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0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5%
  • 리뷰 총점8 31%
  • 리뷰 총점6 4%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10.0
  • 20대 8.0
  • 30대 9.0
  • 40대 8.0
  • 50대 9.0

포토/동영상 (13)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수레바퀴 아래서
"수레바퀴 아래서" 내용보기
흔들리며 성장해 가는 젊은 영혼들을 위하여 헤르만 헤세가 들려주는 자전적 이야기  이 작품은 1906년 헤세의 나이 29세 되던 해 베를린의 피셔사에서 출판되었다. 그의 출세작 《페터 카멘친트(Peter Camenzind, 1904)》에 뒤이어 발표된 이 작품으로 인해 그의 작가로서의 지위는 확고해졌다. 이는 오직 만인에게 가장 다정스러운 소년시절의 즐거움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절실하
"수레바퀴 아래서" 내용보기
흔들리며 성장해 가는 젊은 영혼들을 위하여 헤르만 헤세가 들려주는 자전적 이야기  이 작품은 1906년 헤세의 나이 29세 되던 해 베를린의 피셔사에서 출판되었다. 그의 출세작 《페터 카멘친트(Peter Camenzind, 1904)》에 뒤이어 발표된 이 작품으로 인해 그의 작가로서의 지위는 확고해졌다. 이는 오직 만인에게 가장 다정스러운 소년시절의 즐거움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절실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헤세가 겪은 즐거움은 곧 우리들의 즐거움이요, 헤세가 겪은 슬픔은 곧 우리들 자신의 슬픔이었다.  헤세는 1877년 7월 2일 슈바벤의 칼프에서 신교의 목사 아들로 태어났다. 열세 살 때 그는 부모의 슬하를 떠나 괴팅겐의 라틴어 학교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이듬해에는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하게 관비생으로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가장 파란 많았던 이 시절- 마울브론 신학교 입학 전후에서부터 이 무렵까지-의 체험을 자서전적으로 묘사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주인공 한스는 홀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자라지만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인재로서 기대에 부응하려 항상 최선을 다한다. 온갖 노력 끝에 마울브론 신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한스는 그러나, 엄격한 학교 제도라는 현실 앞에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헤세는 수레바퀴 아래 깔려 버린 주인공 한스의 운명을 통해 자신이 직접 겪은 실제 사건과 거리를 유지하며 젊은 시절의 고뇌를 예술로 승화한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수재 소리를 듣는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그만큼 온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 그는 수재답게 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어렵다는 주 시험을 2등으로 통과해,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입학한다. 입학한 그는 같은 방을 쓰는 ‘하일러’를 만난다. 시를 쓰는 이 소년은 정해진 규율을 견디지 못하고, 이를 무시하려고 애를 쓴다. 착실한 모범생이었던 한스는 하일러와 친해지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하일러와의 만남은 오래가지 못한다. 무단으로 학교를 떠난 하일러의 퇴학과 현실에 대한 혼란으로 한스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진정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다가, 결국 기계공이 되기 위해 수습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휴일에 시내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가, 물에 빠져 주검으로 발견된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그의 분신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젊은이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는 한스처럼 '수레바퀴 아래서'힘든 삶의 여정을 밟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j***7 2025.01.08. 신고 공감 16 댓글 14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Think 2. 진정한 참교육을 위한 우리 어른들의 필독서ㅓ
"Think 2. 진정한 참교육을 위한 우리 어른들의 필독서ㅓ" 내용보기
영화 <위플래쉬>에서 독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명성만을 위해 제자들에게 기꺼이 '채찍질'을 하는 교수가 등장한다. 이 영화가 상영할 당시 미국에서는 '교육적 관점'에서 매우 부정적인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만약 자신에게 자녀가 있다면 '저따위' 교수에게는 교육받지 않게 하겠다고 말이다. 특히 교수의 '언어구사'에도 지적이 많았는데, 인종차별적이고 인격모독적인 욕설이
"Think 2. 진정한 참교육을 위한 우리 어른들의 필독서ㅓ" 내용보기

  영화 <위플래쉬>에서 독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명성만을 위해 제자들에게 기꺼이 '채찍질'을 하는 교수가 등장한다. 이 영화가 상영할 당시 미국에서는 '교육적 관점'에서 매우 부정적인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만약 자신에게 자녀가 있다면 '저따위' 교수에게는 교육받지 않게 하겠다고 말이다. 특히 교수의 '언어구사'에도 지적이 많았는데, 인종차별적이고 인격모독적인 욕설이 난무하여 수많은 질타를 받기도 했단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우리 나라에서는 '호평일색'이었던 것이 주목할 만하다. 우리말로 '뒤쳐진 자막'으로 인해 교수의 '폭력적인 언어'들이 상당히 순화(?)된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우리 나라 교육현실이 그런 '언어폭력'에 길들여진(?) 탓인지 모르겠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교수의 폭력적인 언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고, '재즈음악의 강렬한 비트'에 몸이 들썩이는 흥겨움에 보는 내내 즐거웠다는 평과 함께, '성공'을 위해선 저 정도(?) 강도의 수업은 달게 받아야만 한다는 '강압적인 교육의 정당성'을 들이대며 제자의 성공을 위한 교수의 헌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평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과연 그럴까? '위플래쉬'라는 뜻이 채찍질을 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도 '선생님이 되다'는 뜻으로 '교편을 잡는다'고 표현하는데, '교편'이 바로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면서 사용하는 가느다란 막대기를 이른다고 한다. 한때는 수업을 시작하거나 수업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바로 이 교편으로 교탁을 탕탕 두들겼고, 학생들의 훈육을 위해서 아이들의 엉덩이와 종아리, 손바닥, 옆구리, 명치, 관자놀이 등등 학생들의 신체를 가릴 것 없이 때리고 찌르고 패는데 썼던 '선생님의 권위(?)'를 상징하는 무기(!)로 주로 쓰이기도 했다. 이렇게 흉악한 무기를 들고서 잘 휘둘러야만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면서 학생들에게 으레 내려졌던 '체벌'을 없애는 방향으로 우리 교육이 변화했던 것이다. 요새 이런 '학생인권'과 '선생님의 교권'에 대한 논란이 충돌하면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는데 깊은 공감을 하지만, 여기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심도 깊게 이야기를 하겠다.

 

  암튼, 우리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면서 '모범생(한스 기벤라트)'와 '문제아(헤르만 하일너)'를 비교하며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기성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강변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곤 한다. 우리 나라의 학생 대부분은 이 책을 읽으면서 '문제아'가 되면 퇴학조치를 당해 '성공의 지름길'을 갈 수 없으며, '모범생'으로 성실하게 학업에만 열심히 하는 학창시절을 잘 견디기만 하면 '인생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해석이 옳다면 '한스의 죽음'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어찌하여 '잘 나가던 모범생'이 친구의 죽음과 퇴학을 당하는 슬픈 경험을 이겨내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걸려 끝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 시도 끝에 죽음에 이르게 되었냔 말이다. 앞서 '모범생과 문제아의 관점'으로만 이 책을 읽게 되면 한스의 죽음은 고작 '불성실하고 의지박약한 모범생의 뻔한 귀결'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헤르만 헤세가 그런 메시지를 주제로 삼아 <수레바퀴 아래서>를 썼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이 책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세의 '자전적 소설'로 분석될 만큼 '작가의 경험'이 잘 스며든 소설이다. 실제로 헤세도 학창시절 '두 번의 퇴학'을 당하고 '자살시도'도 했으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괴로운 나날을 지내다가 어머님의 헌신과 친구들의 우정, 그리고 진정한 사랑에 눈뜨게 되면서 다시금 '삶의 의욕'을 되찾게 된 경험담이라고 이 책에 대한 소개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목표를 상실하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공부만 강요당했던 학창시절이 끔찍할 정도로 괴로웠다는 고백을 털어놓으며 <수레바퀴 아래서>를 쓰게 된 까닭도 밝혔다. 이런 '작가의 의도'를 투영하여 <수레바퀴 아래서>를 이해하게 되면 분명 '교육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한 소설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기벤라트'에는 '충고(조언) 좀 해줘'라는 뜻이, '하일너'에는 '치유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면 한스와 하일너의 우정이 괜한 설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레바퀴'는 무엇을 의미할까? 왜 학생들은 그 '아래'에 놓이게 된 것일까?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있으면 한스 기벤라트의 주위 어른들이 모두 하나같이 '고지식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스의 아버지는 공부성적이 뛰어난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아들인 한스가 정작 무엇을 바라는지도 알려고 하지 않는 고루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저 한미한 집안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훌륭히 성장해주기만을 바라는 욕망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느낄 정도로 막무가내일 뿐이었다. 또한, 학교 선생님들조차 한스를 '마을의 자랑'으로 여길 뿐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 없다. 그들 역시 '마을의 명성'을 빛낼 뛰어난 인재로서 한스를 대할 뿐, 한스의 방황과 실패 앞에서 그저 '방관자'로 일관할 뿐 '한스의 성적과 결과' 이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는다. 한편, 마을의 목사와 신학교의 교사들도 '미래에 걸출한 예비목사'로써만 한스를 대할 뿐, 그밖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행여나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 '목사'가 아닌 다른 '존재'를 꿈꾼다는 것조차 인정할 수 없는 편협한 성격의 소유자들일 뿐이다. 이렇게 '기성세대'가 만든 '기성사회'는 자신들의 성공(?)만이 유일한 정답인 것마냥 학생들에게 강요를 '되풀이'하는 반푼이였던 것이다. 수레바퀴는 바로 이런 '모자란 어른들'이 만든 맹목적인 사회를 상징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일이 고작해야 '수레바퀴 아래'에 학생들이 깔리지 않도록 '수레바퀴 위'로 끌어올려 '수레바퀴 안'에서 맴도는 삶을 가장 숭고한 업적으로 여기는 모지리들인 것이다.

 

  이런 모자란 어른들이 만든 사회에 반기를 든 학생이 바로 '헤르만 하일너'다. 그는 과감히 '수레바퀴'에 탑승을 거부하고 '수레바퀴 바깥세상'을 꿈꾸며 반듯한 어른으로 성장했다고 후일담을 전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한스 기벤라트'는 수레바퀴에 탑승하는 것이 자기 스스로 원하는 것이 아님을 직감하긴 했지만, 하일너처럼 '극복'하지 못하고 '고민'만 하다가 우울에 빠지고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사회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을 맞이한 청소년으로 보여진다. 우리 주변의 청소년을 살펴보자. 그들이 되바라지고 싸가지도 없으며 행동 하나하나가 이해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존재'라는 비난을 들이대기에 앞서, 그들이 스스로 '정체성'을 발견하고 '자기만의 가치관'을 제대로 형성하고 있으며, 그렇게 꿈꾼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는지 살펴보잔 말이다. 그때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시기적절한 '충고(조언)'가 필요한 것이다. 꼰대처럼 들릴 소리지만 '라떼'도 좀 섞어가면서 우리 청소년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그리고 '돈(경제력)'도 잘 벌 수 있는 인생상담을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레바퀴 아래서>는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선생님과 학부모를 비롯한 모든 어른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인 셈이다. 그리고 반성해야 할 주제가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아이에겐 '왕의 DNA'가 있으니 특급서비스(?)를 해줘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학부모이자 고위관직자가 되어선 안 된다. 또한, 선생님들도 사랑스런 제자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서 '모범생'과 '문제아'로 구분하는 어리석음은 저질러선 안 된다. 진상짓만 골라서 하는 학부모들의 민원과 그런 학부모의 눈치만 살피는 교장 이하 '윗선'에 의한 고충은 별개로 치고 진정 자신의 제자를 위해서 해줘야 할 '충고'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고, 아끼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일선 선생님들의 고충은 알고도 남는다. 비록 사교육 과외교사에 불과하지만 나도 논술쌤으로 '교육상담'을 하다보면 말도 안 되는 진상부모들의 요구사항을 듣고, 어처구니 없는 학생들의 무도한 헛짓거리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찬 적이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생님이기에 가슴에서 삭히고 가슴으로 품어야만 할 때가 더 많았다. 그것이 '진정한 교육'이라 믿기 때문이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z******8 2023.08.12. 신고 공감 1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내용보기
공부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야해요!너무 공부만 하면서 지내고 싶지 않았어요.어른들은 정말 이기적이에요. 이 책을 같이 읽은 중학생들에게 어땠니? 라고 물었더니 위와 같은 대답이 나왔다. 가장 웃기면서도 명료한 대답은 "스카이 캐슬과 같았어요'"였다. 짧은 이야기지만 중학생들이 소화하기에는 어려운 듯해서 일부러 천천히 읽어나갔다. 줄거리를 익히기 위해 돌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내용보기

공부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야해요!

너무 공부만 하면서 지내고 싶지 않았어요.

어른들은 정말 이기적이에요.

 

이 책을 같이 읽은 중학생들에게 어땠니? 라고 물었더니 위와 같은 대답이 나왔다. 가장 웃기면서도 명료한 대답은 "스카이 캐슬과 같았어요'"였다. 짧은 이야기지만 중학생들이 소화하기에는 어려운 듯해서 일부러 천천히 읽어나갔다. 줄거리를 익히기 위해 돌아가면서 한 문장씩 말해보기를 했더니 아주 간략하게 정리를 해주었다.

 

한스가 있었다--> 마을의 기대주로 시험을 쳤다.--> 2등으로 합격해 신학교에 들어갔다--> 힌딩어가 죽었다--> 하일러가 떠났다-->한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엠마를 만나서 입술을 뺏겼다(이 부분에서 웃겨 죽겠다고 난리)-->기계공 실습생이 되었다--> 엠마가 떠났다--> 시내에 나가서 술을 마셨다--> 한스가 죽었다--> 마을 사람들이 애도했다.

 

헤르만 헤세의 자전 소설인 이 책은 한스라는 아이를 두고 주변의 어른들이 어떻게 부추기고 냉대하는지, 어른들이 바라는 행동과 충돌했을 때 어떤 대접을 받는지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한스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과정을 보며 주변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봤을 때 안타깝게도 한스에게는 진심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 어른들은 한스를 그들의 명예욕을 채워 줄 도구로 보았고, 친구는 자신이 외로울 때만 한스를 찾았다.

 

한스가 만약 의지가 굳은 아이였다면 주변의 일에 그렇게 휩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스는 마음과 몸이 무른 청소년이었고, 남들보다 더 소심한 성격도 불행한 결과의 원인이 되었다.  한스의 마음을 사로잡은 상대가  남을 배려하기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자유로운 인물이어서 한스는  힘이 들었다. 신학교에서 만난 하일너나 고향에 돌아와서  만난 엠마에게  한스에 대한 진심이 없었다는 것이 한스에게는 불운이었다.

 

한스의 죽음에 누가 책임을 느껴야하는가, 라는 질문을 끝으로 이 책을 덮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흔히 그렇듯, 정말 책임을 져야할 사람은 재빨리 그 일에서 벗어나 자신과는 연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도 한스를 가장 걱정해 준 플라이크 씨만이 한스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낄 뿐이다. 의미있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드라마 '스카이 캐슬' 과 다르지 않다며 즐겁게 읽어준 아이들이 고마웠다.

 

 

 

t******e 2019.02.24. 신고 공감 6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이 땅의 한스들, 행복하렴~
"이 땅의 한스들, 행복하렴~" 내용보기
유난히 총명한 아이가 있었다. 의욕도 있어 게으르지 않고,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야망과 인내심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며 상급학교에서 배울 것들을 선행하는 아이. 아들이 대학공부를 마치고 관료가 되는 것이 최대의 야심인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에게 그 가능성이 보이는 아이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스는 특별한 존재, 재능있는 아이였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아이가 총명하
"이 땅의 한스들, 행복하렴~" 내용보기

유난히 총명한 아이가 있었다. 의욕도 있어 게으르지 않고,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야망과 인내심으로더 열심히 노력하며 상급학교에서 배울 것들을 선행하는 아이. 아들이 대학공부를 마치고 관료가 되는 것이 최대의 야심인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에게 그 가능성이 보이는 아이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스는 특별한 존재, 재능있는 아이였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아이가 총명하여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고 신분상승을 가져다줄 골든 티켓처럼 공부란 그런 수단이 되어도 된다고 믿었다. 아이의 성과에 자신의 공적이 있음을 자랑하고 싶은 젊은 목사, 가문의 영광이 될 기숙학교에 당당히 차석으로 입학한 아들이 대견했을 아버지, 온 마을의 기대가 한스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었을지. 떨어져도 또 다른 삶이 있다는 말 따위는 한스의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그 스트레스를 괜한 나무에게 풀었음을, 자꾸만 두통에 힘들었음을 그냥 간과했다. 아이가 원했으므로. 아이가 원하도록 어른들이 자꾸 주입했으므로.

 

이 책은 헤르만 헤세의 자서전적 소설이다. 수도원 학교를 중퇴하고, 시계공장에서 실습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성을 상실한 교육을 비판한다. 학생들이 어린 시절 누려야 할 것들을 반납하고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리게 하는 어른들의 잘못을 지적한다. 또한 이 책이 발간된 20세기 초 저자는 정육점 주인이나 피혁공, 빵집 주인, 대장간 주인 등 노동자들을 다소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블루칼라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직업관의 변화가 여전히 필요한 듯 보인다. 아울러 기계 견습공으로 일하지만 주 시험에 합격한 대장장이라거나 뒤늦게 하찮은 견습공이 되었다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낙심하여 죽음에 이르는 주인공의 행동에 그 모멸감을 이겨낼 마음의 힘을 필요함이 느낀다.

 

한 젊은이가 우리 곁을 떠났다. 음악에 재능도 있었고 열정도 있었다. 노력도 많았지만 우울의 늪을 이기지 못하고 차마 지친 모습으로 떠난 그 청년을 보며 한스가 떠올랐다. 한스처럼 자신의 추락으로 수치심을 느끼진 않았겠지만 성공을 위해 뛰느라 마음이 망가지고 치유할 때를 놓친 모습을 보며, 지치면 쉬어도 좋다고, 계속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고, 남보다 앞서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쉴 수 있는 시간을, 좀더 자신을 돌아보고 행복할 시간을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남보다 앞서고 싶은 이 땅의 한스와 부추기고 조종하는 어른들에게 경쟁보다 더불어 사는 삶을 권하고 싶다. 어느 정도의 경쟁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지치지 않도록, “나는 내가 너무 좋다고 자신을 두 팔로 꼭 안아주던 짜장면 불어요의 주인공 기삼이처럼 직업의 귀천보다 인간됨을 소중하게 여기기를, 어떤 삶이든 존중받을 수 있는 인간됨을 먼저 가꿀 수 있는 교육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이 땅의 한스들이 좀더 행복하기를.

YES마니아 : 플래티넘 i*****7 2018.01.04.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내용보기
작품의 줄거리를 대충 읽어보고 처음 든 생각은 '아 이거 읽기 좀 그런데'라는 생각이었다. 우울하고 절망적인 내용을 어떻게 풀어나간 걸까? 궁금하게 생각한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의 초반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주인공 한스 하일너의 모습은 마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명의 소년과 같지 않은가?' 였다. 주위의 기대와 억압에 시달려 그저 공부만, 공부하는 기계처럼 살아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내용보기

작품의 줄거리를 대충 읽어보고 처음 든 생각은 '아 이거 읽기 좀 그런데'라는 생각이었다. 우울하고 절망적인 내용을 어떻게 풀어나간 걸까? 궁금하게 생각한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의 초반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주인공 한스 하일너의 모습은 마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명의 소년과 같지 않은가?' 였다. 주위의 기대와 억압에 시달려 그저 공부만, 공부하는 기계처럼 살아가는 소년의 모습은 저절로 동정심을 유발한다. 소년이 신학교에 들어가 겪는 우정, 공포, 슬픔, 분노, 절망은 그를 망가뜨리기에 충분한 시련이었다. 학교의 위신만을 신경쓰는 교장, 자식을 억압하는 아버지, 따돌리는 친구, 성적이 최고라는 사회까지. 소년이 버티기엔 너무 가혹한 짐이 아니었을까. 돌아온 한스에게 찾아온 사랑과 동료. 방황하며 돌아가는 그가 향한곳은 연못일까, 집일까. 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정체불명의 사망자는 한스가 아닐지라도 잘못된 사회의 희생양은 아닐까. 생각해보게되는 글이었다. 같은 작가의 글인 데미안도 읽어보고 싶게 되었다..

e*****k 2019.02.24.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수레바퀴 아래서
"수레바퀴 아래서" 내용보기
중학생인 아이가 읽기를 원헤서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구매했어요. 초기 작품인 " 수레바퀴 아래서" 중기 작품인 "데미안" 후기 작품인 "싯다르타" 세 작품을 읽었다. 중학생인 아이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연속으로 읽었다. 초기 작품인 " 수레바퀴 아래서" 중기 작품인 "데미안" 후기 작품인 "싯다르타" 세 작품을 읽었다. 수라바퀴 아래서는 헤르만 헤세의 초기 작품으로 자전
"수레바퀴 아래서" 내용보기

중학생인 아이가 읽기를 원헤서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구매했어요.

초기 작품인 " 수레바퀴 아래서"
중기 작품인 "데미안"
후기 작품인 "싯다르타"

세 작품을 읽었다.

중학생인 아이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연속으로 읽었다.

초기 작품인 " 수레바퀴 아래서"
중기 작품인 "데미안"
후기 작품인 "싯다르타"

세 작품을 읽었다.

수라바퀴 아래서는 헤르만 헤세의 초기 작품으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기숙학교에 들어갔지만 자퇴하고 헤메는 사춘기 시설의 자전적 성장 소설이다.
 

 

k*****1 2020.12.30.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주인공 '한스'가 내가 되는 순간
"주인공 '한스'가 내가 되는 순간" 내용보기
주인공 '한스'는 특출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평범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가 특출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평범해지며 우리는 이 진실을 혼자서 견뎌내야만 한다. 그 진실의 무게는 각자가 다르겠지만 그 짐을 느끼게 되는 시기는 모두가 엇비슷한 것 같다. 그것은 오래 전에 쓰여진 이 책에서마저 보여진다. 학교 진학과 취업이 바로 그 때이다.
"주인공 '한스'가 내가 되는 순간" 내용보기

 주인공 '한스'는 특출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평범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가 특출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평범해지며 우리는 이 진실을 혼자서 견뎌내야만 한다. 그 진실의 무게는 각자가 다르겠지만 그 짐을 느끼게 되는 시기는 모두가 엇비슷한 것 같다. 그것은 오래 전에 쓰여진 이 책에서마저 보여진다. 학교 진학과 취업이 바로 그 때이다.

 

 '한스'는 인생의 앞으로 나아가면서 드물지만 주기적으로 옛 추억에 잠긴다. 그것은 어릴 때 했던 행동, 놀이 또는 어느 한 시점의 시간들이다. '한스'는 그것들을 제춰두고 포기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듯이 말하고 이것을 곧 '성숙'의 한 단계처럼 여긴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을 마치 인생의 즐거움을 놓은 것처럼 생각한다. 인생의 즐거움이 추억으로만 남아야 하는 것처럼,,, 앞으로는 절대 그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것을 안다는 듯이 말이다. 소설이지만 너무 맞는 것 같아서 '한스'가 옛 추억을 되새길때마다 내 마음도 같이 아파왔다. '한스'가 토끼에게 집을 만들어주며, 강에서 낚시질을 하며 행복했던 그 감정 등을 커 버린 우리는 이제 다시는 느끼지도 못하고 이해하기도 힘들 것이다. 클수록 인생의 즐거움이 더욱 즐어드는 것 같아 슬프기만 하다. 갑자기 어느 한 소설의 대사가 떠오른다. "정말 소중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드는 것이야." 인생의 즐거움이 아주 천천히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다.

 

 주인공 '한스'가 두통을 달고 살고 신경쇠약을 겪은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가 없는 학교생활, 규율에 얽매인 학교, 아버지의 기대감,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 학교에서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혼자 앓고 아무도 이해해 주지 못할 것이라는 고독감 등이 있을 것이다. 그냥 써보았는데 이 정도라면 사실 '한스'가 느끼는 감정은 더욱 복잡하고 우리가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것일거다. 그럼에도 현재를 살고 있는  평범한 학생들과 20대들이라면 그 기분을 또 알 것만 같기도 하다. 시대는 달라도 우리가 느끼는 감정 또한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스'가 마지막에 기계공 견습으로 일을 나갈 때 왠지 모를 슬픔을 느꼈고, 서투른 사랑에서 삶의 힘을 얻으려고 할 때 안도감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비참함을 느꼈다. 아마도 내가 인생의 그쯤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수레를 우리가 끌고 있거나 인생이라는 수레에 타고 우리가 끌려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수레에 불과했다. 우리는 누가 끄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싣고 가는지도 모른 체 그저 나아갈 뿐인 것이다. 우리가 걱정할 것은 그저 수레바퀴 아래가 평탄하여 앞으로의 길이 힘들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p.s) 소설의 결말이 '한스'의 죽음인 것은 너무나 현실적인 소설속 이야기에 독자가 좌절하지 않도록 벼현실적인 요소를 더한 것이라고 믿는다. 

 

     

k***2 2018.07.28.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수레바퀴 아래서
"수레바퀴 아래서" 내용보기
헤르만 헤세의 워낙 유명한 소설인데 막상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다가 드디어 이번 기회에 구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시계태엽 오렌지를 보고 나니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제목도 수레바퀴라는 끊임없이 같은 방향으로 돌아가는 사회의 바퀴에 깔린 인간을 연상시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격한 신학교를 버티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걸려서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 한
"수레바퀴 아래서" 내용보기

헤르만 헤세의 워낙 유명한 소설인데 막상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다가 드디어 이번 기회에 구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시계태엽 오렌지를 보고 나니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제목도 수레바퀴라는 끊임없이 같은 방향으로 돌아가는 사회의 바퀴에 깔린 인간을 연상시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격한 신학교를 버티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걸려서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 한스는 고향과 집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죽고 맙니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점이 강압적인 사회에 짓눌려서 익사했다는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5******8 2019.01.3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내용보기
독일이 낳은 유명한 작가이자 시인 또한 철학가, 몽상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마도 가장 유명한 성장소설인 데미안의 저자, 헤르만 헤세. 수많은 찬양어가 붙는 그의 또 다른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오래전에 한번 읽었던 적이 있지만 다시 간만에 읽어보려고 주문했다.이 소설은 흔히들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며, 한스 기벤라트가 겪는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라고들 한다. 한스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내용보기
독일이 낳은 유명한 작가이자 시인 또한 철학가, 몽상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마도 가장 유명한 성장소설인 데미안의 저자, 헤르만 헤세. 수많은 찬양어가 붙는 그의 또 다른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오래전에 한번 읽었던 적이 있지만 다시 간만에 읽어보려고 주문했다.
이 소설은 흔히들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며, 한스 기벤라트가 겪는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라고들 한다. 한스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온순한 아이였다. 낚시를 좋아하고 한때는 토끼도 기르면서 또래처럼 그렇게 뛰어다니며 즐거웠다. 하지만 영특함이 눈에 띄면서 한스는 아버지 뿐만이 아니라 교장선생과 목사,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게 되고, 그 중압감을 양 어깨에 짊어진채 신학교에 입학한다. 처음 한스는 그 어렵다는 신학교의 좁은문을 2등이라는 우수한 실력으로 들어가지만, 차츰 기성세대의 권위의식과 신학교의 딱딱한 분위기에 신경쇠약이 심해져간다. 거기에 같은 방 친구의 죽음, 가장 친하게 지냈던 헤르만 하일러의 퇴교처분으로 한스는 신경쇠약증세가 점점 더 심해진다. 원래 감수성이 예민하고 날카로웠던 한스는 결국 신학교에서 나오고 만다. 그토록 남들보다 앞서나가려 기를 쓰고 노력하고, 한때는 자만하기까지했던 한스 기벤라트. 그가 고향을 떠날때 축복의 인사를 던졌던 마을 사람들은 냉대에 가득찬 시선으로 한스를 대한다.
어렸을때는 하일러와 한스의 우정이 멋졌고, 결국은 기성세대의 권위의식에 도전하는 소년의 저항이 멋있게만 느껴졌었는데, 어느덧 삼십대 중후반에 이 책을 다시 읽으니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친구 잘못 만나 엘리트코스를 박차고 뛰쳐나온 치기어린 소년의 이야기로 보이다니.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과 함께, 청소년기의 친구들은 그 시기에만 느낄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책이기에 꼭 한번 보았으면 한다.
수레바퀴아래서. 역시 명작이다.
f*******a 2018.11.2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수레바퀴 아래서
"수레바퀴 아래서" 내용보기
고등학생 시절에 잠깐 이 책을 읽다 못마친적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 이 책을 다시금 읽으니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벌써 10년은 되었는데도 한스가 느낀 중압감과 답답함이 너무도 잘 이해가 갔다. 나도 아직까지 학창시절때 느낀 온갖 불안한 감정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나보다. 만약 한스가 하일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결과가 달랐을까? 꼭 그렇지도 않
"수레바퀴 아래서" 내용보기

   고등학생 시절에 잠깐 이 책을 읽다 못마친적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 이 책을 다시금 읽으니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벌써 10년은 되었는데도 한스가 느낀 중압감과 답답함이 너무도 잘 이해가 갔다. 나도 아직까지 학창시절때 느낀 온갖 불안한 감정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나보다.


 만약 한스가 하일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결과가 달랐을까? 꼭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똑똑한 천재소년 한스의 마음속에는 순수한 영혼을 볼 수 있는 눈과 그것을 알고자하는 열정이 꿈틀대고 있었고,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따라 자기도 모르게 이끌려갔었던 것이다. 내용이 상당부분 헤세의 자전적 요소가 들어가있다고 하는데, 헤세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하고도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이 아이를 망친다.

교육이라는건 아이 개개인의 개성과 참된 욕구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건전한 정신과 교양을 가진 훌륭한 시민을 길러내기도 하므로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교육은 참 어렵고 교사의 역할이란 중요하다. 나중에 내가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이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 것인지 고민이 많이 될 것 같다. 부디 나의 욕심으로 아이가 가진 참된 재능의 날개가 꺾이지만은 않길..


g*********0 2018.11.01. 신고 공감 1 댓글 0