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내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를 처음 접한 것은 탁석산 이 지은 [한국의 정체성]이었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는 약 150페이지 내외의 얇은 책이다. 어찌보면 논문을 살짝 편집하여 책으로 낸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이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논문보다는 비전공자인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그러나 군더더기라고는 전혀 없다. 하긴 150페이지 안팎의 지면에 군더더기가 붙을 여백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탁석산의 책에서 재미를 붙인 나는 그 이후 뭔가 영양가 있는 내용을 그 분야의 전공자에게 '쪽집게 과외'를 받고 싶을 때면 '책세상 우리시대' 시리즈를 찾았다.

'경제'
정말 나와는 촌수(寸數)가 멀다. 그래서 신문을 볼 때도 경제면은 '소 닭쳐다 보듯' 한다. 그러한 경제 문외한이 이번에는 경제라는 난제에 도전하였다.

무식한 나 같은 사람도 어깨 너머로 들은 것은 있어서 '경제란 희소성의 상황 아래서의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알고 있다.
여기서 희소성이라는 상황은 욕망은 무한하고 달성하고픈 목적은 끝이 없는데 수단이 부족할 때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술도 먹고 싶고, 짜장면도 먹고 싶고, 책도 사야하는데 돈은 딱 만원 밖에 없는 상황을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여 살때 가장 나의 만족감이 최고가 될 것인가를 연구하는 학문이 경제학이라는 것이다. (알고보니 별것도 아니구먼~)

그런데 이 책의 저자 홍기빈은 기존에 알고 있었던 경제의 관념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는 역사를 거슬러올라가 그리스시대에서 부터 경제에 대한 정의를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모든 활동은 목적과 수단이라는 두 측면으로 분석하였다. 의술의 목적은 환자의 건강을 추구하는 것이다. 환자의 건강이 목적이기 때문에 목적은 무제한으로 추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사에게 '지나치게 많은 건강'이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인간의 활동에는 어떤 활동은 다른 활동을 목적으로 하여 수단으로 종속되는 등의 위계질서가 있는데,  바로 마취술이라는 활동은 좀더 상위의 목표인 의료 행위라는 활동에 종속되는 하위의 활동이다. 이 때 정해진 시간동안 안전하게 환자를 마취하는 것은 마취 활동에서는 목적이 되지만 수술이라는 상위 활동에서는 목적한 부위의 절제나 치료라는 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취과 의사가 마취의  더 궁극적인 목적을 망각하고 마취약을 '지나치게 많이' 투여한다면 효과적인 수술을 하지 못하고 환자는 혼수상태내지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목적은'행복한 삶'이라는데 이견은 없다. 그런데 이러한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해 적당한 재산과 부가 필요하다.  마치 수술에서 적당한 마취약이 필요한 것처럼.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목적과 수단이 역전되어 '한없이 많은 재산과 부'가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저자는 우리가 추구해온 수출 주도형 정치경제가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한다.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가 수출과 고도성장이라는 것을 위해 겨레의 통일이나 민주주의 같은 이상은 파괴되고, 고도의 인간성 완성을 목표로 해야 할 교육제도는 일등에서 꼴찌까지 줄을 세워서 일 시킬 사람과  일할 사람을 나누는 모욕적인 제도가 되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온 경제적 패러다임이 잘못되었음을 알게되었다면 이제는 다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경제에 대한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