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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행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매우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소리 없는 가족의 붕괴' 이다. 그 대부분이 집을 새로 짓는 것에서 비롯된다. 집을 짓는다. 대출을 받는다. 대출금을 갑기 위해 엄마가 일하러 나간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열쇠를 목에 걸고 다닌다.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지 못한다. 그 공허함을 메우려 컴퓨터 게임과 전자 제품이 집 안에 범람한다. 그리고 성장한 아이들은 가출을 한다. 부부만 남는다. 부부 사이에 대화가 없어진다. 아내는 멍하니 이혼을 생각한다. 이런 현상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가족들은 풍요로운 물자 속에서 숨바꼭질을 한다. 아버지는 골프 가방 속으로, 엄마는 통신 판매 카탈로그 속으로,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 속으로 숨는다." 유미리의 에세이집 <물고기가 꾼 꿈>의 한 대목이다. 일본의 불행한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대한 작가의 감상을 모아서 그녀는 <가족 스케치>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나도 읽은 적이 있다. 위의 인용한 부분을 읽어나가다 나는 '음, 정말 그렇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모든 가족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뭐 경우가 다 다르다. 하지만 대개 어느 가족에나 뭔가 문제가 있는 것만은 대체로 맞는 거 같다. 그렇다면 결국에 돈, 자본의 문제인가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그녀의 대답도 그녀의 에세이에 들어있다.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유미리 씨에게 말했다. "한 가정이 불행해지는 가장 큰 원인은 빈곤과 병, 그 두 가지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집안에 암 환자가 생기면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하나로 뭉치는 경우도 있고, 오늘 날보다는 전쟁 전후의 빈곤했던 시절에 훨씬 더 가족들의 관계가 끈끈하지 않았던가. 붕괴된 가족은 그 가족이 성립되었을 때부터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붕괴의 원인을 은밀히 키워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맘대로 생각하기에, 그렇다면 애정의 문제인가 하고 의심해보기도 했다. 물론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고, 아예 그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의 상호간 애정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나 애정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가. 무슨 광고의 대사처럼 '사랑이 사랑만 가지고 되니' 하고 생각해보면 애정만이 또 능사가 아니다. 결국에 가족의 문제는 무슨 공식이 정해진 것이라기보다는 각각 가족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각자가 해결방안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노력해야한다는 이야기이다. 노력해도 안 되고, 아무래도 방법이 없다면? 그럴 땐 전문가와 상의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와 상의하려면 돈이 있어야하고, 또 그 문제가 아니더라도 누구 한 개인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참여해야 해결되는 게 아닐까 싶다. 가족 모두가 그럴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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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연유로 '유미리'의 「물고기가 꾼 꿈」을 처음 접하게 되었던건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이 스물을 갓 넘긴 언제였던가? 학교 도서관을 서성거리다가 무심코 뽑아들었다가 흥미를 느끼고 읽기 시작한 것이 그녀와 나의 첫 인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 그녀의 작품이란 작품은 모두 구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단 한번 만나본적 조차없는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단지 나란 사람은 그녀가 집필한 책을 매개로 하여 일방적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에 서 있었음에도 나의 그녀에 대한 공감이 그녀의 나에 대한 공감으로 전이되길 바라며 그렇게 읽고 또 읽었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고, 그녀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외사랑도 식어갈 즈음해서 다시 그녀의 책을 들었다.
그녀가 쓴 몇권의 에세이집을 접하노라면 그녀 생각의 원류를 두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그건 바로 그녀의 가족과 학교였다. '빠징코 기술자였던 아버지와 캬바레 호스티스인 어머니......' 이렇듯 그녀의 가족이야기는 항상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소개에서 부터 시작된다. 그녀의 주요 소재거리이기도 한 그녀의 가족사는 '붕괴'라는 단어에 적합하다. 앞서 말한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단편적인 소개는 그 '붕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인 동시에 전부이다. 지금의 '유미리'가 가진 가치관의 토대가 바로 그녀의 유년시절을 근간으로 성립된 거라면 그녀는 상당히 불운한 사람이다. '사랑'이라는 기초는 온대간데 없는 가족의 토대는 그녀를 세상밖으로 내몰았고, 그녀의 내부에서 시작된 붕괴는 학교생활이라는 외부적 붕괴에 까지 이른다. 학교에서 심한 따돌림의 대상이었던 그녀는 수없이 가출과 자살시도를 하였고, 결국 퇴학이라는 처분에도 감내해야 했다. 그녀는 「물고기가 꾼 꿈」 첫 머리에서 '물고기는 물에 에워싸여 있다.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내가 물고기라면, 물은 아픔이다. 아픔이 없어지면 나는 쓸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녀의 불운했던 유년시절. 아니, 가혹하다고 함이 옳은 과거를 지금의 그녀가 자신만의 언어로서 사회에게 던지는 원동력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마치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물고기와 같이......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끝을 알 수 없는 절망의 나락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마주하게 된다. 그녀의 시각은 모두를 증오해야 하는 대상으로 만들어 놓는데, 그것은 글속에서 그녀가 말한 바 있는 '나는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모두가 나를 배신하고 비웃고 피해를 주는 존재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타인을 자신의 적으로 돌리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는 증오의 미학에서 그녀의 지극히 고립적이고, 냉소적인 가치관을 어느정도 접할 수 있다. 타인에 대한 적개심은 '비쭉한 눈길로 건널목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과 전철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면 다들 추악하고 밋밋하여 내 두눈을 짓뭉게 모든 것을 어둠에 가둬두고 싶어진다.'에서 극에 달하는데, 이것이 그녀의 과거가 빚어낸 현재의 짓뭉개진 결정체라는 논거에 대해 별 무리없이 받아들여 진다.
하지만 그녀에겐 '언어'가 있었다. 자신의 모든 절망과 고통을 그녀만의 언어로서 융화하여 지금의 작가 '유미리'로 재 탄생된 것이다. 모든 것을 상실해야 하는 삶속에서 그녀는 그녀만의 각인이 찍힌 문장을 쓰고자 했고, 그녀에게 언어란 '쓰는 것'으로서 그녀 삶의 원기를 불어넣었던 것이다. 그녀의 숨결 가득한 언어는 고독에 빠져 허우적 거리거나, 극심한 낙담으로 바닥을 뒹구를 때 동반자가 되어준다. 마치 나의 고통이란 그녀에 비하면 한낱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거라며 오히려 그녀의 불행에 귀 기울이고, 위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녀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불행' 혹은 '가혹'이라고 폄훼한 그녀의 과거는 결코 그녀에게 아픈기억만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지금의 그녀가 있게된 결정적인 축복의 시간(축복이라는 말에 '유미리' 작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할런지는 몰라도, 적어도 독자인 나로선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 그녀의 독특한 문체는 결코 평범한 과거를 지닌 범속한 이들에겐 허락되지 않을 그런 독특함이었기 때문이다.)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으로 해서 기억의 저편으로 가리우고 싶었던 과거의 흔적들을 자신이 세상을 향해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언어'로서 분출해 내었던 것이다.
'관계'란 것에 대해 그토록 인색하기만 한 그녀에게도 분명 소중한 '관계'의 몇몇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그녀를 사랑하는 수많은 독자와 새로이 관계를 맺고, 좀더 희망차고 아름다운 글로서 모두를 찾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유미리'는 더 이상 내 마음속에서의 '유미리'로서 자리잡지는 못할 것이다. 적어도 내가 사랑한 여인 '유미리'는 희망에 관해서 만큼은 어딘지 낯선 이방인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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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유미리.. 그녀의 글이 너무나 인상 깊었다.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이 그녀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가족의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가족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꺼내는 작가의 용기가 새삼 존경스럽다. 너무도 솔직 담백한 글이 오히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정도였다. 그러나 죽음과 자살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때문에 책 내용 자체가 너무 어둡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한번쯤은 솔직한 그녀의 글을 접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가족의 의미도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볼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톨스토이이 어록에 이런 말이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이혼하는 부부는 서로 다른 불행을 껴안고 있다." 나는 남들 눈에는 불행한 가정으로 자라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열한 살 때, 엄마는 나와 둘째 남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왔고, 아버지와 첫째 남동생과 여동생은 우리가 그때까지 살았던 집에 그대로 남았다. 그렇다고 나는 내 가족들이 수치스럽다거나 가엾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기억 속에 가족들을 가두어 놓고 남몰래 추억하고 있다. 불행한 가족일수록 이루지 못한 꿈을 좇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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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가 꾼 꿈,이라고 제목이 적혀있는 부분 아래에는 영어로 sakana ga mita yume라고 되어있다. 그대로 한글로 옮겨보면 물고기가 본 꿈, 이걸 봤을때 '본' 꿈,과 '꾼' 꿈은 느낌이 틀리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에세이인 만큼 말 그대로 자신의 생활,생각 모든것이 솔직하게 적혀져 있었는데 읽으면서 참 무섭다는 생각을 가끔씩 했다. 정말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는 느낌. 그러면서 동시에 '아, 나는 잘 살고 있는거구나'하는 여느 동정과 함께 안도의 느낌이랄까. 그런게 자꾸 느껴졌다. 보통, 우리는 슬픈일이 있거나 기쁘면 친구를 불러서 이야기를 하거나 함께 술을 마시자거나 등등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 감정을 나누거나, 위로를 받곤 하는데 유미리씨의 글을 보면 본인도 스스로 말하곤 하지만, 책을 통해서 작가와의 대화를 한다고 한다.
글을 쓰는 이유도, 책을 읽는 이유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책이란것은 의사소통의 한 도구가 아니라 단지 지식을 얻기위한 수단에 불과한데, 이 사람은 그걸 넘어서서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는게 참 신기하고 부러웠다. 그리고, 분명 글을 읽고 있으면 '참 외로웠겠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글 속에서는 그게 잘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본인이 글에서 말했듯이, 홀로 있다고 느껴졌을때에는 이미 책과 함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에서의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죽음과 가족이다.
사실 글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뚜렷하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고 해야할까 - 표현이 단적이지만 -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일반적인 죽음에 대해, 이 글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유종의 미를 거둔다, 는것이 내가 글을 보고 생각한 '죽음'이랄까. 또한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적어놓았는데, 최근들어 느끼는 거지만 가족이란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자신에게 와 닿는 만큼 가장 기억에 남는부분의 하나다. 가족이란 '소중함' '사랑'을 넘어선 그 '어떤것'의 신비로움 이라고도 할수 있을 만큼 보이지 않는 연결선 - 끈이 있어서, 때론 무섭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혹은 편안하기도 한듯 하다.
[인상깊은구절] 내가 물고기라면, 물은 아픔이다. 아픔이 없어지면 나는 쓸 수 없다. 그리고 글을 씀으로 하여 내 아픔의 수위는 더욱 놓아진다. (중략) 나는 나를 내 자신 안에 가둬두기 위하여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쓰고, 아픔의 물로 내 자신을 포위하였다. 헤엄치지도, 떠오르지도, 가라앉지도 않고 침묵과 아픔 속에 정지해 있는 물고기- 물고기는 때로 아픔에 겨운 나머지 입을 벌리지만 물에 에워싸여 있어 소리가 나지 않는다. 거품이 수면으로 올라갈 뿐이다. |
| 책방에서 우연히 신간인 유미리씨의 물고기가 꾼 꿈을 집어들었다. 대충 책장을 넘겨보는데 망고를 받고서란 소제목이 눈에 띄었다. 개인적으로 망고를 좋아하는 까닭에 바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유미리씨는 진짜 넌더리나게 가족이야기만 하는 작가다. 그것도 정말 엽기적인 가족이야기다. 하지만 난 그래서 유미리씨 작품이 너무나 좋다. 물고기가 꾼 꿈은 내가 읽은 유미리씨 작품중에서 가장 맘에 든다(참고로 한국에서 출판된 유미리씨 작품 다 읽었음) 물고기가 꾼 꿈은 나로선 일기장에도 쓰기 힘든 정말 솔직하고 가장 진솔한 에세이집이라 생각된다. 책을 읽을때마다 정말 이런 가족이 있을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곤 한다. 하지만 난 앞으로도 유미리씨가 계속해서 가족이야기를 써주었으면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미리씨가 자기의 가족을 특히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못배우고 가난한 재일교포 아버지의 이야기는 가슴 뭉클하다. 참 이 책에서 스토커퇴치법이 하나 나오는데 정말 기발하고 재밌었다. 궁금한 사람들은 꼭 이 책을 읽어보길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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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펼칠 때부터 두근거렸다, 인정한다, 나는 그녀의 불운을 지켜보는게 즐거워 견딜 수가 없다. 아주 오래전, 한 여성잡지에서 한국에서의 연극 공연을 위해 방문했던 그녀의 인터뷰를 보고 난 직후였다. 그 잡지에서 유미리는 말했다. '내가 할줄 아는 한국어는 욕뿐이다. 나의 부모님은 싸울 때에 한국어로 욕을 했다.' 라고.
그녀의 불운은 가정에서 비롯됐다. 도망치듯 일본으로 건너간 유미리의 외조부, 아버지, 고모등은 결코 자신의 과거를 말해주지 않는다. 과거사를 감추는 가정은 소리가 막혀 되돌아오는 동굴과 같다. 그 어두운 동굴속에 그녀가 던져진 것이다. 아니, 스스로 걸어들어간 것일까.
이 에세이는 92년부터 2000년까지 썼던 에세이들을 모은 것이다. 스물세살 때부터 서른두살 때까지의 기억이다. 출판때 교정지를 일부러 읽지 않고, 스물세살의 자신과 서른두살의 자신을 한책에 공존시키고 싶었다는 그녀의 의도는 성공적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주 어린, 소녀시절의 유미리도 분명히 공존하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나를 내 자신안에 가둬두기 위하여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쓰고, 아픔의 물로 내 자신을 포위하였다. 헤엄치지도, 떠오르지도, 가라앉지도 않고 침묵과 아픔 속에 정지해 있는 물고기-물고기는 때로 아픔에 겨운 나머지 입을 벌리지만 물에 에워싸여 있어 소리가 나지 않는다. 거품이 수면으로 올라갈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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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저기서 유미리의 이름이 거론되어도 난 읽지않았다. 사실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족의 이야기이니까..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난 그들을 잘 알지 못하고 어떤 순간에는 오히려 남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요즘은 바로 가족이 멀게 느껴지는 그런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읽고싶지 않았다. 아마도 읽고나면 가슴이 아플것 같았기 때문에.. 결론이 행복한 가정으로 끝이나서 속상하게 눈물흘리게 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작가는 가족이라는 굴레를 확.실.히. 벗어난듯 보였다. 어쩌면 자신과도 같은 가족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인듯 술술 풀어가는 것일까 부러웠다. 한편으로는 한 친구가 생각나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아버지께서 암이셔서 거의 일년넘게 병원에 계시는데 처음엔 울기도 하고 그러더니 요즘은 정말 다른사람 얘기하듯이 담담하게 얘기를 하고, 때론 웃으며 말하기도 하는 모습에 이젠 편하구나... 가 아닌 더욱 아파보였기 때문이다.
언제쯤이면 가족이라는 이름을 벗어버릴 수가 있을까. 아니면 정말 나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겐 너무나 눈물나는 단어는 가족이다. [인상깊은구절] "생일날, 뭐 갖고 싶니?" 이런 질문에도 뭐라 답하면 좋을지 난감하다. 갖고 싶은 것은 있지만 말을 하지 못한다. 집요하게 물으면 전혀 상관없는 갚싼 물건의 이름을 아야기한다. 동정심에 주는 선물이 아닌데도 호의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모두가 나를 배신하고 비웃고 피해를 주는 존재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
| 지금 당신이 살아온 시간들을 글로 적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면 그 사람은 그 글을 다 읽고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한번쯤 상상해 보셨나요. 물론 당신의 글솜씨가 저처럼 형편이 없다면 중도에 그 글을 다 읽지도 않고도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당신의 삶을 남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어도 좋아요. 솔직하게 저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그들은 중간중간 지루하다는 표정을 지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전 좋아요.내가 살아온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이 시간에 한 사람이라도 내 이야기에 공감과 호감을 가지고 들어준다면 전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요? 다들 졸고 있다면 저는 그제서야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가면서 그들의 잠을 깨어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어도 상관없어요. 유미리씨의 글을 읽다보면 소설속에서 당신이 만들어내는 가족(그가 살아온 시간들이 글로 표현된 가족들을 보다보면)들이 우리 가족과 별로 다를바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답니다. 언제나 자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이상의 것들을 바라고 때로는 주변 시선 때문에 내 자신의 길을 '이리가라 저리가라' 주문하고 부담스러울 정도의 관심은 이런 저를 미치게 만들지요. 이런 반응을 보이는 제가 이상한 건가요. 어느새부턴가 가족들이 한 자리에 앉아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없어지게 되었어요. 사는 것이 뭔지 다같이 모인 시간에는 고작 TV에서 나오는 바보들의 재롱만 지켜볼 뿐이에요. 거기에 빠져서 정신이 없는 눈동자 그리고 오래전에 닫혀서 이제 더 이상 열릴 것 같지도 않은 입은 서로 오늘 무엇을 했는지 물어볼 생각도 없고 궁금해 하지도 않아요. 점점 세상이 편리해 질수록 사람들간의 대화는 적어지고 그 편리함은 우리를 점점 삭막한 사람들로 만들어 버리지요. 어릴적 왕따를 당하고 자살을 꿈꾸고 부모님의 이혼.. 이 세상에서 일어날수 있는 그리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나쁜 것들은 모두 일어났지만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녀는 그런 글을 그 상처의 힘들이 지금 그녀를 이 자리까지 서게 한 것이겠지요. 아니 그런 시절들이 있었더라면 그녀는 결코 이런 글을 흉내는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지금과 같은 글은 만들어 내지 못했을거에요. 사실 이런 이야기는 백프로 솔직한 글이라고는 말할수 없어요. 멋진 단어들로 자신을 표현했다가도 때로는 처절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글속에서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웃기는군' 이런 소리를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런 글을 보다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져요. 유미리씨의 [물고기가 꾼 꿈]을 읽고나니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겉만 번지르한 강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꿋꿋하게 참아내는 오뚜기 같은 사람이 되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데 되기 위해서는..자신의 눈동자를 얼룩지게 만드는 눈물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혹독하게 매질을 하면서 자신을 담굴질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또 다시 알게 되었지만 그걸 내 몸에 적응시킬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이 세상은 불공평한 곳일수도 있어요. 누군 태어나면서부터 잘난 가족에서 호강하면서 살아가지만 어떤 누군가는 인간의 생활이라고 믿을수 없는 상황속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 살아가기도 하니까요. 태어나는 건 선택할 수도 없겠지만 그걸 제가 결정할수 있다면 전 전자 보다는 후자를 택하고 싶어요.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을 이제서야 깨닫았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무엇인지는 비밀로 부쳐두겠어요. 그것을 이 자리에서 밝힌다면 너무 재미가 없을테니까요. |
| 유미리를 읽는다 그녀는 늘 내게 아픈 이름이다 몇년전에 읽었던 그녀의 골드러시, 가족시네마, 풀하우스. 이 세편. 모두 붕괴되어버린(별로 괜찮은 표현은 아니지만) 가족의 이야기였다 이렇게까지 할 수가 있겠느냐.. 라는 의구심이 들만큼 내가 그녀의 가족, 나아가 그녀를 이해하기는 힘이 들었다 그래서 이유없이 측은해지는. 서점에 갈때마다 조금씩 그녀의 얘기들을 읽고는 종일 기분이 우울했던 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쉽게 팽겨치지 않는. 이상한 소설가. 이상한 여자. 이상한 이름, 아름다운 마을.. 물고기가 꾼 꿈. 그녀의 에세이집이다 그녀의 이십대초반에서 최근까지의 긴 얘기를 그녀는 그저그렇게 시간의 흐름이 느껴질만큼의 속도로 아무렇지않게 써나가고 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아픔과 환희와 아쉬움과 슬픔같은건, 이미 독자의 몫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그 시간을 견뎠고, 겪어냈기 때문이다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 가족을 이용하는건 아닐까 하는 유미리의 의구심이 내겐 제일 마음이 쓰이던 부분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늘 그부분이 마음에 걸렸을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뼛속까지 밝혀내도 상관이 없다고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어쩜 이렇게까지 말할수가 있을까! 하는 짧은 안타까움. 가족을 드러냄으로써, 한번두번.. 오히려 더 자주 많이 드러냄으로써 어쩌면 유미리는 서서히 상처를 치유받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앞으로도 더 자주, 가족을 드러내주었으면 한다 그녀의 최근 얘기'생명'처럼 나는 그녀, 앞으로의 삶도 이렇게 겪어내고 치유받아야 할 상처는 치유받고 행복한 그녀가 되었으면 좋겠다 벚꽃이 날리던 교정을 뒤로하고 퇴학을 당해 교문을 나서는 그녀, 극도로 말이 많은 택시운전사를 만나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그녀, 새벽3시 동생을 불고기집으로 데려가는 그녀, 바닷물에 뛰어드는 어린 그녀, 분장을 하고 연극무대에 오르는 그녀. ... 과연 그녀가 꾸는 꿈은 어떤 것일까? 유미리. 아프고 아픈 이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