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랭보는 처음 영화로 알게 되었다. 그 영화의 내용만 보고 조금은 불순한 목적(흥미대상)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전까지 랭보는 제멋대로에다가 광인의 동성애자 정보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시를 위해 자신을 일부로 최악의 상황까지 파탄시켰다는것 그리고 그에게 있어 시는 그의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소중한 그 무엇을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랭보의 유년기 부터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의 모든 여정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두꺼운 분량으로 겁을 먹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랭보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기쁨으로 두려움 따위는 잊어먹게 된다. 마지막으로 내 견해는 이책은 한번에 다 읽기 보다는 중간중간에 잠시 멈추어서 그 시대상황과 랭보가 그러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나는 어떨지 등을 생각하며 읽는다면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 이 책은 랭보의 평전이다. 아르뛰르 랭보는 프랑스의 ''조숙한'' 천재시인이다. 그가 쓴 작품들은 모두 15세~20세 사이에 쓴 것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모든 정해진 규율과 법을 증오했다. 종교, 학교, 규범, 소속따위를 증오하고 ''혁명''과 ''반항''을 사랑했다. 나는 그가 ''애국자'' 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혁명''을 사랑하게끔 그런 유전자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간단한 예로 내가 우리나라 수도의 문화와 그 분위기를 사랑한다고 해서,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사랑하는 애국자는 아니듯이 말이다. 이를 증명하듯이, 그는 시인이 되려는...보다 큰 문화를 접하고자하는 뜻을 품고 수도 파리에 갔다가 그 사람들의 무지와 더러움을 접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그리고 랭보는 ''투시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샐린저가 말한 ''동향인''만큼이나 로맨틱한, 뭇사람에겐 우상시될 수 있는 단어라고 생 각한다!) 스스로 비참함과 더러움에 몸을 던짐으로써, 그것을 경험하고 또 그것을 시로 승화시 킬 수 있는 시인이 되기로. 이 즈음, 랭보는 그의 시와 재능을 인정해준 ''베를렌느''라는 시인과 동성애에 빠지게 된다. 베를렌느는 당시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부인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런 여러가 지 안좋은 상황속에서 그들은 애증과 오욕 속에 뒤섞여 처참한 사랑을 나누게된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베를렌느가 랭보를 총살하려고 한 사건으로 끝난다... 뒤에는 별로 할만한 말이 없다... 그는 문학을 접었으며, 아프리카와 이집트 등 여러나라를 떠돌며 상인이 되어 돈도 벌고 사랑도 몇번하다가 37살에 전신에 퍼진 암으로 죽는다. 나는 이 책의 중반까지, 그러니까 베를렌느와의 사랑이 끝날 때까지... 읽으면서 불편했다. 왜냐면, ''아르뛰르 랭보'' 그 ''투시자''라는 사람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생을 멀리서 조망하지 말고, 어떤 일에든 비참하거나 더러워져보라!" 고... 책을 통해 서만 모든 것을 이해하지 말고, 실제로 더럽게 살아보라고, 맞부딪쳐 비참을 경험해보라 고 말이다. 그게 나를 불편하게 했다. 나는 어쩌면 랭보가 ''유약하다''고 말한, 이장바르''나 ''베를렌느'' 축에 속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나는 그의 말년에... 베를렌느와의 사랑이 끝나, 광기어렸던 문학을 접고 상인이 되어, 보통 여자들과 사랑 을 나누고, 결국엔 아파서 골골거리고 그리하여 죽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의문이 든 다. 그리고 이 천재였던 사람의 비교적 말쑥한 말년&죽음에 유감을 표한다. 그 중반이 넘어 간 후, 나는 더 이상 그에게서 ''넌 유약하며, 인생을 경험해보려하지않고있어.'' 라는 메시지(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 메세지!)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4,5년 내로 후딱 5만 프랑 정도 벌 거에요. 그 다음에는 결혼도 하고." "이 서글픈 나라에서 고생해가면서 얻은 것이 이런 것이라니! 정맥류에다 류머티즘까지 합병증으로 겹쳤어요." 비웃음이 아니라... 어쨌든 나는 거의 이 책의 말미에 가서는 웃어버렸다. 황당함과 유감스러움과 슬픔과 어쨌든 그런 감정이 겹쳐서. 그리고 자꾸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베를렌느''에게 마술을 보여준다며 손을 펴보라고 했다가, 느닷없이 칼을 꺼내어 그의 손을 찔러버리는 (지독한)애증이라던가. ''투시자''가 되려했던 의지라던가, ''나는 시인 이 된다''는 운명론적인 믿음으로 날뛰던 예전의 그가... * 극단적인 ''편협함''이 천재 혹은 바보를 낳는다. |
| 국어교육학이라는 학문이 우리 사회에서 자리매김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하다. 서점을 나가보아도 국어교육론이나 국어교육학이라는 이름으로 쓰여진 책이 흔하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몇 안 되는 이론서 중에서도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국어교육을 전공하는 친구가 필독서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먼저 책내용을 이야기해보자. 이 책은 다른 책에 비하여, 내용이 충실하고 이론과 현실 교육의 보완을 추구하는 보기드문 교재인 것 같다. 나오자마자 사람들의 호응을 받아 2판이 나왔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 교육도 이제 초등-중등-고등 모두 7차교육으로 접어들었으니, 그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의 단점을 이야기한다면, 국어교육을 이야기하면서 책 곳곳에 오자가 있다는 점이다. 현재 4군데 정도 발견했는데, 눈에 보이는 오자이기에 다른 분들도 발견했을 것 같다. 빠른 시일에 나왔고, 또 책에 오자가 있을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러나 국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보는 책이기에 좀더 신중하게 해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담아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요즘 읽고 있는 이론서 중에서 보기 드물게 문제를 전략적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생각의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이 책으로 인해 생각에도 도전받고, 스스로 연구하고 실행할 수 있는 지침의 교재가 되길 바란다. |
| 요즘 세상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시...특히 외국의 번역시에는 관심이 없었기때문에 랭보에 대해 아는 지식이란 지극히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것에 불과했다. 대충- 요절한 천재시인, 동성애자-정도? 그러던 중 랭보에 대한 평전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가 지은 시 하나 읽어보지 않은 채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페이지를 다 넘기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 랭보...그는 천재였을 뿐만 아니라 충분히 매력적인 인간이었던 것 같다. 하는 일마다 잘되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그는 자기 인생을 걸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그의 시가 아름다운 이유이다. 그는 자신의 삶과 글이 일치하는 몇 안되는 인간중의 하나이다. |
| 랭보에 관한 책이 3000권이 넘는다고는 하지만 난해하기 그지없는 '지옥에서보낸 한철'을 제하고 내가 그 친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이 책 뿐이었다. 랭보 그 자신의 삶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이 책은 우리에게 랭보의 수 많은 시들이 어떠한 배경에서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소상하게 일러주고 있다.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두어번 읽으며 내쉬던 '스스로의 무식함'을 달래던 한숨을 거둬주었다고나 할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시야?라는 오래된 나의 물음을 말끔하게 정리해주었으니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열정과 환희... 그리고 분노... 랭보의 감정 상태는 항상 극단을 달려왔다. 사물의 깊숙한 내면까지 심취했다가는 익숙해진 모든 것을 쉽게 '버리고 떠나가는' 그의 모습. '너의 사랑과 너의 창조를 가지고 너의 고독으로 가라!!' 어쩌면 니체의 이 말은 아르뛰르 랭보를 위한 것일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떠나 그만의 고독으로 사라져간 랭보를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 난 500페이지가 넘는 이책을 다시 읽어나가고 있다. |
| 미셀 투르니에는 랭보를 반항의 시인이라고 정의내리고, 그 이미지를 자신의 소설 마왕에서도 차용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랭보는 수많은 십대와, 십대와도 같은 반항과 굴복하지 않는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그러나 그의 시는 단순한 이미지들로 치부하기에는 상당히 난해하다. 국내에 제대로 된 랭보관련 서적이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은 랭보를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고 나 역시 그랬다. 랭보의 시와 그의 삶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의 시는 곧 그의 삶이고, 그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시를 이해한다는 것과 같다. 나는 밤새워 책을 읽고 그의 시집을 계속 되풀이해 읽었다. 그러나 번역은 그야말로 어색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계속 눈에 띄는 오타와 문법에 어긋난 문장들은 시인 랭보의 삶과는 극단적으로 안어울린다. 내용과는 별개로 번역은 무척 신경을 긁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