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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일이다. 전봉준을 알았으나, 교과서에서 배운 한 줄 그게 전부였다. 때로 역사 소설과 대하 드라마에서도 등장했겠지만 사적 감정들과 액션 활극이 난무하는 드라마의 틈새에서 반짝 나타났다 사라졌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 체게바라가 유행해서, 체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다니던 시절을 떠올려봤다. 공산주의 혁명의 정신이 낭만이 된 이유는 공산주의가 거의 완전히 몰락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전봉준은,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은 여전히 아프다. 100여년간 다른 이름으로 계속되어 왔기 었기 때문이다. 혼불문학상의 정신은 최명희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서 상의 이름을 따왔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한 5년전쯤? 10년전쯤 친구가 혼불을 읽으라고 보내줘서, 읽으려고 시도해본 적이 있었는데, 실패했다. 읽기에 실패한 건 독자로서 나의 문제였고, 최명희 문학관에 가서 최명희의 삶을 조명해보고, 혼불에 나오는 여러가지 장소에 대한 에피소드들과 문학관이 있는 위치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혼불의 위대함을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너무 무지했고(지금도 그렇고)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한국말인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해석이 안될만큼 모르는 소리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소설은 혼불 못지 않게 어려운 단어가 많다. 이 책이 다산책방의 나나흰 필독서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못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읽었다. 끝까지 읽지 않고는 리뷰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읽은 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무슨 책이든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감동은 맨 마지막줄이 끝나야 가시화된다. 이순신공을 엄청나게 존경하지만, 이름없는 민초들 없는 승리를 상상할 수 없듯, 동학농민혁명의 전과정이 전봉준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올해 혼불 문학상의 대상 이광재 작가는 평생 많은 시간을 들여 전봉준을 연구한 것으로 보이는 데, 얼마전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2012)를 펴내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을 들었을 때 전봉준의 활약에 서사가 집중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전봉준이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원톱주인공도 아니고, 조금 비중있게 다루어졌을 뿐, 소설은 풍전등화와 같이 스러져가는 조선 말기 정치적 상황과 동학농민혁명이라고 후에 명명한 사건의 거대한 흐름을 재현한 서사를 축으로 엄청나게 많은 인물들의 개별적인 시각을 조명하며 채워간다. 물론 교과서를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은 실패했고, 전봉준은 잡혀가서 사형당해 죽었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전봉준을 따르던 자들 왜 무엇때문에 어떻게 어디까지 일이 진전되었는지에 대해 제대로 전혀 아무 생각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전봉준을 후원하던 이들, 그 많은 군사들과 무기를 어우를 수 있는 조직력과 리더쉽의 정체가 무엇이었으며, 혁명은 어느 수준이었을까. 레미제라블을 통해 파리의 시민들이 깃발을 휘날리며 바리케이트를 치고 총칼에 맞아 죽어가던 숭고한 자유라는 그 사상적 기반을 흠모하는 동안, 우리는 글자조차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농민들이 어떻게 신분철폐와 집강소 설치와 같은 혁명적 성과를 이룬 것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집강소 들어가서 잡세는 어떻게 허며 결세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상의도 하고 큰소리도 내고 그러는디 아 그 것이 시상 없이 재밌는 일들이란 말이여. 우리 일을 우리가 결정하고 득되는 일을 하는데 힘이 안나 그런게 이 놈들이 지금까지 지들만 해 먹었등개벼284 백과사전에 찾아보니 집강소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소식을 접한 순변사 김학진은 민족적 위기를 명분으로 삼아 농민군 지도부에 회담을 제의하였고, 김학진과 전봉준은 7월 6일 전주에서 회담을 가졌다. 전주회담에서 전봉준과 김학진은 정부와 농민군이 협력하여 전라도내의 안정과 치안질서를 바로잡기로 약속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실행방법으로서 각 군현에 집강소(執綱所)를 전면적으로 설치 운영하기로 합의하였다. 회담을 마친 전봉준은 김학진과의 합의에 따라 전주성안에 전라좌우도 대도소를 설치하고, 각 군현 단위로 집강을 두도록 하였다. 전라도 일대에 집강소가 전면적으로 설치 운영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로써 농민군의 최고지도자 전봉준은 기존질서와의 타협을 실행에 옮긴 것인데, 이것은 관과의 타협으로 농민군의 세력을 보존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군의 침략이라는 민족적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데 뜻을 둔 것이었다."(인터넷 백과사전) 로 나온다. 비록 일본의 개입으로 세를 확장하지 못하고 도중하차하고 말았으나, 전라도 일대에 전면적으로 집강소가 설치되어 민주적인 방법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면, 그 기간만큼은 혁명은 성공했던 것이 아닌가. 전봉준은 그 혁명의 가장 꼭대기의 대장이었으며, 많은 동학군의 수장들이 전투를 이끌어 승리를 하고, 정책을 함께 결정하였고, 그것은 하루 이틀에 걸쳐 있었던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청국은 이가 빠져 조선을 가지고 놀더라도 뜯어 먹지 못하니 남 또한 먹지 못하게 으르렁대고 있지요. 그에 비해 일본은 발톱이 강성해진 호랑이입니다. 늙은 호랑이를 쫓으려고 젊은 호랑이를 들이는 건 하책이라 생각됩니다 99 우리는 이나라의 꼭대기에 있는 자들 그들이 만든 제도며 심법과 싸우는 것이요. 그를 지탱하는 것이 바로 적암리 연구결과 경구님 여초 토사와 방백 수령입니다154 네 세상이 버거운 게로구나...그 말에 눈시울이 후끈해졌다... 위로니 아량이니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크기가 아니라 관점을 공유하는 데서 나오는 듯하였다. 241 돌아가라. 방법을 찾지 못하거든 국적이 되지 않을 길을 구하라. 어차피 나라가 없어지면 다같이 죽을 목숨이다 .241 도대체 어떤 절박함이 자들을 부추겼던 말인가 비록 적도를 설탕 하더라도 예전 회사 그러는 돌아가지 못하리란 예감이 예감에 백날 구하는 전율 했다 관성의 따라 신선놀음 아들 그날이 그날이 냥 느릿하게 살아가는 동안 세상은 훈련장 점에 이르러 있었다 294 (<==헐... 이게 뭥미? 입력을 TTS 받아적기로 했는데, 확인을 못했음. 지금 책 없어서 집 가서 고칠 예정) 받아 먹지 못하는 환곡을 갚고 노상 부역에다 군포는 군포대로 내는 세상으로 다시 가겠느냐? 양반의 족보를 만드는데 베를 바치고 수령들 처첩까지 수발을 들면서 철마다 끌려가 곤장을 맞을 테냐 ? 이제는 그렇게 못 살지요. 우리는 이미 다른 세상을 살았는데 어찌 돌아 간단 말이냐 목숨은 소중하지만 한번 죽는 법이다. 조금 당길(? 확인필요) 때가 오거든 그리 하는 것이 사내의 일이다 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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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은 소중하지만 한 번은 죽는 법이다. 조금 당길 때가 오거든 그리하는 것이 사내의 일이다.’ 누군가의 동무였고, 누군가의 아들·지아비·아비였던 이들이 죽어갔다. 알아주는 이들이 없어도 의협심 있는 그들은 밝은 세상을 꿈꾸며 맨주먹 붉은 피로 농기구를 들고 신식무기에 맞섰다. 탐관오리의 횡포와 일본의 주구 세력들에 대항하여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 아래 들불처럼 일어난 동학농민 운동 세력들은 험난한 고개를 넘어야 했다. 또 다른 재를 넘어서는 일의 반복으로 대의가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후대의 사람들이 그 뜻을 이어받을 것이라 여기며 중심 가치를 실현하였다. 부정한 관리들을 징치하는 일에 국한하지 않고 이 땅의 민중 중심의 민주적 세상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쇄국정책을 펼쳐오던 흥선대원군은 조선의 사직을 공고히 하는 일에 관심을 모았고 기존의세도 정치의 폐단을 개혁하여 왕권을 강화하려는데 며느리 민정왕후 일파의 개화당과 마찰을 빚어 시대적 고민이 많았다. 핍박받는 민중 중심의 개혁을 주장하는 동학군의 우두머리인 전봉준에게 나라의 명운이 덜려 있음을 명심하라고 당부하는 모습에서는 기존의 녹두장군을 다룬 소설과는 다른 개연성을 담았다. 개똥이로 불리는 김개남, 통찰력 있게 전세를 살피며 전략을 편 손화중과 의기투합하여 동학농민혁명은 민중 봉기로 한 획을 그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불효와 불목, 음행 등의 죄목을 붙여 사람들의 재산을 늑탈하였고, 갖은 학정을 일삼아 민중들의 분노는 커져갔다. 전봉준이 제폭구민(除暴救民)을 역설하자 민중들은 짓눌린 채로 살 수 없다는데 뜻을 같이 하였다. 무고한 사람에게 죄목을 씌워 재산을 착취하는 등의 갖은 횡포로 동학농민운동은 발발되었다. 학정으로 부모를 여의고 전봉준 장군을 스승이자 아버지로 받아들이고 장군의 수족처럼 기민하게 움직인 을개는 장군의 딸 갑례의 뱃속에 씨를 뿌리고 대의를 위해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호정이 순정을 바칠 뜻을 내비치었을 때도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면 큰일을 못한다고 판단한 이철래는 그녀를 가슴에 품고 민중들의 민주적인 삶의 초석을 마련하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동학도들의 혁명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고민하며 권력을 기틀을 공고히 하는 일에 주안점을 두는 이들의 생각은 대화 속에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결핍은 채움으로써 갈무리되는 게 아니라 결핍은 더 큰 꿈을 꾸게 하는 근간으로 작은 안락함을 거부하고 고단한 길 위에 서게 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부패와 결핍으로 균형을 잃은 조선의 형세를 간파한 청과 일은 조선을 좌지우지하려는 욕심을 내세워 조정과 밀착되어 야심을 관철하려는 야욕은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에 맞서 전봉준은 도탄에 빠진 창생을 구제하기 위해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를 징치하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을 물리치려는 격문을 선포하고 민중들을 규합하였다. 전의를 모아 전략을 펼 때도 신중하게 대처하길 바랐던 전봉준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생명을 유린하는 일은 삼가도록 당부했다. 변방에서 강적에 맞서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열세인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기에 민초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고 인내심과 치밀한 판단력으로 책임감 있게 행해야 했다.
존엄한 개체인 생명체로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둘러싼 선택은 현재적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민주적인 세상을 꿈꾸며 비전을 실현하려는 뜻에 함께 하는 동학도들을 규합할 때, 전봉준은 신식 병기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 의지와 힘으로도 안 되는 일에 대하는 두려움은 공포로 자리할 수 있음을 간파하고 세력의 힘을 모아갔다. 청국에 지원병을 요청한 조선의 정세를 살피며 일본은 조선에서 주인 행세를 하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운현궁으로 들이닥친 스기무라 일파는 대원군을 설득해 일본의 뜻에 따르기를 종용하였지만 그는 일본의 만행에 맞섰다. 하지만 김홍집을 위시한 관료들은 평양 전투 이후 삼남의 동학당을 소탕하라는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여 관군의 총격전은 맹렬했다.
이노우에 공사가 지휘한 동학의병 토벌작전으로 일본군과 조선 관군의 조직적인 공세에 직면한 동학의병은 연이은 전투에서 패배하였고 우금치전투의 대패로 아래로부터 거세게 일어난 동학 혁명의 불길은 사위어갔다. 김개남, 전봉준, 손화중 등 동학의병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乙’이라는 표식을 유산처럼 남기고 떠난 을개의 뜻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갈 것이다. 갑례의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체로 자란 도치 역시 아버지 을개의 뒤를 이어 민중들의 음울한 삶을 거두는 희망의 빛으로 성장해 역사의 진보를 위한 먼 길을 향하는 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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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 나나흰 3기 활동 중이다. 다음 미션 도서가 이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담당자가 바뀐 후 신청을 받으시는 글을 읽고 '나는 문학 작품은 별로 즐겨 읽지 않으니 더 읽고 싶은 분께 기회를 넘길 수 있으면 넘기고 싶다'고 했는데, 역시나 방식이 바뀌지는 않았는지 책이 배송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역사 속에서 문학이라는 틀로 현재를 어찌나 잘 성찰해 보여주는지 안 읽었으면 어쩔뻔 싶을 만큼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비문학에 비해 문학작품이라 책장도 잘 넘어갔다. 저자는 전북에서 태어나 전북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전라도 각 지역을 직접 밟으며 취재하고 고증해서 썼을 듯한 소설 전체를 읽으며, 전라도 말씨가 그대로 살아 있는 문체를 읽으며, 무엇보다 2012년에 전봉준 평전을 펴내기도 했고 자기 출신 지역 조상들이었던 민초들의 투쟁을 글로 재현해낼 때의 진솔함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떠올리게 만드는 생생함까지. 여러 모로 혼불문학상 수상에 적합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종종 전주국제영화제 내려갔다가 밟았던 전주한옥마을, 전북대학교, 전주 각 지역, 혼불문학관과 최명희가 생각났다. 게다가 소설을 다 읽은 직후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광주까지 운전해서 다녀오면서 교통 표지판에서 이 소설에 나온 지명들을 자주 만났고, 정읍휴게소 별명에 '녹두 장군'이 써 있어서 괜히 반가웠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가 시기적으로 근대를 지나면서 겪었던 갈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원군과 친일파, 전봉준을 위시한 동학농민군들 각자의 입장과 그에 따른 대처 방식을 보여준다. 저자는 후미의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왜 하필 그 시기를 배경으로 삼았는지 드러내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문제를 생각하려니 어디서부터 왜 잘못 되었는지를 돌아보아야만 했다고, 그래서 그 시기로 돌아가보았다고 한다. 소설 안에서는 직접 드러나지 않았던 강한 논조가 작가의 말에서 사뭇 드러난다.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문사철이 해야할 일이 바로 저자가 하고 있는 이런 일이 아닐까. 그때 어떻게 되었다면 우리나라는 좀 더 좋은 나라가 되었을까. 결말을 알고 있는 영화를 보듯 우리는 이미 전봉준과 동학농민군이 패배하리라는 사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리라는 사실을 알고 이 소설을 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군이 이겼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조마조마해하며 책장을 넘긴다.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위험하게 살면서 오히려 민초의 안전을 지키고자 했던 그들의 승리를 기원했다.
내용이야 어떻게 되었든 시기적으로 근대를 지나고 있던 그때 계급사회에서 벗어나고자 잠깐이나마 도했던 민주주의를 읽는 일이 짜릿했다. 농민군들이 생업을 내던지면서까지 이 싸움에 동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래 등장인물이 주장하는 바처럼 경제적인 이득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좀 더 가치로운 것을 지향하며 수평적으로 자유롭게 더 좋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보람 때문이었을 테다. 이 긴 이야기 속에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이 평범한 사람의 주장이 주제와 작가 의도를 잘 드러내주는 듯해 옮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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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교과서 논란이 뜨겁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라고 하지. 과연 국가가 집필하고 내보일 역사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들을 두둔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나라 없는 나라>는 동학농민혁명과 그 중심에 있었던 전봉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얼마나 실감 나고 처절하게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있는지 거대한 대하소설을 보는 듯하다. 서사의 힘도 강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현재로 끌어내오는 감동! 나라는 있으되 없는 것과 다름없었던 그 시절, 역사 속 민초들의 끊임없는 생명력과 의지. 일본과 청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싶었던 국민들의 강렬함. 그때 나라가 그들에게 해 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들을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어쩌면 오히려 그들을 위태롭게 내 몰았던 것은 아닐는지. 역사 속 이야기들은 결말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진다. 어쩔 수 없이 그 커다란 비극적 회오리에 몸을 내맡길 수밖에 없었던, 끊임없이 저항해도 휩쓸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비극성 때문일까. 격변의 시대 속에서도 오직 어쩌면 자신의 야망을 위해 이용하려 했던 위정자들. 그들은 그렇게 민초들의 꿈을 앗아가버린 것은 아닐까. 더 안타까운 것은, 지금 현실에서도 우리는... 그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지. 나라의 적은 외세가 아니라 어쩌면 백성을 외면하는 위정자들이 아니었을는지... 백성들이 꿈꾸던 세상, 살아 숨 쉬는 듯한 캐릭터들과 그들의 절박함에 나도 모르게 울컥 가슴이 뜨거워졌던 소설, <나라 없는 나라>! 딸에게 그저 '살아남아라'라는 말 밖에 건넬 수 없었던 아버지의 슬픈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와서 내내 여운이 남았다. 읽어내기가 무지막지하게 무거웠던 소설... 비극적인 현대사를 책임져줄 나라, 그 나라는 정녕 우리에게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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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야 새야 파랑새야’로 시작되는 노래는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하던 녹두장군 전봉준의 거사실패를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왕조시절, 무지렁이 백성들은 무슨 짓을 해도 꼼짝 못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지배층에 팽배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고,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옛말처럼 순박한 것 같은 백성들도 궁지에 몰리면 수를 내게 된다는 것을 동학농민운동에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이 극에 달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농민들이 민란을 일으킨 것이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봉기가 전개되고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5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이광제의 장편소설 <나라 없는 나라>는 동학농민운동에 관한 다양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하고, 읽는 맛을 더하기 위한 약간의 픽션이 가미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읽히면서도 봉기 전후의 긴박한 상황에는 호흡이 거칠어지는 느낌이 절로 드는 실감나는 책읽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담대한 사내라고 하더라도 대사를 앞두고는 심리적 갈등이 많았을 터이다. 작가가나라 없는 나라>를 통하여 묘사하는 전봉준 개인의 심리적 고뇌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기에 더 몰입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거사를 일으키기 전에 임오군란의 실패로 권력의 뒤안길로 물러나 있던 대원군과 전봉준이 만나 교감하는 장면이나, 동학농민운동을 빌미로 하여 일본을 끌어들여 갑오경장 때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젊은 개혁파들의 행보가 과연 무엇을 지향하였는지 다시 새겨보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개혁도 나라가 있는 다음이어야 할 터인데, 그들은 근대화된 일본에 매몰되어 일본의 시커먼 속셈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동학군 역시 청국과 일본이라는 외국세력들이 반도에 밀고 들어오는 빌미를 제공한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20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던 1894년 무렵이라면 프랑스혁명의 영향을 받아 시민계급들의 고조된 인식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졌을 터입니다. 급박하게 변하는 세상의 움직임에 조선의 지배계층만이 눈을 닫고 있었으니 나라를 빼앗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 있었던 셈입니다. 백성들까지도 누가 도둑인지 알고 있는 마당에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이 기댈 언덕을 찾아 우왕좌왕한 셈입니다. 과연 동학농민군은 대원위대감에게서 희망을 읽었던 것일까요? 그렇다면 상황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보다 긴밀한 접촉이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청국의 파병에 따라 서울에 들어온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대원군을 허수아비로 세워 새로운 정권을 수립한 상황에 따라 동학군이 다시 세를 규합하여 서울로 향하는 과정이 보다 선명하게 그려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첫 대면에서 ‘나라의 명운이 그대들의 손에 달렸음을 명심하라. 조선의 마지막 기회니라(25쪽)’라며 기대를 품었던 대원군이었다면 전봉준과의 접촉을 보다 긴밀하고 은밀하게 가져갔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라 없는 나라>에서는 동학군을 이끄는 무리들의 최종 목표가 중앙권력을 나누는데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거병을 하면서 전봉준이 내세운 바는 탐관오리의 숙청과 보국안민에 있다고 밝혔던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감추어진 진실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기는 합니다. 일본군이 뒤를 받쳐주는 관군에 밀려 결국은 패퇴를 거듭하는 동학군의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면서 정보와 지리에서의 이점을 살리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마무리를 싸움터로 떠난 정인의 생사를 뒤쫓는 두 여인의 모습을 그린 것도 아쉬운 점의 하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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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에서 문제가 되는 몇 구절을 찾아보았다. 읽어나가다 보니 마음에 와서 체크를 해놓은 부분이다. 책갈피를 넣어 두고 읽어나갔는데, 그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 메모를 하고 감동을 받았다. 그 내용을 읽는 분들과 공유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고 싶어 하는 부분이 아니랴 생각된다.
우리는 백성에게 주어진 유일한 길로 가려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대원위 한 사람의 힘이나 몇몇 개화당의 힘으로 구할 수 없을 것이요. 하물며 민씨 일족을 일러 무엇하리요. 호의호식하는 자들이야 배만 채워지면 나라가 넘어간 들 눈이나 깜짝하겠소? 하지만 백성들은 그로부터 더욱 험한 꼴을 겪을 것이매 어찌 싸우지 않는단 말이오. 그를 일러 역모라 하면 과연 그렇겠지요. (P67) 동학이 일어선 이유가 분명히 밝혀진 부분이다. 저자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농민들이 왜 목숨을 걸고 무기도 변변치 않으면서 궐기했는가? 하는 것을 분명하게 제시해 준다. 백성에게 주어진 길을 가려고 한다고 말한다. 어느 누구가 시대를 바꿔줄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그 백성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동학이 역사적 가치를 지니는 혁명으로 인식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장들을 통해 그들의 아픔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농민혁명의 당위성이 제시된다. 비록 실력이 딸려 실패로 돌아간 아픔이 있지만 말이다.
여세를 몰아 동장사 이복용이 미리 와 싸우던 둔사를 질러 깃발을 들고 용머리고개 북편에 달라붙었다. 그러나 그곳은 홍계훈이 직접 진을 차린 곳이라 저항이 거셀 뿐 아니라 화력 또한 다른 곳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유연대와 다기봉에서 후퇴한 병사가 가세하여 방어벽은 더욱 튼튼해지고 화력 또한 확연히 두터워졌다. 고개를 오르는 군은 마침내 적에게 저지되어 총이 무디어지기를 바짝 엎드려 기다릴 따름이었다.(P167) 전쟁을 하는 장면이다. 농민군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싸웠는가를 보여준다. 그들이 열기 하나로 기세를 타고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놓은 처절함이 보여 진다. 무기도 싸움의 지혜도, 군사들의 단련도 부족한 상황에서 일어난 싸움 현장이다. 그들의 비극적인 결과를 예견해 볼 수 있게 만드는 부분이다. 오늘의 입장에서 보면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정의보다는 그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겠다고 버티는 상황에서 칼자루를 쥐지 못한 피지배층이 밀리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고부의 호방을 자리에 꿇려 싹싹 빌게 하고 단칼에 베는 것을 살아갈 구실로 알았지만 이제 그것은 저 먼 어디로 물러나 티끌만 한 관심거리도 아니었다. 도리어 그 강렬하고 뜨겁던 삶의 원천이 세상과 너무나 동떨어져 보여 그런 생각으로 살았을까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무서워진 것일 수도 있고 사내다워진 것일 수도 있지만 둘 다이거나 또 다른 어떤 모양일 수도 있었다. 바다 같던 호수가 나중에 보았을 때는 작은 방죽이던 것처럼 거창해 보였던 것들이 개울의 조약돌처럼 실은 작고 하찮게 여겨졌다. 생각해 보니 달라진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살고 있는 세계인 것도 같았다. 초가집이 있고 꽃은 여전히 피고 지건만 그 모두가 실은 예전 그대로가 아니라 새것이었다.(P213)전봉준을 따르던 인물로 묘사된 을개를 통해 세상에 대한 의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지난 시간 묵묵히 기득권자들이 하자는 대로 맹종하면서 살았던 세월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경험은 그들에게 새로운 안목을 준다. 착취와 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인지하게 되고, 그것을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농민혁명의 위대한 힘이다. 이 힘이 그들을 조직으로 만들고, 거대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가 되었다.
그게 아니라 집강소에 들 때부텀 마누라와는 벌써 싸움이 잦았소. 무슨 중뿔 났다고 그런 델 참여하느라구. 이러다 소작도 떨어진다구 난리 난리 그런 난리가 없습디다. 내미럴, 중뿔도 없으니 이런 일에 나서지 아니면 미쳤다고 나서겠수? 어찠거나 집강소 들어가서 잡세는 어떻게 하며 결세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상의도 허고 큰 소리 내고 그맀는디아, 그것이 세상없이 재밌는 일이드란 말여. 우리 일을 우리가 결정하고 득 되는 일을 허는디 신이 안 나? 그렇게 이놈들이 지금까지 지들만 해먹었등개벼.(P282)당시 사회가 얼마나 부패해 있었던가를 잘 보여준다. 왜 농민혁명이 일어나게 된 것인가도 알 수 있게 해주고, 농민세력 지도부가 어떠한 해결책을 내어놓았는지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집강소 설치는 참 현명한 제시안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민주주의의 일단을 보는 듯해서 마음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사투리가 더욱 실감나게 만들어 준다.
내일은 큰 싸움이 날 텐데......선생님은 안 무서우세요? 전봉준이 희미하게 웃었다. -너는 무서우냐? -무섭습니다. 무섭고말고요. 바람에 바닥의 눈이 송진 가루처럼 쓸려 다녔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소나무가 와지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주위는 참지 못해 지르는 군사들의 신음이 꼭뒤에 닿았다. -받아먹지 못한 환곡을 갚고, 노상 부역에다 군포는 군포대로 내는 세상으로 다시 가겠느냐? 양반의 족보를 만드는 데 베를 바치고 수령들 처첩까지 수발을 들면서 철마다 끌려가 곤장을 맞을 테냐? 을개의 목소리가 퉁명해졌다. -이제는 그렇게는 못 살지요. -나도 그렇게는 못 산다. 우리는 이미 다른 세상을 살았는데 어찌 돌아간단 말이냐. 목숨은 소중하지만 한 번은 죽는 법이다. 조금 당길 때가 오거든 그리하는 것이 사내의 일이다. 다시 바람이 불고 눈가루가 날렸다. 전봉준이 물었다. -지금도 무서우냐?(P301) 불리한 여건에서 전투를 앞두고 주인공들이 나눈 대화다. 결국 이 전투가 마지막 전투가 된다. 그들이 왜 능력이 부족함을 느끼면서도 전쟁에 물두할 수밖에 없는가를 잘 그려준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지난 세상의 모습은 그들에게 옥쇄를 결심하게 하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아마 이 부분에서는 승리라는 것을 마음에서 접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농민의 우두머리들은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있다. 수많은 농민들이 일제의 총칼아래 쓰러져간 것이고, 일본이 한반도에서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결국 나라의 수치로 만들어져 갔다. 그 과정에서 지각이 있었던 배운 자들의 민족의식 또한 가슴 아프게 한다.
참 공감하면서 읽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들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삶이 무의미할 것이다. 그 삶을 목숨을 걸고 개척해 나가고 찾아가야 한다고 동학혁명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전봉준의 그 기상과 외로움이 잘 표현되어 있는 글이다. 지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두가 한 번쯤은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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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를 만날 때 우린 당쟁이란 말을 먼저 떠올린다. 위정자들이 많은 시간을 당파 싸움으로 지새우면서 백성들의 사정보다는 자신들의 자리보전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공인이라면 그들의 바탕이 되는 민중들의 삶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으랴. 그런데 사람들의 보편적인 자세가 자신과 자신이 소속된 가문의 보전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그것이 정쟁으로 이어지고, 민중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 갔다.
당시의 백성들은 봉이었다.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하지 말라는 대로 하지 않았다. 내라는 대로 내고, 오라는 대로 갔다. 그들의 의지에 의해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다. 자신들은 먹지 못하지만 관리들은 배부르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아무 말도 못하고 매를 맞으며 꾸역꾸역 살았다. 참람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운명인 듯 생각했고, 변화를 바라볼 수 없었다. 그 변화를 생각하는 것은 나라에 대한 배반으로, 역적의 누명을 쓰기 때문이다.
이런 참람한 상황에서 의식이 깨어난 사람들의 중심이 되어 일어난 민중 봉기가 동학 혁명이다. 1894년 일어난 그 동학혁명은 민중들의 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민중들이 스스로 그들의 삶을 결정하고, 생활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경험은 그들에겐 신선한 일이었다. 집강소를 설치하여 관리들과 행정을 나누어서 처리했던 그들의 경험은 세상의 변화를 구하는 힘이 되었다. 비록 공주 중심의 전투에서 일군에게 전봉준 부대가 폐퇴하면서 그들의 꿈이 일시적으로 꺾였지만, 그것은 꺾인 것이 아니었다. 민중들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그들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 소설은 동학혁명을 중심으로 표현해 나가고 있다. 당시의 중심이 되었던 인물들을 연결하면서 새로운 인물들도 제시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나가고 있다. 이철래라는 인물을 통해 지식인 중에서도 동학에 동조하는 인물이 있음을 내비치며, 동학의 당위성을 드러낸다. 또 친일파의 한 사람인 김교진의 딸이 이철래를 따라 동학의 중심으로 들어가 살아남게 함으로 많은 의미를 심는다. 그리고 전봉준의 딸 갑례를 전봉준과 생사를 함께한 을개라는 인물의 아이를 잉태하게 만들어 살아남게 하면서 뒷날을 기약한다. 이런 일들을 통해 민중들의 면면히 이어지는 기운을 표현해 내고 있다. 또 대원군과 전봉준을 연결하면서 외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현해 내고 있고, 일본의 힘에 붙어 경장을 해나가는 일부 친일파들에 대해 암살 기도를 하는 상황을 제시하면서 자주의 깃발을 드러내고도 있다. 이들은 동학이 어떠한 목적으로 일어난 것인가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한다. 외세에 대한 거부, 권력자들에 대한 징치를 통해 바람직한 나라를 만들어 나가길 원하는 것이다.
이 글은 제목을 ‘나라 없는 나라’라고 명명했다. 나라라는 것은 그 구성원들을 보호하고 잘 살게 만들어 나가야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이 글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민중들은 나라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나라의 폭압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야 할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에겐 나라는 없는 것이라 봐도 무방할 듯하다. 그것이 이 글의 제목이 되었다. 민중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나라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라를 얻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일어선 그들의 행보가 이 책의 줄거리가 되었다. 그러기에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의 흐름대로 가는 것이고, 이들의 행함이 역사에 어떻게 의미를 가졌는가가 오로지 문제가 된다. 글은 다음 세대가 어떻게 이 정신을 이어받아 그들의 삶으로 만들어갔는가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면 된다. 도도하게 흐른 이 남녘의 사람들 움직임이 그곳에 흐르는 금강처럼 후대에 지속적으로 가슴 면면에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글은 그러한 구성이 잘 되어 있다.
이 글은 역사소설이다. 글의 내용들이 실존 인물들과 실제 사실들이 많기에 상당히 제약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일이라든지, 병사들의 대화 등을 통해 당시의 내용을 실감나게 묘사해 내고 있다. 우리가 실제 함께 있듯이 그들의 삶을 살펴보게 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에까지 드러나 보게 하고 있다. ‘을개’라는 인물, ‘더팔이’라는 인물 등은 소설 속에서 소중한 구실을 하는 자들로, 이야기가 활기 있게 이끌어져 나가게 하고 있다. 재미적인 요소도 가득하게 해준다. 참 잘 표현했고, 구성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글이 혼불 문학상을 탄 이유도 잘 알 듯하다. 인간의 정신을 의미있게 표현하며, 그들의 이야기도 흥미롭게 만들어 나간 솜씨가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제 5회 혼불 수상에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쓰시길 기원하면서 너무 의미 있게 읽었다고 말하고 싶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당대의 시간들과 개개인들의 마음의 고충을 만났으면 한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위정자들이 이러한 책들을 통해 민중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성찰했으면 한다. 공인의 입장에서 사리사욕은 금물이다. 그것은 타인을 배반하는 일이다. 오늘의 민중들은 상당히 지혜롭다. 또 선거철이 다가온다. 이러한 책은 오늘에 큰 의미를 가지고 다가올 듯하다. 진정으로 민중들을 위하는 사람들, 그들이 공인이 되어야 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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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한 사실의 역사도 좋아하고 허구가 섞인 역사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유난히 근.현대에 들어서는 우리나라의 역사는 가깝게 하기가 고대보다는 어렵게 느껴진다.
그것이 고대의 삼국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독립된 하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마치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면서 친근감이 든 반면 근. 현대사는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와 거의 맞물리는 결과물의 근접적인 시대로서 가깝기 때문에 역사의 한 흐름으로만 알고 있고, 더군다나 대원군 시대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외세의 간섭들이 등장하는 시대는 더욱 그렇다.
매년 혼불 문학상을 접해 오면서 계절에 따라 달리 바꿔 입는 옷 같단 생각을 하게 된다. 공통적인 이야기들의 소재가 아닌 다양하게 출품된 작품들의 선의의 경쟁 구도 속에 심사위원들의 선정작으로 결과물이 나왔단 사실은 이미 그 실력을 입증하는 것이기에 작년에 이은 이번에 접한 작품 또한 그런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선 옆에 손수건 하나 준비하시길~ 이 말부터 하고 싶은 것은 의도된 눈물의 흐름이 아닌 내재되어 있던 우리네 한(恨) 서린 감정들이 막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녹두장군으로 불리는 전봉준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이 책은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인 인물과 당시의 흐름들을 저자의 필치로 다시 탄생한 작품이다.
비채에서 나온 한승원 작가의 <겨울잠, 봄꿈>늘 통해 이미 전봉준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지만 이 소설은 그와는 또 다른 색채를 가진 작품이다.
동학혁명의 실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전봉준과 그 밖에 지역의 농군을 수합하여 일을 도모하는 과정, 동학의 5대 장군에 속하는 손화중, 김개남, 김덕명, 최경선의 마치 살아있는 듯이 움직이는 독창적인 캐릭터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다가온다.
시대적인 역사의 격변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한 부분들이 전봉준의 딸 갑례, 죽을 각오로 전봉준을 지키는 을개를 비롯해서 막둥이 호정이란 가상의 인물들 출현을 통한 당 시대의 각자 처한 흐름을 시종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하는 조절의 완급이 상당히 좋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책이다.
한 나라의 말, 즉 언어에는 매초, 매 순간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변화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봐도 사극을 볼 때는 어려운 고어 체라고 부르는 대화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에 반해 요즘엔 소위 말하는 퓨전의 시대란 이름과 시청률을 외면할 수 없는 방송가의 흐름, 젊은이들을 가까이 끌어들이려는 마케팅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사극만이 주는 그 어렵게 느껴지고 때론 그런 말을 들음으로써 생각의 폭이 그 시대로 돌아가게 하는 맛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 요즘의 실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당시의 문어체적인 대화법으로 당시의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기에 한순간의 결정이나 대화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무게감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나라가 있으되 나라가 없는 상태로 돌아갔던 그 시절의 위정자들의 이해타산, 본격적으로 열강의 침입이 시작되기 바로 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전봉준의 일대기는 큰일을 하기에 앞서 아비로서 딸에게 대했던 대화들이나 대원군과 전봉준의 대화나, 어디가 사실이고 허구인지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작가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 아닌가 싶다.
요즘 연일 국정교과서 문제, 일본과의 문제로 시끄럽다. 위정자들은 이에 대한 갑론을박을 벌이고 각지의 전문가들마저도 저마다의 의견을 내놓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나라가 없다면 우리도 없으며, 아무리 우리의 실체가 있다고 하더라도 나라의 본 실체가 주어지지 않는 한 세상의 정세는 이해의 눈길을 기대할 수 없다는 엄연한 냉정한 세태, 이미 그런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던 전봉준의 일대기를 통해 무엇이 가장 시급한 일인지, 앞으로의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떻게 설계를 해야 할 것인지, 나라를 지탱하고 지켜 온 우리의 조상들의 뜻을 다시 새겨야 할 후손으로서의 책임감을 느껴주게 하는 책이다.
오래간만에 우리나라의 살아있는 역사를 본 것 같은 펄떡임이 살아있는 책! 다시 한 번 일독을 하더라도 그 흥분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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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나라 없는 나라>는 혼불문학상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소설이었습니다. 눈물 한 줌 흘리며 읽었네요. 혼불문학상은 한국의 혼을 일깨우는 우리시대 대표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한 상입니다. <나라 없는 나라>는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을 다룬 역사소설이예요. 백성들이 들고일어난 을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역사소설이 간간이 있는데, <나라 없는 나라>는 특히 읽는 맛이 괜찮았어요.
요즘은 사용하지 않는 의고체로 쓰여 모르는 단어도 제법 나오긴 했지만, 읽는데 거슬리는 느낌은 없었고요. 참 진중하게 쓰인 작품이구나 싶었어요. 멋 내려는 의고체가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에 진중함이 실려 있는 느낌입니다. <나라 없는 나라>는 대원군이 난을 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 시대 배경상 나온 인물이려니 했는데, 전봉준과 대원군의 만남이 이뤄지더라고요. 운현궁에 묶여 유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대원군과의 만남이라니. 전봉준과 대원군 간의 밀약설은 들어본 적 있지만, 이렇게 책에서 만나니 신선했습니다.
백성을 위해 죽을 각오로 뛰어든 전봉준. 그는 “백성이 가난한 부국이 무슨 소용이며, 이역만리 약소국을 치는 전장에 제 나라 백성을 내모는 강병이 무슨 소용” 이나며 “나라를 파는 자는 온 조선의 자객의 모아서라도 도륙을 하고 말 게야!” 라고 한 대원군의 말처럼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 중 어느 정도는 같은 방향을 향했습니다. 전봉준은 반상 구분 없이 두루 공평한 세상을 꿈꿨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시민정신을 가진 계몽가이지 않았나요. 당시 당연하게 여긴 패러다임을 바꾸고자 한 전봉준입니다. 하지만 대원군은 백성이 모두 주인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는 부국강병을 외친 부분에서 전봉준과는 길이 갈리긴 합니다. 대원군 입장에서는 전봉준이 이끈 농군이든 일본파 개화당이든 모두 현재의 아군이되 미래의 적임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의 한 꼭지를 역사소설의 소재로 할 때 추측과 상상이 첨가된 세밀한 묘사가 많긴 하지만, 주변 인물 이야기는 그 나름대로 또 쏠쏠한 재미를 줍니다. 전봉준을 가까이에서 지켰던 을개라는 인물은 조연감이네요. 도끼를 양 손에 들고 다녔다 해서 불린 쌍도치 을개의 이야기도 찌릿찌릿해요.
전봉준은 당시 김봉집, 김봉균, 녹두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는데 대원군이 그의 본명을 물었더니 그가 한 말이 기억에 남네요. “ 항차 백성의 가슴에 새겨지고 그네들이 불러주는 이름이 참 이름이 될 것입니다. ”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하고 확고한 뜻을 세운 자들이 거사를 진행합니다. 우리가 현재 부르는 동학농민혁명인 겁니다. 당시 조선은 청을 업고 기세등등한 민씨들의 세상이었고, 일본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민요가 일어나면 늙은 호랑이를 쫓으려고 젊은 호랑이를 들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도 있었지요. 하지만 백성들은 싸우길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농민군의 두령 자리에 선 전봉준의 어깨에 얹힌 짐은 정말 어마어마했을 것 같아요. “ 우리는 백성에게 주어진 유일한 길로 가려는 것이다. ”- p67 “ 우리의 세상은 이 세상 너머에 있소. ” - p68
권력에만 집착하는 벼슬아치들을 몰아내며 농군은 승전과 패전을 오가며 관군과의 전투를 이어나갑니다. 하지만 우려했던 일이 생기지요. 조정에서 청을 끌고 들어오자 일본도 출병한 겁니다. 외방의 군사가 들어오게 되어 버렸으니 농군은 스스로 퇴산해야 할지 고민도 해봅니다. 하지만 평화를 유지하며 질서를 회복한다고 외방의 군사가 물러날까요. 이제는 단단히 한몫 잡으려는 일본과의 싸움으로 진행됩니다.
백성도 을이요, 나라도 을이었던 시기. 의지와 힘만으로는 안 되는 상황을 보며 갑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의 모습과 다를 바 없기에 더 공감되지 않나 싶어요.
제5회 혼불문학상 심사위원이었던 현기영, 류보선, 성석제, 이병찬, 하성란 작가의 코멘트도 있는데 <나라 없는 나라>는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어찌보면 흔한 소재를 새로운 관점으로 드러낸 걸 강조하네요. 전봉준과 대원군의 긴밀한 관계, 민중 중심의 민주적 세상을 위해 의견을 내비친 사람들 등 그저 탐관오리 징치가 아닌 동학농민혁명의 또 다른 모습을 제시했다 평합니다. <나라 없는 나라>를 읽으며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을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소설이다 보니 울컥울컥 하는 장면이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역시 가슴 찡하게 하는 장면이 곳곳에 있네요. 그런데 그런 장면들이 참 담담하게 슬쩍 튀어나옵니다. 쥐어짜지도 않으면서요. 그래서 더 여운이 남는 감동을 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 이 소설은 내 문학의 프롤로그다. ”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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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없는 나라라는 말이 하필이면 지금 읽을 것이 모람.... 한국사를 국정에서 만들어버린다고 하면 지금의 역사란 무엇인지....
제5회 혼불 문학상을 받은 이광재의 작품으로 제목처럼 나라 없는 나라가 뭘 상징하는지 알수 있을 것 같은 추측을 시대적으로 딱 맞게 등장했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일본의 만행을 기록 등재를 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하였고 , 현재 국정 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국가의 행위에 대해 한번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라고 생각이 든다.
우리가 동학 농민 운동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모른다. 재해석이 아닌 그대로를 잘 인식할수 없었던 과거의 한국사 교육 실태....
그러한 것을 이광재 소설가가 스포일러가 될수 있는 동학농민운동의 이야기로 소설화 하였다.
무섭다기 보다는 너무나 생생하게 역사적 흔적을 훔쳐보기 아니 그자리에 서서 함께 역사를 같이 움직이듯이 나열하는 문장부터
우리가 역사라고 치부했던 사건의 연계성이 이리 잘보여있으니 사실과 허구가 공존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상상의 역사 기록물로 치부해도 좋을 만큼 생생하게 이야기로 풀어간다.
흥선대원군과 전봉준의 만남을 시작으로 불꽃이 튀기 시작한다. 민심의 흔들림으로 나라가 변할수 있고 청나라와 왜나라 사이에서 존재하게 만들고 싶은 열정....
옛스런 문체로 풀어가면서 어렵지 않게 술술 풀어가는 형식으로 혼란스러운 조선의 말기에 민봉의 반란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억스스럽고 그들의 삶이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문장 하나 하나에서 전달이 고스란이 되다보니 간만에 문학적인 감흥을 떠나서 함께 분노를 표출하면서 읽을 수 있는 문장의 글이 실려 있는 소설이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고 소설은 과거의 기록을 살려내는 생명장치를 더불어서 넣을 수 있는 도구이기에 좀 더 동학 농민의 전봉준의 필두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달되는 소설이기에 이 가을에 읽기에 좋은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