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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와 아니무스>에서는 ‘융이 아니마, 아니무스라고 부르는 심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서 볼 수 있고 어떻게 경험되는가. 그 역할은 무엇이며 그 작용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에 대해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아니마, 아니무스 이론은 남성과 여성의 무의식의 성향에 관한 학설이다. 융의 이 학설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르다는 구별에서 출발한다. 남녀의 의식이 다른 만큼 무의식의 심혼 성향 또한 다르다. 그러므로 자기실현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은 각기 대조되는 성향의 내적 인격을 인식해 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제를 5개 장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1장 아니마, 아니무스란 무엇인가. 2장 한국인의 꿈에 나타난 아니마, 아니무스 상. 3장 밖에서 보는 한국인의 아니마, 아니무스 상. 4장 정신과 임상에서 보는 아니마, 아니무스 문제. 5장 한국문화에 나타난 아니마, 아니무스 상 “내면세계란 곧 무의식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외적인격(페르조나)를 가지고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는 것처럼 우리의 내면세계에도 외적 인격과 매우 대조되는 태도와 자세, 성향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내적 인격이라 부른다. 아니마, 아니무스는 바로 이 내적 인격을 말한다. 내적 인격은 자아가 내면세계와 관계를 맺는 징검다리와 같은 것으로서, ‘나’와 무의식의 더 깊은 층을 이어주는 매개자이다.(p.30)” 청소년기에서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형성되는 페르조나, 즉 외적 인격을 북돋워줄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남성 페르조나, 여성 페르조나도 배워서 익힐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전통적인 남성관과 여성관은 반드시 자기실현에 역행하는 것만은 아니다. 보편적으로 외적인 태도에서 남성이 논리와 객관성이 우세하거나 적어도 이상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여성에서는 감성이 우세하다. 그러나 심혼에서는 그 관계가 반대이다. 남성은 안으로 느끼고 여성은 숙고한다. “융에 따르면 외적 태도인 페르조나가 꿈에서 외적 태도에 가장 합당한 성질을 지닌 사람의 상으로 표현되듯이, 내적 태도인 심혼은 무의식에 의해 심혼에 해당되는 성질을 지닌 특정한 사람들로 표현되는데 그 상을 바로 심혼상이라고 한다.(p.50)” 얌전하고 순종적이며 헌신적인 여성상을 특징으로 한 심혼상을 무의식에 가지고 있는 남편이, 그것을 자기도 모르게 아내에게 투사하고 있을 때, 아내가 그런 심혼에 해당되는 행동을 하는 동안 남편은 남성으로서의 사회적 태도에 보다 충실할 수 있다. 그래서 표면상 사회가 바라는 가장과 주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여성들의 심혼상에 무의식적으로 맞추어 사는 남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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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와 아니무스 이부영 한길사/1976. 12.24 sanbaram <아니마와 아니무스>에서는 ‘융이 아니마, 아니무스라고 부르는 심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서 볼 수 있고 어떻게 경험되는가. 그 역할은 무엇이며 그 작용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에 대해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아니마, 아니무스 이론은 남성과 여성의 무의식의 성향에 관한 학설이다. 융의 이 학설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르다는 구별에서 출발한다. 남녀의 의식이 다른 만큼 무의식의 심혼 성향 또한 다르다. 그러므로 자기실현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은 각기 대조되는 성향의 내적 인격을 인식해 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제를 5개 장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1장 아니마, 아니무스란 무엇인가. 2장 한국인의 꿈에 나타난 아니마, 아니무스 상. 3장 밖에서 보는 한국인의 아니마, 아니무스 상. 4장 정신과 임상에서 보는 아니마, 아니무스 문제. 5장 한국문화에 나타난 아니마, 아니무스 상 “내면세계란 곧 무의식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외적인격(페르조나)를 가지고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는 것처럼 우리의 내면세계에도 외적 인격과 매우 대조되는 태도와 자세, 성향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내적 인격이라 부른다. 아니마, 아니무스는 바로 이 내적 인격을 말한다. 내적 인격은 자아가 내면세계와 관계를 맺는 징검다리와 같은 것으로서, ‘나’와 무의식의 더 깊은 층을 이어주는 매개자이다.(p.30)” 청소년기에서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형성되는 페르조나, 즉 외적 인격을 북돋워줄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남성 페르조나, 여성 페르조나도 배워서 익힐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전통적인 남성관과 여성관은 반드시 자기실현에 역행하는 것만은 아니다. 보편적으로 외적인 태도에서 남성이 논리와 객관성이 우세하거나 적어도 이상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여성에서는 감성이 우세하다. 그러나 심혼에서는 그 관계가 반대이다. 남성은 안으로 느끼고 여성은 숙고한다. “융에 따르면 외적 태도인 페르조나가 꿈에서 외적 태도에 가장 합당한 성질을 지닌 사람의 상으로 표현되듯이, 내적 태도인 심혼은 무의식에 의해 심혼에 해당되는 성질을 지닌 특정한 사람들로 표현되는데 그 상을 바로 심혼상이라고 한다.(p.50)” 얌전하고 순종적이며 헌신적인 여성상을 특징으로 한 심혼상을 무의식에 가지고 있는 남편이, 그것을 자기도 모르게 아내에게 투사하고 있을 때, 아내가 그런 심혼에 해당되는 행동을 하는 동안 남편은 남성으로서의 사회적 태도에 보다 충실할 수 있다. 그래서 표면상 사회가 바라는 가장과 주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여성들의 심혼상에 무의식적으로 맞추어 사는 남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심혼대지>에서 융은 생물학적 단계에서 여성의 주된 관심은 한 남자를 붙들어두는 일이지만, 남성의 주된 관심사는 여성을 정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본래의 성질상 남성은 하나의 정복에 머물지 않는다. 남성적 인격은 여성에게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남성의 여성에 대한 관계는 그처럼 명확하지 않다.(p.61)” 즉, 그는 그의 아내를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로 보면서도 항상 결혼의 법적, 사회적 성격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성은 결혼에서 예외 없이 개인적인 관계를 찾고 있다. 여성의 의식이 보통 한 남자에 국한되는 반면, 남성의 의식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 확장하는 성향을 띠며 때로는 모든 개인적인 것을 거역한다는 것이다. “아니마가 남성 속의 여성, 아니무스가 여성 속의 남성이라면 남성의 꿈에 나오는 모든 여성, 여성의 꿈에 나오는 모든 남성은 내적 인격인 아니마, 아니무스이거나, 또는 부분적으로 이와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p.151)” 부정적 아니무스는 불량기 있는 청년들, 깡패, 폭력조직, 마피아단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꿈에 나타난다. 여성다운 여성일수록 무의식에서 이러한 인물들에게 쫓기거나 곤혹을 치른다. 그러므로 꿈에 등장하는 아니무스가 험악할 때 그 여성의 의식은 반대로 지나치게 온순한 경우가 흔하다. 부정적 아니무스는 때로는 그러한 일방적인 ‘여성적 여성’을 자극하고 그 일방성을 수정하려는 충동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의 실패는 사랑의 성공보다 오히려 값진 보배를 남기는 법이다. 사랑에 실패한 사람은 자기가 상대방에서 본 것이 최소한 ‘허상’이었다고 생각할지라도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의 투사상임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즉 현실의 그 남자, 그 여자를 보게 된다. 그 실패를 통해 사랑이란 내가 원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상대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p.198)” 아니무스는 흐리멍텅한 것을 싫어한다. 표현되지 않고 확인되지 않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서 부부 사이에 깊은 신뢰가 쌓이기 전까지는 그렇다. 남성은 여성 심리를 여성은 남성 심리를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남성이 자신의 아니마를 표현하고, 여성이 자신의 아니무스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분화시켜야 한다. 부부는 서로 다른 자신의 세계를 비추어주는 거울과 같은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선녀의 날개옷을 감춘 것은 나무꾼의 남자로서의 의지와 결단의 한 가지 표현이다. 또한 많은 선녀들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집단으로부터 개성 있는 것으로의 아니마의 분화를 지향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융이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막연한 내용들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 막연한 소리나 영상을 그림이나 글로써 묘사하는 적극적 명상을 권장한 것은 바로 무의식의 의식화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p.263)” <아랑전설>은 개인심리의 차원뿐 아니라 집단심리, 시대정신의 문제와 관련해서 보는 것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고 한다.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원님이기 때문이다. 원님은 고을을 지배하는 책임자, 상징적으로 지배적인 집단의시그이 중심상이다. 이것은 <심청전>과 마찬가지로 집단적, 남성적 의식의 무능력과 경직성이 무의식 속에 그림자로서 열등한 충동적 성향을 키워왔고 그것이 여성적 심성(감성)을 지배하고 억압한 현실을 고발하고 그 시정을 촉구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아니마는 우리의 무의식에 있는 인격적 콤플렉스이다. 융이 되풀이해서 강조한 이 말은 주목할 만하다. 융은 아니마가 의식화 되면 인격상은 사라지고 기능으로 남는다고 하였다. (p.315)” 수행자들은 세속을 떠나 자연 속에서 자기 자신과 마주한다. 분석심리학은 그것을 삶 속에서의 체험을 통해서 성취하려 한다. 궁극적인 목표가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어 전체성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외향과 내향은 각 개인의 본성에 따라 다르게 조절된다. 궁극적으로는 자기 마음 안의 아니마, 아니무스의 분화 발전이지만 그러기 위해 아니마, 아니무스가 외부에 투사된 형태로 체험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가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무엇인지 이해하여 나의 정체성을 찾는데 도움 받기를 바란다. 저자는 서울대 의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수련을 시작하였다. 그 뒤 스위스 취리히에 가서 1966년에 융연구소를 수로하여 융학파 분석가 자격을 취득하고 국제분석심리학회 정회원이 되었다. 1997년 서울대 정년퇴임 후 같은 대학 명예교수로 추대되었으며, 분석심리학의 전문수련관인 한국융연구원을 설립 운영 중이다. 저서로 <그림자>, <아니마와 아니무스>, <자기와 자기실현> 등 다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