게 한다. ... 이 두 사람은 나중에 끝에 가서는 서로가 도대체 누가 누구인지, 알 수조차 없게 되는데 그건 소설을 읽는 재미로 남겨두겠다. 마지막 장은 정말 누가 '호자'인지 '호자 행세를 하는 나'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사실 전체가 다 허구였으니 - 이 두 사람과 진실한 우정을 나눈 술탄은 마치 자상한 아버지처럼 이 생각은 '호자'의 생각이며 저 생각은 '나'의 생각이라면서 지적을 해준다. 그가 나중에 말하길, (본문 中) " 이 세상 네 모서리와 일곱 지방의 인간 모두가 서로서로 닮았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술탄이 될 필요가 있을까?" 나는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했다. 내 마지막 저항을 꺾어버리려는 듯 그는 또다시 물었다. " 서로가 상대방 행세를 하는 것을 보면,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서로 같다는 증거가 아니겠나?" 그렇다. '호자'와 '나'의 역작은 후에 '하얀성'에서 결국 실패하고 만다. 이에 '호자'와 '나'는 서로 옷을 바꿔 입고 '나'는 '호자'로써 남고, '호자'는 '나'로써 도망친다. 마치 저 그림처럼 알 수 없는 정체성의 혼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존재하는 가' '나를 알아야 하는가?' 사실 뒤에 역자 후기에는 '미스테리'처럼 독자를 혼란시키는, 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냥 알아내려는 생각없이 (다빈치 코드에서는 짜증났다-_-) 그대로 즐길 수 있었다. 나 역시 나의 정체성을 애써 고정시키려고 하지 않기에, 카프카의 不定의 미학 또한 즐기기에. 한 가지 더 - 가장 앞 부분에 나왔던 이 부분은 나중에 내가 삶을 돌이켜 볼 때 과연 어떤 울림으로 돌아올까? (본문 中) ..많은 사람이 인생이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이 우연의 연속일 따름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렇게 믿는 사람들에게도 과거를 되돌아보다가,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사건들이 사실은 불가피한 일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약간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묘하게 또 손에서 놓기는 싫은 책이었다. 가장 중심적 축은 역시 '나', 도대체 무어야? 이것이겠지만 또 한 편 '호자'라는 인물 자체 성격에 대한 호기심도 일어나는 편. '우리'와 '그들'을 구분 짖고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으려는 '그들'을 '바보'라고 욕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호자'. 힛. <내 이름은="" 빨강=""> 에서 처럼 삶을 살아가는 방향, 자세, 이런 것에 대해서보다 삶 자체, 아니 인간 자체의 그 애매모호함, 자기자신도 알 수 없는 것, 상당히 머리 아픈 책인 건 확실하며 약간 찝찝한 마음도 갖겠다. 읽으면서 여러가지 캐치된 부분은 많았으나 역시 마지막에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그가 '그'인지 '호자'인지 '호자로 변장한 나'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으므로. '나'가 '나'였다는 것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거부한다. 하나로 규정되기를. 정체성이란 것에 매어서 '저건 내가 아냐' '난 이러면 안 된다'이런 것. 내버린다. 정말로 우연히이라고 생각했던 사건들이 사실은 '불가피한 일'이었을까. 그런가. 삶이란 신기한 것이다. 이럴 때 정말 어떤 거스를 수 없는 위대한 '섭리'가 존재한다고 하는 건가. 그것을,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섭리로 돌려 버린다. 나 역시 그리스도인이지만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엔 너무 그 명제는 슬프다. 하지만 역시 '정해져 있어도' 알 수 없기에,.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니깐. 휴. 재밌다. 재밌어. 그나저나 다음은 <신과 나눈="" 이야기=""> -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 주문 결정.
e****i 2004.12.2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