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주위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는 친구가 권해주어서 읽게 된 책입니다. 책 소개를 보시면 금방 아실 수 있는 것처럼 다산 선생의 수많은 글들 중에서 비교적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난 글들을 추려 비교적 적은 분량의 산문집으로 엮어낸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책에 수록된 다른 글들도 물론 훌륭합니다만, 무엇보다 자신의 아들들에게 유배지에서 보낸 서신들이 참으로 읽을만하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다산 선생의 아버지로서의 애틋한 심정을 가장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던 구절은 바로 "내가 저술에 전념하는 것은 눈앞의 근심을 잊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남의 아비가 되어서 이처럼 누를 끼치고 있는 것이 부끄러워 이로써 속죄하려는 것이다"라는 부분이었습니다. 한때는 누구도 부럽지 않은 촉망받는 관리였으나 이제는 졸지에 폐족의 처지에 이르게 되어 앞길이 구만리 같은 자식들의 앞길까지 막아버린 처지에서 아들들의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너무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하면, 이러한 와중에도 "잘 되는 집안의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아도 저절로 존중을 받지만 폐족이 무식하면 더욱 가증스럽지 않겠느냐"며 학문을 독려하는 모습도 소홀히 하지 않는 면에서 옛 선비다운 신념, 교양, 그리고 몸가짐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다산 선생의 학문적 성취 등을 소개한 것은 아니므로 그러한 점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읽기에 적합하지는 않겠지만, 다산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 특히 아버지로서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 지에 관하여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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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으면서도 무겁고 어려운 내용일거라는 지레 겁먹음에 차일피일 미루다 읽은 책입니다. 의외로 얇은 두께에 먼저 무거운 짐이 벗어졌고.... 책을 읽으면서는 단 한장도 정말 단 한장도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약용의 위대함이 오히려 일반인이 정약용과 가까워지지 못했다는 옮긴이의 말처럼... 정약용의 사람속에서 삶을 찾는, 그러면서도 절대 쉽지 않은 자신만의 삶과 가치관에 내내 읽으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껏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나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을 조금은 정돈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책입니다.
이제 두번째 읽기 시작하면서... 몇번씩 몇번씩 내용을 되새김질 할 작정입니다.
[인상깊은구절] 그만두고 하고싶지 않지만 부득이하게 할 수 밖에 없는 것, 이것은 그만둘 수 없는 일이다. 자기는 하고 싶으나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하지 않는 것, 이것은 그만둘 수 있는 일이다. 그만 둘 수 없는 일은, 항상 그 일을 하고는 있지만 자신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그만둔다. 하고 싶은 일이라 항상 그것을 하고는 있지만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하려고 하므로 또한 때때로 그만둔다. 이것을 잘 살피면 천하에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이다. ..... "망설이기를 겨울에 시내를 건너듯, 겁내기를 사방이웃을 두려워하듯 한다."라 했다. 아아. 이 두마디가 내 병에 약이 아니겠는가? ..... 하고 싶지 않은 것,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 남들이 알까 꺼려지는 것을 모두 빼고나면 무엇이 남나? 꼭 해야하고 반드시 하고 싶은 것, 하늘이나 사람에게 떳떳한 일이 남는다. 그것은 겨울의 시내를 건너듯이,뼛속까지 시린 일이라도 해야하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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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던 실학자 정약용은 천주교 신자로 몰려 먼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가 18년을 거기서 보내게 된다. 힘든 유배 생활 중에도 자식과 친지에게 남긴 편지들을 묶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인상적이었던 세 부분이다. 1. 뜻을 품은 자의 평상심 "한끼 배불리 먹으면 살지고 한 끼 굶으면 마르는 것을 천한 짐승이라고 한다. 시야가 좁은 사람들은 오늘 뜻과 같지 않은 일이 있으면 당장 줄줄 눈물을 흘리고, 다음 날 뜻에 맞는 일이 생기면 아이처럼 얼굴이 환해져서, 근심과 즐거움, 기쁨과 슬픔, 감동과 분노, 사랑과 증오의 온갖 감정이 아침저녁으로 변한다..(중략).. 운명의 수레는 격렬하게 구르며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 이 세상에 뜻이 있는 자가 잠시의 재난 때문에 끝내 청운의 뜻까지 꺾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나이 대장부의 가슴에는 항상 가을 매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기상이 있어야 건곤도 좁아 보이고 우주도 내 손바닥에 있는 듯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하루에도 몇번씩 작은 일에 기쁨, 슬픔, 분노 등의 감정에 휘둘리고는 한다. 하지만 정말 뜻이 있는 자라면 소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고 좀더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여야 하지 않을까? 정약용은 우리에게 이러한 '대인배'적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 2. 시비와 이해 "세상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는데 하나는 '옳은 것과 그른것(시비是非)'라는 저울이고 또 하나는 '이익과 손해(이해利害)'라는 저울이다. 이 두 가지 큰 저울에서 네가지 등급이 생겨난다. 옳은 것을 지키면서 이익도 얻는 것이 제일이다. 그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를 입는 것이고, 그 다음은 그른 것을 추구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다. 최하급이 그른 것을 추구하다가 해를 입는 것이다.. (중략).. 꼬리를 흔들며 동정을 애걸하라 하니, 이것은 세번째 등급을 추구하다 끝내는 네 번때 등급으로 떨어지고 마는 일이다" 그는 마치 4사분면으로 이슈 해결하려는 컨설턴트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중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그르고 이득'이 되는 일과 '옳지만 손해'가 되는 일 중 어느 쪽이 우선이냐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슬쩍 다른 사람이 모르기를 바라면서 '그르고 이득'이 되는 것을 먼저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정약용은 '그르고 단기적으로 이득'이 되는 일도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가장 나쁜 '그르고 손해'가 되는 일이 될 수 뿐이 없다고 말한다. 이것 역시 Time frame을 장기로 생각하는 대인배 선비 기질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3. 독서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들으니 너는 닭을 기른다고 . 양계는 참으로 잘하는 일이다. 닭을 기르는 것에도 우아하고 비속한 것, 맑고 탁한 것이 있다. 농서를 숙독하여 좋은 방법을 시험하되, 이리저리 구분해보기도 하고 혹은 횟대를 다르게 해 보기도 하여 닭이 기름지고 윤기가 흐르며 번식하는 것이 다른 집보다 낫게 하고 시로 닭의 정경을 그려내어 사물로써 사물을 풀어 보내기도 하는 것, 이것이 독서한 사람의 양계다. 만약 이익만 생각한다거나, 기를 줄만 알지 운치는 몰라서 이웃 채소밭 노인과 밤낮 다투는 자라면, 이것은 시골의 못난 사내의 양계법이다" 정약용은 폐족이 되어 생활고에 시달려 양계 사업을 시작한 아들을 질책하기보다는 도리어 잘 하는 일이라고 칭찬을 하고 있다. 도리어 '독서한 사람'이라면 무엇을 하더라도 다른 구석을 보여야 한다며 더나은 양계 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또 닭을 그림으로 풀어 사물을 이해해보라고 권한다. 이렇게 실리와 운치를 모두 추구하는 것이 정약용의 삶과 일에 대한 접근 방식인 것 같다. 우리는 정약용은 실용학문을 강조한 실학자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지식의 실용화뿐만이 아니라 선비로서의 기질, 운치를 강조한 사람이었다. 그의 실용성뿐만이 아니라 운치를 사랑하는 '교양 의식'까지 우리는 모조리 배워야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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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는 반드시 근기를 세워야 한다. 무엇을 근기라 하는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니, 학문에 뜻을 둔다면 반드시 먼저 근기를 세워야 한다. 무엇을 근기라 하는가. '효제'가 바로 그것이다. 모름지기 먼저 힘써 근기를 세운다면 학문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되는 것이다. 학문이 몸에 배게 되면 독서는 따로 그 층절을 논할 것이 없다. 나는 천지간에 외롭게 살면서 의지하여 운명으로 삼는 것은 오직 문묵뿐이다. ...... 너희들이 만일 독서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는 나의 저서가 쓸모없게 되는 것이요, 나의 저서가 쓸모없게 되면 나는 할 일이 없게 되어 장차 눈을 감고 마음을 쓰지 않아 흙으로 만들어 놓은 우상이 될 것이니, 그렇게 되면 나는 열흘도 못 되어 병이 날 것이요, 병이 나면 고칠 수 있는 약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이 내 목숨을 살리는 일이 아니겠느냐."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에 실린 내용입니다. 그는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던 강진에서 엄청나게 많은 책을 쓰면서도 틈틈이 두 아들에게 편지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되풀이해서 다짐을 두는 것은 역시 '독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독서의 중요성을 언급한 또 다른 편지글을 살펴보겠습니다. "반드시 처음에는 경학을 궁구하여 밑바탕을 다진 다음 옛날 역사책을 두루 읽어 옛 정사의 득실과 잘 다스려진 까닭과 어지러웠던 까닭의 뿌리를 캐 볼 뿐만 아니라 또 모름지기 쓸모 있는 학문 곧 실학에 마음을 두고 옛 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했던 글들을 즐겨 읽도록 해야 한다. 마음에 늘 만 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지고 읽은 뒤라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이 말하고자 한 핵심은 '올바른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군자가 되라는 것인데, 이는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도성덕립한 사람. 곧 덕을 세워 도가 이루어진 사람을 말합니다. 군자가 되고자 할진 데 무엇보다 먼저 책을 읽어야 하니, 세상 일의 갈피를 그 밑뿌리에서부터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쯤되면 독서가 모든 학문의 근본이라는 것을 알수 있겠지요.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성인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입학사정관 시대가 열렸습니다. 세상에 나가 큰 뜻을 펼치는 인재를 골라 기르려는 대학의 입장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학생이 어떤 책을 읽고, 독서의 경험을 통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가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정부가 창의적 체험활동 종합지원시스템(www.edupot.go.kr)과 학교생활기록부에 이어 강조하고 있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www.reading.go.kr)도 이런 고민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많이 읽고 제대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대학을 가는 데 더욱 중요한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역시 교육은 시대를 초월해 근본으로 돌아가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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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책을 선택할때 "제목"에 끌려서 (자석에 이끌리듯) 선택했는데, 그 선택에 처절할 정도로 "배신"을 당했을때... 정말, 울고 싶어진다. 나의 선택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그저 나의 즉흥적 발상을 탓하며 후회만 할 뿐이다. 하지만, 그 즉흥적 발상이 때론 나를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전혀 다른 사람에게 인도할땐...그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요즈음은 그 "즉흥적 발상"도 기력이 쇠잔해졌나?..별로 그 신통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 신통찮은 즉흥적 발상이 뽑은 책..."뜬세상의 아름다움"이다. 지은이를 말하자면 누구나 다..아는....식당 개들조차도 알것 같은 "다산 정약용"이다.그리고 이 책은 그의 산문집이고! 나의 그 "신통찮은 즉흥적 발상"은 이 책 덕분에 역전 홈런을 날렸다. -기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공이 담장 밖으로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환호하는 소리도 덩달아 들리는듯 하다- 이 책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천천히"의 아름다움이 묻어 있는 책이다. -나는 "느림"이라는 말보다 "천천히"라는 말이 이 책과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천천히"..그 느낌을 뭐라 표현할까?...닿을듯 말듯하게 불어오는 봄바람같다.그리고 그 봄바람속에 "소나무"향기가 난다. 아니,,"소나무"향기 같다.....어떻게 생각하면 "먹물"의 향기같기도 하다. 글자..하나하나에 "선비"의 청렴함이 느껴지고, "다산"의 정갈함이 느껴진다. 2006년을 지나, 2007년을 살아가는 나에게 내가 살아가는 이 곳이 얼마나 "쏜살같이"이 지나가고 있는지-생활도, 인간관계도, 심지어 책들까지도-"빨리빨리"를 외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일깨워 준 책이다. 비록 무식에 가까운 "한문실력"으로 인해 "뜬세상"을 잘못 알고 시작했지만, 지금은 "뜬세상"이 무언지 안다...그것만 안다..!! 독서는 "두 영혼의 해후"라고 했다.그러한 해후도 없이 강요되는 책읽기는 "쉰떡처럼"지루하다고 했다. 오늘 다산의 영혼과 나의 영혼은 해후했다. |
| 그는 재취인 어머니 밑에서 이복형제와 자라다가 아홉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큰 형수 손에 자라난 아이였다. 그는 열 다섯에 결혼하여 아홉명의 자식을 두나 그 중 여섯명을 잃은 아비였다. 그는19년을 부인과 이별하여 지낸 홀아비 아닌 홀아비였다. 누구의 삶이 이렇게도 고단하였을까? 연암 박지원을 대표로 하는 북학파의 기술도입론을 받아들여 실학을 집대성한 실학자이며, 사실주의적 시인으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의 총 500여권에 이르는 여유당 전서를 지은 대학자 다산 정약용선생이 바로 그이다. 선생의 정치적 고난과 그 고난속에 찬란히 피어난 위대한 학문적 업적은 널리 알려졌 있다. 하지만 이 위대한 학자의 인간적 고뇌와 슬픔은 그의 화려한 학문적 업적 뒤에 가려져 있었다. “뜬 세상의 아름다움”은 그동안 출판되었던 선생과 관련된 책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선생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단편산문 42편을 뽑아 번역하였기 때문이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면, 20년 가까운 유배생활동안 자식교육에 노심초사하는 아버지의 모습부터 같은 유배생활 처지에 놓여 있는 형님인 정약전의 건강을 걱정하여 개고기 요리법까지 자상하게 알려주는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지만 곳곳에서 그의 인간 됨됨이를 느낄 수 있다. 그 중 사랑하는 아들을 마마로 잃고 아이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는 읽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편부 슬하의 아홉살짜리 어린아이였던 다산 선생에게는 큰형수가 어머니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큰형수는 형제들이 벼슬길에 올라 집안 형편이 나아질 쯤에 역질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만다. 선생의 큰형수에 대한 추모시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가족사가 눈 앞에 그려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선생은 대학자였지만 이처럼 세세한 부분에도 눈을 돌릴 줄 알고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았다. 그는 인정의 줄기를 아는 사람이었다. 선생이 귀양지에서 자식들에게 학문탐구에 권면할 것을 타이르는 편지를 보면 그가 자식교육을 위해 얼마나 얼마나 많은 고민과 관심을 갖고 있었는 지를 알 수 있다. 자식들이 학문에 힘써 자신의 저서들을 집대성하여 후대에 전하는 길이 자신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는 일이요 또한 폐족의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길이라는 논리의 흐름을 보노라면 그의 깊은 고민의 흔적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의 이러한 자식 사랑으로 그의 둘째 아들 학유는 후에 “농가월령가”라는 실용주의적 저서를 남긴다. 그의 지극한 자식사랑이 결국 후대에 빛을 봤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유배지에서의 생활은 먹는 것,입는 것, 자는 것 어느 것 하나 편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그가 그토록 훌륭한 저서를 남기고 학문적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탐구열의 근원적인 바탕은 무엇이었을까? 선생이 자식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밝혔듯이 단지 “아비가 되어서 이처럼 누를 끼치고 있는 것이 부끄러워 이로써 속죄하려는 것”이었을까? 물론 가족에 대한 사랑이 동기가 되었으리라. 하지만 선생의 백성과 학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험난한 긴 세월 동안에 좌절하지 않고 학문적 성취를 이루어가게 만든 원동력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생은 중풍을 앓으면서도 저술활동을 늦추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학문적 관심이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금은보화보다도 귀한 작품들을 남겨주신 훌륭한 선조들이 계신다. 하지만 200년 전 피붙이 하나 없는 귀양지생활에서의 외로움과 중풍으로 손발이 마비되는 장애를 극복하고 수 백권의 저서를 남겨주신 다산 선생은 분명 가장 자랑스러운 선조 중의 한 분이실 것이다. 누구에게나 꼭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처럼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 얻게 된 소중한 우리의 고전이기에………(행주산성아래에서 ) 가을난초가 비단처럼 났는데 / 무성하더니 먼저 시드네 혼은 올라가니 깨끗하기도 해라 / 꽃 아래에서 놀고 있겠지 시어머니 섬기기도 쉽지 않은데 / 시어머니가 계모면 더욱 어렵네 시아버지 섬기기도 쉽지 않은데 / 시아버지가 홀아비면 더욱 어렵네 시동생 대우하기도 쉽지 않은데 / 어머니 잃은 시동생이면 더욱 어렵네 어려운 일인데도 잘하셔서 유감이 없으셨으니 / 이것은 맏형수의 너그러움이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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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제목을 접하게 된 이책은 제목이 너무나 매력적이라서 마음이 동하여 구입했다. 역사 공부할 때 실학자로 다산 정약용의 이름을 많이 들었지만...막상 그의 저서는 읽어본게 없다 싶어 구입하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은 그의 사상과는 별 관련이 없는 서간문으로 이루어진 책이라서 정약용의 개인적인..인간적인 면모를 엿볼수 있는 내용이다.
제목이 너무 시적이고 기대를 많이 해서인지 책 내용에 대해서는 조금은 실망도 했지만 괜찮은 책인것 같다. 유배지에서 아내에게 , 사랑하는 형에게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간결한 문장으로도 큰 사랑을 표현하는 정약용의 문장력이 놀라웠다. 책 뒤엔 한자로 원문이 실려 있는데 한문 실력이 부족해 읽을 수는 없었지만 한문을 잘 알면 한시나 문장을 더 잘 감상할수 있을 것 같았다.
자그마한 책으로 역사속 인물과의 감정적 교류를 할수 있다는게 푸른 가을 하늘 아래서 무척 운치있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인상깊은구절] 농아의 죽음을 전해들은 다산의 편지에서 '어떻게 마음을 추스를 도리가 없다' '하물며 너희 어머니는 품안에서 꺼내어 흙구덩이에 넣었으니 그 살았을 적의 사랑스럽고 기특하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귀에 쟁쟁하고 눈에 삼삼할 것'이라며 그처지가 되어 생각해보니 내가 그 아이의 아비임도 잊어버리고 오직 그 어미를 위해 슬퍼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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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약용에 대해서 아는 것은 예전에 읽었던 목민심서의 저자로, 그리고 역사 시간에 배웠던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서 알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단순히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보다는 한 인간으로써 그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천주교를 신봉했다하여 그의 형 정약전과 함께 귀양살이를 하게 된 정약용. 그 먼 유배지에서 그는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돌아가리라는 것을. 가족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 그리고 안타까움이 이 책의 글에 녹아있다. 한 가장으로써 가족을 책임지지 못하는 그가 얼마나 괴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 책에는 그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글도 있고, 자연과 함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글도 많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비록 유배지이긴 하지만 푸르른 강물과 아름다운 산 그리고 그가 앉아있던 정자가 상상이 된다. 자연과 더불어 그렇게 유배지에서 보낸 나날들이 그에게 있어서는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정쟁에 휘말리지 않고 눈치보지 않아도 되고, 속세의 고통과 근심을 잊고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정약용의 산문들이 원문으로도 실려있어서, 진정 그의 글을 접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새삼 그가 머물렀던 '다산초당'이라는 곳도 가보고 싶어졌다. 이 책을 들고 위로는 산과 아래로는 강이 보이는 조용한 곳에 앉아 잠시 걱정을 잊고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저 꽃과 약초, 샘과 바위들은 모두 나와 함께 떠다니는 것들입니다. 떠다니다 서로 만나면 기뻐하고 떠다니다 서로 헤어지면 시원스레 잊어버리면 그만일 뿐입니다. |
|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쉽지 않은 삶을 보내고 있다. 학창시절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직장과 사회에서 부딪혀야 하는 난관은 결코 만만치 않다. 가정을 이루고 나서도 아버지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막중하기만 하다. 여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리라. 조선의 대표적 경세가이자 학자,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다산 정약용 선생은 자신이 겪었던 그 수많은 어려움 만큼이나 절절한 목소리를 이 책에서 토해 낸다. 그가 직접 쓴 편지글들은 그야말로 사람냄새가 가득하다. 아내를 아끼고, 자식을 사랑하며, 형님을 위하는 그의 모습은 보통의 우리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다산은 인간으로서의 약점을 인정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주변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학자'로서의 바른 몸자세를 잃지 않으려 한다. 시대와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다산의 말씀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전해져 온다. 사람의 도리를 따르는데 있어서 누가 예외가 될 수 있으랴. 열심히 땀 흘리는 생활인 모두에게 권할 만 하다. 정약용 선생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지내신 분들이 얼마나 될까? |
| 나산처사 나공이 하루는 다산의 암자를 찾아왔다. 삶이란 ‘떠다니는 것’이란 화두를 붙잡고 있는 그에게 귀양살이에서 풀려 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다산이 꽃모종을 심고, 약초 씨를 뿌리고 샘을 파고 도랑에 바위를 쌓는 모양이 부질없는 짓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내가 나산의 남쪽에 암자를 튼 지 이제 삼십여 년일세.…동산과 채마밭도 가꾸지 않아 쑥대와 콩잎이 우거져도 임시변통으로 대충 수리할 뿐 아침에 저녁을 생각지 않는다네. 우리의 삶이란 것이…떠다니다 동쪽으로 가기도 하고 혹은 떠다니다 서쪽으로 가기도 하니…그 떠다니는 것은 이 순간에도 그치지 않는다네. 이런 까닭에 나는 스스로를 부부자浮浮子(둥둥 떠다니는 사람)라 하고 내 집을 부암浮菴(떠다니는 집)이라 부른다네.…”, “아아, 통달하신 말씀입니다.…이렇게 본다면 천하에 떠다니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그런데 선생께서는 떠다닌다는 사실에 홀로 상심하셔서…떠다니는 것을 슬퍼하고 계시니 또한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떠다니다 서로 만나면 기뻐하고 떠다니다 서로 헤어지면 시원스레 잊어버리면 그만일 뿐입니다. 무어 안될 것이 있겠습니까? …어부는 떠다니면서 먹을 것을 얻고 상인은 떠다니면서 이익을 얻습니다. …당나라의 장지화는 벼슬을 그만두고 강호에 떠다니면서 즐거워했고, 예찬은 강호에 떠다님으로써 역도들에게 붙잡혀 가는 것을 면하고 안락했습니다. 그러니 떠다니는 것이 어찌 하찮은 일이겠습니까?…생각해보면, 떠다닌다는 것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물에 떠다니는 것도 그런데, 어찌 땅에 떠있는 것을 가지고 상심하겠습니까?” 위 인용부호 안의 글은 『여유당전서』에 실려 있는 산문 「부암기浮菴記」의 일부다. 다산 정약용이 위대한 정치가, 당대의 대학자의 모습으로만 다가와, 바라보기만 해도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거대한 산과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중압감에 시달리게 하는 암벽처럼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뜬세상의 아름다움』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 책은 정약용에게서 ‘거대한’ 또는 ‘위대한’ 이란 형용사를 잠시 거두고 ‘따뜻하고’ ‘사람 냄새가 나는’ 그의 내면을 서정으로 가득한 시골 풍경처럼 솔직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는 산문집이다. 위대한 학자의 또 다른 내면의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이처럼 크게 얻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사람을 그가 이룬 업적만을 가지고 평가하는 오류를 종종 그리고 자주 범한다. 업적이 신통치 않으면 한없이 무시하다가도 업적이 대단하다는 판단이 서면 이내 나와 동떨어진 사람쯤으로 치부하고 마는 그런 실수 말이다. 대학자인 정약용이 누구인지 쉽게 알은 체 하면서도 정작 그의 저작은 읽어보려 하지 않은 데는 이렇듯 다 이유가 있다.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앞서면 이내 그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지는 것이 본래 우리네 성징인데 그만큼 우리가 ‘나와 다른 무엇에’ 너무 많은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약용의 여러 산문에서 선별하여 엮은 이 책에는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정과 보살펴 주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절절한 부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또한 일반의 허위의식과 현실을 떠난 이상주의에 준엄한 일침을 가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현상에 매몰되어 본질에 접근해 가지 못하는 인간군상에 대한 시비걸기도 있다. 5백여권의 방대한 저작을 남길 정도의 학문적 치열성과 공고한 현실인식은 이렇듯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애정 어린 권면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위민爲民의 정치 이상을 실현코자 혼신의 힘을 다했던 그의 철학과 사상은 ‘지금 여기서(now-here)’의 삶으로 집약된다. 위의 「부암기」 또한 그런 삶의 반영일터다. 일생을 통해 지금 여기에 발을 딛고 피땀 흘려 사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던 그에게 ‘지금 여기서’의 삶은 그의 철학이자 생활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정치 이상을 품고 참여한 정치세계에서의 추락과 18년 간의 유배 생활을 거치면서도 좌절과 절망의 그늘에 묶여 있지 않았던 것도 그의 현실 긍정의 삶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우리는 그의 산문에서 한 사람의 인간을 맨 얼굴로 대하게 된다. 숨김없이 드러난 대학자의 인간적 모습에서 나와 같은 성징의 사람이라는 즐거운 공감과 그가 몸소 살아 낸 삶에 대한 애정 어린 감정이입을 감추지 않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이 책의 첫 장을 여는 순간 그가 더 이상 나와 동떨어진 세계에 살았던 위대한 사람으로 남기를 거절하고 터벅터벅 걸어 나와 친구와 같이 형과 같이 때론 동생처럼 살가운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와의 끝없는 대화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즐거운 환상이 준비되는 것도 그 즈음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여운이 길다. 깊고 넓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